모든것은 인과율...
"이런!!"
진의 얼굴이 한순간 일그러지며 자리를 박차며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진의 얼굴을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한 키네라는 손을 수도의 형태로 하여, 일직선으로 진의 목으로 날렸다. 그 손을 본 진은 일그러진 표정을 지우고 자신에게 조소를 지어 주었다.
'이거 이거 아무리 이곳이 결계 안이라고는 하지만, 이 거리까지 접근하도록 몰랐다니..한심하군..'
키네라의 속도는 거의 인간의 속도를 넘었다. 평소 보통 지구인보다 월등히 체력이 약한 아돈족의 소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쾌속의 속도였다. 허나 진은 여유 있게 쾌속으로 자신의 목으로 날아오는 키네라의 손목을 잡았다. 찰나에 일어난 일이기에 아직도 에프로슈네와 루미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짖고 있을 뿐이었다.
"흥!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고작 그런 솜씨로 날 죽이려 들다니, 나의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안 드나?"
"우둑"
"까아아아아"
싸늘한 웃음을 지어 준 진이 잡은 손목에 힘을 주자 뼈 부셔지는 소리가 났다. 방금 전까지 담배재배로 수하랑 티격태격하던 어수룩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안광과 잔인한 웃음만이 뿜어져 나올 뿐...... 뼈 부셔지는 고통과 진이 여전히 놓지 않고 잡고 있는 부러진 손목 때문에 고통에 고개를 숙이며 떨고있던 키네라는 진의 목소리를 듣자 고개를 들어 진을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부족하다고? 알고있어.. 그러니 우...웃기지마! 이 자식아!!"
"호..? 날 알고있다는 목소리로군...그러면 더욱 멍청하지... 날 알고있으면서도 이런 유치한 습격이나 하다니."
진의 말에 키네라가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얼굴로 비릿하게 웃었다.
"큭큭큭, 잘 알고 있지 누구보다도.. 그러니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키네라의 말과 함께 진에게 붙잡혀서 부러진 팔이 사람의 피와 같은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든 것과 동시에 큼지막한 기포들이 빠르게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붙잡고 있는 팔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자 진은 눈앞에 있는 그녀를 밀치며 재빠르게 뒤로 물러서려 하였다. 하지만 인간을 초월한 것은 속도만이 아니라는 듯 키네라는 엄청난 힘으로 부러지지 않았던 나머지 팔을 이용하여 기포가 생기는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진의 손이 떨어지지 않게 강하게 움켜잡았다. 그 행동에 진이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이 지어졌다. 그 표정을 본 키네라는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와중에서도 미소를 지었다.
"죽어라 아이샤르 진!!!"
"콰아아아앙"
키네라의 절규와 같은 소리와 함께 부러진 팔의 기포들이 엄청나 힘으로 폭발했다. 폭발 에너지는 정교하게 진이 있는 방향으로만 펴져 폭발 당사자인 키네라는 물론 뒤에 있었던 루미나와 에프로슈네의 경우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저 강한 바람이 그녀들의 머리카락을 허공으로 날릴 뿐이었다. 폭발의 소리 때문에 잠시 청각이 마비되었을까?. 루미나와 에프로슈네는 엄청난 폭음 뒤 그저 마른 대나무가 타는 듯한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한순간의 소동 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던 정적은 한줄기 절규로 끊어졌다.
"마..마..마..마스터!!!"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에프로슈네가 절규와 함께 폭발로 생긴 화염에 허둥대며 달려나갔다. 허나 곧 에프로슈네의 절규로 정신을 차린 루미나가 몸으로 덮쳐 에프로슈네를 멈추게 하였다..
"이마 늦었어.... 저런 폭발로는 아무도 무사하지 못해요..."
"아냐!! 그럴 리 없어,,그분이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라고....흑흑흑"
루미나의 폼에서 빠져나오려고 에프로슈네는 발버둥을 쳤으나 그녀 보다 몸은 약한 루미나였지만 죽을힘을 다해 말리자 서서히 발버둥치는 힘이 줄어 들어갔다. 아마 그녀 스스로 알고있을 것이었다. 그 정도 폭발을 맨몸으로 받았다면 절대로 살아 날리 없다는 것을...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한 에프로슈네를 꼭 끌어 안아준 루미나는 타오르는 불꽃을 황홀한 눈으로 보고있는 키네라를 쳐다보았다. 폭발의 정교함 때문인지 기포가 발생하면서 터져 버린 팔 하나를 빼고는 꽤 멀쩡한 모습이었다.
"너는 누구지!! 키네라가 아니지!!"
루미나의 말에 불꽃에서 루미나에게로 시선을 돌린 키네라가 말했다. 타오르는 불꽃의 열기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굉장히 흥분한 모습이었다.
"나? 이런.. 이런.. 그동안 친한 친구의 얼굴도 잊어버린 모양이구나??"
"장난하지마!! 키네라는 어디 있어!!"
"내가 누군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야.. 진, 그자가 죽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 호호호"
"이!! 악마, 악마!! 죽여 버릴 꺼야!!"
키네라의 웃음소리를 들었을까? 울음을 멈춘 에프로슈네는 루미나의 품안에서 키네라를 노려보며 소리 쳤다, 그리곤 루미나가 어찌 할 틈도 없이 품에서 빠져나와 그들이 처음 들어온 복도로 뛰어갔다.
"흥!! 이미 늦었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진은 죽었어!! 이제 진이 죽었으니 계획이 발동할 것이다!! 이제 너희들이 할 일은 주인을 따라 영광스런 지구를 위해 죽는 일밖에는 남지 않았다!! 이 쓰레기들아.."
그 소리를 들은 에프로슈네는 복도로 뛰어가는 것을 멈춘 후 헝클어진 머리에 광기가 물든 눈으로 뒤로 돌아 키네라를 쳐다보았다.
"우리에게 살길을 열어주신 분이 돌아 가셨다!!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는 분이 돌아갔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사라져 버렸어!! 그래 우리는 쓰레기들이다! 재활용도 되지 못하는 쓰레기들이란 말이야!!! 하지만 우리에게도 긍지는 있어, 우리가 이대로 죽을 것 같아!! 천만에!! 복수 할 꺼야!! 그분의 죽음에 연관된 모든 것들에게 복수 할 꺼야!!"
에프로슈네의 광기에 젖은 눈빛으로 피맺힌 절규를 토해냈지만 그 절규의 원흉인 키네라는 비릿한 비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해보시지? 쓰레기들.. 너의 쓰레기들이 살아있었던 이유는 진의 힘 때문이야. 그가 죽은 이상 그의 곁에서 기생충처럼 살아가던 너희들이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 복수? 우습군! 이제 이곳으로 10만 이상의 함대가 몰려올 것이다! 어디 잘 살아남은 다음에 복수해 보시지!?"
비웃음 가득한 키네라의 말에 에프로슈네가 분노하고 있을 때 그사이 에프로슈네를 안고 있었던 자세 그대로인 루미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아..아...아....."
루미나가 보고 있는 방향은 활활 타오르는 대나무 숲이었다. 마치 기름을 부은 듯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나무와 나무를 타고, 브레이크 파열된 자동차처럼 미친 듯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있었다. 그런 불꽃이, 방금 전까지 모든 것을 태워버리겠다는 듯 미친 듯이 타오르던 불꽃이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거대한 물체가 밀어버리는 것처럼 천천히 눈으로 간신히 볼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밀려나고 있었다. 아니 불꽃이 어떤 무언가에 의하여 먹혀들어 갔다는 표현이 타당하였다. 허나 루미나가 경악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 불꽃을 막혀버린 그 자리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져 나오는 어떠한 오싹한 기운.....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그 느낌은 광기에 찬 에프로슈네도 그 에프로슈네를 비웃던 키네라도 느낄 수 있었다.
"으흐흐흐흐...으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세명의 소녀들은 눈앞에 보이는,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에 머리에는 끊임없이 도망가라는 외침을 들었지만 마비된 듯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그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의 귓가에 마치 지옥의 구덩이에서 들릴법한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 에프로슈네가 키네라에게 뿜었던 광기는 봄처녀의 수줍은 웃음소리처럼 들릴 정도였다.
"촤!!!!"
때마침 화재진압용 액체가 파란 하늘에서(아직 홀로그램이 꺼지진 않았다. 그러니 아직은 파란 하늘)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폭우처럼 쏟아지는 액체에 불꽃의 향연은 순식간에 막을 내리며 사라졌고 남은 것은 타다 남은 잿더미뿐이었다. 단 하나를 빼고...
"...말도 안 돼!! 기간테스(연대표에서 설명한 인간형 병기)의 전면장갑도 근거리에서 부셔버릴 수 있는 화력이었는데.."
키네라의 경악 섞인 말에 차가운 조소를 지어주는 그 존재는 모두 죽었다 라고 생각되었던 진이었다. 물론 멀쩡한 모습은 아니었다. 흙투성이였지만 튼튼하게 보였던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하체만 남아있었고 가슴에는 엄청난 철퇴로 맞은 듯이 가슴뼈가 함몰되어 폐를 찔렀는지 연신 기침을 하면서 힘들게 호흡을 하는 모습이었다.
소녀를 연상하게 하던 아름다운 얼굴은 날카로운 파편에 맞았는지 크고 작은 상처들로 본래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키네라의 폭발한 손목을 잡은 왼팔이 박살이 나 있어, 인간의 피부색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검게 물들은 오른팔로 감싸 안고 있었다. 박살난 왼팔은 기계 팔이었는지 이상한 코드 선과 기계뭉치.. 그리고 검은색의 기계기름이 떨어지고 있었다. 겉모습만 본다면 한마디로 살짝 건들어도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키네라는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방금 전 소름끼치는 느낌도 느낌이지만. 거의 죽을 것 같은 진을 부축하고 있는 4명의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고민하는 키네라에 비해 루미나와 에프로슈네는 감탄과 환희였다. 특히 에프로슈네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진을 부축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지만 그녀도 시커먼 색으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오싹한 기운과 만신창이 몸인데도 불구하고 입가에 걸린 진한 미소가 대비되어 섣부르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묘한 대치상황이 되었을 때 진이 괴로운 듯이 기침을 하면서 말하였다.
"큭큭큭.....재미있어..... 재미있어! 아주 재미있어!!! 쿨럭 쿨럭..이거 다시 한번 손에 피를 뭍일 수 있다니! 큭큭큭.. 하하하하하! 이거, 이거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 상상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는군......그렇게 생각하지 않은가?"
마치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던 진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싸늘한 눈빛이 키네라를 향하자 그 눈빛을 받은 키네라는 등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쿨록..쿨록...거기 너의 이름은 뭐지?"
"예?? 아 예!! 전 지구군 중위 라마 리 루미나라고 합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루미나가 대답하였다.
"쿨럭 쿨럭... 호.. 그렇군..같은 라마(아돈족의 한 일파)일족이라.....하나 물어보지.. 너하고 같이 온 저기 저 키네라라는 소녀하고 쿨록...여....여기까지 오는데 지구...시간으로 얼..허헉...얼마나 걸렸지?"
"지금 그런 소릴 하실 때기 아니지 않습니까? 서둘러 치료를.."
"나는..너에게 묻지 않았다"
지금은 치료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 엉뚱한 소리를 하자 에프로슈네가 화를 냈으나 소름끼칠 정도로 싸늘한 진의 말에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키네라의 도주방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왜? 여기는 우주선이니깐..^^)
"...예.....아마 약16일 정도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쏘여지는 눈빛도 아니었지만 키네라를 바라보는 진의 소름끼치는 눈빛에 자꾸 자신이 위축되는 것을 느끼면서 루미나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호오.....16일이라..."
루미나의 대답을 들은 진은 잠시 생각하는 척 하더니 자신의 앞에서 경직되어 있는 키네라를 바라보며 방금 전까지 광기에 물든 목소리가 아닌 조용히...아주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흠.. 너에게 하나 물어보겠다. 키네라라고 하는 그 아돈족 소녀의 몸 속에 네년을 처박아 넣은 놈은 누구지?.."
흑 ㅜ.ㅜ 주인공의 광기가 부족해... 마음 같아서는 '조소와 함께 키네라의 얼굴을 잡아들어 올려 XXXXX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스토리상 키네라는 살려둬야 하기 때문에... 광기가 부족해... 역시 광기는 미친X처럼 날뛰는 광기(아! 바이론 빼고)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천천히~ 하나하나 부셔버리면서 목표물을 괴롭히는 차가운 광기가 역시 더 소름끼치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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