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은 인과율...
만마전의 메인 브리지는 지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만마전의 함장.. 아마 전 지구, 아니 이데아 역사상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리셀은 지금 고고한 우주의 영상을 띄어놓은 창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금발의 화려한 미모에 완벽한 몸으로 함대에서 인기가 높은 그녀는 지금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초계활동을 하던 구역에서 적의 대규모 공간전이를 확인한 정찰함대가 연락선을 띄운 것이었다. 연락선에 입력된 정보를 확인 사령부는 화들짝 놀라며 전 함대에 경고와 동시에 좀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급히 초 광속 통신을 시도하였지만 거대한 중력 왜곡으로 실패를 거듭하였다. 다행스럽게도 할 수 없이 다시 한번 정찰 함대를 보내기 직전, 사령부는 공간 왜곡 구역을 벗어나 후퇴하던 정찰함대의 통신을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함이 무사했지만 정찰함대의 기함인 팬텀은 후퇴하는 정찰함대의 시간을 벌기 위해 남았다는, 임시 정찰함대의 지휘자로 임명된 팬텀의 부 함장 창리엔충이 침통한 표정으로 보고하였다. 그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남아있던 팬텀은 아마 지금쯤 원자단위로 우주에 흩어졌으리라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젠장..."
무심결에 욕설이 나왔다. 지금 그녀가 있는 장소는 만마전의 거대한 메인 브리지에서도 가장 안쪽 2번째에 위치한 구역이라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녀는 창에 고개를 부딪치며 고민하는 중이었다, 만마전의 거대한 메인 브리지는 전체적인 공간의 모습이 마름모형태로, 그 마름모형태의 안쪽으로 작은 마름모가 총 4개가 더 존재하였다. 각각의 마름모는 투명도가 높은 창으로 완벽하게 구별되어 있으며 맨 바깥쪽의 마름모 즉 제5 브리지에서는 천명 이상의 오퍼레이터가 존재하여 각각의 함대에 직접 명령을 내리는 일을 하였다. 안쪽으로 갈수록 그 면적이 급속토록 감소하는데 가장 바깥쪽의 마름모 다음에 존재하는 마름모 형태의 공간 즉 제4 브리지에서는 바깥쪽의 제 5브리지 오퍼레이터보다 더 연륜이 있고 계급이 높은 수백 명의 오퍼레이터들이 맨 바깥쪽의 제 5브리지의 하급 오퍼레이터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즉 상위 명령권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였다. 총5칸의 마름모 형태의 공간에서 거리 상 중앙에 위치한 제 3브리지에서는 오퍼레이터들이 아닌 각 군의 참모들이 존재하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짜거나 정보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맨 바깥쪽에게 4번째에 존재하고 있는 마름모 형태의 공간이 베 2브리지, 지금의 함장이 있는 장소가 되었다. 이 구역은 각 함대의 함장 이상만이 들어올 수 있는 장소였으므로 수많은 이들이 북적거리는 메인 브리지에서도 들어올 수 있는 숫자는 극소수에 해당되는 구역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소인 맨 마지막, 이 거대 마름모 형태의 브리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구역 제 1메인 브리지, 바로 군단의 최고 사령관,, 진이 앉을 자리가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 의자에 않아야 할 주인공이 모습을 들어내지 않은 지도 수십 년.....따라서 지금은 만마전의 함장이 있는 두 번째의 마름모가 전 함대 사령부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었다.
전 함대에서 가장 높은 집단에 속해있는 그녀가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는 그녀가 이제까지 이런 대규모의 공격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이제까지 수많은 전투를 통하여 경험을 쌓아 왔지만 그 전투들은 그녀가 공세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은 자신의 휘하 전함을 이끌고 적의 구역에서 전투를 하는 방법이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전 군단 발동 명령권이 그녀에게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자잘한 전투는 그녀 휘하의 함대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엄청난 숫자를 거느리는 적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군단 발동 명령권은 군단의 사령부의 의견이 통일되어야만 그녀가 그 명령권을 휘두를 수 있었다. 하지만 군단의 사령부의 수뇌부는 대부분 지구인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들은 자신보다 아래라고 판단하는 리셀이 만마전의 최고 지배자라 할 수 있는 함장의 위치에 앉아 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들이 따르는 사람은 오로지 전 우주에 단 한명 진 뿐이었다. 리셀이 함장직에 앉을 수 있는 것도 그동안의 노력과 실적도 있었지만 진이 임명했다는 절대적인 명령 덕분이었다. 아마 이 함대가 지구군 소속이었고(지구군 소속으로 되어 있지만 지구군도, 이 함대에 있는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사령부가 그녀를 함장에 앉게 했다면 그녀는 다음날 독살 당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지금의 난관을 해쳐나가기 위해서는 진이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이 왜 그 이상한 공간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몇몇의 사람중의 한 명인 함장은 차마 진에게 말할 수 없어서 이렇게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문제였지만 정찰함대의 후퇴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남은 함대의 지휘자이자 팬텀의 함장 다이스케와는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물론 그의 딸인 히나키와도....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그의 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함장님!"
가뜩이나 마음이 심란한 상태인데 규정상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는, 한 오퍼레이터의 등장으로 짜증이 폭발했다.
"귀하는 누구인가!! 이곳은 함대 함장 이상만이 들어오는 장소라는 것을 잊었는가!"
"예?..아 예!! 알고있습니다!! 하...하지만 너무 시급한 일이라.."
"아무리 시급한 일이라도 지켜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보고는 전자 뇌를 통하면 될 것이 아닌가!!"
평소에 아랫사람을 잘 돌봐주기로 유명한 리셀의 입에서 혹독한 말이 떨어지자 보고를 위해 들어온 오퍼레이터는 안절부절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들고 온 종이로 만들어진 보고서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상관이지만 이데아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보통 지구인은 이데아를 그저 예쁘장한 모습을 한 생체컴퓨터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의 함대에서는 이런 장면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군사령부의 수뇌부들도 그녀가 이데아라는 이유보다는 그녀의 능력이 만마전의 함장직에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말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퍼레이터에게 따끔하게 혼을 내주려는 리셀은 그가 내민 보고서가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랬다. 보통 종이로 작성된 보고서는 특급이 대부분 이었기 때문이었다, 보고서를 빼앗듯이 낚아챈 다음 마치 찢듯이 거칠게 넘기던 리셀의 손은 보고서를 읽어내려 감에 따라 점점 떨리고 있었다.
"이런 젠장!!!"
항상 함장의 위치에서 말을 가리던 그녀지만 지금은 다른 이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나왔다. 그녀는 들고있는 보고서를 신경질적으로 벽을 향해 던져 버린 다음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으로 겁에 질려있던 오퍼레이터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의 책상에 앉아 빠른 손놀림으로 군단의 수뇌부들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리셀이 앉아 있는 책상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인물들의 모습이 머리부터 입체영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급한 호출을 받고 허겁지겁 나타난 이들은 대부분 자신을 호출한 자가 리셀이라는 것을 알아 차라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 중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늙은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감히.. 만마전 함장 주제에 우리를 호출하다니..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리셀 함장"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해드릴 몇까지 사항이 있어서.....먼저 지금 이곳으로 대규모의 부대가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이런 긴급 회선을 써야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군.."
그 노인의 말을 끝으로 사방에서 리셀을 책망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셀이 군단의 중심인 만마전의 함장이지만 지금 눈앞의 이들은 수많은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백전노장들이었다. 또한 서로의 영역이 다르고 계급도 대부분이 대령 이상의 고위층들이었다. 따라서 리셀이 자신들을 호출한 이번 행위가, 평소에 그녀를 탐탁지 않게 보았던 이들로서는 곱게 보이지 않았다.
"예! 그렇지요.. 제가 여러분을 긴급 소집한 타당한 이유를 말씀들이겠습니다. 마스터! 아니 군단 총사령관이신 진께서 암살을 당하실 뻔했답니다.."
리셀의 말이 끝나자 한 동한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쾅!!"
맨 처음 침묵을 깬 것은 지팡이로 바닥을 강하게 치는 소리.., 나이를 알 수 없었던 노인, 바로 그였다.
"누구인가...."
나직한 목소리이지만 그 목소리 속에서는 싸늘한 냉기가 섞여 있었다. 겉모습으로만 본다면 힘없는 노인이지만 수많은 전장을 해쳤다는 것을 증명하기라고 하듯 그의 목소리에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상부 직속의 호위대 소속인 에프로슈네가 보낸 긴급 보고서에는 진께서 암살을 당하실 뻔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진께서 계시던 위치에서 고 에너지의 관측과 함께 화재가 일어났다는 보고도 올라와 있습니다. 그 암살의 영향인지 화재의 영향인지는 지금으로써는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 알 수 없지만 에프로슈네가 올려보낸 보고서에서는 진께서 상당한 상처를 입으신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진께서는 지금 어디에.."
"지금 이곳으로 오시고 계신다는 보고입니다."
그녀의 보고를 듣던 이들인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즉사가 아니라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진께서 오시면 알 수 있겠지... 리셀 함장...일단 그 일은 비밀로 해야한다는 것쯤은 알고있겠지.. 그리고 자네에게 우선 군단 발동 명령권을 주겠네.. 진께서 오시기 전 충분한 준비를 해두게.."
"어르신!!"
"말도 안됩니다. 어찌 저런 미숙한 자에게 전권을.."
노인의 말에 옆에 있던 많은 이들이 반발했다. 허나 주위에서 어르신이라 불려지는 그 노인은 주위를 무시하고 리셀을 쳐다보았다.
"알겠습니다. 다행이 보고가 전자 뇌가 아닌 종이 문서로 올라왔기 때문이 보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사실은 아는 자는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과 저, 그리고 보고를 한 저기 서있는 오퍼레이터뿐입니다"
그녀의 말에 모든 시선이 집중된 오퍼레이터는 굳어진 몸을 일으켜서 떨리는 손으로 예를 표시했다.
그런 그를 무심히 본 어르신이라는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의견이 마음에 안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이다. 이제까지 없었던 대규모의 적의 습격. 같은 시기의 군의 군수물자의 지급.. 갑작스런 사령관의 암살미수사건... 뭔가 벌어질 조짐이 있다. 지금 이곳으로 진께서 오신다. 오랜만에 나오시는 그분에게 적이 오는데 아무런 준비도 못한 꼴을 보이라는 것이냐? 지금은 만마전이 전 함대를 통솔하는 것이 최선이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놈은 나서라!! 진께 무례한 꼴을 보일 바에야 내가 죽여주마!"
나직하지만 살벌한 말에 아무런 반대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어르신이라는 노인은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이 앞에 있는 리셀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의견이 통일되었군! 뭐, 자네의 말을 잘 듣지 않은 자가 있다면 내게 말하고! 에구에구 그럼 이 늙은이는 이만 물러나지..열심히 해 보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노인을 바라보며 한동안 모두 멍한 표정뿐이었다. 하지만 그 노인은 확실한 지위에 있지는 않지만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무시할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가 정하면 진이 아닌 이상 따라야 했다. 막강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자신에게 함대를 지휘할 명령권을 내려주자 리셀은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브리지의 모든 통신 회선을 연결한 다음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서있는 나머지 인물들에게 외쳤다.
"전군! 총원전투배치, 각 함대 사령관은 자신의 함대를 공격진형으로 개편하라!! 적이 곧 이곳으로 도착하니 각 함대의 미사일 순양함들은 변형을 명령하고 기간테스와 사신들의 배치를 준비시켜라!! 각 보급함대! 연료주입과 무기 보급을 서둘러라! 보급완료와 동시에 진격한다!"
함대 지휘권을 손에 거머쥔 그녀는 이제까지 눈치를 살피던 이들에게 당연하다는 듯 명령을 내렸다. 그녀의 반말에 차마 뭐라 항명을 못한 이들은 곧 구겨진 얼굴로 리셀에게 예를 취하며 하나 둘 사라졌다.
훗날 이 모습을 옆에서 본 오퍼레이터가 말하길 그때 그녀의 입 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고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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