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49)

이상 앞 잡담입니다^^ ==========================================================================

 -준비해라! 작전구역까지 앞으로 약 30분전!!-

어두운 통로에 미약한 붉은 등만이 공간을 비추고 있는 강습함에 장갑보병들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무서워서나 겁이 났다 라기 보다, 작전을 위하여 좁아 터진 강습함에 최대한 많은 장갑보병들을 집어넣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니 가뜩이나 불편한 장갑보병에 탑승한 대원들은 지금 죽을 맛이었다.

평소 입이 거칠어 시궁창으로 잘 알려진 소대장도 병사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지 오늘따라 그저 묵묵히 조그마한 구멍으로 나있는 창을 통해, 주위로 스쳐 지나가는 전함들을 바라 볼 뿐이었다.

그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갑보병들 중에는 처음 우주 전에 참가한 최인호 소위도 끼어 있었다. 아니 이 강습함에 타고 있는 이들 중 소대장을 뺀 나머지 대원들은 전부 우주 전에 참가한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이었다. 이는 얼마나 지구군이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는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긴장했는지 최인호 소위는 자신의 장갑보병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였다. 그가 타고 있는 장갑보병은 이제 막 정부의 승인을 받아 양산에 들어가기도 전의 제품이었다. 엔진도 축전지로 움직이느라 기동시간도 짧고, 방어력도 형편없었지만 상부에서는 이 장갑보병에 거는 기대가 상당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 장갑보병이 처음 실전에 투입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이 최인호 소위는 매우 불만이었고 긴장의 원인이었다. 왜 이런 중요한 작전에 아직 아무런 실적도 없는 신병기를 투입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방금 자체정비모드를 실행하여 이상 없다는 메시지를 받았지만 다시 한번 정비모드를 작동시켰다.

-왜! 불안하냐?-

통신으로 그의 옆에 앉아있던 이가 물어왔다. 나기가 궤도상에 나타나 폭격하기 전 같은 사단에서 근무하던,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윤정우 소위였다.

작전 시, 사적인 통신은 전면 금지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문책 대상이었지만, 어차피 일선에서는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었다. 같이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심리적 안정감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창 밖을 보고있던 소대장이 통신을 감지했는지 자신들을 한번 쳐다보았지만 다시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려 관심을 끊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불안하지! 하지만 작전보다 이 장갑보병이라는 장비가 더 불안하다! 젠장! 차라리 그냥 우주복을 입고 싸우는 것이 낫지 원!"

최인호 소위의 투덜거림에 사람 좋기로 유명한 윤정우 소위는 통신에서 들리만큼 킥킥거리며 최인호 소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짜식!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라, 상부에서도 이 작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그런 이들이 불량품이나 지급해주었겠냐? 내가 아는 사람이 신무기 테스트파일럿인데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더라, 괜한 걱정말로........... 너 아직 약물주입 안 했지?-

이야기가 묘한 곳으로 흘러 들어가자 최인호 소위는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열려있는 채널로 윤정우 소위의 목소리가 계속 전해졌다.

-네 기분은 알고 있지만 그냥 맞아둬! 나중에 피에 젖지 말고! 저번에도 그 약물 안 맞은 신병이 살인에 의한 충격으로 쫓겨났다고 하더라. 그 애송이도 처음에는 복수심에 불타 그딴 약 필요 없다고 큰소리 쳤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상에서 군 생활을 한 놈들이니 그놈처럼 쳐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눈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처음이잖아!-

"사람? 헛소리 말라고 해! 사람을 죽인다고? 사람?? 그딴 놈들은 사람이 아니야! 그 개자식들은 인간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그 자식들이..... 그 자식들이 내 아내를 죽였어!! 그런 놈들이 사람이라고!!!"

상처 입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최인호 소위의 울부짖음에 한동안 말이 없던 윤정우 소위가 입을 열었다.

-기억 나냐? 이 함에 처음 탔을 때 최고 사령관의 연설을...-

윤정우 소위의 말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친한 친구에게 화를 낸 자신을 탓하던 최인호 소위는 그이 말에 마치 어제일 같았던 출정식의 최고사령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 그 날은 최인호 소위가 속한 제43함대의 출정식이었다. 한달 전 만마전이라는 대형함의 자폭으로 적의 주력에 상당한 피해를 준 지구사령부는 그 여세를 몰아 다시 한번 적에게 타격을 주기 위하여 준비중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번 공세에 최하 3만 척 이상의 공격함들이 동원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만척 이라면 지금도 무지막지만 속도로 함정을 찍어내는 지구로써도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한 막대한 숫자였다. 초기 사들인 퇴역함들 보다도 성능이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3만이라는 숫자는 낮은 레벨의 자유종족쯤은 한번의 전투로 쓸어버리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하지만 그들의 적은 슈렘의 상위종족 중 하나....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3만 척의 함정으로도 그저 시간이나 조금 벌뿐이었다.

하지만 100만 명의 목숨으로 한순간이지만 적에게 거대한 틈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어차피 지구군의 목표는 적의 전멸이 아니었다. 표면상으로는 나기인들을 멸종시키자 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세상을 아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전투는 죽기 전에 적의 손가락이라도 물어 뜯어버리겠다는 의지, 자신의 목숨을 주고 살 한 움큼이라도 잘라버리겠다는 의지, 죽어서 자신들보다 앞에 죽은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죽음을 보여주겠다는 그 의지..... 그 하나를 위한 전투라는 것을...

그 날... 43 함대의 출정식에는 여러 종교단체가 전투에 나가기 위하여 도열해 있는... 아니 죽기 위하여 도열해 있는 병사들에게 신의 축복을 외치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들은 대부분 우주 전에 동원되지 않았던 자원 입대한 신병이었다.

"그대들은 신의 자식입니다! 그대들의 전투는 성전으로 신의 이름으로 정의를 실천하는 정의의 군대인 것입니다. 그대들의 뒤에는 신이 계시고 있습니다! 유일신이신 하나님이 진정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것을 저 사탄의 자식들에게 보여주도록 해야합니다!!"

수염이 없지만 주름살 가득한 이가 기도하는 모습을 병사들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신을 믿는 병사들의 사기를 위하여 특별히 초청한 인사였다. 이 노인의 앞서서 이미 불교와 이슬람, 힌두교 등에서 파견한 이들이 병사들의 사기를 위하여 연설한 뒤였다. 그 인사들이 연설할 때마다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외치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우리는 자랑스러운 정의의 군대! 정의는 승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정의를 수호하는 수호자라고....

자신들의 연설에 병사들의 사기가 진작되는 것을 본 각 종교계의 인사들은 흐뭇한 얼굴을 지우지 못했다. 물론 각 종교 인사들은 지금 병사들이 일으키는 사기는 자신의 종교! 자신들의 신의 덕분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흐뭇한 표정도 잠시, 맨 마지막으로 단상에 올라선 이를 바라본 그들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 마지막으로 단상에 올라선 이는 이 함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소년의 모습을 한 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 소년이 결코 평범한 이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겉모양이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를 사람들은 최초의 인공진화에 성공한 이일 것이다! 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었지만.... 확인된 것은 없었다.

 그는 과거 광기의 일요일의 주범이었으며(외전 그녀의 독서참조) 엄청난 재산가여서 지구정부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이였다.

그는 바로 남궁 진이었다.

뒤에서 지구의 경제를 조종하던 그가 직접 일선에 나선 것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눈 또한 곱지 않았다. 자신들의 목숨을 거는 사람이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곱상하다 못해 아름다운 그의 외모는 강함을 중시하는 군인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라 더욱 거부감이 들었을지도 몰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선에서 무수히 많은 군장성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항상 앞장서서 전투를 지휘하다 보니 적의 공격을 제일 많이 받는 이들이 군장성들이었고 이제는 군대를 지휘한 경험이 없는 지상군의 장성들까지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진의 함대 사령관의 임명에 반발하는 일선 지휘자들에게 상층부에서는 과거 진의 군 지휘경험이 있었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지만...미덥지 않았다.

각 종교인사들이 보는 진의 시선은 더 곱지 않았다. 진이 일으킨 피의 일요일 사건 뒤에 일어난 사태로 많은 종교인사들이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단상에 올라서는 그를 바라보는 최인호 소위 또한 그가 못마땅했다. 그의 경제에 관한 감각은 대다수의 인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었지만 그의 지도력까지 검증 받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최인호 소위 그는 이번 출전에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싸우면서 죽고싶었다. 새로이 장갑보병으로 뽑힌 그가 싸울 수 있는 기회는 적의 함으로 침입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적의 함에서 죽고싶었다. 그 외 함정에 앉아 무력하게 적의 광탄에 죽고싶은 마음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최인호의 불만스러운 생각에도 아무런 상관없이 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드디어 2층 높이의 단상에서 수십만이 넘는 병사들 앞에 서게 되었다. 그의 뒤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그의 상반신을 비추고 있었다. 수많은 적의를 받아가며 천천히 진은 준비된 자리가 아닌 뒤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것도 오만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아 담배를 물으면서....., 불을 붙이고, 그 자세 그대로 그는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신가! 내가 이번에 자네들을 지옥 구덩이로 밀어 넣을 남궁 진이라 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그대들은 불만일 것이다. 또한 그대들은 나를 믿지 못할 것이다. 뭐! 그것이 진실이지! 사실 그대들의 생각은 당연한 것이지! 책상머리에 앉아있던 이가 일선에, 그것도 사령관의 지휘에서 서 있다면 나라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난 이곳에 서 있다! 지금의 현실이 너희들 마음에 안 들어도, 내 두 다리고 서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너희들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것이다.

나의 적을 죽이기 위해 너희들을 아주 철저하게 써먹을 것이다!

흥!? 신의 사자? 웃기지 말라고 해! 너희들은 신의 사자가 아니다! 정의의 기사도 아니다! 너희들은 그저 힘없는 똥개에 불과하다! 나기가 사탄이라고 했나? 병신 같은 소리 작작 좀 하시지? 모든 악은 우리다! 우리야말로 사탄의 자식들이다! 아내가 집이 무너져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서 죽었을 때! 부모가 불타는 고통에 자식의 이름을 부르면서 죽어갈 때! 자식들이 아빠를 외치고 죽어갈 때!! 우리들은 무엇을 했단 말이냐!!

힘이 없는 것이 악이다! 죄란 말이다!

그래!!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다 죄인이다! 우리들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를 짖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악을 무찌르기 위하여 출병하는 것이 아님을 머리 속에 똑똑히 박아 두어라! 선과 악 따위는 없다! 단지 힘있는 자와 힘없는 똥개가 있을 뿐이다! 신이라고? 신이 지켜준다고! 흥!! 신은 죽었다. 나기인들의 폭격으로 신은 죽었다! 죽어 가는 우리들을 내버려두었을 때부터 신은 죽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신의 가호도 아니도 우리가 정의여서도 아니다! 바로 먼저 죽어간 이들의 피와 살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축복을 위해 이 자리에 신이 나타난다면, 나는 신의 얼굴을 침을 뱉어버리겠다!

내가 원하는 것은 신의 군대도 아니고 신의 이름으로 죽음을 미화시키는 이들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진흙탕에서 뒹구는 짐승들을 원한다! 독기를 뿜어대며 자신의 팔을 주고 상대방의 목덜미를 물어버릴 수 있는 짐승을 원한다. 적의 살을 뜯어먹고 적의 피로 목을 축이는 짐승들을 원한단 말이다!

너희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이 함대는 내 것이다! 아직도 신의 환상에 빠져있는 이들이 있다면 꺼져라! 이곳을 나간다고 해도 그대들을 받아줄 부대는 많고 많으니 걱정하지 말고 꺼져라!

이 함대에 탈 수 있는 이들은 자신에게 증오하며, 미치고, 광기에 물든 짐승들뿐이다! 그 외, 신의 사자라 외치는 인간이나 스스로 자신이 인간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꺼져버리란 말이다!! 이 죽음의 관에 타는 이들은 인간으로써 죽는 것이 아닌 짐승으로 죽을 것이다!

솔직히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 우리 함대의 목표는 오로지 적을 죽이는 것이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우리들의 피와 살이 마를 때까지!! 오로지 죽이는 것이다!

알아두어라!

나 또한 인간이 아니다! 나는 짐승이다! 나는 적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을 죽이기 위해서라며 너희 모두를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들어라! 이 함대에 탈 수 있는 자들은 짐승뿐이다! 스스로에게 증오하고 자신의 팔다리가 끊어져도 기어서라도 적의 발뒤꿈치라고 물어뜯을 수 있는 짐승이 될 수 없다면 꺼져라!"

말을 마친 진은 도열해 있는 병사들의 얼빠진 얼굴을 보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수송선에 들어가 버렸다. 진의 연설이 충격적이었는지 진의 수송선이 하늘에 대기하고 있던 모함으로 출발 할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진의 연설을 가까이에서 들은 종교인사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불같이 화를 내었다. 신을 모독한 진 또한 나기인들과 마찬가지로 악마의 자식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며 병사들에게 저 악마를 따르지 말로 차라리 다른 함대에 지원할 것을 외쳤다. 그 소리는 아직도 켜져 있는 마이크를 통하여 전 병사들에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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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그들만의 전쟁 병사들은 방송으로 울려 펴지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악마라고? 악마라고? 악마면 어떠한가? 적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얼마든지 영혼을 팔 수 있었다!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잠시 잊어버린 병사들은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한순간이지만 종교인사들의 연설에 스스로 자랑스런 정의의 기사라는 착각을 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런 그들의 마음에 한줄기 불기운이 솟아 나왔다.

정의? 선? 개나 물어가라고 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적의 피! 그리고 적의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악마라고? 기꺼이 따라주마! 아니!! 네가 악마가 아니라면 내가 악마가 되어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이용해 먹는다고? 기꺼이 이용해 먹어라! 따라주마! 네놈의 말대로 움직여 주마! 하지만 만약 기대에 미치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먹어주마!

한 병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 병사는 기독교를 믿는 신자인지 목에 십자가가 걸려있었다. 그는 앞으로 나서면서 그 십자가를 단상에서 아직도 진의 욕을 하고있는 종교인사들에게 던졌다. 한참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던 그 인사는 자신의 발 밑에 떨어진 십자가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멀어지는 병사의 등을 쳐다보았다. 왜! 버리는가? 그는 신을 모욕했다! 그대는 그 악마를 따를 것인가! 마이크를 잡고 있던 그 인사는 멀어져 가는 병사에게 돌아오라고 외치려 하였다. 그러는 사이 이번에는 염주가 날아와 그의 발 밑에 떨어졌다.

십자가를 던진 그 병사는 말없이 대기하고 있던 수송선에 들었다. 또 한 명의 병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불교신자인지 손목에 차고있던 염주를 벗었다. 그리고 그 역시 단상으로 던져버린 후 말없이 앞서 탑승한 병사와 같은 수송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다시 십자가... 염주... 코란....성경.....불경....

병사들이 단상을 거쳐가며 수송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종교를 가지고 있던 병사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징물들을 단상으로 던졌다. 이미 진을 욕하던 단상의 종교인사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주위에 쌓여지는 수호물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병사들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의 당당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지구를 구한다는 자랑스러움도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오로지 독기뿐이었다.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모를 지독한 독기....

그 병사들 중에는 최인호 소위도 끼어 있었다. 그는 목에 걸린 십자가를 보았다. 독실한 신자였던 그의 아내의 마지막 유품....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발견당시 이미 심각하고 오염된 상태... 죽어가던 그녀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며 주어진 십자가... 하지만 그는 십자를 움켜쥐었다. 그런 그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다가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십자가의 유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 윤정우의 손이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버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최인호는 쓸쓸한 미소를 지어주며 움켜쥔 손에 힘 주었다. 그리곤 단상으로 던졌다.

'미안해! 하지만... 신은 더 이상 날 지켜주지 않을 거야... 난 짐승이 될 거니까'

조용히 자리에서 이탈하여 수송선에 탄 병사들이 도열해 있던 자리에는 누구하나 남아있는 이들이 없었다. 단지 단상에 수북히 쌓여있는 수많은 상징물들... 그리고 그 상징물들을 말없이 쳐다보는 몇몇의 사람들..... 그들은 이제 알았다. 신은 버려졌다. 자신들을 믿고있는 이들을 버리는 순간 신은 죽은 것이었다. 나이를 많이 먹은 노인들은 흐느껴 울었다. 방금 수호물들을 버리고 간 병사들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자신들의 신을 욕한 진이라는 이에게도 원망스러운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단지...

 자신들을 내버려둔 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신을 버릴 수밖에 없는 이 시대가 미웠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자신들이 미웠다... 1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있었던 자리에는 한없이 울음을 터트리는 몇몇의 사람들만이 쓸쓸하게 존재할 뿐이었다. 이제 지구인들이 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족에게 버림받았다. 신을 버렸다. 이제 나 자신이라는 인간을 버릴 때였다.

 ◆ 기억해냈다. 자신은 짐승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냉정해야한다! 그래야 더 많은 이들을 죽일 수 있다. 다 많은 복수를 할 수 있은 것이다! 최인호의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윤정우에게 미안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마웠다. 항상 다혈질의 그를 다독여 주어 위로해 주는 자신의 친구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런 그를 윤정우는 아무 말 없이 다시 한번 어깨를 두르려 주었다.

-적 발견!!!-

-각 함대 공격진형으로 들어갑니다!-

-작전시작까지 앞으로 30초 최종 점검을 시작해라!-

강습함을 몰고 있던 이들의 음성과 소대장의 말에 이제까지 묵묵히 몸을 움츠리고 있던 장갑보병들이 좁은 틈 사이로 바쁘게 손을 놀렸다. 무기를 점검하고 축전지의 용량을 확인하고 탄환의 유무를 확인하였다. 지금 그들은 중요한 작전에 동원되었다. 이번 작전의 유무로 앞으로 벌어진 대공세의 성패가 달린 일이었다.

곧 전투지역에 들어가는지 창 밖으로 보이는 이지스함 한 척이 자신들이 타고있는 강습함을 매달고 있는 충격함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자신들이 보는 방향이 정해져 한 척밖에 볼 수 없지만 아마 지금 충격함의 주위로는 4척 이상의 이지스함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강습함? 충격함?

최인호 소위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강습함과 충격함은 이전 우주전에서는 없었던 함이었다. 오로지 이번 작전을 위하여 급조된 함이었다. 시운전도 해 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지금 불안에 떨고있는 장갑보병보다 자신들이 타고있던 함이 더 위험한 물건이었던 것이었다.

강습함은 길이40m밖에 되지 않는 그야말로 초소형(?)함이었다. 탑승인원은 20명 안팎, 장갑이 단단하고 끝이 아주 뾰족하다는 것 빼고는 그리 특색 있는 기능은 없었다. 그 흔한 레일건도 장착하지 않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관이었다.

충격함은 그래도 강습함보다 뛰어난 점이 하나 있었다. 표면에 주렁주렁 강습함을 달고 있는 이 함은 데라가 지원해준 방어 형성 장치를 달고 있어 보통 함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강력한 방패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장난삼아 데라가 지원해준 강력한 장비는 그들에게도 최신의 장비인지 단10개의 장비만을 넘겨줄 뿐이었다. 물론 그에 지구의 사령부는 허리가 부러지도록 고개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그들에게 올렸다. 마치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하지만 누구도 지구 사령부를 욕하지 않았다. 나기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치욕쯤은 수백 번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작전에 동원된 함은 충격함 10척과 강습함 300척.... 동원되는 장갑보병은 6000명.... 생존율 0.1% 황당하기까지 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힘이 없는 지구 군은 이런 수단밖에 없었다.

-10, 9, 8, 7, 6, 5, 4, 3, 2, 1, 0!!! 작전에 들어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시간이 흘렀는지 소대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소대장의 목소리에 대원들은 차례차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장치된 손잡이를 잡으며 언제든지 출격을 할 수 있도록 부산하게 움직였다. 최인호 소위도 자신의 장비 중 가장 중요한 장비인 랜스를 부여잡고 자세를 잡았다. 이 랜스의 크기가 워낙 커서 몸을 일으킨 순간에서야 잡을 기회가 생겼던 것이었다. 이번 작전에 가장 중요한 장비중 하나인 랜스를 움켜쥐자 이제까지 긴장하던 마음에 마치 호수처럼 차분해졌다. 그리고 -강습함 '린드마린호' 충격함' 골고디아'와 분리됩니다!-

조종석의 방송과 함께 미약한 진동음이 그들의 몸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충격함에서 에너지 주입이 차단되었는지 중력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작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창 밖을 보니 이제까지 자신들을 예인해 준 충격함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 멀어지는 화면 속에서 자신들과 같은 신세의 강습함들이 분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 강습함에도 자신들과 같은 장갑보병들이 탑승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생존율 0.1%의 작전이....

쾅!!!!!

마치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강습함이 근거리에서 날아간 미사일에서 나오는 추진제에 의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누군가 근거리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순양함을 욕하는 음성이 스피커 사이로 들렸다. 작전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미사일 사격이 일제히 시작 된 것이었다.

흔들리는 공간 속에서 최인호는 적전이 시작되기 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번 전투에 동원된 함대는 43함대와 72함대... 둘 다 이제 막 창설된 함대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우주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햇병아리들이었다. 이제까지 전선에 투입된 전투경험이 풍부한 부대들은 후방에서 대공세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 즉시 출격할 수 있도록.... 하지만 비록 적이 1000척 정도이고 43함대와 72함대의 숫자가 3000대이기 때문에 숫자상으로 1:3의 싸움이지만 전력으로 따지면 지구 군이 불리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증원은 불가능하였다. 이번 작전이 중요하였지만 함대를 더 파견했다가는 대공세의 작전까지 차질을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대장의 배려로 허공에 떠오른 영상에서 그 수를 셀 수 없는 수 없는 수많은 미사일들이 전방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위, 아래를 상관하지 않고 유성군과 같이 한줄기 꼬리를 남기며 사라지는 그 미사일들은 지구군의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전방에 밀집 되에 있는 별들의 무리로 날아갔다.

잠시 후 수많은 빛의 구체를 만들면서 화려하고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물론 미사일들이 이런 장거리에서 적의 방패를 뚫을 수 없다는 것은 미사일을 발사를 명하는 지휘부에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사일들은 적들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하지만 적들도 반격을 할 시간적 여유 따위는 없을 것이다.

방금 발사된 미사일의 뒤를 따라 또 한번의 미사일군이 아직도 화려한 광점을 날리며 적이 있는 장소로 사라져갔다. 그와 동시에 함대의 좌측에 있던 함들이 최고 속력으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자신들을 태운 강습함들을 포함한 충격함과 이지스함들이었다. 예상대로 적들은 수없이 다가오는 미사일군 덕분에 방패를 해제하지 못하였고 그사이 아군의 함대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적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적들에게 다가서는 아군의 함정 때문에 미사일의 공격이 적의 정면으로 치중되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이번에는 적들이 있는 방향에서 수많은 광점들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광탄이었다.

-젠장! 충격에 대비하라!!-

이런 소규모 함이라면 적의 광탄이 스쳐지나가도 소멸이었다. 소대장의 말은 쓸 대 없는 소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함이 몸으로 광탄을 맞을 필요는 없었다. 대신 눈앞의 스크린에 거대한 동체를 가진 이지스함이 자신들의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각 10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삼각형의 진형을 취한 지구군은 최고 속도로 적에게 돌진하였다. 최전방에 충격함이, 좌우에는 이지스함들이... 그리고 가장 안전한 삼각형의 중심에는 강습함 들이 모여있었다. 그 진형에는 어떠한 공격전함도 포함되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방어 함들만이 돌진할 뿐이었다.

"쾅!!!!!"

적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과 동시에 적들의 광탄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지스함들에서 발사하는 방어미사일의 숫자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수천 발씩 날라 오는 적의 광탄을 전부 막지는 못하였고 그 대가로 좌측의 날개 끝에 있던 이지스함 한 척이 마치 거인의 손에 잡힌 것처럼 함미가 갑작스레 상승하면서 표면이 일그러졌다. 그리곤 함의 각 부분에서 간헐적인 폭발이 일어난 후 스크린이 타버릴 것 같은 엄청난 빛을 뿜으며 폭발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소대장은 유폭을 일으키는 이지스함에게 경례자세를 취하였다. 다른 대원들도 경례자세를 취하여 마지막 가는 이들에게 예를 취하였다. 그 대원들 중에는 최인호 소위와 윤정우 소위도 끼어 있었다. 방금 죽어간 이지스함은 불타고 있는 와중에서도 함을 삼각진형에서 최대한 떨어뜨리기 위하여 함미를 들어 올린 것이었다. 다른 함에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방금 폭발한 이지스함 중에 탈출자는 아무도 없었다.

"쾅!!!!!"

이번에는 근거리에서 함이 터졌는지 충격파가 강습함을 뒤엎어 버릴 정도로 강력하였다. 다행이 대원들은 손잡이를 잡고 있어서 큰 상처를 입은 자는 없었다.

-아!! 시리우스가!!!-

누군가의 안타까운 통신음이 들렸다. 방금 터진 이지스함은 자신들의 뒤에 있는 강습함을 지키기 위하여 피할 수 있는 광탄을 자신의 몸으로 막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죽고 자신들은 살아남았다.

"제길!! 좀 빨리 좀 가라!!!"

벌써 10척의 이지스함 중에 7척이 허무하게 날아갔다. 적의 진형과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적의 광탄에 이지스함들이 반응하는 속도의 한계를 넘은 것이었다. 자신들의 진형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강습함의 계기판을 접속하여 윤정우 소위가 보여준 상황판에는 10대의 편대 중 살아남은 편대는 단 4개뿐이었다. 적의 우측에서 아군의 공격 함들이 엄호를 위하여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겠지만 적의 광탄에 돌격하던 아군의 함들은 허무하게 불타 올랐다.

-조금만!!!!-

서서히 가까워지는 적의 진형이 이제는 눈으로 보였다. 눈으로 보인다는 것은 이제 20초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20초는 자신이 겪은 생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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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그들만의 전쟁 -아!! 아군의 공격함 들이!!!-

누군가가 공동 통신으로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목소리에 최인호는 스쳐 지나가는 광탄과 그 광탄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지스함들이 발사한 미사일들의 폭풍에 의하여 격렬하게 진동하는 와중에서도 악착같이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자신들을 위하여 공격함 들이 적들의 진형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더욱이 모든 공격무기들을 쓰지 않은 체....

-젠장!! 저놈들은 자신들을 미끼로 던진거야!!-

뒤에서 그 화면을 보고 있던 윤정우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최인호는 그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못하였다. 눈물이 나왔다. 안타까웠다. 결국 자신들이 적에게 큰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육탄 돌격밖에 없었다.

과연 적의 광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적들도 이제 한줌도 남아있지 않는 눈앞의 적보다는 무기도 쓰지 않고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더 마음이 간 것이었다. 미사일도 쓰지 않으니 마음껏 광탄을 퍼주어도 반항하지 않고 달려드는 지구인들을 비웃고 있겠지.....

-돌입한다!!!-

울먹이는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크린을 보는 사이 어느새 적의 진형 외각에 떠있는 적들의 함 바로 앞까지 도착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편대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충격함 한 척과 강습함 3척이 전부였다. 적의 수천 척에 비한다면 아예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숫자였다. 하지만 이번 작전의 승패가 자신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대원들의 눈에서는 살기들이 줄줄이 흘러나았다. 자신들이 몫을 다 하지 못한다면 이제까지 죽은 이들은 개죽음밖에 되지 않았다!!

-고개 숙여!!-

"쾅!!!!!!"

소대장의 비명소리와 함께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 최인호가 탑승한 강습함을 강타하였다. 이제까지 강습함을 적들로부터 강력한 방패로 보호해준 충격함의 최후였다. 적의 공격으로 무너진 것이 아닌 스스로 자폭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빛과 전자펄스, 그리고 각종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 하였다. 자신들, 강습함들을 위한 최후였다.

자폭으로 인하여 사야가 가려진 상황에서 살아남은 강습함 들이 예측비행만으로 돌진하는 곳은 적의 최 외각에 약간의 손상을 입어 적의 진형과 사이가 벌어진 적의 함이었다. 설마 적들도 방어함으로 돌진할지는 예측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 자신들에게 돌진한 함들이 미끼인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지만 진실은 반대였다.

충격함의 잔해를 방패삼아 날렵하게 생긴 강습함들이 아군의 미사일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로 보이는 틈 사이로 돌입하였다.

"카카카카카카캉!!"

적의 외벽을 형성하는 장갑에 본체가 부딪쳤는지 그 진동음이 단단한 강습함의 외벽을 뚫고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의 몸까지 진동시켰다.

-하차!!!!-

강습함의 속도가 완전히 멈추어 진 것을 확인한 소대장의 통신음과 동시에, 강습함의 앞부분의 두꺼운 4중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신물나가 연습한 덕분인지 대원들은 냉정한 눈빛으로 신속하게 하차를 시작하였다. 그들이 돌격한 적의 함은 아직 살아있는지 중력이 느껴졌고 통로의 불빛이 여전히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아니 살아있어야 했다.

소대장의 수신호에 따라 대원들은 벽면에 어깨가 스치듯이 밀착하여 자신의 무기인 랜스를 움켜쥐고 엄청난 속도로 내달랐다.

-왼편에 적 둘!!-

소대장의 통신과 동시에 앞서가던 최인호는 눈앞의 좌우로 갈라진 통로에서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신속하게 바닥을 뒹굴던 그의 눈에 당황한 표정의 나기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당황하였는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적이라는 인식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엄청난 숫자가 동원되는 우주전에서, 엄청난 거리에서 광탄을 날리는 것이 전부인 그들의 상식으로는 적의 함으로 침입하는 미친 녀석이 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인들은 미친놈이었다.

들고 있는 랜스 덕분에 레일건을 꺼낼 수 없었던 최인호 소위는 팔에 내장되어 있는 전자식 석궁을 발사하였다. 물론 이 석궁이 적들의 옷을 뚫을 수는 없지만 온몸이 옷으로 가려진 것은 아니었다. 발사된 석궁은 아직도 움직이지 못하는 나기인들의 머리에 정확히 꽂혔다. 석궁의 텅스텐 화살이 머리를 관통하였으니 죽은 것이 확실하였지만 최인호 소위는 제 빠르게 몸을 일으켜 들고있던 랜스로 서서히 쓰러져 가는 나기인들의 몸에 찔러 넣었다. 초진동으로 진동하는 랜스는 가벼운 저항감을 주며 자신이 파고 들어간 물체를 초진동으로 산산조각 내버렸다. 하지만 조각 낸 것은 몸뿐이었으니 산산조각 난 고깃덩어리들은 옷의 틈 사이로 흘러내렸다.

"철퍼덕!!"

"철퍼덕!!"

참혹한 모습이었지만 대원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흘러내리는 그 고깃덩어리들을 무거운 장갑보병의 덩치로 짓이기면서 달려나갔다. 누군가가 최인호 소위에게 잘했다는 듯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주었다. 그 손가락을 바라보며 최인호 소위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죄책감? 죽음의 충격?? 개소리였다. 마치 전자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자신의 랜스가 적들의 몸을 잔인하게 산산조각 낼 때 느낀 것은 쾌감이었다. 그는 자신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려있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일행은 함이 충격을 받아 자동으로 폐쇄된 문을 가지고 있던 랜스로 파괴를 계속하며 돌진하였다. 목표는 브리지!! 물론 보이는 나기들을 보는 족족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중 최인호 소위의 모습은 마치 피에 굶주린 야차였다. 누구보다 빠르고 누구보다 잔인하게 나기인들을 학살하였다. 한 마리라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그 모습은 진이 말한 완전한 짐승의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소대장은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저런 식으로 나간다면 피에 중독되어 군에서도 퇴역될 것을 잘 알지만 그에게는 한사람의 앞날보다는 이번 작전이 더 중요하였다. 다른 팀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은 잘 해나가고 있었다. 자신들이 성공을 하면 저 피에 서서히 미쳐 가는 놈을 포함하여 모두의 죽음을 개죽음에서 구해주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가 마지막 문입니다!-

전자판에 나타난 지도를 들며 대원들 중 가장 앞장서며 일행을 인도하던 이가 굳게 닫혀진 문 앞에 서며 대원들에게 말했다. 적들도 이제는 자신들의 함에 적들이 침입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대원들도 빨리 진입하고 싶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브리지를 감싸고 있는 문답게 랜스로 힘주어 찔러보아도 흠집만 났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약3분 정도 걸릴 것 같..-

-비켜!!!-

전자판으로 적의 문에 접속하려던 대원은 자신을 물리친 소대장을 의문석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문 앞에 있던 대원을 물리친 소대장은 뒤로 10m정도 물러선 다음 자신의 랜스로 찌르기 자세를 취하였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빛이 소대장의 랜스에서 뿜어져 나왔다.

-소대장님!!!-

소대장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윤정우가 외쳤지만 소대장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잠시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이 쓸 시간을 벌기 위하여 수많은 아군이 죽어나갈 것이다! 단1초라도 아낄 수 있다면 내 목숨은 엄청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쾅!!!!"

달려가며 외치는 소대장이 '다'를 외치는 순간 그의 랜스가 문에 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폭음과 먼지들이 주위 시야를 뒤덮였다. 이윽고 지상이 아니기 때문에 먼지는 쉽게 사라졌고 그 먼지가 사라진 곳에서 대원들은 처참하게 죽어있는 소대장을 볼 수 있었다. 한계치 이상의 에너지를 주입한 랜스가 문과 동시에 그까지 분해해 버린 것이었다.

-.....돌격이다! 지금 뭐하냐!!! 소대장님이 왜 자신을 희생했는지 모른단 말이냐!!!-

소대장이 죽자 자동으로 다음 인솔자가 된 윤정우가 울고있는 대원들에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 대원들은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처리하지 못하자 고개를 흔들며 닦아내었다. 그리곤 자신들의 인솔자인 윤정우를 바라보았다. 명령을 내려주라는 뜻이었다.

-진입한다!! 나와 최인호 소위가 최전방을 맞는다!-

그의 말과 동시에 아직 미쳐 다 빠져나가지 못한 먼지에 통로로 대원들이 빠른 속도로 돌진하였다. 검은 색의 장갑보병 때문에 마치 흑 표범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 복도를 넘어서면 목표라는 생각에 한순간 마음을 놓은 것이 실수였다. 대원들이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순간!

"으악!!!"

앞장서서 달리던 최인호는 순간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가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뒤에서 달리고 있던 2명의 대원들의 머리가 장갑보병으로 보호되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터져 버렸다.

-고개 숙여!!!-

윤정우의 목소리와 동시에 최인호는 쓰러진 상태에서 볼 수 있었다. 아직 사라지지 못한 먼지들이 회오리 치며 그 사이로 날아오는 빛의 섬광을... 자신의 뒤에서 또 한번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최인호는 듣지 않기 위하여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방금 고통의 원인이 눈에 한가득 들어 났다. 지급할 때 그토록 자랑하던 장갑보병의 왼쪽 다리부분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조금전의 공격으로 타버린 것이었다.

"크으....."

-젠장!! 전자 뇌가 깨어났어!!-

고통의 와중에도 전자판을 들고있던 대원이 비명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충격함의 자폭은 아군의 강습함을 숨기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진정한 목표는 적의 함에 초근거리에서 폭발하여 적의 전자 뇌에 엄청난 빛, 전자펄스, 충격파 등으로 스트레스를 주어 잠시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자 뇌가 파괴되면 안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지만, 역시 자신들의 기술을 뛰어넘은 나기인지라 자신들이 돌입하여 10분도 되지 않아 깨어나 버렸다. 지구의 함 같았으면 아마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리라..

-젠장!! 예상보다 5분이나 빠르잖아!!-

어느틈에 자신의 옆으로 기어온 윤정우가 투덜거리며 자신의 응급세트에서 주사기 하나를 재빠르게 꺼냈다. 꺼낸 주사기를 그는 지체 없이 최인호의 잘려진 상처부위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악!!!!"

상처를 건드리자 끔직한 고통이 온몸을 흔들었지만 곧 그 아픔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윤정우가 주입한 것은 진통제였던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보병들에게 주는 물품 중 가장 발전한 부분은 무기도 아니고 의복도 아닌 진통제였다. 일단 주입하면 고통은 완벽하게 사라지니 움직일 수 만 있다면 계속 전투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뭐 나중에 암에 걸리던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도 당장은 싸워 죽으라는 소리였다. 다행이 강력한 열에 의한 상처라 출혈은 없었고 진통제에 들어간 성분 덕분에 열이 나지도 않을 것이었다. 즉 생명에 지장은 없다는 것이었다.

-괜찮나? 일단 진통제는 주입했으니 견딜 만 할 것이다! 너는 우리가 올 때까지 이곳에 대기하도록!-

"잠시만!"

말을 마친 자신의 친구가 포복으로 전진하자 그의 팔목을 잡았다.

"무슨 말이야! 나보기 기다리라니! 여기까지 와서 나보기 기다리라고?"

-시간이 없어! 함 내 방어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았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야! 네 마음은 잘 알지만 그 다리 가지고는 짐밖에 되지 않아!-

"웃기지 말라!!"

퍽!!!!

'웃기지 마라고!'를 말하려던 최인호는 순간 자신의 장갑 안을 뚫고 온 충격에 정신을 잃어 가는 것을 느꼈다. 서서히 사라져 가는 시선 속에서 자신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는 윤정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때어 놓고 가려는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며 최인호는 자신의 손에 주어진 그 무언가를 죽을힘을 다해 쥐었다.

'웃기지 마!! 여기서..여기....'

멀어지는 자신의 친구의 등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최인호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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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그들만의 전쟁 처음 눈을 뜰 때 보였던 것은 미약한 하얀 등(燈)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 등을 바라보며 한동안 최인호, 그는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작전에 동원되었다 실수로 상처를 입고 깨어보니 하얀 천장이라.......

한참을 생각해 보아도 머릿속에 마치 뿌연 안개가 깬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자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그는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이제까지 느끼지 못한 심한 고통이 그의 몸을 갈아먹었다.

"으윽.."

"최인호씨? 정신이 드십니까?"

몽롱하게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에 가까스로 시선을 돌리자 아직 초점이 잡히지 않았음에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하얀 가운을 입고있는 안경 쓴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아! 아직 움직이지 마세요! 세포 재생술을 이용하여 다리를 복원시켰지만 아직 불안전 하니까, 앞으로 한동안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명왕성 궤도에 있는 병원선 입니다, 전장에서 최 후방이지요."

그녀는 차트를 뒤적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최인호를 제지하며 지금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대답에 최인호는 힘없이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왜 작전 중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있느냐 이었지만 곰곰이 그녀의 대답을 생각해 보니 지금의 상황을 알 수 있어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곳에 후송되었다는 것은 작전은 종료가 되었고, 자신이 살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 작전은 성공했음을 예상하였다. 자신을 후방으로 후송해준 이들이 있다는 소리는 생존자가 있다는 말이었고, 작전에 동원된 이들이 실패를 하고 살아서 철수했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작전에 동원된 장갑보병 대부분이 강습함에서 죽었지만 자신은 운 좋게도 그토록 바라던 적의 함에 침입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욕지거리가 나왔다.

"제가 후송되고 그 다음 있었던 일을 알 수 있을까요?"

'이미 작전이 끝이라면 더 이상 기밀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그녀에게 물었다. 자신을 때어 넣고 간 친구의 얼굴에 한방 먹여주기 위해서는 그의 소재를 알아야 하니...

"예?.... 음 ..그러니까? 아! 여기 있군요, 음... 최인호씨가 참가한 나기인들을 유인행성의 위치와 항해 데이터를 얻으려 했던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참가한 43함대와 72함대는 괴멸되었군요, 살아남은 함정은 고작 430척이고... 돌격대에서는 생존자가 손가락으로 꼽을 지경입니다."

사무적인 목소리로 차트를 뒤적거리며 몸을 돌리던 그녀에게 최인호는 자신과 같이 투입된 장갑보병들의 생사를 물어보기 위하여 손을 뻗는 순간 자신이 주먹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자신이 주먹을 쥐고 있는 지 아리송한 그를 바라본 의사는 감탄한 투로 대답해 주었다.

"아! 당시 후송되었을 때부터 쥐고 있었어요. 당신이 깨어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핀 적이 없었죠, 장갑보병에서 끌어내리기 위하여 근육 이완제를 쓰기는 했는데 약기운이 떨어지는 순간 다시 주먹을 쥐더군요"

그녀의 말에 최인호는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에 윤정우가 무언가를 쥐어준 것을 생각해냈다. 그러자 마음이 급해졌다.

"호..혹시 제 손에 무언가 쥐어지지 않았던가요?"

그 자신도 느끼지 못하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 이거 말이군요!"

그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 투명한 봉투를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조심스레 그 주머니를 받아 그 투명한 봉투의 내용물을 보는 순간 최인호의 얼굴에는 그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한줄기 물줄기가 볼을 타고 턱 끝으로 흘러내렸다. 그 봉투에 들어있던 그것은 자신이 버린 아내의 유품, 동으로 만든 낡은 십자가였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이 버린 그 십자가가 왜 이곳에 있는지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항상 아내가 쥐고 있어 다 달아버린 십자가를 쥐며 한없는 그리움에 빠져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순간 바보 같은 생각에 그녀의 유품을 버린 자신이 한없이 바보 같았다.

왜 버렸단 말인가!

소리 없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십자가를 말없이 쳐다보던 그에게 주저하던 의사는 품속에서 하얀 봉투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당신 앞으로 온 우편물이죠. 원래 나중에 드려야 하지만 이번 우편물은 좀 특별한 것이라..."

미안한 표정으로 편지를 주는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그 봉투를 보자 그는 그녀가 말한 특별한 우편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하얀 봉투... 그것이 뜻하는 것은 유서였다. 누군가 자신 앞으로 유서를 남긴 것이었다. 생각나는 이가 있었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의사의 손에 쥐어진 봉투를 확인하는 순간 그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 봉투의 주인은 바로 윤정우의 유서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확실했다.

작전이 들어가기 직전 모든 인원이 작성한 유서는 사망 시, 정해진 이에게 배달이 되었다. 그 유서가 자신의 손에 들어 온 것이었다. 그는 그때 자신을 때어 넣고 죽은 것이었다. 그가 본 친구의 등은 이제 마지막 그의 모습으로 자신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영원히.... 흐르는 눈물을 훔치던 그는 조심스레 유서를 펴기 시작하였다.

『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죽었다는 것이겠지. 원래 유서는 혈연 관계나 애인에게 주는 것이지만 네가 잘 알지만 난 고아잖아. 유서를 쓰라는데 막상 줄 사람이 없더군... 좀 쓸쓸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네가 죽을 때 너에게 그것을 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일단 받았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지금에서 이런 이야기 하기는 뭐하지만 네가 버린 그것은 내가 한평생 원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원해도 기원해도...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것이지...

처음에는 그녀의 마지막 유품을 던져버리던 너에게 분한 마음도 생겼지만 곧 너의 분노가 그녀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느끼고 잊기로 했다.

하지만 던진 후 등을 돌린 너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십자가는 쌓여있던 수호물들의 산을 타고 밑으로 굴러 떨어져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 순간 난 나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주웠지... 한순간 그녀가 너를 떠나서 나에게 왔다는 착각을 하며... 하지만..... 역시 그녀가 선택한 이는 내가 아닌 바로 너야.

그녀를 생각한다면 너 자신을 잃어버리지 마라. 네가 그녀의 복수를 원한다면 너 자신으로써 복수를 해라. 스스로 짐승이 되어 그녀가 기뻐 할거라 생각하냐? 사실 착한 그녀를 생각한다면 복수 따위를 바랄 그녀가 아니지만 그것만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네 자신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말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명심해라! 나는 네가 인간으로 복수하기를 원한다. 어쩌면 글을 읽는 순간 난 그녀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어떤 놈팽이가 접근하던 그녀는 네가 올 때까지 내가 지켜 줄 테니...

마지막으로 너를 아저씨에게 부탁해뒀다. 기억나지? 어린 시절 네가 고아원에 놀러왔을 때 자주 따랐던 아저씨.. 특이한 모습에도 자신을 아저씨라고 불러달라던.... 출정식 때 오셨는데 너는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더구나.. 하기는 수십 년이 지났고 그때와 다른 모습이었으니... 아마 그분이 너를 찾아 가실 꺼야.. 네 이야기를 했더니 기억하시고 계시더라...힘 좀 쓰라고 했지, 찰싹 붙어서 마음껏 뜯어내라. 그럼.. 이만 줄인다.

추신. 야! 남이 유서 쓰는데 그만 좀 쳐다봐!!

 마지막 장난기 가득한 글을 읽자 기억이 났다. 강습함에 탑승하기 전 무언가를 쓰고 있던 자신의 친구가....눈물이 나왔다. 그녀석이 그녀를 좋아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가 만나기도 전, 윤정우와 같은 고아원에 있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좋아하는 여자를 떠나보내고도 아무런 내색할 수 없었던 그의 괴로움을 알지 못했다. 마음껏 자신의 슬픔을 나타낸 자신을 위로해주며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가 자신의 아내를 좋아했었다는 것에 질투 같은 감정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무신경만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가 왜 죽어야 했단 말인가! 부모의 정도 느껴보지 못한 놈이었다. 지금 편지로 알았지만 짝사랑만 하다 간 놈이었다. 가족의 행복도 느껴보지 못한 놈이었다. 그런 불쌍한 놈이 왜 죽어야 했단 말인가!

왜!...왜!....

눈물이 나왔다, 아내를 생각하며 이미 다 흘러내려 이제는 눈물 따위는 없는 줄 알았는데... 들고 있던 유서를 움켜쥐고 한없이 울고 있을 때 침대에 누군가 앉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뭐 대수인가? 지금은 죽어간 친구가 미친 듯이 그리웠다. 한참을 울고 있을 때 아름다운 미성이 들렸다.

"편하게 갔다."

죽은 윤정우를 뜻하는 듯한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는 바로 자신이 속한 43함대의 사령관으로 취임한 남궁 진이었다. 멀리서나마 보았던 인물이지만 그의 모습이 워낙 특이하여(?) 금방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상관, 그것도 최고위층의 인물을 만났지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왜 저자가 이곳에 있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방금 까지 자신의 병실에 있던 여의사는 어느 틈에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앞의 인물이 내보냈겠지....

자신을 생기가 빠진 눈으로 쳐다보는 최인호를 바라보며 진은 물고있던 담뱃재를 아무렇게나 병실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직도 내가 누군가 기억이 안나는가? 그놈 말대로 군..여전하구나 꼬마."

진의 말에 최인호의 눈동자가 켜졌다. 자신을 꼬박꼬박 꼬마라고 불렀던 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에 그는 아주 예쁜 소녀였다. 그 소녀는 가끔씩 선물을 한아름씩 안고 고아원을 찾아왔다. 윤정우와 함께 놀던 최인호에게도 항상 꼬마, 꼬마 하면서 선물을 안겨주었던 누나... 누나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하면서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던......

"설마!!"

"기억 나냐? 꼬마야?"

얼굴에 변함이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를 여자라고 굳게 믿고 있어서 정작 눈앞에 진을 바라보아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설마 그 진이 이 사람이었다니.... 평상시 같으면 굉장히 반가워했거나 한바탕 웃어주었을 테지만 방금 전까지 슬픔에 잠기던 그에게는 그저 잠깐 놀라움뿐이었다.

"정말... 편하게 갔을까요?"

방금 진이 한 말을 다시 물어보았다. 그의 말이 기억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가 편하게 갔다는 말을 다시 듣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 녀석이 네 아내를 좋아한 것은 알고 있었어, 마음 고생이 심했겠지....그 녀석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야... 편하게 가지 않을 리가 없지..."

"....그리 슬퍼 보이지 않는군요...."

그의 기억에서는 진은 윤정우, 그 녀석을 상당히 귀여워 해준 것으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눈앞의 인물의 얼굴에는 그 어디에도 슬픈 기색 따위는 없었다, 그저 나른하고 보는 것만으로 허탈한 분위기만을 뿜어대고 있었다. 그것이 못마땅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를 슬퍼해 주는 사람이 많을 수록 마음속에 있던 그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낼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몰랐다. 약간의 적의 섞인 최인호의 말에 진은 그저 폐 가득 담배연기를 들여 마셨다.

"윤정우... 그는 내 자식 같은 놈이었어...하지만 슬퍼하기에는 너무 많은 자식들이 죽었지... 고아원에 있었던 이들 중 이제 남아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어... 윤정우 그녀석이 마지막이었는데..."

"그런데 왜!"

"왜 슬퍼하지 않냐고? 훗, 왜 슬퍼해야지? 죽은 자를 애도하며 슬픔에 젖는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죽는 이는 죽고, 남겨진 이는 앞으로 나아 가야하지...

죽은 자에게 매달리다가는 언제까지 그때 그 장소에서 영원히 맴돌 뿐이야..... 죽은 자를 애도해주는 것은 그를 잊지 않고 가끔 머릿속에서 생각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앞으로 나아가기도 벅차니까, 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아... 뒤를 돌아볼 시간 따위도 없지.. 그저 앞뿐이지.........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그냥 침대 한구석에서 눈물이나 흘리고 있을 텐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겠나? 정우가 자네를 나에게 부탁하더군.... 어떻게 하겠나?"

말을 마친 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 진의 눈은 지극히 차가웠다.. 마치 인간이 아닌 그 무언가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강렬한 진의 눈빛에 순간 최인호는 눈을 돌렸다.

"안됩니다... 아저씨의 마음은 고맙지만, 안됩니다. 아저씨께서 말씀하셨죠? 짐승이 필요하다고... 전 짐승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정우의 뜻에 따라 인간으로 있을 것입니다...그의 뜻에 따라 인간으로 살고싶습니다. 아저씨가 원하시는 짐승은......될 수 없습니다"

고개를 흔들며 말하는 최인호를 말없이 바라보며 진은 품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작은 상자에서 담배를 꺼내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린 다음 불을 붙였다.

"전쟁이 언제까지 될 것 같은가?"

엉뚱한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최인호는 눈앞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무슨 대답을 듣고 싶다는 말인가? 전쟁의 승패를 말하는 것인가? 최인호가 대답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진은 잠시의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지금까지는 복수와 증오로 그럭저럭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10년 이상을 넘지 않을 꺼야. 그때를 지나면 지금과 같이 모든 인류가 모든 것을 희생하며 오로지 전쟁준비, 전쟁, 전쟁준비... 전쟁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이어졌던 수레바퀴는 멈추게 되겠지, 전쟁이 장기화 될 수록 복수와 증오에 미친 이들은 점점 우주의 티끌이 되어 사라져 가고 그 틈을 매우는 이들은 나기와 직접적인 원한이 없는 세대들이겠지. 그들은 그 무의미한 수레바퀴를 멈추려 할 테고..."

진의 말은 대화가 아닌 중얼거림의 수준까지 이르렀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최인호와는 상관없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허공을 응시하고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진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 뒤로 시간이 지나면 죽은 자들은 현실과 망각의 강에 휩쓸려 점점 사람들 속에서 사라져가고....지금은 죽어라 증오하는 적들과 어느새 타협하고 교류하며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지....웃기는 일이지... 그래 웃기는 일이야! 그래!! 웃기는 일이야!!"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던 진의 음성이 한순간 격해지면서 그의 자그마한 몸집에서 숨막히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 좁지 않는 병실이 거대한 야수가 들어가 있는 작은 우리 같다는 생각이 든 최인호였다, 다행이 그 살기의 주체가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게 주먹 쥔 두 손에서는 엄청난 땀이 고이기 시작하였다.

"웃기지? 그래! 웃겨! 감히 나를 건드린! 내 자식들을 건드린 그 자식들과 살아간다고!! 웃겨!! 으흐흐흐 감히 나를 건드린 녀석과? 우리를 건드린 녀석들과?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적들과 함께 그런 시대가 온다면 모두 다 죽여버리겠어! 죽어, 죽어! 죽어!!!! "

미친 듯이 외치던 진은 한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른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길게 타고남은 담뱃재를 바닥에 털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최인호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앞에 있는 이는 미쳤다고.. 그것도 아주 이성적으로....

"미...미쳤어.. 합"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말에 깜짝 놀라며 자신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진은 그의 목소리를 들은 후였다.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과 그와의 거리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런 이에게 미쳤다는 말을 하다니... 하지만 의외로 그를 바라보는 진의 눈빛은 고요했다.

"그래,,, 잘 알고 있군..... 자네의 말대로야, 미쳤지. 그 미친 짓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세력이다. 나처럼 미친 이들만 모인 나만의 군대가! 아까 자네가 짐승이 될 수 없다고 했지? 그래! 짐승은 필요하다. 하지만 윗대가리까지 짐승일 필요는 없지..."

"무슨"

"말했지? 나만의 군대가 필요하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조력자가 필요하지! 높은 자리에 앉혀주마! 그리고 나를 도와라! 복수를 원하는가?"

진의 말에 최인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 원하지! 이제까지는 아내의 원수를 갚기 위하였지만 이제는 친구의 원수까지 짊어진 상태였다.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의 복수는 꼭 해야했다!

" 좋다! 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복수를 해주마! 세월이 지나 나기와의 전쟁이 종식되어도 나만은 싸워주마! 모든 이들이 비웃어도 나만은 싸워주마, 그런 행동에 모든 사람들이 비난하여도 나만은 싸워주마!"

진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으면 자신은 아주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다! 눈앞의 인물은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그 손을 한참동안 쳐다보던 최인호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의 진정한 목표는 뭐죠?"

그의 말에 진은 남은 손으로 담뱃재를 털었다. 그리곤 서늘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상대방의 속눈썹이 서로의 눈을 찌를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에서 진은 최인호의 귓가에 마치 연인과 같이 소곤거렸다.

"죽어라, 죽어라, 모두 다 죽어버려라, 지옥 끝까지 쫓아가, 나를 건드린 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도록 해 주겠어. 자신의 아이를 지옥의 강가로 던져버려 디딤돌로 삼아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해주겠어, 자신의 아이!, 자신의 부모를 먹어가며 살도록 해주겠어!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겠어!"

역시 미쳤다! 최인호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손을 잡으면.....

"......아저씨와 함께 하면 그곳에 제 자리가 있습니까?"

"크크크 지옥으로 가는 첫 번째 열차의 맨 앞좌석의 표를 끊어주지!"

진의 말에 최인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진의 손을 잡았다.

힘을 원한다!

이제 지켜줄 이는 아무도 없으니....

한번 원 없이 나아가 보자!

끝이 없는 길이지만..

그것이 뭐 대수인가?

나아갈 수 있다면 나아가는 것이다!

끝이 비참해도 지금은 나아가자!

나의 분노가 세상을 뒤덮을 때까지...

최인호는 결심했다. 눈앞의 이를 따르기로.....

◆ 3개월 후 나기들의 유인행성으로 총 4만 3천의 대군이 출발하였다. 그곳에서는 누구의 입김으로 2계급 특진하여 대위로 승진한 최인호도 속해 있었다, 수많은 지구 군이 죽음으로 걸어가며 그보다 수천 배 많은 이들을 끌고 갔던, 후 모든 기록에서 우주 최고 최악의 살인귀들이라 기록된 그들이 지옥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2부 2번째 외전 그들의 전쟁 끝!!

참고로 기억나지 않으신 분도 계시곘지만 최인호는 나중에 극동 우주군 사령부의 원수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짜식 출세했구나~ 문제 있음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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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돈의 시작 본래 있어야 할 장소에 일행들이 보이지 않자 진은 거리를 둘러보았다. 막 아침이 되는 거리는 문을 열려고 하는 상인들과 오늘 일을 하기 전 미리 필요한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때 저 멀리 과일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보이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일행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람들을 비집고 안을 들여다보니 그곳에서는 어떤 뚱뚱한 몸집의 여자가 4명의 여자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진의 뒤를 따라온 세이시나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반하여 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과일을 먹었으면 돈을 내야 할 것 아니야!!"

과일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뚱뚱한 40대의 여자는 무척 화가 났는지 눈앞에 있는 키네라의 멱살을 잡으며 외쳤다. 마을에 들어오기 전 군복을 변형시킨 망토로 얼굴모습을 알아보기 힘들게 하였지만 그 여자가 흔드는 통에 그녀의 맨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미녀가 난처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같은 마을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외지인의 곤경에 처한 모습은 그들에게 그저 한때의 유희거리였다.

"하..하지만 이미 돈을.."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이런 유리조각 말로 돈! 돈!! 돈을 내란 말이야! 가뜩이나 중앙이 심상치 않아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는데 이런 고급스러워 보인 옷을 입고 있으면서 돈이 없다는 말이 돼? 먹었으면 돈을 내야 할 것 아니야!!'

진이 옆에서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아마 일행이 무언가 과일을 먹고 돈을 내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 돈을 내기는 내었지만 장사치가 그 돈의 값어치를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인가? 화를 내는 그 여자의 발 밑에는 키네라가 낸 돈으로 보이는 인공보석이 떨어져 있었다. 투명한 다이아몬드 안에는 선명한 루비가 박혀 있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인조 보석이었다.

하긴 이런 미개척지 원주민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그녀의 잘못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과일이 비싸다고 해도 떨어져 있는 인조보석에 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인조보석이 그녀의 생각대로 가짜라고 해도 보석이 화폐의 역할을 하는 이상 언 듯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으로 보이는 인조보석은 과일값으로는 넘치고도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진은 불쾌한 표정으로 키네라의 멱살을 잡고 있는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응? 네년은 뭐야!"

마을의 출입문에서 젖혀져 있던 망토 덕분에 얼굴을 들어내고 있던 진의 모습에 뚱뚱한 여자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가냘픈 손을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물었다. 자신보다 아름다운 모습에 한창 봉을 잡았다고 기뻐하던 그녀는 진의 등장이 반갑지 않았다.

"사령..주인님!"

"야! 왜이리 늦은 거야!"

"죄송합니다.."

"............."

당황한 표정들인 일행들은 진이 등장하자 마치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이 기뻐했다. 루미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사령관님이라 부를 뻔한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경우 진을 주인님으로 부르기로 하였기 때문이었다.(루미나와 키네라만) 다행이 사람들은 새로운 미녀(?)의 등장으로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 들어도 알 수 없겠지만...

진을 인정하지 않고 있던 세르피까지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르 또한 진의 등장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긴 눈앞의 인물은 가냘픈 외모와는 다르게 어떤 어려움도 수월하게 해쳐나갈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

"뭐냐!! 이 손놓지 못해!! 이년이!"

"...그만하지, 더 뜯어내고 싶어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를 뿐이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과일가게의 주인 여자의 얼굴은 참혹하게 구겨졌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 과일값이라 주어진 것이 범상치 않게 보이는 물건이라는 것을...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값어치라면 그녀들이 먹은 과일값의 수백 배가 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하곤 그런 물건을 단지 과일값이라고 내 놓는 일행을 바라보여 그녀는 그들이 세상물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화폐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도,...

그래서 그녀는 그들이 돈이 없다는 것을 미끼로 더 많은 그 보석과 같이 생긴 물건을 받아내려고 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땅에 떨어진 인조보석을 밟지 않기 위하여 쉴새없이 키네라를 몰아세우는 와중에도 시선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생각대로 그녀들은 돈이 없는지 그녀의 말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일행들의 신체로 보아 여자들이라는 것을 직감한 그녀는 협박과 확인 차 맨 앞에 있는 이의 멱살을 잡으며 흔들었다, 그리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연약한 여자 무리라면 약간의 인상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누워서 떡 먹기 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 증거로 자신에게 따지려던 일행 중 한 명에게 인상을 쓰자 겁을 먹었는지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그녀들이 가지고 있을 물건을 생각하면 침이 넘어가는 그녀였다. 그런데..

'아차! 어수룩한 일행이 있다면 그 일행을 이끄는 이들이 한 명쯤은 있는 것인데!'

이제 조금만 하면 될 수 있었는데 일행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와 일을 망치자 한 목 단단히 잡겠다는 생각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던 그녀의 마음에 짜증이 물 믿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이를 바라보자 그녀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이 또한 연약한 여자(?)가 아닌가? 아니! 어쩌면 진짜 값진 물건은 이 여자가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과일가계 주인의 얼굴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너는 아는가? 그대가 진정 괴물을 건드렸다는 것을.. 몇 푼의(솔직히 그녀들의 지니고 있는 보석은 이 행성에서는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자연현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단 하나뿐이라는 희소성이 있으니...)푼돈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으니....

"이년이! 네년은 뭔데 지랄이야!!"

다시 한번 눈앞에 있는 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하여 자유로운 왼손을 들어 진의 얼굴을 내리쳤다, "철썩!"

진의 얼굴이 자신을 때린 손의 반대방향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본 일행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물들었다. 진이 맞는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진의 뒤에 서있던 세이시나도 동일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진의 실력을 보지 않았던가? 상대방이 반응하기도 전에 두 동강을 내버리는 진의 모습은 솜씨를 떠나 그가 얼마나 살인에 익숙한지를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그녀가 알고있는 그런 이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강하고 또한 자신을 건드리는 이들은 지위와 신분에 상관없이 저돌적으로 나가는 이들이었다. 그녀는 진이 피하지 않고 맞은 것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더 두려웠다.

"하하하하하 이봐 이쁜이! 내가 대신 상대해 줄까? 예쁜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오늘밤에 내 침대에 들어와 준다면 기꺼이 대신 그 아줌마랑 상대해 줄 수 있는데!"

"뭔 소리야! 네놈 밤일이 부실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다고! 이봐 아가씨! 타오를 만 하다 꺼져버리는 놈보다 나 어때? 새벽까지 끝내주게 해줄 수 자신이 있는데!"

"푸하하하하"

구경하던 어느 젊은이의 말에 옆에 있던 중년이 음탕한 눈빛으로 진에게 말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높아질수록 세이시나를 포함한 일행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진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지구정부 때문에 진을 자세하게 잘 알지 못하는 루미나와 키네라와는 다르게 진에게 관심을 가져 여러모로 자료를 수집한 세르피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려있었다, 지금 저들이 욕하는 이가 누구란 말인가? 전 우주, 슈렘에 속한 이들 중 가장 위험한 인물 1호로 꼽히는 이가 누구란 말인가? 그의 손에 죽어간 이들은 손가락 발가락의 숫자를 넘어서 지구인 전체의 손가락 발가락이 동원 되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그의 별명은 수도 없이 많지만 대표적인 것이 미친 사냥꾼이었다. 세르피는 진의 과거를 연구하던 중 보았던 하나의 단편이 떠올랐다.

그것은 과거 어느 종족의 왕녀가 지구에 관계를 맺기 위하여 방문했을 때 우연히 달에 여행 차 왔던 진의 부하를 장난삼아 토막을 내어 죽인 일이 시작이었다. 그 당시 지구는 막 나기를 상대로 혼신의 힘을 쏟아 가까스로 승리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였으니 그때 방문한 그 종족은 지구정부에게 아주 중요한 일행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종족은 자유종족이었지만 그리 발전한 종족이 아니었다. 그 대신 풍부한 자원을 가져 그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으니 그 종족의 왕녀가 저지른 일은 당연히 지구 정부는 쉬쉬하면서 얼렁뚱땅 넘겨버렸다. 문제는 진이 그 이야기를 들어버린 것이었다. 처음 진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에 지구 정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아무리 성질이 더러워도 그놈도 머리가 있으니 움직이지 않겠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진의 행동을 주시하던 지구정부는 움직이지 않는 진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쥐었다. 하지만 진이 전혀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신중하게 사건을 조사하도록 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확실한 증거를 얻자 이빨을 들어냈다.

그때를 회상하는 사람들은 진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입을 모아 말해다. 그가 움직이자 지구가 움직였다고,,, 맨 처음 움직인 것은 언론이었다. 시민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모든 통로에서 일제히 그 종족의 황녀가 지구인을 무참하게 죽였다는 정보를 쏟아내었다. 참혹하게 죽어있는 시체의 영상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곧 시민들 사이에 그 종족에 대한 반감이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그 다음 움직인 것은 수많은 각종 연합이나 퇴역 군인들의 모임 등, 엄청난 숫자의 사회단체들이 들고일어났다, 물론 그들에게 진이 전해준 뒷거래의 돈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전해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진의 힘으로 올라선 군장성들까지 일제히 그 왕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지구정부는 사회전반에 들끓어 오르는 사태의 심각성을 애써 무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 진이 손수 몸을 일으켰다.

충분히 준비가 됐다는 생각을 한 진은 자신 휘하의 특수부원을 동원하여 그 왕녀가 잠들어 있는 장소로 침입, 살아서 발버둥치는 그녀를 손수 납치해 버린 것이었다. 당연히 지구정부와 그 종족의 왕실은 발칵 뒤집어진 것은 당연하였다. 그 종족은 사과하는 지구정부를 무시하고 무례한 원시종족을 토벌하겠다고 선언하며 수많은 함대를 파견하였다, 그 사실을 알면서 지구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태양계 밖에 위치한 진의 본거지였으니 움직일 이유 따위는 없었던 것이었다, 왕녀를 납치한 진은 발버둥치는 그 왕녀를 죽은 이의 가족이 원하는 처벌을 내리도록 했다. 그것은 죽은 자신의 부하처럼 살아있는 상황에서 각 부위를 토막내어 죽인 다음 개의 먹이로 줘 버린 것이었다, 설마 설마 하던 지구 정부는 망연자실하였고 왕녀의 종족은 분노에 날뛰었다, 왕녀를 죽여버린 진은 자신을 향하여 수많은 함대가 집결하여 진격한다는 정보를 얻고 자신을 따르는 군장성들을 소환하였다. 그런 진의 행동에 자신의 주둔지를 떠나지 못하도록 지구정부는 각 군부대로 명령서를 전달하였다. 하지만 그런 행동으로 진이 연락하지 않은 부대까지 진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움직여 버리는 결과를 내었다.

명을 어기고 지원자에 한하여 부하들을 소집하여 모여들었던 이들은 전체 지구군의 40%에 달하였다, 장성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병들 사이에 진을 추앙하는 이들이 대부분 모여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지구군 사령부의 장성 중 총 65% 이상이 모여들 정도였다. 이런 사태에 당황한 지구 정부가 어찌할 틈도 없이 두 집단은 정면으로 충동해 버렸다.

진이 명령으로 집결한 힘은 무시무시하였다. 진에 있는 장소로 진격하던 왕녀의 종족의 함대 중 단 한번의 전투로 살아남은 이들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 군은 정말 질리도록 싸움을 한 상태였다. 그것도 보통 종족이 아닌 상위 종족을 상대로... 그에 반하여 상대종족은 근 수백 년 동안 전투다운 전투를 한 적이 없는, 지구 군에 비하면 오합지졸들이었다. 진이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단 한번의 전투로 적은 궤멸까지 이르렀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진의 부대는 살아남아 후퇴하는 이들을 끝까지 쫓아가 잔인하게 살해해 버렸다. 지구 평균 시로 약 5달의 시간동안 치열한 추격전 끝에 결국 한 4척만이 간신히 살아남아 그들의 모성으로 귀환 할 수 있었다. 황당하게도 진은 그들의 모성까지 쫓아와 포위한 뒤 퇴각한 전함을 내놓을 것을 명하였다. 하지만 퇴각한 그 함에는 왕실의 두 번째 왕위 계승자인 2째 왕녀가 탑승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진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비록 포위 당한 상태라고 하지만 슈렘의 법으로 궤도상의 폭격은 금지이므로 자신들과 친분이 있는 종족이 원군을 보낼 때까지 버티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진은 그들이 거절하자마자 그런 그들을 비웃으며 수송선을 그들의 행성에 추락시켜 버렸다. 그것도 잔뜩 연료를 채운 상태로....

당연히 낡은 수송선이 항법장치의 고장으로 추락해 버렸다는 진의 말은 당한 자는 억울하긴 하였지만 슈렘의 법에서 공격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추락을 빙자한 돌격으로 억 단위의 사망자가 발생한 뒤에 왕실은 4척의 함과 탑승자를 고스란히 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중·하급종족 중 지구인을 무시하는 이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 정부 또한 명령을 거부한 군 장정 때문에 한동안 골머리를 감싸안았다. 그들은 그야말로 역전의 용사들이고 한 두 명도 아니 전체의 반 이상이니 처벌도 곤란한 상태여서 감봉처리만으로 끝을 낼 수밖에 없었다.(그때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들을 경질시킬 시 쿠데타가 걱정되어 한발 물러섰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설명이 길었지만 일단 사냥감이 잡힌다면 우주를 횡단하고, 방해하는 이라면 상위종족도 박살내면서 끝까지 찾아내 단 하나의 생존자도 없이 끝내 버리는 것으로 유명한 저 미친 지구인을 저 상점의 주인이 겁도 없이 건들어 버린 것이다.

싸늘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가 원위치로 돌아오는 것을 보는 일행은 처음부터 아예 진의 행동을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에 반하여 세이시나는 진의 행동을 말리기 위하여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려움을 지우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하지만 이미 상점 주인의 손목을 잡고 있던 진의 손은 천천히 품속으로 가 있었다.

 ....그 아줌씨 불쌍하게 시리 건드려도 하필 진 같은 미친놈을 건드렸을꼬?

문제 있음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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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돈의 시작 "딸각"

진이 품속에서 꺼낸 것은 항상 가지고 다니던 고급스러워 보이는 담배케이스였다. 일행이 진의 품안에서 꺼낸 것이 비 살상 물품이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진은 케이스를 열고 담배하나를 꺼내 물었다.

"휴~~~~"

다시 케이스를 품속에 집어놓고 한껏, 물고있는 담배를 빨아드리자 담배 끝에 붙어있던 인화물질이 진의 입김에 의하여 '팍'하고 불이 붙었다. 불이 붙은 담배를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기분 좋게 한 모금 들이킨 진은 뺨을 맞아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고개를 흔들며 신경질적으로 손으로 쓸어 내렸다. 그러자 망토 안에 집어 놓았던 그 긴 머리카락이 진의 손길에 따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

굉장한 길이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사람들은 감탄했다. 몇 명 남아있던 여자들은 진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질투의 눈빛을 들어내었고 남자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음탕한 시선을 보내는 이조차 이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상점주인은 눈앞의 인물이 자신의 손찌검에 아무런 반항이 없자 더욱 자신감을 얻으며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있는 진에게 다가갔다.

"이년아! 딴청 피우면 누가 넘어갈 줄 알았어!"

그녀는 솥뚜껑 만한 손으로 싸늘한 표정으로 망토 밖으로 나온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있던 진의 멱살을 쥐어 들어올렸다. 그녀는 충분히 겁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보이는 진의 멱살을 잡아 아침에 자신에게 행운을 준 일행과의 만남을 끝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대로 진의 몸이야 가벼운 편이었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물건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처음의 과장된 행동과는 다르게 진의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주위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주위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일그러진 얼굴로 더욱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없어..."

"뭐!!"

"재미없다고 이 돼지야!"

반문하는 상점 여주인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 진은 물고 있던 담배로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주인의 손을 찔렀다.

"아! 뜨거!!"

담뱃불에 손을 댄 주인이 자신도 모르게 진의 멱살을 잡고있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려 하였다, 하지만 한발 먼저 진의 손이 그녀의 목을 잡아 상점의 벽으로 밀어붙였다.

"커어어어"

엄청난 힘으로 목을 죄자 주인은 괴로운 듯 발버둥을 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강철같은 진의 손아귀의 힘에서는 그저 미약하게 몸부림을 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지 진은 그녀의 손짖에 떨어뜨린 담배를 대신하기 위하여 다시 품속에서 담배케이스를 꺼냈다. 그리곤 한 손으로 능숙하게 담배하나를 물었다. 폐 깊숙한 곳까지 들려 마신 후 진은 장난기가 생겼는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주인의 얼굴에 연기를 뱉어내었다. 숨이 막혀 괴로운 와중에서도 자신의 얼굴로 날아오는 담배연기에 주인은 괴로운 기침과 함께 얼굴에는 침과 콧물로 더렵혀졌다.

입에 거품을 물고 발버둥치는 주인을 보자 이제까지 웃고만 있던 마을사람들이 불쾌한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보기에도 주인이 잘못하였지만 잘못을 떠나서 자신의 마을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삽으로 보이는 장비를 어깨에 걸친 한 청년이 진에게 다가왔다, "이봐! 죽고싶어? 감히 이방인 주제에 어디서 행패야! 곱게 이야기 할 때 그 손놓고 손해배상을 한 다음 이 마을을 떠나! 그렇지 않으면 몸 성하..."

"아 시끄러워 이 병신아!"

"멈춰!"

"탕"

청년의 말을 지루한 표정으로 듣고있던 진은 담배케이스를 품속에 집어넣고 갈다란 쇠뭉치를 꺼냈다. 그것을 본 세이시나는 급하게 앞으로 달려나갔지만 이미 쇠뭉치에서 굉음이 터진 후였다.

총의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진이 미리 마을에 들어오기 전 소음기를 달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이 꺼낸 총에서 나는 미약한 소리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작은 총소리의 여파는 결코 작지 않았다.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탄환이 돌진하는 중심에 서있던 청년의 몸은 마치 액체를 채운 풍선과 같이 팔과 다리, 머리만을 뺀 나머지 부분들이 폭발해 버렸다.

수십 미터까지 그 파편이 떨어졌고 사람들은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모르겠다는 듯 고요한 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모여있던 마을사람 중 소녀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자신의 뺨을 흐르는 살점을 주어들며 미친 듯이 외치는 비명소리에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난 듯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집으로 도망치는 사람, 자경대를 부르기 위하여 달려나가는 사람, 겁에 질려 그 자리에서 실례를 하며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등, 거리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역시.. 철갑탄은 낭비였어. 앞으로는 유탄을 써야겠군.. 좀 지저분하기는 하기는 훨씬 화려하잖아?"

재미난 구경거리였다는 듯 말한 진은 다시 자신의 손아귀에서 실신하기 일보작전의 주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 하였다. 세이시나가 말을 걸기 전까지...

"무슨 짓이야?"

"응?"

"응? 이 아니잖아! 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거야!!"

방금 죽은 따근따근한 시체를 차마 보지는 못하고 고개를 돌려 손가락질만 하는 세이시나를 바라보며 진은 다시 품속으로 총을 집어놓고 물고 있는 담뱃재를 털었다. 그리곤 생각에 잠기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왜 죽었을까?....좀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심심했나?"

"뭐? 이.. 이!!"

진의 대답에 세이시나는 한순간 말을 잊었다. 그리곤 분노로 붉게 물든 얼굴로 진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이! 뭐! 심심해? 고작! 고작 그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거야! 넌? 고작 심심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드는 세이시나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진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곤 "빠각!"

"까아아아아"

진이 손에 힘을 주자 그녀의 손목이 뼈 부셔지는 소리와 함께 힘없이 쳐졌다. 자신의 손목에서 쏟아지는 고통에 그녀는 비명을 질러대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다른 손에서 신성력의 빛이 쏟아지면서 차츰 고통으로 얼룩진 세이시나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가까스로 고통을 통제한 세이시나는 분노에 사라지는 이성의 끈을 가까스로 잡으며 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이시나의 손목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부셔버린 진은 그녀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는 듯 그의 시선은 자신의 손아귀에서 발버둥치는 상점 주인에게 가 있었다. 상점 주인을 보는 진의 얼굴에는 오싹한 살기가 맴돌았다. 그런 진의 얼굴을 보자 자신의 힘으로는 그를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진의 모습을 그저 구경만 하고있는 일행을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건가요? 그를 말려요!!"

애절하게 외치는 세이시나의 목소리에 일행 중 세르피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아직 접합이 완벽하지 않아 고통스러운 손목의 고통을 잊을 정도였다.

"왜? 저놈이 저 정도에서 참는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인데..그리고 여자가 어디서 남자의 얼굴을 때려!(지구에서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과 동일..다시 말하지만 우주 종족의 대부분은 여성상위...) 저런 여자는 맞아도 싸! 휴.. 난 혹시 옛날처럼 다 죽여버리는 줄 알았네.."

다른 이들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미나와 키네라의 경우는 상점 주인에 대한 직접적인 반감 덕분이었지만...어차피 일행은 이 행성의 원주민이 아니었다. 진을 바라보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좀 잔인하고 불쾌한 모습이었지만 미개한 종족이 자신들을 먼저 건드린 것이 잘못이었다,. 그런 일행의 모습에 세이시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일행들은 전부 미쳤다는 것인가? 그런 그녀에게 아르는 손을 들어 진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 모습을 보고서도 그를 말릴 용기가 있나요?"

아르의 차가운 목소리에 세이시나는 소름이 돋았다. 왠지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그러면 진에게 지는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뒤를 돌아보았다.

몸을 돌렸을 때 그녀는 눈앞에 일어난 장면에 역겨움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때? 돈 좋아하잖아? 자! 가져! 많이 줄 테니까"

진은 마치 자신의 연인에게 하는 것처럼 나지막하지만 아름다운 음색으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의 귓가에 대며 소곤대었다. 그의 얼굴에는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가 결려있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있는 이는 그런 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주인 여자는 이제는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에 반 미쳐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뽑혀있었고 그 안에는 금화가 잔뜩 들어 있었다. 눈뿐만 아니라 코와 치아를 모두 제거한 입에도 금화가 가득 들어있었다.

몸의 관절과 관절을 이어주는 곳에는 여지없이 금화가 깊숙하게 박혀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끔직한 고통이 그녀의 머리를 태워버렸다. 손가락은 이미 모두 뽑혀있으며 그 상처를 통하여 피부를 뚫고 나올 정도로 잔뜩 들어있는 것도 역시 금화였다.

세이시나, 그녀가 자신의 손을 치료하고 일행들을 바라보는 사이에 진이 행한 일이었다. 그 여자의 모습은 이미 산산 조각난 시체 보다 더 잔인하고 역겨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것이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의 차이인가? 세이시나는 자신의 눈으로 본 장면을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아 토해버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진은 그녀의 몸에 작은 상처를 내어 그 사이로 금화를 집어놓고 있었다.

"어머니!!!"

한참 속에 있는 것을 모조리 토해난 세이시나가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힘없는 움직임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곳에선 10명 정도 되는 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가 살인사건이라고 자경단에 연락한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의 뒤로는 마을 청년들로 보이는 이들이 농기구를 들고 사나운 표정으로 뒤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라니?

그럼 저 여자의 아들 중 누군가가 자경단에 속해있다는 말인가? 세이시나는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외진 곳의 마을은 법보다 마을 주민들의 의견이 먼저였다. 더군다나 그 중심에는 자경단이 있었다. 그러니 그 자경단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이를 저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자신들은 이제 전 마을의 구성원들의 표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럴 때는 그저 도망치는 것이 최고 있다. 이런 외진 곳의 마을 주민들은 귀족이라고 해서 봐주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귀족의 힘이 무엇인지! 평생 귀족을 보지 못한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거니와 분노에 미친 이들은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괴물을 보자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었다. 진은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사람들을 한번 무표정하게 쳐다본 후 다시 관심 없다는 듯 자신이 일(?)에 열중하였다. 일행들 또한 자신들을 향하여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별 동요가 없었다. 그런 그들이 세이시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안전하다고 믿는 것인가?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자신들에게 살기를 띄우는 사람들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 졌다.

 ◆ "짝짝짝짝'

상쾌한 가을의 아침, 이방인들이 일으킨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시끌벅적한 마을의 상공, 마법사 로브를 걸친 이가 진의 행동을 보면서 메마른 박수를 치고 있었다, 좀 잔인한가?

문제 있음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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