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쓸모없는 구덩이 그것의 전조는 그저 한줌의 빛일 뿐이었다.
지금의 시간은 이미 한낮의 태양이 떠오르는 시기, 하지만 일행의 등뒤에서는 태양의 그것을 능가하는 한줌의 빛이 시야를 가득 매웠다. 대지에 처음으로 들어 나는 백색의 섬광.... 그리고 하늘높이 솟아오르는 검붉은 흙먼지들.... 미약하지만 대지의 울부짖음...
그것이 무엇인지 지식으로도 알고 있었고 또 경험해 본적도 있는 루미나와 키네라, 그리고 세이시나와 아르는 아직 사태파악을 하지 못하고 대지를 비추는 그 황홀한 백색의 빛만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세이시나와 허름한 망토의 여인의 팔을 이끌고 수령 수백 년은 될 것 같은 천연의 방패, 숲으로 뛰어들었다. 원래의 수칙은 빛을 보는 순간 제자리에 엎드려 머리를 보호하고 눈을 감고 입을 반쯤 벌리는 것이지만 지금과 같이 먼 거리의 경우라면 그런 꼴사나운 짖은 할 필요는 없었다.
"무...무슨..."
끌려가던 세이시나는 이유를 물으려 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다급한 모습의 눈빛 뿐이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순간 사라진 일행이 있던 곳은 시체들과 그들의 몸에서 나온 잔해... 그리고 진만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허둥대는 다른 일행과는 달리 전혀 피할 생각이 없는지 진은 한순간 조용해진 주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품속에서 담배 하나를 물어 천천히 연기 가득한 숨을 내뱉었다. 마치 그것이 지금 최대의 사명이라는 것처럼... 진의 그런 느긋한 모습에 숲에서 고개만 내 놓고 바라보던, 세이시나와 망토의 여인을 뻔 나머지 일행은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드디어 그녀들이 생각한 반응이 주위에 일어나가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진은 온몸을 가린 망토를 휘둘렀다.
한순간 대지를 비추었던 빛의 사라진 그것으로부터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온 것이다. 마치 안개처럼, 육지에 해일이 일어난 것 같은 그 충격파에 포함된 수많은 쓰레기들이 온 천지를 뒤집어 놓았다. 다행이 온 숲을 쓸어버릴 것 같은 격렬한 폭풍은 잠시 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 갔다.
"아야..뭐... 뭐야! 이 소동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나뭇가지에 얻어맞은 세이시나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일행은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숲을 빠져나왔다. 조금전의 폭풍으로 그녀들 주위에는 수많은 쓰레기들로 엉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참담함으로 변해버린 주위의 상황을 주의 깊게 바라보던 일행들의 시선은 자신들과는 달리 그 거대한 폭풍을 맨몸으로 받아내던 진에게 모여졌다. 하지만 그녀들의 시야에 들어온, 망토를 펄럭이는 진의 몸은 그 어디에도 상처하나 없었으며 폭풍 전과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담배를 가슴 가득히 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보기 싫은 것들이 사라진 것은 좋아 해야하나?"
너무나 무사한(?) 진의 모습에 허탈한 나머지 머리를 긁적이는 루미나의 중얼거림처럼 주위에 널려있던 시체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런 폭풍에 날려갔거나 어디 쓰레기의 잔해에 묻혀 있으리라..... 지저분한 모습이지만 차리리 지금이 나았다. 그런 그녀의 중얼거림에 일행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하고 있었지만 대충 상황파악을 하고 있던 키네라는 조심스럽게 진에게 다가섰다.
"탄두가 폭발한 것입니까?"
그녀의 질문에 진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음..K-45 레일건 탄두의 세팅을 잘못한 것 같군. 폭발시간은 1시간 되로 되어있는데 벌써 터지다니.... 몸체가 파괴될 정도의 직접적인 충격이 아니라면 터질 리가 없는데..."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이 턱을 문지르는 의 모습에 키네라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었다. 조금 전 폭발이 일어난 방향은 바로 자신들이 떠나온 마을... 그녀가 알고 있는 K-45 레일건의 탄두는 하나의 파괴력이 200M가 넘었다. 더군다나 그것은 파편에 의한 파괴력이 아닌 순수한 폭발력에 의한 파괴력... 그것이 몇 개가 동시에 타졌다면? 마을의 상황은 안 봐도 뻔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진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한숨을 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상식 밖의 행동에 대한 한숨일 뿐, 그를 추궁하고 싶은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군인! 그런 자질한(?) 것보다는 명령이 우선이었고 앞으로의 계획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슬쩍, 자신의 몸에 묻어 있는 잡다한 쓰레기들을 털고 있는 세이시나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키네라에게 진은 자신의 턱을 문질렀다.
"뭐... 상관은 없지만, 저 잔소리쟁이가 알아서 좋을 것은 없지. 알아서 하도록!"
진이 이곳에서 폭발물을 사용한 것은 이번을 제외하면 단 한번, 그것은 세이시나를 만나기 전의 일이다. 따라서 세이시나는 탄두가 폭발하는 장면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전 폭발이 진이 일으킨 것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일부로 알려주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항상 반발하는 그녀라면 알아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진은 키네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자신의 행동으로 최하 수백 명의 죄 없는 이들을 죽인 사람답지 않게 느긋한 모습으로 일행이 모여있는 것으로 걸어갔다. 평소 죄 없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을 그리 즐겨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한 일은 고작(?) 탄두를 집어놓은 것뿐이었으니 그 뒤의 상황은 상관할 봐가 아니라는 생각하는 그였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죽음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행이 뼈 속까지 울리는 분노와 짜증은 어느 정도 가라않아 있었으니까.....
진이 자신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맨 처음 동요의 빛을 보이는 이는 다름 아닌 세이시나와 허름한 망토를 입은 여자였다. 다른 일행이야 진의 과거를 알고 또한 진에게 죽은 종족과 자신들은 같은 종족이 아니었으니 크게 상관할 봐가 아니었지만, 둘에게는 눈앞의 존재가 자신의 종족을 산채로 먹어 치우는, 식인의 행위를 한 자였으니 그의 모습이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머리 속에는 조금 전 백색의 섬광과 충격파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다.
점점 다가오는 그에게 조금씩 물러서던 둘을 무심히 쳐다보던 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공포에 반쯤 굳어진 허름한 망토의 여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까아아아악!"
고통에 질린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지만 진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손아귀에서 고통과 공포에 질려있는 존재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진의 손아귀에서 잡혀있는 고통에 비명을 질러대던 그녀는 주위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절망뿐..... 원래 키네라와 루미나는 계급 상 진의 행동을 막을 이유가 없었고 세르피와 아르 또한 자신들의 일이 아닌 이상 진의 행동을 막을 생각 따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들의 생각 밑바닥에 깔린, 자신들의 종족이 아닌 타 종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도 한목 하고 있는 것이다.
일행 중 그래도 유일하게 진을 막을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세이시나였지만 조금 전 진이 보여준 잔혹한 식인 행위에 대한 공포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 그녀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성이 진의 행동을 막으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잘못했다가는 자신도 먹힐 수 있다는 죽음의 본능에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일행들의 사정이 이러니 진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통과 공포의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진의 손아귀에 잡혀 있던 그녀는 평소 낙천적인 것으로 유명하였지만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광기 가득한 진의 모습에 반항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간 상태였다.
그렇게 한동안 여자의 비명을 듣고 있던 진은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조금씩 일으켜지기 시작했다. 물론 자의가 아닌 타이에 의하여.....
"이름은?"
서로의 얼굴이 밀착한 거리에서 내뱉은 진의 음성에 아직 조금 남아있던 이성이 사라지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두 눈 가득 들어온 그의 아름다운 입술에는 자신의 종족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과 말라붙은 핏방울이 맺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포에 질린 음성이 흘렀다.
"..네..네리아"
비록 공포에 질려 있지만 비교적 얌전한 그녀의 대답에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털었다. 하지만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 사라진 후에도 공포에 질린 나머지 다리에 힘이 빠져 버린 그녀는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상관하지 않고 진은 꺼져버린 담배꽁초를 버린 다음 새로운 담배를 물었다.
"이제 좀 얌전하군. 아! 예의 상 이름은 밝혀야겠지? 나의 이름은 진이다. 뭐 그따위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럼 네리아양. 몇까지 질문을 좀 하도록 하지"
폐 깊숙이 빨아들인 연기를 허공에 뿌리는 진의 말에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아직도 공포가 깊숙이 묻어있었다. 누가 보아도 측은한 모습.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동요의 빛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 진은 냉정한 목소리만을 기계적으로 내뱉었다.
"먼저 금서라는 것이 정확히 뭔지 알려 주실까?"
"예..?"
'금서?'
진이 내뱉은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네리아는 허둥지둥 자신의 품안을 뒤적거렸다. 아무리 공포에 질려 있다 하더라도 목숨보다 더 소중한 금서를 잊고 있었다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했는지 잘 아는 그녀로써는 금서라는 존재는 목숨과 같았다.
'휴....'
다행이 망토 안쪽에 있던 주머니에서 금서가 발견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던 그녀는 조금 이상한 점을 느꼈다. 기억을 잃기 전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는 금서가 왜 얌전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녀로써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하던 금서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금서가 자신에게 안전하게 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자 네리아는 눈앞의 존재가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은 공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에 희미한 호감까지 들었다. 처음으로 눈앞의 인물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 자 그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융합하여 거부감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생각해 보면 조금 전 과한 행동을 하였지만 먼저 잘못을 한 자들은 그 용병들이다. 더욱이 교단에 끌려가 고문이나 당하다 죽어야 할 팔자였던 자신을 살려준 이도 눈앞의 존재일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덕을 받았으면 받았지 피해를 본 부분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진의 아름다운 외모가 한목 하고 있었지만...... 겉모습일 망정 아름다움은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네리아 그녀가 전적으로 진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가진 지식은 때에 따라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정보를 단지 호감으로 넘긴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이야기라 해도... 더욱이 함정일 수도 있지 않은가? 자신과 눈앞의 존재를 그리 좋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간간이 들어 난 망토 안의 옷차림을 모습으로 보아 성직자인 것을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의 소녀의 모습도 눈에 거슬렸다.
"금...금서에 대한 것은 거기 저 고위 성직자로 보이는 이에게 물어 보아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아직 조금 전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녀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네리아의 말에 진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세이시나가 아직 공포에 벗어나지 않은 얼굴로 서 있었다. 자신에게 진의 시선이 닫자 세이시나는 '흥'하는 콧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러버렸다. 그 모습에 어깨를 으슥해 보인 진은 타다 남은 담뱃재를 털곤 네리아에게 메마른 미소를 지었다.
"뭐.. 그녀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과 같이 알려줄 것 같지 않아서 말이야"
진의 말에 네리아는 성직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일단 이곳에 있는 이들과 일행으로 보였지만 다른 일행과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네리아, 그녀는 망설였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 이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상식에 속한 부분을 먼저 깨내기로 마음먹었다.
크아아아아아아....
깜빡 잠들어 버렸습니다, ㅜ.ㅜ 오랜만이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 바람에.....
본래 어제 올렸어야 하는 분량은 본편4~5편과 외전 2~3편이었는데....
따라서 지금 올리는 것은 어제 연참용.....^^ 이것과는 달리 오늘 올려야 하는 글은 저녁이나......
문제 있음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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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쓸모없는 구덩이 공지 지웠으니 이전 편부터 보세요.^^ --------------------------------------------------------------------------
"일단 금서라는 것부터 말씀드리지요. 금서라는 것은 현재와 과거의 단절을 이어주는 미싱링크라 칭하는 존재입니다. 지식의 저장고, 잊혀진 과거의 유산, 지금 이 대지에 있는 지적 생물의 존재 이전의 과거 이야기, 현재로의 그것으로 알 수 없는 과거의 광대한 유산...그것이 금서이지요"
"웃기는 소리하지마! 고작 어둠의 지식을 뿐이잖아!"
네리아의 설명에 고개를 돌리고 있던 세이시나가 참지 못하고 참견했다. 비록 진에 대한 공포와 그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알려주기 싫은 마음에서 잠자코 있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바와 전혀 다른 내용이 그녀, 네리아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나서버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에 네리아는 기분 나쁘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흥. 어차피 자신들 이외에는 모두 이단으로 몰고 가는 너희들이 그 위대한 가치를 알 리가 없지!"
"뭐! 감히 신의 말씀을 어기는 너희야말로 이단이 아니고 뭐란 말이야! 모든 신들은 말씀하셨다! 어둠의 지식에 현혹되지 말라고!"
"감히 잊혀진 지식을 어둠으로 몰고 가지마!"
자신들이 믿는 것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상대방의 모습에 두 여자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불꽃이 허공에서 작렬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서로 상반된 이야기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진에게는 그녀들이 논쟁 따위는 단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만! 논쟁 따위는 나 없을 때하고...계속 말해보지"
손을 들어 둘을 말린 진은 네리아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잊도록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 세이시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가 나도록 몸을 돌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을 주시하는 일행 곁으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세력싸움으로 항상 당하는 입장에만 놓여졌던 네리아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희열을 느꼈다. 따라서 그런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놓은 진에 대한 호감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음음.. 금서라고 하면 책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지만 사실 딱히 책이라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아니 책의 형태로 이루어 진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지요. 하지만 책이라는 것은 지식을 담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 따라서 저희는 과거의 지식이 담겨진 그릇이라는 뜻에서 금서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잠깐! 저희라니? 너희는 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것인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말 '저희'라는 부분을 지적하자 네리아는 오히려 진이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을 하는 그녀로써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내심 진의 반응이 궁금해하고 있었다. 혹시 아는가? 쓸 때 없는 이야기를 꺼낸다고 잡아먹을지....
하지만 보아하니 아예 그런 쪽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평민이라 하면 아무래도 제안된 정보를 얻기 때문에 온갖 떠도는 소문에 잘못된 지식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금서의 존재 여부와 그 금서를 연구하는 집단을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각 교단의 수작에 의하여 악의 세력, 또는 신의의지에 반하는 반역자 등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했나?'
스스로 정확한 대답을 꺼내놓은 것을 모르는 그녀는 처음부터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그 정도 정보는 알고자 한다면 적은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문제였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조금 전 보셨을 테지만 교단이 있는 이들은 금서에 대하여 거의 광적일 적으로 부정하고 있지요. 그것은 교단과 긴밀한 협조를 나누고있는 각 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들로써도 지적욕구를 발산하는 사람들의 앞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당하게 꺼낼 문제가 아니니, 금서를 연구하는 이들은 서로 신변의 안정을 얻고 자신들이 하는 연구에 대한 교환을 위하여 집단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르라' 라고 하는 집단이지요"
진은 갑자기 낮 익은 단어가 나오자 손을 들어 다시 한번 그녀의 이어지는 말을 막았다.
'사르라, 사르라.... 분명 어디서 들었던 단어인데...'
턱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고민하던 진은 드디어 그 단어가 어디서 나왔는지 깨달았다. 바로 오르비아스라고 하는 드래곤이 말한 이방인의 집단과 같은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들과 지금 네리아가 말한 집단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진은 왠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 미안하네. 계속하게"
갑자기 말을 끊어서 인지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는 그녀에게 진은 계속 말하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처음 그들이 집단을 이루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살기 위해서죠.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상황은 변해갔습니다. 금서에 적혀있는 지식을 이용하는 것이죠. 가령 발굴된 마장기를 분해, 또는 재구성하는데 그들이 힘이 이용되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아닌 비밀입니다. 따라서 각 국의 왕실은 겉으로는 금서를 반대하며 사형에 처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들은 각 국의 연구 시설로 빼돌리고 있지요. 물론 교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교단은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있지 못하고 또한 많은 재정적 부분을 각 국이 지원하는 사실에 그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물론 교단은 발견하는 족족 고문을 하고 죽이는 행위를 빠지지 않고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
"응?"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자신의 말을 제지하는 진에게 네리아는 슬금슬금 짜증이 일이 났다. 혹시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인가? 그녀는 진이 한번 말을 끈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비록 처음과는 달리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호감도 있었지만 눈앞의 존재는 사람의 목숨 따위는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 살인마...더욱이 식인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초특급이지 아닌가!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자꾸 끊어지자 불편한 쪽은 자기 자신이었다.
"이번에는 무슨..."
"까아아아아아아∼∼"
...이번에는 물어볼 필요가 없어졌다. 한 순간 숲을 꿰뚫은 비명이 온 숲을 뒤덮은 것이었다. 그와 함께 울리는 미약한 대지 음.... 갑작스런 비명소리에 진을 제외한 일행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행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진은 벌써 자신들을 향하여 달려오는 그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누구보다 먼저 소리가 나는 방향을 주시했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조금 전에 들린 비명과 함께 육중한 무언가가 달리는 소리가 들을 수 있었다. 그에 잠시 진과 떨어져 있는 일행들이 모여들었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과 수단을 가지고 있는 이는 진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럭저럭 괜찮은 화력을 소유한 루미나와 키네라가 있었지만 이들의 주목적은 진의 호위였으니(짐에 가깝지만...) 나머지 이들은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두두두두두"
잠시 후 일행의 시야에는 달려오는, 아니 폭주하는 마차가 모습을 들어냈다. 그 기세는 무시무시하여 마치 전력으로 돌진하는 전차를 보는 것 같은 기묘한 박력을 뿜어대었다. 그런 마차의 뒤로는 역시 같은 기세를 뿜어대는 4명의 기사들이 뒤를 따랐다. 마치 전장에서 적의 선봉에 돌진하는 장군들과 같은 압력... 그런 존재들이 지금 자신들의 눈앞으로 달려오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길이 그리 넓지 않아 일행이 눈앞의 존재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숲으로 들어가야 만했다. 하지만 일행의 중심이 되는 진은 그저 눈앞이 마차를 묵묵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에 나머지 일행은 안절부절못하고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그런 일행을 보지 못하였는지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는지 달려오던 마치는 일행들을 들여 밖을 기세인지 조금도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그저 무표정으로 바라보던 진의 손이 품안으로 사라져 갔다.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쓰나?"
그리곤....
"탕!!"
여전히 끼어있는 소음기의 역할로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 온 숲을 진동하며 돌진하는 마차와 기마병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충분히 능가하고 남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리 따위가 아닌 그 결과... 진이 쏜 탄환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4마리의 말이 그는 마차의 가장 앞에 있는 말의 마리에 안착했다. 당연히 말의 두터운 두 개골을 파고드는 탄환은 그 안의 연한 뇌를 녹여버리곤 사방으로 잔해를 뿌렸다.
비틀....
진의 의하여 머리 자체가 날아가 버린 말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척 보기만 해도 전속력으로 마차를 끌던 말이 쓰러지자 주위에 있는 말들은 그 넘어지는 말에 치여 한순간 허공을 유영했다.
"쾅!!"
그리고 당연한 순서였지만 말들이 쓰러지자 그 뒤를 달리던 마차는 쓰러진 말들을 발판으로 마차의 밑바닥을 들어내고 한순간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4개의 바퀴가 허공에 들려진 것이다. 그리곤 잠시 허공을 유형하며 천천히 진의 머리 너머로 사라졌다. 그 엄청난 광경에 일행들의 시선은 그 마치를 따라 움직여졌다.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허공에서 천천히 회전을 하는 마차는 그녀들의 시선이 끝나는 지점, 일행의 등뒤로 엄청난 소리와 함께 부딪친 다음 거대한 수목 사이로 사라져 갔다. 진의 탄환의 흔적이 만들어 내는 광경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치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던 기사들 또한 마차가 말에 걸려 허공을 뜰 때 일어난 순간적인 뒤틀려짐에 충격을 받았는지 4명 중 2명이 자신의 말에서 퉁겨져 나가 길가에 아무렇게나 구겨진 자세로 쓰러져 버렸다.
"땡그랑..."
진이 쓴 단 한발의 탄환의 황금빛의 탄피가 허공을 날아 자신들의 발 밑에서 경쾌한 금속음을 울릴 때까지 일행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전력으로 달려오는 마차에 대하여 한치의 동요도 없는 침착함과 단 한발로 무시무시한 효과를 노리는 집중력, 그리고 확인하지도 않고 탄환부터 날리는 무모함까지....
"왜..왜 그 무기를 쓴 거야!!"
원리를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진이 들고 있는 금속질의 그것이 지금의 상황을 일으켰다는 것을 짐작한 세이시나는 쓰러진 마차를 잠시 바라보다 참지 못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조금 전 용병들이야 그들이 잘못이었으니 그녀로써는 할 말이 없었다. 더욱이 눈앞의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식인까지는 관대하게 용서(?)할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마차를 쏘다니....
"흥! 그럼 사람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마차를 멈추지 않은 저들이 죄가 없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녀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진이 아닌 네리아였다. 그녀는 진이 일으킨 문제보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신기한 물건에 한순간 넋을 잃었다. 마법도 아닌 것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마차를 끄는 말의 머리를 박살내다니... 세이시나야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었지만 네리아의 경우 많은 금서를 다루었고 또 그 지식의 일부분을 얻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지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진이 조금 전 일으킨 그것이 저 조그마한 물건에서였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처음 그녀는 마차의 소동으로 도망치려 했었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이 그녀의 발길을 붙잡아 버렸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저 금속질의 물건을 꼭 보고싶었다. 만지고 싶었다. 그런 강렬한 갈망에 휩싸인 그녀의 귓가에 울리는 세이시나의 목소리는 그녀의 성격을 건들고도 남았다. 역사적인(?) 순간을 망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혼잣말을 가장한 네리아의 모습에 세이시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고작 어둠의 지식이나 건드리는 사르라에서 잡일이나 하는 존재가 성녀라는 지위에 있는 자신에게 저리 당당하게 나서다니.... 평소와 같으면 그녀는 자신의 얼굴도 보지 못한, 아니 지하감옥에나 들어갔어야 할 존재였다. 아무리 자신의 진정한 지위를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망토 안에서 가끔씩 들어 나는 옷차림은 분명 고위 신관을 뜻하는 차림새였다. 그것을 알면서도 저리 당당하다니...
"너...너! 감히!"
"감히 뭐?"
마치 어린아이의 투정을 들어준다는 모습의 네리아의 모습에 세이시나는 말문이 막혔다.
분했으리라...
그렇게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네리아는 속이 다 시원했다. 그녀가 이렇게 당차게 나가는 것은 믿는 것이 있어서였다. 바로 진.... 눈앞이 진이라는 아름다운 이는 자신에게 알고 싶어하는 것이 있었으니 자신의 안전은 어느 정도 책임져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무세아 교단의 성기사들의 손아귀에서 자신을 구출 해 줄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또한 조금 전의 모습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신관 나부랭이가 아니었다. 더욱이 가만히 관찰한 결과 그가 그녀보다 은연중 높아 보인 것 아닌가!
비록 처음의 만남은 좋지 못하였지만 한동안 이 일행에 빌붙어 여러 가지를 얻기로 마음먹은 네리아였다. 특히 진이 들고있는 총...
그녀도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도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사르라의 인원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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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쓸모없는 구덩이 난생 처음으로 적대적인(일방적이었지만) 존재에게 한 승리에 네리아의 콧대는 높아져만 갔고 그에 반하여 평소 무시했던 이에게 당한 세이시나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당장이라도 눈앞의 존재의 얼굴에 손톱자국이라도 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주위에 진이 있는 이상 그것도 힘든 일이었다. 서로 대조적인 모습의 둘을 바라보는 일행의 얼굴에는 재미있다는 표정들이 솟아 나왔지만 묵묵히 담배연기를 뿜어대던 진은 일행에게 신경 쓰지 않고 아직 남아있는 두 명의 기사에게 다가섰다. 그들은 자신들 일행이 다쳤다는 것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지 접근하는 진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점점 소리 높여 이제는 자신들이 속한 단체들까지 들먹이며 비방하는 둘을 가로막은 것은 키네라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세이시나는 아직 큰 마찰이 없는 키네라인지라 그녀의 중재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자국 물러섰다. 키네라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것도 그녀가 그렇게 물러서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녀가 가리는 곳은 남아있는 기사에게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서는 진의 모습을 향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먼저 물러선 세이시나의 패배였다. 하지만 자신보다 먼저 물러서는 세이시나에게 승리의 쾌감을 느끼던 네리아는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키네라와 루미나의 시선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당신도 야!' 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위를 소란스럽게 한 두 명의 존재를 침몰시킨 일행은 이제까지의 키득거리는 얼굴을 지우고 굳어진 얼굴로 진이 있는 곳을 주시하였다. 진을 바라보는 일행 중 세이시나의 경우 평소와 같이 진을 말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말 위에 있는 기사들과 진 사이에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소란스런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진은 그저 묵묵히 두 명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비록 그들이 마차를 몰지 않았으니 자신과 적대적이라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진은 그들과 싸우고 싶었다. 그들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느낀 강자의 눈.... 물론 실력 따위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 와서 눈앞의 존재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실력을 가진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사람. 종교도 좋고 자신의 정의도 좋았다. 단 하나의 마음으로 굳어진 이들... 강자! 그런 그들의 모습에 진은 평소와 같은 오만함 따위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속에는 조금전의 짜증이나 평소와 같은 나른함이 없어졌다. 대신 기분 좋은 미소만이 감돌뿐..... 매고 있는 가방을 내려놓고 망토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허리에 찬 검들, 그리고 두 자루의 총, 가득 탄환이 들어있는 탄창, 기타 여러 가지 종류의 유탄... 저 조그마한 몸집에 뭐가 그리 많은지 진이 꺼내놓은 짐들을 바라보는 일행은 그저 경악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가장 체력이 강한 존재가 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물론 지구인의 체력이 강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그가 내려놓은 짐을 바라보니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진의 평소 모습을 알고 있는 이들의 생각이었을 뿐 네리아는 드러난 진의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 전 까진 죽음의 공포나 식인에 대한 충격에 자세히 관찰할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제 3자의 입장,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보니 빛나는(?)진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일행이 무슨 생각을 하던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짐을 내려놓은 진은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자세를 잡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기사중 한 명의 말에서 내리곤 말안장에 매달아 놓은 검을 꺼내들었다. 그 모습에 진은 다시 한번 진한 미소를 지었다. 적이라 판단하자 일체의 말을 꺼내지 않은 그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더욱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의 몸은 강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강자는커녕 가냘픈 육체를 지닌,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미소년(?)이 아닌가? 그런 그의 모습에도 눈앞의 기사들은 그저 굳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눈앞의 존재를 경시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하나의 적수를 바라보는 눈빛! 이런 자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을...
처음으로 자세를 잡는 진의 모습에 일행들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두 눈으로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 고요한 침묵... 먼저 움직인 것은 기사 쪽 이었다. 그는 어설픈 도약이나 조심스런 접근은 보여주지 않았다. 기사가 선택한 것은 몸을 최대한 숙인 다음 초고속으로 전진하며 내지르는 칼날... 그의 몸놀림은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던 일행의 눈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쾌속이었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하체를 노리는 그의 행동에 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공중으로 피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노렸다는 듯이 지면과 가슴이 스칠 정도로 날카롭게 돌진하던 기사는 돌연 몸을 180도 회전하였다. 그리곤 그 탄력을 그대로 검에 실어 공중에 있는 진에게 날렸다. 공중에는 방향을 바꿀 수단이 없는 법, 쏘아져 오는 검에서는 단 한치의 망설임도 담겨있지 않았다.
쾌속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진은 원을 그리며 왼손을 뻗었다. 그런 진의 모습에 검을 날린 기사는 승리를 확신하였는지 미약하지만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만 그의 검에는 청색의 빛이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마나소드를 손으로 막을 수 있는 자는 검의 극한에 이르렀다는 소드마스터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정설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검에 손을 내민 그에게서 피 분수를 기대했다. 하지만....
"깡!"
검과 사람의 팔이 닫는 순간 들리는 강철 음에 미소를 지우고 굳은 표정을 지었던 기사는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가 자신의 얼굴을 뒤덮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 쏘아진 검을 왼손의 우수로 날려버린 진의 몸이 마치 독수리처럼 그의 몸을 감싸안은 것이다. 하지만 진이 그를 강자로 인정하는 것처럼 기사는 당황하지 않고 지상에 스칠 것 같은 상황에서 팔꿈치고 대지를 박찬 다음 그 반동을 이용하여 몸을 거꾸로 세웠다. 그 발끝의 목표는 진의 몸, 모든 상황을 냉철하게 볼 수 있는 자만이 낼 수 있는 쾌속의 몸놀림이었다. 그에 독수리처럼 내리꽂는 자세에서 한바퀴를 회전한 진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기사의 두 다리의 측면을 내리쳤다. 물구나무를 서 진을 공격하려던 기사의 몸은 한순간 공중에 있었으니 진이 그의 다리를 공격하자 더 이상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였는지 몇 번의 공중제비를 통하여 진과의 거리를 넓혔다.
"보...보였어?"
"....아니..."
눈 깜짝 할 시간에 일어난 공방에 일행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순수한 육체적인 능력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구경을 하는 루미나는 혹시나 하는 바램으로 키네라에게 물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녀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일행들이 눈앞의 광경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중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들은 다름 아닌 세이시나와 네리아였다. 둘은 조금전의 설전이나 서로 적대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잊었는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가 막히다 는 표정을 지었다. 백 번 양보해서 이제까지 자신들의 예상을 깨던 진이었으니 지금의 모습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진과 대등한 모습을 보여주는 기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사의 능력을 월들이 상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기사가 아닌 격투가의 몸놀림처럼 보이는 그것은 대 제국의 근위기사를 능가하는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특히 검을 던지는 모습에는 할말을 잊었다. 기사라는 종속들은 자신의 검을 몸의 일부라도 생각하며 어떤 일이 있다 하더러도 검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유리하다고 판단하자 주저 없이 검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이 경악을 하던 말던 진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힘을 꺼내지 않았지만 육체적인 힘만으로도 충분히 대적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자 오랜만에 피가 끓어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기분 좋음은 길게 느낄 수 없었다.
그의 기척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마차에 친 나머지 두 명의 기사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그에 서서히 눈앞의 존재와 관계를 끊고 다음 상대를 맞이해야 한다는 판단에 두 주먹 가득 힘을 주었다. 뭐 진의 진짜 힘을 발휘한다면 4명이던 40명이던 상관은 없었지만 자신을 감시하는 몇몇의 시선에 본래의 힘을 끌어 쓸 수는 없었다. 또한 지금의 몸 상태를 보아서는 힘을 끌어올릴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과거의 인과율에 따라 제약을 받은 그로써는 본래의 힘이라는 것은 내치기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여전히 자신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눈앞의 기사에게 그 사기와 같은 힘 따위는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진의 심정이었다. 오랜만에 자신의 피를 끓어 올린 존재에게 그만큼의 예를 갖추고 싶었다.
"간다.."
이번에 돌진한 이는 진이었다, 그가 왔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가야 한다는 어찌 보면 아이 같은 생각에서였다.
"쾅!!"
진은 과거 세이시나와 처음 만났을 때 보였던 고속 돌진을 선보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흙먼지가 진이 있던 자리에서 하늘높이 솟아올랐다. 갑작스런 폭음에 일행의 시선이 하늘높이 떠오르는 흙더미들에 가 있을 때 진의 몸은 벌써 눈앞의 기사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그 무식하리 만큼 충격적인 돌진에 기사의 얼굴이 당혹함에 물들 때 돌진의 축이 되는 오른 발이 약간 벌어진 기사의 발 아래로 침입했다. 그와 함께 뒤따르는 진의 어깨....
"퍽!!"
기사의 가슴을 보호해 주고있는 하프 플레이트(Half plate)가 진의 어깨의 충격을 이지고 못하고 구겨지는 것을 능가하여 조각조각 터져 버렸다, 물론 그 뒤를 따르는 기사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바다....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깨의 공격이 성공하자 그 뒤를 따르는 진의 연속기가 터졌다.
충격으로 상체가 노출되자 그대로 축을 왼발로 이동하여 팔꿈치로 내려찍기, 그 엄청난 공격에 기사의 몸은 뒤로 날아가는 것을 관두고 지면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격을 다 해소하지 못하고 뼈 부셔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통겨 올라왔다. 그런 그를 맞이하는 것은 내려친 팔꿈치의 반발력을 이용하여 몸을 회전하여 발뒤꿈치로 내려찍기.....
"쾅!!!"
마치 포격을 하는 것 같은 엄청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기사의 몸은 다시 한번 대지와 접촉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다르게 지면에 닫는 즉시 날 달걀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그 잔해를 뿌려댔다.
한순간의 고요....
일행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기나 기타의 수단이 아닌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사람을 조각 낸 것에 공포를 넘어서 경외감까지 느꼈다, 그만큼 진의 몸은 강했고 빠르며 정확하고 잔인했다. 특히 그의 입가에 걸린 시원스럽게 까지 한 미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웠다.
진각에 가까운 내려찍기에 조각난 시체를 말없이 바라보던 진은 눈앞에 있는 기사와 서서히 뒤로 접근하는 나머지 기사에게 신경을 쏟았다. 그들의 협공을 하려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 진은 옳은 결정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겁하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다.
처음 기사와의 전투에서 남은 이들이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한 두 사람의 힘으로는 힘들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즉 한 명이 희생하여 적의 장단점을 뒤에 있을 아군에게 알려 주었고 그의 모습에 기사는 혼자 힘으로는 힘들다는 판단에 뒤에 서서히 몸을 추스르는 기사들을 기다린다. 아군을 희생하는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비록 그 목표가 진이 아니라는 단서가 붙지만.....
문제 있음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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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쓸모없는 구덩이 "사..주인님! 뒤!!"
전투의 신호는 등을 돌린 진의 뒤로 서서히 접근하는 기사에 기겁하여 소리친 루미나의 비명 소리로 시작되었다.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이미 이야기라도 되었던 것처럼 진을 3방향으로 감싸며 도약한 것이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허공을 건너뛰어 달려든 그들은 진을 향하여 머리위로 들어 올린 검을 내리쳤다. 그런 그들의 검에는 은은한 청색의 빛이 물들어있었다. 3면을 완벽하게 자리잡은 그들의 사이에는 어떤 틈 따위도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 하지만 죽음을 부르짖는 그들의 칼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는 진의 눈은 지극히 차가웠다.
진이 움직인 것은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을 뿌리는 검이 자신의 목에 거의 접근했을 때였다. 순간 몸을 낮추곤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곤 몸을 회전하는 것과 동시에 오른 발을 뻗어 대지를 내리쳤다. 진의 행동에 무시무시한 회전력이 걸린 다리가 대지를 때리는 순간 엄청난 흙먼지들이 마치 커튼을 친 것처럼 허공으로 뿜어져 올라갔다.
그런 진의 갑작스런 행동에 순간적으로 그의 신형을 놓친 기사들 중 한명은 갑자기 자신을 사방으로 압박하는 살기를 느끼곤 자신도 모르게 검을 버리곤 두 다리를 이용하여 다른 두 명의 기사들의 몸을 차버렸다. 그 반동에 나머지 기사들은 무사히 몸을 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두 명의 동료를 살린 기사는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한줄기 빛에 온몸으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빛으로 만들어 진 가는 실핏줄에서 시작된 그것은 서서히 온몸을 관통하였고 내부압력을 참지 못한 혈액들이 그 실핏줄을 따라 허공으로 비산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죽음이라는 존재를....
"털썩...털썩"
생명은 본다 하나였으나 대지에 떨어진 것은 단지 두 조각의 고깃덩이일 뿐이다. 동료의 희생에 목숨을 살린 2명의 기사는 자신의 검을 부여잡고 진이 있는 방향을 주시하였다. 흙먼지로 인하여 시야를 가렸기 때문에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정적이 시간이 흘렀고 잠시 후 서서히 흙먼지들이 사라진 곳에 진의 모습이 들어 났다. 대지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몸을 숙인 그의 온몸에는 흙먼지들이 잔뜩 묻어 있었으며 탐스럽던 긴 흙발은 허공을 비산한 핏방울에 흙먼지들이 묻어 지저분하기 이를 때 없었다. 하지만 그 흙투성이 사이에는 빛나는 눈빛은 고요한 호수였다.
"봐..봤습니까?"
눈앞이 장면이 잔인하다거나 지저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인간을 능가하는 현상에 어이가 없을 뿐....냉정하게 생각한보면 충격적이고 잔인한 광경일 것이지만 자신들의 상상을 능가하는 지금의 진의 모습에는 '그따위 것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 라는 것이 일행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아니.. 그보다 저 사람을 두 조각으로 만든 것은 뭐지요?
세르피의 질문에 아르는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저 정도로 강하다니... 지구인이 유전자 조작을 하여 타 종족의 그것을 능가하지만 눈앞의 모습까지는 아니었다. 비록 진의 이전까지의 행동이 생명의 그것을 능가했다지만 그것은 정신적인 부분.... 정신이 생명의 그것을 능가했다고 육체까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조금 전 진이 보여준 생명의 한계를 뛰어넘은 움직임은 자신들이 모르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의 자신감은 짊어지고 온 무기가 아닌 스스로의 육체일지도 모르겠군..."
"앞으로 어쩌지요?"
"글세...일단 지금으로는 지켜보는 수밖에.."
씁쓸한 음성의 아르에게 세르피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들과 달리 주위에 있는 이들은 진의 모습에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4명의 2명이 힘없이 죽어가고 남아 있는 이는 단 2명... 하지만 그들의 눈은 긴장감이나 공포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고요한 심연을 연상하게 하는 냉정함만이 감돌 뿐..... 진은 그것은 기다림이란 것을 느꼈고 먼저 움직이는 것을 포기한 듯한 그들의 모습에 오른손을 허공에 뿌렸다. 그러자 점점이 묻어 있는 핏방울들이 미끄러지며 허공으로 사라져갔다. 조금 전 기사를 두 동강 낸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수도였던 것이다.
3명의 시야를 진각을 응용한 발차기로 시야를 가린 다음 살기를 강하게 뿜어대어 그들을 스스로 물러서게 한 진은 그 다음으로 아직 남아있던 회전력을 오른손의 수도에 쏟아 부어주었다. 그의 행동으로 회전하는 가공할 속도는 파괴력만이 아닌 날카로움도 증가시켜주었고 사람의 손으로 사람을 자르는 있을 수 없는 묘기를 만들어 냈다.
"툭툭..."
가벼운 손놀림으로 자신의 옷에 뭍은 먼지들을 털어 내며 진은 허점을 들어냈다. 그들이 움직일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단단히 당한 것에 신중함을 들어내는 그들은 허점 투성이의 진의 모습에 그저 경계의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진이 움직여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겠다는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에 진은 나직이 한숨을 쉬며 곁눈질로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진이 일행을 바라본 이유는 그녀들이 아닌 그녀의 너머에 있는 존재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이들인데 시시한 수법으로 움직인다면 예의가 아니겠는데....'
생각 같아서면 자신이 지금 펼칠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아 붇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자중해야(?) 하는 시기... 그에 서서히 걸음을 옮긴 곳은 바로 가방과 망토를 내로 놓은 자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신을 집중하였지만 역시나... 그들은 수많은 허점을 노출하는 그의 모습에 오히려 더 강한 경각심을 품었다. 그에 안타까운(?) 한숨을 쉰 진은 자신의 사정상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단번에 끝내려고 마음먹었다. 그런 그의 손에 들려진 것은 바로 초진동 나이프...
"일격에 끝을 내주마!"
◆ "아야아아아아"
정신을 차린 에레나 번 파이스 공주가 맨 먼저 한 행동은 혹이 난 자신의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는 거였다. 너무나 아픈 나머지 머리가 터져 버렸나? 라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따끔한 아픔만이 있을 뿐이었다. 다행이다... 라고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녀에게 확인의 대가로 돌아온 것은 한 방울의 눈물.....
"크...쓰라려.. 키이 살아있어?"
구겨진 휴지 마냥 마차 한 구석에 처박혀 있던 에레나는 자신의 몸이 일단 무사하다는 것을 깨닫곤 자신의 호위 기사의 우두머리를 불었다. 자신의 상태가 무사하다는 것뿐이지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온 몸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즉 그녀가 키이를 부른 것도 자신을 구해달라는 외침이다. 그이 미약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기울어진 마차 저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공..아..아가씨 괜찮습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자신의 무사함을 알리기에는 충분하였기에 안도의 한숨을 쉰 에레나는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마차의 문을 바라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 자식.... 설마 진짜 추격자를 보내다니.... 찔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야.."
"그..그런가 봅니다"
마차 밖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에레나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설마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들이 마을을 떠나자 마자 달려온 추격자들은 정말 무자비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들고 돌진해 오는 기사를 바라보며 그들이 자작의 명령을 받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조금 전 자작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의 뒤에 시립 해 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 그녀는 그 모습에 긴장하지 않았다. 그녀로써는 추격자를 예상하였고 금화나 몇 게 쥐어주면 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검을 날리다니....
허접한 용병이라도 된다면 자신의 호위 기사로 묵사발을 내버렸을 것이지만 단 칼에 마차의 지붕과 벽을 지탱하는 기둥을 잘라버리는 그들의 단호함과 호기심에 슬쩍 바라본 잘려진 면이 매끄러운 것을 보곤 혼내주기는 커녕 마차를 몰고 있는 기사에게 전력을 다해 도망치라는 소리밖에 할 말이 없었다. 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그녀로써도 청색의 빛과 함께 매끄럽게 잘려진 면은 보통의 기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녀의 호위기사인 키이도 하지 못하는 고난도의 기술로써 에라나, 그녀의 판단은 적절했다. 아직 마나 소드를 불완전하게 시전 하는 키이로써는 정신이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인 말 위에서도 마나소드를 능숙하게 사용해 보이는 기사의 상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나머지 3명의 기사들의 실력이 그보다 떨어진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확실한 것은 키이를 제외한 그녀의 나머지 3명의 호위기사는 키이 그녀보다 떨어지는 것뿐...
사족이지만 왕족인 그녀가 실력이 딸린 여기사를 호위기사로 삼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보통 자신을 지켜야 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대체적으로 2가지, 용병을 사던지 아니면 자신이 직접 기사를 동원하는 방법... 문제는 호위대상이 남자라면 상관없지만 대상이 여자라면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단 남자와 다른 신체적인 특징 때문에 호위의 허점이 발생하고(목욕, 수면, 생리현상등등) 간혹...아주 간혹(?)이지만 용병들이 덮치는 상황도 간간이 일어났던 것이다.
기사의 경우 용병의 그런 경우보다는 안전했다. 하지만 이것에도 이것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었으니.... 대상자를 가까이 모시는 기사의 경우 서로 눈이 맞아 도망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여자, 특히 귀족가의 여식은 상품가치가 매우 높은 물건으로 혼인을 통하여 타 가문과 관계를 강하게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순결이나 결혼에 방해가 될만한 소문 같은 경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 한마디로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재력이 되는 가문들은 그런 문제의 소지를 처음부터 아예 없애기 위하여 실력이 떨어져도 여기사를 동원하는 실정이었다.
"아저씨라고 불러준 이런 아름다운 소녀에게 이런 무식한 선물을 안겨주다니...그 뚱땡이 정말 너무하네.."
고개를 최대한 젖히며 외치는 에레나의 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이제 뒤집어진 마차의 문을 부수고 자신들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기사들이 들이닥치리라...(그녀는 마차가 뒤집혀 진 것을 기사들의 소행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
"......"
".......뭐야! 왜 아무런 반응이 없어!"
한참을 기다리다 지친 에레나는 자신들을 잡아가는 이들이 등장하지 않자 오히려 짜증을 부렸다. 어떻게 마차에서 벗어나야 기사들에 뇌물을 집어주고 입을 맞추던지 아님 개같이 끌려가 알 수 없는 꿍꿍이속을 보인 자작에게 뭔 일(?)을 당하던지 할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대한 반응이 없자 어이가 없었다.
지금 술이 덜 깬 상태라 문맥이나 틀린 오타들이 득실거릴 것입니다. 수정을 못했거든요..
헤롱헤롱[email protected]@ 양해에 주세요.....^^
나가야 하는 시간이라 나머지는 저녁에 올립니다, 문제 있음 리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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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쓸모없는 구덩이 "설마 그냥 갔나?"
혼자 말이지만 역시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기 때문에 에레나는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의 왕녀의 목숨을 건드리는 굉장한 사건을 일으킨 일당이 그냥 갔다고 한다면 강아지도 웃으리라...
'강아지?... 강아지라...그러고 보니 토토는 잘 있나?'
자신의 혼잣말에 스스로 샛길로 빠진 그녀는 지금쯤 자신의 유모가 돌보고 있을, 토토라는 이름이 붙은 애완견을 생각했다. 강아지 주제에 항상 먹을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뚱뚱한 몸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항상 유모는 그 살을 빼버릴 것이라 단단히 벼리고 있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유모에게 쫓기는 자신의 애완견의 모습에 '풋'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 녀석은 어지간히 귀여움을 받고 자라 살을 뺄 생각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
"이런 쌍!! 잡아가려면 잡아 갈 것이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변태인가! 반응을 보이란 말이야! 반응을!!!"
자신의 귀여운 애완용 강아지를 상상하며 한동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현실도피를 감행했던 에레나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귀족의 아가씨의 입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단어를 내뱉곤 여전히 구겨진 자세에서 허공을 향해 미끈한 두 다리를 마구마구 굴렸다. 그녀가 아무리 총명하다 하더라도 근본은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것이다.
혼자 화를 삭히지 못하고 허공에 상스러운 말을 내뱉고 있는 에레나의 모습을 사정상 불수 없던 키이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저런 모욕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호위기사로써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으로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에레나가 그녀에게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하여도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불평 불만은 키이 그녀의 가슴을 죄어왔다. 더욱이 그녀를 참담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것은 지금 자신의 몸 상태였다.
움직여지지 않은 손을 가까스로 자신의 시야에 닫는 곳으로 가져가자 본래의 살색이 아닌 끈적끈적한 붉은 색의 빛이 그녀의 시야를 가득 매웠다. 자신의 본래 임무를 망각하고 허공을 유영한 마차가 그 대가로 땅에 떨어질 때 부셔진 파편이 그녀의 아랫배를 찌른 것이다. 다행이 내장까지는 닫진 않았지만 상당양의 피를 흘린 뒤라 정신이 가물가물해 지고 있는 상황.... 보통의 기사들이 입는 하프 플레이트라면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었겠지만 그녀는 체력이 떨어지는 여기사. 따라서 착용한 것은 비록 고급의 와이번 가죽으로 만들어졌다지만 방어력이 떨어지는 레더 아머였던 것이다. 질긴 와이번 가죽이라 해도 온몸을 실은 체중 전체로 파편과 부딪쳤으니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상처 때문에 그녀가 형편없이 한쪽 구석에 구겨진 에레나를 도와주지 못하고 있은 것이다. 상처를 입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에레나, 그녀는 겉모습으로는 활달하며 거침이 없었지만 내면은 의외로 유리같이 약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키이 그녀가 다친 것이 에레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자신의 억지 가득한 의견에 따르다 다친 셈이니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으리라....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키이는 자신의 모습을 될 수 있으면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다.
"윽.."
다행이 마차 안에 있는 이는 에레나와 나머지 두 명의 기사 뿐, 더욱이 그녀들은 키이와 반대편에 있는 지라 그런 그녀의 모습을 불 수 없었다. 아니 그녀는 에레나의 목소리에도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나무지 2명의 기사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심을 하며 그녀는 조심스레 아랫배를 찌른 파편을 빠른 속도로 잡아 뺐다. 하지만 무심결에 나온 미약한 신음 소리에 스스로 놀란 그녀는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숨죽이며 에레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손바닥으로 뭉클뭉클 피가 솟아 나오는 상처를 손바닥으로 막았다.
사실 이런 상처를 입었을 때는 성급하게 파편을 제거하지 말았어야 했다. 잘못 건들었을 경우 상처가 벌어져 더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식으론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반대의 행동을 한 그녀의 눈빛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물론 망설임 없이 한 행동의 결과가 반드시 좋은 쪽으로 귀결되는 법은 없는가 보다. 상처를 손바닥으로 막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엄청난 피가 솟아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흘린 피와 파편을 제거할 때 벌어진 상처로 인하여 키이 그녀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상태를 보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자작의 추격자에게 잡혀 자작을 만나는 것보다 출혈로 염라대왕을 만날 가능성이 더 높으리라....
하지만 그런 상처에 신경 쓰지 않은 그녀는 서둘러 품속에서 녹색 빛의 액체가 들려있는 조그마한 병을 꺼내 들었다.
'...비싼 건데...'
잠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였지만 그녀는 결심한 듯 이를 악물었다. 어린 소녀의 마음에 상처를 줄 바에야 돈 몇 푼(?) 쓰는 것이 나았다. 병 끝을 살짝 구부리자 '픽'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병이 개봉됐다. 그녀가 들고 있는 병은 트롤의 피를 정제하여 만들어진 포션이라는 회복약품 중의 하나였다. 그리 낮지 않은 기사의 한달 급료를 통제로 털어야만 고작 한 병을 살수 있는 고급품 중의 고급품인 것이다.
고금의 진리인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한다고 했던가! 조심스런 기울어짐에 따라 약간의 점성이 있는 액체가 그녀의 상처부위에 떨어지자 조그마한 기포들이 발생하며 눈에 보일 정도의 빠른 속도로 파편에 의한 상처가 아물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 반작용도 만만치 않아 이를 악문 키이의 얼굴에는 고통에 의한 식은땀들이 턱을 타고 피의 웅덩이에 떨어졌다. 그래도 그녀가 사용하는 포션이 고급이라 이 정도로 끝났지만 하급품질의 포션을 썼다면 그녀는 지금쯤 고통에 기절해 있을 것이리라...
"젠장.."
한순간이었지만 끔직한 고통에 시달린 키이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거의 사라져 가는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다 다시 한번 포션을 뿌렸다. 한번 개봉한 포션은 공기 중에 노출되면 급격하게 효력을 잃어버리니 아낄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도 남은 포션은 마셔버렸다. 혹시나 내상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그럴 경우 마시는 쪽이 훨씬더 도움이 되었다.
물론 다 마셔버리기 전 잠시 일행을 위하여 남겨놓을 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일행에서 가장 전투력이 높은 이가 바로 자신이었으니 어설프게 몇 사람 나누어 마시는 것보다 전력이 강한 한사람의 확실한 회복이 에레나를 위해서 더 낫다고 판단했다. 뭐 고통에 짓이겨진 그녀의 귓가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거장 걱정했던 에레나의 혼잣말로 보아 그녀의 무사함은 확실했으니...
"으윽.."
상처에 바른 포션으로 인하여 상처 밖으로 나와 서서히 굳어가던 피들이 다시 활력을 얻었는지 가볍게 흘러내렸다. 그것을 손으로 대충 털어 낸 키이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순간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갈비뼈가 나간 것이다. 마셔버린 포션의 영향으로 이제 조금 있으면 나을 태지만 지금 당장은 행동에 방해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조금위험한가?"
나직이 중얼거린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세웠다. 마차의 문이 위쪽으로 나 있은 것으로 보아 지금의 마치는 옆으로 기울어진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릴 겸 마차의 현재 상황을 확인한 그녀는 이번에는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사두마차답게 널찍한 모습이었지만 내부를 장식하는 수많은 장식품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어 난잡한 느낌을 주었다. 피를 너무 흘려 천장이 돌아가는 경험을 한 끝에 키이는 그 수많은 장식품에서 다리만 노출되어 있는 에레나를 마차의 한쪽 구석에서 발견했다.
그 모습에 키이는 지금의 상황도 잊고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 깔끔했던 드레스는 이리저리 구겨지고 뒤집어진 치마 너머로 속옷이 훤히 드러나 있었으며 트윈 테일의 머리는 마구 헝클어져 있어 평민의 어느 아이들처럼 밖에서 한바탕 싸움을 하고 온 모습이었던 것이다. 평소 나이에 걸맞지 않았던 그녀가 지금에서야 본래 나이와 비슷해 보였다.
"......어이! 미친 사람 마냥 웃지만 말고 좀 구해주지 그래?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만큼 한심한 사람도 없으니까"
뚱한 표정으로 마차의 잔해들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주인을 보며 키이는 키득거렸다.
"어머! 그럼 마치 제가 자신의 할 일을 하지 않은 못 쓸 사람 같잖아요"
살짝 빠져나온 에레나의 손을 잡아끌면서 하는 그녀의 말에 막 쓰레기 더미에서 빠져나오고 있던 에레나는 타박상으로 욱신거리는 자신의 연약한 몸을 바라보다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 기사의 몸값이 매우 높은 모양이지?"
"왜요 자르시게요?"
"....되었어! 그보다 다른 이들은 어때?"
키이의 복부에 나 있는 레더 아머의 상처를 보자 에레나는 그만 하자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 레더 아머의 상처 사이로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에 그녀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소녀가 자신의 상처를 보았단 것을 느낀 키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녀의 가녀린 목을 감싸안았다.
"걱정해 주시지 않아도 돼요. 이미 치료했으니까요."
"............"
"대신 제 월급의 한달 분의 넘는 비싸 디 비싼 포션을 사용하였으니 그것에 대하여 약간의 금전적인 보상만 해 주신다면...."
"퍽!!"
"이그!! 잘나가다 금전적인 이야기가 왜 나와!! 감동하고 있는 와중에 분위기 파악하지도 못해!!"
키이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치는 에레나는 신경질 적으로 자신의 목을 감싸안은 그녀의 손을 풀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키이는 키득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더욱 더 힘을 주었다. 에레나의 신경질 적인 반응은 진심이 아닌 쑥스러워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전 괜찮아요"
속삭이는 키이의 말에 에레나는 뚱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그녀의 뺨에 비비적거리던 키이는 아직도 반응이 없는 밖의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이상하지요?"
".....좀이 아니라고 좀이!"
자신이 걱정할 것을 염려해준 키이가 고맙기는 하였지만 어린애 취급을 하자 에레나는 두 볼 가득 공기를 불어넣곤 뚱한 목소리로 나직이 외쳤다. 그리곤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두 명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괜찮을까?"
"걱정 마세요. 지금은 정신을 잃은 것뿐입니다. 기사가 되어 가지고 이 정도로 다칠 리가 없으니까요."
"그녀는?"
에레나가 말한 그녀가 마차를 몰던 여기사를 것을 짐작한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비록 왕족이고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한 면이 있지만 주위의 다치는 이들을 나무나 싫어하는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물론 자신의 주위사람에 한해서였지만..
"그녀도 기사입니다, 좁은 마차안도 아닌 밖입니다, 저희보다 더 안전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정도로 다친다면 기사도 아니지요"
".........그럼 상당히 심하게 다친 넌 뭐야?"
단호한 그녀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마치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짖는 에레나의 말에 키이는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이제 그만 이곳에서 나가지요? 아무래도 뭔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이 가시지 않았던 에레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에게 '피식' 하고 웃어주곤 기타 잡다한 쓰레기를 발판으로 하여 뒤집어지는 충격으로 뒤틀어진 문 사이로 고개를 빼곰 하고 내밀었다. 그 모습에 키이는 기겁을 하며 말렸지만 에레나는 그저 손사래를 쳤을 뿐이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지만 추격자들의 목적이 자신이라면 최소한 에레나 자신은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키이를 먼저 보냈다가 단칼에 목을 잘리는 광경 따위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생애에서 최고의 아름다운 장면을....
늦어서 죄송합니다. 요즘 제정신이 아니라...^^ 쬐∼∼끔 있다 다음 편 올립니다, 문제 있음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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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쓸모없는 구덩이 진은 들고 있는 초진동 나이프를 작동시켰다. 그에 초진동 나이프 특유의 진동음이 주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마치 과거 전설의 명검처럼.....피를 부르는 광시곡의 첫 울림인 것이다.
"처벅... 처벅"
그렇게 한 손으로 검을 든 진은 무방비의 자세와 함께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긴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기사들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잠시 그 자리에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다 돌연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에 진의 모습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일행은 밑을 수 없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진의 몸에 피아노 줄이라도 달려있는 것처럼 밑을 수 없이 완만한 속도도 허공을 밟는 모습을...
진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순간 기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돌진했다. 그들의 눈에는 기이하게 상승하는 진의 몸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목표가 허공에 떴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반격이라면 모를까 이미 단단히 준비를 끝낸 이에게 공격하는 쪽이 허공으로 도약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훈련으로 다져진 그들의 본능은 필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드러나자 침착해라 울부짖는 의지를 물어뜯고 지체 없이 살육이라는 스위치를 발동해 버렸다. 진 특유의 폭발적인 돌진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보통 인간의 그것을 능가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수많은 연습을 한 것처럼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타타타타"
아직 진의 몸은 상승하고 있는 와중.....내지를 때마다 마치 기관총과 같은 소리를 내며 간발의 차이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착한 기사 중 먼저 온 이는 검을 두 손으로 잡고 몸을 최대한 숙였다. 그에 뒤를 따르던 나머지 한 명의 기사는 몸을 숙인 앞의 기사의 등을 밟고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발판이 된 기사는 다른 기사가 밟는 직전 단번에 허리를 펴 그의 도약을 도왔다. 발판이 된 기사의 도움으로 목표와 같은 눈높이를 가지게 된 그는 검을 자신의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다음 필사의 각오로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지상에 남아있던 기사도 자세를 잡으며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자신의 동료가 적의 허점을 만든다면 지체 없이 달려들 것이리라....
다른 이들이 보았을 때 스스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빠진 것 같아 보이던 진은 자신의 머리를 향해 오는 검을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허공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극강의 아름다움.
진의 모습을 보고 있던 일행들은 진의 손에 쥐어진 검이 부드러운 동작으로 하늘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검이 허공에서 궤도를 바꿀 때마다 만들어내는 검은 분명히 착각이 아니었다. 진의 손에 쥐어진 검이 허공을 수놓을 때마다 그의 궤도를 따라 시퍼런 서슬을 간직한 검이 만들어 진 것이다.
흔들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파도치는 진의 육체의 그것은 아름답다 를 따나 요염하기까지 했다. 더 이상 그는 흙투성이의 지저분한 모습이 아닌 초월하는 아름다움... 바람에 휘날리는 사람 키를 능가하는 흙발의 머리카락과 그 끝에 있는 요염함 얼굴, 봄바람과 같은 부드러운 손놀림에 밝은 햇살에 반사되는 수많은 검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표현하는 그의 모습에 일행, 특히 세이시나는 이제까지의 그가 일으킨 살육에 대한 혐오감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다른 일행도 가지고 있던 악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붉어진 얼굴뿐...
진의 정면과 밑에서 그를 바라보는 기사들의 심정은 그녀들과 달리 참담함을 느꼈다. 비록 자신들의 경지가 낮아 그가 일으킨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사이사이에 녹아 있는 검의 경지는 자신들의 그것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이제까지의 딱딱한 얼굴이 아닌 연한 미소가 곁들어져 있었다. 저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보았다. 이제까지 보았던 검술 중 그 최고봉을....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다고....
"간다!"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존재는 행성의 중력에 반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진 또한 해당되는 이야기... 서서히 지상에 떨어지며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기사를 바라보며 진은 마지막 예를 다하기 위하여 목청껏 소리쳤다.
"환(環)! 진살위검참!(眞煞僞劍斬)"
진의 외침과 동시에 그를 감싸고 있던 수많은 검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것은 환상이나 마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뻗어나간 검들은 물질에 닫는 순간 질량을 가진 진짜 검처럼 모든 것을 잘라내었다. 바위도, 대지도, 나무도. 검도... 그리고 사람도.....
진의 정면과 밑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기사들에게 대부분 날아간 환상의 검들은 미쳐 반응하기도 전에 그들의 몸에 스며들다 대지로 사라져 들어갔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 하지만 허공에서 드디어 지상으로 안착한 진이 품안의 담배케이스를 꺼내는 순간 진을 목표로 도약했던 기사가 굳어진 얼굴로 대지에 떨어졌다, 그와 함께 조각조각 산산이 부셔지는 그의 육체.... 마치 석고상을 떨어뜨린 것처럼 기사의 몸은 붉은 피의 비를 대지에 선사하며 사라져 갔다. 그와 동시에 지상에 남아있었던 굳은 표정을 짖고 있던 기사의 머리에도 한줄기 핏방울이 떨어졌다. 그 핏방울은 천천히 머리에서 턱을 타고 대지 너머로 흔적도 없이 스며들었다.
진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장면을 보지도 않고 물고 있는 담배를 빨아 불을 붙인 다음 들고 있는 초진동 나이프를 흔들었다. 그러자 초진동 나이프는 그 이름대로 천천히 줄어 들어갔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아직 두 다리로 대지에 서있던 기사의 온몸에서 실핏줄들이 만들어 졌다. 그와 함께 그 실을 타고 흘러내리는 수많은 핏방울.... 그리고 한순간 허물어지는 육체.....
조금 전 진의 일으킨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산산이 조각나는 기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파고까지 아름다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 마차의 벌어진 너머로 그 광경을 바라본 에레나는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곤 넋을 잃었다. 자신이 조금 전 본 아름다움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쿡쿡"
그녀의 눈에는 조각난 시체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오로지 조금 전의 아름다움의 창시자만을 바라본 뿐...
"쿡쿡"
에레나 그녀는 직감했다, 눈앞의 존재가 바로 자작이 찾았건 그 여자..아니 남자라는 것을.. 자신의 본모습을 모두 보인 그를 바라보자 자작이 착각한 이유를 할 수 있었다.
"쿡쿡.."
"...........정말!!!"
한창 황홀한 모습에 취해있던 그녀를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한 것은 에레나, 그녀의 넋 나간 얼굴에 궁금증이 생긴 키이의 손가락이었다. 그에 조각난 환상의 파편을 아쉬워하며 신경질 적으로 자신을 찌르는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뭐야!! 지금 한창 보고있는데!!"
"장시간 그렇게 고개를 내 놓고 있다면 위험합니다. 제가 밖으로 나갈 태니 에레나님은 상황을 보아 도망가던지 아니면 투항하세요"
조금 전 키득거리는 얼굴과는 달리 비장감 가득한 키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화를 내려던 에레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언 듯 바라본 것뿐이지만 시야를 매웠건 것은 4구의 핏덩어리들... 그 외 2명의 기사를 단번에 죽음의 강으로 보냈던 이와 같은 일행으로 보이는 6명의 사람들. 상황은 끝난 것이리라. 그들의 죽음으로써 자신들이 마차에게 한참을 기다렸을 때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저기..... 다 끝났는데?"
"예?"
"끝이라고...추격자들은 모두 죽었어"
에레나는 자신의 목을 손을 들어 긋는 시늉을 하였다. 그런 그녀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키이는 잠시 에레나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언 졌다.
".........이게 무슨 짓?"
"열 있나 해서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자신의 호위기사를 잠시 노려보던 에레나는 있는 힘껏 그녀의 발을 밟으려 하였다. 하지만 기사치고는 약한 축에 속하는 그녀라 해도 어린 소녀의 발에 밟힐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당연히 슬쩍 발을 이동하였고 키이의 다리를 목적으로 날아오던 소녀의 연약한 발바닥은 애꿎은 장식물만을 차게 만들어 버렸다, 그에 큰 눈에 눈물을 찔끔거리던 소녀, 에레나는 입을 삐죽거렸다.
"...아무리 사적으로 언니 동생으로 하자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언니는커녕 호위기사 자리에서 쫓겨날 줄 알아!"
당당한 협박과는 달리 딱딱한 장식을 차버린 다리의 아픔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토닥거리는 소녀에게 키이는 진한 미소를 지어주며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밖을 주시했다. 조금 전 꺼내놓은 말과는 달리 그녀는 전적으로 에레나의 말을 믿었다. 마나 소드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기사가4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그들이 죽을 리가 없는 일이지만 그동안 보아온 에레나라면 절망에 헛소리를 할 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밖을 내려다보자. 아픔에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에레나도 조그마한 키로 밖을 내다보기 위하여 키이의 옆에 까치발을 하며 빼곰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들의 눈에 가장 먼저 뜨인 것은 흙투성이의 아름다운 존재와 그에 약간 못 미치지만 역시 보통 평범한 미인은 아닌 존재의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쌍의 모습일 태지만 그들이 내뱉을 말을 듣고 있는 키이와 에레나는 등골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대화를 집중한 결과...
"마차의 내용물(?)들도 뒤처리를 해야돼!"
"조금 전 소녀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어? 마차에 있는 이는 아마 소녀란 말이야!"
흙투성이 존재의 말에 아름다운 미녀가 소리쳤고 그에 에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예상 밖으로 마차에 검을 날리는 추격자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비명을 들은 것이리라...
"그래서 어쩌자고? 일단 칼을 나누었다. 잘못을 따지기 전에 끝장을 봐야 한단 말이다"
"하지만 보통 마차에 타는 이들은 연역한 이들이란 말이야! 마차를 호위하는 이들을 죽였으니 이제 그만 칼을 거두어도 좋잖아! 솔직히 네가 잘못 아니야? 먼저 손을 쓴 사람은 너라고!!"
그 여자의 말에 흙투성이의 존재는 연기가 나는 막대기를 입에 물다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그리 좋은 분위기는 아니니라...
"바보로군. 이제 와서 잘 잘못을 찾자는 것인가? 이미 일은 벌어졌어, 남은 이야기는 다 죽이고 이야기하지."
"말도 안 돼! 네 말이 옳다고 해도 어린 소녀가 무슨 힘이 있다고 죽인다는 거야!! 너는 굉장한 힘이 있잖아! 그런데 뭐가 무섭다고 그러는 거야!!"
여자의 말에 흙투성이의 존재는 그 모습을 멀리서 빼곰이 쳐다보고 있는 키이와 에레나도 느낄 수 있을 만큼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
"무섭냐고? 그래 무섭다. 어렸을 때 나도 지금의 힘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거든"
"............."
흙투성이의 말에 그 앞에 선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비록 승복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은 강하게 풍겼지만 아무래도 그녀로써는 무리인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흙투성이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그녀와는 달리 뒤에 있는 나머지 5명의 여자들은 그 흙투성이의 말이 옳다고 느껴지는지 반대하는 이는커녕 고개를 끄덕이는 이까지 있지 있었다.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키이는 탈출구를 생각하느라 정신 없이 주위를 살피고 있었지만 조금 전 그 황홀하기까지 한 장면을 잘 보았던 에레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자신의 호위기사 중 가장 센 키이조차 추격자 중 한 명을 이기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2명이나 단숨에 조각 내는 이가 다음 목표로 자신들을 지목한 것이다.
"자..잠시만요 이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마치 어느 연설회장에 질문이 있는 학생처럼.... 그런 그녀의 돌발적인 모습에 탈출로를 열심히 구상하던 키이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졌고 논쟁을 벌이던 두 명을 포함한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모여들었다. 그에 슬금슬금 들었던 손을 내려놓고는 부끄러운 듯이 대충 정리한 트윈 테일의 끝 부분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예쁘장한 소녀 에레나는 배시시 웃었다.
문제 있음 리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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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쓸모없는 구덩이 "그러니까 당신들은 그들과 상관없다는 말인가요?"
"당연하지! 그런 뚱땡이와 같이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키이를 바라보며 물어보는 세이시나의 질문에 대답한 이는 키이가 아닌 루미나가 건내준 뜨거운 코코아를 신기한 표정으로 홀짝거리던 에레나였다. 그녀는 주위의 극 강의 미녀들의 얼굴에 주눅든 호위기사들과는 달리 오직 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는 인사도 하지 않은 그의 모습에 잔뜩 심통이 나 있는 상태이다. 거기다 그 주위에는 오직 미녀밖에 없지 않은가? 소녀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자그마한 질투의 불꽃이 흘렀다, "...뚱..뚱땡이?"
"저자들을 이곳으로 보낸 곤드레스 핀 크라리그 자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곳 가드라스(파이스 왕국에 있는 나라)의 자작의 위치에 있지만 각종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얻어 왕국에서 무시 못할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자 이지요"
키이가 가리키는 곳은 조금 전까지 사람이었던, 하지만 지금은 한줌의 핏물로 화한 곳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자가 당신들을 쫓는 것이지요?"
"저희는 그자가 거래하는 곳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상단에서 왔습니다, 당분간 그자에게 신세를 질 생각이었는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저희가 그자와 상의 없이 자리를 뜨자 바로 추격대를 보내왔더군요"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또래의 남자(?)에게 당당히 신분을 말하고 싶어하는 에레나였지만 그녀도 섣부르게 신분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키이와 입을 맞추어 에레나의 신분을 돈 많은 상단을 소유한 평민의 자녀로, 자신과 다른 기사들은 기사수업을 하다 돈이 떨어져 잠시 용병 생활을 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럼..."
"예...얼마 있으면 이곳으로 추가파병이 있을 것입니다,"
키이의 걱정스러운 반응에 세이시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에 빠졌다. 한 나라에서 상당한 권력을 가진 이를 건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비록 자신이 교단의 높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국가와의 마찰은 가급적 피해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다. 그들은 오만하며 자신들 밖에 모르는 인종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은 세이시나아가 속한 교단도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금전적인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큰소리를 치지 못할 뿐...평민들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갑작스런 땅파기 모드에 들어가는 키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와 세이시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키네라는 잠시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잠깐! 그렇다면 그자는 지금 어디..."
잠시 고민에 휩싸이던 키이는 키네라의 질문에 별 생각 없이 자신들이 왔던 곳을 가리켰다.
"말을 타고 조그만 더 가면..아! 그러고 보니 당신들이 아침에 출발했던 곳입니다"
지금 자신들과 함께 있는 이들이 자작이 납치해오라는 그 일행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마을에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출발한 그곳을 가리켰다.
"..........."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한 동안 말없이 바라보단 키네라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온 방향은 바로 조금 전 k-45유탄이 터진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소수의 석재와 나무들로 이루어진 마을 따위는 한번에 날릴 수 있는 유탄 몇 개... 그러고 보니 자신들을 처음 습격한 이들도 자작이라는 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던가?
결론에 도착한 키네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짖고 있는 키이와 세이시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쓸데없는 걱정인 것 같군요. 그 자작이라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희를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요'
세이시나 덕분에 자세한 것을 알리지 못하는 키네라는 그녀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 네리아와 못 다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진에게 다가갔다. 보고를 위해서.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팔을 붙잡는 움직임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요?"
"저기 저 여자는 누구지?"
들고 있던 코코아 잔을 내려놓은 에레나 그녀가 가리키는 곳은 한창 진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네리아였다. 진의 앞에 앉아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그녀는 이전의 형식적인 모습으로 설명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진지한 표정을 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자신에게 반말을 하는 소녀의 말투에 더 신경이 쓰이는 키네라였다. 이곳의 사회는 계급사회였던 것이다, 그런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반말을 한 다는 것은 눈앞의 소녀가 그녀들 말대로 단순한 상인의 딸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해했다.
"아니! 그보다 왜 저 사람은 자신의 소개를 하지 않은 것이지? 무언가 말못할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이름은 소개 해야하는 것이 예의! 음..당연한 것!"
키네라가 미쳐 대답하기도 전에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에레나의 손가락은 네리아에서 진에게 옮겨져 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일까? 겉으로 보이는 나이와 같은, 당연한 어린애 같은 투정이었으니 이상함은 없었지만 왠지 그녀의 모습은 계산된 것 같아 고민스레 바라보던 키네라는 곤욕스럽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조금 전 저희가 저분의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못 들으셨어요? 그럼 다시 소개하지요. 저분의 이름은.."
"진이라고? 나도 귀가 있으니 잘 알고 있어! 그보다 자신의 소개는 자신이 해야하는 것 아니야?"
그렇지?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짖고 있는 눈앞의 소녀의 모습에 키네라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알기로 이미 진은 그녀들이 기사들과 한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아예 관심을 끊은 상태였다.
어차피 그에게는 그녀들을 구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구해주었다고 인사를 받은 생각도, 무언가 보상을 바라는 것도 없으며, 그녀들에게 원하는 것도 없었으니 그녀들은 진에겐 단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더욱이 그녀들과는 달리 진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네리아가 조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은가? 지금 진의 마음에는 그녀들 따위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 진의 마음을 알아 첸 키네라는 노골적으로 진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 어린 소녀에게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할지 몰라 자신의 머리를 극적이었다. 자신의 상관인 진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한다면 걱정부터 들었다. 지금까지의 보아온 상황으로는 귀찮게 한다고 그 무지막지 한 탄환을 이 이런 소녀의 머리에 선물 할 지도 몰랐다.
"자..잠깐!!"
생각이 잠기다 살금 살금 진에게 다가가는 에레나의 모습에 질겁한 키네라가 그녀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을 오해한 키이는 세이시나와 이야기하는 도중 몸을 날려 막 에레나의 목덜미를 잡으려던 키네라의 팔목을 잡았다.
".....무슨 짓입니까?"
"당신이야말로 이게 무슨 짓이야!"
소리가 높아지는 키네라의 모습에 일행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그리고 그녀들의 시선은 키네라가 바라보는 곳을 행했다. 그 시선이 닫는 곳에는 진에게 다가서는 에레나의 모습이 있었다.
"안돼!"
일행 중 특히 세이시나가 기겁을 하며 에레나에게 달려갔다. 다른 이들은 또한 위험하기 그지없는 곳으로 다가서는 소녀를 바라보며 딱하는 듯이 혀를 찾다. 뭐 그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들의 모습에는 마치 지옥의 괴물이 살고 있는 우리에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가 다가가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주위의 예상치 않은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짖고 있던 키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늘한 목소리가 키네라의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저 아이가 죽으면 모든 것은 당신 탓이야!"
"그게 무슨..."
아직도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키이였다.
◆ "그러니까 네가 가고 있는 곳은 바로 해독을 위해서란 말이지?"
"그렇지요. 원래 금서라는 것은 지식의 보고. 하지만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자는 극소수입니다, 원래 그 금서의 근본은 이제는 잊혀진 고대의 말로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용하는 언어와 완벽한 다른 형태라 배우기도 매우 까다로운 글이지요. 저의 측에서도 금서를 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네리아는 갑작스레 진이 손을 들어 대화를 막자 질문이 있나 해서 잠자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조금 전 마차에서 손을 들었던 소녀가 화가 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가와도 네리아는 들고 있는 금서를 치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설마 어린아이가 금서라는 것을 알겠느냐 라는 아니한 생각에서였다. 사실 금서라는 말은 대부분의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 금서를 본 이들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자신들이 속한 단체, 각 교단의 상위층, 그리고 각 국의 왕실을 빼놓는다면 전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가온 소녀는 화난 표정을 지우며 진을 바라보다 배시시 웃었다. 그리곤 네리아, 그녀에게 날벼락 같은 소리를 꺼냈다.
"호...금서잖아?"
".............."
경악으로 서서히 굳어지는 네리아의 얼굴을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승리의 빛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다가온 소녀의 폭탄과 같은 말에 진은 나직이 네리아의 얼굴을 바라보다 소녀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둘 다 진이 알고 싶어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네리아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꺼내들었다. 그에 반하여 눈앞의 소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순순히 꺼내놓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동안의 진은 지식으로 금서를 가진 자는 거대한 단체들에 탄압을 받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이시나의 모습에서나 네레아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어느 교단의 성기사를 보아도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소녀는 네리아가 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더욱이 자신의 입으로 확인 사살까지 하지 않았던가? 진의 눈빛에서 스산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서서히 그의 손이 품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음.. 해석 안한 것 같은데 해석 해 줄까?"
또 하나의 생명을 탐욕스럽게 갈구하는 그것의 손잡이를 잡는 진의 손이 순간 멈춰졌다.
이번 글은 특별한 내용이 없군요^^ 사족 하나 - 원래 계획인 외전은 나중에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한창 신나게 쓴 다음 다시 읽어보니 본 편에 심각한 영향을 줄 네타 부분이 나타나...
참고로 원래 이번에 올릴 예정이었던 외전은 전에 말씀들인 3개 중(진의 어린 시절. 나기인의 폭격 후. 나기와 데라의 전쟁 사이) 나기인의 폭격 후 이야기로 4편중의 3번째였습니다(지금 2개는 올라갔지요. 1편-그녀의 독서. 2편-그들만의 전쟁.)
훌쩍...거의 20kb까지 썼는데...
사족 둘 - 리플 중에 유탄의 200m라는 것은 살상반경입니다. 폭 계열이요.
처음에는 파편을 생각했지만 작은 유탄의 파편으로는 그 정도 파괴력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고폭탄으로 바꾸었습니다, 더불어 진이 들고 있는 유탄은 특제입니다. 발사기인 k-45는 제식화된 장비로 그리 특별한 것은 없으나 사용하는 탄환은 가격이 굉장히 비싼 물건이지요. 실험실물건이랄까? 따라서 일반적인 유탄과는 파괴력의 차이가 있습니다.(참고 보통 유탄의 파괴력은 100m.전후 물론 이 것도 고폭탄입니다)
기간테스나 장갑보병 외에 천천히 진이 쓰는 작은 무기들의 설정도 올리겠습니다, ★k-45 레일건 유탄발사기의 일종으로 레일건으로 가속하여 최대 5km까지 사정거리를 둠(더 멀리 보낼 수 있지만 경무장 차림의 병사들의 단거리(?)사용 병기라 시야거리 이상은 필요치 않음)
특징으로 장갑보병을 탑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탄환 수와 연사의 제약이 있으나 대신 극단적으로 기능을 줄여 무게를 줄이고 반발력을 최대한 억제하는 충격 흡수장치 덕분에 어린아이도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짐.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부속품으로 머리에 착용하는 조준기를 이용하여 사격하기 때문에 K-45자체에는 특별한 조준기가 달려 있지 않음.
겉모습은 M79그레네이드 런처와 같은 형태. 간단히 원통형의 발사구와 개머리판이 붙어 있는 형태라고 생각하면 됨.
- 전체길이 - 65cm - 자체중량 - 1.6.kg - 구경 - 50mm - 발사 속도 - 연결 식 벨트를 이용할 경우 100발/분 - 탄환 - 유탄(고폭탄)을 사용하지만 그 외 공중작렬탄, 대장갑탄, 다탄두산탄 등등이 있으 며 필요에 따라 조명탄, 신호탄, 채택된 탄환 중에는 생물학병기. 화학병기까지 있음.
심지어 탄환이 없을 때 적당한 크기의 돌을 사용할 수도 있게 만들어짐.(물론 이런 경우 명중률은 포기해야 함)
- 부속 장비 머리에 착용하는 입체영상 조준기.
참고로 진이 쓰는 총에 들어가는 유탄도 폭발력을 이용한 것이지요.
그런데 3편을 올렸는데 최신작품란에 올라간 것은 단 한편뿐이니....
제가 뭐 잘못했나요??
문제 있음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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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그의 소년 시절 늦었습니다. ㅜ.ㅜ 이번 외전은 그러니까 '그의 어린 시절'과 '- 프롤로그 -' 사이의 내용입니다, 꽤 앞부분이지요.
본래 지금 올릴 것은 아니었는데 첫날은 조아라가 되지 않더니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인터넷 이 두절... 넷째 날은 손님이 오시고.... 요 며칠 간은 개강 준비에 바쁘고....하루 한번의 약속 을 지키기 위하여 걍 꺼내놓은 글입니다^^ 휴...♡ 요즘 왜이리 개을러지는지... 다음 카페에 글을 올린 지가 한달이 넘어가네요..
이 자리를 빌어 유선반장님께 사죄를 _(_ _)_ 내일이라도 당장 글 올리겠습니다, 죄송 죄송,,,, 일단!!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연참 들어갑니다.
연참 규칙은 3시간마다 한편씩(3시간 이상이 아니라면 최신 작품에 올라가지 않더군요. 조 회수를 조작하기 위한 양송이의 잔머리입니다 으흐흐)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내일까지 이어지니 약속대로 올려야 할 글은 총 9편... 지금 써놓은 글은 외전 4편과 본편 2편이니... 잘하면 내일이라도 완벽하게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일단 외전 4편부터 들어갑니다, 문제 있음 리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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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없는 강을 앞두고 있는 망자의 넋두리일까?"
고요하고 어린 목소리.... 모든 것이 어둠에 싸여있는 그곳에서 들린, 아직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그 목소리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었지만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조금의 거슬림도 없는 아름다운 음색이라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물었다. 특정한 누구를 지칭하여 물어본 것은 아니다. 그의 주위에는 그저 차가운 어둠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속삭임의 주인공은 누구의 대답을 원한 것이 아닌 듯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 보며 은백색으로 빛나는, 옥과 같이 상처하나 없는 아름다운 손을 품안으로 가져갔다.
"아니 이미 강을 건넜나?..."
작은 한탄과 함께 잠시 후 밖으로 나온 그 아름다운 손안에 쥐어진 것은 아기자기한 수가 놓여진 비단 주머니였다. 가볍게 쥐어진 그 손안의 비단주머니가 가리키는 곳은 정성 들여 쌓아올린 큼지막한 우물....
고풍스럽게 만들어진 그 우물은 세월의 힘을 느끼듯 잘 관리된 상황에서도 이곳저곳에 이끼들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잠시 우물을 바라보며 혼자 반문하던 그 존재는 가볍게 쥐고 있던 손의 힘을 뺐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비단 주머니는 잠시 허공을 노닐다 달빛하나 없는 어둠의 저 한쪽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첨벙"
빛 하나 없는 주위의 시선은 고작 벌레들의 울음소리... 그의 행동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행동으로 지하 저 깊숙한 곳으로 사라져간 주머니를 한동안 바라보다 그 존재는 천천히 몸을 돌려 사라져갔다. 그가 목표로 하는 곳은 무작위로 배열된 건물 중 가장 큼지막하고 화려한 건물.... 우물을 벗어나는 그의 발걸음은 이질적으로 규칙적이고 단조로웠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 하늘은 불만이 있었을까? 시원한 바람과 함께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 서서히 달빛이 모습을 들어냈다. 비록 달무리 가득한 빛이었지만 별빛하나 없는 하늘에서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하늘의 변덕으로 대지를 비추는 그 달빛에 우물가에서 멀어지는 그 인형이 만천하에 모습을 들어낸 것이다. 물론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검다못해 푸르스름한 빛까지 뿜어내는 머리카락...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그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정리되지 않아 주위를 뒤흔드는 찬바람에 그 몸을 싣곤 하늘거렸다. 어둠을 녹여 만든, 불길한 느낌까지 선사해준 그 머리카락 너머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육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모성본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냘파 흔들리는 머리카락과 같은 조그마한 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았다. 그 육체를 감싸고 있는 것은 고급스런 재질로 만들어진 비단옷, 옷에 대하여 무지의 존재도 만든 이의 정성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섬세하고 단아했다. 전체적으로 아담한 체구...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달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랄까?
자신의 모습이 온 천지에 들어 났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 지 그 존재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달을 배경으로 사라져간 우물가는 단지 작은 조약돌이 떨어진 것 같은 파동만이 일어날 뿐이다.
"뚜벅,뚜벅"
"이곳이던가?"
우물가와 제법 떨어진 거리를 느긋하게 움직였던 그 존재는 잠시 눈앞의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다 결심이 선 듯 이윽고 흙으로 더렵혀진 신에 신경 쓰지 않고 거대한 건물에서 빛 하나 없는 다른 곳과는 달리 은은히 빛을 비추고 있는 곳의 문을 열었다. 그의 시야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향이 나는 초..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고급스런 향은 차가운 밤 공기와 더불어 그의 가슴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그 다음으로 보인 것은 밤일을 하고 있었는지 옷을 모조리 벗어 던진 두 남녀.
달무리 진 달빛과 비교할 수 없는 밝기를 선사하는 빛에 의하여 방에 들어서 존재의 진면목이 들어 났다. 그것은 경의. 그리고 충격이었다. 백옥 같은 손과 타인을 홀리는 목소리가 아깝지 않을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키는 고작 5척이 조금 안되는 수준이었지만 몸 크기에 비하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몸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긴 흑발의 머리카락이 감싸고 있는 얼굴은 너무나 아름다워 오히려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까지 들어냈다. 더욱이 그 아름다움을 더욱 강하게 하는 것은 눈빛...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투영한 보석과 같은 눈빛에서 느껴지는 한줄기 광기....... 모든 것이 조화로워 그것이 더욱 이질적이었다. 그렇게 인간 같지 않은 외모를 지는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남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등장했음에도 방안에 있던 두 남녀는 그 불청객에게 어떠한 제지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제지는커녕 그들의 눈에 들어있는 것은 미지에 대한 공포였다. 고작 아무리 많이 쳐주어도 15세 이상은 절대로 되지 않았을 것 같은 가냘픈 이에게 느끼는 것이 고작 공포라니......
하지만 자신을 공포의 그것으로 보던 상관하지 않고 그들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존재는 이내 그들에게서 신경을 끄고 주위를 둘러 보다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움직인 곳은 바로 이곳에 있는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장식장. 그곳에서 그는 자그마한 상자를 꺼내 뒤적거렸다. 그렇게 한동안 뒤적이다 끝내 자신이 찾는 것을 차지 못하였는지 그는 이번에는 상자를 들어 뒤집었다. 그 모습에 움직이지 않고 있던 남녀 중 여자의 얼굴에 한줄기 분노가 일어났다. 그가 만지고 있는 상자는 그녀가 소유주였던 것이다. 하지만 주인 행세를 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법....
"와르르"
신경질적으로 쏟아낸 상자의 내용물을 뒤적거리는 손놀림에는 희미한 짜증까지 묻어있었다. 그렇게 묵묵히 한동안 방바닥에 널린 값비싼 물건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뒤적거리던 그 아름다운 존재는 신경질 적으로 여자를 안고 움직이지 않고 있던 남자의 어깨를 차버렸다. 그러자 몸이 뒤집혀 지면서 남자의 흉물스런 존재가 정면으로 들어 났지만 그 존재의 주인도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그도 상관하지 않았다.
"어디 있지?"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에 어울리는 목소리였지만 듣는 남자의 입장에서는 지옥의 그것보다 더 무서웠는지 움직이지 않는 몸에서 식은땀을 흘릴 뿐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눈동자만을 사방으로 돌릴 뿐인 원하는 대답이 없자 남자에게 발길질을 하려던 그는 남자가 자신의 독에 의하여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닫곤 책망하듯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 모습은 너무나 귀여운 장면이었지만 이곳에서 그 모습에 감탄을 할 이는 아무도 없으니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자신의 머리를 잠시 두드린 그는 남자를 항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와 함께 오로지 그의 눈에만 보이는 아주 작은 입자들이 그 손을 떠나 허공을 가로질러 남자와 그 옆에 외간남자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들어내고 있는 여자의 호흡기로 사라져 들어갔다.
잠시 후...
"크...어...말이.... 네 이놈 화영(禍英) 네놈이 감히! 아버지에게.....그만..그만둬...크아아아아아"
한 순간 번뜩임과 동시에 말문이 열려 고함을 치려던 남자의 왼손이 사방으로 피의 분수를 만들며 촛불의 불빛이 닫지 않은 한쪽 구석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그 존재에 들려 있는 것은 작고 귀여운 단검. 하지만 그의 손속은 한치의 망설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피의 그와 함께 좁지 않은 방안에는 진한 피비린내가 후각을 마비시켰다.
찰나의 순간에 잘려진 자신의 몸뚱이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비명과 일그러지는 얼굴로 고통을 표현하는 남자를 잠시 바라던, 남자에게 화영이라 불린 존재의 손이 돌연 허공에 춤을 추었다. 그의 손이 노리는 곳은 잘려진 팔뚝..... 몇 번의 손놀림이 가해지자 멈출 것 같지 않은 피의 세례는 수도꼭지를 잠근 것처럼 순식간에 멈추어져갔다. 하지만 고통과 함께 이미 많은 피를 흘린 뒤라 남자의 얼굴은 창백하게 물들었다.
"화영(禍英)이라....그리운 이름이군"
화영이라는, 자신을 뜻하는 단어를 나직이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진한 비웃음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렇다.
화영....
그는 몇 년 전 눈앞이 인물에게 팔린 바로 그 소년이었던 것이다. 몇 년만에 등장한 그는 키가 약간 자란 것을 빼고는 과거와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단지 과거의 백치미를 풍기는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강렬한 요염함을 뽐낼 뿐이다.
그가 이곳에 온 시간은 어제 아침..... 하지만 그를 보는 주위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았다, 겉으로야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그를 막대할 수 없었지만 본래 미움받는 존재가 자신들보다 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그리 좋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그를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그의 아버지.... 지금 화영이라 불린 존재의 눈앞에서 고통에 떨고 있는 남자였다.
어리석은 그는 과거 그 환관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자신은 충분히 자격이 있었으니.... 남이 들었다면 비웃음 가득 지어주었을 태지만 그는 자신이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를 중앙으로 부르지 않은 것은 누군가의 농간... 자신과 중앙에 끈이 이어진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아들... 따라서 그는 환관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눈앞의 자신의 아들이 악감정을 품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야말로 황제에 부탁하여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자식을 차근차근 교육(?) 시켜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짐승으로...
하지만....
"시끄럽다. 그만 짓거리고...어디 있지?"
집으로 돌아 온 것은 과거의 먹다 남은 음식에 감사하고 때리지 말라고 울부짖던 아들이 아니었다. 아들의 가죽만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괴물의 눈은 오로지 피와 광기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몰...몰라.. 크...뭘 찾는지 알려줘야.."
"네가 겁탈한 내 어머니의 유품 말이다, 아마 나비모양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겁탈이라니! 아내를 겁...겁탈하는 나..남편도 있나?"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사이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짖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람을 보며 화영은 나직이 웃었다.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것이지? 난 다 알고 있어. 내가 네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네놈이 어머니를 겁탈했을 때 이미 뱃속에는 내가 있었다는 것을... 내 목숨을 담보로 어머니를 억지로 아내로 삼았다는 것을.....그리고 네년은 이놈의 거지같은 재산이 나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해 마을에 유언비어를 퍼트렸지.. 네놈도 자신의 씨앗도 아닌 오랑캐의 자식 따위는 원치 않았고 말이야...."
과거의 끔직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화영의 얼굴에는 한치의 동요도 없었다. 어찌 보면 자신의 원수요 부모의 원수가 눈앞에 있었지만 그저 요염함 미소를 지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남자와 이야기 도중 잠시 자신에게 다가온 시선을 본 여자는 정신이 없었다. 미소의 사이에 숨어있는 그의 광기 가득한 시선을 피하고 싶은 마음뿐... 하지만 입이 열렸을 뿐 마비된 육체는 그대로였다.
"자! 그만 말하고 편하게 가는 것이 어때?"
가끔씩 반대의 경우가 있는 것처럼 여전히 싱글거리는 화영의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숨막히는 증오와 공포.. 화를 내는 것 보다 지금이 더 무서웠다.
"아니 어떻게..."
"뭐 간단한 것이지. 이곳에 오래도록 살고 있는 산파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두 다리를 잘라 버리니 즐거이 토해내더군. 어머니가 이곳에 오신 날과 내가 태어난 날"
"마..말도 안 돼! 네가 빨리 나온 것 뿐이야! 고작 산파의 말을 믿고 아버지를 핍박하는 거이냐!!"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감추려는 듯 그는 절규했다. 하긴 설마 아버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자신을 죽이기야 하겠냐는 아니한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 화영이 들어 둘 필요는 없었다. 그 증거로 화영의 얼굴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웃음을 하곤 가볍게 다리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라고 불렀던 남자의 잘려진 팔의 단면에 들어올린 다리를 박에 넣었다.
"크아아아아아!!"
듣는 이로 하여금 귀청을 찢게 하는 비명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 나와 주위를 진동시켰다, 다행이 혈도를 막아놓아 출혈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법은 없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신의 육신에게 느껴지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 그의 머리가 하얗게 타 버릴 때 그 고통의 창시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미소가 띈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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