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49)

이번 연참은 여기까지. 제가 시간이 없는지라.ㅠ.ㅠ

진이 저 정도로 다친 것은 처음 키네라의 몸속에 들어간 암살자가 일으킨 폭발 이후로 두 번째로군요.

아마 다음 편에서 진이 죽고 에필로그가 나올지도^^

참참참!!

저번 권총의 슬라이드 질문에서는 제가 글을 잘못 썼더군요.

-탄창을 삽입했다. 인데

-탄창을 장전했다. 로…. 

이러니 탄환을 장전했는데 또다시 슬라이드를 당길 필요는 없지요^^ 

지적해 주신 분 감사!!

리플과 추천은 작가의 힘과 에너지원입니다. 제가 아니라고 해도 글을 읽으실 땐 가끔 작가에게 추천을 주세요.~~

또한

문제 있으면 리플...

“비켜! 이 바보야!”

스스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충격을 먹은 듯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네리아를 밀치듯이 밀어낸 키이는 막상 진의 앞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행 중 신관인 세이시나가 있었지만 그녀의 경우 성녀라는 신분이었으니 신성력이 있다 하여도 사람을 치료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많은 경험을 한 이는 키이. 허나 그런 그녀의 경험에도 눈앞의 진과 같이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었던 이는 단 한명도 없었으니 난감했던 것이다. 폭이 30센티에 이르는 거대한 검이 사람의 몸을 관통한 상황에서 그동안의 경험 따윈 가뿐하게 쓰레기가 된 시점이었으니.

“그래!!”

어떻게 손을 쑬 수 없는 상황에 모두 당황하고 있을 때 그래도 진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가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세르피였다. 물론 지금 진의 모습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곳에서 그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있었으니 진의 몸속에 들어있는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나노머신을 생각한다면 승산은 있었다.

갑작스레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녀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간 곳은 진이 내려놓은 가방. 평소라면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수만 볼트의 전력에 곱게 태워질 것이지만 마침 진이 레이션을 꺼내기 위하여 장금장치를 해제해 놓아 그녀는 수월하게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유탄, 반물질탄. 응? 핵지뢰? 이것도 아니고…. 이 앰플은 뭐지? 자기진화 페스트? 뭐야 이건?” 

진의 가방에서 이것저것 대륙 하나는 가볍게 날려버릴 신기한(?) 물건들을 꺼내던 세르피는 녹색의 앰플에 들어있는 액체를 바라보다 그것에 적혀있는 단어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곤 한쪽에 제쳐두고 다시 짐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았을까? 드디어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 있다!”

그것은 의료머신. 

몸속에 나노머신을 집어놓는 대다수의 종족은 그 특성상 외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병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인공적으로 만든 병원균이 아니라면 자연적인 자잘한(?) 침입 따위에도 충분히 대처하고 있으니 남은 것은 외부물리적인 타격. 분명 나노머신은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그에 따라 한계 이상의 상처를 자체적인 성능으로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 올 때가 있으니 그 때를 대비하여만든 것이 의료머신이었다. 

뭐 이름은 거창해도 단지 의료성능만을 최대한 높여놓은 나노머신의 집합체였지만 사용하게에 따라 간단한 장기의 경우 주위 세포를 복제하여 몇 달간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였으니 즉사가 아니라면 생존에 문제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값이 쪼금(?) 비싼 것이 흠이지만(전함 한두 척 정도?) 어디 세르피와 진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인가? 

그녀는 캡슐에 싸여 있는 백색의 의료머신을 아낌없이 진의 상처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 가득한 모습을 배반하기라도 하듯이 의료머신들은 진의 몸속에 들어있는 나노머신과 접속하지 않고 단지 그가 흘린 피에 반죽이 되어 흘러내렸다.

“웃기지 말라고 해!”

피와 함께 흘러내리는 의료머신을 절박한 표정으로 손으로 모아 다시 진의 상처에 부었지만 다시 상처를 타고 흘러내릴 뿐이었다.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적시고 그녀의 손과 옷에는 진이 흘린 피의 웅덩이에 범벅이 된 상태이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의료머신과 섞인 피를 손으로 모아 상처에 쏟아 붓는 행위를 반복했다.

“넌 내손에 죽어야 해. 이런 곳에서 죽으려고 내 수많은 부하들을 저승으로 보내면서까지 살아남은 거야? 그런 것을 용서 못해. 내 손이 아닌 나 때문에 죽는다니 용서 못해!”

세르피는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허나 이미 의료머신은 피와 섞여 보이지도 않았다. 그에 그녀는 다시 진의 가방을 뒤졌다. 하지만 조금 전 쓴 것뿐이었는지 가방에는 그 어떤 치료도구도 없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옷 이곳저곳에 진의 피를 묻힌 그녀는 체념 가득한 얼굴로 피의 웅덩이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나노머신이던 의료머신이던 처음부터 그녀가 무엇을 하는 지 알 도리가 없던 주위의 그녀들은 체념한 모습으로 진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세르피에 관심을 끊곤 그녀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시행하기로 했다, 자신들의 곁에는 하는 행동으로는 그리 믿고 싶지 않지만 세이시나라는 신관이 있지 않은가? 예로부터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치료술이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으니 지금의 상황에 그녀가 움직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 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젠장!”

몸속의 내장이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도 진은 무언가를 하기 위하여 왼손을 조금씩 움직여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 움직임에 날카로운 차드바스의 검의 날에 가뜩이나 커다란 상처가 조금 씩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흘린 피만으로도 쇼크사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상황에서 자꾸 움직이려는 진의 모습은 주위의 일행들에겐 그저 고통의 움직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막아야 했다.

다행이 조금 전까지 진과 세르피를 공격한 쇠사슬들은 힘을 잃고 지상으로 떨어진 상황, 뭐 지금의 정신으로는 그런 것에 상관할 이들은 없었지만….

“거기 잡아!”

이대로 진의 움직임을 방치했다간 실낱같은 가능성도 날아갈 것이라 생각한 키이는 진의 옆에 있는 세르피에게 움직이는 왼손을 붙잡게 했다. 하지만 체념의 빛 가득한 세르피는 넋 나간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짝!

“지금 뭐하는 거야!! 넋 나갈 시간 따위는 없어!”

그런 그녀의 모습에 화가 났을까? 키이는 세르피의 뺨을 때렸다. 다급한 마음만이 가득했는데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제정신을 차린 이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 것이다. 다행이 난폭한 그녀의 행동에 세르피는 정신을 차리곤 자신의 육체에 손찌검을 한 키이에 반발하기보다 황급히 진의 움직이는 팔을 잡았다. 주위의 모습에서 무언가 준비하고 있는 모습에 작지만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본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키이는 이번에는 아직도 창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세이시나를 바라보았다.

신성력을 사용하라는 뜻.

하지만 세이시나는 키이의 의도에 일순 주저했다. 지금 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눈앞의 반 시체에게 신성력을 쏟아 부어도 가능성의 거의 없어 보였던 것이다. 더욱이 실패했을 땐 자신이 진을 죽인 것으로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 두려웠다. 

“그래도….”

허나 만의 하나의 가능성을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곤 말없이 진의 앞에 자리 잡은 세이시나는 두 눈을 감고 신성력을 발위하기 위하여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자주 충돌을 일으킨 진의 모습에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가냘픈 소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의 모습에 안쓰러움과 안타까움. 

구해주고 싶었다. 

그녀 자신은 모르지만 조금씩 느껴지고 있는 신의 불신감을 느끼고 있던 그녀는 그 대안으로 자신도 모르게 진에게 기대고 있었다, 스스로의 행동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힘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죽는다고? 말도 안돼! 

자신 스스로도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을 의아해 할 시간도 없이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담자 그녀의 손에서는 단순한 빛으로만 볼 수 없는 빛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서서히 진의 상처에 가져갔다. 하지만.

“퍽!”

“까아악!”

마치 풍선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진의 몸으로 신성력이 감도는 손을 가져간 세이시나는 갑작스레 터진 굉음과 함께 자신의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철퇴로 때린 고통에 움켜준 자신의 손을 바라보자 조금 전까지 성스러운 빛으로 감싸여 져 있던 손은 마치 엄청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그것에 그치지 않고 이곳저곳에는 상처와 함께 몇 줄기의 핏빛이 흘렀다. 

“반…반발력?”

처음 겪은 상황에 아픔도 잊고 경악성을 내뱉은 그녀였지만 중요한 것은 그 따위 것이 아니었으니.

“진!!”

자꾸 움직이려던 진의 손을 잡고 있던 세르피의 안타까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조금 전의 알 수 없는 빛을 그녀는 그저 볼 수밖에 없었다. 주위의 반응으로 그것이 진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체내의 나노머신 덕분에 적어도 더 이상의 출혈만은 걱정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른 것보다 출혈을 걱정해아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세이시나의 신성력이 감돈 손이 진의 상처에 닫는 순간 작은 스파크가 그녀의 손을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진의 상처에서 마치 펌프를 작동한 것처럼 엄청난 양의 피가 그의 몸을 꿰뚫고 있는 차드바스의 검 리스칼의 표면을 흠뻑 적셔 나간 것이다. 나아가 진의 곁에 있던 세르피와 키이 또한 그 피를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이미 흘린 피로 인하여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지금의 상황으로 최악으로 일은 나아갔다.

“너!!”

“아…아냐!!”

키이는 진의 모습에 분노 가득한 얼굴로 황급히 칼을 찾아 들었다. 키이는 그동안 보아왔던 것으로 세이시나가 진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허나 이런 중요한 상황에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그녀의 눈에는 세이시나가 진에게 살수를 끼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외침이 스위치가 되었는지 진이 흘린 피의 웅덩이에서 넋을 잃고 있었던 세르피조차 초진동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것만이 자신이 해아 하는 일인 것처럼…. 

냉철한 모습의 키이는 그렇다 해도 광기 어린 세르피의 모습에 황급히 고개를 흔드는 세이시나는 어떤 불길함을 느끼며 주저앉은 자세로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대화하기 힘든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그런 그녀를 구해준 이는 모두의 분노어린 눈초리를 받고 있던 네리아였다.

“지금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에요! 진이!!”

조금 전까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반쯤 넋이 나간 그녀였지만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 정도로 그녀는 순탄한 삶을 살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외침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쓰러진 진에게 모여들었다. 

“빨…빨리 검을!!"

그곳에는 놀랍게도 진을 찌르고 있는 검은 서서히 줄어들어 가고 있었다. 아니 진의 몸속으로 파고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한 덩이의 붉은 피가 진의 입에서 토해져 나왔다. 일행들은 그런 진의 모습에 누구를 탓할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아니 지금이 순간 이미 늦은 것이지 몰랐다.

세르피의 외침에 제일 먼저 움직인 이는 키이였다. 기사로 단련된 그녀의 몸놀림은 번개와 같아 다른 이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진의 앞에 다가설 수 있었다. 허나 눈앞의 괴이한 반응에 그녀 또한 속수무책이었으니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 끌어 오르는 분노는 분명 눈앞의 검이 자신의 실력으로는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을 놓친다면 자신은 평생 후해할 삶을 살 것 같은 느낌. 만난시간도 그리 길지 않고 자신에게 특별이 은해를 베푼 것도 아니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에는 진을 살리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조금 전 자신에게 해준 말의 은혜를 갚아주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주군이 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젠장!!”

신경질적인 외침으로 키이는 진의 몸속으로 조금씩 들어가는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러나 두 손을 모아 있는 힘껏 들어올렸지만 진의 몸속으로 사라져가는 검을 멈출 수는 없었다. 

“쌍! 당신들도 도와!”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로 쓰지 않을 쌍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의 정신이 서서히 리스칼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자 끓어오르는 분노에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주위의 일행들은 일순 주저하는 기색들이 감돌았지만 무언가 결심한 것 같은 모습의 세르피는 키이가 붙잡고 있는 칼의 손잡이를 잡았다. 

몇몇 분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어야 하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제가 다음주부터 시험이거든요^^ 

중간을 망쳤으니 악착같이 공부해야 하는 상황,.

아! 그리고 몇몇 질문에 간단히 답변을 드리면

1)표지는 저도 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촉박해서..

저도 책 받아보고 응? 이 사람은 누구지? 하며 황당해 했다는 ㅎ ㅎ

표지의 이미지는 본 내용에서 딱 말로프(제2군 사령관)의 이미자와 같습니다,

붉은 머리, 남자다운얼굴, 탄탄한 몸집등등.^^

2)진이 세르피를 위하여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리스칼의 협박에 움직이지 말았어야 하지요,

진의 생각은 날아오는 쇠사슬을 피하고 “이왕이면” 세르피도 구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생각해도 조금 수정할 부분이지만 어찌하였든 진이 세르피를 위해서 몸을 날렸다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요,

앞으로도 진 이놈이 사람을 위하여 죽을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살려면 전 인류를 죽여야 하고 전 인류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여야 한다! 라는 상황이 오면 당당하게 전 인류를 죽일 놈입니다. 이놈은.. 

3)1권 2권 분위기와 뒷부분 연제분이 다르다. 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뒷부분이 좀 가볍지요, 앞부분에는 비장감 넘치는데 뒷부분에는 거의 진의 독무대이니….

생각해보면 앞부분에서 진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절대적이긴커녕 지구에 버림받고 수많은 적들과 결전을 앞두고 있지요, 하지만 뒷부분에는 본격적인 적이 없어서 처음과 같은 분위기가 나오지 않았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뒤에서 조종하는 이들이 있지만 잔챙이들 가지곤 대륙하나 말아먹을 힘을 가진 진에게 무겁고 비장한 느낌을 주기에는 제 글 솜씨가 부족해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사전준비입니다, 앞으로 지금 준비하는 일들이 터지면?? 

처절한 전개가 이어질지도(질지도??)

으흐흐

마지막으로 유선반장님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밖에는... 

그리 힘든 일도 아닌데 카페에 신경을 거의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 죄송,

아! 진짜 마지막으로 출판사에서 인터넷 연재를 하지 않는 것이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처음 결심한 것도 있으니 큰 일이 없다면 마지막까지 연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속도의 변화 없이 꾸준히 진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리스칼, 그런 모습에 안간힘을 쓰던 그녀들은 절망 가득한 얼굴로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땔 수밖에 없었다. 효과가 없었기도 했지만 서서히 잠식해 오는 검의 힘에 자신들의 본 이성까지 잃어갔기 때문이었다.

“어쩌지…진이 죽는다니. 살려야해. 죽고 싶지 않다면 살려! 이대로라면 이 세계는 멸망이야”

세르피는 초초한 모습으로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눈앞에 검이 진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기만 해야 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얼굴들을 하고 있던 이들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진이 죽는 것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과 세계의 멸망과는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무슨 말이지?”

궁금해 하는 일행들 중 키이가 대표로 물었다. 허나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세르피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중얼거림은 진실에 가까웠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진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 그가 죽는다면 자신을 포함한 이곳의 모든 이들의 죽음은 확실했다. 그가 죽는다면 그의 부하들이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의 부하들이 움직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움직여 이따위 별 박살낼 것이라 다짐하는 그녀였다. 

모든 주위의 시선이 세르피에게 모여들고 있을 때 또 한번 진의 손이 움직였다. 조금 전과 같은 왼손. 조금씩 움직이는 그 손의 모습을 일행들이 눈치 챘을 땐 이미 진의 손은 오른쪽 어깨에 가 있었다.

“응? 이런! 팔을 잡아!”

“멈춰!”

그 움직임에 작은 진의 몸에서 흘린 피 웅덩이 위로 벌어진 상처의 새로운 피가 흘러내리자 키이는 세르피에게 신경을 끄곤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외침에 세이시나는 움직이려는 일행을 제지했다.

“봐봐 그의 움직임은 고통의 몸부림이 아니야!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그의 손은 지금 상처와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가고 있단 말이야!”

“그가 의식을 가지고 있단 말아야?”

세이시나의 외침에 키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외부의 자극 따위가 없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확실히 죽을 것 같은 지금,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고? 세이시나의 말에 넋이 나간 세르피를 제외한 둘의 얼굴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떠올랐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세이시나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굳게 믿고 있는 표정이었다.

“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보다 진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도박을 걸 수밖에”

“웃기지마! 배신자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아”

“배신이라니!”

“조금 전 네 행동은 배신이 아니고 뭐야! 죽어가는 이에게 그러 몹쓸 짓을 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신관이야! 성직자냐고!”

“말도 안돼! 조금 전 난 분명히 신성력을 사용했어! 내가 왜 그를 죽인단 말이야! 내가 주입한 신성력이 그의 몸에서 반발력이 일어난 것뿐이야!”

“반발력? 그가 마족이라도 된단 말이야? 밥 먹고 피 흘리는 마족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어!”

“그…그건 그렇지만”

키이의 외침에 세이시나는 할말이 없었다. 스스로 진이 자신은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도 밥을 먹고 피를 흘렸다. 생명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신성력이라는 것은 생물이 가지고 있는 회복력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기에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통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것 봐! 딴 꿍꿍이가 있는 것이지? 신관인 네가 그의 곁에 있는 것 자체가 이해불가능이야. 왜 그의 곁에 있는 것이지? 무슨 목적으로?”

다그치는 키이의 말에 한순간 말을 잊지 못하는 세이시나. 신의 사자의 명령이라곤 말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힌 그녀의 모습에 자신이 승리자라 생각했는지 키이는 몸을 돌려 진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잠시 눈앞의 검을 증오의 시선으로 노려보다 자신의 손에 온 몸에 있는 모든 마나를 집중했다. 마나라는 것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것이었으니 자신의 집중한 마나를 진의 몸에 불어넣어주어 그의 몸을 활성화 시킬 생각에서였다. 물론 그것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진의 몸이 회복된다고는 시전자인 그녀 자신도 믿지 않았다. 단지 조금 이라도 시간을 버는 것에 만족하는 것일까? 일이 틀어지기 전 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모든 방법은 해 볼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을 때 진의 왼손은 목적지인 오른쪽 어깨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와그작,

진이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움켜쥐자 마치 종이가 일그러지는 소리가 미약하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온 몸의 마나를 모으고 있던 키이나 암살이라는 누명에 분노하고 있던 세이시나. 일행이 무슨 짓을 하던 반쯤 체념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세르피. 마지막으로 키이의 모습에 초초한 얼굴을 하고 있던 네리아까지.

일순 모든 것이 정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주위의 모든 시간이 정지한 공간에 자신만이 움직이는 듯 괴이하고 괴상한 느낌. 한참 좀비에 쫓기고 있던 루미나나 백색의 공간에서 다음 공간으로 넘어가기 위하여 생각에 잠기고 있을 키네라가 이곳에 있었다면 경악성을 질렀을 것이다. 지금 공간을 장악하는 느낌은 이미 그녀들이 겪은 적이 있으니까. 조금 전까지 건조하기 이를 때 없는 공간에 돌연 태초의 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음습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불길한 느낌이 사방에 몰아쳤다. 

그런 상황에 아무도 눈치체지 못하였지만 그녀들이 밟고 있는 진의 피 웅덩이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불길한 붉은 색에서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무슨 일 이십니까?”

묵묵히 서류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조커가 돌연 자리에 일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그가 있는 공간은 내려앉은 수송선이 있던 자리의 지하 깊숙한 장소. 내부공간에 신경 쓸 시간조차 없어 연구원들과 작업하는 군인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있는 이곳에서 한쪽 모퉁이에 자리 잡아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열중해 있던 조커가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런 주위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이윽고 자신의 원하는 방향을 찾은 듯 서쪽을 노려보았다.

-힘을 쓸 생각인가? 너무 일러-

“예?”

망토에 가려 외부로는 어떠한 반응도 찾을 수 없는 조커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그의 일을 보조해주는 연구원이 반문했다. 그러나 조커는 그에게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지 잠시 서쪽을 응시하다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속도로 서류를 정리 해 나갔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일의 진행을 좀 빨리 해야겠군, 시간이 없으니-

바쁘게 움직이는 조커의 중얼거림에 근처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든 이들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대부분 처음이야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이기에 밤샘을 밥 먹듯이 하였지만 어디 그것으로 인간의 욕구를 채울 수 있겠는가? 서서히 폐쇄된 공간에 대한 스트레스. 밤을 새워도 끝이 나지 않는 일거리. 밤낮을 가리지 않고(어차피 지하니 구분은 없지만) 울리는 장갑보병들의 공간 확장의 기계음. 마지막으로 굴을 파다 발굴된 이상한 금속조각을 조사한답시고 내려온 타 연구기관의 사람들과의 마찰 등등.

서서히 미쳐간다 라는 의미를 절실히 느끼고 있던 이들에게 일의 진행속도를 높이라니. 조커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의 곁에 서 있는 연구원에게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은 마치 너 때문이야! 라고 외치고 있었으니 주위의 광적인 눈빛을 받은 그는 목에 모터를 단 것처럼 맹렬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허나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사태를 일으킨 책임자로 그를 지목한 상황. 조커의 중얼거림은 빠르게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퍼져나갔고 그에 따라 그에 대한 심상치 않은 눈초리도 점점 늘어갔다.

“억울해!!”

너무나 깊은 공간이라 그의 외침을 많은 이들이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억울함은 하늘에 닿았는지 기지의 상공에서 돌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뭐 땅속 깊숙한 곳에 있는 그로써는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연락이?”

어두운 우주의 공간에 고고하게 서있는 만마전의 중앙. 임시 사령관인 말로프에게 올릴 보고서를 준비하던 리셀은 뜻밖의 문서를 받아들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팍하고 그 알 수 없는 집단이 왜 우리에게 연락을 보냈지?”

-글쎄 그것은 저희도….-

리셀이 질문에 보고하는 오퍼레이터도 알 수 없는지 나직이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리셀은 심각한 눈으로 자신 앞에 놓여진 종이문서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이 만마전의 함장이라 하지만 이 거대한 공간에는 그녀의 지배를 받지 않은 이들이 가득했다. 일례로 팔마와 같은 이들. 그 중 지금 그녀에게 문서를 보낸 집단은 매우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특이하게도 진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이 따르는 이들은 바로 군천을 중심으로 한 몇몇의 노인들. 사실 리셀의 입장에서 군천을 중심으로 한 일단은 노인들은 함대에선 진 다음으로 절대적이기는 하지만 그에 반하여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왜 그들이 진을 마스터나 사령관이 아닌 주군으로 부르는지.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 지도…. 리셀이 알기론 진을 제외한 그들이 아마겟돈의 장금장치를 푸는 유일한 열쇠이며 지금 그녀에게 문서를 보낸 이들을 통솔하고 있다는 것 뿐. 

그런 상관의 영향을 받았는지 문서의 주인공들인 그들도 겉모습부터 특별하기 그지없었다. 백색의 옷에 상투를 튼 그들의 모습은 수백 년 전의 도관(道觀)에 거주하는 도사들이나 밀교승, 또는 무당의 그것처럼 독특한 모습이었다. 더욱이 모든 이들과 단절된 생활을 하며 오로지 석판에 대한 관리를 하고 있었으니 그런 그들이 그녀에게 문서를 남길 일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그들이 보낸 단 한 줄의 문장만이 존재하는 백색의 종이가 리셀의 눈에는 하찮게 보이지 않았다.

-결계가 약해짐, 이미 문은 열리고 있음. 속히 후속조치 실행바람-

결계라니 그것은 무슨 뜻이고 무엇을 속행하라는 것이지 알 도리가 없는 리셀은 나직이 한숨과 함께 자신이 작성한 자료의 맨 위에 그 문서를 올려놓고 자리에게 일어섰다. 자신은 모리지만 위쪽의 선, 그러니까 말로프라만 알지 모른다는 생각 덕분이었다,

1시간 뒤

주위의 호위함과 만마전은 본래 자신이 있던 자리가 아닌 눈앞의 행성과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여 나갔다.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행성에 내려가 있는 진의 문제에 관해 대응이 늦어질 것이라며 모든 이들이 반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자인 말로프의 강경한 의지덕분이었다. 두 눈을 부릅뜬 그의 손아귀에는 조금 전 리셀이 올린 문서. 그들이 올린 단 한 장의 문구가 적혀있는 종이가 잔득 힘주어 진 그의 주먹에 구겨져있었다. 

“모두 다 죽기 싫으면 명령대로 해”

끝까지 반대하는 리셀의 멱살을 잡으며 외친 말로프의 한마디였다.

이제 방학이군요^^

대학생은 이래서 좋다는. 

이번 방학에는 서비스로 테그를 배워 그림을 올릴 생각입니다,(글이나 써! 라는 말은^^)

설정집 비스므리 하게 그려놓은 각 순양함이나 만마전 기간테스, 장갑보병 등등

인물도 몇 명 있지요.

제가 한때 만화가가 꿈이었기에 남에게 보일 정도의 그림솜씨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ㅎㅎ

좀 일본풍의 그림체라 개성이 없다고 욕은 얻어먹고 있지만 제가 추구하는 그림체가 예쁜(또는 아름다운) 그림체이니 크게 눈에 거슬리지는 않을 거예요, 

-뭐야 이건? 인간이 이런 정신구조를 가진 것은 처음 보는데?-

진의 몸속으로 들어온 리스칼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의아해 했다. 보통 인간이라면 그의 마음을 형상화 하는 존재들이 하나 둘쯤은 있어야 하는데 이 인간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있는 것이라곤 칠흑 같은 어둠과 그저 유리로 만든 끝이 없는 계단뿐. 

-한동안 인간의 정신에 들어온 적이 없었는데 그동안에 변화가 있었던 모양인군-

또각또각.

투명하리만치 아름다운 유리계단을 내려가는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먹어치운 인간들의 정신세계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눈앞에 있는 인간과 비슷한 것조차 없었으니 의아해 할만도 했다. 

-움…. 뭐 상관없나? 나에겐 지금 이 몸뚱이가 더 없이 중요하니-

또각또각.

어차피 선택을 한 마당에 불평불만은 소용없다고 생각에서였는지 아니면 정말 오랜만에 육체를 장악할 마음에 들떴는지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곳에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그래도 다행이랄까? 그녀가 유리 계단의 끝에 썼을 땐 처음보단 적지만 변화가 있었다. 비록 그것이 회색빛의 하늘과 검붉은 대지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것이 내가 장악할 인간의 무의식의 영역인가? 어찌된 것이 이리도 황폐한 것인지. 너도 참 고달픈 삶을 살았나보구나? 하지만 이젠 안심하고 깊은 잠에 빠져 좋은 꿈이나 꾸라고. 이 몸뚱이는 내가 가질 것이니-

황량한 진의 무의식의 영역을 혀를 차며 둘러보던 그녀는 이윽고 그의 몸을 지배하기 위하여 자신의 힘을 서서히 개방하려 하였다. 그때 그녀 귓가에 들리는 소녀의 목소리를 한 존재들의 키득거림이 없었다면.

-호 처음 보는 존재네?-

-좀 이상하게 생겼다-

-키득키득 내말 좀 들어봐.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 나들었어. 진의 육체를 가진데-

-뭐 진을? 키득키득 바보 바보, 저앤 바보인가 봐-

-하긴 수백년, 거의 천년의 시간동안 우리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제가 하겠다고?-

-재미있어 재미있어-

자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키득거리는 괴상한 목소리에 리스칼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물론 정신체가 땀을 흘리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이곳은 진의 영역. 정확히 이야기 하여 진의 법칙이 중심이 되는 세계인지라 이곳에 침투하면서 리스칼은 진의 법칙에 대응하기 위하여 자신의 정신체에 육체를 부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상상속의 육체라고 하지만 염연히 이곳 진의 세계에서 그녀는 육체를 가진 존재. 따라서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뭐 중요한 것은 그따위 것이 아니었으니 리스칼은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너희는 누구냐! 왜 이 인간의 몸속에 있는 것이지? 이미 이곳은 내가 장악했다! 내가 먼저 들어왔어! 그러니 누군지 모르지만 이곳을 떠나!-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수만년? 아니 그 이상을 살았던 그녀로써도 처음 겪는 지금의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한 상태. 지금 주변에 보이지 않은 이들은 그녀가 들어온 인간의 다른 인격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지금 이 인간의 육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인격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의 것이 아닌. 

그런 그녀의 허세를 느꼈을까? 사방에서 키득거리던 존재들의 움직임이 멈춰졌다.

-네가 이곳을 장악 했다고?-

-우리들도 못한 것을 네가?-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

-.......-

-재미없어!-

키득거리며 리스칼의 말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두던 존재들은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그녀를 비웃었다. 그리곤 잠시의 침묵. 그 뒤에 나오는 선이 굵은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황량하기까지 한 진의 무의식의 영역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쪽 지평선 끝에서 반대편 지평선 끝까지 일직선의 선이 그어진 것이다. 그리곤 천천히 그 선은 벌어졌다.

-뭐….뭐야!-

그와 함께 리스칼의 온 몸을 죄이는 살기. 그녀가 태어나 이제까지 본 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그들 중 평범한 이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어둠의 신중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차드바스까지 만난 그녀였지만 지금 느껴지는 살기는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순간의 빈틈을 보인 차드바스의 정신체의 일부분을 뜯어먹기까지 했던 그녀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오로지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큭-

그녀는 살기를 이기지 못하고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다행이 그녀가 내려온 계단이 멀지 않아 그녀는 자신이 내려왔던 계단을 재빠르게 올라설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까? 진의 정신세계의 법칙을 피하기 위해서라지만 오랜만에 물리적인 법칙으로 만들어진 육체를 이용하니 가쁜 숨을 숨길 수 없었다. 물론 그녀의 육체가 산소를 소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기억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왜 끝이 안 나지?-

진의 심층구석까지 내려왔다고 하지만 계단이 생각보다 끝이 나지 않자 리스칼은 달려가는 걸음걸이를 멈추곤 숨을 고르는 틈을 이용하여 계단 밑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그녀는 자신의 두 눈에 보이는 광경이 믿어지지 않은지 부릅떴다.

그곳에는 대지를 가로지르는 틈이 넓게 확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은 백색으로 가득 찼다. 그런 백색의 틈 중앙에는 파충류의 그것으로 보이는 눈동자. 그것은 분명 웃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돼! 인간의 정신세계에 이런 것이 살다니!!-

경악석인 그녀의 외침에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그녀는 빠지는 다리 힘에 안간힘을 써 가며 달렸다. 아무리 그녀가 인간의, 아니 모든 생명체의 정신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눈앞의 거대한 존재는 그것자체로도 그녀의 깊은 곳에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이제까지 보아온 최강의 존재. 차드바스를 가볍게 능가해 버렸으니 그 괴물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들어온 인간을 지배하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이성 저 멀리 사라져 갔다. 이곳에 오기 위하여 자신이 가까스로 모을 수 있는 영혼의 힘이 대부분 소비되었다는 사실도 사라져 갔다. 오로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 뿐. 허나 그녀는 곧 자신이 들어온 이곳이 만만하게 도망칠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너!-

계단의 끝에서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 검정색 양복차림의 진이 뒷짐을 진체 무표정한 얼굴로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너의 심층구역이야! 무의식의 장소라고! 자신의 의지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이 무의식의 장소라고 할 수는 없어! 그런 곳에 어떻게 올 수 있는 것이야!!- 

절규에 가까운 그녀의 외침에도 눈앞의 존재. 진은 그녀를 무표정으로 주시할 뿐이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까? 리스칼에게는 억겁의 시간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손해야 손해. 고작 그까지 힘으로 나를 차지하려 하다니. 결국 봉인을 풀 수밖에 없었잖아.”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진은 팔짱을 끼곤 자신의 턱을 문질렀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 그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 남궁진 오랜만이야-

-아니야 이제는 아이샤르진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응? 난 현영이라는 이름이 좋은데-

-화영도 좋고말고―

-그보다 이 녀석은 어쩌지? 먹어버릴까? 놓아줄까?―

리스칼을 둘러쌓으며 재잘대던 목소리가 이번에는 진의 주의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주위의 반응에도 관심이 없는지 묵묵히 리스칼만을 바라보던 진은 돌려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녀석은 나오지 않은 것인가?”

진의 물음에 허공에서 재빠르게 답이 돌아왔다.

-그 녀석은 몸집이 너무 크잖아-

-맞아 맞아 열려진 문으로는 턱도 없지-

-그 녀석 울고 있었어. 주인과 너무 떨어져 있다고-

-맞아 맞아 울렸다 울렸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허공의 목소리들은 키득거리며 진이 묻지 않은 내용까지 주저리주저리 내뱉었다. 그것이 시끄러운지 진은 허공에 손사래를 치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리스칼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네놈은 뭐냐! 인간? 아니 그보다 생물인가!-

진의 그런 모습에 리스칼은 소리쳤다, 허나 그것이 허세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으니 그녀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러왔다. 그에 진은 처음으로 표정을 만들어 냈다. 환한 미소, 너무나 아름다워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진하게 지은 그는 조요히 몸을 돌렸다.

“먹어치워!”

진의 말이 시작이었을까? 그가 꺼낸 말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리스칼은 회색빛의 하늘에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그곳에도 역시 지상과 같은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으로 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지에 생긴 금과는 질적으로 달랐으니 서서히 벌어지는 그 틈 안을 가득 매우고 있는 것은 백색의 거대한 이빨. 온 하늘을 가득 매울 것 같은 그 거대한 입과 자신을 주시하는 거대한 눈동자를 보며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한 인간의 심층의 한구석, 무의식의 영역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이곳은….

-괴물의…-

덥석

뒷말을 잇지 못하곤 그녀는 하늘에 열린 거대한 입에 몸의 일부분을 물어 뜯겼다.

우적우적.

자신의 일부분이 잔인하게 괴물의 입속에서 먹히는 것을 그저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리스칼은 자신의 육체가 입맛에 맞는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달려드는 거대한 괴물의 입을 절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뭐…뭐야”

절망 가득한 표정을 지은 이는 리스칼만이 아닌지 진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주위의 일행들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그녀들은 진을 걱정하는 마음 따위는 조금도 없었으니 그저 지금의 괴이한 광경에 떨었다. 

그것의 전조는 진이 자신의 어깨를 움켜쥐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괴이한 느낌에 주춤하던 일행들 중 뒷걸음질치던 네리아는 발밑에 무언가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그리곤 지금 자신이 넘어진 자리가 진이 흘린 피의 웅덩이라는 것을 깨닫곤 서둘러 일어나려하였다. 하지만 바닥을 집는 순간 느껴지는 뭉클거리는 느낌. 있을 수 없는 그 느낌에 네리아는 딱딱한 얼굴을 하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뭉클한 느낌의 정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인간의 손. 여성처럼 가냘픈 모양을 하고 있는 그것은 분명 손이었다. 물론 검붉은 피로만 이루어진 손이 있다는 가정에서의 이야기지만.

“꺄아아아!”

검정색에 가까운 검붉은 피 속에서 태어난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파문하나 없던 진의 피 웅덩이. 그곳에서는 지금 수많은 천천히 솟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은 겉모습으로만 보았을 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마치 꽃봉오리가 피어오르는 모습, 허나 그것은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네리아의 공포심은 더욱 강렬했다. 

덕분에 네리아의 비명소리로 자신들의 주변에 일어나는 괴이한 모습을 알아차린 일행들은 서둘러 피의 웅덩이에서 멀어졌다. 그리곤 직업 때문인지 차드바스의 검에 그럭저럭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키이에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그녀라면 지금의 괴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하나 그녀로서도 눈앞의 모습이 차드바스의 검에 의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기에 나직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피 웅덩이에서 만들어진 손은 점점 숫자가 늘어가기 시작하여 이제는 중심이 되는 진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화사한 꽃과 같이 피어오르던 손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은 이윽고 바닷가의 수초처럼 하늘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이 흘린 피의 웅덩이뿐만 아니라 그가 흘린 핏방울까지 그 검붉은 손들어 생성되었고 그것은 일행들의 옷에 묻어있는 핏자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치 자신의 몸속에 있었던 일부분이 솟아나는 것처럼 그 두려운 모습에 일행들이 필사적으로 옷을 벗어던졌다.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녀들의 피부에 뭍은 피에서는 그 꺼림칙한 손이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저기”

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들의 마음에는 다시 한번 경악성 섞인 네리아의 외침에 철렁하고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되었는지 모든 검붉은 핏방울에서 만들어진 그 손들은 누군가가 늘리는 것처럼 하늘높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어느 지점까지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팔을 안쪽으로 꺾어 밑으로 내리 꽂혔다. 

목표는 진이 중앙을 관통한 차드바스의 검.

그와 함께 이제까지 진의 몸속으로 파고들기에 여념이 없던 차드바스의 검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 전의 일행들을 놀리듯이 천천히 진의 몸속으로 들어가던 모습과는 달리 무언가에 쫓기듯이 허둥대는 것이 눈으로 보일 지경. 이윽고 그 검 위로 수많은 핏빛의 손들이 내려앉았다. 

-까아아아악!-

검 표면에 핏빛의 손이 내려앉을 때마다 환영으로 보였던 리스칼의 비명과 동시에 고통에 의해선지 검은 진의 상처를 파헤치며 마구 날뛰기 시작했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는지 사방을 가득 매운 손들은 차드바스의 검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는 진. 허나 조금 전까지 진의 생존을 위하여 노력하던 일행들은 조금 전까지 일어난 불길하면서도 아름다운 그 모습에 아무런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부처님 그런데 책 내용 많이 바뀌지 않았나요?

1권의 내용이 사실 본 글 그대로 나갔다면 1권반입니다, 덕분에 많이 사라졌지요, 가령 프롤로그나 처음 루미나가 오토바이타고 오다 시간에 늦은 부분도 사라졌습니다. 

대신 전쟁신도 조금 달라졌고 기간테스 출격신도 넣었고…. 우물 주물(나만의 생각이었나? ^^)

음음 3권부터는 더 많은 내용을 수정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이크님 이번에 확실이 오타의 회피 신공을 습득하시는(퍽퍽퍽!!)

쿨록, 수정하겟숩니다.

짧지만 오늘은 이만.

리플과 추천은 작가님들의 희망입니다, 제 글이 아니라도 해도 다른 분들 글을 읽으실 땐 꼭 남겨주세요,

문제 있음 리플^^

정말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3주가 넘었나?

그동안 기밀고사와 3권 수정. 집안일과 무기력증이 저를 공습한 다음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음 왠지 핑계가.... 죄송 죄송 _(_ _)_

선작수가 많이 떨어졌네요. ㅠ.ㅠ

일단 외전부터 시작입니다. 

외전은 총 2편이고 그 다음 편부터 본 내용이 올라갑니다, 하지만 무기력증의 사격 속에서 글을 써서인지 글 내용도 지루하기 그지없네요. 이번은 그냥 넘어가 주시길 간절히 비나입니다.

아! 그리고 이번에 글을 올리고 180편 까지 자진 폭파합니다. 폭파일은 내일 밤 12시이니 참고해 주세요.

( 지금 약간 술을 먹은 상황이라 머리가)

그럼 일단 본편 들어가기 전, 제목 그와 그녀의 만남 1편 올라갑니다.

이편은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1권에 이데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폭 삭제되어 땜빵용으로 적은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것이 많은 것 같아요, 프롤로그도 다시 고쳐서 외전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삭제와 마찬가지로 줄어들었거든요^^ 

--------------------------------------------------------------------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파이프들. 그리고 그 사이를 누비는 불규칙한 전선들, 침침한 전등이 모든 곳을 비추지 못할 정도로 넓은 곳이지만 허술하기 그지없는 시설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탱크들. 그리고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그곳에서 가장 외진 곳. 보통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것이지만 저승사자가 코를 막을 정도로 진하게 풍겨오는 죽음의 냄새가 그곳에 감돌았다.

“이곳인가?”

“예 그렇습니다. 헤헤…. 그보다 이곳이 폐쇄되면 제 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조금만 신경을 써주시면….”

“쓸 때 없는 말이다. 그대가 지금까지 한 일을 판단하여 결론을 내릴 것이지.”

보글보글

‘뭐지?’

수많은 탱크 중 하나. 

자신이 내뿜는 기포들에 가려진 시야 너머로 보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니 들려 하였다. 허나 며칠 전 척추를 빼내는 실험을 한 관계로 그녀의 몸은 한 치의 움직임도 보일 수 없었다. 빼낸 척추대신 대용품으로 금속조각을 집어넣었지만 그것과 신경이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궁금증이 날 수 밖에 없으니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극비의 시설로 온갖 끔찍한 실험들이 자행되고 있는 곳. 가령 산체로 해부를 하거나 자극에 대한 반응을 연구한답시고 마취도 하지 않고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팔다리를 자르는 것은 이곳에선 흔한 일이었다. 덕분에 아무리 국가에서 밀어주는 시설이라 하지만 비인도적이 실험을 공공연하게 벌일 수는 없었으니 그녀가 볼 수 있는 이들은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리다니…. 혹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며칠 전 그녀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연구원에게 자신들이 있는 이데아 연구소의 폐기안이 정부승인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생 지금의 탱크 안에서 있었던 이였지만 그녀는 수많은 이데아 중 정보처리에 관한 연구의 실험체…. 덕분에 그녀는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자신들이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 그리고 지금의 처지가 어떤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연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존재.

자신의 어머니의 몸속이 아닌 단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존재. 

이데아. 

붉은 눈동자와 바코드만으로 인류와 구별할 수 있는 인공 생명체.

그녀들이 속한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집단. 

나기와 전쟁 시 부족한 인원수를 매우기 위한 존재들. 

허나 이미 그 존재들은 나기와의 전쟁 후 폐기된 상태이다. 기술의 발달로 전쟁의 핵심인 전함들은 점점 무인화 되어 가고 그에 따라 많은 이들이 군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곤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지구인들도 쫓겨나는 와중 이데아들이 있을 자리가 있을까?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은 전쟁이 끝나는 것에 평화의 안식도 얻지 못하고 그 즉시 폐기 되어버렸다. 필요할 때 다시 만들면 되니까. 유지비만 많이 드는 그들을 남겨들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그 당시 지구인들이 느끼는 이데아들이란 생명이 아닌 고작 예쁘장한 생체컴퓨터에 지나지 않았으니 폐기하는 그들이 손길은 한 치의 망설임 따위가 있겠는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울부짖는 이데아들을 군인들은 냉정하게 폐기하기로 결정한 폐선에 집어놓고 항성으로 돌진시킨 것이 그 당시 가장 일반적인 폐기 방법이었다. 뭐 그렇게 죽어간 이데아들은 매우 행복한 죽음. 비록 죽음 직전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했지만 죽는 순간만큼은 고통 없이 죽었으니까. 상당수의 이데아들이 산체로 매몰되거나 지상병기의 실험에 동원된 다음 한줌의 비료로 분해된 것에 비한다면 말이다.

물론 초기 이데아 폐기계획에서는 그들을 민간인에게 판매하여 돈을 만질 생각도 있었다. 허나 군의 핵심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그들을 민간인에게 판매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는 판단을 내린 군 상층부덕분에 모든 이데아들은 산산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일부 양심적인 군인에 의하여 죽음의 손길에서 도망친 이데아들도 극소수지만 존재했다. 그러나 탄생한 시점부터 전투와 전함에서 살아온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층의 비참한 삶. 여성체의 경우 몸을 팔았고 남성체의 경우 불법적인 일을 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도망치게 한 군인들도 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는 없으니까. 덕분에 그들은 최하층 빈민이 되어 굶어죽던지, 불법적인 일에 휘말려 총알받이가 되거나 감염,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챈 정부의 비밀요원들에 허무하게 죽어갔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자 이데아들에 관한 자료는 그저 아이들의 동화 속에서 나 나오는 요정이 되어버렸다. 허나 그 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극비의 이데아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니 바로 지금 그녀가 있는 이데아 연구시설. 

많은 것들이 극비로 이루어진 이곳은 군부의 실용화된 이데아들을 완전 폐기로 만족하고 있을 때에도 살아남은 이데아들이 있었다. 바로 이데아들을 만들기 위하여 생산한 프로토타입의 존재들. 우습게도 실험체인 그들은 상용화된 이데아들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하였고 그들이 정부의 명대로 폐기되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것이다. 지금 탱크안의 그녀도 프로토타입의 이데아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왜 그들이 살아남았을까? 그것은 그들의 실험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짧은 실험은 단 몇 시간만으로도 끝이지만 긴 경우에는 수십 년이 결리는 것도 흔했다. 연구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폐기할 수는 없는 법! 덕분에 죽음을 갈구하는 그녀들은 어쩔 수없이 지금까지 살아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끝. 

이미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는 탱크안의 그녀로써는 폐기안은 환영할 일이었다. 아니 도리어 폐기할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는 연구원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들은 뭐란 말인가? 인공적으로 태어나서 온갖 실험에 시달리고 간간히 연구원들의 욕정해소에도 동원되고. 짐승의 그것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자신들이 삶에 미련이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아니었다. 

연구원들이 사라지고 조명등이 꺼진 연구실, 단지 상태확인을 위하여 탱크 저 밑바닥에서 비추어지는 녹색의 빛, 그 차디찬 탱크 속에서 눈으로 보이는 모든 곳의 이데아들은 항상 한결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죽여줘. 죽여줘. 나를 이 고통 속에서 해방시켜줘.

글도 모르고 탱크 안에 있기에 말도 통하지 않지만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아마 자신도 그들과 같은 눈빛을 지니고 있으리라. 

그런 그녀에게 프로토타입 이데아들의 폐기는 진실로 축복할 일인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듣는 희망적인 소식인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 척추를 제거하는 실험에도 웃으며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새로운 목소리라니…. 더욱이 그 목소리에 대답하는 이는 이 연구소의 소장. 밤마다 아름다운 이데아들만 골라 사라지는 돼지였다. 경멸스러운 존재, 허나 그는 이곳이 왕! 그런 자가 존대를 해주는 이가 있었다니. 혹시 이 시설의 폐기안이 최소된 것인가? 

불안한 마음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보이지 않을 눈앞의 존재에게 증오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 그녀의 전부였다.

“재미있는 눈을 하고 있군.”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아름답다는 개념조차 없는 그녀가 들어도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그와 함께 열어지는 탱크의 출입구. 그리고 가냘픈 손 하나.

“무슨 짓이십니까? 그 실험체는 중요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만 두십시오. 그 실험체는 탱크 안에서 밖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면역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소란스러운 주위의 반응이 주위를 시끄럽게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겪는 그런 소란스러운 반응에도 그녀는 무엇 하나 할 수 없었다. 척추에 가해진 실험도 실험이었지만 순간적으로 노출된 공기에 폐 가득 들어있는 산소액이 역류했기 때문이었다.

“우액.”

그리 좋지 않은 소리와 함께 그녀는 폐안의 용액뿐만 아니라 눈물, 콧물, 그리고 위에 들어있는 유동식까지 토해내 버렸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녀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주인공의 몸에도 오물이 묻을 수밖에 없었으니 몇 번의 실험 외에는 겪어보지 못한 공기 중에 노출된 뒤라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그녀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자신을 포함한 실험체들은 생물이 아니었다. 동물, 아니 물건인 것이다. 그들로써는 아무런 법적인 하자 없이 자신들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더욱이 주위의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대부분 이들이 눈앞의 존재에게 존대를 하고 있으니 자신을 움켜쥔 이는 소위 높으신 분. 그런 존재를 더럽혔다는 사실은 엄청난 벌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물론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아니 환영할 일이지! 하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을 조아리는 시간, 허나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그의 손에 잡혀 있는 자신의 머리카락, 그것에 더 불안감을 느낀 그녀는 겁먹은 눈빛으로 눈앞의 존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분노라는 것을 느꼈다.

“…눈빛이 죽었군. 내 착각이었나? 단지 쓰레기잖아?”

쓰레기?

자신을 잡고 있는 이가 내뱉은 말에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누가 쓰레기란 말인가? 멋대로 만들어 놓고 멋대로 갖은 실험 다 한 다음 이제는 쓰레기 취급한다는 것인가? 네놈들이 뭔데!! 네놈들 뭣대로 남을 쓰레기라 판단하지 말란 말이다!

"툇”

순간적인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정말 놀라운 일을 저질러 버렸다. 자신을 잡고 있는 이의 얼굴에 입안 가득 모여 있는 오물을 뱉어낸 것이다. 그녀가 내뱉은 오물을 뒤집어 쓴 그의 곁에 있는 검은 양복의 이들은 분노의 얼굴로 품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 그들의 기세에 주위에 있는 연구원들은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는 그 존재는 그런 그들을 손을 들어 제지한 다음 지저분한 오물이 서서히 흘러내려도 묵묵히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크….누가 쓰레기냐! 죽여. 죽이란 말이야!!”

쇳소리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을 쓰레기로 부른 눈앞의 존재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했다. 존재의 이유를 단지 쓰레기로 표연한 그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존재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오물로 더럽혀진 얼굴이었지만 그의 웃음은 정말 아름다움 그 자체. 그녀는 그 웃음을 보면서 과거 한 연구원이 읽어준 동화책이 떠올랐다. 하연 날개를 가진 천사, 허나 눈앞의 존재는 그 천사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었으니….

콰당!

“크윽”

움켜쥔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열어진 탱크의 모서리에 내리 찍어 버린 것이다. 순간적인 그의 모습에 검은 양복을 입은 자들도, 실험체가 다칠까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연구원들도, 그리고 직접적인 당사자인 그녀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 모서리에 찍힌 충격으로 피부에 손상을 입었는지 붉은 액체가 그녀의 시야를 가릴 때 다시 한번 엄청난 충격이 그녀의 머리를 울렸다. 그녀의 머리를 잡고 있는 존재가 다시 한번 탱크의 모서리에 그녀를 집어 던져버렸다. 그에 그녀가 들어있던 산소액에 붉은 물감이 점점이 수놓아 졌다.

“재미는 있었지만 훼손이 심하군. 며칠의 시간을 줄 테니 복구해 놔.”

“하지만 이 실험체는 이미 척수제거 수술을….”

허무감 가득한 목소리. 그리고 돼지 같은 연구소 소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겠지. 어차피 폐기할 것이라 그런지 척추를 무자비하게 뜯어 낸 덕분에 대용품을 넣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신경은 완벽하게 일그러진 상태. 뭐 고칠 마음이 있다면 못 고칠 것은 없지만 비용이 만만치 알게 들 것이다. 이미 폐기안이 승인된 존재에게 그런 돈을 쏟아 부을 이가 있을 리가 없지.

그녀는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한 짓을 생각하면 죽음은 정해진 사실, 이제 정신을 잃으면 이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사리질 것이란 생각에 그녀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포근함을 느꼈다. 하지만 왜일까? 영원이 이어질 것 같은 포근함에도 왠지 조금, 아주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일어났나?”

낫선 천장. 두 번 다시 떠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그녀는 백색의 천장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이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을 때 들렸던 목소리에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허나 몸이 말이 듣지 않는지 살짝 일으켜졌던 그녀의 몸은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이내 처음 느껴보는 푹신푹신한 침대의 감촉을 느끼며 구겨져 버렸다.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아. 워낙 건드려 놓은 부분이 많아서 신체의 대부분을 다시 만들어야 했으니까. 본래의 신체와 새로 만들어 놓은 신체끼리 아직은 불완전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니 지금은 얌전히 쉬도록” 

처음과 차이가 없는 억양, 지루함 가득한 그 목소리에 그녀는 움직이지 않은 목을 가까스로 움직여 목소리가 나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초라한 나무의자에 앉아 느긋한 자세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름다운 존재가 있었다. 바로 그녀 자신을 기절시킨 장본인.

“왜 죽이지 않는 것이지?”

“왜 죽고 싶나? 죽여줘?”

“........”

그의 질문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기절하는 순간까지 죽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왜 나는 죽어야 하는가? 화면으로만 보았던, 글로만 읽었던 태양을 보고 싶다. 남들처럼 그 밝은 태양 아래서 남의 시선 보지 않고 마음껏 달리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실험체. 이데아도 아닌 단지 실험체야. 그런 우리들이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바로 죽음이지”

기절하기 전 자신을 쓰레기라 부른 그를 증오를 담아 바라보았지만 한차례 당한 후 왠지 그녀는 그에게 반감이 생기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답은 없었다. 단지 그의 눈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들뿐. 

그동안 그녀를 처음 보는 이들은 인조생명체라는 사실에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그 존재가 실험체라는 것을 알 곤 그 다음으로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실제로 행한 이까지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존재는 자신의 벗은 몸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하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얼굴. 단지 남아있는 것이라곤 따분한 기색 가득했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비웃어도 좋아. 마지막 가는 길에 누군가에 말하고 싶은 심정일지도 몰랐다. 

“처음 본 동화책은 신데렐라, 항상 꿈꿔왔지. 나도 언젠가 동화책의 마법사를 만나 왕자를 만날 것이라…. 하지만 그것은 돼지 같은 소장의 밤 시중을 들면서 산산이 조각났지. 더 이상 나는 그 동화책의 신데렐라가 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죽고 싶다는 것인가?”

여전히 따분하다는 듯한 목소리, 하지만 그녀는 그 목소리가 왠지 좋았다. 그 목소리엔 자신의 말을 실험체라고 비웃는 듯한 기색 따윈 조금도 없었으니까.

“글쎄.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나 할까? 꿈이 깨진 이후로 남은 것은 오로지 몸을 갉아 먹는 실험과 실험. 짐승같이 사육되면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체념 가득한 목소리.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에 말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 존재는 처음으로 비웃음을 던졌다.

“살 이유가 없다고? 내가 왜 너를 그곳에서 꺼낸 것인지 아는가?”

“…” 

“눈빛이 마음에 들어서다. 그 모든 것을 증오하는 죽음의 광기, 그 순수하기까지 한 광기를 보고 널 꺼낸 것이다. 그런 이가 살 이유가 없다고?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 군”

담배에 의한 백색의 연기가 그 존재와 그녀의 시야 사이를 가로 막았다.

“…증오. 그래 증오라. 그래 증오스러워! 나를, 아니 우리를 이렇게 이용해 먹는 너희들 지구인이 증오스러워! 하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몸 하나 남은 것이 없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이야! 우리에게 남겨진 저항수단은 단지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 그것을 너 따위가 알아! 아냐고!”

눈물이 흘렀다. 자신의 눈물조차 닦아내지 못하는 자신의 몸. 그리고 아직도 그 탱크 안에서 죽음을 갈구하는 자신의 동포들. 처절한 음색. 그 속에는 증오와 슬픔이 같이 묻어있었다.

“…그럼 힘을 원하는 것이냐? 그따위 힘 내가 줄 수도 있다.”

허나 피가 토하도록 부르짖는 그녀의 외침에도 눈앞의 존재는 다시 무감각하고 따분한 음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힘? 물론 원하지. 하지만 내가 바라는 힘은 너 따위가 줄 수 있는 힘이 아니야. 너도 높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모든 지구인에게 복수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싶으니까! 그런 힘을 줄 수 있어? 줄 수 없다면 입 닥치고 나를, 우리를 죽여줘!!”

그녀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 속에는 비웃음 가득했다. 허나 그런 그녀의 외침에 그 존재는 키득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한동안의 침묵. 깨질 것 같은 그 침묵을 치워낸 존재는 그녀의 눈앞에서 담배연기를 뿜어대고 있는 존재였다. 

“지구인이라. 고작 그 정도의 힘을 갈구하면서 그 정도의 증오를 뿜어대는 것이냐? 하찮아. 통이 작다고”

“…뭐?”

“원하는 힘을 주겠다. 고작 그 정도 힘 따윈”

마치 백만장자가 어린 아이에게 사탕하나 사 주겠다는 식의 발언에 그녀는 할말을 잊었다. 그만큼 그가 내뱉은 말은 충격적. 허나 코웃음을 치곤 자신을 놀리는 발언으로 넘어가기에는 왠지 그 존재가 내뱉은 말이 그녀에겐 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고작 그것이냐? 그 정도야 얼마든지 들어주겠다는 말이다.”

“…그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도대체 내가 원하는 힘이 하찮다고 말하는 네가 추구하는 것은 뭐지?”

자신의 지구인에 대한 복수가 통이 작다는 소리를 듣자 그녀는 눈앞의 존재가 원하는 바를 듣고 싶었다. 그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데 하찮은 것? 그녀는 자신의 말에 그가 내뱉을 말을 기다렸다. 그저 알량한 인류애를 운운하며 자신의 생각을 설득할 것이란 예상과 함께….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전혀 예상 밖의 답. 아름다운 얼굴로 그녀의 귓가에 다가온 그의 작은 입이 소근 거렸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되는 대 악당.

대 마왕!

대 악신! 

지옥, 저 밑바닥에서 하늘을 보고 비웃으며 전 우주의 생명체들을 지옥 저 밑바닥으로 구겨 처 놓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목적이다. 덤비는 놈은 다 죽인다. 가로막는 것은 다 부셔버린다. 죽이는 자에 예외는 없다, 지구인? 노인? 여자? 아이? 도덕과 선 따윈 개나 줘버리라지. 내 앞을 막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곤 지옥의 구덩인 안으로 산체로 집어넣어 뜯어먹어주마!” 

조금 전의 나른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넘실거리는 잔혹한 광기. 그녀 자신이 뿜어낸 증오 따윈 화산 앞에 성냥불에 불과할 정도의 진득한 광기의 눈동자였다. 지루하고 느긋한 모습에서 갑작스럽게 변한 그런 그 모습에 그녀는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몸이 원망스러웠다. 도망가지 못한 그녀의 육체는 정신의 통제를 벋어나 자신도 모르게 고급스러운 침대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그녀는 관심도 없었다. 부끄러움도 없었다. 단지, 단지 지금은 그저 눈앞의 존재의 눈빛을 피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억울하겠지. 원하는 힘을 주겠다. 이대론 너희들은 그저 박제가 되어 어느 장식장 한구석을 장식되는 운명이다. 지구에 복수라고? 내가 하는 일은 틀림없이 지구정부와 충동한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내 앞을 막는 자는 다 죽여 버린다. 충분히 복수가 될 만큼…. 그러니 내가 준 힘으로 대 악당이 되어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여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라! 피와 살을 뜯어먹는 괴물이 될 자신이 있다면 너희들을 살려주겠다. 자신의 몸속에 있는 증오의 악을 위해서 자신 스스로 괴물이 되면 힘을 주겠단 말이다,”

“…혀. 현실성 없는 이야기!”

광기 가득한 눈앞의 인물에 그녀는 그 공포에서 벋어나기 위하여 자신의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 눈앞의 존재는 광기 가득한 웃음을 지을 뿐.

“키득키득. 현실성? 너는 그런 것을 따진단 말인가? 승산이 없으면 죽은 듯이 처박혀 있으란 말인가? 뒤를 생각하는 것 자체로 복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웃기지 마라! 승산 따윈 관심도 없다, 단지 난 행할 뿐이다. 난 뒤 따윈 생각도 하지 않는 우주 최대의 바보 대악당이지.”

자신의 말을 마친 그 존재는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곤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 충격에 간편한 환자복이 찢어지고 아직 낮지 않은 몸의 상처에서 붉은 핏줄기들이 그 벽에 튄 모습이 가련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존재는 일말의 주저함이 없었다.

“컥”

“너희들이 원하는 힘을 주겠다. 그리고 내 말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개가 되는 것이다. 대답해라. 나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한. 한 가지 물어보지. 왜 우리지. 더럽혀지고 구겨진 존재들인데 왜 우리지”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그녀는 꼭 물어봐야 할 것을 아까스로 내뱉었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실로 간단했다.

“눈이다”

“…눈?”

“그래! 눈. 사람은 많다. 하지만 괴물을 키우는 존재들은 거의 없지. 이곳에 오면서 탱크안의 들어있는 프로토타입의 이데아들의 눈을 보니 닮았더군. 내 부하들과. 내 동지들…. 그들은 전부 다 미치광이들이다. 괴물들이지, 증오를 안주 삼는 개자식들이란 말이다. 그런 놈들만이 내 부하의 자격이 있다. 그리고 너희 눈에서도 그것을 보았지. 그것은 세뇌나 억압으로 이룰 수 없는 진정한 한(恨)! 그것으로 충분하다. 너희가 실험체도 쓰레기고 그따윈 관심도 없어! 단지 미쳐버린 괴물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나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

주루룩.

처음이었다.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사람. 자신에게 오라 손을 뻗는 사람. 자신을 실험체가 아닌 하나의 존재로 보아준 사람. 왜 눈앞의 존재에게 동질성을 느꼈는지 그녀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자신들을 차별 없이 바라보는 눈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자신들과 같은 증오를 먹이로 하는 존재. 그 눈은 자신들과 같은 무관심과 텅 빈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깔깔깔깔.”

처음으로 웃어보았다. 상처로 인한 통증과 눈앞의 존재에 의한 격한 움직임으로 엉망이 된 내장에 의한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그녀는 웃었다. 눈앞의 존재를 따라가 볼까? 이대로 죽는 것은 원통하잖아! 억울하잖아! 저자를 따라가 괴물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거짓이라 해도 상관없어. 죽을 각오를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잖아? 누군가는 길동무로 같이 떠날 수 있겠지. 혼자 죽는 것보다야 그편이 훨씬 나아! 그래! 그래! 그래….

“좋아. 괴물이 되어주지. 개자식이 되어 줄께! 대신 네가 한 말이 거짓이나 자신의 말을 어길 때는 내가 너를 죽일꺼야!”

“키득키득. 잘 생각했다. 이런 곳에 죽을 수야 없겠지. 죽어도 혼자 죽는 멍청이이라면 이쪽에서 사양이다. 잘 왔다! 이 죽음과 광기에 세계에! 피와 고통의 끝없는 길에!”

한참을 그렇게 광기 가득은 웃음을 짓던 그는 벽에 처박힌 그녀를 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힘없이 인형과 같이 침대에 쓰러지는 그녀. 그런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는 그 존재는 돌연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이름이 없겠지?”

물론 이름이 있을 턱이 있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녀는 숫자로 불렸다. 

2-5664-45

그것이 그녀를 지칭하는 명칭. 하지만 그것이 눈앞의 존재의 마음에 들지 않았는가 보다. 그 존재는 그녀 자신의 생각도 듣지 않고 자신 멋대로 이름을 지었다.

“그래! 넌 앞으로 에프로슈네다!”

“에… 에프로슈네? 풋 이상한 이름”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처음으로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을 받은 것이다, 말라붙은 눈동자에 한방을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신에게 이름을 준 눈앞의 존재.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결심했다. 자신을 속인 것인지 모르지만 자신은 눈앞의 존재를 따르겠다고. 그전에….

“당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는데?”

그녀의 말에 언제 자신이 광기를 내뱉었냐는 듯이 지루하고 느긋한 자세로 처음의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그 존재는 물고 있는 담배를 잡곤 진한 연기를 뿜어냈다.

“이런 이런 큰 실수를 했군, 난 아이샤르 진. 그래. 앞으로 나를 부를 땐 마스터라 불러도 좋다.” 

사랑고파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일단 지구는 슈렘의 구성원들과 친하고 싶어합니다, 가령 우리가 유럽의 어느나라랑 싸웠다고 해서 전 세계에 들을 돌릴 수 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지구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전 우주인은 적이다! 라고 하며 무장한 병력을 이끌고 진격합니다, 그럼 지구정부가 선택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아마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자신들이 진압하려고 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어설프게 다른 종족을 건드렸을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지구와 그 종족간의 전쟁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맨 처음의 싸움은 우주인보다는 지구정부와 싸움이 되지요,

그리고 에프로슈네가 진의 선택을 받아들인 것은 얼마만큼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에서 시작했습니다. 일단 진이 아니라면 에프로슈네, 그리고 모든 실험체들은 죽을 것이 확실합니다, 

만약 운이 좋아 살아남는 다고 해도 그런 그녀가 지구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고작 폭탄을 사용하는 테러리스트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얼마나 죽을 까요? 이 당시 지구는 나기와 승리한 다음 아직은 데라와 싸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승전국으로 승리의 기쁨과 함께 나라의 안과 밖이 급격하게 신장하는 시기이지요, 더욱이 아직 사람들 또한 지금처럼 서로 의견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완벽에 가깝게 결속되어 있으니까 그녀가 지구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몇몇 길동무를 동반한 자살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을 따르면 그 몇몇의 길동무가 억단위가 넘어갑니다, 아주 가볍게... 진 이자식이 같은 종족이라고 봐줄놈도 아니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까요? 물론 지금은 단지 진의 말이 홀라당 넘어가 그당시의 기분에 맞추어 선택한 것이지만 진의 진정한 정체를 안다면 마음속으로 충성을 맹세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만 앞세운 것이 아닌 엄청난 준비상태를 보면 진이 얼마나 일을 크게 일으킬 것인가 알게 될 것이니까요. 라는 전제로 글을 썼는데....오류일까요? 음 수정을 해야하나??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진의 모습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일행들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조금 전 보았던 피의 웅덩이의 그 기괴한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지금 진에게 느껴지는 것은 이전과 전혀 다른 이질감 덕분이다. 

“하아아아아”

천천히 숨을 내쉬는 진의 입가에선 마치 추운 겨울에서나 어울릴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허나 그것은 흰색의 수중기가 아닌 검붉은 색의 불길한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일행들의 얼굴에는 자신들도 눈치체지 못하는 두려움이 녹아들었다. 이제까지 진이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 따윈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아니 이제는 어찌 자신들이 지옥의 대마왕의 봉인을 푼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공통된 마음이었다. 

“괘…괜찮은가요?”

그래도 지은 죄가 있었던 심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온 정신을 다 동원하여 진에게 다가간 네리아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차드바스의 검에 정신을 지배당해 진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으니 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아니라고 해도 미안한 감정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에 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려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흠칫

그런 진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서는 그녀. 은근히 풍기는 기운에 설마 했지만 진이 자신을 바라보자 그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도 목과 가슴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 휘청거리고 있지만 검에게 당하기 전의 진과 지금의 진은 외적인 상처를 떠나 분명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내용물이 바꾼 것처럼…. 

더욱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눈동자. 검정색의 흑진주와 같은 아름다운 눈동자가 마치 피에 물든 것처럼 불길한 붉은 색을 띄고 있으니 그 시선을 직접적으로 받는 네리아는 물론 자신의 신성력이 반발력에 의하여 튕겨 나간 것에 질문을 하려던 세이시나조차 입을 다물었다. 이제까진 진의 모습이 짙은 살기를 뿜어대지 않으면 그저 아름다운 예술품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그 존재자체로만도 충분히 두려움을 뿜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차드바스의 검과도 그 근본이 달랐다.

“아! 난 괜찮다. 이 녀석도 나를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 같으니까” 

한동안 무심이 자신 앞에 선 네리아를 바라보다 진은 손사래를 쳤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은 목소리. 그런 목소리에 네리아는 가볍게 떨었다. 

하지만 꺼낸 말과는 달리 서서히 아물어가는 상처를 만지는 진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화가 났다. 그곳은 자신에게 상처를 낸 차드바스나 네리아에 관한 분노가 아닌 자신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다. 이제까지 이곳에 내려와서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 적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안이한 생각으로 지금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이 아닌가? 진은 봉인이 풀린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봉인은 자신의 계획에 들어있지 않은 일이니까. 

‘뭐 할 수 없나?’

어차피 일은 일어난 후. 진은 외적으로 들어난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목과 가슴에 난 살가죽(?)의 상처는 봉인이 풀린 이상 큰 문제가 아니었다. 봉인이 풀린 이상 이제까지 쓰지 못한 자신의 진정한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만마전에선 키네라에게 당하기 전까진 봉인을 하고 있진 않았지만 그곳은 이곳과 장소가 틀렸으니 논의 대상이 아니니 넘어가고.

진은 몸 상태를 확인 한 후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곤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힘과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그것'을 느꼈다. 만마전에선 그동안 숨이 막혔는지 맹렬하게 침식해 들어 왔지만 지금은 그것도 상황파악을 했는지 잠자코 있는 상태. 

‘아니면 오랜만에 든든히 먹어서일까?’

첨벙.

봉인이 풀린 것을 빼곤 오랜만에 느낀 해방감에 화를 푼 진은 가볍게 머리를 매만졌다. 차드바스의 검에 당할 시 흘러내린 피에 의하여 어둠을 녹인 것 같은 머리카락이 지저분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피의 웅덩이에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진의 발밑에서 피어난 피의 손들은 주인이 발걸음을 내딛자 마치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서서히 붕괴해 나갔다. 그리곤 그 사라진 손들 품안에서 떨고 있는 하나의 물체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 무심한 표정으로 한쪽 다리를 들어 내리 찍었다. 

과직

“나와라”

진이 검을 바라보며 내뱉은 나직한 말 한 마디. 허나 그런 그의 말에 대한 반응은 즉시 일어났다. 검에서 마치 유령이 나타난 것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나타난 것이다.

바로 리스칼. 

그녀가 나타나자 변해버린 진의 모습에 조금씩 거리를 두고 있던 일행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물들곤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조금 이질감을 풍기는 진이야 그렇다고 해도 리스칼에겐 단단히 당하지 않았던가. 조금 전과 같이 또다시 분노에 잡히는 것은 사양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그 검 특유의 힘인 분노의 기분이 일어나지 않자 일행들의 얼굴에는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다는 사실에 일행들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되찾곤 모습을 드러낸 리스칼에 시선을 집중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는 리스칼은 허나 조금 전이 당당함 따위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식은땀을 흘리며 두려운 시선으로 진을 바라볼 뿐. 그리고 진이 한걸음 움직이자 마치 괴물이라도 본 사람처럼 흠칫 어깨를 떨며 앉은 자세로 엉금엉금 뒤로 물렀다, 

“…누가 악당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모르겠군.”

진의 피가 묻어 지저분한 자신의 긴 백발을 손질하며 모두의 의견을 대신하여 내뱉은 세르피의 말에 다른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겁에 질린 가녀린 모습의 존재와 불길한 느낌을 뿌리고 있는 붉은 눈동자의 존재. 둘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이 악당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에게 확신시켜주기라도 하듯이 진은 그녀 앞에 놓여진 차드바스의 검을 무심히 바라보다 다시 한번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내리찍었다.

과직!

“컥. 제…제발”

진이 발이 검에 닫자 그곳에 깃들어 있는 힘을 이기지 못하곤 검의 밑에 있는 돌로 이루어진 바닥에 수많은 금이 만들어져 나갔다. 허나 그런 상황에서도 금하나 나지 않은 검. 그래도 고통은 상당한지 가련한 목소리의 리스칼은 가슴을 움켜쥐곤 진에게 애원했다. 이미 진에게 반쯤 먹혀버린 덕분에 그녀의 힘은 엄청나게 급감한 상태였고 당연한 것이지만 검을 보호하고 있는 힘도 약해진 상태였기에 그런 상황에서 봉인이 풀린 진의 발길질을 견디기에 그녀는 너무 약했다.

하지만 진이 언제 그런 것에 신경 쓴 적이 있나? 리스칼을 바라보지도 않고 이 행성의 모든 힘 있는 자들이 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신검을 그 뒤로도 몇 번 내려찍은 다음 자신의 발길질을 견딘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허리를 굽혀 들어올린 후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과연 신검! 이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가 주위를 진동시켰다. 하지만 그런 검의 반응에도 진은 관심이 없는 듯 마치 시장의 물품이라도 보는 듯 요리조리 관찰하다 귀찮다는 듯이 휙 하고 던져버렸다. 그가 던진 검이 도착한 것은 키이. 

진이 넘겨준 그 검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민 키이는 화들짝 놀라며 손아귀에 들어온 검을 내동댕이치려 하였다. 아무리 그것이 신검이고 제국의 황제도 가지지 못하는 검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분수를 알았다. 자신의 실력으론 그 검을 지배하기는커녕 잡아먹히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욕심도 살아있을 때나 통하는 법.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검의 힘에 사로잡힌 적이 있는 그녀로써는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는 눈앞에 있는 리스칼의 얼굴을 보곤 차마 자신의 손아귀에 들려있는 검을 던져버리지 못했다. 그녀는 마치 비 맞은 고양이 같이 애처로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의 행동은 잘 보았다. 일단 감사의 인사라고 해주지.”

“??”

“내가 움직이지 못할 때 너의 행동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라는 것이다”

진의 말에 키이는 순간 기분이 상했다. 자신은 기사.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했다. 더욱이 진은 미우나 고우나 한동안 같이 다녔던 동료이지 않은가? 또한 자신의 주군이라 할 수 있는 에레나가 마음에 품고 있는 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닙니다. 저는 기사.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 지죠.”

마치 자신의 행동이 대가를 바란 것처럼 보여 졌다고 생각한 키이는 정중하게 검을 내밀었다. 자신의 분수에 맞는 물건도 아니고 백번 양보하여 자신의 행동이 대가를 바란 것이라 해도 너무 과했다. 아마 이 검의 진실한 이름이 소문나면 자신은 어느 산속에 묻히는 신세가 되겠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아니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붉은 눈동자의 진은 나직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모든 일행들이 느끼는 긴장감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 여자가 보아도 질투가 나도록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붉은 눈동자와 합쳐지니 남는 것이라곤 공포뿐이었던 것이다. 특히 가장 많은 공포심을 느낀 이는 차드바스의 검, 리스칼.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눈앞에 자신의 본체를 들고 있는 키이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녀도 눈치가 있었으니 눈앞의 소녀가 자신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등 뒤의 공포의 존재는 자신을 먹어치울 것이 분명하다라 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니 먹어치우지 않을 것이라도 해도 그에겐 절대로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 따윈 없었다.

그에게 돌아간다? 그것을 생각하자 자존심이고 뭐고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불사신. 덕분에 차드바스의 일부분을 먹어치워도 그는 이 던젼에 검을 봉인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존재에겐 불사의 존재 따윈 아무런 장점이 되지 못했다. 찢어져 삼켜지면 불사건 뭐건 필요 없으니까. 산산이 조각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뱃속에서 그의 일부분으로 영원이 살아갈 생각을 하면 이성이고 자존심이고 다 던져버리고 공포에 굴복하는 것이 그렇게 추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그녀는 이제까지 아득한 생을 살아왔다. 검에 봉인되기 전을 생각하면 정말 아득한 세월. 그러는 동안 그녀는 지금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 것이다. 많은 세월을 살아와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유안한 생명을 사는 존재들은 항상 죽음에 대비하지만 무안한 삶을 살았던 그녀로써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죽음에 엄청난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슬쩍 진을 바라본 그녀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에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지금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바로 그녀가 그의 몸속에서 보았던 그것의 기운, 그렇다는 것은 아직도 그것이 저 인간의 몸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등 뒤의 자신을 바라보는 괴물의 뱃속에 들어가느니 눈앞의 인간에게 평생 봉사한다! 지금 그것이 그녀의 일생일대의 소원이었다. 

“어차피 난 내 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행들 중 장검을 사용하는 이는 너밖에 없으니 그리 부담가지지 말고 사용해”

지상 최강의 신검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더욱이 키이는 기사라고 하지만 그리 강한 존재도 아니었다. 남에게 알리지 않고 숨겨둔다 하더라도 문제. 더욱이 말이 신검이라지만 이제까지 먹어치운 사람만도 엄청났을 것이니 마검이 어울리는 검이지 않은가.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얌전하지만 나중에 자신도 잡혀먹을지 모르지. 의외로 욕심이 없는 키이는 난처한 얼굴로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리스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신 멋대로 은혜 갚기를 강요하며 난처한 표정을 승낙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진은 고개를 돌려 머리손질을 끝내곤 이번에는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피의 잔해들을 털어냈다. 원하는 것만을 배는 특성을 가진 차드바스의 검이라 다행히 옷 자체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내부에는 자신이 흘린 피로 진득해진 상태, 허나 옷에 내장된 청소기능이라면 조금 있으면 깨끗하게 변할 것이기에 끈적끈적한 느낌에 관심을 끊곤 자신의 가방이 놓여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 자신이 있는 곳은 지하 던젼의 중심.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물품으론 고작(?) 차드바스라는 쓸모없는 검(진의 입장에서) 밖에 없었으니 이곳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검주점 자신의 짐을 챙기는 그런 그에게 한사람이 다가왔다.

“뭐냐?”

“…왜 저것은 살려두는 것이지?” 

진에게서 은근히 품어져 나와는 그 느낌과 자신을 바라보는 핏빛의 눈빛에 평소와 다른 조심스런 질문을 던지는 세르피에게 알 수 없다는 듯이 진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 나니! 너를 공격한 녀석을 왜 살려두는 것이란 말이야!”

검이 마치 생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그녀에게 진은 작은 실소를 보내곤 품안의 피에 젓은 담배를 깨내선 물끄러미 바라보다 신경질적으로 구겨버린 다음 가방에서 새로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네가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 않나?”

진의 말에 한순간 할 말을 잊은 세르피. 그의 말대로 그녀는 할말이 없었다. 그녀 또한 차드바스이 검처럼 진을 공격한 존재 중 하나이지 않은가. 자신의 말이 맞는다면 그녀 또한 진이 살려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적이었지”

자신의 말에 무언가 실망한 것처럼 어깨를 늘어뜨리는 그녀의 모습에 진은 알 수 없다는 듯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런 둘에게 다가오는 이 덕분에 그것을 물어볼 기회를 잃었다.

“저기… 죄송합니다.”

다가온 존재는 네리아, 조금 전 진에게 말을 걸었지만 생각해보니 몸 상태만을 물었지 사과를 하진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그 불길한 눈동자로 무심히 바라보는 진의 모습에 우물쭈물 한동안 시간을 끌다 넙죽 고개를 숙였다. 다행이 그런 그녀의 모습에 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네 잘못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마음에 두지 말도록”

“하지만”

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네리아는 등을 돌리려는 진을 불렀다. 하지만 언제 왔는지 그녀 뒤에 선 세이시나가 네리아의 어깨를 잡았다.

“당사자가 상관없다고 하면 상관없는 것이지. 그보다 나도 한 가지 뭇고 싶은데 왜 내 신성력에 반발력이 생기는 것이지? 그리고 그 피에서 만들어진 손은 뭐야”

진의 붉은 눈동자와 그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에도 당당히 물을 수 있다니 키이에게 배신자라도 불린 것이 어지간히 못마땅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진에게 모여들었다, 그녀들은 세이시나의 누명을 벗어나게 할 신성력의 반발보다 그의 피 웅덩이에서 만들어진 그 손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녀들이 보고 들었던 모든 것에 해당사항이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마법도, 신성력도 마기도 아닌 그 어떤 힘의 작용으로 일어난 것일까? 그 기괴한 모습은 충분히 일행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물고 있는 담뱃재를 털며 진은 의외로 자신이 쓴 수법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을 그녀들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하급 술법인 음양술 중의 하나다. 주술을 부여해 만든 종이인형인 시키기마의 변형판이지.”

◐-글쟁이 양송이 설명 

▶ 시키가미는 일본의 음양술의 일종입니다, 아니 음양술이 일본거였나? 중국거였나? 음양오행? 중국거였나? 헷갈리네. 아시는 분 리플 좀 주세요. 뭐 명칭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고 보신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CLAMP의 만화책과 애니메이션 X에서도 이런 것이 나오죠. 즉 종이에 일정한 주술을 부여하면 주술자의 의도에 맞는 모습으로 변신시켜 하인처럼 사용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시술자의 명령을 따르지요. 이 주술은 앞으로 많이 나올 예정,,, 음 한국 주술도 나올 예정인데 알고 있는 것은 강신술과 저주하는 방법뿐이니…. 퇴마록의 부록이라도 참고해야할 것 같아요. 이런 면에서는 주술에 관한 자료가 많은 일본이 참 부럽다는….◑

“시키..뭐?”

세이시나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런 특정 단어가 그녀들의 말속에 있을 리 없었으니 진의 통역기는 원음 그대로 발음한 것이다. 그러니 진이 내뱉은 단어가 낫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지만 궁금한 것 같으니 대답해 주지. 내 품속에는 주술이 부여된 부적을 가지고 있지. 그것이 내 피에 녹아 들어가 있는 주력을 양분삼아 반응한 것이다. 본래 그 부적은 사람의 모양을 하게 돼 있지만 내가 불러낸 것도 아니도 단지 강력한 주력에 의하여 만들어 진 것이라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지. 알겠나?”

알 일이 있나! 진이 설명이 모든 이들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하긴 전혀 다른 법칙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몇 마디로 이해하라는 것이 더 이상한 법. 아리송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일행들을 무심히 바라보던 진도 더 이상 설명하려는 생각이 없는지 그 묵직한 가방을 짊어지곤 아직도 검과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리스칼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키이에게 다가가려 하였다. 그러자 그의 옷자락을 세이시나가 잡았다. 진의 변해버린 모습도 두렵긴 하였지만 그것보다 아직 대답하지 않은 것이 있어서였다.

“내 신성력이 반발한 것은 왜 설명해 주지 않는 것이지? 난 그것 때문에 배반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단 말이야!”

진의 이전과 다른 모습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였지만 우선 자신의 누명을 벗고 싶은 그녀는 진의 붉은 눈동자를 직시하며 용기를 내여 소리쳤다. 아직 일행들이 전부 모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누명을 벗어나야지 사정을 모르는 사림이 많을수록 해명되어도 그녀를 의심할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 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거? 이미 대답은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대답을 했다는 거야!”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그것도 모르냐? 라는 식으로 턱을 쓰다듬는 진의 모습에 어이가 없는 세이시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손을 귀찮다는 듯이 쳐낸 다음 진이 움직인 곳은 아직도 난감한 눈빛을 하고 있는 키이. 진은 손에 들려진 차드바스의 검과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리스칼을 난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검 좀 빌려줄 수 있겠나?”

진은 차드바스의 검을 완전히 키이의 소유로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검의 소유는 완벽하게 자신으로 되어버렸다는 생각과 함께 나직이 한숨을 쉰 그녀는 진이 가까이 다가옴으로서 얼굴 가득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는 리스칼에게 미안한 미소를 지어주며 진에게 검을 넘겼다. 그 모습에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던 리스칼은 잡고 있는 키이의 옷자락을 힘껏 움켜쥐었다.

“한 가지 물어보지! 우리를 흩어진 이들과 함께 원래의 장소로 데려갈 수 있나?” 

키이가 넘겨준 검을 이리저리 바라보던 진은 칼끝을 리스칼에게 향하여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진의 물음에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리스칼. 진의 눈가에 비친 무심한 표저 사이에 숨어있는 흉폭한 그것은 말하고 있었다. 만약 쓸모없다면 너는 죽는다. 진은 검을 키이에게 주었지만 그것은 물질적인 것!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은 얼마든지 잡아먹힐 것이라는 것을 짐작한 그녀는 할 수 없어도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리고 다행히 진의 요구는 그녀의 능력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계약을….”

“계약이라….”

리스칼이 말에 진 이하 모든 이들의 시선이 키이에게 몰려들었다. 리스칼의 모습으로는 진과 계약할 일은 절대 없을 것 같고 진 또한 사양하는 일.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전문적으로 검을 배운 사람은 키이밖에 없으니 계약이라는 말에 그녀에게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키이로써는 절대적으로 사양하고 싶은 일! 지금이야 얌전하지만 언제 자신을 잡아먹을지 모르는 괴물과 계약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리 있겠는가! 다행이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리스칼은 그녀의 계약해 대하여 성실이 대답해 주었다. 그녀의 대답여부에 따라 자신의 생가가 달린 일이기에 그녀의 모습은 필사적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지만 저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은 저와 계약 없이 움직인 덕분입니다, 계약을 하면 저는 계약자의 영혼을 촉매로 삼아 힘을 발휘하지만 계약을 하지 않을 땐 사용자의 영혼의 힘 자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니 계약을 하셔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이라고 말하는데?”

근본적으로 더러운 성격과는 달리 리스칼은 존댓말을 구사하며 살갑게 키이에게 말했다. 지금 자신의 구세주는 눈앞의 소녀인데 뻣뻣하게 나갈 수야 없지 않은가? 더욱이 응원자도 있으니 리스칼이 내뱉은 말에 매듭을 지어준 사람은 세이시나,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간단히 말하는 그녀가 미웠는지 키이는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우는 그녀. 자신을 배반자로 몰아붙인 일에 대한 복수였다. 

“그래도 계약을 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않습니까! 지금 헤어진 이들과 연락이 안 되는데 그들이 무슨 일을 당하기 전에 합류해야 할 것 같은데요.”

다행이 네리아의 말이 결정타가 되었다, 지금 헤어진 이들 중 자신의 주군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위험을 핑계 삼아 주군의 위험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기사의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그녀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다. 잠시 진의 손아귀에 들려있는 검을 말없이 바라보던 그녀는 나직이 한숨을 쉬다 초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리스칼을 바라보았다.

“그래 계약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계약을 할 것이라는 그녀의 모습에 리스칼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자신의 본체를 쥐고 있는 괴물과 눈앞의 여자는 일행인 모습. 함량미달(?)인 이런 자와 계약을 맺는 것은 그리 유괘한 일은 아니지만 이곳을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본체를 빨리 저 괴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피를 주세요, 저와 계약하기 위해선 제가 선택한 후 계약자의 피를 받아야 하지요” 

“음 저기 꼭 피를 줘야하는 거야?” 

피란 생명의 상징이고 피의 맹약이란 대부분 영혼의 속박을 일으키는 계약이라 마족이 흔히 사용하는 조건이라 그녀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떫은 미소를 지었다.

“뭐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너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들고 있는 검을 키이에게 넘겨주며 담배 한 모금을 들여 마신 진의 나지막한 미소에 리스칼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녀 자신의 말은 사실이었고 진에게 단단히 공포를 먹은 이상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과 계약자인 소녀는 인간. 한 100년 꾹 참으면 되는 일이었고 무한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생을 살고 있는 그녀로써는 간단한 일이었다.

“윽”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중압감에 아직도 마음한구석 포기하지 못했는지 머뭇거리다 네리아가 건네준 단도에 깊은 한숨으로 살짝 그은 키이의 손에서 붉은 핏방울이 한 방울 차드바스의 검 날에 떨어졌다. 그러자 순간적인 붉은 빛이 사람들의 시야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너무나 밝은 빛에 간신히 아픈 눈을 비비며 사아를 확보한 일행들에 보이는 것은 키이의 손에 들려있는 붉은빛의 레이피어. 그것은 조금 전의 거대한 모습과는 달리 검 날이 진한 핏빛을 띄는 수수한 검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이건”

솔직히 가볍기는 하지만 그녀가 휘두르기엔 너무나 거대한 검에 조금 부담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키이는 자신에게 딱 맞는 크기로 변한 검을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비록 그 모양이 수수하게 변했지만 신검은 신검. 붉은 검신에선 그 어떤 것도 배어버릴 것 같은 예기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뭐 차드바스의 검이 가지고 있는 원하는 것만을 배는 특성 때문에 그리 필요 없는 것이지만…. 

“음 신기하군. 뭐 그것은 그리 상관없으니까 제쳐두고. 그럼 이제 무었을 해야 하지?”

남들은 일평생 한번 볼까말까 하는 광경에도 관심이 없는지 진은 나직이 하품까지 하며 키이.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리스칼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직도 키이의 옷자락을 잡고 있던 리스칼은 숨기지 않은 공포를 들어내며 키이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헤어진 일행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허공에 대고 검을 휘두르면 됩니다. 어차피 해어진 일행들의 좌표는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

미심적인 얼굴을 하던 키이는 주위의 일행들을 바라보다 할 수 없이 머리위로 검을 들었다. 아직도 검이 가지고 있는 악명 때문에 주저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에이! 나도 모르겠다!”

자신의 주군을 생각하며 몸 안의 마나를 끌어올려 있는 힘껏 내려친 키이. 그러자 그녀가 휘두른 차드바스의 검의 일부분이 일행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사라진 부분으로 공간이 찢어졌다. 마치 천 조각 가르듯이 가볍게 잘려지는 그 모습에 일행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공간을 가르는 것은 오로지 마법뿐이었고 그것은 8서클 이상의 고위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은 몇 사람 없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 신기한 모습에 감탄할 뿐이지만….

하지만 중요한 일은 이제부터 시작. 

자신이 휘두른 검으로 인하여 일어난 변화에 감탄하고 있을 때 찢어진 공간 사이로 엄청난 흡입력이 뿜어져 나오자 그녀와 일행들은 경악하며 주위의 장애물을 잡으려 하였다. 허나 지금 있는 곳에 장애물이라곤 리스칼이 조정하던 쇠사슬, 그리고 그것들은 이미 본래 있어야 할 천장으로 사라진지 옛날이었다.

“뭐야 이거!”

“까아아아악!”

“내 손 좀 잡아줘요!!”

당황한 일행들이 허둥지둥 하는 사이 갈라진 공간의 흡입력은 더욱 강해졌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키이부터 서서히 그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역시 날 속였어!”

지금의 괴현상이 리스칼의 배반으로 생각한 키이가 그 공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내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시작으로 주위에 있는 모든 일행들이 그 흡입력을 견디지 못하고 한명 두명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두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허나 그런 일행들 중에서도 꿈적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이가 있었으니 진은 주위의 일행들이 모두 빨려 들어간 틈 시아를 무심히 바라보다 품안에서 자신의 피에 절은 종이로 감싸여진 작은 직사각형 상자를 꺼낸다. 그리곤 그것을 자신의 피 웅덩이에 던져버렸다. 헌데 그 던져진 상자는 놀랍게도 사람의 몸마저 끌려가는 강력한 흡입력이 공간을 휘감고 있는 상황에도 전혀 관여치 않은 모습으로 작은 핏방울들을 만들어 내며 서서히 피의 웅덩이 안으로 사라져갔다. 물론 그 피의 웅덩이도 흡입력에 파문하나 일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

“몇 개 안 남았군. 내 피에 들어있는 주력을 바탕삼아 무럭무럭 자라나라.”

그 모습을 바라보다 키득거리며 손가락을 꼽아보던 진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사라져가는 균열에 손을 내밀었다. 

▶ 

“이제 남은 것이라곤 저 문밖에 없나?”

그동안 성과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에 머릴 극적인 에레나의 중얼거림에 일행들이 바라보는 곳은 바로 높이만도 5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문. 조각난 비석들에 적혀있는 글을 꼼꼼히 해석하는데 만 벌써 10일이 지났고 안타깝게도 성과는 아예 없었다. 그동안 열심이 움직인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비석을 조사하는 동안 남은 일행들은 주위를 조사했지만 여전히 백색이 세상으로 발견된 것은 아예 없는 상황. 따라서 이곳에 죽은 자들도 끝까지 건들지 않은 문에 조금 불안한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이제는 선택의 시간만이 남았다.

“할 수 없군. 이제까지 조사했지만 남은 것은 저 문뿐이니. 더욱이 이곳에 언제까지 있을 수도 없고 말이야”

물끄러미 머리를 긁적이는 에레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기스빈은 아르의 말에 한 가지 문제점을 꺼내들었다,

“허나 지금 저 문을 어떻게 연단 말이오? 마법을 사용하면 좋겠지만 지금은 이 몸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니 일행에 남은 것이라곤 육체적인 힘뿐인데 지금 일행으론 문을 열거나 부술 수는 없을 것이오.”

상식적으로 이곳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공간. 그의 말대로 남는 것이라곤 육체적인 힘뿐인데 보기에도 만만하지 않게 보이는 문을 부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지금 있는 일행이라곤 나이든 노인 한명과 고생이라곤 한번도 해 보지 못한 3명의 소녀들. 물론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기스빈과 에레나뿐이지만….

“그것은 걱정하지 마. 키네라, 진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유탄 가지고 있겠지?”

“예 유탄요? 그것은 사령관님만이 쓸 수 있어요. 우리는 보급도 받지 못하였지요. 지금 있는 것이라곤 보통의 유탄뿐이에요”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사령.. 아니 주인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유탄에 비할 수는 없지만 폭발력이야 충분하겠지요.”

아르와 키네라의 대화. 아르야 고작해야 초진동 나이프와 쇼크건 뿐이었지만 키네라에겐 레일건과 유탄발사기가 지급된 상태였으니 석재로 만들어진 문 따위는 충분했다.

“저 문을 파괴할 수단이 있는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