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 회 -- >
“하아, 뭘 알고 싶은 거야?”
“아, 이 과목 교수님의 악명이 다소 자자해서요.”
“응? 이 과목 교수?”
조민우는 그제야 분위기 파악하고는 곧 바로 시간표를 확인해봐야 했다. 하지만 그가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옆에서 눈치를 살피던 후배가 눈치 빠르게 곧 바로 말을 한 탓이다.
“최준 교수님인데요.”
“최준?”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기도 했다.
바로 자신이 과거에 듣던 전자회로 과목에 ‘F’는 기록을 남긴 이였으니까. 그 악몽. 그 기억. 어찌 있을 수가 있겠는가? 비록 몇 년이 지났지만 생생하기만 했다.
‘서, 설마......’
물론 안 좋은 예감이 정확히 맞아 들어갔다.
그가 수강 신청한 회로이론 교수가 바로 최준 교수였던 것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그 원인은 금방 짐작이 가능했다.
‘김동민, 강성민 이 새끼들!’
정말 이가 으드득 갈리는 일이었다.
아니 도대체 남의 수강신청을 하는데, 왜 옆에서 그 따위로 방해를 놓는다는 말인가?
정말 짜증스럽기만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꼭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곧 알 수가 있었다.
“저, 저기 선배님.”
조민우는 그렇지 않아도 두 놈을 만나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벼루는 중에 자신을 방해하는 놈이 있자 눈을 부릅떴다가 이내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힘을 뺐다.
“하아, 왜?”
후배의 반응은 역시나 눈치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조민우 분위기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기만 했다.
“호, 혹시 제가 뭘 잘못한 것이라도.”
그는 당연히 손짓으로 흔들면서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저었다.
“아냐, 그냥 개인적인 일이다. 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그러니 쓸데없는 고민하지 마.”
“아, 그래요? 저는 괜히 선배님에게 제가 뭘 잘못 했는지 알았거든요.”
삭삭 하면서도 사람을 좀 편하게 해주는 면이 있었다.
아무리 학과 선배라고 하지만 얼굴을 처음 보는 상황에서 이렇게 나오기는 쉽지 않을 테니. 그것만 봐도 성격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조민우 역시 이번 학기를 들으면서 어차피 아는 후배 한 놈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을 소개했다.
“난 조민우라고 한다. 학번은 좀 오래 됐거든. 그러니 그것은 나중에 애길 해줄 테니. 묻지 말고.”
그다지 사교성이라고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의외로 그는 개의치 않았다.
“아, 저는 조지훈이라고 합니다. 작년에 입학했죠. 이제 2학년 올라갑니다.”
“그러면 군대는 안 갔다 왔겠네?”
“아직 이죠. 사실 그것 때문에 요즘 고민입니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여기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이미 많은 갈등을 해 본 적이 있는 조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그러면 병역 특례 때문에 생각이 많겠어?”
병역특례.
뭐 어떻게 보면 합법적으로 군대를 피하는 하나의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네, 사실 참 그것이 판단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기간이 5년이나 되니까요. 솔직히 그 기간 동안에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야 이미 다른 선배님이 한 것이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군대를 갔다 오면 선택의 기회가 넓거든요.”
하지만 조민우는 좀 그와 의견이 달랐다. 그는 특히 사업까지 해본 입장에서 더욱 그러했다.
“이런 말하기는 좀 그래. 그런데 잘 생각을 해야 돼. 군대를 가지 않으면 생각보다 장점이 매우 많아. 그런 점을 다들 너무 쉽게 생각하더라고.”
“장점이라뇨?”
“일단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업체에서 일을 하게 되니까. 그 경력이 쌓이잖아?”
“그거야 그렇죠. 하지만.......”
그는 이내 손짓으로 그의 입을 막고는 곧 점점 강의실로 들어오는 다른 재학생을 모습을 잠깐 살폈다.
다들 덩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과거 재학생에 비해서는 확실히 머리 하나 정도 커보였다.
신장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이야기이다.
조민우는 그런 모습을 잠깐 살펴보고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히 이전과는 학과 재학생이 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는 이런 상념을 곧 털어버리고는 조지훈에게 다시 시선을 집중했다.
“경력 5년 차이가 나면 연봉 차이가 얼마나 나는 지 알아?”
“연봉차이라.......”
“직급으로 치면 대리인데, 대략 1,200만 원 정도 차이가 나.”
“우, 우와 장난 아니네요.”
조민우는 상대가 입을 살짝 벌리면서 놀라워하자 역시 후배다운 모습에 실소를 끄덕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뿐이 아니야. 5년 동안에 열심히 하면 돈을 얼마나 모을 수가 있을까?”
“그것은.......”
“내가 아는 선배 이야기 들어보면 어떤 친구들은 병역특례가 끝날 무렵에 모은 돈이 1억 정도라고 해. 경력 5년에 현금 1억. 이 정도라면 해볼 만하지 않아?”
“어, 엄청나군요.”
“가끔 보면 중간에 회사를 차리다 던지, 이런 엉뚱한 짓을 하는 후배 녀석이 있는데, 내가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항상 해. 제발 그 따위 짓을 때려치우라고. 사업 같은 일은 가능하면 안하는 것이 좋아. 사업이란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거든.”
경험이 충분히 담겨 있는 어조에서 나온 말이었다. 당연히 그냥 하는 의미가 아니었다. 조지훈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런 감정을 느끼자 몸을 가볍게 떨 정도였다.
“선배님 말씀은.......그냥 병력 특례로 회사에 들어가서 남들처럼 사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까?”
“......”
조민우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한 탓이다.
그도 과거에 저런 주제에 대해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너무도 잘 기억하는 탓이다.
샐러리맨.
그야말로 미래가 없는 일이다.
그것은 정말 아니다.
남자라면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
항상 자신이 좌우명으로 삼고 다닌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의 이런 태도는 다른 이들에게 꽤나 부러움을 샀다. 다른 친구들은 대다수가 대학원을 다니거나, 아니면 지금 병력특례로 취업한 이들이 보인 반응이 전부 그러했으니까.
조민우도 경영자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 때가 좋았지.
한 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
조지훈은 특이한 선배의 모습에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어야 했다. 자신과 말을 나누고 나서 한 표정이 심상치가 않은 탓이다.
그는 특히 눈치가 빨라서인지 자신이 한 말이 선배의 아픈 기억 한 곳을 찔렀다는 것을 느끼자 입을 다물고는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가 계속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곧 이어서 들린 맑은 음성 때문이었다.
“지훈아!”
조지훈은 곧 바로 고개를 돌리고는 눈빛을 반짝였다.
“아, 현주야.”
‘현주?’
조민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그 자리에서 망석처럼 멈추어야 했다.
갑자기 나타난 한 여인 때문이었다.
긴 머리가 살짝 등 뒤로 늘어져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바람에 휘날리는 것 같이 살짝 살짝 흔들리는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했다.
하지만 그 뿐이 아니었다.
은색 얇은 셔츠는 소재와 색상이 꽤 고급스러워 보였고, 싫증나지도 않으면서도 꽤 품위가 있어 보였다.
특히 소재 자체가 구김이 가지 않고, 큰 무늬나 체크무늬가 없어서 보이는 이로 시선을 절로 마음 편하게 하는 것도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스커트 라인은 딱 짧지도 않고, 길지 않을 정도인 무릎 위로 약 5cm에서, 아래로 대략 10cm 정도가 뵈어 보였다.
하지만 워낙에 하체가 길어서인지 그럼에도 그다지 스커트 라인이 그녀의 늘씬한 허벅지를 감추지를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하체 길이가 길었다는 의미이다.
상체는?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동양인 여성과는 너무 차이가 심해서 대충 뒤태만 봐서는 서양 외국인을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
여기에 재킷은 테일러드 재킷을 사용해서 무난하게 보였으면, 허리 라인은 의도적으로 꼭 맞게 하지 않고, 목선 역시 지나치게 파인 옷이 아니라서 요조숙녀 이미지를 살짝 보기까지 했다.
수트 안의 블라우스는 단색의 셔츠칼라에, 리본칼라 정도로 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무난하다는 인상을 주었으면, 프릴이나 레이스가 적당하게 있어서인지 약간의 도발적인 섹시 미까지 상대에게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냐?
그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여인의 매력을 한껏 돋보이기 한 탓이다.
그녀의 옷에 대한 감각을 알 수가 있는 것은 바로 하이힐이었다.
하이힐이 굽이 그렇게 높지 않으면서도, 전통적인 가죽소재의 제품을 사용해서인지 무던한 느낌을 주었다.
상체와의 섹시미와는 조금 차별적인 느낌을 주었다는 말이다.
당연히 이런 전체적인 느낌이 그녀의 늘씬하면서 시원한 몸매와 어울려져 보고 있는 남자의 시선을 떼기 어려운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도가 너무 지나쳤다.
여기는 신성한 대학 강의실이 아닌가?
여기에 웬 미스코리아인가?
“.......”
조민우는 정말 충격적인 여대생의 모습에 입을 다물고는 멍하니 쳐다봐야 했다. 그도 물론 대학 다닐 때는 여자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사업 시작하고 나서는 좀 달랐다.
접대 때문에 단란주점도 자주 가서 흥청망청 즐기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이제까지 이런저런 형태로 해서 많은 여인을 접해보았지만 지금 최현주의 모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더욱이 이제 갓 대학에 들어와서 인지 해맑은 미소는 너무도 밝게 빛이 났다.
물론 선배 체면상 그가 먼저 아는 체 할 필요는 없었다.
조지훈이 친절하게도 자신의 옆자리에 와서 풀썩 앉은 그녀를 소개해준 탓이다.
“선배님, 여기는 최현주라고 해요. 저랑 같은 지난해에 같이 입학한 친구입니다.”
“아, 반가워. 난 조민우라고 해.”
최현주는 조지훈처럼 비슷하게 사근사근한 눈빛으로 바로 고개 숙였다.
“민우 선배님, 만나서 반가워요.”
그야말로 꾀꼬리가 울고 갈 소리였다.
목소리마저 완벽하다는 말로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다만 좀 아쉬운 면 있다면 다소 너무 사교적인 면이었다.
여자라면 내숭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헤퍼 보인다고 해야 할까? 물론 가볍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느낌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크게 흠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조민우가 놀란 것은 그가 기억하는 바로 자신이 다니는 과 여대생 중에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여자는 없었다는 점이다. 아니 그는 이내 자신의 두 친구가 왜 그렇게 광분해는 지 이재는 수긍했다.
저 정도라면. 아니 저런 여자 신입생이 많다면? 정말 그런 반응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양심은 있었다. 비록 이런 식으로 해서 안면을 터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예를 들면 나이도 단적인 예이고, 자신의 지금 처지도 그렇고, 이런 저런 현실적인 감안해서 쉽게 다가가는 어려웠다.
‘욕먹겠지. 딴 놈들이 알면 그야 말로 매장이다.’
나름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항상 모든 일이 자신의 의지대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상황은 이런 그의 생각과는 좀 달랐다.
“선배님도 이미 아시겠지만 사실 최준 교수님이 공통 프로젝트를 작년부터 내기 시작했다고 하거든요.”
알기는 뭘 알아? 자신은 솔직히 최준 교수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이런 과목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공통 프로젝트?”
“네, 그래서 지난 학기에 보면 이렇게 그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이들은 같이 공부했다고 그러더군요. 아마 이번 학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조민우는 그제야 이놈이 왜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했는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자신이 복학생이던, 뭐든 나이가 있지 않은가?
당연히 아는 인맥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공통 프로젝트 정도는 쉽게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역시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더니.’
하지만 그가 이런 것까지 내심을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그는 오히려 비록 엉뚱한 꿍꿍이는 있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후배가 있어서 고마웠다.
지금 천천히 들어오고 있는 재학생 중에 안면이 익은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니.
만약 이대로 그냥 흘러갔다면 아마 이번 과목은 한 학기동안 그냥 홀로 강의를 들어야 할 상황이었으니.
그것은 그도 사절이었다.
“뭐 그런 점은 나도 도와줄 수가 있을 것 같아.”
“아, 서, 선배님, 그래요?”
조민우는 상대의 호들갑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의 반응이 너무 이상했다.
“왜? 그게 그렇게 어려워?”
“어려운 정도가 아닙니다. 다들 그 프로젝트 때문에 지난 학에 4/5 정도가 이 과목을 날렸으니까요.”
“.......”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아니 심각했다.
지금 자신이 사업하면서 쫄딱 말아먹는 바람에 집에 피해가 간 것은 사실인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은 자신의 부모에게 도 꽤 부담이 되는 바. 최소한 이번 학기부터는 전면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4/5 정도가 과목을 날리다니?
‘에휴, 정말 안 되는 놈은 뭘 해도 안 된다고 하더니. 내가 그 꼴이잖아?’
하지만 꼭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옆에서 조심스럽게 눈을 반짝이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최현주가 끼어든 것이다. 그것도 그냥 삼켜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 앵두 같은 입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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