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 회 -- >
“지훈아, 아마 민우 선배님이라면 그 정도는 가뿐 하게 할 수 있을 거야.”
가뿐 하다니?
최준 교수의 악명을 알고 저 따위 소리를 해?
조민우는 생각 같아서는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말은 이런 내심과는 좀 달랐다.
“현주야, 걱정 마라. 내가 이렇게 영 후쭐해 보여도 그 정도는 간다하게 해결할 수가 있으니까.”
“우와, 선배님 최고에요!”
짝.
최현주는 뭐가 그리 좋은 지 손뼉을 치면서까지 좋아했다. 사뭇 지나치게 보일 수 있는 반응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 역시 사실 이 문제 때문에 적지 않은 고민을 했는데, 이 과목을 날리면 전면 장학금 혜택을 받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지만. 당연히 선배님이라면 아량을 가진 거라고 보았다. 더욱이 하고 있는 꼴은 영 꽝이지만 은근한 분위기도 꽤 마음에 들었다. 믿음이 갔다. 아니 의지가 되었다. 더욱이 자신과 같은 미인에게도 그다지 추파를 던지는 눈빛이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였으니.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겠는가?
조민우는 반쯤은, 아니 그냥 포기하던 마음에 살짝 흔들렸다. 그가 솔직히 여자 경험이 좀, 아니 질퍽하게 있다고 해도 저렇게 뽀송뽀송한 신입 후배를 놔두고 모른 척 한다? 고자라면 그럴 수 있다. 다행히 그는 고자가 아니었다.
“최고는 아냐. 이런 말하기는 좀 그래. 편하게 생각하면 그냥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뿐이니까. 사실 선배라면 당연한 행동이겠지?”
나름 자신의 체면. 아니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한 말이었다. 딱히 여기서 더 뭐 하겠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현주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러면 선배님도 우리와 같이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실 건가요?”
“그것은.......”
‘아니지.’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다.
갈등이 생겼다.
몰랐으면 모르데. 지금은 회로 이론 담당 교수가 누구인지 알았다.
이것은 지금 바로 듣는 과목이 아니다. 재수강이라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장학금이 걸렸다. 대충 들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행스러운 일을 이런 문제를 간단하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수강 정정이지.’
하지만.
조민우는 태어나서 처음은 아니지만, 자신을 높이 세우면서 내숭을 떠는 깜찍하다 못해 자신에 근 몇 개월만에 흑심이 생기게 만드는 최현주를 보자 갈등이 생겼다.
이것은 딱히 마음에 잊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자의 체면. 아니 선배의 자존심이 달려 있었다.
더욱이 그는 최현주가 마음에 들었다. 아니 정말 땡 겼다. 이런 기회를 발로 차버린다? 그것은 아니었다.
마음속의 갈등은 생각보다 길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렇지는 않았다.
생각과 현실은 틀리니까.
귀엽고, 아름다운 신입 여대생의 유혹은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맞아.”
최현주는 은근히 기대를 한 눈빛을 하다가 후다닥 그의 옆으로 바짝 붙어서는 마치 개구쟁이처럼 좋아했다.
“우와, 미, 민우, 서, 선배님, 정말 잘 됐어요! 저, 정말 이 과목 때문에 걱정 많이 했거든요. 다른 과목과 겹치는 문제 때문에 도저히 이 회로 이론은 수강정정 불가능했거든요.”
말이 좀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지 여유가 없었다.
바짝 자신에게 붙으면서 느낀 그녀의 달콤한 체향 때문이었다. 거기에 간간히 손끝만 살짝살짝 부딪혔는지 전기가 짜르르 왔다.
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요즘 여자와 섹스하지 않아서 미친 건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정말 애를 마음에 들어서일까? 설마 사업 실패 때문에 우울증이 걸린 걸까? 에휴, 뭔가 좀 대책이 필요해. 산삼주라도 좀 달여 먹어야 할까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이 중요한가?
현실이 중요했다.
이렇게 깜찍하고 귀여운 후배라면 그 정도 도전해볼 각오가 있었다.
“하아, 걱정마라. 내가 아마 좀 도움이 될 것이니까.”
“아, 민우 선배님, 너무 고마워요.”
조민우도 이런 건수를 빌미로 최현주와 급격히 가까워지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가 무슨 판타지 소설의 신기한 능력을 얻지 않는 이상에 회로 이론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쉽지가 않는 탓이다.
더욱이 그런 상황에서 다른 두 후배까지 돌봐 준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현실적인 난관은 이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아니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장학금을 꼭 받아야 되는데.......’
조민우는 비록 최현주라는 후배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회로 이론 강의를 듣는다고 해도 이 문제에 대해서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점을 잘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소한 자신의 등록금을 해결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난 일은 정말 아쉬웠다.
‘300만원이라면 몇 달 전만 해도 정말 작은 돈이었는데, 지금은 만지기조차 어려운 돈이 되었으니. 비자금을 좀 마련 해둬야 했어.’
하지만 뒤 늦은 후회였다.
5장 등록금 마련
조민우는 사업을 할 정도로 꽤나 현실적인 면이 강한 남자였다.
대충대충 어영부영 그럴 거다 이런 식의 사고와는 좀 틀렸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생겼을 경우에 피해가는 타입도 아니었다.
당당하게 부딪혀서 그 난관을 극복하는 그런 강한 의지를 가진 남자였다.
최준 교수 강의를 일단 듣기로 한 이상 수강정정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등록금을 의지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비록 지금은 망한 경영자이다. 사업가로써 긍지마저 자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돈이 필요했다.
결국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궁리를 거듭해야 했다.
대안으로 떠올린 것이 바로 아르바이트였다. 일단 편의점이 첫 번째 우선순위였다.
“호오,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네. 낮에는 제가 공부해야 하니 힘들고, 밤에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밤에만? 아 그것은 곤란해. 우리가 필요한 사람은 낮에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낮에도 꼭 해야 합니까? 그 부분은 파트를 나눠서 돌리면 안 될까요?”
하지만 편의점 주인은 생각보다 이모저모를 많이 따졌다. 아무리 대학생이라고 해도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조민우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요즘은 특히 경기가 좋지 않아서 파릇파릇한 애들이 많았다. 더욱이 이왕 고용할 바에는 여대생이 오히려 더할 나위가 없었다.
“미안하네!”
“.......”
조민우는 수상쩍은 시선으로 잠깐 째려보기는 했지만 포기는 빨랐다. 보기에 영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보았다.
어차피 편의점은 많으니까.
편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편의점 역시 비슷한 면이 좀 있었다.
“아 우리 편의점은 최소한 6개월 정도는 꾸준하게 일할 사람이 필요해. 주로 휴학생을 찾고 있거든. 자네는 좀 맞지가 않네. 미안하네.”
이런저런 핑계가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도 맞추려면 맞추는데, 그러면 자기 지금 공부하는 것에 영향을 받자 마냥 그럴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일하기에 맞는 편의점이 없었느냐?
그것은 또한 아니었다.
다만 거리상의 문제이거나, 이것저것 잡다한 문제가 걸려 있어서 딱 저거다! 라고 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었다.
결국 다음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야 했다.
하지만 다른 아르바이트 역시 열악한 사정은 비슷했다.
특히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시급이었데, 한 달 꼬박해야 60-70만 원 정도라는 것이 문제였다.
시간대비 수익 면에서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뭔가 다른 대안이 필요해!’
다행이라면 그에게 경험이 있었다.
조민우는 이미 사업을 하면서 이런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많았던 것이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자신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를 생각했지만 금액을 보고는 관점을 달리했다.
‘돌파구가 필요해.’
뭐가 좋을까?
여기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만든다?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가 되었다.
더욱이 학과 공부를 하면서 같이 병행한다?
아마 그럴 수 있다!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본 그는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곧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을 떠올린 것은 우연히 저녁에 부친의 가계를 봐주면서 얻은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삼다수 하나 달라고요?”
“네. 돈 여기 있습니다. 1,500맞죠?”
조민우는 손님의 말에 냉장고에 가서는 삼다수 하나를 꺼내서 주면서 돈을 받고는 미묘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생수를 팔 수 있다?
먹을 만한 물이 있다면 팔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수돗물을 팔수는 없었다.
‘냄새가 지독하니까. 어림도 없지.’
하지만 전혀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바로 전능과는 무관한, 절대 반지, 아니 정체불명의 금반지(?)를 가지고 있는 탓이다.
조민우는 물끄러미 자신의 손가락에 끼여서 이제는 빠지지도 않는 금반지를 잠깐 쳐다보고는 고민했다.
바로 마법을 사용한 방법을 떠올렸다.
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지금의 세상에서는 마법으로 만든 물이 아마 생수보다 더 깨끗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장점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팔수는 없었다.
상표등록을 해야 하니까.
다행히 아직 스카이 법인 등록은 남아 있는 상태.
‘나는 아직 스카이 회사의 사장이지.’
따라서 물을 팔기 위한 법적인 조치는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결국 조민우는 혼자 집 안에 털어 박혀서 과연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물 생산 능력을 늘릴 수 있는 실험을 해야 했다.
“물!”
여전히 유치찬란한 마법 주문이다. 솔직히 할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이 금반지를 만든 사람은 한국인이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마 언어 변환 마법이겠지? 물론 가능하다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가 않았다.
딱 금반지를 기준으로 정해진 위치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촤아악.
여기까지는 좋았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피티 병 하나 정도는 가쁜 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급격한 체력 소모도 없었다.
조민우는 물끄러미 피티 병에 다시 담은 물을 쳐다보다가 장점 한 가지를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바다에 빠져도 갈증으로 죽는 일은 없겠군.’
하지만 실험이 계속될수록 역시 예상한 반응이 나왔다.
물론 10개를 넘어갈 때까지는 견딜만 했다. 하지만 20개를 넘어가자 좀 달랐다.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한계 확인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체와, 정신의 변화 검토가 먼저였다.
30개를 넘어서서 40개에 도달하자 드디어 예상한 반응이 나왔다.
휘청.
조민우가 피티 병 근 40개를 만든 것은 좋았지만 육체적인 상태가 결코 좋지가 않았다. 그는 몸이 휘청할 정도로 어질어질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방 한 쪽에 놓인 빈 피티 병 숫자가 무려 40개라는 것을 생각하면 비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어질어질했지만 무려 40개의 피티병을 만든 것을 보고는 그제야 눈빛을 반짝였다.
‘가능성이 있어.’
사실 그도 물을 이렇게 만드는 것이 과연 무슨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희생양으로 한 실험을 통해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이전보다 숫자가 늘었어!’
마법 주문을 사용할 수록 실력이 늘어난다!
아니 아닐 수도 있었다.
단순히 이전에는 그날 컨디션이 달랐어도 있으니까.
중요한 사실은 지금 당장은 40개까지는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1개당 1,500원만 잡아도 무려 60,000원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문제는 잘 팔릴까가 관건이었다.
물에 대한 식품 검사는 그 다음 문제였다.
팔리지 않는다면 별로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더욱이 결과적으로 그야말로 순순하게 산소와, 수소를 이용해서 마법으로 만든 물이다.
세상 그 어떤 물보다 더욱 청정하다고 자신했다.
그 결과는 실제로 그러했다.
“이 물을 한 번 팔아보자고?”
조민우는 자신의 부친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상황에서도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왜 옛날에 봉이 김선달이 한강의 물을 팔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한 번 김선달이 되어 보려고요.”
“.......”
부친은 사업 실패 후에 드디어 미쳤나? 라는 시선으로 잠깐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도대체 이해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반응인 탓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문제는 다 배제하고, 한 가지 문제점을 걸고 넘어졌다.
“이거 잘 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가 아냐. 비 허가 물을 팔다가 적발되면 우리 가게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조민우는 사업가이다. 당연히 모를 리가 없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문제가 안 될 겁니다. 일단 결과를 봐야 식품 허가를 얻던지 할 것 아닙니까? 만약 물이 팔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별로 의미가 없지요.”
“흐음, 그렇기는 하다만.......”
그는 그제야 자신의 부친이 어느 정도 수긍한 모습을 보이자 다시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생수라고 해서 몇 달 파는 것은 문제가 안 될 겁니다. 그런데 계속 팔면 나중에 누가 신고해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 작품 후기 ============================
진도가 빠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