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5 회 -- >
조민우가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가 만무했다. 그도 솔직히 과거에 신입생 시절에 학과 물을 흐리는 카사노바같은 선배를 간혹 본적이 있는 탓이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야아, 다들 수고해라. 이번에 공통 프로젝트 때문에 솔직히 정신없다. 그나마 현주가 이렇게 좀 도와줘서 그럭저럭 하는 편이니까.”
“흐음, 그래요?!”
그는 영 못 미더워하는 눈치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솔직히 자신이라도 믿지 못할 테니까.
“어!”
조민우는 간단하게 일축해버리고는 이번에는 진심으로 Pspice에 몰입해 들어갔다. 어차피 이제는 최현주에게 신경 쓰는 것 자체가 과내에 이상한 소문(?)만 만든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에는 좀 더 집중했다.
최현주도 잊었고.
후배들도 잊었다.
그리고 자신도 잊었다.
오로지 Pspice에 집중해 들어갔다.
하지만 이상한 현상이 생긴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으으.
금반지가 다시 동작을 시작한 것이다.
조민우는 이런 상황을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은 너무 Pspice에 몰입해서 머리를 심하게 굴리는 상황인 탓이다. 정확히 주말에 암기를 위해서 수십 차례, 아니 수백 차례 반복을 통한 암기 수련(?)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것이다.
집중하자 지금은 암기 수련 때와는 상황이 달랐지만 그 과정이 반복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단순히 간단한 수동소자만 모니터 화면에 올렸지만 그의 머릿속은 틀렸다.
이제까지 그가 어느 정도 완벽하게 이해한 반도체 소자에 대한 원리가 물 흐르듯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곳 Pspice와 결합 되었다.
눈으로 단순한 수동소자 화면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은 그렇지가 않았다.
반도체 소자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런 논리를 따라서 회로 이론 책에서 몇 가지 사용된 복잡한 예제를 직접 구현해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의미일 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깨달음의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 이, 이것이 반도체였구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금 작업은 그저 단순한 파라미터 설정 값을 바꾼 것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본질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좀 다른 문제이다.
조민우는 당연히 이런 감각에 따라서 지금 했던 작업을 반복했다. 아니 늘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항 1, 2개 정도였다. 더욱이 전원이 이중, 삼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게 크게 복잡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라면 물론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늘어서, 늘어서 30개를 넘어가자 좀 달랐다.
말이 좋아서 저항 30개이다.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당연히 최현주는 다른 이들의 눈치 때문에 바짝 붙지만 못하지만 눈빛을 반짝이면서 모니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색다른 구경거리였다.
그녀는 어떻게 보면 전자과 아니, 공대 전체를 통틀어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지 않은가?
옆에서 그렇지 않아도 그녀에게 관심이 많은 김동인이 그냥 있지 않았다. 도대체 뭐 하나 싶어서 슬그머니 다가가서 화면을 본 것이다.
다른 이들은?
우르르.
원래는 이들 역시 다른 과제 때문에 잠깐 컴퓨터를 이용하려고 들어왔었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뒤에서 발뒤꿈치를 들고는 지켜보기 시작했다.
물론 방해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최현주의 반응이 너무 이상했다.
다만 김동인 같은 경우에는 내심 조민우 욕을 속으로 바가지로 할 따름이다.
‘제길 선배라고 꼴사납게 후배나 유혹하고, 정말 지랄 같다니까. 정말 너무 한 것 아냐? 저런 식으로 하면 다른 후배들이 뭐라고 할지 알면서도 저러나?’
그의 경우는 그러했다.
하지만 다들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더욱이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는 그들도 고개를 갸웃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찰칵.
찰칵.
조민우가 작업하는 마우스 클릭 속도가 점점 올라가면서 시뮬레이션 속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것이 아니었다.
저항 숫자가 많아질 뿐이 아니라, 거기에 커패시터까지 추가되었다.
전자공학과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커패시터가 들어가면 계산이 복잡해진다. 거기에 저항 숫자까지 추가되면 아주아주 복잡해진다.
이것을 쉽게 알 수가 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최현주는 처음에 그냥 저항 숫자가 많아서 저거야 등가 회로 보면 되니까. 그런 가 했다. 하지만 저기에 커패시터가 들어가자 그럴 수는 없었다.
‘이상하네. 저게 이해가 되나?'
물론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반감이 심한 김동인 역시 이런 상황에는 안색을 찌푸렸다. 상황 자체가 너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저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 것일까?
그가 보기에는 지금 조민우가 하고 있는 일은 그야말로 시간 낭비에 불과할 따름이다.
조민우는 어떨까? 그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기존에 시뮬레이션 통해서 얻은 그 감각을 그대로 확대해서 적용한 것뿐이니까.
금반지의 힘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억력을 처음에 올렸는데, 그것이 곧 이어서 논리 감각을 더욱 강하게 만든 것이다.
그 논리력은 인간의 인지 범위와는 좀 차이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일반적인 인간에 비해서 그 논리력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없느냐? 그렇지는 않았다.
조민우는 지금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적응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Pspice 툴의 저항, 커패시터를 바라보는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쉬운 것이냐?
그렇지는 않았다. 감각적으로 Pspice가 수동 소자를 어떻게 다루는 지 어느 정도 감각을 얻은 것이다.
‘허어, 이것이 이런 의미였나?’
스스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머릿속에는 수십 개, 수백 개의 전기 소자가 머리를 휘 저으면서 복잡한 연산을 반복하기 시작한 것이었으니까.
바로 암기력이 조금 전에 작업했던 것을 그대로 주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민우는 실로 신기한 경험을 통해서 새삼 자신의 능력을 돌아보았다. 도대체 자신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그 원인을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금반지 때문이겠지?’
뭐 지금 와서 금반지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겠는가?
자신의 능력이 오히려 더욱 부각되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하지만 조민우도 기본적인 수동수자를 다 끝내고, 능동소자인 트랜지스터인 들어갔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머릿속으로 갑자기 그가 보았던 회로 이론의 지식이 그대로 한 번에 물밀 듯이 흘러 들어와서는 조금 전에 얻은 Pspice와 관련된 것이 서로 결합된 것이다.
‘으음.’
신음성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참을 만 했다.
아니 이제는 어느 정도 이전에 비해서 두뇌가 그만큼 저항력을 가졌다는 것이 정확했다.
스으으.
여기에 어느 일정 순간을 넘어가면 금반지가 자연스럽게 반응을 보였기에 더욱 몰입감에 빠져들어갈 수 있었다.
조민우 역시 이것이 금반지로 인해서 생긴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다행이 걱정은 되지 않았다.
순간 그는 자연스럽게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한 회로 이론과, Pspice 소자가 서로 관련되는 부분의 공통점을 찾아들어갔다.
그것은 마치 퍼즐 두 개를 평행하게 놓고, 서로 비교하는 것과 비슷했다.
왼쪽에는 회로 이론에 관한 내용이,
오른쪽에는 Pspice에 대한 이론이 쭉 떠올랐다.
두 가지 필요한 요소들이 그대로 일대일로 대응하면서 맞추어 들어갔다.
물론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
빠진 것도 있었다.
용어가 틀린 것도 있었다.
하지만 기준이 분명하기에 틀리고, 말고가 없었다.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다시 맞추어 들어가면 되니까.
조민우는 이런 작업을 통해서 회로 이론 저자가 전해주고자 하는 의미 이상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Pspice가 전해주는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상은?
마치 모호한 안개처럼 텅텅 비어 버렸다.
그는 물론 여기에 대한 답을 바로 찾지는 못했다.
일단 모르니까.
‘하지만 이 부분은 어차피 도서관을 이용해서 공부하면 되면 간단히 될 내용이겠지?’
당연한 결론이었다.
아직은 지금 당장 자신에 주어진 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기에 가지는 한계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상황은 이전에 비해서 조금씩 더 달라졌다.
분명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눈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보자 이것을 알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 거지? 일단 당장에 필요한 것은 수학적인 부분 같은데, 이런 영역을 뭐라고 했던 것 같았어. 제길 기억이 나지 않는군. 일단 그 부분을 따로 추가로 봐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군.
그가 한 것을 이처럼 일단 영역이 넓어지자 불필요한 영역을 배제해야 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조민우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정리해가자 어느 순간에 Pspice와 필요한 부분은 간단하게 정리가 가능했다.
물론 능동소자 해석에 관한 것 역시 이미 회로 이론에서 기본적인 계산 방법에 관한 것은 예제가 있기에 그것을 토대로 하나하나 늘려 가면 될 뿐이다. 이것을 다시 Pspice 결과와 하나하나 맞추어 가면 되었다.
이렇게 흘러가자 상황이 어떻게 될까?
자연스럽게 손으로 하는 계산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알 수가 있었다.
‘흐음, 결국 손으로 하는 계산을 원래 있던 조건에서 너무 방만한 부분들을 넣으면 계산하기가 복잡해지기에 생략해서 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
여기까지 결론을 내리자.
그 다음 결론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Pspice는 나머지 수작업에서 무시한 이 세세한 팩터를 넣어서 좀 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가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군. 대표적인 예로 온도 특성이잖아? 지금 회로 이론에서 언급한 온도 특성에 따르면 80도가 온도가 올라가도 정상적인 동작을 하지가 않지. 결국 전자 제품에 오동작의 소지가 발생한다는 말이고.’
어떻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조민우는 아는 것은 동일했지만 그 내부에 담겨 있는 지식을 분명히 자신의 것으로 한 상태에서 다른 일반인과는 좀 달랐다.
직관적으로 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물론 이것은 그의 머릿속의 생각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외부로 드러난 것은 어떨까?
겉으로 보기에는 딱 한 마디의 말로 축약될 수가 있었다.
복잡했다!
저항이 몇 개일까?
대충 화면에 보이는 숫자만 해도 40개는 훌쩍 넘어갔다.
여기까지만 해도 최현주는 그냥 참고 볼만 했다. 뭐 좀 힘들기는 하지만 열심히 노가다 계산을 하면 되니까.
‘흥, 나도 저 정도는 할 수가 있어.’
김동인 일행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는 어차피 반감을 가졌지만 이런 식으로 흘러가자 이제는 이를 으드득 갈아붙이고는 더욱 반감을 가지기까지 했다.
‘나쁜 새끼, 겨우 저런 식으로 해서 현주를 유혹하려고 하다니, 정말 선배가 저런 얄팍한 수작이나 부리고, 그런 식으로 하니까 복학생 선배들이 단체로 욕 얻어먹는다고!’
그렇다고 이런 감정을 내색할 수 있느냐?
그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라도 해도 최현주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끝이냐? 그렇지는 않았다. 여기에 커패시터 숫자만 해도 20개를 넘어갔으니까.
커패시터가 들어가면 해석은 일반적으로 어려워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복잡한 지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마구잡이로 넣은 것은 아니었다.
반복적인 해석이 가능한 부분을 추가로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회로 늘어간 것뿐이니까.
“......”
물론 최현주는 입을 살짝 벌린 채 힐끗힐끗 조민우의 얼굴을 살펴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도저히 저럴 수가 없는 탓이다. 아니 자신을 떠나서 세상 어떤 사람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확했다. 당연히 생각은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제대로 알고 하는 것일까?’
그녀의 입장이 그러했다면 김동인은? 아니 다른 조지훈 일행은 어떨까?
(야아, 저거 알고 하는 것 맞아?)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 저것을 어떻게 아냐? 그냥 이리지리 올려서 연습만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좀 많이.......너무 체계적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