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5 회 -- >
정훈구 과장은 자신이 꽤나 저 자세로 대했음에도 그다지 변화가 없는 그를 보자 안색을 찌푸렸다. 기분이 나빠졌다. 겨우 생수 소량 판매하는 업체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대기업이나 마찬가지인 E마트 영업 과장인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다니.
“설마 거절하실 겁니까?”
조민우는 물론 영업 관련해서도 경험이 많아서인지 그의 감정 변화를 느끼자 아차 했다.
“아, 그런 말은 아닙니다. 일단 좀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 회사에서 생산 가능한 최대 생산량은 하루 1,000개가 최대입니다. 그런데 이달만 해도 1,500개를 생산해야 할 상황입니다. 사실 이것만 해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500개를 더 늘린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까지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말하는데, 무조건 협박을 할 수가 있을까? 그렇지 않았다. 더욱이 정훈구 과장은 완전히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흐음, 그래요?”
조민우는 그제야 어느 정도 그의 감정을 풀어주었다는 것을 확신하자 안도했다.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상대 비위를 맞춰 주는 것은 역시 이전이나, 지금이나 내키지 않았다.
“일단 시간이 필요합니다.”
“좋습니다. 결정 나는 대로 바로 저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들만 그러냐?
그것은 아니었다. E마트 외에 편의점 역시 입소문을 듣고 이쪽, 저쪽에서 계속 요청이 들어온 탓이다.
“이봐, 다른 편의점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어.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뭔가 대안이 필요했다.
‘골치 아프네.’
***
조민우는 특히 금, 토, 일의 경우에는 미리 생수 비축분을 만들어 놓아야 하기에 두 여인이 퇴근한 시간에도 거의 일(?)만 했다.
특별한 일이냐?
그것은 아니었다.
바로 ‘정화’ 주문을 사용해서 생수를 만들어 두는 작업이었다.
물론 이전만 해도 어느 정도 주문 물량에 여유가 있기에 3일을 계속해서 매달릴 이유는 없었다.
하루 정도? 그 정도만 바짝 붙어서 해도 하루에 1,800개 정도는 생산이 가능했다.
물론 6시간 기준으로 600개꼴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6시간 생수를 만들고, 1시간 쉬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일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어서 기절해버리는 경우가 간간히 있었다.
그 만큼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주문량이 무려 1,500개까지 늘어나자 하루만 가지고는 힘들었다.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생산 가능한 물량을 안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조민우가 최소한 2일 정도는 바짝 붙어서 추가 생산하게 되면 물량을 3,600개 정도가 된다. 이 여유분이 있어야 평일 하루에 보통 600개 생산이 가능했는데, 4일이면 2,400개이다. 일주일이면 결국 생산할 수 있는 총수량이 6,000개가 된다.
하루에 1,000개꼴이면 역시 모자라다.
하지만 이 부분은 컨디션 조절에 따라서 200개씩만 더 추가를 하거나, 여유가 생길 때 하면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했다.
그래서 아슬아슬하게 1,000개는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그런데 1,500개가 되면?
이것은 좀 무리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의 양을 키워서 상대적으로 정화 마법의 효력을 반감시키는 것이다. 이미 지금 물 생산 기준량 대비 5배까지는 효과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결과가 나왔기에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왠지 이 방법은 내키지가 않아. 꼭 위스키에 물을 타서 고객을 속이는 방법과 마찬가지잖아? 그렇다고 내막을 자세하게 말을 할 수도 없지!’
바로 기업 윤리에 관한 것이다.
조민우도 돈만이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이런 방법을 사용했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몰라. 정 방법이 없다면 마지막으로 그가 보기에 편법적인 방법을 고려해볼 방안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 노인이 왜 생수를 마시면 기력을 회복하는 지 원인을 찾지 못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정공법을 사용해서 계속 무리를 거듭했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자 이런 기본적인 능력이 늘어나기에 얼추 맞출 수는 있었다.
바로 6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물량 자체가 900개까지 억지로 늘였다.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헉헉.”
조민우는 오늘도 대학에서 학과 수업을 끝내기가 무섭게 집에 와서 겨우 900개 생산을 끝내고는 숨을 헐떡이면서 기진맥진한 채 퍼져버렸다.
방한 쪽에 뻗어서 사지를 뻗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복날에 두들겨 맞은 개처럼 볼 상 사납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알 수가 있는 일이었다.
지금 그는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인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백지처럼 하얗게 비어 있다는 의미이다.
정신력을 완전히 바닥끝까지 몽땅 소진해 버린 그런 느낌.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머릿속만 그러냐?
그렇지는 않았다.
놀라운 사실은 어느 단계 이상 넘어가면 신체의 에너지 소모 역시 같이 늘어난 것이다.
‘아마 그것은 뇌 소모가 급격하게 진행될수록 에너지 소모도 같이 늘어나는 것이겠지. 이거 정말 문제가 되지 않을까?’
당연한 우려였다.
조민우는 물론 이런 추측을 통해서 지금 자신의 생산양이 늘어난 것도 자신의 체력이 과거에 비해서 월등히 향상되었기에 그나마 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예측이 가능했다.
과거 초기에 생산한 물량에 비하면 지금은 혹사 수준으로 한다고 900개 생산이 가능했으니, 과거 초기 600개 생산에 비하면 1.5배 증가라는 실로 엄청난 증가와는 무관한, 소폭의 발전이었다.
‘허어, 생각해보면 정말 한심해! 겨우 이 정도에 불과하다니.’
그렇다고 무시할만하냐?
그렇지는 않았다.
말이 좋아서 정신력이 늘어난 것이다.
정신력이 수치가 늘어난 것을 그냥 평범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도 요즘 들어서 업체 요구에 그냥 머리를 비우고 뛰어다니기에 바빠서 무시한 사실이었다.
정신력이 1.5배 증가란 말은 그냥 간과할 문제가 아니었다.
조민우는 결국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자 곧 자신의 방에 앉아서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했다.
정신력이 1.5배 증가했다면 다른 것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의문을 가진 것이다.
이미 그런 경험이 있기에 더욱 이런 점을 간과할 수만은 없었다.
‘솔직히 정화 마법을 뒤 늦게 알았다면 결국 단순 무식하게 물 마법을 사용해서 물을 만들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되잖아? 그것은 정말 미친 짓이지.’
관점의 차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다른 대안을 찾을 정도로 녹녹한 것만은 아니었다.
“헉헉, 돌겠군. 다른 방법이 정말 없다는 말인가?”
정말 힘든 상황이었다.
***
일주일 후.
조민우가 기본적인 학과 생활에 어느 정도 충실하면서도, 생수 공급에는 차질이 없도록 노력을 하는 중에도 계속 생산량 확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고심을 거듭했다.
평일에 계속 짜투리 시간을 내서 계속 반복 실험을 했으니. 실로 가볍게 볼 수만은 없었다.
하루에 기본적으로 생산 물량이 부담 없이 생산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제는 적어도 700-800개 정도는 해야 하는 탓이다.
주말이 되면 쉴 수 있느냐?
그렇지 않았다.
생수 물량을 키우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조민우는 그다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몇 몇 사람의 경우에는 이런 그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배님, 정말 너무 한 것 아니에요?!”
조민우는 주차장에서 생수 배달을 위해서 민현진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에 최현주의 항의가 가득한 불만을 듣자 곤혹스럽기만 했다.
“무슨 뜻이야?”
“오늘 같은 금요일은 배달 끝내고, 좀 쉬워도 괜찮잖아요? 내일부터 주말이니까요!”
하지만 생수 생산량 방법을 찾고 있는 그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하아, 그것은 여유가 있는 현주나 그렇게 해. 나는 도저히 그럴 엄두가 안 나.”
최현주는 허리에 양손을 턱하니 걸치고는 다소 언성을 올렸다.
“선배님, 물론 지금 하는 일, 생수 사업이 돈을 벌자고 하는 것인지는 알아요. 하지만 그 정도 수익이면 괜찮지 않아요? 한 달에 지금 못해서 3,000만원은 벌잖아요? 저는 충분하다고 보거든요. 더욱이 인생에서 있어서 돈이 전부는 아니죠. 쉴 때는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
누가 그걸 몰라? 나도 한 때는 흥청망청 놀았다! 아예 여자들을 집에 왕창 데려와서는 배추를 뿌리기까지 했으니까!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크흠, 하지만 업체 요구 사항을 무시할 수만은 없어.”
“아, E마트 말인가요? 정훈구 과장인가? 지훈구 과장인가? 그 양반여?”
꽤나 가시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조민우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하하, 뭐 꼭 그 때문만은 아냐. 어차피 계속 고민해 왔던 상황이니까. 지금도 보면 하루에 1,000개는 너무 부담이 돼. 800개까지는 어떻게 좀 그럭저럭 버티는데, 무리지. 그런데 지금은 1,500개를 계속 보급하는 상황이잖아? 덕분에 진짜 쉴 틈이 없지.”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좀 쉬는 것이 어때요? 어디 시원한 곳에 가서 한 번 여유를 가지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여유라.......”
조민우도 그냥 무시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 말을 듣자 다소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을 보면 꼭 과거 사업을 할 때 너무 무리하게 막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 때 결과는?
‘쫄딱 망했지.’
그렇다며 지금은?
‘설마 망할까? 그렇지는 않겠지. 다만 해결책을 찾지를 못할 거야. 틀림없이!’
이것은 아니었다.
일을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지금처럼 시간도 너무 그냥 일만 하면서 보낼 수는 없었다.
“알았어.”
최현주는 자신이 확신하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까지 쌓인 것을 털어놓자는 심사였다. 그런데 설마 상대가 허락해버리자 화들짝 놀랐다.
“어? 저, 정말이에요?!!”
조민우는 힐끗 그녀를 째려보면서 툴툴거렸다.
“내가 그렇게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인 줄 알아? 나도 일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냐. 업체에서 그런 요구를 할 때, 무조건 무시하면 나중에 뒤통수친다고. 그러면 현주 시급이 줄어들잖아?!”
“아, 아뇨, 그런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최근 선배님 하는 행동을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일만 미치도록 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선배님은.......”
물론 그녀는 뒤에 말을 슬쩍 삼켰다.
‘더욱이 저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죠. 정말 너무 한 것 아니에요? 어떻게 둘이 한적한 곳에서 의도적으로 무방비 상태로 기회를 줘도 그냥 넘어가요!’
그는 힐끗 그녀의 눈치를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선배님은? 그리고 뭐?”
“아, 아니에요.”
“아니긴, 뭘 아냐! 할 말이 있으면 해 봐. 어차피 들어주기로 한 김에 해줄 것은 다 해줄 테니까.”
“그러면.......아, 그것은 현진이 오면 같이 이야기 의견 나눠요.”
“알았어.”
조민우는 대답과 동시에 봉고차 운전석 안에서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다. 오늘 따라 다른 날에 비해서 유난히 늦은 민현진이었다.
‘도대체 애는 왜 안 오는 거지?’
그렇다고 조금 늦은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기에는 힘들었다. 시계를 보면 대략 5분 정도 늦은 것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5분이 더 지나자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오늘 따라 왜 이러지?”
최현주는 당연히 친구이게 두둔해주었다.
“뭔가 일이 있어서 그럴 거에요. 조금만 기다리면 곧 올 거에요.”
“정말?”
“현진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시간은 확실히 지키는 애이니까요. 솔직히 제 경우가 오히려 현진보다 시간을 잘 안 지키죠.”
하지만 다시 10분이 경과하자 그럴 수는 없었다.
“이래도?”
“치이, 알았어요!”
결국 최현주는 핸드폰을 들어야 했다.
뚜우.
뚜우.
하지만 민현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 전화를 받지 않는데요?”
조민우는 그제야 툴툴거렸다.
“봐, 미리 전화를 했으면 좋았잖아!”
“하아, 어쩌죠? 계속 기다리면 생수 배달에 문제가 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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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 갈 만한 곳은?
으쓱한 곳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