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 회 -- >
조민우는 벤치에 몇 시간 동안이나 앉아서 마법진에 대한 고민을 거듭 하면서 멀뚱히 금반지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도 마법진에 대한 대답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를 부르는 쾌활한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민우 오빠!
움찔.
그는 갑자기 들린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누구인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가 있었다.
현주군.
아니나 다를까 최현주는 마치 귀여운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와서는 부끄럽지도 않는 지, 그의 허벅지 위에 떡 하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는 양 팔로 그의 목을 휘어 감았다.
“오빠!”
“응?”
애가 정말 사람 당황하게 하네, 아니 그냥 그렇게 와서 대책 없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어떻게 하냐? 다만 기분이 너무 좋아서 뭐라고 말을 하기도 좀 그런데.......
자신의 허벅지에 닿은 부위가 마치 그녀의 그 부분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서 허벅지를 문지르자 그 감각은 정말 참기가 쉽지 않았다.
문득 축축한 느낌마저도 들었다.
설마 흥분한 거야?
하지만 조민우도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기에 고개를 내젓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을 힐끗 쳐다보았다가 딱 시선을 멈추었다.
애가 왜 이러지?
그런데 최현주는 마치 이런 그의 당황함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슬그머니 고개를 숙여서 붉은 입술로 가볍게 그의 뺨에 뽀뽀했다.
쪽.
“어때요?”
어떻기는 뭐가 어때? 너 지금 장난 하냐? 지금 내 허벅지에 닿은 부위를 보고 그런 소리를 해. 그런데 겨우 뽀뽀라고?
내심 오히려 욕설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디 사람일이 그런가?
그럴 수는 없었다.
“크흠, 좋아.”
“정말요?”
눈을 살짝 홀기면서 볼에 보조개를 살짝 피운 모습은 참으로 유혹적이었다. 거기에 곧 눈을 살짝 크게 뜨면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는 모습은 너무도 고혹적이었다.
도대체 유혹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 염장을 뒤집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민우는 물론 이미 최현주의 술수(?)는 많이 경험해보았기에 과거처럼 그렇게 어수룩하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장난 그만 하고, 빨리 내려와!”
“치이, 알았어요.”
최현주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조민우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심통이 나서는 입이 툭하니 튀어나온 채로 그의 옆 자리에 풀썩 앉았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그가 들고 있는 PT가 들어온 것은 자연스러웠다.
“오빠, 그거 뭐에요?”
“아? 이거 물이지. 마시려고 생수 구입한 거야.”
“흐음, 그래요? 그런데 그 물 안에 들어 있는 고무줄은 뭐에요?”
하여간에 눈치는 귀신이야. 이런 것을 어떻게 저렇게 잘 아는지 몰라. 대충 둘러대면 뭐라고 할 것 같은데, 이것을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은 길었지만 어차피 말해도 솔직히 믿기가 어려운 내용이었다.
“아, 실험 중이었어.”
“도대체 무슨 실험인데, PT 안에 그런 식으로 고무줄을 넣어서 한 거에요?”
조민우는 정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도 이제는 최현주의 성격을 아는 바. 그냥 넘어가기에는 좀 곤란했다.
“마법으로 PT 안에 들어있는 고무줄을 태우려고 하는 거야. 정신을 집중한 채로 ‘불’이라고 소리치면 정말 불이 붙거든. 다만 물 통 안에 있는 고무줄이 과연이 불이 붙을지 궁금한 거야!”
최현주는 가소로운 표정이었다. 자신보고 저 말을 믿으라고 하는 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오빠, 농담이죠?”
“아니 진담인데.”
“에휴, 아니에요. 그냥 넘어가죠.”
조민우는 솔직히 말해줘도 이런 상황이 되자 부드럽게 미소 지으면서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킥킥킥, 알았어. 그런데 오늘은 좀 일찍 왔네?”
“당연하죠. 혹시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준비라? 뭐 할 거라도 있나. 아, 맞아 생각해보면 뭔가 빠트린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뭐였더라.......아, 생각났다.
“준비라.......가만 그리고 보니 약속 장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았네.”
“쯧쯧, 그럴 줄 알았어요. 오빠는 간혹 보면 아주 사소한 것은 대충 넘어가는 경향이 심하더라고요. 제가 오죽하면 혹시나 해서 이렇게 미리 왔겠어요?”
조민우는 왠지 자신에게 불만을 털어놓은 그녀가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늘 같이 있어도 상큼하면서 변치 않는 모습이 오히려 좋았다.
원래 섹스를 한 번 하고 나면 서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 버려. 그런 면에서 보면 현주는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것이 낳지 않을까? 에이, 이것은 나중에 생각하자.
물론 그는 이런 상념을 곧 털어버리고는 지금 당장에 해야 할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참 그렇다면 현주가 가서 예약 좀 해줄래. 이왕이면 현진에게 연락해서 같이 좀 알아 봐. 가능하면 오빠 전 회사 직원들이니까. 그들에게 간단한 이벤트 형식으로 하는 것도 좋고. 정말 몇 달 만에 만나는 직원들이거든!”
마지막 말은 꽤나 여운이 담겨 있었다. 최현주 조차 처음에는 그냥 사무적인 일로 생각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요? 그러죠. 그러면 그 쪽에서 몇 명이 올지 미리 알아야 하는데요?”
조민우는 굳이 머뭇거릴 이유가 없이 곧 바로 자신의 수첩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었다.
“여기 전화 번호 있어. 여기로 전화하면 될 거야. 그리고 숫자 먼저 확인한 후에 곧 바로 호프 집 예약을 하면 될 거야.”
“그러면 오빠는요?”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PT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난 좀 할 일이 있어.”
“피이, 마법 실험한다고요?”
“응!”
“진짜 진담으로 하는 말이에요?”
조민우는 눈까지 홀기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그녀가 참으로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는 가볍게 입술에 혀를 살짝 밀어 넣어서 키스한 후에 떨어졌다.
“으음.”
하지만 그는 곧 그녀가 눈을 살짝 감은 채 아쉬운 표정을 보이자 그녀의 오뚝한 코를 양 손가락으로 잡은 후에 이리저리 흔들었다.
“현주 비서, 빨리 가서 약속 잡아야지요!”
“뭐에요! 아파요!”
그는 도저히 참지 못해서인지 슬그머니 그녀를 꼭 껴안아주면서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킥킥킥, 그래? 정말 아파.”
“이 왕 변태 오빠!”
하지만 최현주는 심통이 나서는 인지 그를 밀치고는 벌떡 일어나서는 한 마디 툭 솟아 대고는 곧 바로 후다닥 사라졌다.
조민우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조금 전에 그녀를 안았던 그 감촉을 음미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귀여워. 그냥 이대로 현주와 계속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 현주는 의외로 남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면이 있어.
그는 정말 최현주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이것은 결코 섹스 파트너 관계에서 결코 가지기 어려운 순수한 감정이었다.
그는 사실 최현주와 같이 자는 것에 대해서, 아니 깊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대로 계속 갈까?’
***
조민우는 이처럼 최현주 스스로가 이미 어느 정도 선을 그어서 행동한 것도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가벼운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가 최현주를 믿느냐?
그것은 솔직히 지금도 확신하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최현주가 나중에 고무신 거꾸로 신을 지도 모르다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에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여자에게 한 번 뒤통수를 맞아본 경험이 있는 탓이다.
최현주 역시 이런 그의 태도를 보고 대충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녀도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자 조민우가 어느 정도 선을 유지하고 더는 넘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탓이다.
당연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마음이 점점 변해갔다.
지금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최현주가 조민우와 섹스하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가져서 그러냐?
그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조민우가 원하면 오늘이라도 같이 잘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같이 자고 나면 남녀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변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이렇게 가볍게 계속 가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더욱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조민우가 자신의 몸을 보고도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이 때문에 그를 더욱 신뢰하고, 믿었다.
그래도 여자마음이 그런가?
한 편으로 서운 한 것은 사실이었다.
오빠가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이런 불안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꼭 그에게 다소 노골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이제는 익숙한 행동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문제는 사실 조민우가 아니었다.
그 불 여시 같은 현진이가 문제야!
최현주는 결국 핸드폰을 들었다.
<나야.>
<엉? 현주? 웬일이야?>
<웬일이기는 오늘 약속 잊었어?>
<그것은 나도 아는데.......>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여기 우리 대학 정문이거든. 이쪽으로 빨리 와.>
<어? 그래? 민우 오빠도 거기 있어?>
<민우 오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진짜 이 말은 꼭 해야 되겠다. 현진아, 정말 너무 한 것 아냐? 오빠랑 나 사이의 관계를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지만 민현진은 이미 이런 상황에 대해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 너 진짜로 설마 민우 오빠랑 사귀는 사이였어?>
<하아, 어이가 없네. 현진아, 정말 너 그러는 것 아니다. 어떻게 친구끼리 그럴 수가 있어?>
<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갑자기 왜 전화한 거야? 거기 민우 오빠가 없으면 지금 중앙 도서관에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최현주는 그렇지 않아도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판단해서인지 냉정하게 한 마디 했다.
<오빠가 오늘 전 회사 직원 모임 예약 때문에 확인하러 가라고 했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일로 와. 너 괜히 오빠에게 가서 시간 보내면 내가 그냥 안 둘 거다!>
<에휴, 알았다.>
<끊어!>
그녀는 이렇게 전화를 끊자 그나마 민현진에게 쌓인 앙금 일부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겨우 일시적일 뿐이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해! 진짜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 기집애가 설마 오빠랑 자버리지는 않겠지?’
상상하는 것으로도 끔찍했다.
***
최현주는 물론 민현진이 바로 도착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바로 민현진이 얼마나 느릿느릿한 지 잘 아는 탓이다.
그녀는 결국 약속한 호프집으로 가면서 민현진에게 그냥 문자로 남겼다.
-호프집으로 바로 와.
그녀는 얼마 있지 않아서 대학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넌 후에 건물 사이로 나 있는 좁은 통로를 통과해서는 곧 오르막길이 보이자 그 위쪽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물론 약속한 호프집은 그 언덕을 오르자 바로 눈에 보였다.
‘새로운 돼지 갈비!’라고 적혀 있는 간판 새삼 눈길을 끌었다.
쯧쯧, 작명센스 한 번 정말 장난 아니다. 민우 오빠도 보면 이름 짓는 것은 정말 꽝이던데, 여기도 그러네. 솔직히 ‘마법 같은 물’이 도대체 뭐야?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니까.
이상하게 오늘 따라 조민우에 대한 불만이 치밀어 올랐다. 아마 민현진 때문이 아닐까? 추측을 해보지만 알 수는 없었다. 솔직히 그녀도 자신의 마음은 왜 이런지를 잘 모르니까.
최현주는 이런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서는 곧 호프집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한 쪽은 의자에 앉아서 먹을 수가 있었는데, 반대편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도 대학생 모임이나 이런 것을 위해서 마련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물론 사십대 중반에 코가 빨간 주인이 곧 나타나서는 잠깐 최현주의 놀라운 외모를 보고는 살짝 충격에 빠졌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무,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최현주는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이 정도는 넘어갔다.
“오늘 예약 확인 때문에 왔거든요. 조민우씨가 아마 전화를 했을 겁니다.”
“아, 잠깐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