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2 회 -- >
하지만 조수연은 여유롭기만 했다. 그녀는 이미 DS 문자가 얼마나 중요한 지 대충은 아는 까닭이다.
<아마 알고 나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거야.>
뜻밖의 이야기.
<정말?>
<응.>
<좋아, 일단 서명하고 나서 좀 보자.>
제니퍼는 그래도 몰라서 간단하게 계약서를 확인 후에 곧 바로 서명을 끝냈다.
스르르.
<자, 됐다. 어디 한 번 줘봐.>
조수연은 서명 날일을 다시 한 번 확인 후에 머뭇거리지 않고는 곧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DS 문자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조민우 요청 때문에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여기 있으니, 한 번 확인 해봐.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은 바로 표시를 해 놓았으니, 확실히 알 거야.>
제니퍼는 상대의 자신만만 태도를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내 그녀가 준 DS 문자를 하나하나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보자마자 입을 딱 벌렸다.
<이, 이 문자가 이렇게 많았어?>
<응, 당연하지. 너에게 보낸 것은 그 중에서 내가 의미를 파악한 기본 다섯 개만 보낸 것이니까.>
<하, 하지만 이렇게 많다고는 말하지 않았잖아?>
<쯧쯧, 그러면 내가 미국에 있는 너를 갑자기 한국까지 오라고 할 이유가 없잖아? 지금 딱 봐도 나 혼자하기에는 힘들다는 느낌이 팍팍 오지?>
<그, 그렇구나.>
제니퍼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DS 문자를 보는 것에 빠져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조수연은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쾌재를 불렀다.
이제야 좀 편하게 작업이 가능하다는 느낀 탓이다.
‘휴우, 이제 좀 살겠다. 제니퍼가 알아서 볼 테니, 제가 보지 않는 부분만 나는 집중하면 되겠지!’
언뜻 생각해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것은 그만큼 DS 문자 해독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일주일 후.
조수연은 이렇게 해서 역할 부담을 시작하게 되자 과거에 자신이 할 때에 비해서 빠르게 일이 진척되는 것을 만족했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도 시간이 지나서 어느 정도 실력이 늘었지만, 제니퍼의 실력은 이런 자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과거에 비해서 너무도 크게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하긴 미국에서 계속 그렇게 빡 시게 일을 했을 테니, 당연한 건가? 거기에 비해서 난 한국에 와서는 편하게 일을 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자신이 안주한 반면에, 제니퍼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더욱이 그녀가 가져온 노트북에 있는 몇 가지 인공지능형 프로그램 능력은 생각보다 기능이 막강했다.
몇 가지 패턴 확인만으로 간단하게 이전에는 시간이 걸렸던 일을 줄여나갈 수가 있는 까닭이다.
더욱이 이것은 아주 큰 장점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조민우가 실수로 누락시키거나, 그것도 아니면 잘못 기재시킨 문자에 대한 보정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조수연은 중간에 해독하다가 연결고리 파악에 실패한 문자 하나의 문양을 가볍게 교정하는 동작화면을 보고는 정말 놀라워했다.
<우와, 정말 대단하다! 이런 기능도 가능했어?>
<확실히 괜찮지?>
<그런 정도가 아니잖아? 이건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제니퍼는 어깨를 딱 펴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해주었다.
<그거야 기존에 내가 하던 작업 과정을 알고리즘화해서 만든 거지. 아마 전 세계 어떤 문자로 이것으로 교정이 가능할 거야. 설사 그 의미를 모른다고 해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중간 중간에 해석 오류가 날 수도 있는 문제 과정이 줄어들었다.
당연히 작업 진행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조수연은 두 사람이 설사 일을 하다고 해도 최소한 10개월은 걸린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거 잘하면 한 달에 안에 가능할 지도 모르겠는 걸?’
그렇지는 않았다.
***
다시 일주 후.
<이상하네?>
제니퍼는 아무리 해도 어느 단계 이상 도달해서는 문자 패턴이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자 의혹에 사로 잡혔다.
분명히 부분은 해석이 가능한데, 꼭 지금 가지고 있는 전체 문자 패턴을 모두 합치면 따로 노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사뭇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것은 조수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도 가시적인 결과나 나와서 마무리가 되어가자 나타난 현상은 잘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어. 이런 현상을 보다보다 처음이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 툴로 돌려보면 어느 정도 답은 나와야 하거든.>
조수연은 누구보다 제니퍼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이 말을 그냥 대수롭게만 듣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군.>
<응, 그렇게 봐야 해. 뭔가 우리가 착각한 것이 있는 것 같아.>
간단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민우씨에게 한 번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
조민우는 물론 두 사람이 정신없는 바쁜 중에도, 자신 역시 정신이 없기는 매 한 가지였다.
말이 좋아서 하루 수천 개의 생산량이다.
실제로 해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 까닭이다.
아 물론 하루 이틀 작업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 그것도 꾸준히, 심지어 주말에도 보통 작업을 해야 한다면 상황이 좀 달랐다.
지친다는 말이다.
‘돌겠군.’
그는 실로 끔찍한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해봐야 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 자신 혼자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시간이 남을 경우에 혼자 DS 문자를 따로 다시 보았겠는가?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지적 능력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수준의 공부 능력에 한하는 것이다.
DS 문자 해석은 이런 범주의 일과는 너무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차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지이잉.
지이잉.
‘어라 수연씨잖아? 그렇다면 벌써 문자 해독을 끝냈다는 말인가?’
쾌재를 부르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저 조수연이에요.>
<네,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가 듣기로 같이 일하는 분도 왔다고 전에 메일 받았어요. 그렇다면 결과가 어느 정도 나왔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아 그것 때문에 제가 전화 드렸습니다. 문제가 생겼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무려 들어간 비용만 해도 400만원이 줬건만!
<크흠, 지금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그 때문에 따로 들어간 경비가 얼마인지 대충 아시지 않나요?>
남자가 좀스럽긴. 제니퍼를 한국에 데려온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해?
<흥, 그래서요. 설마 저에게 돈을 더 썼다고 지금 따지는 거에요?>
<아니 뭐 그렇다고 하기보다는. 아, 알았어요. 도대체 무슨 문제죠?>
조수연은 곧 테스트 진행 중에 생긴 문제에 대해서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따라서 현재까지 해석 진행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요. 그런데 꼭 전체적인 통합 작업에만 들어가면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나와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뭐가 실수가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건 절대로 아니에요. 제 친구가 인공지능 패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일일이 다 교정까지 한 상황인데, 그것조차 무용지물이니까요.>
<흐음, 그래요?>
조민우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쉽게 생각할 문제만은 아니었다. 지금 딱 봐서는 아예 뭔가 다른 관점에서 착오가 있지 않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말이었다.
잠깐 고민을 거듭해보았다. 그런데 지금 봐서는 말만 가지고는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온 결론은.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가서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군.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그 화면을 잠깐 볼 수가 없을까요?>
<그러면 어디서 볼래요?>
그가 기억 속에서 바로 떠올릴 장소는 없었다. 딱히 대학 근처에서 그렇게 유별나게 데이트 해 본 적이 없는 까닭이다.
<혹시 만날만한 장소가 있나요?>
<아, 그렇다면 정문 맞은편에 보면 우측에 보면 사층 커피숍이 있거든요. 거기 삼층에서 봐요. 아마 새로 짓은 건물이라서 근처에 가면 눈에 딱 보일 거에요.>
보기는 한 것 같은데, 하지만.......
<흐음, 그런 곳에서요?>
<왜요? 혹시 걱정되는 것이라도?>
이 아가씨야. 당연히 걱정이 되지. 그 DS 문자가 정확히 뭔지 알면 당신도 똑같을 거야.
<그건 좀 그래요. 딱 봐서는 공개적으로 너무 트인 장소이거든요.>
<그렇다면.......>
조민우는 그녀가 고민하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자신이 그녀 집으로 가기에도 좀 그랬다. 그런데 그녀를 회사로 초청하기에도 난감했다.
회사 직원도 문제지만 현주가 알면 난리가 나겠지?
현주뿐일까? 아마 민현주 그냥 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특히 요즘 들어서 은근히 자신에게 이것저것 노골적인 행동을 많이 한 것도 있기에 아마 피해보상 심리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여자 두 명을, 그것도 한 명은 그야말로 초 미인을 데리고 간 것을 보면.......
골치 아프군.
다행스러운 것은 조수연의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제 집으로 올래요? 하긴 여기가 괜찮기는 하지만.......>
조민우는 망설이기는 매 한 가지였지만 도저히 DS 문자를 외부에서 보이기는 곤란했다.
<거기로 하죠.>
<알았어요. 그러면 언제 올래요?>
<지금 바로 가죠. 주소가 어디죠?>
<대구 서구 내삼동 삼익 뉴경한 2차 아파트 309호에요.>
***
부르릉.
업무용 봉고차라서 그런 지 영 엔진소리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욱이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 지 오늘 따라 불쾌지수마저 더욱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다만 그나마 기분이 좋아지는 점이 있다고 하면 삼익 뉴경한 2차 아파트 사거리 근처에 그다지 차량이 없어서 정체가 없다는 점 정도였다.
하긴 여긴 대구 중앙 통이 아니니, 당연한 건가?
조민우는 목표한 장소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 멀리서 보이는 삼익 뉴경한 2차 아파트 모습을 힐끗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기에 꽤나 괜찮아 보이는 아파트였다.
아니 그럴 정도가 아니라 딱 봐서는 부유층이 주로 사용하는 아파트로 보였다.
하지만 뭐 그것이 중요한가?
조수연 집안이 좀 살 수도 있는 이니까.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끼익.
조민우는 잠깐 아파트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아, 정말 이 아파트에 사는 조수연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니까요.”
“허어, 자네같은 친구가 여기 한 둘인줄 알아?”
결국 그는 조수연과의 통화를 통한 후에야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서 차량을 세웠다.
찰칵.
그는 차량 밖으로 나와서 아파트 공용 주차장에 늘어 서 있는 수십 대의 고가 차량을 보고는 새삼 혀를 내둘렀다.
이거야 원. 여기가 미국이야? 전부 외제차잖아? 정말 너무하는 군.
볼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지 조수연에 대한 인상 자체도 나빠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생각을 털어버리고는 곧 목표한 아파트를 찾아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위이잉.
엘리베이터 역시 진동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아 아파트가 부유층을 목표로 한 것이라는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놀라워한 것은 서울이 아니라, 대구 근교에 이런 고가 아파트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긴 나야 아파트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 어쩌면 모를 수도 있는 건가?
이런저런 상념이 나왔다.
스르르.
하지만 목표로 한 엘리베이터 층이 열리자 이 생각을 버리고는 천천히 밖으로 나와서는 곧 우측에 있는 아파트 벨을 눌렀다.
딩동!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목소리.
============================ 작품 후기 ============================
###
한 4일 더위 먹었더니, 글이 좀 이상해졌죠?
이제 볼만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