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2 회 -- >
조민우는 곧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겁니다. 제가 소개 받을 때, 이런 것이 의외로 좀 많습니다. 단순 면적은 백만 평이지만 이것저것 잡다하게 추가하면 실제로는 백십만 평이 조금 더 된다고 하더군요.”
백십만 평.
휴우, 쉽게 볼 넓이가 아니었다.
정성일 부장도 처음에는 무조건 반대했지만 막상, 백십 만 평이나 되는 넓은 땅을 내려다보는 입장이 되자 생각이 좀 달라졌다.
“지금 와서 보면, 왜 지난 사업 시절에 그렇게 서울 한 복판에서 아웅다웅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부장님도 그런 생각이 들죠?”
“네.”
조민우는 다시 한 번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DS 임시 사옥을 내려다보면서 확신에 가득한 어조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지난 사업 때와는 달리 좀 더 여유를 가지면서 천천히 정상에 오르고 싶습니다. 굳이 이전처럼 여러분도 힘들고, 저도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간단한 한 마디.
하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기백은 정성일 부장을 숨죽이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기만 했다.
“사장님.......”
그런데 이것은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뒤늦게 여기까지 따라온 두 여인 역시 마지막 한 이 말을 듣고는 그저 입만 다물고는 멍하기 조민우의 뒤 모습을 지켜만 볼 따름이었다.
‘오빠.......,정말 멋져요!’
***
김민우가 이렇게 과거처럼 위험한 사업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이미 한 차례 시행착오를 겪어 보았고, 더욱이 아직도 그 원인이 된 이들과의 악연이 끝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박용운 부장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봐, 조경민 차장.”
싸늘한 음성.
평소의 그 부드럽기만 한 어조와는 확연히 달랐다.
조경민 차장 역시 안색을 굳힌 채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네?”
“지금 조민우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현재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남웅 대리가 무사히 DS에 입사를 한 상황이고, 지속적인 연락 역시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용운 부장은 안색을 오히려 굳힌 채 담배 한 가치를 피어 물었다.
“휴우, 조경민 차장.”
다시 나온 자신의 이름.
이번에는 그 톤이 조금 전보다는 더욱 낮으면서 음침하기까지 했다. 뭔가 좋지 않은 의미가 상당히 내포되어 있었다.
“네?”
“혹시 이번 주에 조민우 그 친구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는가?”
“무슨 말씀이신지?”
“그 친구가 지금 DS 임시 사옥이 있는 주변의 땅을 무려 백만 평이나 매입했어.”
백만 평이라니. 부지 백만 평이면 돈으로 치면 거의 수백억 대가 넘어간다. 지금의 조민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네? 서, 설마요?”
“쯧쯧, 이거 자네 조민우 그 친구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것 맞아? 이거 정말 자네를 믿지 못하겠군. 자네는 아직 전혀 긴장을 하지 않나 봐. 지금 자네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매몰찬 음성.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 그건 아닙니다.”
박용운 부장은 다시 한 번 담배를 쭉 빨아 당겼다가 이번에는 바로 그의 코앞에 불었다.
후우.
자욱한 담배 연기가 조경민 차장 얼굴에 가득 덥히기 시작했다. 그는 순간 굴욕감을 느끼고는 이를 악물었지만 참아야 했다. 의도적으로 지금 자신을 부추긴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개새끼,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하지만 박용운 부장은 그제야 다소 만족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조민우 그 친구가 백만 평의 땅을 매입할 돈은 분명히 없어. 그렇다면 확실히 좀 이상하겠지? 뭔가 있지 않고야 그럴 수는 없어. 그런데 조남웅 대리는 전혀 이 특이사항에 대한 보고가 없어?”
“그거야 아직 DS에 들어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계속 방치는 곤란해.”
“무슨 말씀이신지?”
박용운 부장은 음침한 눈빛을 반짝이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잘 생각해봐. 지금 그 친구가 돈을 벌 수 있는 까닭은 DS X 반응이 워낙에 좋아서 그래. 그 때문에 수익이 많이 생겼고, 여유가 생기니 땅을 매입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방법은 뭐가 있겠나?”
“DS X에 조치를 취하란 말씀이군요.”
“맞아. 무슨 말인지 알겠나?”
“하지만 제가 알기로 DS X는 식품의약품의약청에서 허가까지 받은 물건입니다만?”
사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식품의약품의약청에 허가까지 나온 이상에 손을 대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것은 어느 정도 정부 행정 기관에서 공을 받았다고 보면 되는 탓이다. 특히 식품의약품의약청은 1945년에 설립된 국립화학 연구소를 시작되었는데, 중앙생약시험장을 거쳐서, 중앙보건원, 다시 몇 개의 단체를 통합하여 국립 보건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그리고 다시 국립보건안전연구원을 거쳐서, 1998년에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승격했다.
조직은 주로 청장 1명, 차장 1명 그 아래 감사담당관,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이 있고, 1관, 5국, 48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속기관으로 6개의 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의약품안정평가원, 소관위원회가 있다.
주요 업무가 바로 식품 위생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조사, 식품첨가물, 기구용기, 포장 등에 관리 사항의 종합조정, 그리고 의약품 허가, 및 임상 관리 등이 있었다.
박용운 부장은 여기서 곧 한 가지 사항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쯧쯧, 자네는 그렇게 매사 부정적이서 곤란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지. 단적인 예로 식품 의약청에서는 허가뿐이 아니라, 식품 위생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조사까지 해. 이런 부분을 잘 이용하면 되지 않겠나?”
“그 말씀은.......DS X를 담당하는 담당 공무원에게 이의를 제기하라는 말입니까?”
“이의? 하하하, 맞아. 이의가 맞아. DS X와 같이 제대로 된 시험을 거치지 않는 물건을 만들어서 마구잡이로 파는 이들에 대해서 법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니까. 뭐 이것이 꼭 해당 안 된다고 해도 원래 찾아보면 문제가 많이 나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제가 그 쪽은 아는 바가 없는 지라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르륵.
“여기 명함이 있네, 이 사람에게 연락을 해서 부탁을 하면 될 거야.”
조경민 차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명함을 받아서 확인을 해봐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명함에 있는 신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남상민 식품의약청 차장!
박용운 부장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한 채로 다시 흰 봉투하나를 그에게 내밀면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 친구에게 이 선물(?)을 주는 것은 잊지 말고. 하지만 이 일은 자네가 하는 것이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네. 물론 우리 그룹사하고는 완전히 무관한 일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건.......알겠습니다.”
사실 이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 질문하고 말고의 상황이 아니었다.
***
조경민 차장은 다음 날에 곧 바로 남상민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잡고는 의약청에서 멀지 않은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이거 L그룹에서 사람을 보기는 정말 오랜 만입니다.”
깡마른 체격에, 목소리는 그렇게 듣기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더욱이 눈은 꼭 쥐새끼를 닮은 것처럼 쭉 째져 있어서 도저히 차장 직급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내심을 말할 수는 없었다.
스르르.
“이것은 제가 따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제가? 호오, 그렇다면 L 그룹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까?”
꽤나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잘 들어보면 단순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금방 눈치가 간다.
‘이 새끼가 의도적으로 자꾸 이 일을 L 그룹 이라고 하는 것 같아. 그래야지 그것을 빌미삼아서 돈을 더 뜯어 먹을 수가 있기 때문이겠지?’
생각할수록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이런 내심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아마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너무도 분명한 까닭이었다.
“네, 다시 말하지만 저희 회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드리는 선물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하려는 부탁과도 무관한 일이고요.”
“호오, 그래요? 그건 잘 알겠습니다. 제가 이거 한 번 확인해 봐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남상민 차장은 곧 봉투 한 쪽을 살짝 열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들어있는 것은 그다지 별 다른 것이 없었다.
키 하나와, 천원 지폐 크기와 비슷한 종이 하나만 들어 있었다.
의아한 표정을 한 채 종이 표면을 확인하고는 금방 상황을 알아챘다.
‘쯧쯧, 지하철 물품 보관소에 돈을 넣고, 그 키를 이런 식을 주다니, 무슨 첩보 요원도 아니고, 어처구니가 없군. 보자 도대체 돈이 얼마나 되기에 이 따위 웃기지도 않는 짓을.......흐음, 천 만 원이군.’
천만 원.
작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뇌물(?)로 보기에 그렇게 큰돈은 아니었다. 금액이 어떻게 보면 참으로 애매모호하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용건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DS라고 들어보았습니까?”
“DS라면.......처음 들어 봅니다.”
물론 금시초문이었다. 자기가 이토록 허접한 업체까지 기억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솔직히 중견 식품 업체 관리하는 것도 요즘 귀찮아서 밑에 맡기는 마당.
오히려 자신의 시간이 아까웠다.
조경민 차장은 다소 불편하기는 했지만 개의치 않고는 자신의 의뢰(?)를 말해주었다.
“최근 거기서 판매하는 제품이 바로 DS X라는 제품입니다. 일종의 물입니다. 하지만 그 효능이 단순히 물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습니다. 특히 성기능 향상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효능을 발휘하니까요.”
“호오, 그래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딱 봐서는 이러 저리 걸면 안 걸리는 것이 없어 보였다. 물론 물이라고 업체에서 잡아떼겠지만 그 효과가 물로 보기에는 너무 터무니없어 보였다.
“네, 제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무슨 대단한 요청이 아닙니다. 지금 들어서 아시겠지만 너무 이상한 구석이 많습니다. 물론 의약청에서 검사를 했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지 않습니까? 사람 몸에 해로운 물건을 파는 것일 수도 있으니, 확인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국민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제품을 파는 악덕 업체에 단죄를 내려달라는 부탁일 수도 있습니다.”
말을 고상하게 비비 돌리지만.
그 의미는 아주 간단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 업체 좀 어떻게 박살 내달라!
이런 요구였다.
그런데 역시 아쉬운 것은 의뢰 받은 업체가 듣보잡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아쉽군. 조금만 알려지거나, 자본이 튼튼한 업체라면 한 몫 단단히 잡을 수가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천만 원 정도로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업체 하나 망가트리는 것이 썩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좋습니다.”
위경민은 의외로 순탄하게 흘러가자 슬그머니 한 가지를 더 부언해주었다.
“만약 이번 일이 잘만 끝나면 조금 전에 드린 선물과 동일한 것으로 하나가 더 갈 겁니다. 그러니 이번 일이 사소해보이기는 하지만 신경을 좀 더 써 주었으면 합니다.”
바로 자신이 원한 바.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
남상민 차장은 은밀한 선물을 곧 지정된 장소에서 확인하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간단하게 이 사실을 윗선에 보고를 한 후에 은밀한 지시를 받을 수가 있었다.
-바로 진행하게.
사실 뭐 고민하고 말고의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DS가 뭐 하는 업체인지도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런 업체 하나 망하게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심심풀이 땅콩인 까닭이다.
그 역시 지시를 받기는 받았지만 이런 상황이 썩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양심에 가책을 조금은 느낀 까닭이다.
하지만 받은 돈 액수를 생각하자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뭐 나도 먹고 살아야지. 공무원 월급으로 입구멍에 풀칠이나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 어림도 없는 일이야.’
이것이 현실이었다.
곧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김창우 청장님!>
김창우 청장은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이놈이 항상 전화할 때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아는 까닭이다.
<나야 늘 그렇지. 서울 그 쪽은 어떤가? 그래도 여기 지방보다는 여건이 좋지 않은가?>
<휴우, 말도 마십시오. 요즘 들어서 계속 내부 감사다, 뭐다 생각보다 짜증납니다. 뭔 일을 하려고만 하면 상급 기관에서 계속 오라 가라 하니 미칠 노릇이죠.>
단순한 푸념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