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3 회 -- >
공무원 조직이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알게 모르게 이런 점은 오히려 사기업보다는 더욱 심한 까닭이었다.
특히 상급 감사 기관에서 떴다하면 정말 몸조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뇌물 같은 것을 받을 때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김창우 청장이 이런 사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지방으로 좌천된 것도 위선에서 원하는 정치적인 노선에 따라서 재빨리 행동하지 못한 것이 큰 까닭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일단 어느 정도 참으면서 견뎌봐야지. 요즘 취업하기란 정말 하늘에 별 따기란 사실을 잊지 말게. 자네 지금 그 일하다가 잘리면 정말 할 일이 없어.>
쯧쯧, 말하는 것 봐라. 그러니 대구로 좌천 된 거야. 이 양반아! 그래도 일단 잘 달래봐야지.
<그거야 그렇죠. 그래서 저도 나름 개인적인 노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안부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내용은 좀 달랐다.
<사실 그 때문에 전화를 드린 겁니다. 이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좀 고민스럽기는 합니다만.......>
이렇게 나오자.
김창우 대구 식품의약품의약청은 이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또냐? 이 새끼들은 정말 돈에 환장한 놈들이라니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울릉도 같은 외딴 섬으로 좌천될 수가 있는 까닭이다.
‘휴우, 내가 참아야지.’
<내가 뭐 하면 되겠는가?>
의외로 반응. 굳이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쯧쯧, 역시 사람은 좀 굴려야 정신을 차린 다니까. 진작 서울에 있을 때 그랬으면 좋았지 않습니까?
<사실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은.......(중략)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DS 제품 생산에 대해서 위생 검사를 좀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가능하면 그 회사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조사를 해서 문제가 된 것을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증거가 확실해지면 필요하다면 DS 판매 중지를 바로 하셔도 됩니다.>
내심 욕설이 치밀어 올랐지만 별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하아, 알겠네.>
<하하하, 그러면 잘 부탁합니다. 아마 이번 일만 잘 처리되면 곧 서울 쪽으로 승진 발령이 나실 겁니다. 그건 제가 장담할 수가 있습니다.>
뚝.
김창우 처장은 짜증나서 이 말을 끝으로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새끼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 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었다.
‘휴우, DS라? 뭐하는 업체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도대체 누구한테 찍혔기에 이런 지시가 내려오는 것일까?’
답답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다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최상렬 과장은 뜬금없는 청장의 호출도 호출이지만, 설명을 다 듣자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더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은.......”
“휴우, 내가 뭐라고 했으면 좋겠나? 자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알만큼 경력이 되었지 않은가?”
답답할 말이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DS 업체에게 솔직히 왜 그런 식으로 철퇴를 내려야 하는 지 최소한 이유는 알고 싶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그건 나도 모르네.”
“네?”
“쯧쯧, 그런 일을 쓸데없이 그들이 말할 것 같은가? 아마 DS 업체가 망하고 난 다음에나 이야기가 조금씩 나올 뿐이야. 자네는 왜 그러는가? 새삼 이런 일이 초짜인 것처럼!”
“하아, 알겠습니다.”
그는 집무실에서 나오면서도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뭐 그렇다고 크게 놀랐느냐?
그것은 아니었다.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까지 이상한 것만은 아니군. 그저 재수 없는 업체 하나가 걸렸다고 생각하면 나도 편하겠지.’
그저 그런대로 생각했다.
솔직히 자신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조직이 자신이 뭘 어떻게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괜히 나데 가는 오히려 그 결과는 너무도 분명했다.
‘조용히 그만 둬야겠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결국 다른 부하 직원 몇 사람과 함께 곧 DS를 향해서 출발해야했다.
***
부르릉.
최상렬 과장이 출발 전에 심사가 다소 복잡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그런데 자신의 옆에 앉은 부하 직원 눈치가 확실히 좀 이상했다.
“왜 그러나?”
“저기 무슨 일이지 혹시 알 수가 없습니까?”
“쯧쯧, 내가 알려줄 일이었다면 그냥 이대로 조용히 있었겠는가?”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그냥 평소처럼 편하게 자기 일에 충실 한다고 생각하면 돼. 가능하면 없는 문제도 만들어서, 아니 있는 문제는 더 키워서 찾으면 되겠지.”
다소 비아냥거리는 어투.
듣는 부하 직원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무조건 항변하기에는 좀 난감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래,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고.”
***
DS 조민우 집무실.
조민우는 비록 제한된 숫자라고 해도 DS 제품 생산 양산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거기에 비록 여러 가지 문제가 좀 있기는 하지만 백만 평의 부지를 얻었다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이제는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DS가 탄탄하게 자리잡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렇게만 DS가 순탄하게 흘러간다면 나쁠 것도 없을 것 같아. 그나저나 이제는 지금 다시 복학한 대학에 휴학을 다시 내어야 할까?’
하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학칙 규정상 문제가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런데 복학 했다, 휴학 했다, 복학 했다를 마치 장난삼아하는 것 같아서 그 자신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더욱 망설여지는 것은 바로 자신의 기본적인 잠재력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캐드 개발과 같은 일은 지금 당장은 보류하기만 했지만 어떻게 보면 대학을 다녔기에 가질 수가 있는 기본적인 아이디어였잖아? 만약 내가 죽으라고 일만 한다면 그것이 가능할까?’
이것이 문제였다. 과거 사업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이런 것 따위는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무 생각 없이 돈만 쫓아서 사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는 경험적으로 잘 아는 까닭이다.
돈이 인생의 부분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조민우는 이런 생각이 들자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굳이 자신이 자꾸 쓸데없이 여기서 무모하게 사업을 키우는 것보다는 기존 사업을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 자본금을 확보하는 것이 낳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천천히 하나하나 좀 더 큰 안목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굳이 아웅다웅 할 필요가 없이 DS 제품과 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한 두 개 개발해서 계속 우려먹는 것만으로 그 가치는 충분하잖아?’
이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나쁘지 않는 확신이었다.
다만 젊은 나이에 얼마든지 과도하게 생산량을 늘리면 충분히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절제한다는 것은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기업의 급격한 성장 뒤에 따라오는 위험을 잘 알기에 이런 깊은 생각을 하는 것도 있었다.
‘사실 지난 사업이 망할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기업이 가지고 있는 원천기술이 화근이었어. 그 때문에 L 그룹사에서 노린 것이었잖아? 어떻게 보면 그 기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기에 그 모양이 된 거야. 그렇게 보면 DS X 역시 마찬가지겠지.’
어떻게 지나친 판단 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추측이 마냥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벌컥.
갑자기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정성일 부장이 안으로 튀어 들어와서 소리친 것이었다.
“사,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조민우는 오히려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겁니까?”
“식품의약청에서 위생 조사가 나왔습니다.”
“식품의약청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조금 전에 그렇지 않아도 DS X 관련해서 고민 중에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히는 바가 있었다.
‘조남웅 대리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나? 가만 내가 백만 평 땅 계약을 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잖아? 그리고 해당관청에 신고까지 한 상황이니. 아마 그것을 알았거나, 다른 감시자가 있다는 이야기인가?’
조민우는 조용히 팔짱을 한 채로 잠깐 고민을 해봐야 했다. 이미 과거 사업 시에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하면서 지금과 같이 뜻밖의 상황이 단순히 우연만으로 발생할 수는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었다.
그것은 물론 담당 조사관을 만나보면 더 잘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자들을 데려오세요.”
“네?”
“식품 의약청에서 나온 공무원을 이곳으로 데려 오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직접 만나서 한 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 사장님, 차라리 그냥 자리를 비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사장님이 자리에 안 계시면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의외로 있습니다. 강제적으로 진행하게 되면 사생활 침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조민우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성일 부장도 조민우와 같이 적지 않은 시간을 같이 있기에 그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이토록 여유 있는 모습은 처음이라서 오히려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한 가지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게 힘든 시련을 겪으셨는데, 당연히 나아지셔야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바로 그들을 데려오겠습니다.”
“네.”
***
이십 분 후.
조민우는 의외로 정성일 부장이 나간 후에도 연락이 없자 의아하기는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뭔가 일이 있어서 늦어진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아마 그 새끼들이 뭔가 수작을 부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
이미 외부 압력이라면 신물이 나도록 경험한 그였다.
이 정도는 그저 장난으로 보일 뿐이었다.
덜컥.
그리고 곧 이어서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최상렬 과장과 그의 부하 직원이 같이 들어온 것이다.
최상렬 과장은 이제 삼십 대 중반에 깔끔한 정장을 했지만 공무원답지 않게 눈빛이 의외로 매서웠다. 의외로 동반한 다른 일행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공무원으로 보였다.
그는 굳이 묻지 않아도 누가 책임자인지 금방 깨닫고는 지그시 그를 응시했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 우리가 식품의약청 감사 때문에 나왔다고 분명히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것은 좋다고 하죠. 갑자기 왜 우리가 감사하는 것까지 직원들을 동원해서 막고 그러는 겁니까? 뭔가 DS X에서 첨가하는 유독성 물질이 있기라도 한 것 아닙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그냥 하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저런 말을 생각 없이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머리가 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까닭이다.
‘역시 노리고 있는 건가?’
“그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DS에서 지금 판매하는 제품 제조 위생 검사입니다.”
조민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여기까지 듣고서는 피식 웃었다.
“솔직히 그런 검사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네?”
“그냥 적당히 형식적으로 검사 기록만 만드세요. 거기에 알아서 기재를 한 후에 필요한 대로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굳이 일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겠죠?”
“?”
최상렬 과장은 황당해서 입을 살짝 벌렸다. 그것은 다른 부하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것은 그들만이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정성일 부장 역시 의아스러운 표정이었다가 이 말을 듣자 그냥 있지 않았다.
“사, 사장님.......”
조민우는 손짓으로 그의 입을 가로막았다.
“제가 고객에게 분명히 통지를 내리겠습니다. 식품의약청에서, 지금 말하시는 분 성함이?”
“최, 최상렬 과장이요.”
“바로 최상렬 과장님이 조사한 바에 따라서 위생 상태에 문제가 생겨서 DS X 판매를 중지한다고요.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건.......”
최상렬 과장은 순간 말을 하려다가 머뭇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까닭이었다.
‘아, 아니 이 새끼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확히는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 했다.
보통 업체라면 오히려 자신들에게 비난과, 갖은 욕설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까닭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결과는 없었지만.......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정말 처음이었다.
조민우는 의외로 자신이 강하게 나가자 상대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고는 내심 욕설을 치밀어 올랐지만 그 정도는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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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참 열심히 보시네요.
더운데 고생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