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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지 않아도 저희 L그룹 화학사에 자문을 구해놓았습니다. 아마 원인을 밝히고 나면 곧 바로 저에게 연락이 올 겁니다.”
이것은 무시하기 어려울 일 처리.
일단 깨려면 확실히 정황 파악이 우선이었다.
결국 지금까지 공격적인 태도를 바꾸어야 했다.
“좋아, 그 연락이 언제쯤 올 것 같은가?”
“아마 이번 주 안으로 틀림없이 올 겁니다.”
“좋아, 검토 보고를 받으면 바로 나에게 다시 보고를 올려!”
“알겠습니다.”
짤막하면서 상대를 겁주는 말투.
박용운 부장은 내심 사무실을 빠져나가면서도 욕설을 퍼부었다.
‘제길 하여간에 직장 생활을 이래서 싫다니까. 그나저나 이 친구들은 왜 연락을 안 보내는 거야!’
***
L 그룹 화학 연구소 제 1연구팀.
L 그룹 내에서 여러 가지 분야에 연구를 하지만 특히 생명 공학, 그리고 의약품 쪽으로 주로 집중적인 연구를 하는 곳이다.
당연히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분야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이곳에서도 DS X와 같은 효능을 발휘하는 의약품 역시 당연히 연구 대상이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꽤나 많은 투자금을 받아서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상황이라고 봐야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년 간 투자 규모가 대략 2,000-3,000억 규모라는 것은 감안하면 정말 결과는 형편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는 성공하게 되면 워낙에 얻는 이익이 큰 탓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 DS X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느냐?
그것은 DS X와 같은 것은 있다는 것을 몰라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꼭 떠돌이 약장수가 길거리에서 파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 탓이다.
실제로 박용운 팀장에게 의뢰를 받은 최창민 부장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였다.
‘쯧쯧, 이 친구는 제대로 미쳤군. 아무리 입사 동기라도 해도 나에게 이런 부탁을 다 하다니. 도대체 이런 싸구려 약을 감히 우리에게 분석해달라는 요구를 이해할 수가 없어!’
애초부터 DS X를 불신하는 추측이었다.
물론 인터넷에는 입소문을 통해서 좀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이즈 마케팅의 일부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
최창민 부장이 이 때문에 일을 맡긴 사람은 요즘 들어서 자신에게 업무 태만으로 찍혀 있는 김찬성 대리였다. 이 친구는 워낙에 남의 업무를 잘 베끼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회사에서 완전히 찍힌 경우였다. 하지만 능력이 있는 것은 또한 사실이었다.
“이봐, 자네가 이 시약 분석 좀 해주게.”
“알겠습니다.”
김찬성 대리는 거의 2달 가까이 제대로 일을 받지 모해서 놀고 있다가 최창민 부장에게 DS X 조성 분석을 일을 받자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빌어먹을 회사에서 나만 베끼나? 다른 놈들도 전부 다른 연구원 결과를 잘만 도적질 하는데!’
솔직히 억울하기만 했다. 자신의 경우에는 완전히 마녀사냥이나 마찬가지인 탓이다.
하여간에 이런 상황에서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DS X 조성 분석.
어떻게 보면 유일한 탈출구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그는 이 일에 이제까지 자신이 배운 모든 짜깁기 노하우를 동원해서 검토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기법은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내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조성 분석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어디까지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서 분석을 하는 일인 까닭이다. 덕분에 그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DS X 분석에 성공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다소 좀 이상했다.
-물입니다!
‘물이라고?’
***
김찬성 대리는 설마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물 조성 분석인지는 몰랐기에 정말 분노했다.
그리고 그는 참지 않았다.
곧 바로 최창민 팀장을 찾은 것이다.
“팀장님, 이거 정말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아침부터 와서는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그의 태도는 완전히 자기가 부장이고, 자신이 평사원인 기분을 들게 했다.
화가 나야 당연했다. 그런데 너무 황당한 상황이라서 오히려 의혹이 치밀어 올랐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난 박용운 부장에게 의외를 받아서 자네에게 넘긴 것뿐인데?”
장난은 아니었다. 장난이라면 이렇게까지 상대가 진지할 까닭이 없는 탓이다.
분노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 저에게 물을 넘긴 후에 조성 분석하라고 한 것 아닙니까?”
“물?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것이 바로 DS X라고 하는 성기능 장애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약인데?”
물이 아니라, 약으로 인식한 최창민 팀장이었다.
자연스럽게 오해한 것이다.
물론 상대의 반응은 더 가관이었다.
“네? 이게 성기능 장애에 탁월하다고요? 하지만 그런 성분은 코딱지만큼도 없는데요?”
아침부터 하는 소리 하고는.
최창민 팀장이 평소라면 난리를 칠 일이지만 영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아서 일단 참았다.
“휴우, 그 효능이 분명한 것은 사실이야. 정 궁금하면 자네가 인터넷 통해서 확인해보면 되지 않은가?”
“으음, 그렇다면.......일단 제가 확인한 후에 다시 보고를 드리죠.”
“그러지.”
***
김찬성 대리는 곧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간단히 DS X에 대한 평판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 결과는 실로 폭발적이었다.
-DS X는 모든 성기능 장애에 효과가 있는 기적의 치유약, 즉 신약이다. 이것을 만든 DS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회사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적의 신약이라고? 쯧쯧, 이거 완전히 저질 노이즈 마케팅이나 마찬가지잖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 역시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자신의 일과 관련이 이상 꼼꼼한 확인이 꼭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DS X에 대한 조사를 거듭해야 했다.
‘뭔가 파탄이 나오겠지!’
***
김찬성 대리도 조사에 착수하면서 처음에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일시적이었다.
시간이 더해갈수록 좀 상황이 달라졌다.
‘이상하군. 아무리 삼류 돌팔이 약이라고 해도 반응이 너무 좋아. 분명히 엉터리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이 하나도 없을까? 지금 여기 인터넷에 사용자 소감 결과대로라면 그야말로 기적의 성기능 장애 치료제나 마찬가지잖아?’
그것은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결국 그는 다시 기존 실험에 의혹을 가지고 조사를 다시 해야 했다.
무기물질 함량을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좀 더 주의를 집중했다.
주어진 온도에서 무려 1 시간동안 전 처리한 후에 원심분리와, 여과 가정 역시 이전과는 달리 꼼꼼하게 확인을 거듭했다.
그리고 사용 장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과정의 간략화를 위해서 1종의 분석 장비만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기존에 사용 가능한 3종의 분석 장비(HPLM-URS)를 모두 사용해서 그 데이터 값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을 해보았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군. 장비 문제가 있었다면 분명히 그 결과가 나왔겠지.’
원칙대로라면 분석에 소요되는 시간이 대략 4시간 정도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려 9시간에 걸친 장기 분석이었다.
당연히 그 오차 범위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 인정하고 있는 분석 정확도이다.
특히 전처리 과정에서 사용된 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이 이제까지 회사 내부에서 시행착오를 통해서 경험한 노하우 역시 충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정도의 분석이라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아마 세계 어디에 가도 신뢰를 받을만한 분석이라고 봐야겠지.’
김찬성 대리는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이번에는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온 무기물질 함량 결과를 확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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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슘(Ca) : 1.227-1.232
칼륨(K) : 0.772-0.783
나트륨(Na) : 2.111-2.212
마그네슘(Mg) : 0.678-0.761
불소(F) : 불검출
===================
‘이 정도라면.......당연히 식약청 요건에는 합격이겠군!’
하지만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만으로 한 가지 효과가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성기능 장애 개선에 영향을 줄만한 성분이 없어!’
이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 원인은 찾기 위해서 다시 몇 번이 최종 무기물질 함량 결과를 가지고 분석을 거듭해보았지만 나오는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끄응, 모르겠군.’
답답할 노릇이었다.
김찬성 대리는 결국 스스로 참다못해서 다시 한 번 기존 과정을 반복해 보았다. 혹시라도 놓친 것이 있을까 하는 염려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물론 이전 데이터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큰 차이는 없었다.
‘으음, 이건 확실히 이상하군.’
지금 상황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최소한 뭔가 성기능 장애 효과에 영향을 줄만한 요소가 나와야 했다.
사실 무엇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게 나오기만 하면 DS X는 그야말로 끝장이겠지.’
설사 효과 유무를 떠나서 인체 실험 자체가 안 된 생수를 팔았다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문제의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귀신은 곡할 노릇이었다.
***
L 그룹 화학 연구소 제 1연구팀 최창민 부장 자리.
“흐음, 이게 정말인가?”
“네, 저도 이상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뒤에 첨부사항을 보시면 6차례에 걸쳐서 추가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군.”
간단한 대답.
‘이거 정말 이상하군. 아무리 해도 이런 결과가 나올 수가 없어. 이건 다시 말하면 DS X에 뭔가 다른 비밀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박용운 부장이 자신에게 일을 맡긴 것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 정도의 의혹을 자아내는 결과라면 확실히 이상했다.
“이 제품이 정말 성기능 장애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이 확실할까?”
자신만한 대답이 곧 이어졌다.
“그건 확실할 겁니다.”
“응? 자네가 그걸 어떻게 장담해?”
김찬성 대리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고야 말았다.
“솔직히 제가 직접 그 DS X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정말인가?”
“네, 그 결과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제 여자 친구가 좋아서 죽으려고 하더군요. 덕분에 주말은 아주 잘 보냈다고 해야 할까요?”
“흐음, 그래?”
“정 궁금하시면 부장님도 한 번 사용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 말이 이해가 될 테니까요? 직접 사용해보지 않으면 잘 이해가 안 될 겁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
“쯧쯧,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물론 저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게 나옵니다. 하지만 그 DS X에는 그런 효과를 줄만한 성분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미스 테리죠.”
“하지만 그런 대답은 곤란해. 설마 자네 이대로 박용운 부장에게 보고서를 보내라는 것은 아니겠지?”
답답하기는 자신이 더했다. 아무리 같은 실험을 반복해도 전혀 답을 찾을 수가 없는 까닭인 탓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분석을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적어도 몇 개월은 잡아야 하는데, 그러면 완전히 단기 프로젝트가 되어 버릴 겁니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기물질 함량에 대해서 다시 구체적으로 조사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장비 자체가 근본적으로 많이 달랐다.
문제는 그런 장비 자체가 너무 고가이고, 그렇게 하는 과정 자체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것도 그냥 단순히 반복 노가다 형식의 실험을 곤란하고, 이 DS X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했다.
아니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해보자.
정작 가장 큰 난관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만약 그렇게 해서 결과가 나쁘면 내가 문책을 당할 수도 있어.’
그건 곤란했다. 굳이 일을 만들어서 자신이 책임을 질 이유는 없는 까닭이었다.
만약 그룹 계열사 내부의 정식 과정을 거쳐서 업무 협조 지시가 내려온다면 좀 다른 문제이겠지만.
“알겠네. 일단 여기까지 한 것으로 하지. 그리고 DS X 관련해서는 결과 보고서는 상세히 제출해서 내일까지 보고를 올리도록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