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9 회 -- >
조민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제는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을 그냥 받아들인 채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고통스러운 모습이 분명했다.
그리고 살짝 떠진 눈.
“저, 저기 저 이게 처음이에요!”
“.......”
그는 이내 최현주와의 일을 떠올리자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험난한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탓이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과는 좀 달랐다.
삐걱삐걱.
호텔 침대보가 흔들리는 소리 정도면 꽤나 힘들어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조수연은 그다지 심하게 아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다만 간간히 요구하는 것은 있었다.
“아흑, 미, 민우씨, 조금만 더 부드럽게!”
조민우는 물론 심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처녀에게 무리하게 거사를 치렀다가 괜히 상처라도 나면 정말 곤란했다.
이보다는 자신이 지금 미남계를 사용하는 중인데, 괜히 좋지 않은 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차분하게 일을 진행시켜 나갔다. 하지만 그 다음 과정부터는 생각보다 다시 시간이 빠르게, 빠르게 흘러갔다.
절정에 오른 순간은 그야말로 한 순간이었고, 샤워는 다음 순간이었으며, 조수연이 옷을 갈아입는 것은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쪽.
자신의 이마에 가해진 가벼운 키스.
하지만 그녀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 말만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집에 일찍 들어가서 쉬고 싶어요. 민우씨랑 오늘 있었던 일(?)도 좀 생각해보고, 뭐 그런 거죠.
“.......”
‘아, 아니 일찍 안 들어가도 괜찮은데.......’
조민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조수연의 행동이 더욱 빨랐다. 그녀는 마치 곤혹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마치 제니퍼처럼 후다닥 도망을 쳐 버린 것이다.
허탈했다.
미남계가 아니라!
꼭 자신의 종마 취급당할 꼴로 전락한 것이.
그리고 한 가지 안 사실.
세상 여인이 최현주처럼 순수한 마음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호텔 침대에서 누운 채 이런 부분에 관해서 생각을 거듭하다가 느낀 점 한 가지가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군. 그렇다면 과거 내가 사업을 할 때는 여자를 상대할 때에 왜 이런 감정을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것일까?’
문득 떠오른 의문.
하지만 그렇게 쉽게 넘기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상대한 여인이 더욱 많았던 까닭인 탓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사소한 일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알게 된 사실 하나.
‘인생을 너무 급하게 살아왔어!’
그 이유 역시 간단하게 알 수가 있었다.
‘돈에 대한 집착인가?’
조민우도 왜 당시 사업을 할 때 그렇게까지 돈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추측하자면 낭비에 대한 엄한 가정교육(?) 때문이 아닌 가하는 정도였다.
워낙에 집안에서 돈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한 것이 꽤나 깊은 정식적인 낙인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그건 아닌 것 같군. 자신이 버는 만큼 돈을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어. 인생을 즐길 줄 몰랐다고 해야 할까?’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자신의 애마였다. 애마라고 보다가 업무용 차였는데, 아직도 그것을 몰고 다닌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였다.
‘이건 좀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어!’
뜻밖의 깨달음이었다.
***
조민우가 돈에 씀씀이가 좀생이 같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누구도 이런 그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글쎄 있다면 최현주나, 민현진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일까?
다른 이들은 함부로 말하기도 힘들었고, 정확히는 그에 대해서 잘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그의 집은 비록 넓다고 해도 이런 점에서 크게 비켜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밤늦은 시간에 조민우 집을 노리는 이들에게는 당연히 의혹을 가졌다.
“야아, 도대체 이 집은 정체가 뭐야? 뭔 놈의 정원이 이렇게 넓어?”
“그것도 그것이지만 정말 썰렁하네요. 하다못해 나무 몇 그루라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건 뭐 여기에서 농구라도 할 셈인지.”
“정말 황당합니다. 아니 의뢰는 의뢰라고 해도 돈이 좀 될 만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완전히 거지 아닙니까?”
물론 우연히 나온 말이었다.
***
찰칵.
그들은 정원에서부터도 놀랐다. 하지만 집 문을 열쇠를 따고 들어가서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 세상에! 뭐 이런 집구석이 다 있어?! 이건 우리 집보다 더 못하잖아?”
그냥 하는 소리?
그렇지가 않았다.
방 한 쪽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농하고, 어디서 고장 난 것을 구해온 것인지 외관 상태가 안 좋은 냉장고, 그리고 요즘 LCD TV는 고물상에 가도 구할 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떡 하니 뒤가 튀어나온 브라운관 TV는 그렇다고 하자.
최소한 소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도 없었다.
하지만 일단 주인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들 각자 역할을 나누어 곧 흩어진 채로 조민우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보였다.
‘집에 아무도 없군.’
그제야 한숨을 놓았다.
이런 그들의 눈에 거실 정경이 다시 들어왔다.
방 한 쪽에 놓은 책상하나와, 그리고 덩치가 묵직한 데스크 탑 컴퓨터가 먼저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런데 컴퓨터 옆으로는 한 놈이 옆으로 쪼르르 달려갔다가 이내 안색을 잔뜩 찌푸리고는 소리쳤다.
“빌어먹을 줘도 안 가져간다. 내 인건비(?)가 이보다는 더 많이 나와!”
“.......”
두목은 황당한 표정을 한 채 수하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은 탓이다.
‘이상하네, 월 매출액이 150억에 가깝다고 했어. 그렇다면 최소한 어느 정도 재벌은 아니라고, 상류층 수준의 물건은 있어야 해. 그런데 이건 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서민의 삶이나 별로 차이가 없잖아?’
그것은 좀 이상한 상황이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은 까닭이다.
결국 그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야아, 샅샅이 한 번 잘 찾아 봐. 분명히 숨겨놓은 금이나, 보석 같은 것이 있을 거야!
확신에 가득 찬 소리였다. 물론 얼마 전에 DS 마법진 실험하면서 금이 좀, 아니 많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 때뿐이었다. 이미 실험이 다 끝난 이상 불필요하게 여기에 놔둘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이 뒤져봐야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무도 것도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참, 그 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바로 집주인의 부재였다. 물론 한 놈은 뒤 늦게 온통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다가 먼지만 잔뜩 덮어쓰고 나와서는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 새끼! 일이 끝나면 퍼떡퍼떡 집에 와야 할 것 아냐! 어른신이 이렇게 기다리게 하다니.”
황당한 일이지만 조민우를 만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두목은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뭔가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래서 계속 지시를 내렸는데.......
***
새벽 두 시.
“두목님, 포기하시죠. 아무리 찾아도 더 이상은 없습니다. 물론 여기 하나 발견한 것이 있는데, 백 원짜리 두 개하고, 십 원짜리 한 개입니다.”
“.......”
두목은 수하가 자신에게 준 동전을 확인하고는 기가 차서 입을 다물었다.
‘이 자식이 지금 날 놀리려고 하는 건가?’
하지만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인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다들 곧 건진 것이 하나도 없자 두런두런 거리면서 나온 것이었다.
“솔직히 여기 있는 것은 팔려고 해도, 그 운송비가 더 많이 나옵니다.”
“제가 밖에 나가서 정차해 있는 차량을 봤는데, 그건 완전히 폐차 직전이더군요.”
“휴우, 이 새끼는 여자가 한 명도 없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것인지, 어떻게 콘돔도 하나가 없어?”
“여기 한 쪽에 실험실이 있는데, 있는 거라고 해봐야 이상한 망원경하고, 몇 가지 괴이한 장비(?) 뿐입니다. 뭐 알아야 팔아먹을 수가 있는데, 도대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거라도 챙길까요?”
“야아, 그거 가져다가 누구한테 팔려고 그래? 보석이 아니면 걍 포기해.”
“제길 금 부스러기 하나라도 더 있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는 않을 텐데!”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두목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수하들에게 무조건 강요할 수는 없었다. 결국 조민우를 생포해서 손을 좀 보려는 계획은 포기해야 했다.
“야, 그 새끼는 일단 놔두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기로 한다!”
***
깡깡(?).
소리가 너무 깊었고, 둔했다.
이런 소리는 웬만해서는 쇠망치 작업 경험상 나올 수가 없는 소리였다. 들고 왕 망치로 두께를 잠깐 확인해보려는 작업인데, 소리가 좀(?) 이상했던 것이다.
두목은 한창 작업에 여념이 없는 수하의 안색이 이상해지자 그냥 있지 않았다.
“쇠망치, 왜 그래?”
“이거 좀 문제가 있습니다.”
“응? 문제라니? 야아, 너 설마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거야? 이 정도도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빨리 끝내고, 퇴근해야 할 것 아냐!”
“아, 두목도 참, 아, 아니 선배님도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이래 뵈도 노가다 경력이 30년입니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섭섭합니다.”
자식, 노가다 30년 한 것이 자랑이야? 정말 하나같이 있는 놈이 다 이 모양이라니.
하지만 지금은 비상시기.
그 자신이 두목이라고 해서 대놓고 뭐라고 하기 에는 힘들었다.
“그래, 그건 알겠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있는 거야? 그리고 왜 자꾸 망치를 들고 자꾸 간만 보는 거야? 너 지금 우리가 설렁탕이라도 먹는 지 아는 것 아냐?”
“아, 그게 좀 이상합니다. 지금 망치 소리만 듣고 판단한 것이지만 이렇게 둔한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는 두께가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응? 정말이야? 하지만 그래봐야 얼마나 된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최소한 10cm 이상의 두께입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두껍다고 봐야 할 겁니다.”
두목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뭐? 농담이겠지? 야 어떤 미친놈이 여기에 10cm 강판을 쓴다는 말이야? 여기가 무슨 수백억의 돈을 보관해 놓은 은행금고라고 되는 줄 아냐?”
“휴우, 그러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망치로 작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일단 용접으로 한 번 구멍을 내면서 확인을 해보죠.”
“이 새끼야, 돈이 많이 드니까 그런 거야. 그냥 할 수 있으면 쇠망치 네 놈 실력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아.”
쇠망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무리입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겁니다. 이 정도라면 제 능력으로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
“끄응, 알겠습니다.”
쇠망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지시를 내릴 때 두목은 생각보다 성격이 좀 더러운 면이 있는 탓이다.
‘제길 계속 거부하면 존 나게 두들겨 맞겠지?’
거의 몇 년이나 같이 생활했는데, 그의 더러운 성격을 모르겠는가?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쇠망치는 아무리 지시라도 해도 무조건 강하게 나갈 수만은 없었다. 안정적인 작업이 우선이라는 의미였다.
퇫!
하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일 정도로 약한 작업은 또한 곤란했다. 일단 맛을 보기 위해서라도 처음에는 꽤 강하게 후려친 것이다.
까앙!
소리가 일단 달랐다. 보여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좀 강한 힘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역시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크윽.”
양손의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
장난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팔목이 완전히 으스러지는 느낌마저 받을 정도였다. 감각이 없어졌다. 아니 양팔의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다니까!’
후회가 물밀 듯이 흘러나왔다.
다소 어느 정도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강도를 올려야 했는데, 너무 심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쇠망치는 자신의 망치질에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표면이 살짝 들어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상은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동시에 강한 오기가 바로 생겨났다.
============================ 작품 후기 ============================
오늘 글 어때요?
x판사 요청을 받아들여서 좀 적용했는데.....
1. 좋다.
2. 아니다.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