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2 회 -- >
<아, 부장님,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사장님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말씀을 해주신다고 하셨죠?>
<네, 그 때문에 전화를 드린 겁니다. 미팅을 했으면 해서요.>
<만나자는 말씀입니까?>
<네.>
<그러면 어디서 볼까요? 전에 만난 그곳에서 보는 것으로 할까요?>
<아, 저희 사장님이 그 쪽에서 저희 본사 쪽으로 방문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합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설마 저보고 그 쪽으로 내려와 달라는 이야기입니까?>
<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라니.
아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상대에 따라서 틀린 법이다.
자신은 물건을 구매할 바이어가 아닌가?
그런데 바이어 보고 대구까지 내려와서 만나자고?
너무도 일방적인 제안이었다.
<.......>
다까다는 상대의 강짜에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까지 한국 생활만 해도 벌써 십년이 넘어갔지만 이렇게 형편없는 푸대접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일단 자신의 속에서 뭐가 지글지글 끓어올랐지만 참아야 했다.
<휴우, 알겠습니다.>
<그럼.>
뚝.
전화를 매몰차게 끊어버리는 정성일 부장.
답답할 것이 없는 태도였다.
‘끄응, 어쩔 수가 없지. 정말 아쉬운 것은 우리 입장이니까.’
***
다음 날.
부르릉.
다까다는 곧 DS를 방문위해서 이미 DS 위치를 미리 확인해놓은 김미숙 과장을 동반했다. 아무래도 한국인 여자이기에 일이 편하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그냥 단순히 동행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협상 전에 도움이 될까 싶은 것이 있나 싶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과장은 한국 사람이니 잘 알 것 같은데, 혹시 그 쪽에서 뭘 요구할 것 같아요?”
“네? 요구라뇨? 다까다 부장님이 오히려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요?”
당연한 사실.
상식적으로 이게 맞았다.
“크흠.”
다까다는 이내 헛기침을 하면서 머리를 굴려야 했다. 일전에 정성일 부장과 미팅 시에 하도 일방적으로 끌려갔던 기억이 새삼 생각이 났다.
‘우리는 패밀리 마트 쪽에서 절대 납품할 생각이 없으니, 그렇게 알았으면 한다고?’
어처구니가 없는 제안이었다. 덕분에 그는 한국에 온 이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치욕스러운 일이었지.’
그런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그렇지 않아도 한국 패밀리 마트 성장 자체가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에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DS X는 지금 당장 한국 패밀리 마트 지사에서 꼭 필요한 물품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후에 자연스럽게 일본 본사 쪽에서 공급할 예정이었다.
따라서 DS X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다만 그도 이제야 이렇게 연락을 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DS X의 문제점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이 정도라면 문제의 소지가 없지. 부작용은 말할 나위도 없고.’
김미숙 과장은 이런 다까다의 당혹스러움을 지켜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저기 부장님, 무슨 일이라도?”
“휴우, 아니네.”
다까다는 손짓으로 일단 그녀의 말을 막은 후에 계속 차량을 몰았다. 지금 와서는 김미숙 과장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오히려 DS 사장을 만나서 어떻게 잘 구워 삼을 지에 대한 것을 먼저 떠올려야 했다.
‘사실 이런 일은 이제까지 필요가 없지. 우리 마트에 물건을 넣으려는 회사가 어디 한 두 곳인가? 더욱이 넣고 나서 우리 마트 영업망을 이용하는 댓가로 일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관례였잖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추측이었다.
***
끼익.
다까다는 차량에 내린 후에 휑하니 트여 있는 DS 부지를 힐끗 한 번 돌아보고는 자신이 잘못 왔나 싶었다.
“정말 여기 맞아요?”
김과장 역시 곤혹스럽기는 매한 가지였다.
“네. 그런데.......”
그는 결국 황당한 표정을 한 채 주변을 돌아보면서 주변을 살펴야 했다.
‘도대체 여기 뭐하는 곳이야?’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간에 국도를 타고 들어온 이후에 곧 인적이 드문드문 끊긴 후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오로지 간간히 있는 숲과 나무가 다일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바로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DS와 관계가 혹시라도 있어 보일까하는 커다란 건물이었다.
사실 그래서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생각해보라.
훤히 트여 있는 평원 한 곳에 떡하니 놓여 있는 현대식 건물 하나.
물론 그 옆에는 한창 공사 중인 건물이 있다고 해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옆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괴이한 건물이었다. 하나는 가정집으로 보였는데, 그것도 용도가 불분명해 보였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마치 창고처럼 보였는데, 그것 역시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정말 여기가 맞아요?”
김미숙 과장 역시 당혹스러워서 다시 약도를 한 번 확인해서 DS 회사 내부에 대한 상황이 나와 있는 것을 다시확인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맞습니다.”
그는 그녀의 확신에 찬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차에 탑승해서는 건물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 한창 일하고 있는 건설 기술자에게 묻고 난 후에 DS 유전 공학 연구소를 찾을 수가 있어다.
그곳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서자 일층에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접객실이 따로 있었다.
‘여기인가 보군.’
***
십분 후 DS 유전 연구소 일층 접객실.
“오래 기다렸습니까?”
두 사람은 곧 들린 이야기에 고개를 돌렸다.
“정성일 부장?”
“또 뵙습니다.”
“휴우, 이거 정말 너무 합니다. 갑자기 그런 식으로 내려오라고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이제까지 한국에서 꽤 적지 않는 세월동안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입니다.”
정성일 부장도 곤혹스럽기는 매 한 가지였다.
“아무래도 저희 사장님이 너무 바빠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일방적인 것 아닙니까?”
강한 항의였다. 그 역시 다소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뭐 저희 사장님은 어차피 패밀리 마트 쪽에는 납품할 생각이 없다고 자꾸 우겨서 말입니다.”
물론 이 내용은 사실이다.
다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그것도 아예 얼굴을 마주한 상황에서 말을 하니, 사람 미칠 노릇이었다.
다만 다까다는 일본인 특유의 인내를 발휘해서는 가까스로 참았다.
“정말 너무 하십니다.”
정성일 부장이라고 해서 딱히 방법이 없었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마 저희 사장님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하시는 것 최선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
오 분 후.
다까다는 결국 접객실 한 쪽에 놓인 소파에 정성일 부장과 마주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이 DS 건물에 대한 의혹을 떠올리고는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이 건물은.......”
스르르.
그런데 접개실이 있는 곳에 건물 한 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성일 부장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친 것이었다.
-사장님 여기입니다.
DS 사장은 생각보다는 나이가 많지가 않았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너무 어리다고 하는 것이 정확했다.
‘헐, 겨우 이십대 였어?’
다까다조차 예상 못한 상황에서 놀라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그는 곧 정성일 부장 옆에 떡 하니 앉으면서 자신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조민우를 보고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건 딱 봐서는 일단 무조건 불리한 계약이 되는 군.’
골치가 아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까다 부장이라고 합니다.”
“조민우입니다.”
조민우는 퉁명스럽게 대답을 한 후에 힐끗 다까다의 이모저모와, 동행한 김미숙 과장을 한 번 쳐다보는 중에 간단한 소개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패밀리 마트 쪽에서 DS X를 납품 받고 싶다고요?”
“물론입니다. 만약 저희 쪽에서 납품을 하시면 이 DS X에 관해서 특별히 10% 수수료를 받겠습니다. 이건 다른 제품에서 적용되는 것과는........”
“잠깐만요. 그렇다면 9만원에 DS X를 구입하겠다는 말입니까?”
“으음, 그렇게 되는 셈입니다.”
그는 피식 웃었다.
“다까다라고 하셨죠?”
“네?”
“제가 분명히 저희 회사 입장을 누누이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라니요? 설마 저랑 농담하자고 이런 자리를 만드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아, 물론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10% 수수료를 받겠다고요?”
“하, 하지만 그건 의례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실제로 다른 제품의 경우에는 오히려 이보다 더욱 많이 받는다.......”
벌떡.
“거절입니다!”
조민우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서는 한 마디만 남기고는 휑하니 걸음을 옮겼다. 다까다는 황당한 반응에 곧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뛰어가서는 그의 팔을 잡았다.
“자, 잠깐만요.”
그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툴툴거렸다.
“뭔 말하고 싶은 거죠? 분명히 거래는 끝났다고 제가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하아, 사장님, 제가 언제 그것으로 확장하자고 했습니까? 어디까지나 의견을 제시한 것뿐입니다.”
조민우는 그제야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이 일본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까 고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상대는 바이어.
최소한 일본 쪽에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냥 이렇게 무식하게 대우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열 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
화가 난 것은 별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물량은 오로지 순순하게 자신의 노가다(?)로 생산해야 한 물이다.
당연히 말이 나오면 그 일을 통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먼저 생각난 것이다.
“좋아요, 일단 이번 한 번은 딱 기회를 더 주겠습니다.”
“무, 물론입니다.”
다까다는 내심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일본인 특유의 인내를 사용해서 참아야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를 부축해서는 다시 소파에 안내해 주었다.
눈치를 본 것이다.
빌어먹을 이런 아부라니.
정성일 부장은 이미 반쯤 포기했는지 기가 찬 표정으로 조민우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어떻게 바이어에게 저런 식으로 나온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도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 지금 거래는 그야말로 일방적인 설득에 의해서 마련된 자리라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이 조민우가 생각하고 있는 DS X 판매 가격을 떠올리자 오히려 쓴 웃음만 나왔다.
‘하긴 한 병에 40만원 팔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수수료를 떼먹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화를 낼만도 하시겠지.’
그리고 새삼 느낀 사실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지금 국내 물량, 아니 대구 지역에서 그것도 전체가 아니었다. 겨우 일부 지역 물량 공급만으로 허덕이는 주제에 수출까지 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가소로운 이야기였다.
조민우는 물론 이런 사실을 알았지만 모른 척하고는 상대를 다시 자근자근 압박했다.
“자 다시 말해보세요.”
“네? 뭘 말입니까?”
“조금 전에 하던 제안 말이에요.”
제안?
글쎄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이번에는 끝을 내겠다는 태도가 너무도 분명했다.
더럽지만 다급한 것은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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