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4 회 -- >
다까다는 전화를 끊고 나서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딱히 그것이 무엇이라고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짜증스럽기만 했다.
그렇다고 풀리지도 않는 문제를 가지고 계속 고민만 할 수는 없었다.
일단 오늘 만남에 관한 것은 보고서를 작성해서 결제를 올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제목은 ‘DS X 구매와, 패밀리 마트 매출액 증대.’이었는데, 이것을 통해서 얻어지는 수익과, DS X를 40만원에 1,500개 구매 시에 들어가는 비용 60억을 감안해서 얻은 것에 관한 것이었다.
쭉쭉 이어진 보고서 내용 중에 당연히 DS X 홍보와 관련된 다양한 마트의 이벤트 물품이 들어갔다.
그 비용만 얼추 계산해도 1,000억 이상의 기여도가 기대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아무리 계산해도 남는 장사였다.
‘이 정도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군.’
판단이 서자 곧 바로 결제판을 들고는 지사장을 찾았다.
***
타카시 지사장 역시 최근에 와서 DS X에 꽤나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계속 올라오는 보고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보다 더욱 현실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미스 조가 완전히 맛이 가버리다니.’
지난밤에 있었던 뜨거운 정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새삼 DS X의 탁월한 효능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DS X를 무려 50개나 미리 사놓았다.
들어간 비용은 정확이 500만원.
하지만 절대로 아깝지가 않았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솔직히 일본에 있을 때만 해도 1초 조루라는 악명 때문에 와이프에게까지 구박을 받아왔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거의 10년 가까이 고민을 당해왔다.
아마 당해보지 않는 남자라면 그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건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설마 그것 때문에 이혼을 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와이프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미스 조가 보인 반응.
여자가 만족하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확연히 보여주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겨우 돈 많은 일본 남자로만 취급하던 애가 자신을 완전히 새서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 경험.
그 전율.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면 요즘 들어서 해주는 모닝 마사지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일억이 있다고 해도 그런 상황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타카시 지사장은 그 때문에 DS X를 알게 해준 다께다에 대해서는 알게 모르게 많이 챙겨주었다. 더욱이 지금처럼 결제판을 가져올 때는 더했다.
“호오, 무슨 일인가?”
“DS X 관련 구매 건입니다.”
반짝.
그는 ‘DS X’라는 말에 마치 먹이는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눈빛을 반짝였다. 지금도 나름 개인적으로 구매를 하고는 있지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싼 가격이 아니라, 물량 자체가 없다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대구라서 통신구매를 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주문했다는 것은 금방 품절되는 것이 다반지사였다.
어쩔 수 없이 물량이 떨어지면 대구까지 직접 내려가서 가져와야 했다.
그것도 정가대로 준 것이 아니라, 웃돈을 좀 더 얹어주어야 했다.
그 비용만 해도 지난달에 거의 60만원 가까이가 낭비되었으니.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구매라면.
대환영이었다.
“그건 내가 알기로 긍정적인 방향에서 검토가 되는 것으로 아는데?”
다까다 역시 이미 몇 번 경험했던 터라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DS에서 저희 패밀리 마트 측 공급 가격을 40만원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타카시가 DS X에 반해 있다고 하지만 물 한 병에 40만원은 감성적으로야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뭐, 뭐야?! 자네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 건가?”
“휴우, 저도 농담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조민우 사장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저희 쪽에 공급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떠오른 생각.
“허어, 설마 국가 차별은 아니겠지?”
“그건 아닌 가 봅니다. 실제로 DS는 지금 공급하고 있는 다른 이마트 측에도 계약에 따라서 정해진 물량 자체를 늘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아는 실무자 통해서 줄이려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으음, 그렇다는 말은.......”
“네, 기존 고객이야 어차피 10만원에 판매를 시작한 마당이라서 가격을 더 이상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 DS 측 입장입니다. 다만 신규로 추가되는 물량에 한해서는 가격을 올리겠다는 이야기죠.”
“그게 40만원이라고? 쯧쯧, 그나마 100만원이라 부르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군. 이건 정말 기가 찰 노릇이군.”
타카시 지사장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잠깐 보고서를 쭉 확인 해보았다. 굳이 세세하게 내부 항목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만큼 다카다의 경륜과, 능력을 믿었던 것이다.
결론만 대충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으음, 내 경우는 어떻게 DS X의 가치를 아니 넘길 수가 있다고 해. 그런데 다른 사람 생각은 다를 거야. 특히 40만원은 좀 문제가 될 것 같아. 아마 본사 측에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어.”
“저도 그게 좀 걱정입니다. 하지만 1,500개 물량을 저희 패밀리 마트 측에 받아서 한국 전역 매장에 공급하면 그 효과를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끄응, 40만원에 500mL 물 한 병 판매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까? 자네 보고서 내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반감만 살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까다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건 초반에야 그렇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객 역시 상황을 알 것이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네, 일단 물 한 병에 40만원이니, 시선이 갈 것 아닙니까? 자연스럽게 인터넷 통해서 확인을 할 것이겠죠? 그러면 호기심에라도 구입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정 안되면 저희 구입 가격을 공개적으로 오픈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어차피 저희가 원하는 것은 DS X를 통해서 고객의 시선을 더 끄는 것뿐이니까요.”
“.......”
타카시 역시 여기까지 듣자 입을 다물고는 좀 생각을 해봐야 했다.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다.
다만 이성적으로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잘 와 닿지 않았다.
‘물 한 병에 40만원이라. 휴우, 설마 이런 고민을 하게 될 날이 있을지는 몰랐군.’
아마 그 자신이 일본 본사에 있는 상황에서 정황도 잘 모르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보고서를 올린 놈에게 미쳤다고 했을 것이 분명했다.
“좋아, 뭐 그렇다고 해 보자고. 그런데 자네 본사 이사들을 어떻게 설득시킬 건가? 아무리 형식적인 검토라고 해도 일단 정식 보고가 올라가면 당연히 눈에 뜨일 텐데?”
다까다 역시 이런 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곧 한 가지 다른 제안을 제시했다.
“샘플로 해서 각 이사님에게 한 병씩 보내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명시를 해놓으면 됩니다. 일단 사용 후에 판단하라고. 따라서 직접 본인이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테니까요.”
조목조목 나오는 말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의지가 확실히 담겨 있었다.
“끄응, 자네 정말 이 계획대로 밀고 싶은 건가?”
다까다는 의외로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정색했다.
“요즘 들어서 한국 대기업 중에서도 체인점 분야 쪽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이미 들어와 있는 L 마트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이건 그냥 묵과하면 저희 입장에서 향후 10년 안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L 마트라.......”
타카시 역시 안색을 굳힌 채 관자놀을 툭툭 치면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했다.
모르고 있던 문제는 아니었다.
항상 머릿속에 염두에 두고 있는 놈들이었다.
정말 치가 떨리는 놈들이었다.
“하긴 그놈들은 의도적으로 우리 마트를 그대로 베껴서 영업하는 마당이니, 정말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놈들이지.”
“네, 이대로 그냥 방치하면 우리 패밀리 마트 입장에서는 타격이 너무 큽니다. 따라서 그런 점에서 보면 DS X와 같은 물품은 마트 내에 구비하는 것만으로 경쟁력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그건 우리 마트 쪽에 독점이 될 때야 가능한 것 아닌 가?”
다까다는 이내 눈빛을 반짝였다.
“그거야 조건에 넣으면 됩니다. 우리 마트에 40만원으로 공급하는 이상, 경쟁 마트 측에서는 넣지 않는 것으로 말입니다.
“흐음, 그래?”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생각을 아무리 거듭 해봐도 나쁘지는 않았다.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를 둔다면 그렇게까지 손해 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런데 그게 잘 팔릴까?”
“아마 가격 때문에 잘 나가지 않겠죠. 따라서 그런 점이라면 DS S(small)라고 해서 25mL 제품으로 납품을 받으면 되겠지요. 대신 겉으로 봐서는 한 50mL 정도 보이게끔 디자인만 해놓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 안되면 10만원에 해서 손해보고 파는 방법도 있죠. 할인 이벤트 형식으로요.”
“그렇게 해서 일단 DS SX 맛만 보여주자는 말이군.”
“네, 그렇게 해서 좀 더 알려지면 그럭저럭 나가기는 할 겁니다.”
확신에 가득한 말이었다.
타카시도 이런 다까다의 주장에 무조건 반대할 수만은 없었다.
“좋아. 이건 내가 한 번 본사에 보고를 올려보지.”
“네.”
***
도쿄 도 도시마 구, 히가시이케부쿠로 3-1-1.
가와시마 이사는 새삼 선샤인 60 빌딩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정경에 깊은 감회를 느꼈다.
‘내 나이가 이제 겨우 사십 하나에 지금 패밀리 마트 이사지.’
어떻게 보면 초고속으로 성장한 사람이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자신의 바탕에는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 것 하나가 있었다.
‘바로 한국 시장에서 패밀리 마트를 성공적으로 론칭시킨 업적이 커지.’
초창기에는 그 역시 한국에 있었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한국에서 무려 십 년 넘게 살아 왔었다.
웬만한 한국인 보다 오히려 한국어를 잘 했으면, 그들의 문화 역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특이한 민족이지.’
간간히 생각나는 한국인 몇 사람의 특성을 떠올려보면 절로 고개를 갸웃했다.
‘냄비 근성이라고 해야 할까? 한창 뜨겁게 타오를 때는 타올랐다가 잠깐 다른 쪽으로 관심만 돌리기만 하면 확 꺼져 버리지. 특히 정치적인 문제가 있을 때, 살짝 독도 문제를 키워서 덮어버리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잊어버리는 근성이니........’
물론 이런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확연히 뛰어난 사람도 있었다.
다만 보편적인 성향만 놓고 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자신 입장에서는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볍게 볼 수도 없는 민족이었다.
아마 누구의 방해도 없었다면 이런 상념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똑똑.
-들어와.
비서로 보이는 직원 한 명이 들어와서는 곧 바로 그의 집무실 책상 위에 특이하게 생긴 물병 하나하고, 보고서를 올려 두었다.
“한국의 타카시 지사장님이 보내온 DS X 관련 보고 내용입니다. 이것은 그 쪽에서 샘플로 보내온 DS X입니다.”
“DS X?”
가와시마라는 DS X라는 말로 곧 바로 집무실 의자에 앉지 않고 바로 보고서를 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내용이 적지가 않았다.
대충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결국 자신의 자리에 앉은 채로 조용히 보고서를 살폈는데, 마지막 결론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40만원? 웃기는 놈들이군. 물 한 병에 40만원 받고 넘기겠다고........’
다만 그도 보고서 전체적인 내용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는 골치가 아픈 지 관자놀을 툭툭 눌렀다.
‘이거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군.’
비서가 입을 마침 입을 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까다 부장님이 DS X 샘플을 보내 왔습니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DS X 샘플?”
“네, 전화상으로 말씀하시기를 이사님 전원에게 일단 한 병씩 넘겨서 확인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 보고 내용에 대한 검토를 필히 DS X를 사용한 후에 하라고 하셨고요.”
“DS X를 사용해보고 결정하라.......”
가와시마 이사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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