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 회 -- >
5장 양 다리(?)
김동민은 오늘 따라 기분이 정말 꿀꿀했다. 이제 곧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졸업. 지금 회사를 알아보고 있었지만 그게 또 쉽지가 않았다.
자신이 가고 싶은 회사에서는 이번에 그렇게 많이 뽑지 않았던 것이다.
‘골치군,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다른 대기업 연구소를 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그곳은 좀 문제가 있었다.
일이 빡시다는 것.
그리고 상시 구조조정이 문제였다.
자신이 언제 잘릴 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이 문제는 답이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해서라도 좋은 회사를 알아보면 되는 것이니까.
물론 자신만 그렇지는 않았다.
“진민아, 너 어떻게 할 거야? 이번에 오성에 지원했다고 한 것 같은데?”
“난 떨어졌어.”
“어? 정말? 넌 그래도 성적이 나쁘지 않잖아?”
“내 성적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냐. 기껏 해 봐야 겨우 3.7정도이니까 말이야.”
“얌마, 그 정도면 대박이지.”
“하아, 그런데 그게 안 그렇더라. 지금은 솔직히 방법이 없어.”
신세타령하는 이야기.
실제로 기분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물론 취업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빌어먹을, 이번에 그냥 LH에 들어갈까.”
“거긴, 연봉이 너무 짜. 더욱이 인센티브라고 해봐야 겨우 200%가 다일 걸? 죽으라고 일만하고, 나이 들면 잘릴 걸? 이번에 우리 선배 중에 한 사람도 회사에서 구조조정 당해서 그만뒀다고 하더라, 너 못 들었지?”
“정말이야?”
“응, 지난 번 동문회 때 잠깐 나왔어. 힘들어서 죽을려고 하더라.”
“참, 답답하다.”
“난 그런 것보다 내 꼴이 더 우스워서 그래. 지금까지 그 흔한 여자 하나 안 만나고 이렇게까지 한 대가 치고는 미래가 너무 불투명해. 차라리 소개팅이나 열심히 해서 여자라도 만났으면 하는 건데, 그게 아쉽다.”
“너도 그러냐?”
“당연하지. 그렇게 보면 차라리 민우가 오히려 부럽지. 비록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기 일을 하면서 멋지게 살았잖아? 그 놈 회사에서 잘나갈 때만 해도 주말마다 여자를 갈아치웠어.”
“쯧쯧, 그래보면 뭐해? 지금 쥐뿔이라도 있냐? 너 모르냐? 이번 학기에 다시 복학했다고 하더라.”
“어? 작년에 복학하지 않았어?”
“다시 휴학하고 무슨 일한다고 했어. 그런데 올해 대학 측에서 경고 받고, 다시 복학한 거지.”
“우와, 진짜 파란 만장하게 사네.”
“그렇지? 가만 이놈 뭐하나 한 번 보러 갈래?”
“어디 있는 줄 알아?”
“야아, 공돌이가 갈 데가 어디 있어, 뻔하지.”
“과 독서실이군.”
***
과 독서실.
전자과 재학생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작은 공간이다.
같이 공부하면서 서로 토의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곳이다.
사실 대학을 다니면서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과제가 적지 않기에 어쩌면 이곳에 없을 수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조민우 역시 복학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만 오늘만큼은 좀 달랐다. 가벼운 캐줄 복장에 늘씬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는 이희정이 바짝 옆에 붙어 앉아 있는 탓이다.
따끔따끔한 시선은 그냥 참을 만 했다.
이보다는 너무 노골적인 이희정이 더욱 큰 문제였다.
다만 자신이 대놓고, 떨어지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겨우 이제 이십대에 갓 들어선 꼬맹이에게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냉정한 면이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이미 한 번 섹스 했다고 너무 들이대는 것은 참 참기가 어려웠다.
‘피곤하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어? 오빠? 벌써 왔.......”
곧 이어서 딱 적기에 나타난 최현주였다.
그녀도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아예 바짝 붙어서 몸을 들이대고 있는 이희정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딱 봐도 우리 두 사람 사귄다! 는 냄새를 풀풀 남기는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보다는 곧 어디선가 많이 보았다는 느낌이 우선이었다.
곧 지난 기억을 한 번 떠 올려 보았다.
마치 딱 떠오르는 후배 하나가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녀의 남자 친구를 가로챈 탓이다.
“희, 희정?”
이희정은 그제야 득의양양한 미소를 한 채 턱을 치켜들었다.
“현주 언니, 올만! 그런데, 놀라운 걸?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니, 뭔가 찔리는 것이라도 있나 봐?!”
“끄응.”
최현주는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붙잡았다.
그렇다고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지금의 조민우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낫는 거위였다.
더욱이 자신이 알 때만 해도 보통 남녀로 알아둔 사이이기에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조건도 없었다.
너무 좋게 출발한 가장 이상적인 커플.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도 조민우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오빠, 우리 나가자.”
“응? 어딜?”
조민우는 대답하고서는 조마조마했다. 두 여인 사이에는 오고가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거기에 이희정은 생각보다 단호했다.
“오빠, 지금 바빠.”
“그, 그게 무슨 말이니?”
“지금 내 과제하는 것 도와주기로 했단 말이야.”
“.......”
그는 난감한 표정을 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어제 봐주던 한자 찾아주기 도와주기였다.
혼자해도 될 만하도 한데, 어제 사건(?)을 빌미로 요구한 마당이라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죽어도 말해줄 수 없었다.
‘몰겠다!’
결국 머리를 책상에 박고는 하던 리포트 과제나 집중했다.
최현주 역시 바보는 아니다. 자신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상황에서 조민우가 거절하자 뭔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원칙적으로 하면 그냥 차버리면 될 일이지만 조민우는 결코 그런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조민우 옆 자리에 가서는 턱하니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나도 도와줄게!”
“언니는 빠져 주삼!
“싫은데?”
“어쩔 시구? 왜 또 고등학교 시절처럼 수작 부릴 려고?”
“그것.......”
“언니, 정말 너무 하지 않아? 어떻게 후배가 사랑하는 남자를 가로챌 수가 있어?!”
“.......”
조민우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에 도는 살기의 근원을 알아채고는 요리조리 돌아보았다. 그리고 곧 어제 있었던 일의 원인을 알아챘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절로 생겼다.
‘결국 내가 현주 애인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해서 사고 쳤다는 말이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처녀까지 깰 이유가 있었을까?’
그건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희정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을.
그리고 곧 알아챘다.
‘날 좋아해?’
사람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니 언제 봤다고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인가?
그는 골치가 아픈지 팬대로 이마를 툭툭 치다가 물끄러미 과 독서실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그럴 려고 했다.
다만 그럴 수는 없었다. 딱 과독서실 입구에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두 놈, 아니 한 놈이 추가해서 세 놈을 본 것이다.
바로 김동민, 박진민, 강성민이었다.
힐끗 저놈들이 바로보고 있는 방향을 한 번 돌아보았다.
최현주가 우선 보였다.
귀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다.
옆에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았다.
다른 한 쪽은 바로 이희정이 보였다. 다소 성깔이 있지만 나이가 어린 상황에서도 은근히 이것저것 잡다하게 챙겨주는 면이 있었다.
비록 어리지만 오히려 최현주보다는 그런 면이 나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두 여인 전부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면 능히 본선에 입상해서 최소한 5위 안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초미인이라는 점이다.
‘클클, 자식들, 속 좀 타겠다.’
다만 곧 두 여인이 서로 살벌하게 쳐다보는 것을 보고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걸 어쩌지?’
***
조민우는 고민을 하다가 마침 자신들을 보고 있는 친구들을 보자 곧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여어, 동민아, 또 보네.”
“그, 그래.”
“거기서 뭐하냐? 일로 와봐.”
보통 때라면 생까 버릴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달랐다.
세 놈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 왔다.
‘자식들, 똥줄 타지?’
“요즘 잘 되 가냐? 참 너 올해 졸업하겠네? 갈 회사는 정한 거야? 아니면 박사 과정 밞아?”
김동민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곧 우울한 심사를 떠올리고는 툴툴거렸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쯤이면 진로를 정할 때가 되지 않았어?”
“사실 지원했다가 떨어졌어.”
“헐? 네가?”
“나? 내가 뭐 있다고.”
“그래도 이제 석사잖아. 나 봐라, 아직 학부 졸업도 못해서 빌빌거리는 것.”
“글세.......”
말을 하면서 힐끗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
부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지금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의아했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어린 여인들이 저놈에게 관심을 가지는 지 말이다.
‘돈 때문일까? 아냐, 내가 알기로 민우 집은 그렇게 잘 사는 편은 아니잖아. 더욱이 지금은 사업을 망해서 별 볼일도 없지.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하기만 했다.
자신들은 죽으라고 공부만 했다.
이제까지 그 흔한 여자 친구 안 사귀보고 말이다.
회의감마저 들었다.
조민우 이런 세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느끼는 바가 있어서인지 피식 웃었다.
“너무 그렇게 복잡하게 살지 마.”
“무슨 말이야?”
“물론 석사 학위를 받는 것이 중요해. 하지만 그 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잖아?”
“그건.......”
그는 그제야 자신에 집중된 세 사람의 시선, 아니 서로 눈빛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여인마저 자신에게 주의가 집중되자 지금까지 경험을 한 번 쭉 떠올렸다가 생각나는 대로 말해주었다.
“내 나이가 많지는 않아.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보다는 경험이 많지. 누구라도 바라는 최고 높은 위치에 까지 올라갔다가 인간 가장 밑바닥까지도 떨어져 봤어. 그런데 별 것 없더라. 사는 것? 그냥 옆에 있는 가족들과 잘 지내고, 자기 좋아하는 일 하면서 즐겁게 살면 돼. 꼭 뭐를 해서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말이야? 너무 인생을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띵!
“.......”
세 사람, 아니 다섯 사람은 너무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조민우 말을 듣고는 입을 다물었다. 간단해 보이는 말이지만 너무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탓이다.
김동민은 특히 느낀 바가 많았다.
그저 남들이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한 그 기업에 가지 못해서 바둥바둥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말이다. 아니 석사학위를 꼭 얻기 위해서 아등거리는 자신의 모습도 생각해보았다.
‘한심하다.’
그런데 조민우 모습을 봐라.
이미 사업 실패를 경험하면서 쫄딱 망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푸근하면서 편하기만 한 친구의 모습이었다.
너무도 부담이 없었다.
아마 자신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그런 점을 느낄 것이다. 실제로 두 여인은 묘한 시선을 한 채 조민우 얼굴을 보고는 넋을 잃고 있었다.
‘그랬던가?’
***
캠퍼스 도로.
“오빠.”
“응?”
하지만 두 사람 이야기는 곧 끊어졌다.
“두 사람 너무 가까워!”
최현주가 중간 바로 끼어들었다.
이희정은 힐끗 최현주를 째려보면서 툴툴거렸다.
“언니, 그만 좀 하지.”
“뭘?”
“질투 부리는 것. 보기가 정말 안 좋아. 그리고 오빠가 언니, 정식 애인이라도 되? 서로 같이 자기라도 한 거야?”
최현주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응!”
“응? 응이라니? 서, 설마 두 사람이 같이 잔거야?”
“그래. 그러면 돼냐? 이 정도면 서로 정식으로 사귀는 것 맞지? 그러니, 희정아, 이제 그만 좀 해. 넌 나이가 어리잖아? 얼마든지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을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조민우는 결국 참다가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손을 잡고는 바로 떼어냈다.
“그만 좀 하자. 그렇게 싸운다고 해서 답이 날 문제가 아니잖아?”
“흥!”
“헹!”
두 여인은 이내 얼굴을 팩 돌리고는 씩씩 거리만 했다.
참 대단한 여자들이었다. 보통이면 고집을 꺾고 포기할 만도 한 데,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 역시 의아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최현주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고, 지금까지 관계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희정은 좀 달랐다.
‘이상하네, 애는 정말 왜 이러지?'
결국 다시 질문해보았다.
“희정아,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왜 그러는 거야? 난 그렇게 대단한 남자는 아니잖아? 그렇게 얼굴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희정의 대답은 정말 가관이었다.
“남녀가 사랑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가요?”
“........”
‘끄응, 말이 안 통하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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