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97 회 -- >
‘툭툭?’
잠결에 들린 느낌.
뭔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바로 이 저택에서 자신을 저런 식으로 할 이는 없었다.
아니 전혀 없지는 않았다.
최현주같은 경우에는 가능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곳에 만에 하나라도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일본으로 잠깐 떠나서 기숙사에 다시 들어간 것으로 아는 까닭이다.
‘그러면 뭐지?’
조민우는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피로가 너무 심했다.
눈이 뜨지지 않았다.
바로 그 때였다.
뭔가 바위로 내려찍는 듯 한 지독한 충격이 자신의 뇌리를 강타한 것이다.
빠악.
“크윽!”
골이 띵해서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곧 바로 몸을 일으키면서 소리쳤다.
“어떤 놈이야!”
딱 눈에 들어온 것은 화이트였다.
이놈이 침대 맡에 돌돌 만 채로 쏘옥 들어간 것이다.
“너 화이트, 이 자식이, 죽으려고 발악을 하는.......”
하지만 화이트는 꼬리로 그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의미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가보라는 뜻이었다.
“응?”
조민우는 그제야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역시 화이트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탓이다.
감히 자신을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면 뒤 후환이 얼마나 무서운 지 말이다.
이유가 있지 않고야 저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이었다.
곧 바로 화이트를 잡아서 양 다리를 붙잡았다.
고개를 도리도리하는 놈.
하지만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양 팔을 잡고는 다시 초 급행 청룡열차 놀이를 했다.
휘이잉.
부아앙.
그리고 침대 위에 툭하니 던졌다.
헤롱헤롱하더니 그대로 풀썩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자식, 간이 부었다니까!”
곧 바로 거실 쪽으로 걸어갔다.
***
평소와는 달리 거실에는 괴이한 침묵이 자욱하게 감돌았다.
물론 아무도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려 여섯 명이나 있었는데, 안색이 창백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다들 완전히 쫄아 있는 분위기.
몇 사람은 동양인이었고, 몇 사람은 놀랍게도 백인이었다.
그들은 창백한 표정을 한 채 숨마저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당연히 있었다.
바로 어미 다크와, 새끼 다크들이었다.
특히 다크 이놈은 꼭 자신의 무슨 왕이라도 된 냥 갖은 포즈를 다 잡고 있었다.
다른 새끼 다크는 의외로 마치 왕의 근위병이라도 된 냥 사방에서 조용히 앉아 있지만 그 기세가 사뭇 살벌했다.
거실 안에 있는 이들이 공포에 질려 있을 정도였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은 바로 CIA 한국 지부장 알렌이었다.
그는 식은땀마저 주르르 흘리면서 몸을 떨고 있었다.
그 자신이 알던 화이트가 아닌 탓이다.
조민우는 이들을 처음 봤기에 의아한 표정을 한 채로 힐끗 한 쪽에서 당혹해하고 있는 경비원을 보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사실은.......”
하지만 그는 손을 저어서 그의 입부터 막았다.
이들에 대해서 먼저는 아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느낀 탓이다.
“당신들은 누구죠?”
한 사람이 나서면서 주변에 있는 다크 새끼들을 다시 한 번 쳐다보고는 말을 더듬었다.
“이, 일본 자위대에서 나온 아사키 1등중좌라고 합니다.”
“1등 중좌요?”
“한국 군대 계급으로 하면 대령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흐음.”
그는 그제야 이들이 일본 자위대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이곳에 올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
그렇지 않고야 그런 식으로 일본에서 도를 넘어선 무력시위를 할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생각보다는 빠르군.’
***
조민우는 물론 이들을 데리고 DS 본사로 향했다.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까닭이다.
다만 그는 저들이 왜 겁을 집어먹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물론 추측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경비원이 못 들어오게 막았을 거고, 저자들은 자위대라는 신분을 내세워서 들어왔겠지. 화이트가 그 꼴을 봤다면 그냥 있지 않았을 거야. 분명히 발(?)을 썼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힐끗 그들 일행을 살피고는 금방 눈치 챘다. 수행원 중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뭔가 강한 타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
조민우는 이런 상황을 모른 척하고는 곧 DS 본사에 도착해서 자신의 오른팔인 정성일 부장을 비롯한 팀장 몇 사람을 불렀다.
“자, 이제 이야기를 해보세요.”
아사키가 먼저 나섰다.
“우리 자위대에서 그 DS에서 개발한 전투 로봇을 공급받고 싶습니다.”
“으음, 하지만 그건 곤란합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저희가 개발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의 허락도 없이 맘대로 판매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알렌이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다가 나섰다.
“하지만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이미 한국 정부 측과는 이야기가 된 사실입니다.”
“흐음, 그래요? 그렇다고 제가 여러 분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좋습니다.”
딱 여기까지 하고는 조민우는 곧 바로 전화를 들었다.
바로 국방부에 납품 일을 하고 강조명 대령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아, 저 조민우입니다.>
***
강조명 대령은 최근 들어서 DS에서 전투모기 공급을 받으면서 한 편으로 기분이 좋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물량이었다.
그는 특히 언론을 통해서 DS 전투모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쉬웠다. 굳이 그렇게 많이도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만 마리 정도만 되어서 한국 국방력 강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 분명한 터였다.
그런데 조민우는 결코 그렇게 많은 물량을 덤핑으로 주지는 않았다.
이게 사실 그의 불만이었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그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국방부 상급자들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전투모기 매입비용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조민우를 압박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손해 보는 처지.
그런 상황에서 더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본 자위대 측에서 이 전투무기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을 때는 좀 달랐다.
‘이건 기회군.’
물론 바로 자위대 측에 판매 허가에 대한 로열티 비용에 대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비전투모기라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열악한 예산에 시달리고 있는 국방부 역시 비슷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계약 내용은 한 마리당 로열티 1억이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정도면 오케이 하겠습니다.”
다만 이 사실을 조민우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그는 자위대에서 요청한 경우에 분명히 자신들에게 질의하리라 생각했다.
전화가 온 것은 바로 그 무렵.
<아, 저 조민우입니다.>
<오, 조 사장님,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꽤나 아부성이 강한 부드러운 말투.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조민우는 잠깐 말하지 않았다.
뭔가 낌새를 느낀 것이다.
‘눈치는 정말 빠르군.’
<사장님?>
<아, 흐음, 아닙니다. 한 가지 문의할 것이 있어서요. 지금 일본 자위대 측에서 몇 사람이 나왔는데, DS 전투모기 매입 때문에 계약을 하자고 합니다. 이건 제가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저희 국방부 측에서는 이미 일본 정부와 협의를 한 상황입니다. 아마 계약하셔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특별한 제한은 없고요? 전투모기 숫자에 대한 것이나?>
<당연히 없습니다. 저희가 사기업 경영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거죠. 여긴 엄연히 경제 활동이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맘대로 하셔도 됩니다.>
<........>
다시 말이 없었다.
잠깐 동안 말이다.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으음, 좋습니다. 그렇게 알고 전화를 끊죠. 아 이 계약에 대한 것은 추후 통보를 해드리겠습니다.>
<네!>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거래를 통해서 로열티 비용을 받는 것도 있지만 자신 역시 수중에 떨어지는 콩고물이 만만치가 않았다.
‘15억이라고 했던가? 그 정도면 나도 앞날은 걱정이 없겠지.’
***
조민우는 전화를 끊고 나서는 생각에 잠깐 잠겼다.
일단 처음에 느낀 감정은 아주 간단했다.
실망이었다.
특히 국방부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자신은 이 DS 전투모기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DS 비전투모기로 막 사용하고 있지만 얼마든지 군용으로 가능했다.
아니 심지어 그 가능성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렇게 안이하게 대처할지는 몰랐다.
‘아마 국방부 예산 때문일까?’
그렇게 보는 것이 맞았다.
그 다음은 역시 로비가 틀림없었다.
일본 애들, 그리고 미국 애들이 같이 있는 이 패거리.
분명히 한국 정부쪽에서 뭔가 수작을 부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여기까지 고민하고야 화이트가 왜 그렇게 심하게 이들에게 손을 썼는지 깨달았다.
‘불쾌감을 느꼈나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