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49 회: 새로운 마법 15권 -- >
고민을 거듭했다.
그런데 해임 따위는 별로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는 자신이 당한 앙금이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이 지난 일을 떠올려보면 이상한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부채 때문에 넘어갔지만 그 때 가진 의혹을 완전히 털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뭔가 비밀이 있는 것일까?’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 비밀은 단순히 누군가를 납치해서 고문하거나, 사립 탐정을 동원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L 그룹 내부의 일인 탓이다.
대안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당한 것을 이자까지 쳐서 갚을 정도로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떠올린 것은 아주 간단했다.
‘가만 나 당분간 잠수 타야 하잖아? 그렇다고 굳이 숨어서 다닐 이유는 없지. 흐음.......좋아, 그렇게 해보자.’
***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잠깐 잠적하는 일은 간단하지가 않다. 더욱이 DS가 이제 겨우 다시 기지개를 피면서 회복하는 국면이니, 말할 나위가 없다.
곧 바로 정성일 부장을 불러 이 부분에 대한 협의를 나누었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잠깐 쉰다는 것.
가능하면 모든 일은 정 부장이 알아서 전결 처리하라는 것.
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하는 점이다.
다만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일의 경우에 바로 만나야 한다.
따라서 그 때문에라도 어디에 있는지는 알 필요가 있었다.
정성일 부장도 이제는 조민우 성격을 파악해서인지 계속 물고 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털어놓았다.
“L 전자에 가 있을 생각입니다. 그러면 상관 없겠죠?”
정성일 부장도 처음에는 그냥 들었지만 곧 의미를 알아채고는 깜짝 놀랐다.
“네? 아, 아니 거기는 왜요? 설마 L 그룹 본사 가서 깽판 치실 겁니까?”
“휴우, 답답하시네요. 제가 무슨 초딩학생인지 아세요? 그러지 않아요. 일단 그렇게 알고 계시고요. 급한 일 있으면 연락주고, 그 이상은 그만!”
이러고 나서는 조용히 사라졌다.
***
L 전자는 L 그룹 내에서 밀어주는 기업이다.
그곳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벌써 수십 년에 걸쳐서 이룩된 기업이다.
단순히 자금을 떠나서 이제까지 쌓인 노하우만 해도 가볍지가 않다. 비록 경영자 중에서 덜떨어진 이들이 있다고 해도 L 전자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L 전자는 잘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L 전자 내의 임원의 힘은 생각보다 강한다.
거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자랑한다.
보통 L 그룹 내의 인맥이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올라가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L 그룹 전체를 뒤집어엎을 정도의 힘이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바로 낙하산 인사.
실제로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박용운 부장 역시 요즘 들어서 영 불안한 마음에 회사에 출근했다가 다른 직원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네, 들었어? 이번에 새로운 상무가 왔다고 그래.
-그게 뭐 이상해?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잖아? 한 1년 정도 있다가 조용히 퇴직하겠지.
-하지만 그게 좀 이상해. 상무로 온 사람 나이가 이제 겨우 20대 초반이거든.
-헐?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설마 후계자 한 놈이 더 늘어난 거야?
-그거야 알 수가 없지. 다만 내가 듣기로 L 그룹 일가는 아니래.
-그러면 정치권 쪽에서 넘어온 놈이야? 대단한 놈이다. 벌써 정치권의 도움을 얻어서 우리 기업 상무 자리로 오다니.
-정부와 무슨 거래가 있었나 보지.
-빌어먹을 이놈의 좆같은 나라는 전부 낙하산이야!
“?”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워낙에 정치와, 술수에 능하기에 저게 얼마나 현실성 없는 이야기인지 잘 알았다. 낙하산이 되려면 적어도 어느 정도 나이는 있어야 한다.
20대 초반에는 죽었다 깨나도 그럴 수가 없다.
그건 막말로 L 그룹 회장이 아예 설설 긴다는 이야기와 비슷했다.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
찜찜한 기분이 생기자 평소 하던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조경민 차장이 보고서 하나를 가져왔다가 이 모습을 보고는 툴툴거렸다.
“박 부장님, 왜 그러세요?”
“아, 아냐, 보고서나 줘 봐.”
그는 보고서를 받아서 한 번 펼쳐보았다. 차세대 개발 프로젝트 관련해서 올라온 내용이었다. 다만 워낙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아서 좀 문제가 되어 보였다.
‘20억이라고?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지금 L 전자 분위기 알면서 이 따위 보고서라니.’
자신의 직권을 이용해서 몇 가지 문제를 체크한 후에 부결을 내렸다.
“자, 여기 있네.”
“어라? 이거 부결하시려고요?”
“그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할 것 아냐. 20억이라니? 지금 딱 보고도 몰라. 세탁기의 모터 효율 개선하는 작업은 5억이면 떡을 쳐!”
냉정한 말투.
비록 꿍수를 많이 부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처리만큼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경민 차장은 평소와는 좀 달랐다. 그는 보고서를 내밀려서 다시 항의했다.
“이건 새로 오신 상무님이 딱 정해서 내린 보고서입니다. 무조건 승인을 하셔야 해요.”
“뭐야? 새로운 온 상무라니? 아니 그 상무가 하필이면 우리 쪽이야?!”
“그건.......저도 잘 모르죠. 저야 다른 동료들 통해서 들은 대로 아는 것뿐입니다. 이 일은 무조건 승인을 해야 합니다.”
“말도 안 돼. 내가 가서 직접 따지겠어!”
일언하고는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아직 문패가 없는 상무실.
의도적인지 아니면 너무 일정이 없어서 그런지 상무실에는 팻말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박용운 부장은 잠깐 머뭇거렸다. 뭐가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본능적인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바로 정신을 차린 후에 노크한 후에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상무실 안은 다른 상무실 내부와 거의 비슷했다.
L 전자 내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듯 보였다.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집무실 책상에는 의자를 뒤로 돌려서 머리 뒤만 보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용운, 기획팀 부장입니다.”
“들어와!”
짧고 간단한 음성.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천천히 다가가서는 보고서를 내밀면서 항의했다.
“지금 이 개발 프로젝트는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무슨 대단한 원천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 그렇다고 특별한 재질의 물질을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그냥 단순히 노가다 성 작업니다. 그런데 20억이나 되는 개발비를 사용하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입니다!”
구구절절 옳는 소리.
전부 다 맞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틀린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상대 반응은 놀랍게도.
“맞아!”
“네?”
그리고 곧 상대가 몸을 돌렸다.
스르르.
앳된 얼굴이었다. 이제 20대에 불과했다. 다만 고집스러운 보였다. 거기에 눈빛이 기이한 강한 열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바로 조민우였다.
도착적인 감정에 푹 빠져 있는 그.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다만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도대체 누구지?’
그는 당혹스러워한 채 멍하니 쳐다보았다.
상대가 기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해야 해. 하지 못하면 박 부장은 잘릴 테니까.”
“네?!”
그는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뒤집을 한 채 어슬렁어슬렁 거렸다.
창가를 통해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더 넓은 여의도 공원이 훤히 펼쳐져 있었다.
공원 한 쪽에는 무슨 콘서트를 하는 지 사람들이 꽤 많이 보여 있었다.
저 멀리 한강이 보였다.
시원하면서도 상쾌한 기분이었다.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나?”
“무슨 말씀인시지........”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이봐, 박 부장, 자네는 정말 답답하군. 아니 가해자라서 피해자 따위는 기억도 못할 수가 있겠지. 하지만 난 지난 일 가지고 왈가왈부할 정도로 간이 좁쌀만한 사람은 아니야. 뭐 사업 하다 보면 망할 수도 있잖아? 다만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지. 하다보면 회사에서 짤릴 수도 있지!”
“!”
그는 그제야 입을 딱 벌린 채로 멍하니 조민우를 쳐다보았다.
‘세, 세상에 조민우 사장?’
그는 피식 웃으면서 박용운 부장의 어깨를 툭툭치고 나서는 한 마디만 남기고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뭘 또 그렇게 놀라나? 참 난 오늘 L 전자 사장과 약속이 있어. 아마 내일은 L 그룹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고, 으음, 그 다음 날은 L 그룹 회장 저택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지. 아 그런데 재미있는 소리를 하더라고, 혹시라도 말을 안 듣는 놈이 있으면 바로 말하래.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바로 잘라버리겠다고 그러더군.”
“........”
그는 멍하니 사라지는 조민우 등 뒤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새로 온 낙하산 상무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딱 봐서는 L 그룹하고 타협한 것이 분명했다.
‘빌어먹을 새끼!’
***
늘 그렇지만 자신이 도저히 당적할 수 없는 적을 만나면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것도 그 강대한 적과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는 이에 말이다.
박용운 부장은 당연히 L 전자에 연줄이 있었다.
바로 회사 내에서 술수라면 첫째, 둘째로 꼽히는 최성환 이사였다.
그를 보기가 무섭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전부 다 불었다.
그리고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 일은 어떻게 해서라도 처리를 해야 했다.
“휴우, 정말 어이가 없군.”
“최 이사님, 어떻게 하죠? 이대로 있으면 제가 제일 먼저 회사에서 잘립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네?”
“자네도 알겠지만 그런 식으로 대놓고 자르면 회사 내부에 문제가 돼. 외압에 의해서 자네를 자른 것이 되잖아? 단순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건 나중에 조직 전체를 흔들 수도 있어. 사실 구조조정을 한다고 해도 막 자를 수 없는 이유도 그런 거고.”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아.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는 곧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는 소리쳤다.
“설마 제가 실적부진으로 만들고 자르면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까?”
“그게 문제지.”
“이, 이사님, 제발 어떻게 손을 좀 써 주십시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조 사장 사건은 단순히 저만 관련 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최........”
“그만!”
“네.”
그는 섬뜩한 눈빛을 번쩍인 채 쳐다보았다. 그리고 냉혹한 어조로 일갈했다.
“모든 화근은 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민우 사장 지난 일은 그 특허와 관련되어서 자네가 주도적으로 벌일 일이야. 이제부터는 그 이상의 말은 용납하지 않겠네!”
그는 딱 이 말을 듣자 와락 안색을 구겼다.
‘빌어먹을 꼬리 자르기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항의하기는 무리였다.
최성환 이사는 단순히 일방적인 이사와는 달랐다.
그는 어떻게 보면 L 그룹 내의 혈연으로 얽혀 있는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가지는 힘 자체가 달랐다.
***
강남의 한 한옥집.
들어가는 입구 쪽에 서 있는 사내들의 숫자만 해도 무려 20명은 넘었다. 더욱이 오가는 이들 역시 범상치 않은 재력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최성환 이사는 오랜 만에 들려서 감회가 새로웠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털어버리고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곧 나타난 한복을 입은 안내의 도움을 받아서 한옥집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곧 한 방 앞에 도착하자 그녀가 천천히 문을 열어주었다.
안에는 한 사람이 조용히 정좌해 있었다.
“무슨 일이냐?”
“혹시 조민우 사장이라고 기억나십니까?”
“조민우?”
고개를 갸웃하는 장년인. 이제는 오십대 중반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나이. 하지만 피부는 오히려 삼십대 후반 정도로만 보였다.
최성환 이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드림스카이라면 아시겠죠.”
“아, 드림스카이? 갑자기 그 일은 왜 언급하는 거야? 이미 끝난 일인데?”
“그 조민우 사장이 지금 L 그룹에 상무로 들어왔습니다.”
“뭐?!”
실로 황당한 일이었다.
그 자신은 당시 조민우 사장이 완전히 몰락하고는 잊어버렸다.
그 다음은 아예 기억도 하지 않았다.
물론 이후에 조민우가 워낙에 튀는 행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초반에 잠깐 손을 보라고 지시를 내렸지만 그것도 결과가 없자 일단 지켜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상대가 이상하게 복수할 생각이 보였다.
당연히 추측하는 바는 있었다.
L 그룹을 잘못 건드리면 단순히 그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에 악 영향을 준다.
그것을 염려한 듯 보였다.
오히려 조민우가 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이용해 먹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특히 미국의 압력이 시작되었을 때, 슬쩍 같이 합승해서 조민우를 강하게 압박했다.
완전히 몰락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놈은 다시 DS 부품 시리즈로 완벽하게 부활해버렸다.
결국 다시 지켜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조민우가 L 전자 상무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DS 부품 때문에 L 그룹하고 협상을 진행하는 것 같았는데.......갑자기 이렇게 결과 나온 겁니다.”
“타협했군.”
“네? 그, 그러면 설마 상무로 들어가는 대신에 계약을 체결했다는 말입니까? 아니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서, 설마 저희 때문에?”
“글세, 그건 알 수가 없어. 하지만 조민우 사장은 정말 위험한 친구라는 것은 자네도 알지 않은가?”
“그러면 어쩌죠?”
“일단 지켜보는 것으로 하지. 그 친구가 정확히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지 않은가? 필요하면 박 부장 그 친구 선에서 끝내는 것으로. 그 박 부장 친구에는 괜찮은 자리 하나 만들어준다고 그래.”
“으음,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를 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끝내. 그리고 그 박 부장이란 친구는 감시를 몇 명 붙이고.......필요하다면.......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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