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1화 (1/145)

회귀했다 01

<프롤로그>

“별거 기간이 이미 3년이 되었고 개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 부부간의 신뢰 관계를 도저히 회복하기 힘들다는 점, 따라서 두 사람의 혼인 관계에 있어 파탄에 이르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에 본 법정은···.”

머리 속은 점점 더 아득해졌고.

그렇게 나는 마침내 이혼을 하게 되었다.

#

“기분이 어때?”

종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한테 물었다.

기분이 어떻긴.

이걸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하지.

차라리 그따위 질문은 하지나 말지.

“가자. 시간 되냐? 시간 되면 삼겹살에 소주나 빨자.”

그러나 종현은 스마트폰을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야, 미안. 스케쥴 꽉 찼다. 저녁에 의뢰인 면담도 또 있고···.”

“알았다. 그냥 가라! 가!”

“야, 담에 같이 마시자. 참! 주말은 어때? 그땐 나도 시간이 좀 나는데. 요즘 이혼 변호사가 얼마나 바쁜 줄 모르지?”

“알았어. 알았다고. 돈이나 많이 벌어.”

“암튼, 나도 애석하다고. 에휴.”

“인마, 그딴 소리 그만하고 그만 가봐. 아무튼, 고맙다. 니 덕에 잘 끝났다.”

“짜식, 이제야 고맙다는 소리 하네. 그래. 담에 보자. 참! 주말에 꼭 연락해! 꼭!”

그 말에 나는 씩 웃었다.

주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작작해야지.

주말이면 한국을 떠나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제안인가.

국제 의료 구호 단체의 일원이 되어 나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날아갈 생각이다.

아주 긴 여행이 될 것이다.

휴우.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뒤돌아봤다.

오늘 따라 왜 이럴까.

서울가정법원 위의 하늘은 유난히 푸르른 모습이다.

왜 이렇게 날씨가 좋대?

“정민아. 그럼 여기서 헤어지자. 너 어떻게 갈래?”

“나는 그냥 전철 타고 가려고. 오늘 일찍 집에 가서 쉬려고.”

“병원은? 병원은 안 가? 오늘 수술 없어?”

인마, 진작에 사표냈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의료 봉사를 가기로 했는데, 병원은 무슨 병원!

그러나 이 이야기를 구태여 하지 않고 씩 웃었다.

“암튼 담에 보자. 고맙다. 이것저것 도움 줘서. 김 변! 조심해서 들어가.”

“정민아. 힘들어도 오늘 적당히 마셔. 몸 생각하고.”

잠시 후, 김종현 변호사와 가볍게 악수한 뒤, 나는 곧장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웬일인지 뒤통수가 바로 따갑다.

그래, 아무래도 김종현 저 자식이 또 날 째려보나 보다.

이혼변호사 주제에 이혼을 극도로 혐오하는 인간.

뭐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혼한 게 죄냐?

나도 억울하다고.

나도 미치겠다고.

비싼 집도 다 날렸고.

재산이라곤 하나도 없다.

다 사라졌다고.

모조리 다.

모조리 다!

전처가 만들어 놓은 그 30억 원짜리 빚도 갚아줬다.

그리고 나는 지금 빈털터리다.

이런 데도 내가 억울하지 않나.

그래서 떠나는 거다.

한국을 떠나는 거다.

그사이 점점 더 내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었다.

#

전처를 만난 것은 아마 레지던트 3년차 때, 바로 그때였다.

원로 교수님의 소개를 받아 우연히 소개팅 장소에 갔다.

그때 가지 말고 대타를 내세워서야 했는데.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가문도 좋아 보였고 아주 부유한 집안인 것 같았다.

그래서 강남 부잣집 막내딸로 오해했다.

사실 내가 그때 정신이 나갔고.

완전히 속물이었던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당시 병원 일이 너무 힘들었다.

정말 쓰러져 죽을 것만 같았다.

사명감을 갖고서 흉부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택했지만.

갈수록 회의감이 들던 중이었고.

레지던트 3년차지만 수술방에서 교수님들의 잔소리를 쉴 새 없이 듣는 내 모습에, 내 자존감은 한없이 추락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전처를 만난 뒤 간신히 버텼다.

결국, 결혼까지 이어졌다.

그래.

그래도 그때까진 괜찮았는데···.

#

[이번 역은 선릉, 선릉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잠시 넋 나간 상태로 있다가 눈을 떴다.

선릉역?

도대체 내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건가.

그냥 막 전철에 탑승한 것 같다.

그러나 귀찮아져 중간에 내리기도 싫다.

사실,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나에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감은 상태에서 바깥이 유난히 어두워졌다가.

그리고 다시 밝아지길 반복하는 것 같았다.

오로지 나는 그 감각만을 남겨두고서.

모든 감각을 완전히 닫았다.

과거를 생각했고.

내 미래를 걱정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 날 툭 쳤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했다.

왜냐하면, 누군가 팔꿈치 쪽을 슬쩍 쳤지만, 전철의 진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건드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누군가 팔꿈치를 쳤다.

툭. 툭.

툭! 툭!

어느 순간 팔이 흔들릴 정도다.

도대체 왜 이러지?

좀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제발 좀 손대지 말라고!

그런데 갑자기 충격을 받으며 고개가 앞으로 꺾였다.

누군가가 이번에는 내 뒤통수를 툭! 친 것이다.

무척 기분 나쁘게.

순간,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쓴 뒤 마침내 눈을 떴다.

도대체 누구야?

이건 참을 수가 없다.

왜 뒤통수를 쳐?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치는 거야?

그 순간, 바로 밝아지는 주변의 모습.

그리고 갑자기 눈앞의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등등, 그 모든 것들이 그저 환상인 듯, 완전히 모든 게 달라지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두 눈이 더 커졌다.

마치 폭발하듯 우수수 쏟아지는 아주 강렬한 빛!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안 되다가, 뒤늦게 뭔가 이상한 점도 깨달았다.

익숙한 조명의 모습.

아니, 이건 단순한 조명이 아니지 않은가.

바로 수술방 무영등의 그 강렬한 빛.

그런 무영등을 멍하니 쳐다보던 중, 나는 갑자기 오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도대체 내가 어디에 있나.

이게 꿈인가. 아니면 환상인가.

문득 내 손을 쳐다봤다.

수술 장갑을 끼고 있었고.

내 복장을 쳐다보니 녹색 수술복 차림이다.

아, 파란색이 아니라 녹색 수술복?

그렇다면 옛날 복장인데?

문제는 이때 입 주변을 가린 마스크와 머리 쪽 수술 모자의 존재도 느껴졌다.

그리고 이때 옆에서 누군가 다시 팔꿈치를 툭툭 쳤다.

고개를 돌리자, 새카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날 쳐다보고 있는 여자.

잠시 멍해졌다.

최고은 선배?

선배가 왜 내 옆에서?

이런 수술 자리라면 교수급이 2명이나 들어올 이유가 없는데?

그러다가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히 좀 더 꼼꼼하게 주변을 쳐다보다가 숨이 턱 막혔다.

정신없이 어시 역할을 하고 있는 김재호 선배.

그런데 김재호 선배는 강남에서 큰 성형외과 병원을 하고 있는 중인데, 왜 이런 심장 수술방에 들어와 있을까.

한편, 김재호 선배의 어시를 받으며, 곰 같은 덩치의 강정수 교수님이 집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정수 교수님···.

나의 흉부외과 은사님.

이미 은퇴하셨는데.

내 머릿속으로 폭포수처럼 기억들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눈앞이 더 밝아졌다.

[야, 인턴! 정신 좀 차려. 자꾸 졸래?]

이때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최고은 선배.

순간, 내 두 눈은 찢어질 듯 커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여긴 성국대 대학병원 수술실, 바로 흉부외과 수술방이었다.

한편, 그걸 인지하는 순간, 내 눈앞으로 이상한 글자들이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고 아주 선명하게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성좌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당신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플레이어: 김정민]

[클래스: 의사(인턴)]

[등급: S]

[전용 특성: - (미공개)]

[전용 술기: 인투베이션(기관삽관): S, 심장막천자(pericardiocentesis): S, 흉관 삽관술: S]

[경험치: 0]

도대체 이건 또 뭐야.

내가 도대체 현실 속에 있긴 있는 건가.

#

그리고 그로부터 3시간 뒤.

수술방 뒷정리를 마친 뒤, 흉부외과 의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그때부터 거침없는 징벌이 시작되었다.

수술방에서 내가 심하게 졸았던 것.

그게 흉부외과 선배들에게 찍힌 것이다.

즉시 원산폭격부터 시작됐다.

“야, 인턴! 너 진짜 죽을래? 인턴 주제에 어떤 기횐데 거기서 졸아? 이 새끼가 정신이 나갔어?”

성난 김재호 선배는 그렇게 고함을 질렀고.

다른 선배들은 싸늘한 눈초리로 날 쳐다봤다.

반면, 인턴 동기들은 힐끔 날 쳐다본 뒤 바로 의국 밖으로 나갔다. 다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기 때문이다.

“야, 김정민! 너 앞으로 똑바로 해! 다른 과에선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CS(흉부외과)에선 절대 건성 건성이란 없어. 알아?”

“네!”

“똑바로 대답 못 해?”

“죄송합니다! 선배님! 다신 그러지 않겠습니다!”

“야, 뭐가 죄송한데?”

“다신 졸지 않겠습니다!”

“다시 졸면 어떻게 할 건데?”

“절대 안 좁니다!”

“혹시라도 졸면?”

“죽어도 안 좁니다!”

“야, 정신 좀 차려! 정신 좀 차리라고!”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러고는 간신히 원산폭격은 중단되었다.

한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나는 씩씩거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휴! 휴! 휴!

그리고 마치 내 얼굴은 불덩이 같이 달궈진 느낌이었지만.

아니, 오히려 머릿속은 훨씬 더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원산폭격 때문에 현실 감각은 더 명확해졌다.

그래.

이건 현실이다.

이건 환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성국대 병원 인턴 시절로 말이다.

2001년, 아마도 그때.

즉, 아주 오래전 그때로 돌아온 것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