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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7화 (7/145)

천재 인턴 01

<7>

폐동맥 혈전 색전증(Pulmonary ThromboEmbolism).

이것은 혈전(핏덩어리)에 의해 폐동맥 혈관이 폐쇄되면서 폐동맥압이 상승하게 되는 질환이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심장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질환.

이런 폐동맥압 상승은 우심실 확장 외에도 우관동맥을 압박해서 우심실 허혈(산소 부족으로 인한 조직 손상) 상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근데 윤 선생! 호흡기 내과엔 연락했나?”

“네?”

갑자기 의아해하는 윤세진.

수술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윤후 교수는 그걸 갑자기 물었고 윤세진은 당황했다.

“내가 연락 좀 하라고 자네 자리에 메모를 붙여놨을 텐데?”

그러나 윤세진은 처음 듣는 듯한 표정이다.

“쯧. 쯧.”

짧게 혀를 차는 박윤후 교수.

더는 말하지 않고 그는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흔히 스크럽 널스(scrub nurse)라고 불리는 최현미 간호사가 블레이드 크기가 다른 메스를 박윤후 교수의 손에 올려줬다.

박윤후 교수는 그 메스를 잡자마자 시원시원하게 절개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hemostasis(지혈)!”

“교수님, 여깁니까?”

“아니, 거기가 아니라 여기네.”

“죄송합니다.”

윤세진은 일명 보비(Bovie knife)로 불리는 전기소작기(electrocautery)를 그 절개 부위에 가져갔다.

치이익!

“잠깐!”

그러나 갑자기 중단시키는 박윤후 교수.

“그렇게 하다간 이쪽 혈관을 다쳐. 손 방향을 완전히 틀어. 됐어. 그렇게 해 봐.”

‘죄송합니다’를 연발한 뒤 윤세진은 손 위치를 바꿔 전기소작기로 지혈했다.

그로부터 잠시 뒤.

박윤후 교수는 직접 전기흉골톱(electric sternum saw)으로 흉골 절개도 완료했다.

이럴 때 유능한 퍼스트 어시가 나서 주게 되면 다음 작업을 훨씬 더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근데 자넨 왁스 쓰는 법도 모르나?”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이봐, 윤 선생! 자, 자, 내가 직접 보여주지.”

“죄송합니다. 교수님.”

어쩔 수 없이 직접 가르치면서 또 도움을 받게 되는 박윤후 교수. 이런 거 자체가 무척 답답하다. 저게 무슨 퍼스트 어시인가.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성국대 병원 흉부외과는 레지던트가 딱 3명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나마 쓸만한 인재들, 레지던트 3년차 김재호와 레지던트 2년차 최고은. 이들 두 사람은 너무 혹사를 당하고 있어 아쉽지만 여기에 부를 수가 없다.

“근데 자넨··· 퍼스트 어시가 처음인가?”

“아닙니다. 3번 정도 경험이 있습니다.”

“3번씩이나?”

깜짝 놀라는 박윤후 교수.

“대체 어느 교수님 밑에서 퍼스트 어시를 맡았나?”

“한재준 교수님입니다.”

너무나도 쉽게 들려오는 대답.

그러나 박윤후 교수는 즉시 미간을 찌푸렸다.

한재준 교수는 젊고 영리한 교수다.

어시던트 없이도 수술을 거뜬히 해내는 그런 사람.

성국대 병원의 빠듯한 사정에 가장 특화된 교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윤세진의 경험이란 게 그저 의미없는 퍼스트 어시 경험이었다.

어쨌든 그사이, 수술 전 체외순환기(extracorporation)와 연결을 위한 예비 작업은 차근차근 완료되고 있었다.

#

“잘 봐. 지금부턴 조직 박리 작업 외에 좌우 폐동맥 노출 작업이니까 최대한 놓치지 말고, 눈 똑바로 뜨고 쳐다봐.”

“네. 교수님.”

박윤후 교수는 먼저 최현미 간호사 쪽으로 조금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클랩.”

그리고 즉시 그걸 받은 박윤후 교수는 박리할 조직을 한쪽으로 집었다.

그러고는 메스를 다시 받아 노련하게 주변을 이리저리 커팅한 뒤 윤세진 쪽을 쳐다봤다.

사실, 지금 퍼스트 어시로서의 즉각적인 어시를 기대한 건데.

어떻게 나서야 할지 그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손을 움직였다.

주변의 피를 거즈로 빠르게 닦아내더니.

그 거즈를 치우자, 삽시간에 앞 시야가 확보되고 있었다.

박윤후 교수는 즉시 고개를 돌렸다.

이때, 뜻밖이라 상대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런데 그자가 이번에는 티슈 포셉(tissue forceps)을 이용해서 조직을 쭉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시야는 더 깨끗하게 확보되었다.

이거 제법인데?

박윤후 교수는 최현미 간호사로부터 모스키토 클랩을 다시 받았고, 다음 작업을 바로 진행했다.

한편, 어시 타이밍을 모른 채 머뭇거리던 윤세진은 뒤늦게 인상을 찡그렸고, 조금 전 수술에 끼어든 상대를 쏘아보듯 노려봤다.

그러나 박윤후 교수가 작업 중이라 그는 끽소리 못하고 기다렸고.

한쪽 조직 박리가 끝나자마자 그는 즉시 끼어들었다. 그런데 무슨 경쟁심이 생겼는지 몰라도 윤세진의 손놀림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폐동맥 절개 전, 각 폐엽의 폐동맥을 보기 좋게 노출시키는 작업이 의외로 빨리 끝나게 되었다.

이후, 주변 박리 작업이 더 남아 있었으나 그것도 수월하게 끝났다.

곧이어 완전순환정지를 위한 대동맥 차단과 심정지액 주입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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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길게 숨을 내쉰 뒤 박윤후 교수는 한참 만에 허리를 폈다.

그리고 세컨 어시를 유심히 쳐다봤다.

사실상, 수술에서 배제된 상태였는데.

그 세컨 어시가 수술 중에 갑자기 끼어들더니.

그 세컨 어시 때문인지 몰라도 어설펐던 퍼스트 어시의 대응 속도도 갑자기 빨라졌고 눈썰미도 확 늘어났다.

박윤후 교수는 세컨 어시를 더 주목해서 쳐다봤다.

듣기론 이제 겨우 인턴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자신이 지금 뭘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뭘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딱 적절한 수준.

즉, 세컨 어시의 역할 범위를 전혀 넘어서지 않았지만.

단순한 듯하면서도 정확하고 깔끔한 움직임 때문에 그 호기심은 더욱더 커져 버렸다.

그래서 작업 중간에 박윤후 교수는 슬쩍 질문을 던졌다.

“이봐. 세컨 어시는 처음이라고 했지?”

“네.”

“혹시 컨퍼런스에 들어왔나?”

“아뇨. 다른 일 때문에. 죄송합니다.”

하긴 인턴이 컨퍼런스에 꼭 들어올 이유가 없다.

세컨 어시 일이 부여됐지만, 그저 명목상의 일일 뿐.

“그럼 다음에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군?”

“아뇨. 대충 예상이 됩니다.”

“뭐? 예상이 된다? 뭔가? 말해 보게.”

박윤후 교수가 그렇게 재촉하자 대답이 곧 들려왔다.

“아,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정지 이후, 좌우 폐동맥 상단·하단에 대해서 부분 절개를 진행하고, 이후 혈관 내부에 있는 색전을 찾아 제거하는 작업이 앞으로 좀 더 남은 것 같습니다.”

“그럼 혈전 제거 방식은?”

“석션하면 됩니다. 다만, 혈전이 부서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부서지게 된다면 혈관 전체로 흩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 순간, 놀라며 눈이 약간 커지는 박윤후 교수.

설마 이쪽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 그런 친구인가.

갈수록 마음에 든다.

“정말 세컨 어시가 처음인가?”

“네, 그렇습니다.”

“손도 전혀 떨지 않던데?”

“떨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 자신감이 충만하군. 하지만 수술자는 절대 함부로 자신감을 가져선 안 돼. 자신감이 때로는 환자한텐 독이 될 수도 있어. 알겠나?”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자마자 심폐 완전순환 상태에서 박윤후 교수는 우 폐동맥부터 절개했다.

이때부터 아주 세밀하게 대동맥 혈관 안쪽의 미세 박리면들을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혈전이 발견되면서 그 즉시 흡입기(sucker)를 이용해 깔끔하게 제거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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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이. 띠이. 띠이. 띠이.

전자음이 조용히 울리는 수술방.

그로부터 시간은 꽤 경과되었고.

갈수록 숨이 턱턱 막히는 듯했다.

그러나 박윤후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집중하고 있었다.

각 폐동맥에 붙어 있던 혈전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깨끗하게 제거되었는데.

생각보다 그 양이 상당했다.

“휴우.”

길게 숨을 내쉬는 박윤후 교수.

또 시간이 흘러, 이제 이마를 타고서 땀이 쉴 새 없이 흐르는데.

중간중간 간호사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지만.

나이 탓인지 박윤후 교수의 안색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래도 수술은 어느덧 문제없이 후반부로 이어졌고, 마침내 완전순환상태가 해제되었다.

전날, 이 환자는 상태 악화로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를 달았다.

그러나 이제 생명유지장치인 에크모를 뗄 수 있게 되었다.

혈전 제거도 완벽하게 된 것 같았고.

곧이어 흉부절개 부위를 닫으며 이제 마지막 봉합 등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길고 긴 수술이 곧 끝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변고가 발생했다.

그 시작은 마취과 의사의 갑작스러운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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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이거 좀 보세요! 교수님!! 교수님!!”

그 순간, 뭔가 싸한 기운이 싹! 퍼졌다.

어느덧 수술이 끝날 무렵.

그러나 모두의 시선이 갑자기 바이탈 기계로 향했고.

다들 눈이 커졌다.

한편, 조용히 수술 과정에 참여하고 있던 나는 특히 이 상황의 도래가 충격적으로 느껴졌고 입술이 갑자기 말라왔다.

과거에도 겪었던 일.

데자뷰 같이 이 상황을 다시 겪게 되자, 생각보다 기분은 최악이었다.

사실, 지금껏 나는 조용히 그러나 적극적으로 수술 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확인했다. 모든 과정이 거의 교과서적으로 수행된 것.

그러나 지금 고성능 환자감시장치에선 격렬한 알람이 뜨고 있다.

삐이이익! 삐이익! 삐익!

“진 선생! 에피네프린(epinephrine) 더 투여해!”

“네!”

“윤 선생! 김 간호사! 빨리 defibrillator(자동제세동기) 가져와! 빨리! 빨리!!”

삐이이익! 삐이익! 삐익!

경고음은 사람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교수님! 여전히 펄스(맥박)가 없습니다!”

박윤후 교수는 즉각 심장 충격을 지시했다.

“defibrillator(자동제세동기) 준비됐지? 서둘러!”

“네! 준비됐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심장 충격.

“100J(줄)!”

팡!

환자의 몸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실패.

“150J(줄)!”

팡!

역시 실패.

“200J(줄)!”

팡!

그리고 잠시 뒤, 약간의 바이탈 사인이 나타났다.

삐이이. 삐이이. 삐이.

“비켜!”

박윤후 교수는 윤세진을 밀친 뒤 바이탈 기계 쪽으로 달려갔다.

“올라갑니다! 교수님!”

주르르 상승하는 바이탈 사인.

그러나 안타깝게도 멈칫하더니 다시 주저앉기 시작했다. 산소포화도(SpO2)도 다시 떨어졌다.

“진 선생! 빨리 수혈팩 짜!”

농축적혈구(PRBC)와 신선동결혈장(FFP)은 즉각 투여됐다.

그 사이 혈압은 46/25 mmHg로 내려앉았고.

중심정맥압(central venous pressure, CVP)은 23mmHg.

폐동맥압은 33/27 mmHg.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게 다시 바뀌었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익!

어레스트 상황이 다시 찾아든 것.

박윤후 교수님은 정신없이 다시 지시를 내렸고, 모두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모두의 얼굴엔 땀방울이 가득해졌고 모두의 호흡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자동제세동기는 다시 활용되었다.

“교수님! 교수님!”

“누구야? 누가 날 불렀어?”

목소리가 유난히 거칠어진 박윤후 교수.

나는 후다닥 뛰어가 그의 앞에 섰다.

사실, 나는 큰 소란이 있는 동안, 한쪽 구석으로 물러났고 전반적인 상황을 조심스럽게 점검했다. 다른 이들이 놀라 정신이 분산될 때 바이탈 사인에 특히 주목했고. 그 와중에 환자의 심전도 변화가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것도 확인했다. 이건 과거의 내가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거다.

침착함.

그리고 그 침착함을 계속 유지하며 상황을 확인하다가, 이때 나는 가장 중요한 걸 발견했다. 모두가 정신이 없어 잠시 놓치고 있던 것!

현재 심전도 상에선 ST분절 상승 현상과 T파가 두드러지게 상승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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