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인턴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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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전기충격만 반복할 게 아니라 지금 즉시 심낭천자(pericardiocentesis)도 실시해야 합니다!”
“뭐!!”
사납게 들려오는 박윤후 교수의 목소리.
자동제세동기를 다루고 있던 윤세진도 즉시 반응하며 날 쏘아봤다. 그리고 그도 고함을 질렀다.
“야! 이 개새끼야아!! 입 닥쳐!! 니가 뭘 알아? 교수님!! 다시 넣겠습니다!!”
그러나 이때 나는 즉시 두 손을 앞으로 모으며, 진심을 다해 상황을 설명했다.
심전도 결과가 가리키는 내용들.
그리고 바이탈 징후들.
특히, 폐동맥압과 중심정맥압이 상승하면서 산소포화도 감소와 저혈압 쇼크를 유발하는 이상 현상 외에도 환자 얼굴에는 청색증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것들도 지적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급성 진행 상황이지만, 원인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종합하면, 환자의 심장 이상 가능성이 현재 상황에선 가장 의심스럽다.
환자가 앓고 있는 폐동맥 혈전 색전증 외에 또 다른 합병증이 발생했다는 의미.
그렇다면 이런 이벤트 상황에서 환자의 생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가장 큰 위험요소란 무엇일까.
나는 즉시 급성 myocardial infarction(심근경색)에 의한 cardiac tamponade(심낭압전)을 최종적으로 지적했다.
“교수님! 그래서 지금 당장 심낭천자(pericardiocentesis)를 시행해야 합니다! 현재, 초음파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좀 전까지 이 수술대에서 폐동맥 절개 수술이 진행된 터라 폐동맥 파열 등의 최악의 상황만을 고려하던 박윤후 교수. 그래서 그는 이런 설명들을 듣고 나자 바로 미간이 구겨지며 아차! 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심낭 문제일 수도 있겠군. 그래서 심낭천자(pericardiocentesis)를 하자고?”
“네! 당장 서둘러야 합니다!”
거듭되는 재촉.
박윤후 교수는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심낭 삼출액을 뽑아야 한다는 제안.
심낭천자(pericardiocentesis)를 시행해야 한다는 제안.
어레스트(심정지)가 발생된 이유는 아직 원인 미상이지만, 그렇다고 계속 기다릴 수도 없다.
다급하게 자동제세동기를 이용해서 바이탈을 다시 확보한다고 쳐도 또다시 어레스트 상황이 오게 된다면, 그땐 생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군. 거기, 최 간호사! 심낭천자 키트 좀 빨리 가져오세요! 빨리! 빨리!”
스크럽 널스 최현미 간호사는 즉시 백테이블(back table)를 뒤졌다.
“김 선생! 초음파 세팅 좀 부탁하네!”
“네! 교수님!”
그리고 잠시 뒤.
“200J(줄)!”
팡!
자동제세동기에 의해 환자 바이탈이 일시적으로 회복되자, 잠시 안정기를 거친 뒤 박윤후 교수는 심초음파 확인 후 즉각 심낭천자를 시행했다.
나는 옆에서 보조했다.
다행히 박윤후 교수는 노련한 의사라 시술 과정에서 흔들림이 없었다.
18G 카테터 천자침을 좌측 가슴뼈와 5번째 갈비뼈 사이에 찔러 넣었고.
천자침 깊이를 세밀하고 조정한 뒤 주사기 몸통을 쓱! 잡아당기자, 붉은 삼출액이 주르르 딸려나왔다.
그 순간, 지켜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윽!”
특히, 윤세진의 얼굴은 바로 똥 씹은 듯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심낭 속에는 정말 피와 조직액이 잔뜩 고여 있었다.
그걸 즉시 관에 연결해서 배액을 시작하자, 이때부터 쉴 새 없이 삼출액이 나왔다.
“얼마나 나왔나?”
“1,000cc 넘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이거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
그러나 그런 심각한 상황이 해소되자 변화가 찾아들었다.
환자의 체온, 호흡, 맥박, 혈압 등의 바이탈 사인에서 확연한 변화가 생긴 거다.
일시적으로 혈압이 190/110mmHg로 상승하긴 했으나 이내 90/50mmHg로 돌아왔고.
중심정맥압(CVP)은 8mmHg.
폐동맥압은 25/11mmHg.
이전보다 많이 하락한 값을 보이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바이탈이 회복된 거다.
위험수위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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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박윤후 교수.
지독한 긴장감에서 벗어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반응하고 있다.
잠시 후, 몸과 마음을 적절히 추스른 박윤후 교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나?”
인턴의 단순한 직관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신기하기만 하다.
교수인 자신은 까마득하게 몰랐다.
상황이 너무 긴박했다.
어레스트 상황이었으니까.
“그게··· 교수님,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걸 본 것뿐입니다.”
그러면서 환자 바이탈 장치와 심전도 모니터 등을 손으로 가리켰다.
박윤후 교수는 그쪽을 한 번 쳐다봤고, 곧이어 마취과 의사도 쳐다봤다.
마취통증과 펠로우 진경희 선생.
그녀는 사태가 갑자기 급반전되자 안도해 하면서도.
인상을 찡그린 채 심전도 모니터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그 긴박한 응급 상황에서 그녀는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못 내린 거다.
“수고했네. 이게 다 자네 덕분이야.”
자신의 수술은 이미 끝난 상황. 그래서 박윤후 교수는 내 어깨를 꼭 잡았다.
“눈썰미도 좋고 손도 아주 잘 쓰는 것 같던데. 정말 인턴이 맞나? 내가 벌써 이걸 몇 번째 질문하는지 모르겠어. 그만큼 자네 기본기가 강하다는 말이겠지.”
씩 웃는 박윤후 교수.
“아무튼 이번 일에 대해선 따로 포상하겠네.”
그러고는 그는 몸을 돌려 좌우를 쳐다봤다.
“진 선생은 계속 바이탈 체크해 주시고, 바이탈 안정될 때까지 다들 10분만 쉬도록 합시다!”
너무 힘들었다.
어레스트가 2번이나 오면서 진이 쫙 빠진 것이다.
“근데 교수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최대한 빨리 심장을 열고 수술적 처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2차 수술을 말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박윤후 교수는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 역시 속으로 그걸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심장 수술은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 다른 교수를 불러야 한다. 마침 이 일에 적합한 사람도 있었다.
잠시 후, 박윤후 교수는 수술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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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날 아침 9시 30분부터 시작된 수술.
수많은 변곡점을 거쳤고···.
그 수술이 완전히 끝이 난 것은 새벽 3시 무렵이었다.
중간에 수술팀이 교체되면서.
나는 수술방에서 나오게 되었고.
밤 시간 동안 계속 대기했다.
현재, 수술 방향은 폐동맥 수술에서 심장 수술 쪽으로 완전히 방향이 틀어졌다.
심장 수술 베테랑 윤미연 교수가 2차 수술 집도를 맡게 되었고.
레지던트 2년차 최고은 선배가 퍼스트 어시로서 그 수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흘러 결과들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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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 중환자실(ICU)로 환자 들어왔어.”
새벽 3시 무렵, 중환자실 병동 관리를 하던 이동욱은 스테이션으로 뛰어와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전해왔다.
“그 환자?”
“어.”
“최고은 선배는 나왔어?”
“잠깐 중환자실에서 봤어.”
“지금도 있어?”
그러나 이동욱은 고개를 저었다.
“박윤후 교수님 호출받고 바로 들어갔어.”
“아, 그래?”
그녀에게 물어볼 게 많다.
아쉽지만 좀 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럼 윤미연 교수님은?”
“휴게실에서 환자 가족들과 면담 중이야.”
다들 바쁘다.
수술 이야긴 나중에 듣기로 하고.
직접 환자부터 봐야겠다.
“같이 가자.”
동기 이동욱은 쪼르르 쫓아왔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중환자실에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가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했다.
바이탈은 나쁘지 않다.
어느덧 혈압이 105/65mmHg까지 올라간 상태.
그 외 다른 사인 역시 비교적 정상적이다.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으나 다소 안정적으로 보인다.
저번에 뗐던 에크모 역시 달려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2차 수술은 성공했다는 말.
환자는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내 등 뒤에서 약간 소란스러운 인기척이 들렸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박윤후 교수, 윤미연 교수, 환자 가족들이 내 뒤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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