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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9화 (9/145)

수상한 인턴 01

<8>

“감사합니다! 교수님! 위험한 수술이라고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위험한 줄도 몰랐습니다. 수술시간이 길어져 불안하긴 했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수고하신 윤 교수님이야 더는 말 할 것도 없고 여기 이 친구도 나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환자 가족들은 계속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수술 중간쯤 수술 경과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서 깜짝 놀랐다는 그녀들. 그리고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런데 이때 나는 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수술 집도의가 두 분 교수님이다 보니 함께 설명한다고 해도 환자 가족들한테 너무 과할 정도로 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교수님, 우리 수호는 중환자실에서 언제 나갈 수 있죠?”

“하루에서 이틀 정도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며칠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후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RICU(호흡기계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실로 옮길 겁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이번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아이고, 왜 그러십니까? 의사로서 당연한 일인데요. 참! 최 사장님께선 잘 지내고 계십니까?”

“네! 중요한 비즈니스가 있어 독일에 지금 계세요. 오늘 오후쯤에 귀국하실 겁니다. 근데 교수님, 이번 주말이나 아니면 다음 주말쯤에 혹시 식사 같이하시겠어요? 수진이 아빠도 그때 시간이 될 텐데.”

“아, 그래요? 그럼 다음 주말쯤이 괜찮습니다.”

“혹시 윤 교수님은요?”

“저도 다음 주말 스케쥴은 괜찮습니다.”

“잘됐네요. 박 교수님, 윤 교수님.”

우아한 명품 코트에 명품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중년 여자. 두 손을 단정하게 앞으로 모으고 있는 그녀는 무척 예의 바른 모습이다.

사실, 그녀의 아들 최수호 환자는 수술 중에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날 뻔했다.

한편, 옆에 서 있는, 얼굴이 하얀 아가씨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에 화려한 벨트로 늘씬한 허리 라인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인데, 표정이 나름 밝았다.

한 번씩 날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에 나는 괜히 어색해져 쓴 미소만 지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화는 끝이 났다.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좌측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두 여자.

윤미연 교수 역시 박윤후 교수한테 인사한 뒤 서둘러 자리를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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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김 선생.”

“네, 교수님.”

“시간이 늦었으니까 우리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오늘 정말 수고 많았네.”

아주 늦은 시각.

이제 박윤후 교수는 걱정들을 다 털어버리고 곧장 퇴근할 생각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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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수술일지를 마무리했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행히 이번 수술 건은 무사히 모든 일들이 끝난 것 같았다.

만족해 하며 씩 웃던 나는 잠시 좌우를 살폈다.

이 시각, 너무나도 조용한 병동의 모습.

나이트 근무 간호사들이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각 입원실을 살피고 오지만 여전히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았고.

오늘 입원실 환자들은 이 시각, 그저 조용히 잠이 든 것 같았다.

동기 이동욱과 방지현은 잠시 자러 숙소에 갔다.

의국 책상에 엎드려서가 아니라 한두 시간이라도 침대에 누워서 자겠다는 것.

수술방에서 녹초가 된 레지던트 선배들은 마치 좀비인 듯 비틀거리며 스테이션에 나타났다가 역시 숙소로 향했다.

나는 새벽 6시까지 이곳에 있기로 했다.

응급 상황이 생기면 대처할 의사가 있어야 하고, 혹시 모를 응급실 콜을 받을 의사도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문득 너무 조용해서 시각을 확인해 보니 어느덧 새벽 5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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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거 좀 드실래요?”

고개를 돌리자 스테이션 간호사가 음료수 하나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거 최수호 환자 보호자가 사 온 거예요.”

김영란법이 적용되지 않는 이 시대.

최수호 환자 보호자가 이걸 사 왔다고?

“근데 선생님, 이 이야기 혹시 들으셨어요? 최수호 환자, 젊은 청담동 요리사인 걸로 알았는데, 대현물산과 관련이 있다고 하네요. 1인실에 늘 간병인 밖에 없어 몰랐는데··· 왜 특실에 안 갔을까?”

대현물산?

이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윤후 교수님이 그쪽 집안과 아주 친한 것 같던데.

대현물산이라···.

그러나 처음 듣는 회사다.

중견기업인가.

하지만 ‘대현’이라는 글자가 뭔가 남다르다.

대현그룹?

설마.

어쨌든 확실한 것은 회귀 전 테이블 데스 상황이 됐던 최수호 환자. 그는 이번에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회귀 전, 박윤후 교수는 얼마나 난처했을까. 알고 보니 수술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박윤후 교수의 지인이었던 거다.

“선생님. 잠깐만 바람 좀 쐬고 올게요. 혹시 일 있으면 콜 해 주세요.”

“네. 그러세요. 선생님.”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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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늦은 새벽 시간.

병원 본관 앞은 무척 조용하다.

현관 주변에 몇몇 조명이 있긴 하나 여전히 어두웠고.

유일하게 좌측 응급실, emergency medical center 코너만 불빛들이 요란하다.

이 늦은 새벽에 응급실만큼은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편, 이 시각, 택시 정류장엔 택시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그만큼 늦은 시각이라는 거겠지.

다행히 바람이 차지 않고 약간 선선할 뿐.

근데 이렇게 나오니까 갑자기 담배가 당긴다.

사실, 회귀 전, 건강 문제로 담배를 끊었는데.

나름 몸이 젊어지자 담배 생각이 좀 난다.

내가 흉부외과 의사인데도 말이다.

근데 지금 내 수중엔 담배가 없다.

주위를 살폈다.

흡연하는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담배 하나 빌릴 생각.

한편, 현관 우측 쓰레기통 근처.

하얀 의사 가운 차림에 녹색 수술복을 입고 있는 누군가가.

하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담배를 태우고 있다.

누군지 확인하려고 조심스럽게 쳐다보다가.

내 인기척에 그 사람도 고개를 돌렸다.

순간, 나는 흠칫하며 바로 머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잠시 말없이 날 쳐다보던 단발머리의 여자. 그녀는 씩 웃었다.

“인턴 맞지?”

어쩔 수 없이 나는 다가가 다시 머리를 숙였다.

“김정민?”

“네.”

바로 알아보네.

참 오랜만에 보는 조은하 선배.

응급실 레지던트 2년차 조은하 선배.

“어디 돌고 있어?”

“지금 CS(흉부외과)에 있습니다.”

“힘든 데 있네. 다음 턴은?”

“10월 11월까지 CS에 있고, 12월부터 다시 ER(응급실) 들어갑니다.”

“아아, 맞다! 또 오겠네? 이젠 좀 잘할 수 있지? 외과 많이 돌았을 테고.”

슬쩍 날 흘겨보는 그녀.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 있어 첫 턴은 바로 ER(응급실) 인턴이었다.

무척 낯설고 서툴렀던 그때.

문득 돌이켜보니 너무 민망하다.

“담배 피러 왔어?”

“네.”

“담배 없어?”

“네.”

내가 즉시 대답하자 그녀는 담배 한 개와 라이터를 건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우웅! 우우웅!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얼른 주머니에서 삐삐를 꺼내보던 그녀는 하얀 담배 연기를 푸우! 하며 뱉어낸 뒤 얼른 담뱃불을 껐다.

“담에 보자.”

그녀는 후다닥 응급실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참, 이 라이터는?

젠장, 이미 늦었다.

나중에 돌려줘야 하나.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즉시 민망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이 라이터는 절대 돌려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라이터 표면에 인쇄된 요란한 글자들.

[☆☆강남유흥선두주자☆☆]

[☆강남 박 부장☆]

[018-30XX-XXXX]

저 선배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라이터를 주웠을까.

몰라. 담배나 피자.

잠시 후, 나만의 하루를 마감하려는 듯 내 입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담배 연기는 마치 작은 축포처럼 사방으로 훨훨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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