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든 인턴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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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수술방에 가도 될 만큼 완전 무장 상태나 다름없는 흉부외과 서철성 교수.
수술 모자, 수술용 장갑, 수술용 덧신, 그리고 안경에 루페까지 일부러(?) 착용한 상태로 그는 나타났다.
사실상, 눈앞의 서철성 교수는 성국대 흉부외과를 지탱하는 중진 핵심이자 기인이었다.
5일 연속 밤샘 수술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최현호 교수가 갖고 있으나
서철성 교수는 반대로 수술시간 자체가 아주 짧은 것으로 유명한 의사다.
보통, 흉부외과는 특성상 수술시간이 길어져 최장 15시간, 18시간까지 가는 수술들이 나오긴 하는데.
서철성 교수의 수술은 오히려 수술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심폐 바이패스가 적용되는 수술임에도 3시간 혹은 4시간 이내에 그의 수술은 대부분 끝난다.
“보자. 참 딱한 아이네.”
서철성 교수는 어느새 내 옆에 섰다.
인사를 하고서 내가 옆으로 물러섰으나.
이때, 서철성 교수는 내 어깨를 꼭 잡았다.
마치 다른 데 도망가지 못하도록 날 잡고 있는 듯한 모습. 그래서일까. 그의 손아귀 힘이 내 어깨로 바로 전해졌다.
“혹시 브리핑할 수 있나?”
서철성 교수는 먼저 이동욱을 쳐다봤다.
그러나 이동욱은 당황해하며 시선을 내렸다.
“그럼 자넨?”
이번에는 날 쳐다본다.
그러나 나도 마찬가지다.
응급실에 정신없이 달려와 조금 전 이동욱을 도운 것에 불과하니까.
즉, 자세한 환자 상황은 알 수가 없다.
“뭐, 꾸짖으려고 그런 거 아니고. 자네도 알다시피 이 아이는 아직 수술 준비가 안 됐어.”
그 말에 나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흉부 CT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 같았고.
풀랩 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심초음파 결과 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봐. 김 선생!”
한편, 서철성 교수는 고개를 돌려 응급실 레지던트 1년차를 불렀고.
수술복 곳곳에 피가 잔뜩 묻은 김보영 선생이 후다닥 뛰어왔다.
“네! 교수님!”
“자네 지금 많이 바쁠 텐데, 그래도 이 아이 좀 챙겨봐. 외상과 달리 바이탈이 썩 괜찮아. 빨리 검사 끝내고, 보호자가 오면 즉시 수술대에 올려.”
“네! 교수님!”
김보영 선생은 재빨리 아이한테 달라붙었다.
“그리고 자네 두 사람은 할 일이 있으니까 따라와.”
서철성 교수는 손짓하며 앞장섰다.
그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우리는 그저 그를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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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역시 서철성 교수다!
성국대 병원 흉부외과가 근래에 큰 명성을 떨치게 된 건 바로 이런 교수들이 합류하게 되면서부터다.
쟁쟁한 교수들.
하나부터 열까지 확실히 남다른 교수들.
서철성 교수.
한재준 교수.
윤미연 교수.
최현호 교수.
최병근 교수.
이들 다섯 교수는 흉부외과를 빛내는 스타급 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가 바로 눈앞의 서철성 교수가 아닌가.
평소 내가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었고.
한때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의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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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선생, 이 환자 브리핑 좀 해 봐.”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수술실 내 환자대기실이다.
TA(교통사고) 환자들 중에서 생명이 위급한 환자들은 혈액검사, CT 검사, 심전도 검사 등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실려 왔는데.
응급을 다투다 보니 마취과 의사와 함께 수술 여부는 바로바로 여기서 결정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까 그 아이, 응급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다.
전복된 고속버스 내에 있다가 뒤늦게 구출되었다는 의미다.
“교수님, 그럼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추정 사고 시각은 06시 44분. 44세 남성. 체스트(흉부) CT 결과, 우측 3번, 4번, 5번 늑골 골절이 확인됐으며, 체스트 CT와 심초음파 결과, thoracic aorta(흉부 대동맥)에서 rupture(파열)가 발견됐습니다.”
그렇듯 흉부외과(CS) 치프 김재호는 차분하게 말했고 그 와중에 우리를 계속 쳐다봤다.
특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게 그는 좀 의아한 표정이었다.
밤샘한 나한테 오전 11시까지 자고 오라고 지시한 게 바로 그였기 때문.
“···SBP(수축기혈압)는 20까지 떨어졌으나 현재 50. 응급실에서 인투베이션(기관삽관)된 상태이고 pericardiocentesis(심장막천자)로 350cc 삼출한 상탭니다. 기타, 다발적 외상 외에도 대퇴부 골절도 있습니다.”
서철성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날 쳐다봤다.
“거기 인턴!”
“네?”
“아까 흉관 삽관을 능숙하게 하던데 외과 쪽에 관심이 있지?”
잠시 멈칫했다가 나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럼 이 상황에서 프라이머리 클로저(primary closure 단순 봉합)는 가능할까?”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웃고 싶었으나 억지로 참았다.
응급을 다투는 thoracic aorta(흉부 대동맥) rupture(파열) 외상 환자한테 단순 봉합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서철성 교수가 아니면 절대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도 애매하게 대답했다.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능하다?”
순간, 서철성 교수의 두 눈에는 약간 광기 같은 게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확대하지 않고 얼른 수습했다.
“하지만 외상성의 경우 급성 진행이라 수술 중에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위험하다? 어떤 점에서?”
“다량 출혈입니다.”
“그렇지. 출혈이 문제지. 그럼 cardiopulmonary bypass(심폐 바이패스)로 가고. 필요하다면 봉합보다는 절개와 인조도관 문합이 더 낫겠군.”
순간, 나 역시 동의한다는 뜻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씩 웃는 서철성 교수.
그리고 고개를 돌려 김재호를 쳐다봤다.
“김재호 선생, 저 친구 내 수술에 들어온 적 있나?”
김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없을 겁니다.”
“내 수술에 인턴들이 들어온 적은?”
“없습니다.”
“야! 혹시 나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나는 일부러라도 인턴들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데, 왜 내 수술엔 안 집어넣어?”
“그게, 교수님! 솔직히 인턴들 챙길 시간은 없지 않습니까?”
“뭐, 챙길 시간이 없다?”
인상을 팍 쓰던 서철성 교수는 이내 껄껄 웃었다.
“하하, 하하하! 그렇지. 내가 교수라고 해도 누굴 가르치는 걸 못해서.”
그 말에 김재호는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고 있다.
서철성 교수의 어시는 정말 힘들다.
모든 게 너무 빨리 진행된다.
그런 흐름을 쫓아가는 건 무진장 힘들 정도다.
그런 상황에선 함부로 세컨 어시를 투입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서철성 교수의 수술 어시는 무조건 레지던트 3년차 이상이 되어야 했고.
현재 서철성 교수를 전담 마크하는 이가 바로 김재호 자신이었다.
“참, 자네들 이름이 뭔가? 내가 얼굴은 되도록 기억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름까지는···.”
그러면서 날 쳐다봤고.
나는 즉시 대답했다.
“김! 정! 민! 이라고 합니다.”
“그럼 자넨?”
“이동욱입니다.”
서철성 교수는 씩 웃었다.
“근데 두 사람은 알지 모르겠지만, 나는 진작에 여기 와 있었네. 대형 TA 건이 터졌는데 내가 어떻게 안 올 수가 있나.”
그러면서 그는 계속 말했다.
“원래 내가 하려던 걸, 자네가 나서길래 잠깐 지켜봤네. 근데 흉관 삽관은 해 본 적이 있나?”
순간, 이동욱은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직접 해 본 적은 없고···.”
“그런데 직접 하려고 했다? 이유는?”
“···죄송합니다.”
“야! 그거 말고, 자네 본심을 말하라는 거야!”
놀란 이동욱이 쳐다보자 순간 서철성 교수는 씩 웃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의사가 된 이유라니까! 하지만 자기 실력도 모르면서 함부로 나서는 건 만용이야! 만용! 그건 꼭 명심하게!”
“···네.”
그러고는 서철성 교수는 손가락을 날 가리켰다.
“김재호 선생, 최병근 교수가 수술 끝내고 내려오기로 했으니까 이동욱 저 친구랑 그쪽 팀에 같이 들어가! 그리고 이 친구는 내가 데리고 들어갈 테니까.”
“근데 교수님, 최병근 교수님은···.”
“알아. 까탈스러운 거. 그냥 들어가. 이동욱도 같이.”
그렇게 지시를 마친 서철성 교수는 다시금 날 쳐다봤다.
“근데 자네는 혹시 뭐 숨기는 거 없나?”
“네?”
“아까 내가 본 게 맞으면, 메스 잡는 폼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던데?”
즉, 흉관 삽관 때 11번 메스를 쥐고서 절개를 할 때 그걸 자세히 본 모양이다.
젠장, 속된 말로 칼잡이는 칼잡이를 알아보는 법.
이때 달리 할 말이 없어 머리를 긁적이는 제스처를 취하자, 서철성 교수는 내 어깨를 툭! 쳤다.
“아무튼, 내가 키울 만한 가치가 있는 칼잡이인지 아닌지 한번 보자고. 김재호 선생! 이 환자, 당장 수술방에 넣어. 지금부턴 정규 수술 스케쥴 잠시 중단하고, 응급 수술 시작한다! 그리고 자넨 따라오고! ”
그러고는 서철성 교수는 곧장 소독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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