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든 인턴 02
<12>
“교수님!! 또 뵙습니다! 김훈입니다.”
“어? 김 대표? 어쩐 일인가?”
미래비전 위원회 회의를 마친 직후, 박윤후 교수는 3층 회의실 복도에서 젊은 김훈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제랄드 & 피터스 메디 컨설팅] 한국지부 대표 김훈.
미국명 케빈 킴.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대 펠레만 메디컬 스쿨을 졸업한 뒤 [제랄드 & 피터스 메디 컨설팅]에 입사했고, 현재 각종 메디컬 분야 컨설팅을 전담하고 있는 아주 전도유망한 인재였다.
“하하, 좋은 소식이 들려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잘 좀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90도로 머리를 숙이는 김훈 대표.
늘씬한 체격에 동공이 뚜렷하고 아주 잘 생긴 외모다.
박윤후 교수와 함께 움직이던 기획처장 양기문 교수는 이때 호기심을 보였다.
“박 교수님, 이 분은 누구십니까?”
“아, 처장님. 이분은···.”
그로부터 박윤후 교수의 소개가 시작되자 김훈 대표는 또렷한 눈으로 양기문 기획처장을 응시하다가 이내 머리를 깊이 숙였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처장님! [제랄드 & 피터스 메디 컨설팅]의 김훈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우선, 악수한 뒤 명함을 받은 양기문 기획처장은 그 명함을 유심히 쳐다봤다.
메디 컨설팅 한국지부 대표?
그러다가 갑자기 아! 하는 탄성을 지르며 다시 김훈 대표를 쳐다봤다.
“이곳 한국 대표셨군요! 뉴욕 사무소가 본사라고 하던데, 이곳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양기문입니다. 성국대 기획처장을 맡고 있습니다.”
“네! 처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금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는 김훈 대표.
“근데 여기 한국 지부가 있다는 건 금시초문입니다.”
“네, 아마 그러실 겁니다. 저희 지부는 작년 연말에 설립되었습니다.”
“아. 그럼 이것도··· IMF 여파겠군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김훈 대표.
그의 간단한 긍정에 양기문 기획처장은 씩 웃으며 박윤후 교수를 쳐다봤다.
“박 교수님은 확실히 발이 넓으시군요. 벌써 이런 준비까지 다 하시고. 이런 줄 알았다면 김 대표님을 외부 자문 위원으로 미리 모실 걸 그랬습니다.”
그 말에 박윤후 교수는 김훈 대표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근데 처장님, 이 친구가 워낙 바빠서, 스케쥴 따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친구는 단순히 컨설팅 회사 대표만이 아닙니다. 다국적 제약기업 [메디존슨]의 아시아지역 연구 협력 및 기획 부문 사외 이사를 맡고 있고. NGO 단체인 [난민국제의료지원사업단]에서 아시아권역 실행 이사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양기문 기획처장은 순간 두 눈을 반짝였다.
30대 초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젊은 김훈 대표. 그의 이력이 생각보다 상당했다.
그렇다면 이런 외부 인사를 잘 활용한다면.
성국대 병원의 미래 비전도 좀 더 다양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자, 자. 이제 어떻게 할까요? 혹시 제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시겠습니까? 아니면···?”
뒷말을 생략하고서 박윤후 교수는 양기문 기획처장을 쳐다봤고.
양기문 처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오늘 오후 2시부터 스케쥴이 있습니다만. 뭐, 그 전까지 본부에 들어가면 됩니다. 시간은 좀 있으니까, 그럼 잠깐 담소를 나누도록 하지요.”
양기문 기획처장은 흔쾌히 응했다.
[제랄드 & 피터스 메디 컨설팅] 김훈 대표의 이력이 흥미롭기도 했고.
박윤후 교수가 어떤 혜안이 있는지 좀 더 알고 싶었다.
사실, 자신이 만난 의대 교수들은 대다수가 자존심이 세고 외골수적인 경향이 많았다.
의견을 낼 때도 다소 고집이 많고 일방적인 경우가 더 많았는데.
그러나 박윤후 교수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었다.
“자자, 그럼 제 방으로 가시지요.”
박윤후 교수는 웃으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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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편 그 시각.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무영등!
그 아래, 수술방의 풍경은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빠르게 준비가 되었고.
수술 부위에 대한 소독 등도 어느새 끝났다.
특히, 김재호가 수술 준비를 도운 터라 모든 과정이 더 빨리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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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
수술대 위를 두루 살펴보던 나는 즉시 고개를 돌렸다.
김재호 선배였다.
“난··· 좀 걱정된다. 근데, 흉관 삽관은 니가 한 게 진짜 맞아?”
“네, 그게··· 운이 좀 좋았습니다.”
“야! 운이 좋은 게 문제가 아니잖아! 서철성 교수님이 보고 있을 때 그걸 했다는 거, 그게 문제지. 서철성 교수님이 인정했다면 넌 충분히 잘하는 거다. 근데 대체 누가 너한테 그 술기를 가르쳐줬어?”
아이씨, 이런 질문 자체가 문제다.
“그냥 눈동냥으로···.”
“그래, 보긴 봤겠지. 근데 내가 봐도 흉관 삽관 성공한 건 진짜 운이 좋은 거다. 그거 잘못 들어가면 부작용 아주 심각한 거 알아?”
“···네, 알고는 있습니다.”
“완벽한 상태가 아니고선 술기는 함부로 펼치는 게 아냐. 근데 수술은 또 달라. 너 골치 앞으로 꽤나 아플 텐데.”
김재호 선배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암튼 난 말했다! 조심하라고.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하지 말고 물러서! 아까 들었지? 만용 부리다간 큰일 난다고! 특히, 저런 분 앞에선 실수하면 더 아작 나!”
“네, 조심하겠습니다.”
“아무튼, 안 될 것 같으면 절대 덤비지 마.”
걱정하던 김재호 선배는 어깨를 툭 치고는 바로 수술방에서 나갔다.
사실, 저게 다 노파심이다. 나이 상관없이 생기게 되는 그런 걱정들.
그런데 실상 진짜 문제는 바로 나였다.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철성 교수의 눈에 띄었다는 건 예상치 못한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 큰 손해가 될 수도 있다.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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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잠시 뒤.
소독실에 잠시 머물며.
눈을 감고 대기하던 서철성 교수.
그가 드디어 수술방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수술 집도의의 인사 절차는 생략되었고.
응급 수술은 바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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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메스!”
스크럽 널스는 즉시 신속하게 10번 메스를 건넸고.
아주 신속한 흉골 절개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수술이 시작되자 서철성 교수는 입을 꾹 닫았는데.
완벽하게 수술에 몰입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든 행위는 지극히 절제된 상태.
최소한의 칼질로 각 단계 과정이 바로바로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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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키토 클랩 하나 더.”
“네.”
혈관 여기저기를 모스키토 클랩으로 집었고.
다시 메스를 쥐고는 매끈한 절개가 이어졌다.
조직 박리 범위는 점점 더 넓어졌고.
비례적으로 시야 범위는 점점 더 확대되었다.
나는 수시로 거즈로 피를 닦았고.
보비로 지혈을 진행했다.
사실, 1차 목표는 심폐 바이패스 작업.
그러나 어느 순간 한쪽 대동맥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서철성 교수는 그 수술방식을 조금씩 달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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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자네가 해. 난 이쪽 수처(suture)를 맡을 테니까.”
나한테 수술용 바늘을 건넨 뒤 바로 수처(suture)를 시작하는 서철성 교수.
나는 하는 수 없이 수처(suture)를 진행했다.
그러나 천천히, 아주 어설픈 손동작으로 수처(suture)를 마쳤다.
잠시 후, 하대정맥과 상대정맥 쪽 각 부위를 퍼스 스트링(purse string)으로 수처(suture)를 마친 서철성 교수는 고개를 돌려 독수리 같은 눈으로 날 노려봤다.
그러나 서철성 교수는 이내 씩 웃었고.
다음 작업을 진행했다.
그때부터 그의 손놀림은 다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흉부 대동맥을 만지기 시작했는데.
다소 위태로울 정도로 파열 부위를 직접 확인했고.
또한, 주변 혈관 상태를 샅샅이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그러고는 심폐 바이패스가 아닌, 갑자기 직접적인 프라이머리 클로저(primary closure 단순 봉합)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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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다 봤으니까 전 과정 다 기억나지? 박리 과정이 이렇게 복잡해도 이렇게 시야가 크게 잡혀.”
그러고는 서철성 교수는 혈관 클램프를 이용해 주요 혈류를 다시 막고 혈류를 다른 쪽으로 환류시켰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뭔가 비릿한 피 냄새가 확! 풍기는 게 아닌가.
순간, 서철성 교수는 깜짝 놀라며 재빨리 혈관 클램프를 뺐고.
두 손으로 뭔가를 황급히 잡았다.
그 순간, 나도 도우려고 재빨리 손을 뻗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잡지 마!! 수처(suture) 니가 해! 빨리! 빨리해! 10초! 10초! 빨리!!!”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수술 바늘을 집었고, 손이 환상처럼 움직였는데.
“5, 4, 3··· 됐다! 이 자식! 정말 잘 하네! 그거 놓쳤다면 수술 시간 한 12시간 늘어나는 건데, 잘 했다! 잘 했어!”
그러고는 잠시 뒤.
“봐! 봐!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인마, 넌 타고 났어!”
그렇게 외치며 서철성 교수는 손을 놨고.
곧이어 척척 클램프들을 제거하자 혈류가 제자리를 되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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