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든 인턴 03
<13>
서철성 교수는 최소 5시간 이상 걸릴 수술을 고작 2시간 30분 만에 끝내 버렸다.
원래 이 수술의 계획은 cardiopulmonary bypass(심폐 바이패스)를 한 뒤.
aortic isthmus(대동맥 협부)에 있는 파열 부위 혈관을 절개하고 인조 도관을 넣어 문합하는 거다.
그러나 그는 모든 걸 스킵해 버렸다.
“환자 나갑니다!”
수술대로부터 옮겨진 환자는 잠시 후 베드를 끄는 두 명의 간호사들에 의해 수술방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수술이 끝나자 갑자기 공허가 찾아들었다.
너무 빨리 수술이 끝났기 때문이다.
#
“어이 인턴, 어떻게 할까? 좀 쉬고 할까? 아니면 바로 할까?”
어깨를 으쓱하며 근육의 긴장을 풀던 서철성 교수가 그렇게 물었다.
“근데 우리가 쉬는 시간 만큼 TA 환자들은 더 위험해질 텐데···.”
에이씨, 묻지나 말지.
당연한 걸 묻고 있어.
“교수님, 휴식 없이 바로 진행하죠.”
“괜찮겠나?”
“전 괜찮습니다. 교수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서철성 교수는 씩 웃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고.”
#
잠시 뒤, 새로운 TA(교통사고) 환자가 수술방으로 들어왔다.
그 전에 우리는 빠르게 주변을 정리했다.
피가 잔뜩 묻은 거즈들을 정리했고.
주변 소독도 빠르게 마쳤다.
서철성 교수와 나도 다시 소독했고.
그사이 환자가 수술대 위에 올려지자 바로 다가갔다.
지금 상황에서는 교수와 인턴의 역할이 분리될 수가 없다.
환자의 상태를 살핀 뒤.
수술 부위에 대한 마킹과 수술 부위 주변 소독이 즉시 이어졌는데.
소독약 냄새가 진하게 코끝을 맴돌았다.
한편, 서철성 교수는 전산망이 연결된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온 뒤 이번 수술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본래 수술 환자에 대한 브리핑은 레지던트들의 몫이다.
그러나 분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인 만큼 서철성 교수는 서열을 따지지 않았다.
#
“만 37세 여성이고 수송 도중 어레스트(심정지)가 왔어. 응급실 도착 직후 CPR(심폐소생술)을 다시 했고. 수술 보류됐다가 간신히 여기 들어왔어. 이 정도 상황이면 생존 확률··· 대략 10% 정도. 뭐, 10%라면 충분히 할 만하지. 어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러면서 나한테 질문을 하는 서철성 교수.
근데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생존 가능성 10%?
현저하게 낮다.
테이블 데스 가능성도 아주 심각하고.
하지만 나는 단순한 인턴이 아니지 않은가.
이미 과거에 서철성 교수를 은사로서 모셨다.
그러다 보니 나는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동의합니다! 1%라도 생존 가능성이 있으면 무조건 수술해야죠!”
그러자 서철성 교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날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고 있다.
근데 내가 너무 대답을 잘 했나.
하지만 그건 내가 평소에 소신으로서 삼았던 덕목이라 절대 거짓으로 말할 수가 없다.
“하하, 하하하! 자네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 마음에 쏙 들어! 야! 정 간호사! 저 친구 어떻게 생각해?”
서철성 교수는 교대되어 수술방으로 들어온 새로운 스크럽 널스 정현정 간호사한테 갑자기 의견을 물었다.
30대 초반 나이의 정현정 간호사.
그녀는 서철성 교수와 무척 친한 모습이었는데.
그녀는 마스크 위로 두 눈을 반짝이며 날 쳐다봤다.
그리고 곧 대답했다.
“저도 마음에 듭니다. 교수님.”
“그렇지? 정 간호사! 확실히 저 자식은 달라! 근데 저런 자식하곤 절대 결혼하지 마! 가정이고 뭐고 저런 자식은······. 어어, 이런 참나,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흠. 흠. 환자를 앞에 두고 이러면 안 되지. 자! 자! 정신 차리고.”
그러고는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이, 인턴! 시작하자! 그리고 마취과 선생, 계속 잘 부탁합니다!”
앞선 수술에 이어 다시 이번 수술에도 환자 바이탈을 책임지게 된 마취통증과 레지던트 2년차 박신희 선생.
그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철성 교수를 한번 쳐다본 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놓치지 않고 모니터링 하겠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오케이!”
순간, 서철성 교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자! 이제 다들 힘내고 다시 시작합시다!”
그리고 드디어 두 번째 수술은 시작되었다.
#
현재, 수술대 위에 오른 여성 환자의 이름은 송연주.
나이는 만 37세.
그런데 지금 내 눈에 비치고 있는 이 여성 환자는 그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
서철성 교수가 생존 확률을 10% 내외로 잡은 것은 결국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수술 자체가 잠시 보류되었던 것도 당연한 이유가 있었다.
광역 범위에 해당되는 전신 외상.
그리고 흉부 외상 환자들의 특징이 이 환자한테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즉, 갈비뼈가 산발적으로 부러지거나 골절된 상태.
또한, 흉부 엑스레이와 흉부 CT 결과, 혈흉과 같은 흉강 내 출혈 현상이 발견되었다.
근골격계 쪽에선 다발적 골절 및 손상이 관찰되었다.
그 외에도 복부 손상, 하지 골절 등이 있었고.
특히, 다량 출혈로 인해 헤모글로빈 수치는 감소하고 흉부 쪽 문제로 인해 산소포화도는 급격히 저하되어 전혈(whole blood) 수혈 등이 이미 시행된 상태다.
그런데 이 여성의 가장 큰 문제는 외상성 상행 대동맥 파열, 우심방·우심실 파열, 폐·기관지 손상 등이다.
“우선, 흉부부터 열고 대동맥 파열 부위에 대한 처치, 기관지 부분 절제, 폐엽 우중엽 절제. 이 순으로 진행할 거니까 놓치지 말고 잘 따라와. 그리고 우심방·우심실 파열에 대한 봉합은 윤미연 교수가 맡기로 했네.”
윤미연 교수는 현재 다른 수술 스케쥴이 있어, 심장 부위를 제외한 흉부 수술을 먼저 진행하는 거다.
이후 이 수술이 끝나게 되면 윤미연 교수가 집도하는 심장 수술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서철성 교수는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피부 위에 날카로운 메스로 혈선을 쭉 만들고 있었다.
환자의 흉부를 열기 위한 절개 과정이다.
#
“···참! 근데 그 아이 이름이··· 박은우라고 하던데.”
신속하게 이어지는 개흉 과정.
그 과정 중에 sternum spreader를 걸어 흉골을 옆으로 쫙 벌려주는 순간, 서철성 교수는 갑자기 그 말을 꺼냈다.
“아! 아까··· 그 하관이 뭉개진, 그 딱한 아이 말이야.”
그 순간, 나는 저절로 멈칫했고.
서철성 교수를 쳐다봤다.
흉관 삽관을 해 줬던 아이. 그 아이를 말하는 거다.
“그게 코멘트에 적혀 있네. 저 모니터에 말야.”
그 순간, 나는 수술방 한쪽 구석에 세팅된 모니터를 한번 쳐다본 뒤 정색하며 되물었다.
“혹시 그 아이, 이 환자랑 관련이 있다는 겁니까?”
사실 논리적으로 그렇지 않나.
이 환자의 코멘트에 그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다면 말이다.
“그래, 관련이 있지. 관련이 있어.”
“······?”
“이분이 바로 그 애··· 그 애 엄마야.”
그 순간,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혹시나 그럴 것 같더니 진짜 그렇다니!
표정은 즉시 굳어졌다.
그리고 미간을 심하게 찌푸리다가.
아이 시펄, 왜 이렇게 기구하냐.
나도 모르게 심한 욕설까지 속에서 튀어나왔다.
아이는 얼굴이 엉망이 되었다.
엄마는 거의 시체가 될만한 모습으로 수술대 위에 올라왔다.
이게, 왜 이렇게 운이 나쁘단 말인가.
“근데 코멘트 보니까, 먼저 구조되고. 아이는 뒤쪽에 끼어 있다가 한참 뒤에 구조됐어. 이 구조 순서보다는··· 이분이 사고 때 너무 튕겨 나간 게 문제야.”
그러니까 사고 충격으로 아이 엄마가 튕겨 나갔다는 거다.
“으음, 브레인 쪽은 어떻습니까?”
“다행히 뇌는 큰 문제가 없어. 출혈이 조금 있긴 하나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고.”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뇌까지 문제가 있었다면 수술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미치겠네.
열 손가락을 깨물면 어디 하나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환자 중에도 뭔가 애착이 가는 환자가 꼭 나오는 법이다.
폐암 수술을 앞둔 김성미 환자도 그러했고.
갑자기 이 환자한테도 나는 강한 애착과 유대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래, 구해야겠다.
무조건!
무조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