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쥐면 쉽게 포기가 안 돼 02
<14>
병원 지하 1층 식당가.
꼬르륵. 꼬르륵.
아랫배에서 계속 소란스러운 괴성이 들려온다.
식판을 들고서 배식을 받은 뒤 바로 자리에 앉았다.
“먹자.”
치프 김재호 선배가 말하는 순간, 재빨리 숟가락부터 잡았다.
그리고 김치찌개 국물부터.
후으읍!
카아~
와, 진짜 미치겠네. 왜 이렇게 맛있어.
내가 잠시 음미하는 사이, 이동욱은 분홍빛 소시지 계란 부침을 한가득 입에 넣고 있었다. 아까 배식하는 아줌마한테서 소시지 부침을 잔뜩 받았던 이동욱. 그 모습에 나도 소시지 부침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우와! 이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맛이다.
약간 짭조름하면서도 이 부드러운 식감이란.
곧이어 밥을 한가득 숟가락으로 뜬 뒤 곧장 입에 넣었다.
도대체 왜 다 하나같이 맛있을까.
잠시 후, 바삭한 김을 이리저리 조각내서 김치찌개 국물 위에 둥둥 띄웠고.
밥을 조금 말은 뒤, 후루룩 소리 내며 먹었다.
우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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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이 완전히 끝난 것은 밤 8시 무렵.
그 수술이 끝나자마자 옆방 수술방에서도 수술이 끝났다.
김재호 선배와 이동욱은 시체 같은 모습이 된 채 걸어 나왔고.
이때, 박은우가 건너편 수술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문득 보게 됐다.
얼굴 하관 쪽을 붕대로 감고 있는 아이의 모습. 그 모습에 가슴이 절로 먹먹했으나.
서둘러 뒷정리를 마친 뒤 이곳 교직원 식당에 간신히 도착했다.
원래 밤 8시까지 운영되는 곳인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몰라도 10분이나 늦게 도착했으나 바로바로 배식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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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그럼 김성미 환자 수술은 어떻게 되죠?”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시자 나는 즉시 물어봤다.
그 수술의 퍼스트 어시를 맡을 김재호 선배와 세컨 어시가 될 나는 이번 TA 수술 때문에 무척 바빴고.
그 때문에 폐암 수술은 잠시 연기가 된 상태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스테이션에서 콜이 들어왔어. 밤 10시부터 시작한다던데.”
“밤 10시? 그렇게나 늦게요?”
“할 수 없잖아. 미루면 내일 스케쥴이 다 꼬이는 건데. 밤샘하는 수밖에. 근데 너는 괜찮냐?”
날 유심히 쳐다보는 김재호 선배.
“야, 너 실핏줄 터졌다!”
“네?”
“눈!”
흠칫하며 내가 눈을 만지려고 하자, 김재호 선배는 고함을 질렀다.
“야, 절대 만지지 마! 그러다가 더 터져!”
이동욱도 유심히 날 쳐다봤다.
“왼쪽 눈!”
왼쪽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고 한다.
“인마! 김정민 선생. 빨리 가서 자는 게 어때? 홍진훈 교수님 수술은 동욱이랑 같이 들어가도 되니까.”
그러나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괜찮습니다. 선배님.”
“괜찮다고?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밥 먹고 좀 쉬면 괜찮을 겁니다. 무조건 들어갈 거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듯 강하게 나서자 김재호 선배는 할 수 없다는 듯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좀 더 빨리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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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선배님, 저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어? 벌써 다 먹었어?”
“네! 좀 빨리 먹었습니다. 조금 쉬고, 대략 9시 10분 정도에 수술 대기실로 환자를 옮기겠습니다.”
“야! 잠깐만! 그게 그러지 말고···. 그냥 10분 전에 수술방으로 들어와. 내가 마취과 의사랑 환자 마취도 할 테니까 너는 좀 쉬고 와!”
“아닙니다! 선배님!”
“인마! 그냥 그렇게 하라고!! 너 양쪽 눈, 다 터지면 그게 사람 눈이냐? 어서 가서 쉬어! 숙소로 가든지 아니면 의국에 가서 자든지. 빨리 가!”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식판을 반납대에 넣은 뒤.
후다닥 뛰어 지하 1층 엘리베이터 탑승 복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8층 흉부외과 병동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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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기 혹시?”
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뒤.
스테이션에 잠시 들러 복귀 사실을 알렸고.
피로에 쩔어 어깨가 축 처진 모습으로, 그리고 수술복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의국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나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이때, 아무 생각 없이 상대를 쳐다봤는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눈이 약간 커졌다.
화사한 코트에 숏 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자.
윤기 가득한 긴 머리카락이 어깨 좌우로 흩날리고 있었다.
찰나, 그 새카만 눈동자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안녕하세요?”
하며 밝게 나한테 인사하는 여자.
어? 누구지?
잠시 멍했다가 순간 알아차렸다.
“아! 새벽에···.”
화장이 조금 달라진 탓에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바로 그 여자였다.
간밤에 박윤후 교수와 함께 만났던 최수호 환자의 보호자 중의 한 명.
“최수호 환자···.”
“네. 맞아요.”
“근데 어쩐 일로··· 아!! RICU(호흡기계 중환자실)에 가시는 길인가 봐요?”
“네. 그 전에 이것 좀 사서···.”
그러면서 슬쩍 자신의 양손을 들어 보이는 그녀.
양손에는 파리바게뜨 빵들이 가득 담긴 비닐 백들이 각기 들려 있었다.
“선생님, 혹시 식사하셨어요?”
“네. 식사했습니다만.”
“그럼 나중에 이것 좀 드세요. 어떤 걸 좋아하시는지 몰라 이것저것 다 샀는데.”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야간 근무하시죠?”
“네. 그렇죠.”
“더 맛있은 걸 사와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뇨.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인사를 한 뒤 곧장 의국 쪽으로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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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착한 의국.
그런데 바로 문을 열고 들어서던 나는 흠칫하며 멈춰섰다.
그곳에 서철성 교수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고.
홍진훈 교수와 뭔가 대화 중이었다.
나는 즉시 다가가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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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기 왔네. 교수님! 바로 저 친굽니다.”
한편, 서철성 교수는 갑자기 손으로 날 가리켰고.
홍진훈 교수는 순간 다소 날카로워진 시선으로 날 쳐다봤다.
“근데 서 교수! 정말 이 친구가 그런 실력을 갖췄다, 그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교수님. 15번 나이프를 그렇게 잘 다루는 친구는 저는 처음 봤습니다. 거기다가 수처(suture) 실력, 흉관 삽관 술기, 순간 대처 능력 등도 아주 수준급입니다. 아까 이 친구가 아니었다면 제가 큰일날 뻔했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하하! 제가 그럴 뻔했다니까요.”
환하게 웃던 서철성 교수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내 어깨를 잡았다.
“야, 인턴! 왜 그렇게 놀라? 집도의 허락 없이 메스를 잡을 땐 이런 것도 생각해야지. 안 그래?”
“아아, 근데 교수님, 그건···.”
“야! 나 때는 말이야! 너같이, 집도의 허락도 없이 메스 잡는 놈은 그냥 이거였어. 이거!”
손가락으로 쓱! 목을 베는 듯한 시늉을 하는 서철성 교수.
서철성 교수의 두 눈은 지금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그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쫄기는! 야! 그럴 필요 없어. 김 선생은 잘 모르겠지만, 여기 홍진훈 교수님은 인품이 대단하신 분이야.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이시고. 우리 흉부외과 일을 내 마음대로 묵과할 수는 없고 그래서 말씀드렸어. 우리가 자넬 꾸짖으려고 그러는 게 아냐. 참! 좀 있다가 홍진훈 교수님 수술에도 들어간다며?”
내 어깨를 탁! 탁! 치며 웃는 서철성 교수.
그러고 보니, 아까 수술 중에 너무 위급해서 나는 메스를 잡았고.
파열된 혈관들을 빠르게 봉합했다.
그런데 이후 서철성 교수님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수처 능력이나 흉관 삽관 술기보다는 내가 메스를 쓰는 모습 앞에서 서철성 교수님은 깜짝 놀랐나 보다.
하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다.
더 늦었다간 정말 그 환자가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너무 상태가 안 좋은 환자였다.
더군다나 그 가엾은 아이, 박은우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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