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보상 03
<16>
“모두 수고했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간호사들과 인사를 나눴다.
수술은 아주 깔끔하게 끝났다.
퍼스트 어시 김재호는 홍진훈 교수가 떠난 뒤 마무리 봉합 일을 잘 끝냈고.
그 때문에 다들 긴장이 풀린 모습으로 뒷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사이 환자는 회복실로 옮겨졌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소식이 다시 전해져왔다.
그렇게 모든 수술이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새벽 4시 무렵이었다.
그렇게 미션은 끝났고.
수술 역시 잘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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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피곤하지?”
“아닙니다.”
“아니긴? 야! 너 이제 숙소 가서 쉬어. 대체 며칠째 밤샘이냐? 지금 4시 정도 됐으니까 넌 9시까지 출근해.”
“그렇게 해도 됩니까? 교수님 회진도 있는데?”
놀라며 내가 묻자 김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토요일이잖아. 주중보다는 나을 테니까 좀 쉬어.”
“그럼 회복실의 김성미 환자는?”
“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가! 가라고! 가!”
할 수 없이 나는 의국에서 나왔고.
스테이션을 거쳐 본관 1층으로 내려갔다.
문득 손목시계를 다시 보니, 현재 시각은 어느덧 새벽 4시 1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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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국에 앉아 수술일지를 정리하던 김재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참 이상하네. 아까 홍 교수님께서 왜 그러셨지?’
자신이 못 본 것도 이상하지만.
왜 그런 실수를 홍진훈 교수님이 하셨을까.
바로 흉부 아래쪽 절개 흔적.
흉부를 여는, 즉 개흉 집도를 한 이는 바로 홍진훈 교수님이다.
그런데 절개 핀트가 조금 어긋났다.
흉부 아래쪽, 다시 말해서 GS(일반외과)의 영역으로까지 넘어간 거다.
부분 개복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도대체 홍진훈 교수님은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다만,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여 자신이 마무리 봉합을 하긴 했다.
‘뭐, 큰 문제는 없겠지? 근데 오늘 수술은 또 왜 이렇게 길어졌지?’
또 다른 의문.
느낌상 2시간 혹은 3시간 남짓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실제 수술 시간은 그걸 훌쩍 넘어서 버렸다.
너무 몰두했나.
그래서 수술 전체를 다시 한번 리마인드해 봤으나.
문제될 만한 것들은 전혀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다.
자신이 너무 과민한 게 아닐까.
그렇게 잠시 생각하는 김재호.
이러니 수술 테잎 녹화 같은 게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선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간혹 수술 집도의가 행하는 온갖 욕설들, 간혹 발생하는 수술 중 폭행 사고, 또한 거의 다 벗은 상태인 수술 환자의 적나라한 모습 등등, 이런 걸 우리 병원 측에서 남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김재호는 수술일지에 몇 가지 주요 코멘트를 집어넣은 뒤 바로 일어섰다.
나머지 정리는 인턴 김정민이 내일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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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에서 쭉 내려온 엘리베이터는 잠시 후 1층에서 멈춰섰다.
띵!
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거기서 내렸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두컴컴한 본관 1층.
역시나 이 시각, 불은 거의 다 꺼져 있다.
우선,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를 뽑은 뒤 나는 그걸 들고서 밖으로 나갔다.
이때, 휘이잉!
거침없이 날아드는 찬 바람.
찬 바람이 수술복 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들며 새벽 가을의 매서운 한기를 그대로 알려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가.
이때, 근처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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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안녕하세요? 선배님!”
본관 1층 바깥 우측, 쓰레기통 근처.
현재 이 시각, 이곳엔 여러 사람들이 각자 띄엄띄엄 서서 각자 흡연을 하고 있는 중이다.
환자 보호자도 있고.
수술복 차림의 의사도 있다.
그리고 응급실 레지던트 2년차 조은하 선배도 있었다.
단발머리의 그녀.
그녀는 안경을 낀 모습으로.
의사 가운 주머니에 한 손을 넣었고, 다른 한 손으로 담배를 피고 있는 중이다.
“좀 한가한가 보네? 일 끝났어?”
“네. 끝났습니다. 숙소로 가서 자려고요.”
“어, 잘됐네. 혹시 담배 필래?”
슬쩍 담배를 꺼내 보이며 의향을 묻는 그녀.
“네!”
나는 얼른 다가가 한 개비를 받았다.
“라이터는?”
순간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뭔가가 주머니 안에서 잡힌다.
예전에 그녀가 빌려준 그 이상한 라이터.
순간, 그걸 돌려줄까 말까 고민했는데···.
때마침 그녀는 평범한 라이터를 꺼냈다.
딱! 소리를 내며 라이터에 불을 붙인 뒤 그녀는 그걸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즉시 몸을 숙였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쭉 빨았다가 하얀 연기를 뿜어낸 뒤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근데 너, 아까 응급실로 내려왔지?”
“네. TA 환자들 때문에.”
“그러면 그 ‘박은우’라고 하던가. 혹시 어떻게 됐는지 알아?”
그러면서 가만히 날 쳐다보는 조은하 선배.
“선배님도 아시는 군요?”
“당연히 알지. 너무 딱해서.”
역시 응급실 의사들도 인정 많은 사람들이다.
“좀 전에 스테이션에서 들었는데, 수술은 잘 됐답니다.”
“어, 그래?”
순간, 표정이 밝아지는 그녀.
“그럼, 걔 엄마는?”
그것도 알고 있구나.
“그 수술, 저도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두 눈이 약간 커졌다.
“어떻게 됐어? 가망이 없던데. 어떻게 됐어?”
“다행히 수술은 뭐 잘 끝났습니다. 중환자실 쪽에서도 별다른 코멘트가 아직 없고요.”
“오! 진짜? 정말 그렇게 됐어?”
이번에는 많이 놀라는 모습.
표정은 더 환하게 밝아졌다.
“서철성 교수님이 집도했다고 했지?”
“네.”
“확실히 스타 교수는 다른가 보네. 암튼 알았어.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녀는 날 빤히 쳐다봤다.
“혹시 거기 윤세진이라고 있지?”
윤세진?
“네. 그런데요?”
“너, 윤세진 그 새끼! 조심해!”
저게 무슨 소리지.
내가 의아해하자 그녀는 설명했다.
“자정쯤에 담배 피우러 나왔다가 우연히 듣게 됐어. 일반외과 동기랑 뒷담화를 하고 있던대. 자기네 인턴이 버릇이 없다고 궁시렁 궁시렁. 근데 혹시 그게 너야?”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아무튼, 조심하는 게 좋겠어. 한 연차 위가 제일 무서워.”
“네··· 귀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씩 웃고는 그녀는 불씨를 제거한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나 먼저 간다.”
그러고는 그녀는 곧장 응급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17>
2001년 10월 13일 토요일 아침.
아침 7시 30분이 되자 교수님들 회진이 시작되었다.
홍진훈 교수님은 다른 업무가 있어 오늘 회진이 없었고.
토요일이다 보니 몇몇 교수님들만 회진을 돌았다.
한편, 나는 김재호 선배가 허락한 대로 충분히 잠을 잔 뒤 9시 무렵 의국에 도착했다.
이후 스테이션으로 가서 입원실 환자 약물 처방을 접수시켰고.
입원실 환자 차팅 작업 등을 빠르게 진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오전 10시 무렵, 갑자기 박윤후 교수님으로부터 면담 호출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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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교수님! 김정민입니다.”
사무실 문밖에서 노크한 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자네 왔나?”
즉시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서는 박윤후 교수.
“어서 앉게.”
한편, 박윤후 교수는 후덕한 웃음을 띠며 한쪽 소파 자리를 권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반대편 소파에 앉았고.
잠시 후, 면담 호출 이유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내가 저번에 포상 이야기를 했었지? 그거 기억나나?”
“아, 아닙니다. 교수님. 굳이 포상까지는···.”
“그게 아닐세. 잘 들어보게. 자네의 뛰어난 직관력 때문에 최수호 환자가 살았어.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큰 고생을 할 뻔했어. 최수호 환자는 내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지인이라서 더 신경이 쓰였는데 자네 덕분에 내가 체면치레도 한 것도 있네.”
아, 결국 그거였나.
그때 박윤후 교수님이 포상이란 걸 언급했던 게 다른 이유도 섞여 있었던 거다.
“혹시 나한테 바라는 거 있으면 뭐든 말해 보게. 내가 최대한 노력할 테니까. 혹시라도 자네가 원한다면 우리 병원 [우수인턴] 지원 사업에 자넬 추천해 줄 수도 있네. 나중에 그런 우수인턴으로 선발이 되면 레지던트 과정 중에 2년간 생활비 지원조로 월 100만 원 정도를 더 받을 수 있네. 어떤가?”
월 100만 원? 그것도 2년간?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한 뒤 다른 걸 부탁했다.
“교수님, 저는 흉부외과 인턴으로 있는 동안, 좀 더 수술 참여를 많이 해 보고 싶습니다.”
“뭐? 수술 참여?”
뜻밖의 말이라고 생각한 듯 박윤후 교수는 잠시 날 빤히 쳐다봤다.
그러나 내 눈빛이 강해 그걸 진심이라고 생각한 듯 약간 놀라는 표정이었다.
“네! 좀 더 수술 경험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근데 수술은 너무 힘들지 않나? 다들 최대한 수술을 빠지고 싶어 하는데?”
“아닙니다. 저는 좀 더 많은 술기들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 정말 그렇단 말이지? 하하, 하하하.”
갑자기 환하게 웃는 박윤후 교수.
“알았네. 혹시 내 수술에 계속 들어올 생각이 있다면 내가 김재호 선생한테 이야기해서 조정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하지만 이런 건 포상이 아니지. 참! 김 선생! 오늘 다른 특별한 일이 없지?”
“네. 오늘은 병동 관리 외에는···.”
“그럼 좀 있다가 점심때 나랑 같이 나가지. 좋은 횟집이 있는데 거기서 식사라도 같이하는 게 어떤가? 김재호 선생한테 말해둘 테니까 그럼 12시에 1층으로 내려오게. 내가 거기서 픽업해줄 테니까.”
“교수님, 근데 제가 껴도 되는 자리입니까?”
“당연히 괜찮은 자리네. 실은, 대현물산 최상호 사장님 가족들이랑 점심을 먹기로 했네. 자네도 같이 가자고. 최수호 환자 수술에 참여한 건데 당연히 가야지.”
“그럼 혹시··· 윤세진 선배님은?”
“윤세진?”
순간, 갑자기 인상을 팍 쓰는 박윤후 교수.
박윤후 교수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친구는 안 돼.”
“그래도···.”
“혹시 윤 선생이 자네 선배라서 신경이 쓰이나?”
“네. 조금···.”
“하하, 하하하! 그럴 필요 없네. 우리끼리 조용히 다녀오면 될 거네. 하하, 하하하!”
그렇듯 무척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좀 더 진행됐고.
잠시 후, 나는 그곳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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