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낫 02
<20>
[죽음의 수렁(클래스 C), 권철수 환자의 사망 이유를 밝히세요!]
[사신의 낫 B등급]
[예고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죽음을 회피하는 순간 새로운 죽음의 저주가 주어집니다]
[10m 거리 이내, 10시간 이내 사망자 인지!]
“으음. 으음. 음. 흐음.”
흉부외과 의국.
내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서 계속 생각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신음같은 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10시간 이내 사망?
당시 그 남자를 만난 시간대가 대략 오후 4시 25분에서 4시 30분이었다.
생존 시간을 최대 10시간으로 치면, 새벽 2시 25분 혹은 2시 30분.
아까 그 남자는 새벽 2시 30분 전에 사망하게 된다는 거다.
근데 왜 이렇게 연락이 안 오지?
전화기만 계속 쳐다봤다.
응급실로 갔으니 분명히 콜이 올 텐데.
흉부 쪽 통증을 이야기했으니 당연히 흉부외과로 트랜스퍼가 될 거다.
그런데 여전히 응급실로부터 연락이 없다. 거기서 검사 시간이 길어지고 있나.
현재 시각, 저녁 7시 20분.
어느덧 거의 3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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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 뭐 하고 있어? 야, 밥 먹으러 가자.”
이동욱이 나타났다.
토요일 수술 하나를 마치고 막 나온 녀석. 피로감 때문에 두 눈에 힘이 풀린 녀석. 녀석도 눈 밑에 흑색 물감, 즉 다크서클이 번지고 있다. 가까이 오자 땀 냄새도 났다.
“수술은 잘 끝났어?”
“어. 나름 잘 된 거 같아.”
“수고했다.”
“내가 뭐 한 게 있어야지. 참, 지현이는?”
그러고 보니 방지현!
그녀는 오늘따라 통 보이지가 않는다.
도대체 어디 갔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동욱은 미간을 오므렸다가.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오늘 수술 스케쥴 표를 꼼꼼히 살폈다.
“오전에 한 건 있네. 설마 수술이 안 끝났나?”
이동욱은 즉시 의국 밖으로 나갔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급실 그 환자가 계속 신경이 쓰이는데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응급실 콜을 스테이션 간호사가 받고 만약 방지현이 수술을 마친 뒤 복귀했다면 그녀가 그 일을 챙겼을 수도 있다.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그런데 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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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희들 진짜 이럴 거야? 인턴 새끼들이 존나 빠져 가지고! 이게 차팅이냐? 야! 방지현! 너는 이따위로 해 놓고서 쪽 팔리지도 않아? 아으, 시펄!! 야! 방지현! 어딜 쳐다봐? 야이씨! 야! 야! 이동욱!! 김정민!! 시팔! 너희도 빨랑 튀어와!!”
토요일 저녁 시간대.
이 시간대의 병동의 분위기는 평상시와 조금 달라지는데.
내일 일요일 휴일의 분위기가 감정적으로 작용해 표정들이 다들 조금씩 밝아진다.
특히, 김재호 선배와 최고은 선배는 모처럼 수술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고 나타났다가 저녁 7시 무렵 병동을 떠났다.
두 사람 모두 오늘은 야간 근무가 없는 오프이기 때문. 우리 흉부외과 특성상, 거의 2, 3주 만에 그들은 집에 가는 거였다.
그런데 그렇게 레지던트 선배 두 명이 사라지자, 레지던트 1년차 윤세진이 갑자기 미친개가 되어 날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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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내가 오늘 너희들 똑바로 가르쳐줄 테니까 야! 빨랑 튀어! 다들 의국으로 집합!!”
잠시 후, 흉부외과 의국.
나는 이동욱, 방지현과 함께 나란히 섰다.
분위기가 험악하다.
두 눈이 독사같이 변한 윤세진. 그는 우리를 노려봤고.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듯 날 계속 쏘아봤다.
저번 박윤후 교수님 수술 집도 때.
그때 생긴 꿍한 마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듯 날 노려보는 눈빛이 무척 살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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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야, 시발놈아! 너도 똑같다고! 환자 차팅을 그따위로 해? 니가 그러고도 의사냐? 의사야?”
“죄송합니다.”
“그리고 812호 환자 드레싱, 그건 왜 그따위로 해? 아으씨! 성질 뻗쳐서 미치겠네! 야, 시발놈아, 정신 좀 차려! 제발 좀! 제바알!! 아으, 시펄!”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깨다가 고개를 돌려 그는 방지현을 쳐다봤다.
이때 방지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머리를 뒤로 묶은 그녀. 차렷 자세에서 주먹을 꽉 쥐고 있는데.
한 번씩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윤세진의 지랄에 그녀는 지금 치를 떨고 있는 게 분명하다.
도대체 윤세진의 저 지랄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는 의국 전화벨 소리!
아무리 정신이 나갔다고 해도.
흉부외과 특성상 이런 전화는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긴급 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 받아!”
이동욱이 얼른 뛰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인턴 이동욱입니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누구야?”
윤세진이 고함을 질렀다.
“환자 한 명 트랜스퍼.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 환자다!’라고 속으로 외쳤다.
“선배님! 제가 가겠습니다!”
동시에 그렇게 외쳤다.
순간, 시선들이 나한테 몰려들었다.
인상을 팍 일그러뜨리며 날 쳐다보는 윤세진.
이동욱과 방지현도 날 흘겨보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에이씨, 나도 눈치가 있다고.
그런데 누군가 가야 되잖아.
그 환자는 내 환자라고!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리며 의국 문이 세차게 열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뛰어들어온 사람은 바로 서철성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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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다들 여기 있었네! 어이, 거기 김 선생!”
무척 급한 모습의 서철성 교수.
그는 윤세진, 이동욱, 방지현을 거쳐 날 쳐다봤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빠르게 까닥이며 빨리 오라고 나한테 손짓했다.
“그리고 자네들도 여기 있지 말고 스테이션으로 가! 환자들 밀려올 테니까! 응급 터졌다!”
네? 응급 터졌다고?
환자들이라고?
“야! 김 선생! 빨리 따라와!”
어쨌든 그 혼란 중에 나는 서철성 교수와 함께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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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성 교수와 함께 응급실로 내려가면서,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좀 더 자세히 물어봤다.
“교수님, 대체 어떤 응급인가요? 설마 또 대형 TA(교통사고) 사건 터진 겁니까?”
환자들이 밀려오는 응급 사태. 그런 응급은 대체로 TA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서철성 교수는 고개를 젓는다.
TA 사건이 아니라고?
그런데도 응급 흉부 환자들이 밀려온다고?
여긴 응급실도 아니고 흉부외과다.
“TA 사고가 아니라··· 압사 사고!”
순간 그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자 그는 조금 더 설명했다.
“오늘 토요일이잖아! 날씨도 선선하고. 공개방송하는 곳에 사람들이 우르르 입장하다가 사고가 터졌다더군.”
그 설명에 뭔가가 눈앞에서 그려지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유형의 압사 사고는 2000년대 중반까지 뉴스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던 끔찍한 인재(人災)가 아니었던가.
“하필 이런 토요일에! 문제는 깔린 환자들 중에 심장마비가 온 환자들이 제법 된다고 해.”
“교수님! 근데 이건 응급실에서 온 연락입니까? 저흰 연락을 받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조금 전 의국에 있을 때 이동욱이 받은 전화는 환자 한 명에 대한 트랜스퍼 건뿐이었다.
“김 선생, 내가 이럴 때 가장 빨리 응급실에 내려가는 거 모르지?”
응급실에 가장 빨리 내려간다고? 이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가 갑자기 눈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대체로 그랬던 것 같다. 회귀 전 내가 레지던트 과정에 있을 때 응급실 긴급 콜을 받고 내려가 보면 대체로 서철성 교수님이 먼저 와 있었다. 서철성 교수님이 집도하는 별도의 수술이 없을 때는 말이다.
“우리 병원을 찾아준 일반 내원 환자도 중요해. 하지만 우리 흉부 쪽 응급환자들은 정말 생사를 다투게 돼. 그래서 내 전화번호를 119 통제실에 줬어. 응급실 연락과 별도로, 우리 쪽 환자는 무조건 나한테 전화부터 주라고. 우리 같이 수술 많은 진료과에서 뒤늦게 콜 받아봤자 어떤 교수가 내려가겠어? 안 그래?”
나는 잠시 멍해 있었다. 평소 서철성 교수님을 존경하는 은사로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이런 미담에 대해서 어디선가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게 서철성 교수님한테 해당되는 이야기인지 몰랐고 서철성 교수님이 그렇게 열혈 의사인지도 몰랐다.
“야! 뛰어!”
그리고 잠시 뒤.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서자, 서철성 교수는 후다닥 뛰어나갔다.
그 순간 나도 뛰었다.
아직 환자가 응급실로 이송된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렇게 응급실을 향해 힘껏 뛰었다.
심장 역시 힘차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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