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낫 03
<21>
응급실 치프, 레지던트 3년차 장태욱 선생은 서철성 교수가 응급실에 갑자기 나타나자 반색하며 다가갔다.
“교수님! 혹시 권철수 환자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러나 서철성 교수는 압사 사고 때문에 응급실로 온 거다.
“권철수 환자? 무슨 문제 있나?”
“그거 때문에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119 연락받고.”
“아! 압사 사고?”
그러고 보면 이번에도 서철성 교수는 미리 나타났다. 앰뷸런스에 환자들이 실려 오기 전, 타 진료과에 미리 지원 요청을 해 봤자 다들 너무 바빠 교수들이나 레지던트들은 먼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서철성 교수는 언제나 저렇듯 고마운 사람이다.
“근데 교수님, 권철수 환자도 좀 심각합니다.”
장태욱 선생은 갑자기 서철성 교수의 팔을 잡았다.
“뭔데 그래?”
서철성 교수는 의아해하며 장태욱 선생과 함께 움직였다.
“여깁니다.”
간호사가 커텐을 치우자 베드에 누운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좀 전에 CPR(심폐소생술)하고 간신히 바이탈 유지하고 있습니다.”
“CPR? 도대체 무슨 문젠가?”
응급실 치프 장태욱은 즉시 상황 설명을 했다.
“대략 3시간 전에 응급실을 찾아왔고 흉부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대기 환자들이 많아 대기실에서 한 시간가량 지체됐는데 이후 혈액검사와 흉부 CT 검사, 심전도 검사 등을 시행했고, 흉부 CT 검사 완료 직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레스트(심정지)가 발생해 CPR 시행했고 그 직후 영상실에서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장태욱 선생은 베드 옆에 있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마침 흉부 CT 사진이 모니터에 띄워져 있었다.
그런데 서철성 교수는 그걸 보자마자 바로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다.
“IPF(idiopathic pulmonary fibrosis) 같은데?”
IPF, 일명 특발성 폐섬유증.
그런데 단순한 폐섬유증이 아니다. 보통, 폐섬유증의 발생은 폐암 발생과 연관성이 높다. 상호 병리 기전은 명확하지 않으나 폐섬유증은 폐암을 종종 동반한다.
“네. 근데 여기 보시면 더 심각합니다. 8mm 크기 이상의 결절 숫자가 대략 20개 정도 확인됐고···.”
즉, 폐 결절 숫자가 무려 20개 정도 관찰되었다는 건 이미 악성 종양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폐 실질에서 진행된 섬유화 역시 아주 심각했다.
이런 상태에서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고 버텼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해야 하나.
“영상실에서 너무 놀랐고 바로 전화를 줬을 정돕니다. 제가 응급실 근무하는 동안 이 정도 상태를 가진 환자는 처음 봤습니다.”
장태욱 선생의 그 코멘트에 서철성 교수는 환자한테 다가가 이곳저곳 상태를 확인해 봤다. 특히, 안구 확인을 하자, 노란 기운이 가득했다. 황달이다. 간장 혹은 담낭 쪽에도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검안 라이트(pen light)로 동공 반응 검사를 하자 환자의 반응이 이상했다.
빛에 대한 동공 반응이 거의 없다. 혼수상태, 즉 코마 상태에 다다른 것 같다.
“이거 안 되겠군. NS(neuro surgery, 신경외과)에도 연락해야 할 것 같은데?”
“네! NS 쪽에도 미리 콜을 넣어뒀습니다!”
그렇듯 환자의 뇌에 뭔가 영향이 갔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서철성 교수는 딱 봐도 알 것 같았다.
문제의 원인, 결국 폐에서 발생된 거다.
저 정도 상태는 단순한 약물치료 방식으로는 절대 어찌할 수가 없다.
그 때문에 호흡기내과 영역이 아니라 저 환자는 흉부외과 영역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시기가 많이 늦었다는 것.
흉부외과로 트랜스퍼해도 생존 가능성이 무척 낮아 보인다.
“근데 대기실에서 오래 기다렸다고?”
“네. 환자가 직접 응급실을 찾아왔습니다. 베드에 실려 온 환자가 아니라서 대기 시간이 좀 있었는데···.”
그러니까 두 발로 걸어서 응급실을 찾은 환자라서 처음엔 중증이 아니라 경증 환자로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바쁜 응급실 사정상 모든 내원 환자들을 바로바로 진료할 수는 없기 때문.
그런데 과연 그 환자를 한 시간 일찍 진료 봤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졌을까.
서철성 교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한 시간이 아니라 최소 몇 달 일찍 환자는 병원을 찾았어야 했다.
“김정민 선생! 그럼 이 환자는 즉시 우리 병동으로 트랜스퍼하고··· 야! 잠깐, 잠깐만! 저기 또 오네.”
바로 그때 후다닥 응급실로 뛰어들어오는 또 다른 사람.
바로 인턴 방지현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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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현 선생, 이 환자 좀 맡아!”
“교수님, 저는··· 아, 네! 알겠습니다. 김정민 선생, 혹시 이 환자 권철수 환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의국으로 걸려온 콜, 바로 이 환자 때문이었다.
그래서 방지현 역시 황급히 응급실로 내려온 거다.
“그럼, 우린 지금부터···.”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서철성 교수가 막 다른 지시를 하려고 할 때, 응급실 바깥에선 요란한 앰뷸런스 소리가 갑자기 폭발하기 시작했다.
모두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특히, 응급실 반투명한 대형 창문 너머로 요란하게 춤추고 있는 앰뷸런스의 불빛들.
그 순간, 응급실 치프 장태욱 선생은 환자 차트를 내려놓고서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야!! 김보영 선생! 김보영 선새앵!! 거기 인턴들!! 야아!! 빨리 뛰어!! 뛰어!! 왔어! 왔다고!!”
순간,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하는 의사들.
요란한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에 방지현 역시 놀란 듯 응급실 입구 쪽을 쳐다보다가.
서철성 교수가 내 어깨를 탁! 치며 달리자, 그녀는 동그래진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나 나 역시 재빨리 뛰어나갔다.
최대한 많은 인원이 밖으로 나가 도와줘야 한다.
최대한 빨리 스트레처카를 끌고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응급의학과 펠로우 김시영 선생과 응급의학과 당직 교수 최관철 교수 역시 뛰고 있었다.
“야! 빨리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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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토요일 저녁의 고요함은 완전히 깨져 버렸다.
응급실 앞은 한바탕 대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도착한 앰뷸란스에서 환자들이 속속 나오자마자, 의사, 간호사들은 환자 바이탈을 확인하면서 스트레처카를 힘껏 밀었다.
119구급대원들도 나란히 뛰었다.
일사불란하게 환자들을 응급실로 집어넣는데.
실려 온 환자들의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
침대 시트가 대체로 피범벅이었고.
의식이 없거나 심정지 상태인 환자들도 더러 있었다.
내가 정신없이 밀며 달리는 스트레처카 위의 10대 여학생 역시 의식이 전혀 없었다.
같이 뛰던 119구급대원은, CPR(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환자한테 특별한 변화가 없다고 외쳤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다.
즉, DOA(dead on arrival), 병원 도착시 이미 죽은 환자 상태만 간신히 면했을 뿐. 거의 생사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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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 비어있던 각 베드는 순식간에 환자들로 채워졌다.
그때부터 피 냄새가 진동했고.
잠시 응급실 일반 내원 환자들의 진료가 중단되었다.
“야! 김 선생, 이리 와봐!”
의사들이 각자 각종 바이탈 기기들을 연결하고 환자 상태를 확인하던 중, 서철성 교수가 날 불렀다.
“이 친구 응급 처치 좀 해 봐. 기관 삽관하고 흉관 삽관 빨리 진행해! 다 되면 수술방으로 뛰어와. 흉부 CT 찍고 바로 수술방 넣을 테니까 바로 들어와! 알겠나?”
“네! 교수님!”
그러고는 서철성 교수는 응급의학과 인턴 한 명을 불렀다.
“야! 여기!”
“네?”
“이 환자 즉시 흉부 CT 검사 넣고, 혈액검사 결과 빨리 뽑으라고 해. 결과 나오면 바로 수술방으로 넣어주고.”
“네!”
그러고는 서철성 교수는 갑자기 베드 위에 뛰어들었다. 삐이익! 삐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 10대 여학생한테 어레스트가 오는 순간 바로 배 위에 올라타며 즉시 CPR(심폐소생술)을 시행하려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나도 뛰어들려고 하자 서철성 교수가 제지했다.
“야! 너는 아까 지시한 거나 빨리해! 빨리 움직여!”
그사이 간호사가 자동제세동기를 가져왔고, 서철성 교수는 환자를 구하려고 사력을 다해 노력했다.
어쨌든 제지를 받은 나는 서철성 교수가 가리킨 환자 쪽으로 뛰었고.
문득 응급실 풍경이 두 눈에 쏟아지듯 들어왔다.
끔찍하다.
압사 사고.
TA 사고 환자들만큼이나 이 환자들 상태 역시 끔찍하다는 거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에 밟혔다.
그 엄청난 물리적 힘들을 온몸으로 받았다.
각종 골절상이 심각했고.
특히, 늑골이 물렁물렁하게 만져지던 환자들은 잠시 후 의사들에 의해 차례로 사망 선고가 내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의식을 잃은 채 베드에 누워있는 어느 10대 여학생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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