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눈 01
<22>
기관 내 삽관(intubation). 그리고 흉관 삽관술.
서철성 교수가 나한테 오더한 응급처치다.
나는 베드 위에 누워있는 10대 여학생을 쳐다봤다.
의식이 없는 상태다.
즉시 후두경을 이용해서 기관을 확인한 뒤 튜브를 순식간에 쑥 집어넣었다. 청진기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뒤 곧바로 흉관 삽관술도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뭔가 놀란 목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다.
흉관 삽관술을 시행하던 중,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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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발성 폐섬유증(IPF) 환자, 권철수 환자. 그 권철수 환자의 트랜스퍼 일을 맡은 직후, 갑작스러운 응급실 사태에 이도 저도 못하고 당황하고 있던 인턴 방지현. 그녀는 지금 날 쳐다보고 있었고. 내 손을 가리키며 작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김정민! 너 그렇게 하다간···.”
그러나 그녀는 채 그 말을 끝낼 수가 없다.
[전용 술기: 인투베이션(기관삽관): S, 심장막천자(pericardiocentesis): S, 흉관 삽관술: S]
내 전용 술기 중에 인투베이션(기관삽관)과 흉관 삽관술은 S등급이다.
그러니 기관 삽관 술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바로 이어진 술기 역시 순식간에 시행되었다.
즉, 환자 겨드랑이 쪽 소독과 국소 마취가 끝나자마자 바로 11번 메스를 이용해서 그 부위를 부분 절개하고 그 안쪽 구멍을 낸 뒤 쑥! 하며 멸균 튜브를 집어넣어 버린 거다.
눈 깜짝할 사이, 흉부 쪽 가스와 꽉 차 있던 체액이 스르륵! 배액되어 나오자, 방지현의 두 눈은 찢어질 듯 커져 버렸다.
이렇듯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진행되는 흉관 삽관술을 그녀는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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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방지현 선생!”
그리고 이때 서철성 교수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지현 선생!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그 환자 트랜스퍼해! 그리고 윤미연 교수, 한재준 교수한테 즉시 콜 넣어! 김재호 선생, 최고은 선생한테도 콜 넣어! 빨리 오라고! 야! 김 간호사! 좀 더 올려! 200J(줄)!! 200J 넣어!”
팡!
자동제세동기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멍해 있던 인턴 방지현.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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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수술실 환자대기실.
그곳에는 압사 사고 환자들이 하나둘 실려 들어왔다.
응급 흉부외과(CS) 수술, 신경외과(NS) 수술, 일반외과(GS) 수술 등이 진행될 환자들은 각각 분류되었다.
모두 응급 수술이다 보니, 이후 각종 준비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특히, 생략해도 무방한 절차는 즉시 생략되었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수술동의서다.
보호자가 아직 오지 않아 수술동의서가 작성되지 못한 환자들은 결국 후순위로 밀려났다.
안타깝긴 했지만.
병원 절차여서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잠시 뒤.
마취과 의사의 확인과 전신마취 절차가 끝난 환자들은 수술방으로 차례로 들어왔다.
그렇게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들.
수술 부위 소독과 위치 마킹 등이 이어졌는데.
그 일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분초를 다투는 응급 수술이 각 수술방에서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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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열 위치는 좌쇄골하 동맥에서 3cm 떨어진 곳으로써 대동맥 부분 절단(transection)이 발생했습니다.”
흉부 CT 검사와 심초음파검사 결과 등을 보면서 나는 간단히 브리핑을 마쳤다.
“박 선생! 뇌척수액 배액도 잘 봐야 돼.”
이번 응급 수술을 위해 콤비처럼 엮여서 들어온 마취통증과 레지던트 2년차 박신희 선생.
그녀는 서철성 교수의 코멘트에 즉시 대답했다.
“네. 문제없습니다.”
좀 전에 환자의 요추에 카테터를 삽입했는데 수술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하반신 마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곧바로 개흉 과정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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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응급 수술의 방향은 심폐 바이패스와 완전순환정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단순한 봉합 수술로는 대동맥 부분 절단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파열이 심각해 그 부위가 현재 절단까지 된 상태인데.
보통, 이런 압사 사고의 대표적인 증상은 외상성 질식이다.
이 외에도 기흉, 장기 파열, 위장관 출혈 등이 주로 발생하고.
때로는 흉부 혹은 상복부에 직접적으로 가해진 압력에 의해 혈관파열 증상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다만, 두개골 골절이나 뇌출혈 등의 증상은 흔하지 않다.
주로 외부 압력이 흉부 혹은 복부 쪽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뒤.
“석션!”
“지혈!”
“석션!”
“석션!”
“석션!”
“야, 기다려!”
쉴 새 없이 수술 집도의의 지시가 이어지다가.
체외순환기(인공심폐순환기)와 각 혈관과의 연결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곧이어 심정지액(cardioplegic solution)이 주입된 뒤, 심폐 바이패스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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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빠르게 시간은 흘러갔다.
수술 시간, 85분 경과.
심폐 바이패스, 28분 경과.
완전순환정지, 04분 경과.
특히, 완전순환정지(total circulatory arrest)가 이루어진 뒤, 서철성 교수의 손놀림은 더 빨라지고 있었다.
퍼스트 어시를 맡은 내가 거의 옆에 붙어 조직 박리를 도운 터라 서철성 교수의 시야 확보는 더 쉬워졌고.
각 대동맥 부위에 대한 교차 겸차 작업 역시 순조롭게 끝난 상황이었다.
곧이어 날카로운 메스를 손에 쥐고서 대동맥 위치를 노려보던 서철성 교수는 주변 파열 부위에 대한 절개를 시행했다.
나는 이때 틈틈이 지혈했고, 또한 흐르는 피를 거즈로 쉴 새 없이 닦아냈다.
그리고 잠시 뒤.
스크럽 널스가 수처 세트에서 봉합 바늘을 꺼내 건네자 서철성 교수는 재빠른 문합을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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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시간, 105분 경과.
심폐 바이패스, 48분 경과.
완전순환정지, 23분 경과.
“잘 봐. 이쪽 혈관들도 이제부터 절개할 거니까. 특히, 이쪽 부분! 이쪽 부분! 끝나고 결찰(실로 묶는 것)할 거야.”
잠시 후, 인조혈관이 절개 부위에 삽입되었고.
주변 외막과 인조혈관 표면을 접합시키는 봉합 과정이 이어졌다.
각 봉합 과정은 신속하면서도 아주 꼼꼼하게 진행되었다.
“어때? 이쯤 하면 된 것 같은데?”
서철성 교수는 고개를 들어 현재 수술 시간을 확인하더니, 내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잠시 옆으로 비켜줬다.
재빨리 확인을 마친 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서자.
서철성 교수는 다시 몸을 숙이며 집도를 이어나갔다.
“15번 메스.”
“티슈 포셉! 빨리 줘!”
“클램프 2개!”
“15번 메스.”
“메젠바움(metzenbaum)!”
그렇게 집도를 이어가다가 서철성 교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수술실 시계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리고 나한테 손짓했다.
“잘 봐. 여기! 이쪽 descending thoracic aorta(하행 대동맥) 외막이 생각보다 잘 보전되어 있어.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야, 몰라도 그냥 들어. 이 외막까지 완전히 찢어지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져. 야이씨, 내가 이런 거 설명 잘 못 하니까 대충 알아서 들어! 그래도 여기! 이 주변 조직도 헤마토마(혈종)로 둘러싸여 있어 외막 같은 역할을 해 줄 거고, 그래서 환자한테 나쁘지 않아.”
설명 자체가 약간 두서없긴 해도 주변 조직을 직접 가리키며 보여주던 서철성 교수는 잠시 후 다시 집중했고, 주변 혈관들에 대한 몇몇 문합 작업을 차례로 이어나갔다.
수술 시간, 114분 경과.
심폐 바이패스, 57분 경과.
완전순환정지, 32분 경과.
“됐어. 이 정도만 하고 나가도 되겠다. 비장파열 문제는 GS(일반외과)에서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흉부 쪽 응급 수술은 신속하게 끝나고 있었고.
곧바로 마무리 작업들이 이어졌다.
그 일이 끝나자 흉부 아래쪽 부위에 대한 2차 수술을 위해 수술진이 이제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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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수술실 바깥 복도.
가을밤의 차가운 기운이 이곳 복도에까지 침범한 것 같았다.
수술복 차림을 한 내가 수술실 자동문을 통해 걸어 나오자, 차가운 기운이 몰아쳤고.
한편으론 복도 좌우 의자에 빽빽하게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날 쳐다봤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창백했다.
두 눈은 충혈되어 있고 눈물 자국이 얼굴에 가득했다.
수심이 가득한 환자 가족들이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서 그곳을 빠르게 벗어났다.
날 계속 쳐다보는 시선들.
혹시나 뭔가 이야기해줄까 기대하는 눈빛들이다.
그러나 내가 수술 집도의가 아닌 이상, 수술 환자의 상태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내가 그곳을 지나가는 동안, 진한 시선들이 계속 내 뒷덜미로 와 닿았고.
환자 가족의 모습들이 무척 안타까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끝난 상태였다.
잠시 후, 나는 흉부외과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그러고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압사 사고 환자 수술 때문에 권철수 환자에 대한 걸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것.
새벽 2시 30분.
권철수 환자가 오늘 밤 생존할 수 있는 최대 시각이다.
아놔, 미치겠네.
모든 게 다시 바빠졌다.
우선, 권철수 환자 위치부터!
“김 간호사님! 혹시 권철수 환자, 권철수 환자 병동에 들어왔죠? 지금 중환자실에 있습니까?”
그렇듯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내 눈앞으로.
이상한 글자들이 튀어나오며 좌우로 펼쳐지고 있었다.
[‘사신의 눈’이 인간을 주시합니다]
[사망 예정: 권철수]
[남은 시간: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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