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눈 02
<23>
[사신의 낫 B등급]
사실, 아까 응급실에서 나는 이 특성을 일부러 발동하지 않았다.
현재 인턴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한정적이기도 했지만.
이 특성 자체로만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무시무시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곧 죽는다는 사실.
그걸 미리 알게 된다면 의사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받은 충격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특성에는 경고까지 달려있다.
[예고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죽음을 회피하는 순간 새로운 죽음의 저주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
나는 여기서 ‘예고(豫告)’라는 단어에 특히 주목했다.
흔히 ‘예고’라는 것은 미리 알려진다는 의미.
내가 [사신의 낫] 특성을 통해 누군가의 죽음을 아는 순간, 그건 이미 예고된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한다면.
혹시라도 그 사람이 살아나게 된다면.
그건 결국 ‘새로운 죽음의 저주’를 부른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신의 낫] 특성이 발동되지 않은 상황에선···.
‘피할 수 없는 죽음’도 ‘새로운 죽음의 저주’도 원칙적으로 성립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내 해석이 맞기라도 한 듯.
뜻밖의 알람이 이어지고 있었다.
#
[‘사신의 눈’이 당신과 사망 예정자를 주시합니다]
[사망 예정: 권철수]
[남은 시간: 59:56]
근데 나를 주시한다고?
소름이 싹! 끼쳤다.
#
“아! 권철수씬 중환자실에 있는 건 맞는데, 좀 전에 어레스트가 와서 최병근 교수님께서 CPR(심폐소생술)하고 계실 겁니다!”
스테이션에서 앉아 있던 김선화 간호사.
그녀는 중환자실 쪽을 가리키며 대답했고.
내 시선은 바로 중환자실 쪽으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즉시 후다닥 뛰어갔다.
#
잠시 후 도착한 중환자실.
현시대의 중환자실은 미래와 달리 시설적인 면에서 모든 게 열악하다.
일종의 열린 공간.
커튼으로 각 환자 구역이 나누어져 있는데.
1인실, 2인실 등의 구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때문에 중환자실 내에서도 응급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소음이 크게 울린다.
실제, 중환자실로 들어서자마자 자동제세동기의 팡! 하는 전기충격음이 내 귀청을 때렸다.
“교수님, 200줄입니다.”
다시금 팡! 하는 충격음이 들려왔다.
권철수 환자의 응급 상황인 게 분명했다.
삑! 삑! 삑!
파앙!
한편, 나는 즉시 그 베드 쪽으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사신의 눈’이 당신과 사망 예정자를 주시합니다]
[사망 예정: 권철수]
[남은 시간: 58:25]
그렇듯 아직 사망 시기가 아니었고.
곧이어 중환자실 간호사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님, 반응 있습니다!”
“이야아! 이거 간신히 잡았는데 금방 또 쳐지는 거 아냐? 야! 윤세진 선생! 차라리 여기서 응급 수술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괄괄한 최병근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지던트 1년차 윤세진의 떨떠름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근데 여기서 어떻게 수술이 가능합니까?”
그러자 거침없이 들리는 목소리.
“인마! 급하면 중환자실에서도 환자 흉부 열고 하는 거 몰라? 야! 우리 흉부외과는 써전이 있는 데가 바로 수술장이야! 뭣도 모르는 새끼들이 의사랍시고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 개지랄이나 하지, 우린 안 그래! 환자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물론, 이 환자는 IPF(특발성 폐섬유증)라서 달리 방도가 없지만. 야! 어쨌든 빨리 세트부터 가져와!”
“네?”
“인마! 너는 내년에 2년차 될 놈이 아직도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 빨리 혈흉부터 따야지! 되든 안 되든 끝까지 하는 게 의사야. 야! 야! 빨리 혈흉 따고 바로 에크모(ECMO) 달자! 빨리 움직여! 새꺄!”
거칠게 윽박지르는 최병근 교수.
최병근 교수는 원래 입담이 거칠기로 유명한데 서철성 교수의 직속 선배이기도 했다.
그 순간, 커튼이 확! 걷히며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윤세진이 뛰어나왔고.
나는 윤세진과 눈이 마주쳤다.
“야, 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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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오, 저 눈깔.
선배라고 하지만 이제는 이 새끼! 저 새끼! 하고 싶어지는 인간.
그러나 내 얼굴은 그런 표정이 일절 드러나지 않았다.
“선배님, 제가 혹시 도울 일 있습니까?”
“뭐!”
순간, 고함을 지르다가 윤세진은 고개를 돌려 권철수 환자 베드 쪽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문 그는 나한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중환자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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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죽고 싶냐?”
“······.”
“시발! 나 지금 바쁘니까 담에 이야기하자.”
“근데 선배님.”
“뭐!”
“저기, 아까 밖에서 이야길 좀 들었는데··· 제가 차라리 최병근 교수님 어시할까요?”
“뭐?”
“제가 세트 들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나는?”
“같이 들어갔다가 허락받고 나가시면, 최 교수님 성격상 아무 말씀 없으실 텐데요?”
그러자 윤세진은 미간을 확 오므렸다.
최병근 교수는 흉부외과 스타급 교수이긴 하나 레지던트들한텐 평가가 아주 박했다.
사람 좋은 치프 김재호도 최병근 교수만큼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왜냐하면, 자기중심적 성격인 최병근 교수는 자신과 환자 외의 다른 사람에 대해선 일절 관심조차 없기 때문이다.
“시발, 너 갑자기 사람 된 거 같다?”
“······.”
“그렇다고 마음에 드는 것도 아냐. 야,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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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윤세진과 함께 내가 권철수 환자 베드 쪽으로 들어서자 최병근 교수는 힐끔 날 쳐다봤다.
“인턴? 인턴을 왜 데리고 왔어?”
“교수님, 좀 전에 응급실 콜이··· 급히 들어와서···.”
그러자 인상을 팍 쓰다가 최병근 교수는 눈짓했다. 윤세진은 즉시 인사를 한 뒤, 씩 웃으며 후다닥 뛰어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
나는 즉시 특성을 발동시켰다. 현재 시간이 많이 없다.
[혼미(B)]
[10m 이내 대상자들의 의식을 혼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10m 거리]
[사용하시겠습니까?]
‘네!’ 라고 속으로 외치자, 삽시간에 직경 10m 권역이 혼미에 휩싸인다.
나는 사방 10m 권역을 다시금 눈으로 확인한 뒤 재빨리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베살리우스의 눈(C)]
[병변 부위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성공 확률 80%]
다만, 지금은 수술 중의 상황이 아니었고.
환자복 상의가 벗겨진 권철수의 맨살 흉부만 쳐다보며 [베살리우스의 눈(C)]를 발동시켰다.
[죽음의 수렁(클래스 C), 권철수 환자의 사망 이유를 밝히세요!]
그렇듯 이번 미션은 환자를 살리는 게 아니었다.
단지 사망 이유를 정확하게 밝혀내는 거, 바로 그거다.
그렇다면 이 [베살리우스의 눈(C)] 특성은 유효할까.
우선, 응급실 진단을 통해 이 환자는 [특발성 폐섬유증] 관련 진단이 내려진 바 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닌 모양이다.
무언가 다른 게 존재한다는 말.
그러니 이 미션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제!
[베살리우스의 눈(C)] 특성이 발동되었지만, 난감한 시스템 알람이 들려왔다.
[베살리우스의 눈(C) 특성이 적용될 수 없습니다!]
[베살리우스의 눈(C) 특성이 적용될 수 없습니다!]
에이, 진짜! 흉부 안 열었다고 특성도 쳐내네.
피부 장벽 때문일 터.
[‘사신의 눈’이 당신과 사망 예정자를 주시합니다]
[사망 예정: 권철수]
[남은 시간: 53:36]
그리고 그 와중에도 ‘사신의 눈’은 계속 날 주시하고 있다.
이제 권철수 환자는 대략 53분 뒤에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망 선고가 내려지게 되면 저 환자는 내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 유족이 그 시신을 수습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권철수 환자의 사망 이유?
사실, 이 미션은 ‘사망’이라는 두 글자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도 괴이하지만.
또한, 원인을 찾기 위해 내가 함부로 환자의 흉부를 여는, 개흉 작업을 할 수도 없다는 점도 다소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고 시간을 벌고자 환자한테 항섬유화제를 투여해 봤자 이 정도 급의 환자는 치유될 수도 없을 테고.
치료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폐 이식뿐이다.
이거······ 불가능한 미션이었나.
[사망 예정: 권철수]
[남은 시간: 51:12]
그런데 이때.
날 놀라게 했던 첫 미션 제안이 왔던 그때처럼.
내 눈앞으로 새로운 글자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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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좌님의 긴급 제안!!!**
[서브 미션: 금지된 비밀(클래스 D), 권철수 환자와 동일 증상을 지닌 그의 동료들을 찾으세요!]
[특전: 회광반조(수락시 즉시 유효)]
[회광반조: 심정지 상태에 다다른 환자의 생명을 일시적으로 연장할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하루]
[업적 보상: 경험치 +500]
[패널티: 사신의 경고]
[실패: 등급 2단계 하락]
[이 미션은 죽음의 수렁(클래스 C) 미션과 병합 가능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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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인생
<24>
띠이이. 띠이이. 띠이이.
중환자실의 권철수 환자.
의식은 아직 없다.
현재 에크모(ECMO)를 달았는데.
그 에크모(ECMO)는 심폐 기능에 문제가 있는 권철수 환자의 생명을 유지해주고 있다.
현재, 새벽 4시 35분.
사망 예정 시각에서 거의 2시간이나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권철수 환자는 아직 생존해 있다.
[사신의 눈이 당신을 향해 희번덕거립니다!]
이젠 사신이 날 주시하는 것 자체가 아주 노골적이다.
사망 예정자인 권철수 환자가 아니라 나한테 집중을 하고 있다.
아으으. 으스스해.
직접 눈앞에서 사신을 보는 것도 아니고.
사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저런 시스템 알람이 뜰 때마다 소름이 싹! 끼친다.
“정민아. 나가자.”
“네. 선배님.”
중환자실을 기웃거리던 중, 나는 후다닥 뛰어나갔다.
“오늘 수고 많았다.”
“근데 오늘 오프(off)신데 괜찮습니까?”
“야, 안 괜찮으면 또 어떡하겠냐. 이게 다 내 일인데. 몇 시지? 이야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한숨을 내쉬며 김재호 선배는 터벅터벅 걸었다.
앞서 걷는 그의 어깨가 유난히 좁아 보인다.
피곤할 테지.
모처럼 집에 갔을 텐데.
모처럼 와이프를 만났을 테고.
모처럼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안아 봤을 텐데.
일장춘몽 같을 것이다.
저녁 무렵 터진 압사 사고 환자들이 병원으로 응급수송되면서 김재호 선배는 수술 현장에 다시 투입됐다.
그나마 대다수 수술이 장 파열 등과 관련된 일반외과(GS) 영역에 집중된 터라 김재호 선배는 수술장에서 빨리 나올 수 있었다.
잠시 후, 띵! 하는 소리가 나며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섰다.
그리고 이때 후다닥 뛰어나오는 또 다른 인영.
고개를 돌려보자 수술복을 벗은 레지던트 2년차 최고은 선배였다.
그녀 역시 응급 콜을 받고 병원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수술 어시를 맡은 상태였다.
오오, 근데 저 옷차림, 저게 뭐야.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커졌다.
#
“최고은 선생, 바이크 타고 왔어?”
“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탑승한 그녀.
김재호 선배가 묻자 간단히 대답한다.
평소에 말이 많지 않은 그녀.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아주 수수한 모습으로 다니지만.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고 서구적인 마스크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가죽 잠바 라이더 재킷을 입고, 몸에 촥! 달라붙는 블랙진을 입고 있다 보니 그 이미지가 아주 강렬했다.
그나마 재킷 안에 입은 하얀색 블라우스 때문에 안정감을 주지만.
최고은 선배의 이런 모습을 나는 과거에 단 한 차례 본 적이 없다.
그 때문에 잠시 내가 위축해 있자, 김재호 선배는 씩 웃으며 내 팔을 툭! 쳤다.
“야, 최고은 선생이 바이크 잘 타는 거 모르지?”
“네. 전혀 몰랐습니다.”
“바이크를 타는 게 진짜 기똥차거든. 최고은 선생! 애마는 잘 있어?”
그러자 그녀는 씩 웃었다.
슬쩍 드러나는 보조개.
평상시에는 눈길이 전혀 안 가던 보조개.
그러나 지금은 늘씬한 옷차림새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잠시 멍하니 쳐다봤다.
이때, 최고은은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넘겼다.
평상시에는 뒤로 묶거나 닿아 다녀,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던 머리카락.
아이씨. 2회차 인턴 생활을 하다 보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근데 최 선생! 이건 노파심인데, 조심해서 타. 괜히 사고 나서 응급실에 실려 오지 말고.”
“걱정 마세요. 제가 애도 아니고.”
그 말에 김재호는 씩 웃었다.
“참! 정민아, 너도 혹시 바이크 타 본 적 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이미지와 바이크?
노노! 절대 맞지 않는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는 1층에 섰고.
우리는 본관 1층을 통해 병원 바깥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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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새벽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새벽 가을바람이 무척 차다.
으스스한 바람이 쓰윽 불어와 온몸을 휘감았다가 쓰윽 사라진다.
“최고은 선생은 먼저 가. 나는 정민이랑 이야기 좀 하다 가려고.”
“네! 먼저 가볼게요.”
최고은 선배는 날 쳐다보며 또 고개를 끄덕였다.
“좀 이따 보자.”
그래 ‘내일 보자’가 아니라 ‘좀 이따 보자’가 정확하다. 현재 일요일 새벽이긴 해도 두 사람은 아침 8시까지 다시 병동에 복귀해야 하니까.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나는 인사를 한 뒤, 최고은 선배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사이 점점 멀어졌고, 으슥한 야외 주차장으로 걸어가더니.
곧이어 부으응! 부으으응!! 하는 굉장한 소음이 들렸고.
늘씬한 블랙 바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카만 색채의 다부진 바이크.
검은 헬멧까지 쓴 최고은 선배는 앞으로 살짝 엎드린 듯한 자세를 유지한 채 쏜살같이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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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멋있지?”
“···네.”
“최고은 쟤가 집이 좀 살잖아. 운동도 잘 하니까 바이크를 즐기지. 좀 별나긴 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 아까 서철성 교수님 뵀었는데. 너 칭찬 많이 하시더라.”
나는 씩 웃었다.
“너도 알다시피 흉부외과가 3D 전공이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안 하려고 하니까. 뭐, 힘들긴 힘들지. 그래서 레지던트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 그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그래도 난 그렇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냥 내가 하는 게 낫겠다고. 나는 우선은 그렇게 생각해. 너도 앞으로 잘 생각해.”
“네?”
“벌써 10월이잖아. 조만간 전공 선택해서 지원할 거 아냐? 잘 생각하라고. 니가 젤 좋아하는 게 뭔지, 젤 하고 싶은 게 뭔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 그 때문에 과거에 나는 흉부외과를 선택했다.
그나마 나는 교수 직종으로 풀려서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김재호 선배는 흉부외과 전문의를 버리고 로컬로 들어가 ‘성형외과 의사’로 거듭나지 않았나.
물론, 김재호 선배가 단지 돈 때문에 그랬을까.
흉부외과 의사라고 해도 그 전공을 계속 유지하기가 무척 힘들다.
각 대학병원 그리고 일부 종합병원들.
이곳 흉부외과 의사 TO는 늘 한정적이다.
이런 곳에 들어가지 못한 흉부외과 의사들은 체득한 수술 술기를 모두 털어내고, ‘일반의’로서 로컬 병원을 개업해야 한다.
이게 대한민국의 뼈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야. 너무 늦었다. 너도 쉬어. 괜히 밤샘 계속하다간 몸만 망가져. 젊다고 너무 몸 혹사하다간 나중에 훅! 온다고. 대충 하고 쉬어.”
“네. 선배님, 들어가세요.”
김재호 선배는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친 뒤 으슥한 야외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사이 나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치솟을 때, 김재호 선배가 모는 차량이 천천히 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김재호 선배는 능력이 참 좋다.
현재, 세금 다 떼고 200만 원도 채 되지 않은 레지던트 월급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있지만.
훗날, 흉부외과 전문의라는 못난(?) 타이틀까지 달고서 로컬로 나가, 그래도 강남에서 큰 성형외과 병원을 운영하게 된 걸 보면, 뚝심 하나만큼은 아주 대단한 사람이다.
하! 근데 티코가 여기에 있었네.
조금 전, 김재호 선배가 몰고 간 차량은 93년형 국산 중고 경차 티코.
생생한 티코의 모습!
2001년으로 왔더니 이젠 거의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티코를 다 보게 된다.
잠시 뒤, 나는 담뱃불을 끈 뒤 숙소로 향했다.
[경고! 경고! 사신의 눈이 당신을 날카롭게 쳐다봅니다!]
아으, 어쩌라고.
지금은 처녀 귀신이 온다 해도 졸려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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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알고 있다면
<25>
2001년 9월 11일!
이날은 역사적인 날이다.
알카에다 테러에 의해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했고 미연방 국방부 청사 펜타곤 역시 공격을 받았다.
이 무렵 언론은 아침부터 새벽까지 쉴 새 없이 미국발 소식을 날랐다.
특히,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세계무역센터와 충돌하는 그 아찔한 모습을 기억하는 나는 지하 1층 교직원 전용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잠시 그 TV 쪽으로 시선을 빼앗기게 되었다.
식당 내 TV 볼륨을 줄여놔서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상 속 모습들.
아침부터 공중파 방송은 지난 7일부터 시작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소식을 영상으로 전한 뒤 향후 전쟁 향방에 대해 각종 전문가 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야! 저 전쟁, 어떻게 될 것 같냐?”
그래, 일요일이다.
정신없이 바쁜 인턴의 입에서도 현시대의 시사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밥을 먹다가 이동욱은 그렇게 슬쩍 물었고.
나는 TV 쪽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따뜻한 소고기뭇국을 수저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우선은 압도적으로 이길 것 같긴 한데, 결국 시간과 비용을 이기지 못해 철군할 수밖에 없을 거야.”
최종적인 결과를 아는 나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동욱은 그 말을 그대로 수용하기가 힘들다.
“무슨 말이야! 누가 철군을 해? 미국이 질 리가 있어? 알카에다 때문에 이를 득득 가는 것 같던데.”
이때, 방지현도 입을 열었다.
“근데,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에 우리나라도 꽤 영향을 받은 거 같던데. 이런 상황에서 왜 집값은 갈수록 비싸지는지 모르겠어.”
어? 집값이 비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집값은 왜?”
“우리가 언제까지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야돼? 독립하려면 슬슬 알아봐야지. 너두 청약 넣고 있지?”
청약? 그래, 청약이라.
새집을 분양받으려면 그런 게 필요하다.
그러던 중 나는 고개가 조금 갸우뚱하다가 고개를 바로했고, 슬며시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니 나는 2001년으로 회귀했다.
그러나 그 직후부터 나에겐 정신없는 강행군만 이어졌고.
그나마 일요일이 되니까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이제 생기게 된다.
근데 그러고 보면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한텐 아직까지 회귀 특수 같은 게 없지 않았나.
비트코인을 사는 건 시간상 너무 이르고.
그렇다면 달리 방법이 없나?
아니지!
부동산 투자? 주식투자?
더 큰 시장, 미국 주식 투자?
그러고 보면, 조만간 대단한 기회도 찾아든다.
가장 가까운 미래.
미국에서 시작된 그 대단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사람들은 ‘지하 아래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를 맛보게 되겠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나도 모르게 순간 턱을 쓰다듬으며 씩 웃게 되었다.
#
2001년 10월 14일 일요일 아침.
병원 바깥에는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가을비의 기운이 어느새 전해져.
흉부외과 병동의 아침은 아주 조용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가 아침을 먹고 복귀하자.
김재호 선배는 지난 일주일간 쌓인 서류 더미들의 처리 외에도 각 교수와 관련된 각종 일들을 우리한테 각각 분산해서 배분했다.
“알다시피, 일요일에도 갑자기 응급이 터져. 입원 환자들한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또한, 어젠 일들이 많았잖아. 근데 오늘 같은 날은 중환자실 일들이 더 빡세! 무슨 말인지 알겠지? 특히 김정민 선생! 오늘 나한테 요청한 대로 중환자실 맡았으니까 열심히 해 봐!”
“네! 선배님!”
“그리고 다음 주 토요일 오프(off)는 김정민 선생, 그리고 그다음 주에 방지현 선생, 그 다다음 주에 이동욱 선생이니까 잘 기억하도록. 물론, 어제같이 응급 터지면 오프고 뭐고 다 날아가니까 그건 이해하고. 됐지? 자자, 바로 흩어지자.”
그리고 그때부터 각자 일들을 시작했다.
방지현은 의국 자리에 앉아 문서 작업을 시작했고.
이동욱은 병동 관리를 위해 후다닥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사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오전 10시가 되었을 때.
하나둘 환자 가족들이 중환자실로 나타났고. 가족 면회 방문객 명단 작성이 즉시 이어졌다.
#
아, 저 사람들이구나.
두 눈이 퉁퉁 부은 아내.
헝클어진 머리카락.
아마 잠을 전혀 자지 못한 듯 그녀는 두 눈이 충혈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유난히 짧게 머리를 깎은 중학생 남자아이, 초등학생 3, 4학년 정도 보이는 여자아이, 그리고 아빠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마냥 즐거운 6살 여자아이가 같이 나타났다.
한편, 중환자실 가족 면회와 관련하여 방문 명단이 작성되는 걸 옆에서 지켜보다가 나는 잠시 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저, 인사드릴게요. 저는 이곳 중환자실 관리를 맡고 있는 의사 김정민입니다.”
수술복 차림의 내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놀라며 마주 고개를 숙이는 아내.
“혹시 권철수씨 사모님 되십니까?”
그녀는 바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모님? 아, 아뇨. 그냥 우리 남편이 권철수인 건 맞는데···.”
무척 순박한 아내.
그녀는 ‘사모님’이라는 단어가 많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습니까? 저랑 휴게실에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중학생 아들에게 눈짓했다.
“성훈아, 동생들 데리고 저기 잠깐 가 있어.”
아이들이 움직이자 잠시 부산스러워 조금 기다렸다가.
나는 먼저 간단한 위로의 말부터 전했다.
“상황이 좋지가 못해 죄송합니다. 제 마음 같아선 환자분이 꼭 쾌차하셨으면 합니다.”
“근데 그럴 수가 있을까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정말 좋아질 수가 있을까요?”
그 순간,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핑 도는 수척한 아내.
그녀는 옷차림도 그리 좋지 못했는데, 어깨마저 축 처져 있다.
하아, 이거 어떡하나.
보면 볼수록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26>
휴게실 안.
한쪽 테이블.
“이거 좀 드세요.”
음료수를 뽑아서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잠깐이면 됩니다. 원래 환자의 평소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문진을 하는데 이때 가족들한테도 묻기도 합니다.”
나는 그렇게 설명한 뒤 현재 권철수 환자의 상황, IPF(특발성 폐섬유증)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고.
곧이어 시간 관계상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런 증상이 언제쯤 나타났는지 혹시 기억하세요?”
한참 고민하다가 그녀는 대답했다.
“한 달 전인가? 아니지 두 달, 아니 석 달은 된 거 같습니다.”
석 달?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이전에 증상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다시 질문했다.
“흉통이 있다고 한 게 언제쯤이죠?”
“그쯤 된 거 같은데.”
“혹시 기침을 많이 하시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목소리도 이상해졌는데.”
문득 나는 권철수씨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심혈관 조영실 복도.
거길 지나가던 그.
그리고 가래 섞인 목소리로 말하던 그의 모습이 바로 기억났다.
“그럼 언제쯤 기침을 시작한 건지 기억나세요?”
“···기침은 아마 4달, 5달 전부터인가···.”
“그게 폐렴일 수도 있을 텐데. 그때 병원은 안 가보셨어요?”
“네. 그게 괜찮다고 해서. 약도 먹는다고 하고.”
“그럼 약은 어디서 처방받았죠?”
“···약국에서.”
아, 병원 진료를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혹시 그때 호흡이 가빠진다거나 몸이 축 처진다거나, 뭐 그런 이야기들은 없었어요? 그리고 그때 자주 그런 일들이 있지 않았어요?”
“···아마 그게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정도, 대충 그 정도.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나···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그때 그 외 다른 증상은 없었습니까?”
“네.”
그럼 증상이 일어난 게 적어도 4달, 5달 전의 일이다. 시점으로 본다면 5월 혹은 6월 정도가 되겠다.
“혹시 권철수씨가 하시는 일은?”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는 이것저것 설명을 시작한다.
그는 주로 현장 막일을 나간다고 한다.
정해진 직업이 없다는 것.
이른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그런 직업이었다.
“그럼 그 전에는 다른 직업이 없었습니까?”
“그게 성훈이 아빠는···.”
내 눈치를 보며 그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일 뿐.
그녀는 입을 열었다.
“···IMF 전까진 남들처럼 양복 입고 투자 회사에 다니다가··· 그때 회사가 망해서···.”
아아, 그렇지. IMF, 그 여파가 아직 다 가신 건 아니었다.
권철수씨와 그 가족들은 그 시대적 아픔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증상 질문을 할께요. 그럼··· 기침 증상 외에도 피로 증상 등, 그때 전후해서 혹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기억나세요?”
“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전 그런 건 모릅니다. 성훈이 아빠가 늘 알아서 해서.”
“그래도 문제가 있었다면 뭔가 기억나는 게 있지 않을까요?”
“그게··· 일 자체가 이틀, 사흘 정도 하고, 적어도 하루는 쉬어야 해서.”
그래서 일 때문에 아픈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아픈 건지 특별히 몰랐다는 거다.
“혹시 같이 일하시던 사람이나 친한 동료분들이 좀 있습니까?”
“네, 있긴 한데···.”
“혹시 연락처도 있습니까?”
내가 반색하며 그렇게 묻자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연락처가···.”
그러다가 뭐가 떠오른 듯 그녀의 두 눈이 약간 커졌다.
“아! 성훈이 아빠 지갑에 있을 거예요! 회사 다닐 때 하던 습관이 있어서 중요한 건 다 메모해서 지갑에 넣고 다니니까. 연락처도 거기 있을 거예요.”
지갑?
그럼 지갑은 어디?
“잠시만요.”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가짜 명품 마크가 새겨진 새카만 색깔의 낡은 가방. 그 안을 뒤지다가 그녀는 그 속에서 낡은 지갑 하나를 꺼냈다.
“어제 병원에서 돌려받은 건데, 여기 있었네요. 잠시만요.”
그녀는 그 지갑을 열고 이리저리 뒤졌고 잠시 후 명함 세 개를 꺼냈다.
그런데 얼핏 보니, 그 명함 뒷면 빈 곳마다 작은 글자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여기.”
한편, 그녀는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순간, 내 두 눈에 들어오는 깨알 같은 글자들.
생각보다 권철수 환자는 상당히 꼼꼼한 사람인 듯 친한 친구들 연락처, 자신의 계좌번호, 여권 번호, 운전면허 등록번호, 아내 주민등록번호 등등 개인정보들을 세세하게 적어둔 상태다.
그런데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특이한 명칭들이 있다.
박씨.
정씨.
윤씨.
“아, 여기 있었군요.”
일반 친구들의 연락처와는 다르게 박씨, 정씨, 윤씨는 성씨를 제외하곤 별다른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성씨만 그렇게 표시된 것. 현장에서 그렇게 부르다 보니 그렇게 적어둔 모양이었다.
나는 재빨리 펜으로 연락처를 받아적은 뒤 명함을 돌려줬다.
“감사합니다.”
“근데··· 선생님.”
“네?”
“저희 성훈이 아빠는···?”
갑자기 그녀의 두 눈이 무척 떨리고 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가늘고 긴 손가락도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다.
어제 권철수씨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부랴부랴 응급실을 찾았다는 그녀.
잠깐 최병근 교수도 만났다고 한다.
가감 없이, 있는 사실만을 전달하는 최병근 교수. 그가 무슨 말을 했을지 대충 눈에 선했다.
하긴, 최병근 교수가 틀린 말을 했을 리도 없다.
내가 아니었다면 권철수 환자는 이미 새벽에 사망했을 테니까.
지금은 특성 [회광반조] 때문에 그의 생존 기간이 조금 늘어났을 뿐이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하고 있긴 하지만···.”
방법이 없다.
폐 이식 수술 외에는.
그러나 그런 폐 이식이 바로 될 수가 없다. 절차상 불가능하다.
장기기증 희망자 등록도 해야 하고 각종 검사 데이터도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재는 등록 자체가 불가능하다. 권철수 환자가 응급실을 찾은 건 토요일이었고 지금은 일요일이었다.
근데 그러고 보면, 권철수 환자! 참 대단한 사람이 아닌가.
숨쉬기도 힘들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생존 자체가 그냥 기적적인 사람이었다.
“그럼 선생님, 혹시 병원비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남편의 안위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남편의 병원비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기계들이 잔뜩 달린 남편의 모습.
그만큼 남편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방증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만큼 병원비가 많이 나간다는 의미였다.
하아, 참 짠하네.
그런데 사실 그런 걱정 자체가······.
현재로선 전혀 필요가 없는데.
앞으로 만 하루도 살 수 없는 운명.
그게 바로 권철수씨의 현실이었다.
#
검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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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한 뒤 휴게실을 나왔다.
그리고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바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봤다.
“여보세요? 여긴 성국대 병원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나는 ‘박씨’한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사정 이야기가 곧 이어졌으나.
그러나 상대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네?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아,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고 이번에는 ‘정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역시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윤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여기 성국대 병원입니다만.”
“누구···십니까?”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가라앉아 있다.
설마 권철수씨와 같은 증상을 가진 동료?
서둘러 설명을 하고 상황을 묻자, 윤씨는 간단히 자신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게 감기가 좀 걸려 가지고. 하이고, 목소리가 좀 갔습니다.”
“혹시라도 이 증상이 예전부터?”
“네에?”
“한 달 전이나 아니면 그 이전에 이런 증상들이···.”
“하아 참나! 밤에 추워서 감기 걸린 것 갖고 무슨 한 달 전씩이나? 근데 권씨가 그렇게 아픈 게 폐 때문이었다고요?”
“···네.”
“참, 안 됐네. 그 사람, 순 일중독이었는데. 날마다 기침 콜록콜록하면서도 쉬지도 않고 일하던 사람이, 참나! 그렇게 일했으니 어디 몸이 성하겠나.”
“그럼 혹시 주변에··· 혹시 그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증상? 권씨 같은 거?”
“네.”
“근데··· 그런 게 어디 있나?”
“그래도 혹시 주변에···.”
“아아, 모르겠는데. 하! 진짜 모르겠어. 기억도 안 나고. 선생 양반! 난 기억력이 안 좋아요.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데···.”
“선생님!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한 번만 더? 으음, 알았수다. 으으음. 으으음. 근데 도무지 모르겠는데.”
“선생님, 꼭 좀 부탁드립니다!”
“보자, 보자. 그게 뭐였더라. 아! 어디서 그런 걸 본 것 같기도 한데. 아닌가? 아닌데··· 아니지. 그게 누구더라. 아이씨! 이 돌대가리! 아, 맞다!! 맞다!!”
“네?”
“기억났어! 기억났다고! 상계동 공사판에 자주 오는 최씨! 최씨도 그랬어!”
“최씨요? 어떤 증상인데요?”
“저번 달에 내가 한번 봤었나. 식은땀을 질질 흘리면서 일을 해서 내가 아프냐고 물어봤는데, 목소리가 완전히 갔더라고. 기침도 콜록콜록! 맞아. 맞아. 확실히 똑같아!”
“혹시 그분 연락처 아십니까?”
“연락처? 왜요?”
“나쁜 뜻은 절대 아닙니다. 같은 증상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꼭 병원에 와야 합니다. 사람의 폐가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 죽기라고 합니까?”
“네. 그럴 수 있습니다. 경과에 따라 다르지만, 이건 진단 이후 생존율이 절반도 안 됩니다. 만약 많이 경과됐다면 사망률이 급속하게 높아집니다.”
“하, 참나! 그 사람도 큰일이네. 자, 잠시만요. 근데 거기 진짜 병원 맞죠?”
“네. 의심스러우면 병원 연락처 바로 드릴게요!”
근데 말을 하다 보니 꼭 내가 보이싱 피싱 조직원처럼 말을 하는 것 같다.
그게 아닌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시대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점.
잠시 후 나는 최씨의 연락처를 받게 되었다.
#
“여보세요”
잠시 후 통화 연결이 또 되었다.
다행히 일요일이라 그런지 계속해서 통화 연결이 잘 되고 있었다.
“흐으··· 으으··· 네, 여, 여보세···요?”
“혹시 권철수씨, 아니 혹시 권씨라고 아십니까?”
“뭐? 궈, 권씨요? (콜록! 콜록! 콜록! 커억! 에엑!) 그, 그게 어디 무슨 말입니까?”
요란한 기침 소리가 중간에 들렸다가 그렇듯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전에 투자사 다니시다가···.”
그때부터 약간 설명을 하자, 잠시 후 짧은 탄성이 들리더니 권씨가 누군지 바로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그 권씨? 으으··· 그, 그래서? (콜록! 콜록! 콜록!) 거, 거기가 어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금 요란한 기침 소리가 쭉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또 대답했다.
“선생님! 혹시 지금 증상이··· 기침, 흉통, 그리고 특히 숨쉬기도 많이 불편하시지 않습니까?”
“그, 그거야···.”
“선생님! 그럼 혹시 손가락 끝이 갑자기 둥글둥글하게 변하지 않았습니까?”
“어···? 그, 그걸? 어, 어떻게 알고?”
깜짝 놀라는 상대의 반응.
“그렇죠? 손가락 끝이?”
“네. 그, 그렇습니다만.”
갑자기 상대의 대답 태도가 바뀐 것 같았다.
이때다 싶어 나는 또 말했다.
“선생님! 서둘러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대로 두시면 정말 큰일 납니다! 생명에 큰 위험이 됩니다!”
그러면서 당장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크게 놀라던 그는 지금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차도 없고.
요즘 거의 밖을 나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너무 힘들다면서.
“선생님! 그러시면 119구급대원을 부르면 됩니다. 그거 공짭니다. 주소 알려주시면 제가 바로 119에 연락할게요. 반드시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러고는 잠시 뒤.
나는 성국대 병원 신분을 밝힌 뒤 응급 사정 이야기를 하며 119 구조 요청을 했다.
그리고 다시 ‘최씨’한테 전화를 걸어 동일 증상을 지닌 주변 사람들의 연락처를 모두 받아냈다.
사실, 이 시대는 보이스 피싱의 시대가 아니어서.
생각보다 쉽게 개인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30분, 40분쯤 지났을 때.
병원 응급실로 ‘최씨’, ‘정씨’, ‘황씨’ 등이 차례로 실려 들어왔다.
나는 응급실로 내려와 기다리다가.
가장 먼저 통화했으나 가장 나중에 도착한 ‘최씨’를 마침내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스템 알람이 떴다.
[미션 완료!]
[축하드립니다!]
[서브 미션: 금지된 비밀, 클래스 D. 완벽히 완수하셨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경험치 500이 부여됩니다]
[중요 알림, 새로운 서브 미션이 현재 생성되고 있습니다]
[금지된 비밀(클래스 C)!]
[새 서브 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점입가경.
미션이 다 끝난 게 아니다.
단지 클래스 D에서 클래스 C로 바뀌었을 뿐.
하긴, 이번 서브 미션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업적 보상도 고작 경험치 500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클래스 C 미션은?
사실, 아쉬움이 좀 있다 보니 나는 잠시 후 수락했고.
그러자 다음 미션 정보들이 떴다.
[금지된 비밀(클래스 C)! 킬러로부터 당신을 보호할 사람을 찾으세요!]
[특전: 검은 고양이(C)]
[검은 고양이(C): 어두운 곳에서 완벽히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1회 사용]
[특전: 이격 블레이딩(S)]
[이격 블레이딩(S): 공간 장벽을 격해 조직을 절개할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1m 범위, 1회 사용]
[업적 보상: 검은 고양이(C) 영구 개방]
[패널티: 사신의 방문]
[실패: 사망!]
[이 미션은 죽음의 수렁(클래스 C) 미션과 병합 가능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알람이 그때 들려왔다.
[경고! 경고! 경고! 사신이 곧 강림합니다!!!]
<27>
으스스스.
뒷덜미가 곤두섰고.
한겨울에 물에 빠진 듯 온몸이 오돌오돌 떨려오고 온몸의 피부가 빳빳하게 경직되었다.
갑자기 숨이 가빠온다.
이게 바로 진짜 공포심인가.
나도 모르게 후다닥 뛰어서 응급실을 나왔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다가 자칫 나의 험한 모습을 보여줄까 봐 얼른 그곳에서 나온 것이다.
잠시 후 내가 달려간 곳은 본관 1층 안쪽 벤치 쪽이다.
벽 쪽으로 놓인 벤치.
다리가 후들거려 나도 모르게 그곳에 앉았고.
벽면을 등뒤로 한 채 정면을 빤히 노려봤다.
시스템 경고가 다시 들려왔다.
[경고! 경고! 경고! 사신과의 거리, 500m, 120m, 72m, 35m, 25m, 10m···!]
진짜 미치겠네.
사신이 바로 지척에 나타났다는 경고다.
내가 회귀를 했지만, 초월적 존재와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
성좌로부터 미션 제안을 받았으나.
성좌와 직접적인 대화가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시스템을 경유한 거여서 실질적인 느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사신이 강림한다고?
[경고! 경고! 경고! 사신이 곧 현신합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팔다리뿐만이 아니라 턱까지 바들바들 떨었다.
드드드드. 드드드드······.
이건 내가 의도해서 떠는 게 아니라.
내 몸이 저절로,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하고 있다.
완전히 격이 다른 신적 존재의 강림(降臨)!
그리고 그때.
순간, 눈앞으로 시커먼 거대한 막이 쏴아아 1층 본관 전체를 휘감았고 강렬한 기파를 터트리며 새카맣게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틀거리는 새카만 막에서 스르르륵! 회오리치며 무언가가 사위를 압도하며 튀어나왔다.
순간, 나타난 신적 존재.
주르르 흘러내리는 듯한 검은 천으로 뒤덮인 거대한 존재.
머리가 1층 본관 천장까지 닿아있고.
그 검은 천으로 휘감은 본신의 좌우 너비는 대략 7m, 8m가량 될 것 같았다.
한편 검은 천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두 손, 그 두 손은 가늘고 긴 무언가를 꽉 쥐고 있는데.
그리고 그 끝에 시퍼런 검정 초승달 모양의 거대한 날이 달려있다.
마치 금방이라도 목을 뎅강 자를 것만 같은 예리함.
척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척수를 마치 꼬치처럼 꿰어버릴 것만 같은 섬뜩함.
그런 싸늘한 기운이 거대한 날을 타고 자르르 흘렀고.
초월적 존재는 현신만으로도 그 강렬한 위압감을 사위에 뿜어냈다.
그런데 그 검은 천 속에 가려진 존재, 그 존재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저 새카만 음영만 그 안에 드리워져 있을 뿐.
이때 섬뜩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마치 여기서, 저기서, 천장, 바닥 곳곳에서 울리는 듯한 수많은 괴소.
그런데 바로 그때, 거대한 한 손이 앞으로 스르륵 뻗어 나왔고.
칼날 같은 거대한 손가락뼈가 갑자기 내 목을 부러트릴 듯 움켜쥐었다.
크어억!
순간, 나는 입이 벌어졌고 한 호흡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대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사지의 힘이 마치 쭉! 쭉! 뽑혀져 나가는 듯한, 천만뜻밖의 무기력한 상황에 놓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난데없이 탁! 하며 누군가 내 어깨를 치는 느낌에.
순간, 눈앞의 거대한 악몽이 휘몰아치며 흩어졌고.
저 너머 천장 밖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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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너 뭐 하고 있어?”
동시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던 중, 나는 4, 5초 만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즉시 고개를 돌려 본관 천장 쪽을 다시 쳐다봤다.
그러나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검은 사신의 존재.
“야! 김정민!”
순간, 나는 자지러지게 놀란 사람처럼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날 부른 상대를 쳐다보다가.
다시 저 멀리 허공을 응시했다.
세상에!
내가 사신을 코앞에서 봤다.
날 주시하던 사신이 친히 강림했다.
다른 초월적 존재도 아니고.
바로 사신, 그 죽음의 신이 말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자신의 흔적을 남긴 듯 시스템 알람이 차갑게 들려왔다.
[사신의 검은 눈! 당신을 향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젠장!
이제 그냥 ‘눈’이 아니라 ‘검은 눈’이라고?
‘검은 눈’이 날 쳐다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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