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26화 (26/145)

수술하는 인턴 01

#

“아차, 미안!”

“너 왜 그러냐? 갑자기 헛소리도 하고?”

“어? 헛소리? 무슨?”

“너 거기서 누워 자다가 갑자기 헛소리했잖아?”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내가 누워 자고 있었다고?

누워서?

그리고 무슨 헛소리를?

좀 전까지 나는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감히 사신과 정면에서 대면했다.

그러다 보니 저 말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문제는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우선 정색하며 내 앞에 나타난 두 사람을 쳐다봤다.

한 명은 아주 익숙한 얼굴의, 같은 인턴 신분인 의대 동기 박유리.

그녀는 현재 신경외과(NS)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여자, 도도한 기운을 흘리고 있는 여자는 신경외과 치프 윤정화 선생이다.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는, 단발머리 모범생 스타일의 윤정화 선생은 그저 가만히 서 있음에도 강렬하고 위압적인 아우라가 전신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나 윤정화 선생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리며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

“박유리, 그만 가자.”

“네. 선배님. 저기, 선배님! 여기 손수건 있는데 드릴까요?”

“아니! 됐어! 티슈로 이미 닦았어.”

차갑게 응수하던 윤정화 선생은 박유리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입구 쪽으로 걸어갔는데.

이때, 박유리는 힐끔 뒤돌아봤다.

눈짓으로 다음에 보자는 시늉, 그 시늉을 나한테 보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신과 대면하던 중, 갑자기 신경외과 여의사들이 나타났다.

마치 서로 다른 시공간이 어느 순간 서로 교차하다가, 한 시공간이 갑자기 튕겨 나간 듯한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슬쩍 들었다.

문득 나는 고개를 우측으로 돌렸다.

복도 끝에 위치한 화장실.

아! 두 사람은 저기서 나왔나 보다.

#

한편,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사실, 사신 때문에 잠시 잊고 있던 아주 중요한 일!

[금지된 비밀(클래스 C)! 킬러로부터 당신을 보호할 사람을 찾으세요!]

좀 전에 생성된 새로운 미션은 생각보다 더 중요해 보인다.

우선, ‘킬러’라는 항목이 갑자기 튀어나왔고.

[업적 보상: 검은 고양이(C) 영구 개방]

[실패: 사망!]

그렇듯 미션 실패시, ‘사망’이라는 결과지도 갑자기 튀어나왔다.

다시 말해서, 이번 미션은 앞선 미션과 다르게 뭔가 중요하고도 또 세심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졸지에 이번 미션은 내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그런 미션이 되어버렸다.

하! 도대체 이거 어떡하나···.

그렇다면 할 수 없이···.

그 사람, 내 아버지···.

에이씨, 근데 어떻게 거기에 연락해?

연락을 끊어진 지가 언젠데.

그래, 아직은 잘 모르겠다!

<28>

잠시 후 나는 흉부외과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최씨’, ‘정씨’, ‘황씨’ 등이 흉부외과로 트랜스퍼될 때까지 기다리며, 나는 조용히 스테이션 모니터 앞에 앉아 환자 차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순식간에 30분가량 지났을 때.

누군가 복도 쪽에서 후다닥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 최고은 선배다.

수술 모자까지 쓰고서 나타난 그녀.

그런데 수술복이야 흉부외과니까 당연한 거고.

근데 수술모자를 왜?

사실, 새벽에 바이크를 타던 그녀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박힌 터라 이전과 달라진 시선으로 나는 그녀를 쳐다봤는데.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최고은 선배는 날 빤히 쳐다봤다.

“김정민!”

“네?”

“오늘 점심 먹었어?”

점심?

아직 아닌데.

“아뇨. 아직···.”

“빨리 탕비실 냉장고로 가 봐.”

“네?”

“내가 샌드위치 만들어 놓은 거 있으니까 그거 같이 먹자.”

???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곧 쓴 미소를 흘렸다.

“그거 같이 먹고 우리 10분 뒤에 수술방 들어가자.”

아이씨!

“근데 무슨 일이죠?”

내가 일어서자, 그녀는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응급실 노티! 환자가 있어. 타 병원에서 트랜스퍼된 환잔데. 김재호 선배가 좀 전에 수술 들어가면서 너 추천했어. 참! 그 환자, 신경외과 한정미 교수님 지인! 한 교수님이 윤미연 교수님한테도 콜 보내신 걸 보면 아주 친한 지인 같은데.”

“그럼 환자 상태가?”

“생각보다 문제가 많아. 가면서 이야기하자. 먼저 샌드위치부터 가져와! 나도 먹어야 하니까, 같이 먹자!”

그래서 나는 즉시 탕비실로 달려갔다.

#

“이거 선배가 만들었어요?”

“어. 내가. 맛없어?”

“아뇨. 맛있어요.”

실력이 제법이다.

단짠단짠.

햄과 치즈의 조화가 일품이다.

깔끔하면서도 입에 사르르 녹는 듯한 그런 맛.

나쁘지 않다.

의국 테이블에 앉아 샌드위치를 재빨리 먹었다. 좀 전에 내가 준비해서 가져온 믹스커피의 달달한 맛과도 아주 잘 어울렸다.

“환자는 어떤 환자죠?”

“아, 다른 병원에 입원했다가 급성 심근경색이 왔대. 뇌출혈이 있었던 것 같고. 뇌수술부터 진행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우선, 뇌출혈 원인이 된 mitral regurgitation(승모판 폐쇄부전) 수술부터 하기로 했어. 윤미연 교수님이 집도하시게 될 거고.”

최고은 선배는 새카만 눈동자로 날 쳐다보며 무미건조한 어조로 조리있게 대답했다.

“다 먹었어?”

“네.”

“잠시만.”

아직 샌드위치를 다 먹지 못한 그녀.

서둘러 입에 구겨 넣었다.

순간, 양 볼이 빵빵해지는 최고은 선배의 모습을 나는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가, 얼른 일어섰다.

최고은 선배도 일어섰다.

“가자! 바로 수술 준비해야 돼. 자세한 건 수술실에서 더 이야기해줄게.”

#

잠시 후, 우리는 수술실로 들어갔고.

환자 대기실에 들러 환자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현재, 응급을 요하는 상태인 환자.

그 환자는 이미 대기실로 들어와 있었다.

신경외과(NS) 인턴과 레지던트가 그 환자를 케어하고 있었다.

“정민아!”

나는 살짝 눈이 커졌다.

또 보게 되네.

아까 본관 1층에서 봤던 그 박유리였다.

#

“너두 수술?”

“어. 그렇게 됐어.”

“서드 어시? 아니면 참관자?”

“아니. 난 세컨으로 들어갈 것 같은데.”

그러자 약간 놀란 표정을 짓는 박유리.

“세컨?”

“어. 우리도 이제 턴이 좀 됐잖아. 벌써 10월이고. 너도 이제 세컨 정도는 맡지 않아?”

흉부외과만큼이나 신경외과도 레지던트들이 아주 귀한 편이다.

수술하게 되는 외과를 회피하려는 분위기 때문인데.

그러나 그럼에도 신경외과는 그런 분위기와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흉부외과는 종합병원이 아닌, 로컬에서는 진료과목으로 맞지 않으나.

신경외과는 뇌수술 외에도 척추 쪽도 다루고 있다.

또한, 로컬 개원의 경우, 통증 치료, 재활치료 등도 맡고 있어 나름 그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신경외과에서는 레지던트 정원이 미달되는 경우가 있으나 대체로 정원을 채우는 경우가 많았고.

현재 성국대 병원 상황도 이런 추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린 레지던트 선배들이 너무 많아서··· 세컨까진 잘 안 넣어줘. 별로 할 일도 없는 서드 어시, 아니면 단순 참관 정도.”

“아!”

그 순간,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신경외과 턴을 했던 게 아마 4월이었나.

거의 초턴 시절 때, 나는 신경외과 인턴을 뛰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갑자기 인턴 로테이션이 전면 조정되면서 이런 턴 자체가 조금 꼬이는 일이 잠시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신경외과 턴을 대략 2주 정도만 하고서 소화기 내과로 넘어갔던 것 같은데.

그 때문에 아주 늦은 시기인 2002년 1월경에 다시금 신경외과 턴을 뛰어야 했다.

그런 기억들이 스스륵 떠올랐고.

그 때문에 박유리의 저 말들이 더 쉽게 이해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뭔가 싸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디선가 날 차갑게 노려보는 듯한 그런 시선 때문인데.

대체 누굴까 하며 의아해하던 바로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

바로 신경외과 레지던트 2년차 이소정 선배였다.

#

나는 잠시 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턴을 돌 때 신경외과 쪽은 생각보다 이것저것 일들이 더 어려웠는데.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그 이유인즉슨, 치프 선생 윤정화를 위시하여 정말 똑똑한 여자들이 여기에 많이 포진되어 있어서다.

특히, 그 무렵, 신경외과는 내부 경쟁과 알력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일조하듯, 치프 윤정화의 자존심이 유독 대단했는데.

그녀는 의대 졸업 당시, 수석졸업자였다.

레지던트 2년차, 눈앞의 이소정은 차석 졸업자.

수술 실력이 워낙 출중해 나중에 명의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최상진 선배, 그 역시 이 무렵 신경외과 레지던트 1년차였다.

#

한편, 이소정의 싸한 눈빛에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숙이며 의도적으로 목례를 했다.

그러자 최고은 선배와 이야기 중이던 이소정은 그제야 눈빛을 거두며 고개를 돌린다.

도대체 신경외과 선배들은 다들 왜 저럴까.

앞서 치프 윤정화 선배는 내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고 못 본 척하고 지나갔는데.

눈앞의 이소정도 전혀 다를 게 없다.

“대체 왜 저래?”

결국, 내가 슬쩍 묻자, 박유리는 목소리를 아주 낮춰 대답했다.

“요즘 우리 분위기, 좀 안 좋아.”

“왜?”

“최근에 문제가 좀 있어서. 야, 자세한 건 담에···.”

그런데 사실, 구태여 그 이야기를 나는 들을 필요도 없다.

바로 과거의 기억들이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

그래서 나는 모른 척하기로 하고 잠시 대기했다.

그리고 잠시 뒤.

최고은 선배와 이소정의 대화가 어느새 끝나게 되자 드디어 수술 준비가 시작되었다.

#

환자 김세경.

여성.

나이, 만 52세.

직업, 대기업 전무.

이 환자는 지난주 흉통 외에도 어지럼증세가 생겨, 집 근처 중형 종합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고 한다.

이후, 긴급하게 심혈관 중재술을 받았으나.

심혈관 중재술 이후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했다고 한다.

문제는 당시 그 병원 주치의의 실수로 상황판단이 늦었고.

그 때문에 뇌에 큰 타격을 받아 뇌출혈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후, 환자는 의식을 잃었고.

브레인 스터디 결과, 그 증상이 확인되자.

환자 가족들은 즉각 이곳 성국대 병원으로 환자를 트랜스퍼했다.

현재 환자는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를 달고 산소포화도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특히, 뇌출혈 문제 외에도.

급성 심근경색과 관련된 승모판 폐쇄부전(mitral regurgitation) 문제도 아주 심각했다.

사실, 이런 미스 포인트가 발생된 것은 진단 초기에 미묘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

첫 응급 수술을 했던 의료진들은 당시 환자의 좌회선동맥 폐색 증상만을 확인했고.

심혈관 중재술에만 포커스를 맞췄다.

가장 중요한 승모판 폐쇄부전 증상을 놓치고 만 거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