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하는 인턴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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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윤미연 교수는 힐끔 뒤쪽을 곁눈질했다. 아무래도 이소정 쪽을 의식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윤미연 교수는 다시 내 눈을 쳐다본 뒤, 잠시 후 자신의 손에 있던 메스를 나한테 넘겼다.
“해 봐. 조심해서.”
그 순간, 나는 차가운 메스를 손에 쥐었고, 살짝 손끝에 떨림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내 손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때, 알 듯 모를 듯, 뒷덜미로 싸한 기운이 와 닿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소정이 죽일 듯이 날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신경외과 선배들은 다들 왜 저럴까. 다들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진 것 같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잠시 뒤.
나는 일부 주변 조직 절개 및 박리를 완전히 마쳤고.
스크럽 널스로부터 받은 포셉(forcep)을 이용해 심낭을 한쪽으로 들어 올렸다.
곧이어 재빠르게 실크 실로 심낭을 고정시켰다.
그 일을 마친 뒤, 나는 물러섰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수행한 작업들을 바라보던 윤미연 교수님은 슬쩍 또 다른 제안을 나한테 던졌다.
“잘 하네. 한 호흡 어긋나지 않고 정확했어. 그럼 혹시 extracorporation(체외순환) 준비 작업도 혼자서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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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 환자는 바이탈이 너무 좋지 못한 상태라 에크모(ECMO)를 달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에크모는 그 역할이 인공심폐기와 비슷하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에크모는 단지 비수술 상태에서만 활용되는 기계다.
즉, 개흉 이후 심장 수술을 위해선 에크모에서 인공심폐기로 갈아탈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심장 수술을 위해선 심장을 거의 멈추게 하는 작업 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땐 에크모(ECMO)만으로 그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아··· 근데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나? 아직 레지던트 3년차, 4년차 급도 아닌데.”
나는 잠시 상황 판단을 해야 했다.
무슨 의도로 인턴한테 그런 질문을 한단 말인가.
사실, 좀 전에 나한테 갑자기 메스를 맡길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는데.
설마 서철성 교수님한테서 뭔가 또 다른 언질을 받기라도 했단 말인가.
근데 좀 전의 행동들을 보면 서철성 교수님한테서 뭔가 이야길 듣긴 들은 것 같았다.
윤미연 교수님의 눈초리도 좀 이상했다.
사실, 수술 중에 집도의의 두 눈은 늘 매섭고 사납다. 수술 집도의는 환자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
그런데 지금 윤미연 교수님의 두 눈에는 강렬한 호기심이 투영되어 있다.
그런 눈빛을 코앞에서 대면하게 되자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냥 날 떠보는 걸까.
아니면 정말 내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은 걸까.
어쨌든 나는 그 질문을 받았으므로 현재 인턴 김정민의 수준에 맞춰 우선 대답해야 했다.
“교수님, 적절하게 코치해 주신다면 따라갈 수는 있습니다.”
그 순간, 윤미연 교수님의 표정이 약간 이상해졌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예리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수술 집도의의 코치에 따라 인턴이 집도를 따라가는 것, 그 자체만 해도 실로 엄청난 일이다.
“정말 할 수 있어?”
윤미연 교수님은 다시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한 뒤 바로 대답했다.
“네!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기회다.
이것 역시 기회가 아닌가.
“오? 진짜야? 서 교수님 말씀이, 김정민 선생은 작은 수술 정도는 카바(커버)할 실력이 있다고 하던데? 그럼,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과정은 이미 숙지했지?”
“네. 숙지했습니다.”
“그럼 그 전에 하나만 더 물어보자.”
“말씀하십시오.”
“수술하는 중에는 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냐. 이를테면, 실수도 있고 의료과실 같은 것도 있고. 이런 것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질 자신은 있어? 없다면 절대 메스를 잡아선 안 돼. 메스를 잡을 자격이 아직 안 되는 거야.”
윤미연 교수는 조금 전과 다르게 무척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건 정말 맞는 말이다.
메스를 잡는 외과의사는 반드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외과의사의 무기는 바로 날카로운 메스다!
그러나 그 메스가 잘못되면 환자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외과의사에겐 더 큰 책임감이 따른다.
그리고 그 책임감만큼이나 외과의사는 더 귀한 걸 얻게 된다.
아주 고귀한 생명.
그 고귀한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구할 수가 있다.
온몸으로 퍼지는 그 엄청난 감동과 그 전율.
그걸 외과의사는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교수님. 그 말씀, 항상 깊이 기억하겠습니다.”
이때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되어 그렇게 대답했고.
이건 내 솔직한 마음이기도 했다.
“의왼데?”
순간, 눈이 맑아지는 윤미연 교수.
“네 태도, 음! 내 마음에 들었어.”
순간, 양쪽 눈꼬리가 슬쩍 휘어지는 듯한 윤미연 교수.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눈웃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40대 중년인 그녀는 순식간에 써전다운 무표정함으로 돌아왔다.
“그럼 내가 먼저 갈 테니까 할 수 있는 만큼 한 번 해봐.”
“감사합니다. 교수님. ”
그리고 잠시 뒤.
혼자서 집도를 이어가던 윤미연 교수는 갑자기 두 손을 멈추더니 슬그머니 손에 쥔 메스를 내려놨다.
그리고 날 쳐다봤다.
“자! 이제부터 시작할 테니까 지금부턴 집중하도록! 중간중간 메스를 넘길 테니까 잘 받아. 혹시라도 예리함을 잃게 되면 그걸로 끝! 알겠지?”
“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잠시 뒤, 그녀는 자신의 손에 있던 메스를 나한테 넘겼다. 즉, 주도권을 넘긴 거다.
이때, 놀란 듯 그 광경을 쳐다보는 스크럽 널스.
그러나 이미 나는 자리를 바꿔 위치를 잡았고.
자세를 낮춘 뒤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상대정맥과 하대정맥의 특정 부분을 혈관 압박띠(vascular tourniquet)를 이용해서 묶었다.
곧이어 상행 대동맥(ascending aorta)에 대한 처치를 윤미연 교수와 나는 번갈아 가며 진행했다.
서철성 교수님과 함께 했던 앞선 수술들.
내가 존경하는 서철성 교수님, 그리고 윤미연 교수님.
지금은 윤미연 교수님과 손을 맞추자 그 몰입감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회귀 전, 내가 그녀로부터 배웠던 각종 술기들은 이때 물 흐르듯 펼쳐지고 있었고.
마치 무아, 무아지경.
마치 그런 느낌마저 들 정도로 나는 깊이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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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모스키토와 나이프를 이용해 혈관을 물려놓거나 혹은 일부 혈관에 대한 절개를 진행한 뒤 각각 캐뉼라(cannular) 삽입도 완료했다.
중간중간 메스를 건네받을 때마다 갈수록 내 손놀림은 더 능숙해졌고.
미묘한 흔들림이나 주저함은 완벽히 사라졌다.
회귀 전에도 수없이 해 왔던 일이고.
너무나도 익숙한 절차들.
근데 이거 괜찮을까?
난 아직 인턴인데.
그러나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미 내 심장은 힘껏 뛰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수술을 진탕으로 해야 할 운명 같다.
하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그 수많은 사람들.
최대한 많이 구하고 싶으니까.
사신은 무한히 날 증오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일련의 일들이 어느 정도 끝나자, 체외순환(extracorporation)이 시작되는, 즉 심폐 바이패스를 위한 모든 준비는 거의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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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습니다!”
잠시 후, 윤미연 교수는 메스를 돌려받았는데.
자신에게 메스를 건네는 특이한 인턴, 그 인턴을 그녀는 유심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특히, 메스를 완전히 돌려받자 갑자기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무척 날카로운 블레이드가 눈앞에서 보였고.
뒤늦게 메스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어깨 위로 수술 집도의의 무게 추가 놓이며 어깨를 꾹꾹 누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손에 들린 메스.
특히, 이 메스의 무게감은 어깨의 무게감만큼이나 중요하다.
메스의 감춰진 무게, 그건 바로 환자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의 두 눈은 환자의 심장을 향해 미친 듯이 집중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본격적인 메인 집도가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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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오 플레지아(심정지액, cardioplegic solution) 주입해 주세요.”
드디어 심정지액이 환자한테 주입되었다.
이런 심정지액 주입은 심장 수술 목적 외에도 심근 보호 목적도 있다.
곧이어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장치 등도 정지시켰다.
이때부터는 체외순환기(인공심폐순환기)를 통한 심폐 체외순환(extracorporation)이 시작된다.
그렇게 윤미연 교수의 집도는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는데···.
“메스 다시 주세요!”
“모스키토! 하나 더 주세요!”
“석션!”
“다시 석션!”
“클램프 주세요.”
“메스 다시!”
“석션!”
“석션!”
“김정민 선생! 이쪽도 맡아.”
“지혈!”
“메스 주세요!”
“석션!”
“석션!”
“메스 주세요!”
“지혈!”
윤미연 교수의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수술은 빠르게 이어졌다.
<30>
메스를 스르륵! 움직이며 손상된 승모판엽을 깔끔하게 제거하는 윤미연 교수.
오로지 수술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그녀가 그렇게 집중하고 있는 사이, 수술방은 너무 조용했다.
수술 기구들이 내는 작은 소리들도 잠깐 울렸다가 이내 빠르게 사라지는데.
띠이. 띠이. 띠이. 띠이···.
한편, 고성능 환자감시장치는 환자 바이탈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나.
아직 별다른 위험 징후가 없었다.
잠시 후, 현미경을 보며 집도를 진행한 끝에 승모판엽 제거를 마친 윤미연 교수는 고개를 꼿꼿하게 들었다.
그러나 아직 일들이 다 끝난 게 아니었다.
메스의 날카로운 칼질 소리와 그녀의 짧은 호흡 소리가 계속 들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 그녀는 입을 열었다.
“이쪽 좀 봐! 이 후방 쪽! 잘 보이지? 썩은 조직 부위는 다 정리했고. 여기서 mitral valve(승모판) 부위와 이렇게 연결해주면 서로 지지가 될 수 있어. 이렇게 하면 수술 이후 환자 예후도 더 좋아져.”
그리고 또 이어지는 설명들.
“인공판막 넣고 봉합할 건데, 놓치지 말고 잘 보도록 해.”
“네! 교수님!”
나는 밝게 외치며 어시를 계속 이어나갔다.
곧이어 다시 이어지는 절개와 봉합 과정들.
윤미연 교수는 무척 집중하고 있었고.
어느덧 완전순환정지 시간이 34분을 경과할 때.
마침내 이번 수술의 목적이 달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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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교수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환자 바이탈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
그래서 흉부도 닫았다.
뇌수술이 끝날 때까지 마냥 흉부를 열어둘 필요가 없기 때문.
그리고 마무리 봉합은 윤미연 교수님이 직접 진행했다.
물론 수처 과정을 내가 옆에서 도왔고 각각 봉합들은 아주 깔끔하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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