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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30화 (30/145)

시원한 승리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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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의국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 내 눈앞에.

[한성클린]에 대한 기업 정보가 드디어 생성되며 공개되고 있었다.

사실, 좀 전까지 나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선택했다.

즉, 사신의 제안을 받고 사신의 진기한 선물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사신의 제안을 거부하고 [한성클린] 비밀 정보를 선택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나만의 선택지!

그런 선택지 앞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특히 [한성클린]의 비밀 정보가 공개된다는 점에서 나는 생각이 좀 더 많아졌던 게 사실이다.

비밀 정보?

그렇듯 사건이 뭔가 확연히 커진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데.

애시당초 단순한 선택이었다면, 아마 고민조차 없었을 것이다.

대체 어떤 의사가 감히 환자를 버릴 수 있겠는가.

특히, 4명의 목숨을 당장 가져가겠다는 사신의 제안!

물론, 내가 절대 허락할 수가 없다!

비록 이번 미션이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권철수씨와 그의 동료들은 그 이유조차 모른 채 사망했을 것이다.

내가 지나온 과거, 특히 그때 그들은 그런 운명을 절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현실이 달라졌다.

비록 권철수씨의 상황은 힘들더라도.

다른 3명은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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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클린, 비밀 정보가 생성되었습니다. 지금 즉시 열람하시겠습니까?]

순간, 내가 ‘네!’ 라고 속으로 외치는 순간, 드디어 [한성클린]의 비밀 정보가 내 눈앞으로 쫘르르 펼쳐지고 있었다.

[한성클린]

[대표: 고태진(만 30세)]

[최대주주: 한성화학]

[직원: 57명]

[매출(2000년): 256억 원]

[영업이익: 19억 원]

[주요 특징: 한성화학 산업폐수 배출과 관련하여 ‘클린TFT’ 조직이 최근 설립됨]

[기타, 한성클린 고태진 대표는 고상중 국회의원의 차남이며, 범 한성그룹가의 일원으로서 현재 한성화학 지분율이 6%대로 상승한 상태임. 그리고 고태진 대표는···]

그렇듯 이어지는 [한성클린]의 비밀 정보들.

그 정보들을 나는 가만히 쳐다보며 열람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복도에 멈춰섰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내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한성클린]의 배후, 그곳엔 [한성화학]이 있다는 말.

그리고 [한성클린] 대표 뒤에는 고상중 국회의원이 있다는 말.

근데 고상중···?

고상중 의원?

고상중.

고상중.

근데 이 이름···.

어디선가 분명 많이 들어본 이름 같고, 또 익숙한데.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미간을 점점 더 심하게 오므리게 되었다.

물론, 나는 정치 쪽에 문외한이다.

하지만 분명히 귀에 익숙한 사람.

도대체 누구였더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당장 검색이라도 할 텐데.

우선은 내 기억을 헤집고 헤집다가.

그러다가 문득 두 눈이 커졌고.

생각지도 못한 기억들이 우수수 뇌리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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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중 의원.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그는 훗날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뒤 대한민국 국무총리로 임명되는, 속된 말로 거물 정치인! 그리고 대중한테도 아주 익숙한 아주 대단한 정치인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던, 그러나 오로지 환자한테 치여 살던 나조차도 기억하고 있는 그런 정치인.

4선 국회의원.

외무부 장관.

중소기업청장

통상교섭 본부장.

기업인, 등등.

아주 화려한 이력을 갖고서 국무총리가 되었고, 이후 그는 새로운 대권 주자로 급부상까지 했다.

그는 일명, 대한민국 유명 정치인이다.

그런데 설마 동명이인?

아니지, 그럴 수 없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어디 쉬운 자리인가.

거기다가 또 생각해 보면, 차기 대권 주자 고상중 의원의 본가가 바로 한성그룹이었다.

그렇다면 [한성화학], [한성클린]과도 연결된다.

에이씨.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역시나 이상한 느낌대로 그 스케일이 커지고 있다.

비밀 정보라는 대목에서 내가 염려했던 부분인데.

역시나 상황은 그렇게 급진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금지된 비밀(클래스 C) 미션]의 진정한 의미도 이해하게 되었다.

[금지된 비밀(클래스 C)! 킬러로부터 당신을 보호할 사람을 찾으세요!]

갑자기 등장한 ‘킬러’라는 존재.

즉, 이번 사건은 절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말!

특히 고상중 의원?

아이씨, 이때 하나 더 기억이 났다.

아버지.

그래! 내 아버지!!

나도 모르게 이마를 붙잡고서 이내 인상을 팍 쓰고 말았다.

사실, 회귀 전 나는 인턴, 레지던트 과정 중에 단 한 번도 아버지한테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펠로우 과정을 밟던 중, 아버지 사망 보도를 접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때 유산 상속을 받았다.

온갖 선거에 다 끼어든 터라 빚도 많고 재산도 그만큼 많았던 아버지.

그 빚들과 상속세 등을 제하고 나자, 그때 나에게 남겨진 건 당시 거액인 30억 원가량의 유산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돈을 전처한테 맡겼다.

사업을 한다는 처가를 믿었기 때문.

물론, 나중에 그 돈마저 훌러덩 다 날리게 됐지만.

그런데 문제는, 그 아버지가 평생에 정적으로 삼았던 이가 바로 저 고상중 의원이다.

물론, 현시점의 아버지는 훨씬 더 강한 존재.

정치적 파워도 더 세다.

검찰 출신. 그리고 국회의원 4선.

거기다가 당내 계파를 이끌고 있는 중진급 거물 정치인.

이게 바로 내 아버지의 현실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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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

온갖 생각에 빠져 터벅터벅 걸으며 의국으로 향하던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김재호 선배다.

오늘 수술을 여러 개 했다는 김재호 선배, 무척 피로한 모습이다.

어찌나 바빴던지 수술 모자도 채 벗지 못한 김재호 선배.

내가 다가서자 김재호 선배는 바로 입을 열었다.

“하! 죽겠다. 주말에 이게 또 뭐냐? 너도 오늘 고생 많았지? 근데 또 일이 날아왔어.”

도대체 또 무슨 일이?

근데 선배! 지금 일요일 밤이라니까요!

도대체 일들은 왜 끊이질 않을까.

단 하루도 조용히 지나지 않고 계속 뭔가 일이 터지는 흉부외과.

무진장 바쁘고, 무진장 일들도 많다.

“야! 좀 전에 코디네이터한테서 전화가 왔어. 전남 쪽 병원인데, 하! 거기서 심장공여자가 곧 생길 거라네. 우리 적출 팀 꾸려서 오라고···.”

뭐?

“네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심장 이식 수술!”

아!

“···그럼 수여자는 확정된 겁니까?”

“확인됐어. 혈액형이나 이것저것 다 맞는 환자가 우리 병동에 있어. 순번도 딱 맞고. 김상현 환자! 알지? 결혼식 끝나고 바로 쓰러져 신부가 울고불고 그냥 생난리 났던 거. 혈액형이 특이해서 공여자 찾기 힘들다고 봤는데···.”

“선배님! 와! 그건 잘 된 거네요! 수술 바로 하겠네요?”

그러자 김재호 선배는 씩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래도 넌 바로 기뻐해 주네?”

“당연하죠. 중환자실에서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데.”

“그치? 그렇긴 하지?”

김재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가 뭐 움직이는 수밖에. 힘들어도 가야지. 지금 내려가서 받아오면 아침엔 수술할 수 있을 것 같아. 윤 교수님도 아침 수술 준비한다고 하셨고.”

근데 이것도 또 대박이다.

지금 가서 받아오고 수술은 아침이라?

하룻밤이 그냥 싹 삭제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뭐 어쩌겠냐. 바드(ventricular assistant device, VAD) 달고 있는 환자나 병간호하는 환자 와이프가 더 힘들지. 그나마 공여자라도 나타났으니까 망정이지. 암튼, 정민아, 너두 좀 이따 같이 가자!”

“네?”

“니네 동기들, 둘 다 방전됐어. 좀 전에 수술장에서 좀비처럼 해서 나오길래 둘 다 숙소 보냈어.”

아아.

“그럼 선배님도 가십니까?”

어느새 다크서클이 축 늘어져 인중까지 내려올 것만 같은 김재호 선배.

애 아빠 김재호 선배도 무척 힘들지만, 씩 웃으며 대꾸했다.

“가야지! 나라도 가야지! 윤세진, 그 새낀 오늘 오프랍시고 저녁에 싹 사라졌어. 최고은 선생은 아직 수술 안 끝났고. 펠로우(전임의) 양종규 쌤이 같이 가시기로 했으니까 빨리 준비하자.”

아아, 일이 또······ 그렇게 되나 보다.

너무 사람이 없어서.

“그럼 언제 출발하는 겁니까?”

“20분 뒤! 혹시 하던 일 있으면, 대충 마무리 짓고 1층으로 내려와. 난 화장실 좀 가려고. 야! 좀 이따 보자!”

완벽한 수술방 차림인 김재호 선배. 그는 후다닥 복도 쪽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반면, 나는 그때부터 갑자기 바빠졌다.

갑자기 지방 병원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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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의국에 도착한 나는 의자에 앉아 한동안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고 주위를 쓱 둘러봤다.

의국 내.

각 데스크마다 빈자리다.

일요일 밤의 황량한 느낌.

그 느낌이 무럭무럭 감돌았고.

문득 나는 내 책상 위 책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마를 만졌고, 턱을 괴었다.

빈틈없이 꽂혀 있는 의학 전공 서적들.

그리고 수많은 논문 자료들.

그걸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가 나는 일어섰고.

한쪽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전화기를 잡았다.

그리고 몇 번 더 고민하다가 현재 시각을 또 확인했다.

대략 10분 뒤, 나는 1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

결국 더 이상의 생각을 접은 뒤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 입력했다.

그리고 신호음이 가는 걸 들으며 잠시 대기했고.

이때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었다.

2001년 10월, 나는 과거로 돌아왔지만.

현재, 이 시점! 내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동생도 마찬가지다.

그걸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괜스레 눈물이 왈칵 났다.

그러나 억지로 참았고, 이내 귀를 쫑긋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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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아주 날카로운 듯한 젊은 남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목소리를 인지하는 순간,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접니다. 김정민.”

그러자 상대방의 말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러다가 곧 놀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김정민! 너 맞아?”

“···네.”

“야! 좀만 기다려! 내가 빨리 연결해줄게. 절대 끊지 마! 절대!”

그러고는 연결음이 바로 이어지더니.

잠시 후 신호음이 끝나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으음··· 여보세요?”

무척 묵직하면서도 무척 허스키한 목소리.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수화기 너머로 또 다른 목소리도 들려왔다.

“(의원님! 아드님 전홥니다! 김정민 군이······)”

그리고 잠깐 조용해졌다가.

곧이어 힘이 실린 듯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정민아!”

에이씨!

순간, 나도 모르게 속에서 신음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내가 인연을 끊었던 아버지.

4선 국회의원 김윤상 의원.

“···정민아···.”

통화 속의 목소리는 나의 아버지의······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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