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31화 (31/145)

시원한 승리 03

<32>

“···그러니까 네 환자들 중에 그 고상중 의원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알겠다! 그래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네.”

“그럼···?”

“아,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번 일은 ‘거래’입니다. 저는 보디가드가 필요했고, 그 대가로 정보를 제공한 것뿐입니다.”

“음. 알겠다!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우선 그렇게 생각하자. 근데 고상중, 그 새끼! 결국, 빈틈을 드러냈어! 아, 알았다! 그 정보 정말 고맙다. 내가 긴히 쓰겠다.”

그러고는 잠시 뒤, 전화를 끊어졌다.

하! 나는 길게 탄식했다.

이렇게 전화를 하고야 말았다.

정말 긴 세월인데.

회귀 전에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그러나 지금은 살아계신다.

왜 하필 이 시점으로 회귀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통화를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요란한 시스템 알람이 떴다.

[미션 완료 ······100%!]

[축하드립니다!]

[미션, 죽음의 수렁(클래스 C)을 완벽히 완수하셨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베살리우스의 눈(C) 특성이 영구 개방됩니다]

[서브 미션 완료 ······100%!]

[축하드립니다!]

[서브 미션, 금지된 비밀(클래스 C)! 완벽히 완수하셨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검은 고양이(C) 특성이 영구 개방됩니다]

[베살리우스의 눈(C): 병변 부위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성공 확률 80%]

[검은 고양이(C): 어두운 곳에서 완벽히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습니다]

[미션 병합 원칙에 따라 두 개의 미션이 동시에 달성되어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특별 보상: ??????]

[최선의 선택을 과감하게 하는 당신에게 무한한 경의와 지지를 보냅니다!]

#

[특별 보상: ??????]

[특별 보상 정보는 즉시 공개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 보상이 바로 오픈되고 있었다.

[특별 보상]

[특전: 은빛 바늘]

[전신 외상을 완벽히 치유할 수 있습니다. 제한 조건: 1인 1회]

오오!

나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뜻밖의 보상이 나왔다.

다만 아쉬운 점!

[전용 특성]이 아니라 [특전]이 나온 거다.

[특전]은 기한 제한 혹은 제한된 사용 등을 의미한다.

이번에 나온 [은빛 바늘] 특성은 일회용.

그래서 따로 등급 표기가 없다.

단 한 명에게 한정된다는 제약까지 걸려 있고.

그럼에도 전신 외상을 완벽히 치유할 수 있다는 건 무척 매력적인 능력임이 틀림없다.

이게 만약 [전용 특성]으로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너무 하이클래스 능력이 되나.

그렇듯 잠시 나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1층에서 만나기로 했었지.

황급히 전화기를 잡았다.

“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나는 의사가운 위에 잠바 하나를 더 걸친 뒤 황급히 뛰어나갔다.

#

그로부터 잠시 뒤.

우리를 태운 병원 응급 수송 차량은 서울 톨케이트를 빠져나왔고.

쌩! 하니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렸다.

“그럼 좀 더 밟겠습니다!”

잠시 후, 차량 운전사는 그렇게 말하며 액셀을 힘껏 밟았다.

개조된 응급 수송 차량의 뒷좌석에 앉은 나.

이때, 차량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사실, 좀 전에 다시 연락이 왔다.

뇌사자 도너(donor, 장기 기증자)에 대한 하베스트(harvest), 즉 장기 적출이 이제 가능하다는 연락!

펠로우 양종규 선생은 그 연락을 휴대폰으로 받은 뒤 좀 더 속도를 높이자고 했고.

그래서 응급 수송 차량의 속도는 그때부터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

“김재호 선생, 김정민 선생, 다들 눈이나 좀 붙여. 광주까지 도착하려면 시간도 있으니까 조금 자라고.”

조수석에 앉은 펠로우 양종규 선생. 그는 그렇게 말했고.

“그럼 좀 쉬겠습니다.”

김재호 선배는 간단히 답한 뒤 바로 눈을 감았다.

한편 나는 작은 창문을 통해 어두운 바깥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저절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로 나는 잠깐 머릿속을 정리했다.

[전용 특성]

혼미(B)

갈렌의 나이프(B)

이격 블레이딩(C)

예술자의 손(C)

사신의 낫(B)

베살리우스의 눈(C)

검은 고양이(C)

[특전]

은빛 바늘(1회용)

현재, 각종 일들이 많았고 각종 보상들이 겹치면서 내 [전용 특성] 숫자도 그렇게 늘어났다.

그런데 대충 살펴보면 [전용 특성] 중에 아직 (S) 등급이 없다.

좀 더 분발해야 하나.

나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보이다가.

그러나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힘이 사르르 빠지며, 저 달콤한 잠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

“와, 저놈 봐! 신나게 고네.”

뭔가 시끄러운 소리에 인상을 쓰다가 김재호는 눈을 떴고, 이내 놀란 듯 옆을 쳐다봤다.

조수석에 앉은 펠로우 양종규 선생. 그는 이때 슬쩍 몸을 틀어 김재호를 응시했다.

“야, 재호야. 인턴 좀 잠도 재우면서 부려 먹어. 전쟁통인 줄 알겠다.”

높임말 대신에 친근하게 말하는 양종규 선생.

“흉부외과가 진짜 힘들긴 힘들지. 우리 인턴 선생님, 진짜 힘든가 보다.”

김재호는 쓴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근데 너 때보다··· 지금 인턴들이 더 힘들지?”

“네. 상황이 좀 그렇게 됐습니다. 레지던트 숫자가 워낙 줄어서.”

“하아! 근데 그래도 어쩌겠냐. 흉부외과가 인기가 없는데. 참! 저 친구 쓸만해? 아까 윤미연 교수님 만나 뵀는데, 저 친구 칭찬 엄청 하시던데.”

“아, 들으셨군요? 요즘 엄청 잘나가는 친굽니다.”

“잘나간다? 근데 잘나가는 정도가 되려면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정도는 잡아줘야 하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몰라? 무슨 말인지?”

김재호는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슨 말이래.

그러자 양종규 선생은 다시 고개를 돌려 김재호를 쳐다봤다.

“진짜 몰라?”

“네?”

“윤미연 교수님 수술!”

“네?”

“아니, 윤 교수님께서 그 일을 맡겼더니 곧잘 잘 해냈다는데.”

순간, 미간 사이에 깊은 주름이 생길 정도로 두 눈에 힘을 팍! 주는 김재호.

“설마 심폐 바이패스 때 들어가는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그거! 그거 아니고선 어떻게 total circulatory arrest가 돼?”

이때 김재호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양종규는 피식 웃었다.

“너 몰랐구나.”

“하지만 이 친군, 그 정도 수준이 아닐 텐데요?”

“나도 몰라. 다만, 윤 교수님께서 그러셨어. 근데 윤 교수님이 뭔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

김재호는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다. 바로 믿기가 힘들어서.

그걸 했다면 김정민의 실력은 자신의 실력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친구, 정말 대단한 친군가 봐. 담에 불러서 내 논문 작업이나 좀 도와달라고 할까?”

그러자 바로 그 순간, 김재호는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무슨 말씀입니까!! 선배님!! 대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왜?”

“죄송한데, 저 친구 졸라 할 일 많습니다!”

“누군 할 일이 없냐?”

“설마 저만큼 많습니까!!”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며 김재호를 노려보는 양종규 선생.

그러나 이내 그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고, 곧 자세를 바로 했다.

“알았다. 알았어.”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래. 알았어. 손 뗄게. 근데 저 인턴 선생님, 대체 앞으로 어떤 과를 지망한대?”

“······.”

“아직 몰라?”

“네.”

“그럼 잘 구슬려 봐. 근데 졸라 바쁜 과에 올 생각이나 있을까? 너도 처자식 얼굴 못 본 지 꽤 됐지?”

“···저는 토요일에 잠깐···.”

“야! 잠깐이 뭐냐? 그게 사람 할 짓이냐!”

드르릉! 드르릉!

아주 요란한 소리.

순간, 씩 웃는 두 사람.

“야, 재호야! 한 명이라도 레지던트 더 받아. 그래야 너도 편해지지. 우리 그만 말하고 좀 자자. 금방 광주 도착하겠다.”

바로 옆에서 탱크가 지나가는 듯한 아주 요란한 소리가 들리지만.

옆을 힐끔 쳐다보던 김재호는 이내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고.

곧이어 잠을 청하게 되었다.

응급 수송 차량은 그사이 캄캄한 기흥 IC를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33>

그리고 그로부터 2주가량의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고······.

쿵! 쿵!

“대표님!! 에이씨! 대표님!!”

쿵! 쿵!

“대표님!! 큰, 큰일 났습니다!! 빨리 좀 나와 보셔야···. 대표니-임!! 대표님!!!”

쿵! 쿵! 쿵!

“제발!! 대표님!! 제발, 대표-님!!!”

아름다운 여비서와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던 [한성클린] 고태진 대표.

그는 정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대표실 바깥 문을 총무팀 팀장이 요란하게 두드리고 있다. 절대 자신의 허락 없이는 들어오지 말라는 지시 때문에 총무팀 팀장은 계속 거칠게 문만 두드리고 있다.

“아, 존나 시끄럽네. 대체 뭐야? 존나 시끄럽게!”

고태진은 황급히 소파에서 일어섰다.

“야! 비켜! 너도 빨리 입어!”

자신의 허벅지를 잡으려는 여비서의 손을 뿌리친 뒤 고태진은 한옆에 놓인 큰 전신 거울 앞에 섰다.

풀어 헤쳐진 와이셔츠를 재빨리 바로 입었고 한쪽에 벗어둔 바지도 서둘러 입은 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브래지어를 착용한 여비서.

하얀 블라우스를 입자 그녀의 하얀 어깨선이 스르륵 감춰진다.

그러나 코끝에 아직 남아 있는 진한 살 냄새에 고태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고, 그러다가 고함을 빽! 질렀다.

“최 팀장! 대체 왜 그래요? 씨!”

“대표님!! 정말 큰일 났습니다! 대표님!!”

“아이씨, 돌아버리겠네! 왜 그래요? 왜!!”

어느새 정장 치마까지 다 갖춰 입고 일어선 여비서.

그걸 확인한 고태진은 문 쪽으로 다가가 세차게 문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대표님! 진짜 큰일 났습니다! 검찰!! 검찰 수사관들이 지금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서···.”

“뭐!”

순간, 정말 깜짝 놀란 고태진은 고개를 쏙 내밀며 문밖을 쳐다봤다.

긴 통로.

통로 끝에 위치하고 있는 넓은 사무 공간.

그런데 그곳 칸막이 데스크마다 지금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검찰? 검찰이 왜!!??”

“대표님, 막무가내로 들이닥쳐서, 곧 여기도···.”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비켜요!! 비켜!! 수원지검에서 나왔습니다!!”

아주 거친 목소리.

그리고 아주 딱딱한 목소리가 곧 들리며 고지가 이어졌다.

“[한성클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고 지금 이 시각부터 영장을 집행하겠습니다! 지금 즉시 협조 부탁드립니다! 자! 자! 뭐든 잡지 말고, 그냥 그대로 물러서 주세요! 조금이라도 헛짓거리하다간 법적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 빨리 물러서요!! 거기, 뭐해!!!”

“아니, 검찰이라고요? 그 영장 좀 봅시다!”

“보세요! 자! 하자 없죠? 야! 야! 김 수사관! 빨리 움직여! 너희도 빨리 움직여!”

빈 상자를 들고서 우르르 뛰어들어오는 검찰 수사관들.

삽시간에 그들은 넓은 사무실을 장악했고.

일부 수사관들은 대표실 쪽으로 뛰어왔다.

그사이 다른 수사관들은 각 작은 사무실로 뛰어들어갔고.

탕비실 외에도 회의실마저 서둘러 점거하고 있었다.

#

“야이, 씨팔! 대체 저게 뭐야.”

고태진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황급히 자신의 데스크로 뛰어갔다. 그리고 서둘러 전화기를 잡았다.

그 순간, 아주 젊은 수사관들이 우르르 대표실로 뛰어 들어왔고. 곧이어 검정 정장 차림의 여자. 늘씬한 체격에 반듯한 이마, 표정이 잔뜩 굳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 여자의 두 눈은 아주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고태진 대표님! 본인 맞습니까? 저는 수원지검 강지연 검삽니다.”

강지연 검사?

고태진은 잠시 눈이 동그래졌다가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건 강지연 검사한테 대답한 게 아니다.

전화기를 통해 누군가와 바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아버지! 접니다! 지금 황당한 게, 갑자기 수원지검에서···. 네! 네! 수원지검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서··· 네! 제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네! 네! 빨리 사람 좀 보내주세요! 빨리요!”

#

고상중 의원

#

“고태진씨!”

그 순간 고태진은 전화기를 즉시 내려놓고는 인상을 팍 썼다.

“아이씨, 전화도 못 하나? 알았어. 알았다니까! 참, 수원지검 강지연 검사라고 했죠?”

“네! 지금부턴 공무 집행에 적극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이씨!”

순간, 다시금 신경질을 내며 인상을 팍 쓰는 고태진.

그 순간, 그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그의 얼굴은 더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다.

특히, 대표실 우측 벽 쪽!

거기엔 빌트인(built-in)이 되어진 큼직한 금고가 있는데.

그곳을 곁눈질하는 고태진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그 금고 속에서는 자신이 비자금으로 쓰려고 모아둔 달러도 있지만, 회사 이중장부 또한 그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씨팔. 왜 검찰에서? 왜 갑자기 검찰이 튀어나와? 아이씨, 미치겠네. 씨팔! 갑자기 왜 이래? 존나 미치겠네! 근데 저거 뽀록나면 큰일인데. 안 되겠다.’

“야! 시팔! 다 멈춰!!”

그렇게 외치며 고태진은 갑자기 쏜살같이 강지연 검사의 앞으로 달려들었고.

그러자 수사관들은 즉시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고태진은 멈추지 않고 발악했다.

“야! 영장 가져와! 영장!! 가져오라고 시팔! 야! 시팔! 나도 영장 봐야지! 움직이지 마!! 시팔! 영장 가져오라고!! 영장!!”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고 행패를 부리는 고태진.

그 바람에 한발 물러서던 강지연 검사는 씩 웃었다.

딱 보니 지금 시간을 끌려는 수작.

더군다나 좀 전에 그가 전화를 한 곳도 대충 알 것 같다.

제보를 받은 뒤 지난 2주간 신속히 내사가 이루어졌고.

그래서 전체 흐름을 대략 파악한 상태다.

“고태진씨!!”

강지연 검사의 목소리가 사납게 울렸다.

“영장 가져오라니까! 시팔! 내가 누군지 알아? 너희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지랄이야!! 지랄!! 씨-팔!!”

하, 머리야.

아직도 저러는 인간이 있네.

저것도 병이다.

병!

하지만 얼마나 당황했으면 무턱대고 저럴까.

“영장, 여깄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자마자 냅다 잡아 찢어 버릴 것 같은 고태진의 모습에 강지연 검사는 다시 물러섰다.

그리고 싸늘하게 외쳤다.

“고태진씨! 지금부터 계속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

“체포? 씨팔! 무슨 체포?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씨팔!”

그렇듯 막무가내로 고태진은 욕설하며 발악했고.

이때 강지연 검사는 즉각 눈짓했다.

수사관들은 즉시 고태진을 제압했고.

철컥!

곧바로 수갑까지 채워진 뒤 고태진은 대표실 밖으로 질질 끌려나갔다.

“야아아!! 씨바알!! 시바알!! X까! X까라고!!”

괴성을 빽빽 지르는 고태진.

전혀 회사 대표답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고태진의 얼굴에는 단 한 치의 부끄러움도 수치도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상황은 신속히 정리되었다.

물론, 그래 봤자 몇 분의 시간을 끌었을 뿐.

큰 지장이 없다는 걸 그는 모르는 모양이다.

강지연 검사는 비로소 씩 웃는다.

입가에 감도는 묘한 미소.

이번 압수수색 영장은 전격적으로 집행되었고.

정말 시기적절하게 급습한 게 성공한 것 같다.

저렇듯 [한성클린] 고태진 대표가 발악하는 걸 보면 분명 여기엔 구린 것들이 아주 많다는 말.

“저기부터 오픈하죠.”

“네! 검사님!”

강지연 검사는 고태진이 아까 의식하던 금고를 먼저 가리켰고.

팔짱을 끼고서 잠시 지켜봤다.

덩치 좋은 수사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금고를 강압적으로 열기 위해 각종 기구들을 가져왔다.

곧 금고는 열릴 것이다.

“검사님, 근데 저 고태진 새끼! 좀 멍청한 것 같은데요?”

김창수 검찰 수사관.

그는 슬쩍 다가와 뭔가를 강지연 검사한테 건넸다.

그걸 건네받은 강지연 검사는 다시 씩 웃는다.

휴대폰이다. 고태진의 휴대폰.

좀 전에 몸싸움이 생길 때, 김창수 수사관이 슬쩍 챙긴 거다.

나중에 항의하면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웠다고 하면 될 터.

“제 생각엔, 멍청하기보단 그냥 겁이 없는 거죠. 든든한 뒷배도 있으니까. 그런데 다행히 저런 유형의 인간들은 더 털기가 쉽죠. 아, 김 수사관님! 빨리 정리하죠!”

“네! 검사님!”

잠시 후, 강지연 검사는 고태진의 휴대폰 통화 내역을 확인한 뒤,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즉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고했다.

“네. 부장님! 생각보다 괜찮은 것들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되는 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네, 네. 네···.”

그렇게 통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

한편 그 시각.

[한성화학] 서울 본사, 경기도 태성시 [한성화학] 공장에도 검찰 수사관들이 전격적으로 들이닥쳤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검찰의 압수수색!

그리고 그 소식을 듣게 된 고상중 의원은 잠시 의정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특히, 국회 소위원회 토의 중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고상중 의원.

의아해하는 동료 의원들이 쳐다봤으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그는 아무 말 없이 국회 소위원회 회의장을 빠져나왔고.

그 즉시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한편,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냉랭한 기운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런 고상중 의원을 수행하는 보좌관들.

그들은 즉시 옆으로 따라붙으며 이것저것 소식들을 전해왔다.

“의원님, 지금 확인 중인데, 한성클린, 한성화학 공장·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 중이라고 합니다. 고석훈 사장님께서 좀 전에 연락을 주셨고, 김호균 변호사님도 연락 주셨습니다.”

“의원님! 좀 전에 대검(대검찰청) 김 부장님께서 전화 주셨고. 이유 파악한 뒤 곧 전화해 주신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복도에 멈춰서는 고상중 의원.

어느덧 희끗희끗해진 머리칼.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고상중 의원은 순간 입꼬리가 일그러졌다.

중년임에도 이목구비가 준수해서 여성 유권자들한테 큰 호감을 주고 있는 그.

그러나 지금 그는 그 입 모양이 심하게 비틀려져 있었다.

“대체 어떤 새끼들이 감히! 한성화학을 뒤져? 개새끼들!”

전격적인 압수수색.

[한성클린] 한 곳이 아니라 [한성화학]까지 검찰이 타점으로 삼았다.

누가 봐도 사건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고상중 의원은 다시 빠르게 걸었고.

잠시 후, 국회 내,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데스크 앞에 앉자마자 그는 가장 먼저 대검찰청 김학신 부장검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접니다. 고상중.”

그러자 바로 들려오는 약간 톤이 높은 목소리.

“아! 의원님! 저도 좀 전에 연락받았습니다. 지금 부랴부랴 확인하고 있는 중인데··· 잠시만요.”

그러고는 잠시 조용해졌다가

김학신 대검 부장검사의 아주 거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정확하게 식별하기 힘든, 뭔가 화를 낸 듯한 목소리다.

그리고 다시 김학신 대검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급히 확인하다 보니···.”

“도대체··· 흐음,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고상중 의원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분명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상중 의원의 두 눈썹은 마치 큼직한 송충이 두 마리가 거칠게 꿈틀거리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의원님! 아직 확실친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저기 빠르게 확인해 본 결과, 아무래도 박충식 검사장 쪽에서 움직인 것 같습니다.”

“박충식 검사장?”

“네! 그쪽 팀에 제 후배 검사 한 명이 들어가 있는데, 듣기론 한성화학 공장과 관련하여 제보가 있었다고 하고. 그래서 은밀히 내사가 진행됐던 모양입니다.”

“으음.”

“특히, 이번 사건과 관련된 환자들도 확인되면서 압색 영장이 즉각 발부됐고 즉각 집행된 거 같습니다.”

“환자? 환자라고 했습니까?”

“네! 그게, 제가 듣기론 한성화학 공장에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폐수 배출 문제나 뭐, 유독 약품 처리 문제 등등···. 근데 그 일대 주민들이 여러 번 민원을 넣었던 같습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아마 뭔가 미리 손을 쓰다가 사람들이 좀 다친 것 같고···.”

“음.”

“근데 그게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 확인단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요?”

“의원님! 근데 박충식 검사장이 달라붙었다면 이번 일은 좀 더 커질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건, 이유가 뭐가 됐든 수사할 빌미를 주게 되면 다 터져 나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경우가 있습니까?”

“음.”

“특히, 그쪽에서 회계 장부까지 들여다보면 뭐든 날릴 가능성도 크고. 차라리 초전에 막든지, 그게 아니면···.”

“그게 아니면?”

“이런 말씀 드리기 좀 송구스러운데, 차라리 그냥 당분간 손절하시는 게 맞지 않습니까? 이번에 그 일을 맡은 이광세 부장검사도 좀 일을 크게 벌이는 스타일입니다. 한성화학, 멀리는 한성그룹까지 타격 줄 생각으로 덤빈다는 귀띔도 있고. 앞으로 난처해지시는 것보단 미리 털고 가시는 게···.”

“김 부장님!”

“네?”

“제 차남. 차남이 한성클린 대표입니다.”

“아···.”

“저희 한성화학을 이 시점에서 갑자기 압색했다는 건, 제 생각엔 결국 내년 대선이 있기 전! 저 같은 참모진을 치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아아, 그건···.”

“김 부장님! 그런 데도 저더러 손을 떼라는 말씀입니까?”

“으음! 의원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 생각은 우선 그게 좋겠습니다.”

“······.”

“구태여 일을 키울 필요가 없습니다!”

“키울 필요가 없다?”

“네! 한성화학 사정 같은 건 몰랐다고 딱 잡아떼면 그만일 테고. 다만, 제가 지금 코멘트할 수 있는 건 한성클린에서 특별한 게 없다면 제 선에서 한성클린 정도는 어쩌면 차단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뭔가 이상한 게 나오면 좀 골치 아파집니다.”

“그럼··· 지금 단계에선 차단할 수 없습니까?”

“그게··· 할 수도 있지만,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압색 영장까지 나온 마당에 즉각 대응은 힘들 것 같고. 하지만 증거수집 및 확인단계니까 제가 좀 관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지금으로선 상황 좀 보고, 그런 뒤에 대응하는 게 맞습니다.”

“음.”

“그리고 사람이 다쳤다는 게 중요한데, 확인된 바로는 사망자도 여럿 있었습니다.”

“사망자???”

“네! 자세한 건 파악되는 대로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좀 더 지켜보고, 필요하다면 제가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김 부장님! 아시다시피 저는 이런 거 절대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고상중은 전화를 끊었다.

언제부터인가 화가 날 때면 왼쪽 눈을 찡그리는 버릇이 생겼는데···.

지금 고상중 의원은 쉴 새 없이 왼쪽 눈을 찡그렸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박충식 검사장?

단순 제보 사건?

근데 사람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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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프리미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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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뭐가 느낌이 좋지 못하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럼에도 더 중요한 건, 감히 누군가가 자신의 홈그라운드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 후, 고상중 의원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아까 정신없이 아들 고태진과 통화했지만, 다시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잠시 후, 신호음이 쭉 가다가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들리는 목소리, 여자 목소리다.

“고태진. 고태진 바꿔!”

그러나 잠시 조용했다가 다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정상 전화 받기가 힘들어서··· 혹시 전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제가···.”

이때, 고상중 의원은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다.

씨발, 이 새끼는 왜 자기 휴대폰을 다른 사람한테 맡겨?

이렇게 바쁜 시국에.

할 수 없다.

고상중은 재빨리 하고 싶은 말들을 마쳤다.

“김호균 변호사가 곧 갈 테니까 정신 바짝 차리라고 전해! 그리고 최 부장한테 말해서 내부 단속 단단히 하도록 하고!”

그러고는 전화를 탁! 끊었다.

그리고 잠시 자신의 이마를 만지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상중 의원은 이번에는 [한성화학] 고석훈 사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모든 게 정신없이 바빠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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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31일 수요일.

어느덧 꽤 시간이 흘러 10월의 마지막 날.

점점 더 세상엔 가을의 기운이 더 짙어지고 있다.

더 높은 창공 아래, 한낮 날씨는 아주 쾌적했다.

특히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

그래서 감수성도 예민해지는데.

오전 수술을 마친 뒤 나는 오후 3시 무렵 뒤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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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왜 그렇게 힘이 없어?”

갈수록 살이 쭉쭉 빠지고 있는 이동욱.

녀석은 눈 밑에 다크서클이 쭉 길어진 모습인데, 그 모습을 하고서 고개를 들었다.

“만 이틀··· 나 3시간 잤다.”

3시간?

휘유.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것저것 음식을 배식받아왔지만.

몸에 기력이 없으니 식욕도 싹 사라진 거 같다.

눈앞의 이동욱은 그저 가만히 식판을 쳐다보고 있다.

“진짜 죽겠다. 다른 턴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어려워. 하아, 도대체 넌 어떻게 버텨?”

이동욱은 날 쳐다보며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근데 나라고 해서 뭐 별다를 게 있을까.

그저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참! 좀 이따가 은행 다녀올 건데, 상황 생기면 바로 콜 날려. 아까 김재호 선배한텐 허락받았어.”

“은행? 무슨 일로?”

의아해하며 쳐다보는 이동욱.

“좀 할 일이 있어서.”

“설마 예금? 적금? 그런 거? 신경 쓸 돈도 있어?”

“돈은 무슨? 우리 월급이 얼만데? 야! 빨리 먹고 가자.”

대충 얼버무린 뒤 나는 서둘러 식사를 했다.

사실, 의사 일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이곳 인턴 생활에 적응이 된 터라.

이제부턴 직접 내 인생을 챙겨 볼 생각이다.

구태여 처가 따위에 얽매일 필요도 없이.

그래서 먼저 투자금부터 확보해 둘 생각인데.

즉, 아버지가 남기는 유산 없이도 나는 모든 걸 내 스스로 이룰 생각이다.

나한텐 회귀 프리미엄도 있다.

그러니 대체 뭐가 무섭겠는가.

나는 서둘러 점심을 먹었고.

잠시 후 숙소에 들러 옷을 대충 갈아입은 뒤 병원 앞 택시 정류장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34>

“삼호증권으로 가 주세요.”

택시에 타자마자 나는 목적지를 이야기한 뒤 바로 눈을 감았다.

김재호 선배나 이동욱한테는 은행으로 말했지만.

나는 지금 증권사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잠깐 눈을 붙여 잠을 잘 생각.

그래서 바로 눈을 감았지만, 막상 잠을 잘 수가 없다.

회귀 후 첫 투자를 시작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과연 새로운 미래를 위해 나는 어떤 투자를 해야 할까.

사실, 이건 정말 많은 생각들을 불러오게 하는 그런 주제였다.

부동산 투자?

상가, 토지 투자?

주식 투자?

달러 투자?

금 투자?

채권 투자?

그것도 아니면 아주 위험한 선물·옵션 투자까지?

특히, 회귀한 사람으로서 내가 이 회귀 프리미엄을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대체 무엇일까.

이 시기는 아주 중요하고.

그래서 모든 걸 아주 영리하게 잘 구상해야 한다.

이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회귀 프리미엄 같은 건 그저 먼지처럼 흩어질 테니까.

근데 문제는······.

현재 내가 기억하는 이 시기는 증시의 암흑기라는 것.

즉, 2000년부터 시작하여 세계 증시는 끝없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한국은 IMF 시대를 거쳤고 어느덧 회복기로 나아가고 있으나 여전히 경제 회복 전망이 좋지만은 않다.

한편, 미국 쪽도 그리 만만치가 않다.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테러로부터 촉발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미국-이라크 전쟁.

그런 무시무시한 전쟁 이슈 외에도 각종 다양한 이슈들이 이 당시엔 꽤 많았다.

유가 급등.

반도체 가격 급락.

미국 IT 닷컴 주가 거품 사태.

경제 둔화.

그리고 인플레이션 위험 등등.

이렇듯 각종 이슈들이 많았고.

그 여파는 세계 경제를 덮쳤다.

일본 닛케이지수도 무너졌고.

특히, 한국은 더 심각한 상황.

2000년 당시 세계 1위의 증시 폭락국은 바로 한국이었다.

주식에 대해 특별한 관심조차 없었던 나조차도 이런 사회적 현상을 기억할 정도인데.

당시, 연초 대비 대략 마이너스 50%를 기록한 증시 대폭락국은 바로 한국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이 시점은?

2001년 10월의 현시대는?

그런데 이것저것 현재도 문제가 많다.

여전히 낙제점인 세계 증시.

그렇다고 뭔가 뾰족한 방법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상승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은 더 길어질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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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다 왔습니다.”

순간, 눈을 떴다.

어느덧 삼호증권 인근 도로에 정차한 택시.

나는 얼른 지갑을 꺼내 요금을 지불했고, 곧장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잠시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서둘러 삼호증권 지점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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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손님!”

이때, 누군가 인사하면서 밝게 맞아줬는데.

나는 가볍게 마주 인사한 뒤 안으로 들어서며 좌우를 살폈다.

순간, 가장 눈에 띄는 건, 삼호증권 지점의 한쪽 객장 위쪽.

넓게 펼쳐져 있는 주가 시세판이다.

그리고 그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몇몇 사람들.

이 무렵, 증권사 지점의 일상적인 풍경이라고 해야 하나.

그걸 직접 보니까 뭔가 감회가 새롭기도 한데.

그러나 현 시각 기준, 내부는 생각보다 한산한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증권거래 업무가 끝난 시각이라서.

이 무렵 주식 거래는 그 마감 시간이 오후 3시였다.

그래서 지점 내부는 한산한 편인데···.

“손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한편, 내가 주변을 살피며 가만히 서 있자 누군가 나한테 붙었다.

남자 안내원.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미국 주식 투자, 이쪽 좀 알아보려고요.”

“아, 해외 투자요? 그럼,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곧이어 그 직원의 안내에 따라 나는 한쪽 데스크 쪽으로 이동했다.

“먼저 오신 손님이 있으니까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래서 한쪽 구석, 비어있는 대기석에 앉았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분 뒤.

“저기, 다음 손님!”

데스크 직원이 웃으며 나한테 손짓했다.

나는 즉시 일어났고 데스크 앞에 앉았다.

“손님, 어떤 걸 도와드릴까요?”

인상이 꽤 좋은 영업 직원이다.

이때,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내가 지금 원하는 것들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그걸 가만히 듣던 직원.

“아, 그럼 먼저 간단히 설명해 드리면, 해외 주식 투자 같은 경우, 저희 삼호증권에서는 전화 주문 형태로 투자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고객님께서 전화로 요청을 하시면 그때 그 주문에 맞춰 현지 법인을 통해 현지 주문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혹시 온라인 거래 같은 건 불가능합니까?”

“그게 아직은 좀 힘듭니다. 국내 주식 투자는 HTS를 이용해 집에서도 가능하지만. 실시간 해외 투자 방식은 아직 도입되지 않아 저희는 지점 방문 및 전화 주문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증권사들도 그게 불가능합니까?”

“네.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게 가능한 증권사는 현재 없습니다. 실시간 접근이 안 되는데 HTS로 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거기까지 확인한 뒤 나는 비로소 본론을 이야기했다.

“근데 저는 일반 주식 투자보단, 주로 선물·옵션, 이런 투자 쪽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가능합니까?”

순간, 흠칫 놀라는 직원.

아직 미국 주식 투자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점.

일반인들한테 더 생소한 개념인 선물·옵션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자 그는 좀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그는 선물·옵션의 위험성을 아주 거창하게 설명했다.

그러고는 직원은 다시 물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네.”

주식 초짜인 내가 ‘위험도’ 만점인 선물·옵션 투자라···.

정말 미친 짓이겠지만.

그러나 내 대답은 그렇듯 아주 가벼웠다.

“아, 좋습니다. 이런 투자 같은 거 혹시 좀 해 보셨어요?”

이때,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한 정보.

실상 그 미래는 환자와 주변 사람들과 관련된 것들이 태반이다.

이런 주식이나 무시무시한 선물·옵션 쪽이 아니었다.

이런 투자와 관련해서는 불확실한 미래.

그것만 따지고 보면 나는 보통 사람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냥 물러설 수도 없다.

그래서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좀 더 크게 보면서 투자하는 거다.

이를테면, 한국 우량주를 택해서 긴 투자를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방법은 바로 한 나라의 주가지수, 그쪽에 전격 투자하는 거다.

특히, 덩치가 어마어마한 미국 시장.

이럴 땐 세부 종목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가 따로 필요 없다.

특히, 내가 기억하는 2001년과 2002년의 시대.

이 시대는 증시 불황기다.

그래서···.

“나스닥지수 쪽이 좋겠고 풋옵션(주가 하락시 수익을 내는 구조)! 저는 이쪽으로 투자하고 싶습니다.”

“나스닥지수? 풋옵션? 아, 근데 그런 파생상품 투자는 손실이 아주 커질 수도 있는데, 그 점도 아십니까?”

“네.”

이번에도 아주 가벼운 대답.

할 수 없다는 듯 직원은 표정을 바꿨다.

“그럼 투자금은 어느 정도 생각하시는지?”

“대략 3억 원. 그 정도 투자할 생각입니다.”

“아, 그럼 잠시만요.”

직원은 잠시 일어섰고 어디론가 다녀오더니 이것저것 서류들을 잔뜩 들고 왔다.

“우선,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가 주문 넣을 수 있는 나스닥지수 관련 풋옵션 상품들은 최대 만기일이, 여기! 2003년 1월까지입니다.”

그러면서 해당 목록의 영문 서류를 쫙 펼쳐줬고.

나는 그걸 유심히 쳐다봤다.

아직 일반인들한테 생소한 투자라 자료가 한글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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