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사회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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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여기 보시면, 요즘 나스닥 지수가 쭉 상승하는 추셉니다. 이땐 풋옵션은 좀 맞지 않죠. 차라리 좀 더 추세를 보면서 접근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그는 함께 가져온 나스닥 종합지수의 최근 수치들도 나한테 보여줬다.
그러고 보니, 올 초에 2,291선을 찍었고.
이후 급상승하며 1월 말에는 2,838선을 찍기도 했다.
이후 내리막길이 되면서 4월 초에 1,673선을 찍었고.
다시 상승 동력이 발생하면서 5월 초에 2,220선을 회복했다.
이후 등락을 반복하다가 8월 이후 다시 내림세를 보였고.
지난 10월 초부터 다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 한국 날짜는 2001년 10월 31일.
그런데 그가 가져온 자료는 10월 29일까지의 자료였고.
지난 10월 29일의 지수는 최종 1,699포인트를 찍고 있다.
“이거 등락이 아주 심하죠? 주가라는 건 정말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희일비하다간 절대 투자에 성공할 수가 없죠.”
그래. 쉽지 않겠지.
즉, 지금 나온 지표들은 단기적 상승과 단기적 하락을 보이는데.
이런 수치를 처음 접하는 나는 눈이 핑핑 돌며 어지러울 지경이다.
내가 수학을 못 했다면, 더 해롱해롱했을 텐데.
다행히 고등학교 때 나는 의대가 아니라 한때 수학과를 지망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더 집중해서 살폈지만.
역시나 적절한 투자 포인트를 잡는 건 무척 어렵기만 하다.
“지금 당장 투자하지 않아도 되죠?”
“네! 우선, 계약서부터 쓰시고, 계좌 만들고, 나중에 투자금 입금하신 뒤, 투자가 결정되면 전화 주시면 됩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고민하다가 우선 서류 작업과 계좌 개설부터 시작했다.
그런 뒤, 해당 직원의 명함을 받아 챙겼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온 뒤, 곧장 인근 은행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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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이거 전부 이체하시겠다고요?”
“네.”
간단히 대답한 뒤 잠시 기다렸다.
은행 직원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고.
잠시 뒤, 계좌 비밀번호를 단말기에 찍어달라고 해서 숫자들을 누르자, 곧이어 한 장의 이체증이 발급되어 나왔다.
“좋은 하루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이체증을 받은 뒤 등을 돌리며.
이체 현황을 확인해 봤다.
3억 원.
좀 전에 개설된 내 증권계좌로 이체된 돈.
사실, 이 돈은 얼마 전 병원으로 직접 찾아온 대출 상담사를 통해 ‘의사 전용’ 신용대출을 하고서 받게 된 돈이다.
단, 열흘 만에 대출금은 입금되었고.
증권계좌로의 이체도 이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투자 준비를 모두 마친 나는 투자 리스크를 이기려고 이를 질끈 깨물고서, 그러고서 다시 병원에 도착했다.
<35>
잠시 후, 병원 본관 입구 근처.
“손님, 앞쪽에 좀 막히네요.”
택시 조수석에 있던 나는 앞쪽을 쳐다봤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본관 입구 쪽에 차량들이 줄을 서 있고.
일시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도대체 왜 저러지.
의아함도 잠시.
나는 손짓했다.
“저기, 저 앞쪽에 그냥 세워주세요.”
병원 본관 입구에서 사오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
그곳에 잠시 후 택시는 정차했고.
요금을 지불한 뒤 나는 하차했다.
그리고 곧장 본관 입구 쪽으로 뛰어가던 중, 갑자기 나는 멈춰 서고 말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무언가 소란스러운 그 입구 쪽.
바로 이때.
정차해 있던 중형 외제 차량에서 누군가 내리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나는 갑자기 감전된 듯, 아니 갑자기 두 다리가 마비된 듯,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짙은 눈썹.
칼같이 절도 있는 자세.
미소를 짓고 있으나 위압적인 눈빛.
마치 수십 년의 세월의 뒤로하고서 내 눈앞에 환상처럼 나타난 그 기이한 모습.
회귀 전, 의대 다닐 때 마지막으로 보았고.
그 후 대면조차 하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
나도 모르게 미간 사이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지금 갑자기 병원에 나타났고.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잠시 후, 보좌진들과 더불어 입구에 서자, 성국대 병원의 높으신 분들이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있다.
웃으며 악수하는 정치인 김윤상 의원.
병원 주요 보직자들한테 둘러싸인 그는 일단의 쇼맨십을 발휘하듯 대기하던 기자들에게 무언가 이야기했다.
그러자 곧이어 빛나는 카메라 플래시까지 일제히 터지고 있다.
찰칵! 찰칵! 찰칵!
주변 행인들은 신기한 듯 그 광경을 쳐다봤다.
과거엔 내가 일하는 병원을 절대 찾아오지 않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난 거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잠시 한숨을 내쉬며 행인들 사이에 숨어서 쳐다보다가.
잠시 후, 그가 병원 안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본관 쪽으로 뛰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낯선 인기척이 뒤에서 느껴지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앗!
그 순간, 나는 다시금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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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희끗희끗한 머리의 중년 신사.
나는 잠시 멍해졌다가 그 남자를 다시 쳐다봤다.
“도련님.”
역시 친숙한 목소리다.
순간, 쓴 미소를 짓고 만다.
아버지의 오래된 가신, 오래된 충복.
아버지의 정치 인생과 늘 같이하던 동반자.
강제철 실장님!
“도련님, 잘 지내셨습니까?”
하! 이게 얼마 만이지.
결국, 그 전화 때문에.
지금 나한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이분.
참 오랜만에 뵙게 된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산 상속 때문에 그때 만났고.
그 뒤로 단 한 번도 뵙지 못했는데.
할아버지의 비서였다가.
아버지를 모시게 됐던 그는 어느덧 환갑의 나이가 훌쩍 지났지만, 그 눈빛은 여전했다.
“도련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살짝 찡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웃으며 인사했다.
“실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자 강제철 실장님의 아주 날카로웠던 눈매가 무척 유해진다.
“다행히 안색이 좋으시군요. 하하! 병원 생활이 많이 힘드시지요?”
“아뇨.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의원님께서 여기 오신 거,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의원님께선 도련님 전화 받으시고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에휴!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 한성화학 쪽 말입니다. 아마 압수수색 과정이 지금쯤 끝났을 겁니다.”
놀라며, 고개를 들어 다시 그를 쳐다봤다.
“이미 일은 시작됐습니다. 도련님께서 좋은 정보를 주신 덕분에, 참! 듣기론, 그 환자는 이미 사망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게 그렇게 됐습니다.”
권철수씨.
순간, 속으로 이름을 되뇌며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권철수씨와 관련해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일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
[회광반조]로 하루의 시간을 연장했으나 그게 전부다.
다른 특성을 대입할 수도 없고 달리 방법도 없는 상태였다.
결국, [회광반조]의 유효 시간이 지나자 에크모(ECMO)를 달고 있음에도 그의 생기는 스르륵 빠져나갔고.
삽시간에 뇌사 상태에 빠져들었다.
울면서 달려온 그의 아내.
그녀는 결국 에크모(ECMO)를 제거하는 데 동의했다.
권철수씨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그의 동료들은 아직 이 병원에서 힘들게 투병하고 있지만 말이다.
“···검찰이 직접 내사를 진행했고 혐의점들도 충분합니다. 이번엔 제대로 칼질을 하고 나면 의원님의 보폭도 한층 더 넓어지실 겁니다.”
강제철 실장님은 냉정한 사람이다.
우리 가문의 가신을 자처하면서.
손에 피를 묻히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는 그런 사람.
그래서 그의 목소리 한 편에는 확실히 냉혹함이 묻어 있다.
“도련님, 이거 좀 받으시지요?”
정신을 차린 내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자, 그는 간단히 설명했다.
“안에 깨끗한 정장 한 벌이 들어있습니다. 이건 정장에 어울리는 구두이고, 도련님 발 사이즈에 딱 맞췄습니다.”
근데 왜 이것들을 나한테 주지?
그러다가 문득 나는 강제철 실장님의 좌우를 쳐다봤다.
어느새 옆으로 붙은 두 명의 남자.
딱 보니 저번 ‘딜’을 통해 아버지가 나한테 보내준 두 명의 보디가드들과 옷차림새가 똑같다.
“아! 이 친구들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일들이 시작된 터라 혹시 몰라 만반의 대비를 한 상탭니다. 그것보단 좀 있다가··· 의원님과 더불어 어디 가실 데가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순간, 반사적으로 내 미간이 접힌다.
“제가 갈 데가 있다고요? 하지만 저는 지금···.”
“도련님! 그 일들은 잠시 보류하셔도 됩니다. 어르신께서 병원장한테 직접 허락을 받으실 거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벌컥 화를 내려다가, 이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회귀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텐데.
지금은 다르다.
내가 그때의 철부지도 아닌데.
그러나 그럼에도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은 일!
즉시 거부하려는데.
그런 날 제지하기라도 하듯, 시스템 알람이 갑자기 뜨고 있었다.
[새로운 미션이 생성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그녀의 지옥(클래스 B)!]
[새 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에이씨! 이거 뭐야?
정색했다가.
동시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강제철 실장님의 손으로 향했다.
설마?
저거 때문에?
저 손에 들려 있는 시커먼 정장 커버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정장 한 벌! 그리고 구두!
“도련님, 괜찮겠습니까?”
하!
바로 저거다!
잠잠하더니 근 2주 만에 다시 발생된 미션. 바로 저것들 때문인 듯하다.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호기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 정장과 구두를 받자 그 순간 깜짝 놀라는 강제철 실장.
내가 순순히 응하자 그도 놀란 것이다.
“그, 그럼, 도련님, 저녁 6시쯤에 여기 1층으로 내려오시면 됩니다. 의원님께서도 그때 내려오시기로 했고. 그때 저희 차량을 타고 가시면 됩니다.”
은근히 목소리도 떨리는 듯한 강제철 실장.
“근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죄송합니다만, 차에 타시면 그때 아시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정장 커버와 구두 상자가 든 백화점 백을 손에 들었고.
성큼성큼 걸어 병원 본관 입구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저녁 6시쯤 되자, 나는 정장 차림을 하고서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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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본관 1층 앞.
대기 중인 두 대의 검정 외제 중형차.
나는 그쪽으로 즉시 뛰어갔고.
그 앞에 서 있던 강제철 실장은 즉시 차량 뒷문을 열어줬다.
그렇게 뒷좌석에 탑승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두 대의 차량은 일제히 출발했고.
비로소 이번 목적지가 이야기되었다.
“저번에 의원님께서 김 보좌관을 통해 도련님 전화를 받으시고, 이후 도련님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병원에선 식사도 변변찮을 텐데. 참! 이 차는 상문그룹 서정국 회장님! 그분 회갑연이 열리는 호텔로 가고 있습니다. 서 회장님께서 장성한 도련님을 꼭 한번 뵙고 싶다고 하셔서···.”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욕이 나올 것만 같았다.
또, 아버지의 들러리가 되라고?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때, 미션 정보도 공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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