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녀의 지옥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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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한유나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게 될 입원실도 병원 스카이라운지 VIP실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즉, 일반외과 수술이 끝나고 나면 그녀는 회복실을 거친 뒤 중환자실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VIP실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네. 대충 저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친하진 않나 보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할 수가 없지.
연회장에서 처음 봤는데.
“암튼, 수고했다. 근데···.”
갑자기 날 빤히 쳐다보는 윤미연 교수.
그러다가 고개를 저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
“아니다. 그만하자. 너도 피곤할 텐데.”
잠시 후, 우리는 수술실에서 완전히 나왔고.
윤미연 교수는 수술실 밖에 대기 중이던 신라그룹 비서실장한테 잠시 심장 수술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그사이, 나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흉부외과 병동으로 즉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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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어?”
방지현이다.
오늘 당직 근무 중인 방지현.
스테이션 한쪽 자리에 앉아 있다가 두 눈을 반짝이며 날 쳐다본다.
“무사히 끝났어. GS 수술은 지금 시작됐고. 지금 병동 상황은 어때?”
내가 묻자 그녀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뭐, 별다를 게 없어. 지금 몇 신데 무슨 큰 문제가 있겠어?”
문득, 나는 스테이션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벽시계를 쳐다봤다.
어느덧 새벽 3시가 훌쩍 지나가고 있다.
아까 스트레처카를 밀면서 응급실에 뛰어들어간 그 순간부터 나는 거의 정신없이 뛰었던 것 같다.
“근데 너··· 아까 어디 있었어?”
“어?”
“저녁에. 같이 밥 먹으려고 하니까 없다고 해서.”
아, 방지현은 내가 잠시 오프였다는 걸 듣지 못했나 보다.
근데 따지고 보면 그게 오프라고 할 수도 없다.
저녁 6시부터 밤 9시까지 대략 3시간 정도 병원 밖에서 보낸 거뿐이니까.
“그냥 뭐 이것저것.”
결국, 나는 대충 얼버무린 뒤 방지현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차팅을 빠르게 이어가다가···.
휴우.
한순간, 내가 길게 한숨을 내쉬자 방지현은 다시 날 쳐다본다.
“근데··· 정민아.”
“응?”
“저번에 너··· 사과하면서 우리한테 부탁 하나씩 들어주기로 한 거···.”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랬던 적이 있지.
회귀 직후 내가 수술방에서 졸다가 사건이 터진 것.
그날 이후 나는 잠시 수술에서 배제되었다.
방지현과 이동욱은 정신없이 수술방을 전전해야 했다.
한 사람 보조 인력이 빠지면서 스케쥴들이 다 꼬였던 거.
그때 미안해서 나는 부탁 하나 들어주기로 했다.
“기억 나. 근데 혹시 요청할 거 있어?”
내가 즉시 묻자, 방지현은 내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갑자기 씩 웃는다.
“아니, 그냥 확인해 본 거야.”
“어?”
“그냥 나중에 부탁 하나 하려고.”
“뭐, 나중에?”
“응. 나중에.”
하!
근데 왜 이렇게 이동욱도 그렇고 방지현도 그렇고, 그깟 부탁 하는 게 어려울까.
아직도 두 사람 모두, 나한테 부탁하는 게 없다.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렇게 굼떠?”
이때 내가 약간 짜증 섞인 어조로 말하자, 방지현은 눈을 크게 뜨며 대꾸했다.
“굼뜨긴? 서철성 교수님, 윤미연 교수님 애제자가 된 김정민한테 청구권 하나 생겼는데 어떻게 그걸 함부로 써?”
“야! 애제자는 무슨?”
“알아. 다 안다고.”
순간,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이때 방지현은 따지듯 또 물었다.
“근데 넌, 어떻게 그렇게 잘 해?”
“뭘?”
“저번에 흉관 삽관하는 것도 그랬고···.”
참! 그러고 보니 그때 압사 사고 환자들이 응급실에 수송됐을 때, 방지현은 내가 흉관 삽관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일을 방지현은 아직도 기억하나 보다.
“어쩜 그렇게 잘할 수가 있어? 수술 어시도 엄청 잘한다며?”
날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만큼이나 호기심도 부쩍 커진 방지현.
하! 이거 어떻게 수습하나.
이런 상황에서 대충 얼버무리면 괜한 오해만 커질 수 있다.
할 수 없이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현아. 우리, 소화기내과 돌 때 복수천자(abdominal paracentesis)해 본 거 기억나지?”
방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술기는 인턴 때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되는 기본 술기 중의 하나다.
응급실이나 소화기내과 쪽의 기본 술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역시 쉬운 술기는 아니었다.
“배에 긴 주사침을 찔러 넣고 복수 배액 할 때, 너무 깊게 찌르면 큰일 나잖아. 타이밍을 재는 거. 손 감각 키우는 거. 그런 거 쭉 고민하면서 쭉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갑자기 잘 되더라. 내 간이 좀 커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 순간, 오히려 더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야! 너 죽을래? 간이 크다고 어떻게 수술을 잘해? 너 진짜 뭐 숨기는 거 있지?”
갑자기 몸을 틀며 내 양팔을 꽉 잡는 그녀.
갑자기 그렇듯 덤벼드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그러나 방지현이 내 팔을 꽉 잡아 쉽게 뿌리칠 수가 없다.
그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이때, 등 뒤에서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쭈! 어이, 거기 두 사람! 너무 가까이 붙는 거 아냐? 그러다가 정든다!”
그 순간, 방지현은 확! 정색하며 바로 손을 풀었다.
옆에 있던 간호사들은 킥킥 웃으며 우리를 힐끔 쳐다본다.
근데 선배님은 도대체! 말을 왜 또 저렇게 하시지?
방지현과 내가 어떻게???
아직도 처녀귀신 느낌이 물씬 나서 간혹 으스스한데.
거기다가 이동욱도 있고.
나는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씩 웃으며 다가오는 김재호 선배.
김재호 선배 역시 여태 숙소에 가지 않았나 보다.
“정민아.”
“네?”
나는 일어섰다.
“김완기 교수님 호출!”
어? 김완기 교수님?
그는 흉부외과 전체를 총괄하고 있는 과장이다.
“선배님, 무슨 일 있습니까?”
“몰라. 빨리 가 봐! 김완기 교수님이 오늘 당직이신데, 아까 나랑 이야기하시다가 어디 전화 받고 너 갑자기 찾으시던데, 빨리 가 봐.”
“네! 알겠습니다!”
나는 즉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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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나는 당직 교수실로 바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곳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노크하고 들어서자, 그곳엔 손님들이 이미 와 있었고.
그들 때문인지 뭔가 기류가 좀 이상했다.
중후한 검정 정장 차림에 아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중년 남자.
그리고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어느 젊은 남자.
그런데 그들 중에 한 명은 이미 본 적이 있다.
아까 수술실 복도에서 수술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신라그룹 비서실장이라는 남자.
눈앞의 저 날카로운 눈매의 중년 남자가 바로 그 비서실장이었다.
“저기 왔네요.”
50대 초반의 나이인 김완기 교수.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나한테 손짓했는데.
“이봐. 김정민 선생. 이리 오게.”
나는 김완기 교수에게 인사한 뒤 바로 다가섰다.
그러자 갑자기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이때 김완기 교수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하고서 그들을 쳐다봤다.
인턴 김정민한테 볼 일이 있다며 잠깐 호출해 달라는 그들의 요청에 응한 것인데.
그들이 이렇듯 바로 일어서며 예의를 갖출 줄은 몰랐던 거다.
특히, 두 사람 모두 면면이 보통이 아니다.
한 명은 비서실장. 신라그룹 내 직급은 사장급.
그리고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저 젊은 남자는 신라그룹 총수의 3남.
현재 신분이 ‘전무’라고 하지만 신라그룹 직계 혈족인 그가 저렇듯 공손하게 일어서자 김완기 교수는 속으로 크게 놀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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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선생님,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만?”
와이셔츠 차림의 젊은 남자.
그러고 보니 그의 옆쪽 소파에는 두꺼운 외투가 놓여 있다. 아마 외투를 잠시 벗어둔 모양이다.
“저는 한윤형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개를 숙인 뒤, 자신의 명함을 나한테 건넸다.
나 역시 즉시 고개를 숙이며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 확인했다.
근데 이 사람은?
[신라전자]
[글로벌 지원센터]
[전무 한윤형]
전무?
그리고 신라전자?
더 놀라운 점은 성씨가 ‘한’씨라는 점.
“아, 저는 유나 오빠···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미간에는 갑자기 작은 골이 파였다.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
왜냐하면, 이렇게 남매가 안 닮을 수가 있나.
절세적인 미모를 갖춘 우울한 미녀 한유나.
내가 처음 봤을 때, 내가 잠시 정신을 잃고 계속 쳐다봤던 그런 미모였는데.
눈앞의 한윤형 전무는 눈이 쭉 찢어진 모습에 입술 양 꼬리도 아래로 축 처져 있다.
졸린 듯한 눈.
얇은 듯 아주 다부진 입술.
이건 도저히 한유나의 친오빠라고 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어쨌든 나는 인사하고 악수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자, 한윤형 전무는 고개를 돌려 김완기 교수한테 조용히 부탁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잠시만···.”
“아, 네. 그러세요.”
김완기 교수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가면서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쳤고.
그러고는 그는 당직 교수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그렇게 김완기 교수가 나가자마자 한윤형 전무는 나한테 한쪽 자리를 권했다.
“선생님,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나는 한윤형 전무를 잠시 쳐다보다가.
그쪽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
잠깐 뭔가 머뭇거리던 한윤형 전무.
그는 드디어 입을 열고 있었다.
<38>
“최초! 유나의 응급처치를 하셨고, 병원 수송과 이후 수술 과정에도 참여하셨다면서요?”
“네. 상황상 그렇게 됐습니다.”
“아! 먼저! 그 부분에 대해선 신라그룹 전체를 대신해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자리에서 즉시 일어나 90도로 머리를 숙이는 한윤형 전무.
놀란 나는 바로 일어나, 즉시 머리를 숙이며 대응했다.
그러고는 우리는 다시 각자 자리에 앉았다.
“사실, 회장님께서도 심려가 아주 크십니다. 이번 유나 사건 자체가 무척 답답한 일이니까요.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인데, 누군가는 수습 같은 걸 해야 하고. 근데 하필 이 중요한 시국에 이런 일이 일어나서. 그 소식을 들은 직후, 저도 그렇고 저희 가족도 그렇고, 무척 답답해합니다.”
“그래도 심장 수술이 생각보다 잘 된 상태라, 잘 될 겁니다.”
그러자 한윤형 전무의 눈이 환하게 변한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날카로운 눈매의 최지철 비서실장 역시 꾸벅 머리를 숙이고 있다.
곧이어 한윤형 전무는 이번 일의 ‘보답’에 대해 거론했다.
그러나 내가 뭐 보답을 노리고 이런 일을 했던가.
정색하고 즉시 거부하자, 한윤형 전무는 다음에 날 한태산 회장의 저택으로 초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탁도 했다.
“저희가 지금 조금 난처합니다. 하필, 사람들이 많은 연회장에서 그 애가 그렇게 되다 보니, 수습하려고 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저희 그룹은 사적인 일들에 대해선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저희가 피치 못하게 선생님께 부탁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연회장 참석 귀빈들한테도 그런 부탁을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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