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 더 나쁜 놈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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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중년 환자의 얼굴에는 약간 청색증마저 보이고 있다.
현재 의식이 없는 상태.
특히, 응급으로 O형 수혈을 했다는 건, 응급실 이송 당시에 위급했다는 의미다.
보통 O형 수혈은 혈액형 검사 시간이 없을 때 일단 투입되는 형태다.
그렇다면 이럴 때가 아니다.
혈액검사 결과 등도 즉시 확인한 뒤 상황판단이 되자, 나는 후다닥 뛰어갔다.
그리고 응급실 스테이션 전화기를 잡았다.
즉시 펠로우 박지영 선생님한테 상황 이야기를 했고.
당직 교수인 최병근 교수님한테도 즉각 연락을 취했다.
그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환자 베드로 달려왔다.
여전히 그 베드에 있던 조은하 선배는 내가 다가오자 옆으로 비켜줬다.
그때부터 나는 좀 더 상세하게 이곳저곳 상태를 확인해 봤는데.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도 다시 확인했고.
환자 바이탈과 나이 등도 재확인했다.
그리고 환자의 동공 역시 다시 확인한 뒤 뒤로 물러서던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네?”
좀 전에 내 이름을 부른 것 같은데. 너무 집중해서 잘 듣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자 씩 웃으며 그녀는 말했다.
“이제 너, 고참 냄새 펄펄 나는데? 수술도 좀 한다며?”
그러고는 씩 웃으며 다른 베드로 넘어가는 조은하 선배.
근데 그러고 보니까 어느새 11월이 아닌가.
인턴 생활도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즉, 이제 4달 정도가 지나면 이 인턴 생활은 끝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상념도 잠깐일 뿐.
잠시 후, 나는 마취통증과 쪽에도 미리 노티를 해 놨다.
마치 내가 인턴이 아니라 레지던트 과정처럼 일을 진행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체격이 유난히 왜소한 펠로우 박지영 선생님이 나타났다.
듣기론 그녀는 자신의 깡과 체력을 레지던트 과정 때 다 써 버렸다고 한다.
역시 아무리 봐도 영 힘이 없어 보인다.
“선생님! 여깁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간단히 환자 상태를 다시 설명했고.
가만히 듣던 박지영 선생은 잠시 후 지시했다.
“수술동의서부터 빨리 챙겨요! 바로 수술 들어갈 수 있도록. 서철성 교수님께서 콜 받고 오신다고 했으니까···.”
아, 또 서철성 교수님인가.
그래서 나는 즉시 수술동의서를 들고서 즉시 환자 보호자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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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뒤.
“선생님, 저희 아들 어떡합니까!”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백발의 할머니.
그녀는 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편, 나는 시간 관계상 상황 설명과 수술동의서 받는 걸 동시에 진행했다.
“지금 바로 서류 작성해 주시면 앞으로 30분 이내에 수술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고, 어떡해. 수술? 수술이라고? 어떡해? 우리 명수. 명수야! 명수야! 아이고, 명수야, 명수야아아! 명수야아아!!”
현재, 응급 수술이 준비되고 있는 환자는 만 48세.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일을 마친 뒤 저녁에 돌아와, 식사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처음엔 의식도 있고 조금 이상했다가 다시 정상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서 의식이 혼미해졌으며.
얼굴도 완전히 이상해져.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직접 업고서 이곳 병원까지 오게 된 거라고 한다.
현재 할머니는 완전히 겁에 질린 상태다.
그래도 억지로 달랜 뒤 나는 수술동의서부터 받았다.
그리고 일어서는데.
할머니가 내 손을 꽉 잡더니 도통 놓아주질 않는다.
“우리 아들, 제발 살려주시오! 우리 불쌍한 아들, 꼭 좀 살려주시오! 저승사자님, 차라리 날 데리고 가시지! 아고, 아고, 아고, 우리 아들, 고생하는 거 뻔히 다 아는데.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오···.”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할머니.
그 순간, 가슴을 파고드는 송곳 느낌에 나도 모르게 찡해졌다.
사실, 병원에서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되면, 의사든 환자든 환자 보호자든 저절로 이심전심이 된다.
바로 가족이라는 의미 때문에.
“죄송합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더는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어 나는 후다닥 뛰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로 그때였다!
시스템 알람이 갑자기 내 귀에 들려오는데.
[특전: 사신의 웃음소리(S)]
[죽음을 부르는 자(킬러)가 경계에서 기웃거립니다!]
[경계에서 벗어납니다!]
[현재 작동 시간, 40시간 경과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잠시 멈춰 서고 말았다.
소름이 쫙 끼친 거다.
한유나?
한유나를 노리는?
그런데 사실 누군가가 한유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지금이 딱 좋은 시기가 아닌가.
수술을 끝낸 한유나는 추락 충격으로 인해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어쨌든 그런 혼란 속에서, 잠시 후 서철성 교수님은 부랴부랴 나타났고.
“김 선생! 빨리 수술 준비해서 들어가자! 그리고 박 선생도 빨리 움직여!”
그때부터 수술 준비는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40>
“···thoracic aortic aneurysm(흉부 대동맥류) distal(원위부) rupture(파열). 동맥류 절박 파열로 인한 spinal cord infarct(척수경색) 이벤트가 병행된 상태입니다. 동맥류 헤마토마(혈종)에 의한 늑간동맥 폐색과 adamkiewicz 동맥 폐색에 의한 spinal cord infarct(척수경색)이 발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맥류 절박 파열 부위를 제거하고 인조도관으로 치환함으로써 향후 동맥류 혈종 발생을 줄여 척수경색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며···.”
“수술 방법은?”
“Thoracic aortic replacement(흉부대동맥치환술)입니다. 좌측 4번, 8번 늑간을 통해 개흉한 뒤 피부절개 후, 하방 복부까지 수술 범위를 오픈해야 합니다. 대퇴동정맥에 삽관 방식을 통한 인공심폐기를 가동하고 완전순환정지(total circulatory arrest) 하에서 인조 도관 삽입 및 문합술로 절박 파열 부위를 치료하면···.”
술술 나오는 인턴의 대답.
펠로우 박지영 선생은 약간 놀란 눈으로 인턴을 쳐다봤고, 다시 서철성 교수를 응시했다.
오늘 수술의 퍼스트 어시를 맡게 된 박지영 선생.
펠로우로서 병원에 출근한 지 사흘차인 그녀는 수술 개시 전, 그렇듯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자신이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던 병원. 그곳의 인턴들은 늘 손이 가는 그런 타입들이었다.
그런데 이곳 인턴들은 왜 이렇게 똑똑할까.
임상 케이스 차이 때문?
인턴들뿐만이 아니라 간호사들도 무척 빠르고 잔 실수도 없다.
사실, 대동맥류 수술은 속도가 관건!
그런데 이곳 병원은 정말 그 속도가 눈이 부실 정도로 빨랐다.
이래서 국내 최고 흉부외과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걸까.
“오케이. 그 정도면 됐다. 그리고 좀 전에 사정을 대충 들었는데 이 환자 사정도 좀 딱하더라.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이렇게 됐다던데. 슬슬 날씨가 추워지니까 심장 쪽 혈액이 많이 몰리게 되고 이런 환자들도 더 많아질 거다. 암튼, 우리 무조건 살려 보자!”
“네! 교수님! 집중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다들 로버트 리스턴에 대해 들어봤나?”
오늘따라 말이 많은 서철성 교수.
그는 수술용 루페가 붙은 큼직한 안경 너머로 좌우를 쳐다봤다.
사실, 이건 평소에 그가 잘 하지 않던 이야기다.
그러나 새로운 펠로우가 온 터라, 서철성 교수는 자신의 수술 방향을 좀 더 간단하게 표현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로버트 리스턴 이야기를 꺼낸 거였다.
로버트 리스턴(Robert Liston)!
1800년대 초중반까지 실존했던 외과수술의 선구자.
그는 마취술에 의존하지 않던 시대를 살며, 아주 빠른 수술 실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너무 빠른 수술 속도 때문에 수술 중에 크고 작은 실수들이 꽤 많았고.
온갖 해프닝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수술 속도만큼은 당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그러고 보면 서철성 교수 역시 수술을 빨리하기로 유명한 집도의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환자한테 생각지도 못한 데미지가 누적될 수도 있고.
특히, 뇌, 간, 신장 등에 심각한 합병증이 유발될 수도 있다. 수술 이후 사망 위험도 커지게 된다.
그렇듯 환자 예후에도 장시간 수술은 좋지 못하다고 믿고 있는 서철성 교수.
그래서 할 수 있다면 무조건 속도전으로 수술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완료하는 게 그의 소신이자 철칙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로버트 리스턴처럼 무모한 써전은 아니었고.
충분히 논리적으로 가능할 때 수술 속도를 더 높이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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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erprogression(급성 진행)이고.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조건이 필요하니까 수술 시간제한이 있어. 박 선생은 total circulatory arrest 시작되면 잠시 옆으로 빠지고, 김 선생이 바로 붙어.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대동맥류는 생존율이 높아진다. 알겠나?”
그런데 막 수술 시작 전, 갑자기 날아든 써전의 지시.
그 순간, 박지영 선생의 표정은 싹 굳어진다.
난데없는 뜻밖의 말.
수술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시점인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때, 펠로우인 자신은 뒤로 빼고 인턴을 그 과정에 투입하겠다는 수술 집도의의 돌발적인(?) 괴발언(?)이 갑자기 튀어나온 거다.
놀란 그녀는 뭐라고 즉시 항변하려고 했으나, 마치 본능처럼 입이 굳어 버렸다.
왜냐하면, 이곳은 바로 질식할 것만 같은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가득한 수술방이다.
수술방은 써전들에게 있어 일종의 성역이나 다름없는 곳.
특히, 수술방에선 제왕이나 다름없는 수술 집도의가 버티고 있고, 그곳에선 그의 지시를 누구도 거역할 수가 없다.
그런 위압감에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는데.
그런데 그사이 서철성 교수의 집도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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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상하네. 인턴한테 뭘 맡기려고?’
어쩔 수 없이 재빨리 지혈 작업을 하며 어시를 시작하던 박지영 선생은 계속해서 머릿속이 혼란했지만 그럼에도 정신을 차리고서 집중했다.
설마 뭔가 다른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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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로부터 45분쯤 뒤.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를 앞두고 조직 박리와 병변 노출 등의 작업이 끝날 무렵, 드디어 서철성 교수가 어시 교대를 지시했다.
엉겁결에 옆으로 물러서던 박지영 선생.
그런데 그녀는 그로부터 잠시 뒤, 정말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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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석션!”
“메스!”
“석션!”
“클램프!”
“클램프 3개 더!”
“야, 김 선생! 2개 더 받아!”
순간 두 사람의 손을 타고 빠르게 전해지는 클램프들.
그 클램프를 받은 인턴은 빠르게 각 대동맥 부위를 겸자했다.
이때, 마치 네 개의 손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듯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메스!”
“지혈!”
“거즈!”
“지혈!”
“에이씨! 지혈!”
“파열 부위 잘 봐!”
“메스!”
“거즈!”
“거즈! 왕창 줘!”
“야, 이거 받아.”
순간, 휘리릭 날아가듯 손과 손으로 전해지는 메스.
그리고 그 메스를 잡은 인턴은 집도의가 지시하는 위치를 스윽! 하며 벤 뒤 혈관 내부에 있던 혈종들을 재빨리 석션으로 제거했다.
“잘 됐나?”
“네.”
“혈종은 확인했고?”
“네. 다 제거했습니다.”
그사이, 최근위부와 중간부 겸자를 마친 서철성 교수는 절개된 혈관에 대해서 인조 도관을 끼우고 문합을 시행했다.
그러다가.
“시야 확보가 안 돼.”
그 순간, 두 개의 손이 재빨리 튀어나왔고, 티슈 포셉으로 주변 조직을 잡아당겨 시야를 넓혔다.
그러자 서철성 교수의 수처가 좀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너무 일사불란해서 제멋대로 수술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모든 게 정형화된 수술 범위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 일관된 흐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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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 선생! 근데 업도멘(abdomen 복부) 쪽까지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이거 괜찮을까?”
“(일반외과 영역에 걸쳐있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교수님!”
서철성 교수는 힐끔 인턴을 쳐다본 뒤 곧바로 그 아래까지 내려갔다.
“받아!”
메스가 다시 인턴한테 넘어갔다.
“잘 받고, 바로 한 번에 절개해!”
“네!”
“참! 박신희 선생, 어째 좀 조는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놀란 마취과 의사.
하루 18시간, 거의 숨 쉴 틈 없는 수술로 인해 그녀도 무척 피곤하다.
하지만 박신희 선생은 정색하며 소리쳤다.
“교수님, 저 걱정 마세요! 절대 안 졸아요!”
“오케이. 다시 간다! 김 선생, 한 번에 가야돼. 저번에 알려준 거 있지? 절개 포인트 잘 보고, 그렇게 비스듬하게 쭉! 옳지! 굿잡!”
“마무리 했습니다.”
“그럼 다음 작업, 박리 좀 해.”
“네.”
“오케이! 다시 메스 잡아!”
“잡았습니다.”
“굿잡!”
“교수님!”
“야! 거즈! 박지영 선생! 석션!! 석션!!”
“네.”
“이건 내경이 너무 커. 바로 문합할 테니까 자넨 좀 빠져!”
“네.”
“석션! 석션! 석션! 다시 메스! 야, 석션 그만!”
쉴 새 없이 작업들이 이어진 끝에 완전순환정지 시간이 대략 29분 경과되었다.
이때 서철성 교수는 손을 빼며 물러섰다.
“됐어! 출혈 확인하고 그만 닫자!”
“네.”
“괜찮겠지?”
“현재 출혈 없습니다.”
“오케이! 이제 닫자!”
그러고는 서철성 교수는,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박지영 선생을 쳐다봤다.
“박지영 선생, 빨리 들어와. 김 선생은 빠지고.”
“네!”
그렇게 다시 교대가 되었고.
그때부터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을 해제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박신희 선생! 바이탈 따라가면서 문제 생기면 말해줘요!”
“걱정 마세요!”
“다들 다시 집중하고! 출혈 터지면 바로 이야기해!”
그러고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 흉부를 닫는 작업들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야, 거즈 좀 가져와!”
“여기 수처!”
“박 선생, 지혈! 그리고 거기 수처!”
“야, 김 선생, 석션!”
그렇듯 미친 듯이 서철성 교수의 집도 수술은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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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덧 수술이 거의 끝나갈 무렵.
몸이 바짝 지칠 때.
나는 시스템 알람 소리를 갑자기 듣게 되었다.
[특전: 사신의 웃음소리(S), 죽음을 부르는 자(킬러)가 목표(희생자)를 향해 다가옵니다.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한 존재(킬러)를 인식합니다]
[경고! 죽음을 부르는 자(킬러)가 경계에 들어왔습니다!]
[경고! 목표를 향해 접근합니다!]
[경고! 목표 50m 이내에 접근합니다!]
[현재 특성 발동 시간, 43시간 26분이 경과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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