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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40화 (40/145)

차가운 심장, 뜨거운 심장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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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좀 더 편안하게 하기 위해 간단히 말씀드리죠. 제가 그 [한성클린] 사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강지연 검사?

눈앞의 여자 검사가?

그런데 그런 그녀가 여긴 왜?

아, 권철수씨 동료들이 아직 투병 중이다. 성국대 병원을 찾은 이유는 충분했다.

근데 왜 이 자리에 갑자기 나타났을까.

“김정민씨. 95학번이시죠?”

그런데 갑자기 웬 화제 전환?

“네, 맞습니다만?”

“저는 92학번입니다.”

92학번? 나보다 3살이나 많다. 근데 사법고시 합격을 일찍 했나 보다. 제법 큰 사건을 저렇듯 맡은 걸 보면 조무래기 검사는 아니라는 말.

“혹시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이번엔 내가 묻자 강지연 검사는 대답했다.

“저요? 저는 성국대 법대 나왔습니다. 정민씬 성국대 의대? 맞죠?”

순간, 나도 모르게 속으로 실소했다. 이것도 작은 인연인가. 학연으로 뭔가 교차점이 있으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제가 선배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아뇨! 같은 학과도 아니고 유사 계열도 아닌데. 그냥 상관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검사님.”

“그것보다 혹시 의원님한테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박충식 검사장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박충식 검사장을 모신다?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 어릴 적에 많이 본 적이 있다.

검찰은 그 내부 위계질서가 아주 엄격하다.

그렇다고 해도 타인 앞에서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 여자도 라인을 타고 있다는 말인가.

박충식 검사장?

누구지?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으음, 그래! 내가 기억하는 ‘박충식’은 아버지의 직속 후배이자 훗날 정계 입문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큰 도움을 줬던 사람이다.

만약 아버지가 오래 생존했다면 박충식 검사장은 아버지가 이끄는 계파까지 물려받게 되었을지 모른다.

정말 아버지의 손발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 역시 검찰 출신. 그래서 그 인맥이 주로 법조계, 특히 검찰 쪽으로 아주 조밀하게 형성되어 있다.

결국, 이 여자는 박충식 검사 라인을 타고 있는 젊은 검사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박충식 검사장께선 김윤······.”

“아! 그건 됐습니다! 그 정도까지 말씀하셔도 다 알아들었습니다.”

내가 손을 저으며 말을 중단시키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서로 남이 아닙니다.”

그래, 남이 아니겠지. 결국, 아버지가 챙겨주는 또 다른 피붙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더군다나 검찰 조직 특성상 타 조직과 비교하면 배신행위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서 더 끈끈할 수밖에 없다.

이때 나는 조금 냉담한 표정이 된 채 입을 열었다.

“근데 여긴 무슨 일로 방문하신 겁니까?”

“아, 권철수씨 사건 때문에 최병근 교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지금껏 여러 차례 이곳 병원에 다녀갔는데, 정민씨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물론, 검사장님께서 이번 정보의 출처인 정민씨를 사건에서 무조건 빼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정민씨를 만나고자 한 것은 다른 목적이 아니라, 약간 도움을 주려고 온 것뿐입니다.”

“네? 도움이라면?”

“아직 모르세요?”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강지연 검사는 양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가며 미소를 지었다.

건강미, 지성미가 확실히 돋보이는 여자다.

“저희가 정보가 꽤 빠른 편인데, 이번 살인미수 사건. 그 피해자 중의 한 명이 바로 한유나씨, 신라그룹 한태산 회장의 막내딸입니다. 그건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근데 한태산 회장이 어젯밤부터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시나요?”

“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며 큰 소리로 반문하고 말았다.

그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한태산 회장이 무슨 연유로?

재계 5위권의 대 신라그룹을 이끄는 총수.

그의 건강상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지만. 그 시점이 참 공교로웠다.

막내딸 한유나는 자살 시도를 했고 간신히 생명을 구했다.

이번엔 한태산 회장마저 생사의 고비에 놓여 있다니.

“잠시만요!”

나는 순간 손을 저으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내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어서.

지금 딱 보니 강지연 검사는 나한테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서 나한테 왔다는 말인데.

근데 어떻게 나한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을까.

아, 맞아! 보디가드들. 내 보디가드들.

그들은 한유나를 구할 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으나.

생각보다 아주 뛰어난 자들이라고 한다.

현재, 그들은 야외 주차장 쪽에 상시 대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뭔가 정보를 얻은 뒤 서둘러 아버지한테 연락을 취했나.

아버지가 박충식 검사장을 통해 강지연 검사를 나한테 보낸 거고?

이건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다.

“아! 좀 당황스러워서. 죄송합니다. 그럼! 한태산 회장님은 어쩌다가 그렇게 되신 겁니까?”

이번에도 강지현 검사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막내딸 한유나씨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듣고서 크게 상심하다가, 심장마비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심장마비?

나는 다시 놀랐다.

세상에!

와!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나.

그 순간, 나는 아직 수락하지 않은 다음 미션이 떠올랐고.

즉시 미션 수락을 속으로 외쳤다.

#

[차가운 심장, 뜨거운 심장(클래스 A) 미션을 수락하셨습니다]

곧 미션 정보도 개방되었다.

[미션(클래스 A), 한태산 회장의 심장을 완치시키세요!]

그래, 이거다!

[전용 특성 일시 개방: 수처 마스터(C)]

[수처 마스터(C): 수처(봉합) 중 손가락의 움직임이 2배 빨라집니다]

[특성 유효 기간: 7일 (7일 경과시 수처 마스터(C) 특성 사용이 불가합니다)]

[업적 보상: 보유 특성 중 한 개, 등급 상승]

[실패: 등급 하락!]

#

근데 [수처 마스터(C)]?

사실, 이 특성은 저번에 사신이 선물로써 제시했던 [???의 손가락(A)]의 하위 특성 같은 느낌이 든다.

[???의 손가락(A)]은 수술 중에 손가락이 극단적으로 빨라진다고 했는데.

또한, 어떤 상대든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전투 능력까지 포함된 상태다.

그러나 [수처 마스터(C)]는 봉합 중에만 손가락의 움직임이 2배 빨라진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의 손가락(A)] 특성을 보유했다면, 한유나를 죽이려고 했던 그 남자를 쉽게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뒤늦은 아쉬움도 생겼다.

그러고 보면, 내가 능력을 얻는 이 시스템은 수많은 알고리즘들이 연결된 것 같이.

현실 세계와도 수많은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쨌든 [차가운 심장, 뜨거운 심장(클래스 A)]을 수락하자, 잠시 후 내 예상대로 앞선 미션에 대한 보상도 나타났다.

[아름다운 그녀의 지옥(클래스 A) 미션 달성에 따른 업적 보상이 공개됩니다]

[업적 보상: 은빛 성수 3병]

어? 은빛 성수?

그리고 바로 설명이 붙었다.

[부족한 활력을 100% 충전합니다]

흠, 3병이나 준 건 그리 나쁘지 않은데.

이건 도대체 어디에 쓸까.

약간 고민이 되는 보상이었다.

#

“···그럼 혹시 어느 병원에서?”

나는 다시 그렇게 물었고.

강지연 검사는 간단히 대꾸했다.

“자택 근처인 상천대 병원 응급실로 갔다가 곧바로 신라병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래, 뭐 그렇겠지.

신라그룹 총수라면 당연히 신라병원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되면 내 미션 자체가 힘들어진다.

이번에 받게 된 미션, [차가운 심장, 뜨거운 심장(클래스 A) 한태산 회장의 심장을 완치시키세요!], 즉 심장 수술을 의미한다.

“혹시 그럼··· 상태가?”

“아! 많이 좋지 않나 봐요. 그래서 신라그룹 쪽이 무척 혼란해졌고. 특히, 그쪽은 아직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아 경영권 분쟁의 불씨만 커졌어요. 그 때문에 한유나씨가 앞으로 주목을 받게 될 것 같은데. 한유나씨가 보유한 지분이 은근히 경영권 캐스팅 보트가 될 수도 있거든요.”

뭐? 경영권 캐스팅 보트?

나는 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본래, 캐스팅 보트라는 말은 의회 정치에서 나온 말인데, 찬성·반대표가 동률일 경우, 의장이 한 표를 행사해서 직접 가결, 부결을 결정하는 형태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한유나의 지분이 캐스팅 보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다시 말해서 한태산 회장 2세들의 지분이 서로 비슷하다는 말이다.

현시점에서 한유나의 지분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말이기도 하고.

에이! 쯧! 쯧!

근데 그러고 보니까, 내가 남의 집 큰 집안싸움에 나도 모르게 발을 담근 것 같다.

기분이 이상해지는데.

강지연 검사는 계속 말했다.

“근데 그것 외에도 수술장소를 놓고도 가족 싸움으로 비화될 것 같더군요.”

“그건 또 왜 그렇죠?”

“과거, 신라병원에 입원했던 한유나씨 모친, 그분이 수술 중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기록을 좀 보면, 꽤 이상한 사건이었어요. 아마 신라병원 쪽, 거기엔 분명히 뭔가가 있습니다.”

그러고는 말을 중단하던 강지연 검사는 갑자기 서류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서 내밀었다.

“보세요.”

“이게 뭡니까?”

“한윤형 전무! 제가 조사하는 [한성클린] 고태진 대표가 보유한 대포폰들을 통한 최근 통화 목록입니다. 그리고 그 주요 대상이 바로 한윤형 전무입니다.”

대포폰? 근데 왜 여기서 한윤형 전무가 나오지?

또한, 신라병원 이야길 하다가 갑자기 통화 목록 조회?

의아함이 커지는 가운데, 강지연 검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바로 저 한윤형 전무가 한태산 회장의 수술을 성국대 병원에서 하는 걸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답니다.”

이때, 나는 놀라면서도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왜냐하면, 3남 한윤형 전무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지분력이 약하죠. 그래서 한윤형 전무는 반드시 한태산 회장을 살려야 하는 입장입니다.”

도대체 이거 참!

그러니까!

신라병원에서 한태산 회장이 수술을 받게 되면 한태산 회장은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 같고.

성국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면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과 같아진다.

“정말 골 때리죠? 재벌가는 형제, 부모도 없어요. 부모가 어느 자녀한테 관심을 주면, 나머진 스스로가 도태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사달이 벌어지게 되죠. 정치색을 띤 일부 의사들이 그 패륜에 가담할 가능성도 그때 생기게 되고.”

그러니까 수술 중에 의도된(?) 실수가 생길 수 있다는 말, 그 말인가.

나는 정색하며 다시 물었다.

“근데 이 통화 내역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현재 저희 타깃은 고태진입니다. 만약 한윤형 전무가 고태진을 돕게 된다면 저흰 어쩔 수 없이 한윤형까지 솎아낼 생각입니다. 이번 기회에 무조건 대어(고상 중 의원)를 잡아야 하니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근데··· 좀 당혹스러운 게 왜 그런 고급 정보를 저한테?”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강지연 검사.

사실, 일개 검사 따위가 전체를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정치 검사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녀의 위치에서 접하기 힘든 정보들까지 그녀는 현재 꿰고 있었다.

하긴, 내 아버지가 부리는 사람인데, 저 정도는 약과겠지.

“우선 알고 계시라는 겁니다. 이번에 한유나씨를 살리느라 고생하신 것 같은데, 괜히 앞으론 나설 필요가 없다는 말씀, 전해드리려고요. 물론, 그냥 간단한 조언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게 정상이 될 때까지 가만히 지켜봐라?

그런데 이건 꼭 아버지가 나한테 전하려는 말처럼 들려온다.

이때, 내 한쪽 입꼬리는 저절로 씩 올라갔다.

“뭐, 알겠습니다. 정보는 감사합니다만, 저희 병원에 오는 환자가 있으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최선을 다하는 게 의사의 본분입니다. 나머지 정치적 부분은··· 그다음 일입니다.”

“호호, 고집이 세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그녀는 씩 웃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 고집 없이는 정상에 오를 수가 없으니까요.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이리저리 따지는 친구들은 늘 낙마하더라고요. 제가 검찰에서 일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벌써 종종 보거든요. 아! 그럼 이제 일어날게요. 그리고 혹시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강지연 검사는 자신의 명함을 나한테 건넸다.

나는 그걸 받았다.

아버지쪽 사람의 명함이라, 옛날 같았으면 그냥 찢어버렸을 텐데.

나는 조용히 그 명함을 챙겼다.

역시 내가 옛날보다 더 순해진 게 분명하다.

좀 더 속물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세상과 공명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근데······.

진짜 강지연 검사의 말대로, 아버지 한태산 회장과 딸 한유나씨가 동시에 이곳 병원에 입원하게 될까.

내가 기억하는 과거엔 그런 일은 없었다.

한태산 회장도 한유나도 아마 이때쯤 사망했을 테니까.

근데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물론,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서둘러 흉부외과 스테이션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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