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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43화 (43/145)

신비한 인턴 03

<46>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던 나는 의아해하며 중년 여자를 쳐다봤다.

누구지?

그런데 그 여자는 갑자기 이마가 땅에 닿을 것 같이 인사했다.

너무 과한 인사.

나도 모르게 다시 인사했다.

그리고 약간 서먹서먹한 가운데.

상대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윤혜선입니다. 윤 실장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윤 실장?

대체 누구지?

의아하긴 했으나.

한유나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냥 미소만 지으며 화답했다.

그런데 윤 실장이라는 여자는 그 존재감이 상당한 듯.

넓고 썰렁했던 2002호실, 그곳에 드리워져 있던 어둠과 무력감이 어느새 싹 사라진 느낌이다.

한쪽으로 조금 열린 작은 창문, 그곳에선 신선한 바람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고.

여기저기 놓여 있는 모조 꽃 화병들 덕분에 기분 좋은 느낌이 사방에 가득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김정민입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아가씨를 여러 번 구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윤 실장은 다시금 깊이 머리를 숙였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따라서 머리를 숙였다.

이거 참.

예의가 너무 과해도 너무 힘들구나.

한편, 잠시 후.

윤 실장은 다소곳한 모습으로 서서, 날 가만히 쳐다보다가 곧이어 침대 쪽을 가리켰다.

“아가씨께선 이송 중에··· 어쩌면 선생님을 보신 것 같다고··· 그때 잠깐 의식이 있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어? 날 봤다고?

그냥 환상 같은 거 혹은 환청 같은 게 아닐까.

“앰뷸런스 이송 중에 음, 잠깐 의식이 돌아오긴 했습니다만, 아주 잠깐이었는데···.”

그러자 윤 실장은 내 말을 자신의 질문에 대한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염치불고하고 간호사 선생님께 부탁을 좀 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바쁘신 선생님을 감히 불러서.”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유나씨 좀 뵐 수 있을까요?”

“네.”

윤 실장은 침대 쪽으로 날 안내했다.

머리맡이 비스듬하게 세워진 침대.

그 침대에 누워 가만히 저 멀리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한유나.

어느덧 화사한 가을빛이 쏟아지듯 들어오고 있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하늘은 무척 맑았고.

가을비 덕분에 더없이 깨끗해진 것 같았다.

“아가씨. 김정민 선생님입니다.”

내가 옆으로 다가섰지만.

하늘을 향한 시선을 놓지 않던 그녀는 뒤늦게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고 날 쳐다봤다.

새카만 눈동자.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젖어 있는 그 눈빛.

임페리얼 서울 호텔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다.

그녀의 탐스러운 갈색빛 긴 머리카락은 한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고.

다만, 메이커업이 되지 않은 탓인지 얼굴에 더 생기가 없고, 입술도 약간 부르터 있다.

그럼에도 내가 본 환자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환자다.

수척한 모습 자체도 기이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런 여자.

#

“아가씨!”

윤 실장이 슬쩍 재촉하자, 그제야 한유나는 입을 열었다.

“···기억···납니다··· 그때··· 호텔에서···.”

그 순간, 나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짜?

진짜 날 기억한다고?

그때 내가 너무 무안할 정도로 쳐다봐서 약간 미간을 찌푸렸던 그녀.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쳐다봐도 표정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한유나가 시선을 떼지 않고 날 쳐다보고 있어, 오히려 내가 시선을 돌려야 했다.

“······말씀이··· 절··· 살리셨다고···.”

그 말에 나는 힐끔 윤 실장을 쳐다봤는데.

순간, 고개를 끄덕이는 윤 실장.

도대체 어떻게 윤 실장이 호텔 그 일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한유나도 그때 일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어떠세요?”

그러자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입을 여는 그녀.

“음, 마음이······.”

“······.”

“···좀··· 후련···해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어떤 사정이 있으신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꼭 힘내셔야 합니다! 그건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살 시도 전력이 있는 사람들 중에 32.4%가량은 자살 시도 이후 심리적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재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오히려 생의 의지가 더 커지게 된다.

내가 바라보는 한유나.

그녀는 어디에 속하게 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녀의 눈빛만으론 그 속내를 읽을 수도 없다.

한편,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눈을 감는 한유나.

아직 낯빛이 창백했고 생기도 없어 보인다.

대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회복하기까지 분명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무서운··· 꿈을 꿨는데······.”

도대체 어떤 꿈을?

그러나 그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말과 함께 감정적으로 많이 힘든 듯 눈가에 격렬한 경련 증세까지 나타났다.

놀란 윤 실장.

“아가씨!! 괜찮으세요?”

이때, 나는 청진기를 즉시 꺼냈다. 혹시 수술 이후 예후가 좋지 못할까.

그러나 한유나는 한 손을 들어 가볍게 저었다.

“···괘··· 괜···찮아···요···.”

나는 윤 실장을 응시했다.

“윤 실장님. 깨어나신 뒤, 혹시 대화 같은 거 많이 하셨습니까?”

윤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 정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좀 나눴습니다. 제가 좀 무리했나요?”

“큰 수술을 했고, 그래서 아직 정상이 아닙니다.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조금 주무시게 하는 게 어떨까요? 지금 단계에선 수면제 처방 같은 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때 나는 눈짓으로 주변 불빛을 가리켰고.

윤 실장은 바로 알아들었다.

그러고는 나는 한유나에게 인사했다.

“조금 주무세요. 주무시고 나면 더 기분이 좋아지실 겁니다. 몸도 마음도 모든 게 더 좋아지실 겁니다.”

이때, 한유나는 지그시 날 쳐다보다가, 눈을 깜빡이며 긍정의 뜻을 표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가볍게 인사했다.

잠깐 만나자고 해서 이곳으로 올라왔고.

더는 지체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윤 실장한테도 인사한 뒤 바로 나가려고 했는데, 윤 실장은 곧바로 내 뒤를 따라붙었다.

“선생님! 잠시만요!”

“네?”

“죄송한데, 조금만 밖에서 기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몇 분이면 됩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나는 흔쾌히 응했다.

“네. 그럼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

그로부터 잠시 뒤.

윤 실장이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다시 날 향해 머리를 숙이는 윤 실장.

와! 왜 이렇게 인사성이 좋지?

근데 저 한유나와 정말 무슨 사이일까.

이런저런 호기심이 생기는 가운데, 윤 실장은 한쪽 복도 끝, 면회객 대기실을 가리켰고.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그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 뒤.

긴 대화를 마친 나는 서둘러 흉부외과 스테이션에 돌아왔다.

<47>

“네, 네. 알겠습니다. 대기하겠습니다.”

허름한 여관.

소주 두 병에 오징어 하나.

그 앞에 앉아 웃통을 드러내고 있던 남자. 그는 소리쳤다.

“야! 나도 좀 씻자! 빨리 나와! 새꺄!”

그러자 화장실 문이 열리며 벌거벗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온몸이 흉터투성이다.

양쪽 팔과 등에는 섬뜩한 문신까지 새겨져 있다.

“시발! 씻지를 못하겠네. 전화는 해 봤어?”

“했다. 시빵새야!”

웃통을 벗고 있던 남자는 곧 일어서며 씻기 위해 바지를 재빨리 벗었다.

막 화장실에서 나온 벌거벗은 남자는 따로 준비해둔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또 입을 열었다.

“뭐래? 다시 하래? 아니면?”

“시파! 다시 하긴? 납작 엎드려 있으란다. 사정 안 좋다고. 나중에 다시 부르겠다고.”

“잔금은?”

“잔금은 시파! X같은 소리 말고, 너라면 주겠냐? 좀 잘 하지! 왜 거기서 꼬여?”

그러자 체육복을 입던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시발!! 내가 뭘 잘못했다고? 계속 X같은 소리만 하네! 그 새끼가 갑자기 튀어나올 줄 내가 어떻게 알아? 시발, 근데 잔금도 안 준다고?”

어느새 검정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남자. 그는 축축한 머리를 한번 털어낸 뒤 주저앉으며 소주 한 병을 손에 쥐었다.

뚜껑을 따자마자 바로 입에 쏟아붓는 남자.

그사이, 바지를 벗은 남자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요란하게 들려오는 물소리.

오징어를 쭉쭉 찢어 입에 넣고 씹다가 어느새 빈 병이 된 소주병을 냅다 벽으로 던져 버렸다.

소주병 파편이 허름한 침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쏘아볼 뿐, 씩씩거리다가 한쪽 시커먼 백에서 이것저것 꺼냈다.

미처 주사하지 못한 주사기도 그 안에서 나왔고.

각종 흉기들도 그곳에서 나왔다.

시발, 성질 같아선 이따위 주사기 같은 게 아니라, 이 칼로 쑥쑥 쑤셔버려야, 그래야 진짜 죽이는 기분이 드는데.

그러나 고객은 그걸 원치 않았다. 아주 조용한 죽음. 서서히 죽어가는 죽음. 그걸 원했을 뿐이다.

그래서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이지 못했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 새끼!

그 이상한 의사 새끼 때문이다.

단숨에 제압하려고 달려들었는데.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 새끼!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가 있을까.

귀신을 봤나.

그년을 지키고 있던 귀신, 그런 거?

남자는 인상을 팍 쓴 뒤, 자신의 허벅지를 만졌다.

그때 생긴 상처.

나중에 지혈도 했다.

물론, 상처는 그리 깊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잘못됐어도 동맥을 다칠 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상황이었다.

남자는 백에서 이것저것 응급약들을 꺼낸 뒤, 다시 그 부위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대충 응급용 봉합사로 꿰매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처치가 될 수 없다.

피부 아래 근육을 봉합하지 못한 탓에 그쪽이 무척 아프기만 하다.

“시발!”

진통제 몇 알을 빼서 입에 넣었다.

“시발!”

다시 욕설이 튀어나왔다.

잠시 후 대포폰을 꺼냈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시바, 난데··· 좀 꿰매야 할 게 있어서. 좀 베였다. 9시? 알았어.”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밤 9시쯤, 의사를 만나기로 했다. 솜씨도 꽤 괜찮은 의사다. IMF로 힘들었던 시기, 주로 장기밀매에 가담했던 의사여서 나름 외과 방면에 실력이 있는 인간이다.

‘시바! 근데 대체 누구지? 진짜 귀신은 아닐 테고? 내가 헛것을 볼 리도 없고.’

뿌드득! 뿌드득! 소리를 내며 이를 갈다가 그는 축축한 머리를 한쪽으로 넘긴 뒤 다시 대포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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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안녕하세요? 저는 J일보 한주성 기자입니다. 혹시 오늘 아침, 거기 VIP실 병동에서 그 의사분···?”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슬쩍 운을 띄우자, 이때 스테이션 간호사가 놀라며 대답했다.

“누구? 담당 교수님요? 어어, 서철성 교수님? 서 교수님 찾으세요?”

서철성? 서철성이 누구야?

좀 더 알아보자.

다행히 대단히 얼빵한 간호사가 받은 모양이다.

“네! 근데 그 의사분··· 어느 과 병동에···?”

잠시 뜸을 들이자, 다시 들려오는 순진한(?) 간호사의 목소리.

“거긴 흉부외과인데 제가 그쪽 스테이션으로 전화 돌려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하하! 제가 직접 전화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발년! 난리네. 난리.

남자는 욕설을 내뱉은 뒤 이름 석 자를 메모지에 적은 뒤 자신의 가방에 다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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