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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47화 (47/145)

수처의 신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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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는 좌심실 후하벽 쪽!

앞선, 윤미연 교수님이 수술한 좌심실 후벽(posterior wall)과는 위치상으로 약간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후벽에서 좀 더 아래쪽인데, 그 위치 때문에 접근성이 비교적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위치에서 주로 발생하는 건, 바로 특이한 가성 좌심실류!

일반적인 (진성) 좌심실류는 그 조직이 심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혈전을 대략 50%가량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가성 좌심실류는 심낭막(pericardium)과 혈전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성’이라는 말처럼 쉽게 파열될 수 있다.

실제, 급성 심근경색 발생 이후, 1년 이내 사망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은 바로 가성 좌심실류의 파열이다.

그런데 [베살리우스의 눈(B)]에 의해 드러난 새로운 병변!

바로 가성 좌심실류가 가장 잘 발달되는 위치 쪽에서 붉은빛이 도드라지고 있다.

현재, [베살리우스의 눈(B)]의 병변 구분 확률은 85%.

절대 높은 수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특성은 새로운 병변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우려를 낳게 했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보통 이런 가성 좌심실류는 관상동맥 조영술상 관동맥 음영 관찰로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

영상실 의사들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도플러 검사를 통해 일부 확인이 되기도 하나, 이 시대 기준으로 봤을 때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초음파검사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 (진성) 좌심실류와 가성 좌심실류가 병변 부위에 동반되어 나타날 때, 실제 심초음파에서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니 이걸 놓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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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선생, 우리 이제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해제하지?”

이때,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는 윤미연 교수님.

사실상 수술 완료를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수술을 멈추게 되면 한태산 회장은 수술 이후의 생사를 절대 장담할 수가 없다.

특히, 가성 심실류가 갑자기 파열되기라도 하면 아주 심각한 사태가 터질 수도 있다.

이미 칠순을 훌쩍 넘긴 한태산 회장. 그래서 그의 허약한 심장 상태 때문이라도 이런 파열을 도무지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고, 짧은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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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윤미연 교수님의 표정은 아주 딱딱해진 상태다.

“교수님, 이거 어떡하죠?”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양종규 선생.

좀 전에 외마디 고함으로써 이목을 집중시킨 뒤 나는 깊은 양해를 구하고서.

좌심실 후하벽 쪽으로 직접 접근했다.

내가 그간 쌓아놓은 신뢰, 그리고 윤미연 교수의 넓은 아량 덕분에 가능한 일인데.

그런데 그 병변을 실제 현미경을 통해 확인하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똑똑한 윤미연 교수님.

이것저것 많이 알고 있는 양종규 선생님.

두 사람 모두 내가 초점을 맞춘 수술 현미경을 보고서 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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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무리 봐도 pseudoaneurysm(가성 좌심실류) 맞습니다!”

수술용 현미경에서 뚜렷하게 잡히는 가성 좌심실류의 기괴한 모습.

이건 아무리 봐도 달라질 수가 없다.

그 순간, 윤미연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맙소사! 자신이 실수를 하다니.

물론, 판독을 잘못한 영상실 의사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자신도 수술 전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도대체 이걸 어떡하지.

이대로 덮게 되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로 수술을 하면 된다.

문제는 수술 시간!

현재 총 수술 시간, 4시간 19분.

심폐 바이패스, 175분 경과.

완전순환정지, 47분 경과.

즉, 완전순환정지 시간이 어느새 한 시간에 다다르고 있다.

그녀의 머릿속이 비상하게 움직였고.

몇 초 사이 이미지 트레이닝이 반복됐다.

그러나 지금 다시 수술을 시작한다고 해도 대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절제술에 의한 심장 천공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위험하다는 것!

그런 절제술 외에도 재건술 등의 봉합술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대략 10분 내, 그 짧은 시간 내에 모두 마쳐야 한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

절제도 해야 하고, 촘촘한 봉합도 해야 하고.

“교수님, 어떡하죠? 그냥 우선 닫고 다시 수술하시는 게?”

그러나 그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칠순 나이가 훌쩍 지난 노인.

심장 수술을 다시 한다는 건, 한태산 회장의 몸에 엄청난 부담을 안길 수밖에 없다.

또한, 완전순환정지는 하고 싶다고 해서,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본래, 완전순환정지는 수술 환자한테 각종 후유증 및 합병증을 남기게 되고.

수술 이후 예후를 무척 나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완전순환정지 시간 자체가 길어지는 건 뇌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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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근데, 지금 수술하는 게 무조건 낫지 않습니까! 제가 돕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이번에도 용감하게 외쳤고.

이때, 윤미연 교수님과 양종규 선생이 날 쳐다봤다.

사실, 뇌사자 도너(donor)에 대한 하베스트(harvest) 작업을 위해 저번에 광주에 같이 내려갔던 양종규 선생.

그때 조금 친해진 터라 양종규 선생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하면서 날 쳐다봤고.

다행히 일그러진 표정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가성 심실류를 찾은 건 바로 내가 아닌가.

그러나 윤미연 교수님은 여전히 미간이 굳어있는 상태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 때문에 더는 머뭇거릴 수가 없다.

에이씨, 그렇담 할 수 없다!

그 순간, 나는 즉시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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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럽 널스로부터 즉시 수처 세트를 건네받은 뒤 살균 거즈를 대상으로 나는 아주 빠르게 수처를 시작했다.

에이씨, 이러다간 다 털리겠네.

하지만 이미 시작된 거다.

물론, 인턴한테 수많은 수술 기회를 제공한 건 바로 흉부외과 교수들이다.

인력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때문에 인턴 역시 그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혹시라도 누군가 의심을 품고서 나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변명을 하고 말 테다.

그리고 그런 결심까지 한 터라, 나는 절대 여기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저 보여주는 수밖에!

곧이어 내가 재빨리 선보인 봉합 방법은 바로 반 매몰 방식의 수평 석상 봉합술(half-buried horizontal mattress suture)과 그 외 다양한 수처 기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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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 마스터(C)]!

[수처(봉합) 중 손가락의 움직임이 2배 빨라집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네!

그 순간, 특성빨에 의해 내 손가락 움직임은 두 배 빨라졌고.

또한,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외과 봉합 실력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자 그 자체가 무척 현란해졌다.

단순히 몸놀림 속도도 두 배가 되면,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무척 빠르고 현란하게 느껴지는데.

실제, 윤미연 교수와 양종규 선생은 이내 눈이 동그래진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이런 봉합술의 달인이었고.

애매한 사람이 그걸 본 게 아니라 바로 흉부외과 전문 의사가 본 거라서 더욱더 확실하게 내 실력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

그 순간!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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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해 보자!! 양 선생!! 빨리 위치 교대해!!”

“네! 교수님!”

양종규 선생은 재빨리 위치를 바꿨다.

삽시간에 나는 퍼스트 어시가 되었고.

윤미연 교수는 딱딱한 고함을 질렀다.

“15번 메스 주세요!”

스크럽 널스로부터 메스를 즉시 받은 윤미연 교수.

그녀는 즉시 위치를 잡으며 수술 현미경을 통해 재빨리 절제술을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둘 중의 선택지 중의 하나를 택한 것이다.

자신한테 위험하지만, 환자를 살리는 길.

자신한테 안전하지만, 환자를 죽이는 길.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녀는 과감하게 전자를 택한 것이다.

약아빠진 교수였다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을 건데.

그러나 윤미연 교수는 절대 그런 쓰레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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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빨리 시작해!”

스크럽 널스로부터 2-0 prolene 수처를 받은 나는 날카로운 니들을 이용해서 번개같이 수처를 시작했다.

[수처 마스터(C)]!

[수처(봉합) 중 손가락의 움직임이 2배 빨라집니다]

손가락 속도가 아주 빨라졌고.

아주 정교하게 움직였다.

그러니 이 속도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사실, 나는 단순한 인턴이 아니다.

회귀 전, 수없이 수처를 진행했던 베테랑.

그 실력이 이곳에서 다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4-0 prolene 수처도 건네받았고.

pericardial patch를 덧대어 봉합 및 부분 재건술을 순식간에 마쳤다.

그런 일련의 일들을 모두 반복한 끝에 가성 심실류들에 대한 처치가 어느새 완료되었다.

그 순간, 모두 고개를 돌렸다.

현재 총 수술 시간, 4시간 29분!

심폐 바이패스, 185분 경과!

완전순환정지, 57분 경과!

와! 미쳤다.

마치 모두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같았고.

그 순간, 더 바빠졌다.

아직 일이 끝난 게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완전순환정지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관류법 등을 통해 완전순환정지 시간을 더 늘릴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많은 한태산 회장한테 적용하는 건 상당한 위험성이 따르고.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거의 한 몸이 된 듯 일사불란하게 완전순환정지를 해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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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참 뒤.

“하하, 하하하! 야! 김정민 선생! 너 진짜 물건이다!”

마무리 봉합까지 마친 뒤 수술을 끝낸 양종규 선생은 호탕하게 웃었다.

저번, 심장 하베스트 때문에 광주 병원에 갈 때.

윤미연 교수님이 아끼는 제자라서 코를 그렇게 골아도, 그저 웃으며 내버려 뒀는데.

그때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완전 물건이 아닌가.

윤미연 교수가 그렇게 아낄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칭찬하는 것도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세컨 어시 역할도 군더더기 없이 아주 정확하게 해냈고.

구태여 빈말을 할 필요도 없이.

자기 스스로 모든 일들을 알아서 척척 해냈다.

좀 전에는 놀라운 봉합 실력까지 드러냈다.

대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으면 저렇듯 정확하고 재빠른 실력을 보일 수가 있을까.

타고난 능력?

그럴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양종규의 눈에는 니들에 쉴 새 없이 찔려본 인턴의 고행이 보였고, 그로 인해 인턴의 실력이 정말 숙련된 게 확실히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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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정민 선생, 다음에 오프 받으면 그때 우리 술 한잔하자! 알지? 우리 의사들, 어떻게 술 마시는지? 제대로 한번 마셔보자고! 짜식! 오늘 너 큰 거 하나 했다!”

그렇듯 유쾌하게 웃는 양종규 선생.

그리고 그는 아주 신기해하는 모습이다.

반면, 나는 그런 걸 떠나서 이제 정말 큰일났다!

나의 오리지널 봉합 실력이 고스란히 공개된 거다.

그것도 2배 가속이 붙은 상태로써.

그런데 바로 그때, 경쾌한 시스템 알람이 내 귀에 들려왔다.

[미션 완료 ······100%!]

[축하드립니다!]

[미션, 차가운 심장, 뜨거운 심장(클래스 A)를 완벽히 완수하셨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보유 특성 중 한 개에 한하여 등급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등급 상승을 원하는 특성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에휴, 그래도 미션은 달성했으니.

그나마 다행!

그렇다면 이제 무슨 특성의 등급을 올려볼까.

그때부터 나만의 달콤한 고민이 시작되었는데.

그사이, 나는 양종규 선생과 함께 수술방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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