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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의사가 능력을 가짐-49화 (49/145)

열정의 인턴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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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시각.

“선배님!”

환자 회복실에 잠시 머물며 환자 바이탈 체크를 마친 나는 회복실을 벗어나 흉부외과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스테이션 앞에 서서 수간호사와 이야기 중인 김재호 선배를, 나는 발견했고.

바로 다가가 인사했다.

이때, 수간호사는 내가 자신한테도 인사하며 쳐다보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김 선생님, 요즘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네? 저요?”

“네. 표정이 무척 좋으세요.”

어? 내가 그런가?

수간호사는 다시 웃었다.

“혹시 좋은 소식 있으시면 꼭 저한테 먼저 알려주세요. 꼭이요! 꼭!”

그러면서 나이답지 않게 주먹으로 파이팅 자세를 취한 뒤 등을 돌리는 수간호사 선생님.

내가 잠시 황당해하며 그 모습을 쳐다보자, 옆에 있던 김재호 선배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야! 신경 쓰지 마. 너 요즘 간호사들 사이에서 유명인된 거 몰라? VIP실 병동에서부터 응급실 간호사들까지 이것저것 이야기들 많이 한다더라. 신라그룹 데릴사위라는 소문까지 돌던데?”

“네? 제가요?”

반문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나 김재호 선배는 오히려 진지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나도 궁금한데, 2002호 환자랑 진짜 뭐 있어?”

“아뇨. 전혀 아닙니다만!”

내가 정색하자 김재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뭐만 했다면 괜한 소문이 나긴 하지. 참, 근데 수술은 잘 끝났어?”

“네. 잘 끝났습니다”

그러자 바로 수술 상황을 묻는 김재호 선배.

“환자 상태는? 수술 진행은?”

“환자 무사하고 모든 처치 완료됐습니다. 바이탈도 괜찮고. 아주 잘 된 것 같습니다.”

그러자 가볍게 두 번 박수치며 기뻐하던 김재호 선배는 이내 짧게 한숨도 내쉬었다.

“다행이긴 한데. 벌써 골치 아프네.”

무슨 일이지?

“그 환자가 누구냐? 한태산 회장이잖아. 거기다가 우리 병원에 한태산 회장 막내딸도 와 있고. 집안이 통째로 우리 병원에 와 있다고. 그 환자들이 다들 우리 흉부외과 환자들이란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한유나가 나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됐고. 졸지에 한태산 회장까지 이쪽으로 와 버렸다.

“니가 어쨌든 수고는 했다만, 이제 앞으로 큰일이다. 큰일···.”

내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자 김재호 선배는 말했다.

“아까, 홍보팀 팀장이 다녀갔다. 신라병원 등지고 한태산 회장이 우리 병원으로 왔다고. 수술 끝나면 바로 스테이션부터 시작해서 전체 사진 따겠단다.”

그 순간,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대충 상황판단이 되었다.

김재호 선배가 지금 뭘 걱정하는지도 바로 알게 되었다.

사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지금도 이곳 흉부외과는 극단적인 상황인데.

전국 각지의 환자들이 그 소식을 듣고서 명의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이곳으로 몰려든다면···.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다가 김재호 선배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수술은 할 만했어?”

“···네. 괜찮았습니다.”

그렇듯 짧게 대답하던 나는 김재호 선배의 표정을 보다가 흠칫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 나타난 또 다른 감정선들.

사실, 생각해 보면, 한태산 회장의 수술에 치프 김재호 선배가 배제된 것이다.

워낙 쟁쟁한 사람들이 들어갔다지만. 최고은 선배도 들어갔고, 나 역시 그 수술에 합류했다.

그럼에도 치프 김재호 선배는 그 수술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체면이 몹시 상할 수도 있는 일이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일이다.

“근데 너도 알지? 내가 우리 윤 교수님한테 조금 배신감 느끼는 거?”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나.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이때, 재빨리 내 진심을 담아 사죄의 뜻을 즉시 전달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사실, 나는 수술에 성공했고, 내 미션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김재호 선배는 좀 난처한 입장이 된 게 아닌가.

그런데 이때 갑자기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김재호 선배.

그는 황급히 내 어깨를 잡았다.

“야! 니가 왜 그래? 내 말은 그런 게 아닌데.”

“네?”

“인마, 니가 무슨 잘못 했다고? 난 그냥 윤 교수님한테 좀 섭섭하다, 그 말이지. 나도 사람인데.”

“그래도 제가···.”

“야! 그러지 마라! 그럼 내가 뭐가 되냐? 적어도 난 후배 시샘하는 놈은 아니다.”

그러고는 씩 웃는 김재호 선배.

“암튼 오늘 새벽부터 고생 많았다. 그리고 갈수록 든든해 보여서 참 좋아. 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약간 힘이 없지만, 김재호 선배의 그 말투에서 나는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인자한 애 아빠 김재호 선배.

날카로운 의사의 모습보단 후덕하고 인정 많은 김재호 선배.

그래서 그가 나중에 성형외과 병원 운영에 성공했을 때도 내 일처럼 기뻐했던 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이때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보니, 내가 과거에 흉부외과를 전공으로 선택했던 건, 확실히 몇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오래전에 잊어버렸다가.

갑자기 지금 다시 떠오르는 이유들!

그러고 보면, 당시 인턴 때 흉부외과 턴이 가장 힘들었고.

가히 미칠 것만 같았다.

수면 시간이 극도로 짧아 늘 잠에 허덕였는데.

그런 곳에서 지낼 바에야 차라리 새우잡이 배를 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끝끝내 흉부외과를 선택했던 건,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뛰어난 교수님들.

환자를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는 교수님들.

야간·새벽 콜에도 미친 듯이 뛰어오는 희생적인 교수님들.

자신들의 안위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좀 전에 수술에도 봤던 윤미연 교수님, 그리고 서철성 교수님 등, 여러 교수님들.

언제나 웃으며 환자를 케어하는 열정적인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김재호 선배, 최고은 선배 등등.

비록 양지에서 일하지만, 음지에서 일하는 것 같이 그렇게 일하는 미친 사람들.

그게 바로 흉부외과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세상의 축복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레지던트 과정으로써 이곳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무척 열정주의자였나 보다.

사실, 지금도 변함없는 이곳.

나는 여기가 여전히 마음에 든다.

다른 진료과 치프 선배님들과 달리, 유약하지만 책임감 넘치는 김재호 선배부터 시작해서 나는 지금도 여기가 마음에 든다.

미친놈!

그래, 나도 순 미친놈이다.

이렇게 힘든 곳이 뭐가 좋다고···.

<53>

2001년 11월 7일 수요일 새벽 4시.

바쁜 흉부외과 인턴의 일상은 계속되었고.

현재 시각, 주변은 무척 조용했다.

새벽 가을바람 소리는 저 너머 복도 창문을 타고서 간간이 들려오는데.

한편, 이 시각, 병동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하기만 하다.

그런데······.

“야! 김정민! 너한테 부탁할 게 생겼어!”

스테이션 모니터 의자에 앉아, 그 고요에 취해 잠시 꾸벅꾸벅 졸던 나는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순간, 가볍게 혀를 차는 그녀.

인턴 방지현이었다.

“졸았어?”

그녀는 다시 그렇게 물었고.

나는 흠칫 놀라며 반사적으로 손등으로 입 주변을 훔쳤다.

에이씨, 침을 흘렀네.

곧이어 티슈를 꺼내 손등을 닦았다.

“그냥 숙소 들어가. 진짜 너 바보냐? 오늘 수술 3개나 뛰었다며? 오늘 당직도 아니잖아?”

그러나 그사이 정신을 차린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당직은 무슨? 인턴한테 당직, 비당직이 따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근데 아까 무슨 말 했지?”

내가 빤히 쳐다보자, 방지현 그제야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너한테 부탁할 게 있다고. 저번에 니가 들어주겠다고 한 거.”

그 순간 나는 짧은 탄성을 질렀다.

회귀 때 수술방에서 졸면서 깨어났고. 그것 때문에 잠시 수술 참여가 배제되었다.

그래서 수술 스케쥴 피해를 봤던 방지현과 이동욱.

그런 녀석들한테 미안해서 그때 부탁 하나씩 들어주기로 했다. 그걸 말하는 거다.

“어떤 거? 무슨 부탁? 뭐든 말해.”

사실, 언제 부탁하나, 그렇게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는데.

드디어 방지현이 부탁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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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하는 거··· 그거 좀 가르쳐줘.”

“수처?”

“너 진짜 잘 한다며?”

“내가???”

내가 정색하자 방지현의 눈빛이 변했다.

그러면서 두 눈에 힘이 팍 들어가는 방지현.

“야-아!! 그 표정!! 너, 구라 까지 마! 아까 간호사 쌤들한테서 확실히 들었어.”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이런!

한태산 회장의 수술이 끝난 지 어느덧 이틀이 지났다.

그사이 벌써 소문이 돌고 있나 보다.

병원에서 절대 비밀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대상 중의 하나가 바로 간호사들이다. 뭐, 나쁜 뜻은 아니지만.

실제, 간호사들의 네트워크가 나름 엄청나다. 어느 병동에 있었던 사건은 어느새 모든 병동 간호사들한테 빠르게 공유된다.

어떤 땐, 입소문 도는 속도가 가히 눈부실 정도. 그 덕분에 2002호 사건으로 날 모르는 간호사가 거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 가르쳐줄 건데?”

그러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방지현.

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섰다.

“알았어! 지금 당장이라도 가르쳐줄게. 참! 이동욱 어딨어?”

“이동욱? 걔는 왜?”

“같이 배우면 좋잖아?”

“뭐?”

“그러니까 이동욱이 어딨냐고?”

그런데 바로 그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목에서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방지현.

순간, 주변 간호사들이 놀라며 힐끔 쳐다봤다.

그래서 방지현은 목소리를 낮췄지만.

목소리에 실린 분노는 사라진 게 아니다.

“너 진짜 죽으래? 넌 왜 나만 보면, 자꾸 그 새끼 어딨냐고 물어? 내가 무슨 그 새끼 여자친구야?”

이때, 잠깐 침묵이 이어지다가.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근데 뭐?

그 새끼??

이동욱을 ‘그 새끼’라고 하다니.

서로 싸웠나?

사실, 이동욱, 그 녀석이 얼마나 방지현을 챙기고 있는가.

항상 묵묵히.

언제나 몸종같이.

그런데 어느새 두 눈을 표독하게 뜨고 있는 방지현.

무척 화가 난 표정.

다만, 놀라운 점은 그녀가 저렇듯 화를 내는 건 나도 처음 보는 일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방지현의 아주 딱딱한 목소리!

“너 혹시 오해하는 것 같아서 더 늦기 전에 정확하게 말하는 건데. 이동욱하고 내가 사귄 적은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없었어! 우린 그냥 친구야, 친구! 이동욱 그 새끼가 나한테 고백한 건 여러 번 있었어! 근데 그런 거랑 나랑 무관해.”

한편, 나는 잠시 멍해 있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내가 전혀 몰랐던 사실.

정말 연인 사이가 아니라고?

설마 여사친, 남사친 그런 건가??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동욱의 마음만큼은 진심일 텐데.

방지현의 장례식장에서 이동욱이 얼마나 애달프게 울면서 발광했는데···.

아, 방지현은 모르겠구나.

그러니 나중에 처녀 귀신이나 되지.

그때 이동욱이 그 곁에 있었다면 과연 그렇게 됐을까.

응급 수술도 못 받아보고 처량하게 죽은 방지현!

이 바보! 이 멍충아!

으이고!

나는 다시금 긴 한숨을 내쉬었고.

방지현의 미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방지현]

[성국대 의과대학 흉부외과 조교수]

[2008년 6월, 원인 미상의 심장마비 발생]

[수술 준비 중 사망]

[사인: 급성 심근경색]

[사망 시각: 02시 44분]

제발 좀 지현아!

사랑이든 뭐든!

이번엔 좀 살아남으라고!

어쨌든 잠시 후, 나는 의국으로 잠깐 들어가.

방지현에게 수처 요령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는 의국 내, 작은 회의 테이블 앞에 나란히 엎드렸고, 이내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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