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메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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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꿈틀!
마치 지렁이 같이 꿈틀대던 그 순간.
뭔가 묘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때부터 꾸역꾸역 쏟아지기 시작하는 시뻘건 혈액.
그렇듯 갑자기 대량 출혈이 발생했다.
문제는 수술 중에 발생한 이런 예상치 못한 출혈은 수술자를 크게 당황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출혈 범위가 넓으면 과다 출혈로 이어질 수 있고 환자 생명도 위험해진다.
특히, 급격한 혈압 저하가 동반되면서 뇌 손상이 유발될 수 있으며.
수술 중에 응급처치하더라도.
수술 이후 예후가 나빠져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런 수술 중 뜻하지 않은 출혈 발생은 수술 과정을 무척 복잡하게 만든다.
출혈도 잡아야 하고.
쏟아진 혈액도 제거해야 한다.
수술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게 되고, 수술자도 그만큼 힘들어진다.
그런데 바로 그때!
쏟아지는 피를 보는 순간, 박윤후 교수보다 나는 더 빨리 손을 뻗었다.
다행히 박윤후 교수의 모든 집도 과정을 집중해서 쫓아가다 보니 나는 출혈 포인트를 적시에 잡았다.
반사적으로 나는 동맥부 기시부 등을 잡았고.
즉각 혈관을 막아 추가 출혈을 최소화시켰다.
비록 꾸역꾸역 혈액이 나오던 모습은 사라졌으나, 이미 흘러나온 혈액은 주변 장기로까지 번지고 있다.
“빨리! 거즈! 거즈 빨리요!”
나는 고함을 질렀고.
수술방 간호사 한 명이 재빨리 보조했다.
한편, 오늘따라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던 박윤후 교수는 어느 순간 두 눈에 핏발이 섰고, 두 미간 사이에 깊은 골이 파이기 시작했다.
그사이 쉴 새 없이 거즈가 사용되었다.
피 묻은 거즈는 차곡차곡 옆으로 쌓여갔는데.
삐이이. 삐이이. 삐이.
순간, 바이탈 경고음도 떴다.
“SBP(수축기혈압) 50입니다. 40입니다! 교수니-임!!”
그 순간, 정신을 다시 차린 박윤후 교수.
박윤후 교수는 한발 늦었지만, 재빨리 외쳤다.
“장 선생! 빨리 수혈팩 짜! 빨리! 빨리!!”
사실 잠깐이었다고 해도 출혈량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렇듯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끝에 마침내 출혈 부위에 대한 처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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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어느 포인트야? 어디가 문제야?”
“교수님! Left common carotid artery(좌측 총경동맥) 쪽과 right innominate artery(우측 무명동맥) 쪽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날카로웠던 박윤후 교수의 눈빛이 갑자기 흔적도 없이 소멸되며 오히려 흐리멍덩해졌다.
사실, 수술 집도의는 정확하게 자신의 행위를 알 수밖에 없다.
실제, 조금 전, 박윤후 교수는 자신이 직접 좌측 총경동맥(left common carotid artery)과 우측 무명동맥(right innominate artery)을 박리하던 중이었고.
결국, 자신이 조직 박리를 잘못한 것이다.
특히, 동맥은 절단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환자의 생사를 담보할 수가 없게 된다.
절대 이런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데.
박윤후 교수의 두 눈이 이때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문득 다시 떠오르는 조금 전 움직임. 그걸 생각해 보니, 환자의 주변 조직 유착이 생각보다 많아 메스가 조금 더 깊이 들어간 것 같았고, 그 바람에 동맥 깊숙이 메스가 파고 들어갔던 것 같다.
순간, 어금니를 꽉 깨무는 박윤후 교수.
이건 명백한 자신의 실수다.
즉, 대동맥류 문제가 아니었고.
조직 박리 중에 생긴 실수인 셈이다.
그걸 깨닫자, 점점 더 안색이 창백해지는 박윤후 교수.
그리고 갑자기 확 커져 버린 스트레스 때문인지 몰라도, 갑자기 핑! 돌며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눈앞이 흐려지며 사방이 침침해졌다.
난데없이 두 눈 초점까지 안 맞게 되자 박윤후 교수는 그때부터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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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어떻게 할까요?”
“어. 그게 잠시, 잠시만 잡고 있게. 출혈은 어때?”
“현재 멎은 상탭니다.”
“그럼 조금만 더 대기하게. 조금만 더.”
박윤후 교수는 얼른 눈을 감았다.
사람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시력이다.
사실, 최근에 수술 중에 시야가 잘 안 잡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재빨리 시력을 회복한 적이 있는데.
그러나 지금은 좀 상태가 이상했다.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려도 도무지 초점이 안 맞는다.
이 정도까지 초점 자체가 잘 안 맞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사실, 수술방의 써전은 체면도 있고, 또한 책임감도 있다.
그래서 박윤후 교수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교수님!”
다시 자신을 부르는 인턴의 목소리.
그리고 옆에서도 들려오는 스크럽 널스의 목소리.
세상이 자신을 부르고 있지만.
여전히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어느덧 정년을 몇 년 앞둔 나이.
그리고 내년 1월, 부총장 취임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
그러나 박윤후 교수는 여기서 절대 무너질 생각이 없다.
마치 자신을 컨트롤하듯 그는 자신의 입술이 찢어지라 악물었는데.
그 순간, 입안에 고이는 진득한 피 맛!
동시에 시야가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고.
마치 긴 터널에 갇혀 있다가 다시 바깥으로 나오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 순간, 그는 재빨리 다음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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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좀 더 잡고 있게. 힘든가?”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박윤후 교수는 인턴을 다시 한번 더 쳐다본 뒤, 문제가 되는 동맥 주변을 좀 더 유심히 살펴봤다.
그사이에도 쉴 새 없이 거즈가 들어갔다 나가길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출혈 포인트는 어느 정도 잡힌 상태.
어시를 맡은 인턴이 정확한 포인트를 잡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저건 대량 출혈 사태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수혈팩을 짜 넣는다고 해도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테이블 데스(수술 중 사망) 상황까지 고려될 수 있는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
‘설마 내 손이 문젠가?’
문득 박윤후 교수는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평생 수술을 위해 희생했던 자신의 두 손.
그러나 두 손은 이제 앙상해졌고, 곳곳에 주름이 져 있다.
한때는 누구보다도 빨랐고, 한때는 누구보다도 경쾌하게 메스를 썼던 바로 자신의 손.
그러나 지금은 잔잔한 떨림마저 보이는 그런 손이 되어 있었다.
사실, 평생을 써전으로 살았기에 박윤후 교수는 늘 자신이 있었다.
어떤 상황이든 대처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이 늘 충만했는데.
그러나 정작 자신은 가장 중요한 것들을 최근에 놓치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시력은 떨어지고 있고, 체력도 나빠지고 있고, 손도 점차 떨리고 있다.
써전으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들. 그 조건들이 자신한테 하나씩 달라붙고 있는 것이다.
‘근데 왜 하필 오늘이야? 하필 오늘···?’
박윤후 교수는 답답하다.
왜 하필 지금 그런 상황이 터졌을까.
박윤후 교수는 이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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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네. 교수님.”
“···내 눈에··· 좀······ 문제가 있네.”
“네!?”
놀라며, 내 목소리가 커졌다.
스크럽 널스 역시 놀란 듯 박윤후 교수를 쳐다봤다.
“오늘 건강이 좀 안 좋은 것 같네.”
나는 깜짝 놀란 듯 박윤후 교수를 계속 쳐다봤다.
갑자기 더 창백해진 모습.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두 눈에 핏발이 섰다.
대체 언제 저렇게 됐지?
수술방에 들어올 때만 해도 저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그런데 박윤후 교수님의 말이 빈말이 아닌 듯 그의 손가락마저 조금씩 떨리고 있다.
아, 이런! 설마 교수님 나이 때문인가.
보통, 써전의 전성기는 50세 전후다. 그 나이 전에는 대체로 경험이 부족해서 완전한 전성기에 도달하기 힘들다.
그렇게 전성기에 이른 뒤 이후 60세를 향해가면 이때 써전의 기력은 눈에 띄게 쇠퇴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써전은 마지막 순간을 불태우다가 결국 은퇴를 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노익장 박윤후 교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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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러고 보면, 나는 이런 사정과 반대로, 완벽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해야 하나.
써전으로 거의 최고 지점에서 회귀했고.
육체적으로 거의 전성기인 시점에서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현시점 기준, 20세 중반의 젊은 나이. 그래서 현재 나는 써전으로서 최고 경지에 언제든 도달할 수 있는 그런 토대가 된 상태라고 해야 하나.
“김 선생.”
“네! 교수님!”
“내가 거긴 대신 잡을 테니까 지금부턴 자네가 메스 좀 잡아.”
“네?”
“내가 가이드할 테니까 내 말대로 움직이게. 다른 교수들은 다들 수술에 들어갔을 테니까 시간도 없어. 우선, 내 말대로 하게.”
이때 쉴 새 없이 동공이 흔들리는 스크럽 널스의 모습과 끼어들까 말까를 고민하는 마취과 의사의 모습이 내 시야에 잡혔다.
그들도 이 문제의 위험성을 인식한 모양이다.
하필 인턴한테 메스라니!
누가 봐도 미친 짓이다.
그러나 박윤후 교수는 나한테 메스를 잡으라고 했다.
물론, 지금 당장 메스를 잡으라는 말이 아니라. 메스를 잡으라는 건 집도를 대신 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교대하는 순간, 서둘러 클램프부터 잡아!”
그러고는 박윤후 교수가 손을 뻗었다.
이때, 서로의 손이 스치듯 부딪히는 순간, 나는 위치를 교정해줬고.
찰나, 우리는 서로 교대했다.
그 순간, 나는 스크럽 널스로부터 클램프(clamp)를 재빨리 받은 뒤, 그것으로 동맥을 서둘러 겸자했다.
혈관을 봉쇄하자 자연스레 출혈이 완전히 잡혔고.
그제야 박윤후 교수는 손을 떼고서 물러섰다.
그리고 이때 드러난 문제 부위의 모습!
잠시 그 부위들을 쳐다보다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떡하죠? 지금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습니다. 즉시 봉합하고,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상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 의견을 즉시 제시하자 박윤후 교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네. 우선, 수처부터 시작하고. 내가 가이드할 테니까 자네가 한번 해 보게.”
그래서 나는 바늘을 받아 아주 노련하게 출혈 부위 봉합을 진행했다.
그 과정을 꼼꼼하게 쳐다보던 박윤후 교수.
다행히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역시 소문대로 수처 능력은 뛰어나군. 내가 듣기론 자네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단계도 이미 해봤다면서?”
“네! 윤미연 교수님 수술에서···.”
“그럼 바로 시작해 봐. 이미 다 알 테니 total circulatory arrest 준비 단계까지만 하고 메인 집도는 서철성 교수한테 부탁하도록 하지. 참! 김 간호사! 지금 나가서 서철성 교수한테 연락 좀 하지. 하던 수술, 끝날 때가 다 된 것 같은데, 끝나면 바로 여기로 좀 오라고 하게!”
그 지시를 들은 간호사는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나는 박윤후 교수의 가이드를 받으며 메스를 직접 손에 쥐었는데.
특히, 15번 메스를 손에 쥐는 순간, 뭔가 감회가 색달랐다.
단순한 연습 따위가 아니라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술!
그런 수술대 앞에서 내가 메스를 다시 쥐게 되었고.
비록 현실의 인턴이지만.
마치 회귀 전 교수였던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준비 과정을 진행해 나갔는데.
한편, 조직 박리를 위해 메스를 가볍게 긋는 순간, 이때 갑자기 뜻밖의 시스템 알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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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메스를 쥔 (임시) 집도의!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셨습니다!]
[경험치 +50]
[새로운 특성이 감지되었습니다!]
[춤추는 메스! C등급]
[메스를 손에 쥐면 손의 움직임이 2배 빨라집니다]
[축하드립니다!]
[춤추는 메스(C) 특성을 습득하셨습니다!]
[갈렌의 나이프 특성과 연계 가능합니다]
[이격 블레이딩 특성과 연계 가능합니다]
[예술자의 손 특성과 연계 가능합니다]
[특성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나는 멈칫했다가.
놀라며 내 손을 힐끔 쳐다본 뒤 즉시 마음속으로 ‘네’를 외쳤다.
갑자기 [전용 특성]이 습득되었고. 그 기묘한 느낌에 특성을 즉시 발동시키자, 이때 아주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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