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메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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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내 손이 이렇게 빨라진다고?
수처 마스터(C)에서 느꼈던 그 전율과 흥분.
그 감정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현실화되고 있었다.
좀 전, 박윤후 교수가 집도의로서 결격이 되는 순간.
나는 임시 집도의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고.
그 때문에 획득하게 된 [춤추는 메스(C)] 특성.
그 특성빨로 인해 내 손놀림이 갈수록 빨라지자, 날카로운 눈으로 날 주시하고 있던 박윤후 교수의 입에선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탄성마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단순한 속도의 빠름이 아니다.
나의 오래된 경험에서 나오는 숙련된 집도 능력.
그 실력이 2배속으로 빨라지자 무척 현란하게 보일 정도였다.
사실, total circulatory arrest(완전순환정지) 준비 과정은 뭐 특별할 게 없다.
루틴을 따르는 거니까. 즉, 특별히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게 된다고.
박윤후 교수는 잇달아 낮은 탄성을 질렀다.
수술 도구를 적시에 제공하는 스크럽 널스 역시 내 움직임 때문에 갈수록 손이 바빠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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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경험치 +20]
[새로운 특성을 습득하셨습니다!]
잠시 후, 메스를 쓰던 그 속도를 비록 완벽하진 않으나 순간적으로 간단한 수처 작업에 적용했는데.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수처 속도가 비례적으로 빨라졌다.
즉, [춤추는 메스(C)] 특성의 잔향을 수처 작업에 슬쩍 옮긴 것.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 약간의 효과를 볼 수 있었는데.
그런데 그 시도가 끝나자마자 그렇듯 새로운 시스템 알람이 또 뜨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특성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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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 마스터(D)]
[수처 마스터(D): 수처(봉합) 중 손가락의 움직임이 1.5배 빨라집니다]
어?
그런데 바로 그때!
와!
나는 순간 깜짝 놀라며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앞서 아쉬움이 남았던 특성, [수처 마스터(C)].
그 특성으로 나는 한태산 회장을 구했다.
그러나 그 특성은 일시 개방된 특성이었고.
미션 달성과 동시에 사라졌다.
그런데 다시 [수처 마스터] 특성이 튀어나온 것이다.
숨겨져 있던 보물.
보물찾기를 통해 진기한 보물을 다시 발견하게 된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특히, 내 입이 수술 마스크에 가려진 상태가 아니었다면, 아마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입 모양이 그대로 드러났을 것이다.
비록 이전 등급 (C)에 비하면 좀 더 낮은 등급인 (D) 등급이 나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지극히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수처 마스터(D)]??
이거 진짜 꿀인데?
맞아. 그러고 보니 이런 방식의 응용을 통해, 저번에도 새로운 특성들을 습득한 적이 있다.
즉, [갈렌의 나이프(C)] 특성을 연습할 때, [이격 블레이딩(C)] 특성과 [예술자의 손(C)] 특성이 갑자기 튀어나와 자연스럽게 그 특성들을 획득하지 않았나.
또한, 별의별 특성 조합을 시도한 결과, [갈렌의 나이프(C)] 특성은 [갈렌의 나이프(B)] 특성으로 상향 조정되기까지 했다.
꾸준한 노력, 그리고 특성간 신규 조합.
이런 일련의 일들을 수행한 결과였다.
더군다나 그것들은 미션 달성과 무관했다.
결국, 내 스스로 획득한 달콤한 결과물들이다.
그렇다면 이번 [춤추는 메스(C)] 특성도 마찬가지일 터.
물론, 현 단계에서 [갈렌의 나이프(B)] 혹은 [이격 블레이딩(C)] 특성과의 직접적인 조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엑티브한 절개 기술을 이런 루틴한 준비 작업에 적용하는 건 맞지 않기 때문.
그렇지만 또 다른 절개 특성인 [예술자의 손(C)]!
그 특성과의 조합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예술자의 손 C등급]
[아주 손쉽게 조직 절개가 가능합니다. 제한 조건: 0.01 mm 이상]
[사용하시겠습니까?]
‘네!’
오랜만에 [예술자의 손(C)] 특성이 발동되었고.
특성간 조합이 다시 실행되었다.
특히, 완전순환정지(total circulatory arrest) 준비 단계에 이어.
완전순환정지가 시행되기 전, 그리고 대동맥류 주변 절개 및 인조도관 처치 전, 시야 확보를 위한 추가적인 주변 조직 박리 단계에서 그 특성들은 즉시 조합되었고.
그 특성들은 내 손에서 아주 현란하게 펼쳐졌다.
이때, 절개할 것은 재빠르게 절개했고.
단순 봉합할 것들은 [수처 마스터(D)] 특성을 통해 봉합했다.
[수처 마스터(D)]
[수처 마스터(D): 수처(봉합) 중 손가락의 움직임이 1.5배 빨라집니다]
때로는 티슈 포셉(tissue forceps)을 이용해서 조직을 잡아당겨 접근성 확보와 시야 확보를 확실히 해뒀는데.
그 과정 중에 마치 신들린 듯 내 두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수술방 문이 드르륵! 열렸다.
수술 모자를 꾹 눌러 쓰고 부리부리한 두 눈을 드러낸 서철성 교수.
그가 소독한 두 손을 높이 든 채 이곳 수술방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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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경험치 +20]
[끝없는 모험과 시도를 즐기는 당신!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춤추는 메스(C), 예술자의 손(C), 수처 마스터(D) 특성의 최초 조합!]
[새로운 특성 조합에 성공하셨습니다!]
[특성 조합 성공에 따른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특별 보상······]
[세 개 특성 단계를 즉각 한 단계 상향 조정하시겠습니까?]
[혹은 연계된 특성들을 최종 융합하시겠습니까?]
[단, 융합시 기존 특성들은 즉각 소각되며 새로운 하나의 특성만 획득됩니다]
나는 흠칫하며 이 시스템 알람에 귀를 기울였으나.
잠시 생각만 할 뿐 바로 결정하지 않았다.
간단한 결정이었다면 즉각 결정했을 터.
그러나 지금은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처음 등장했고.
여러 특성들이 하나로 뭉쳐져 하나의 새 특성이 도출된다는 걸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가 지금 서철성 교수님이 바로 내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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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 하던 수술은 다 끝났나?”
“네, 좀 전에 막 끝났습니다. 소식 듣고서 바로 왔습니다. 박 교수님! 근데 건강이 좀 안 좋으시다고··· 아,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그러면서 유심히 쳐다보는 서철성 교수.
이때 박윤후 교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음, 이게 바로 나이 탓이네.”
그런데 그 간단한 답변에 순간 서철성 교수의 두 눈엔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안도감.
그러나 이내 나타난 무언가 서글픈 눈빛.
그리고 잘게 떨리는 눈동자.
그런 감정들이 서철성 교수의 두 눈에 나타났다.
서철성 교수는 바로 뭔가를 깨달은 것이다.
한편, 박윤후 교수는 문득 김 간호사를 쳐다봤다.
자신의 상황을 전달한 그녀.
그러고는 박윤후 교수는 이내 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사건은 아마도 순식간에 병동 전체에 퍼질 가능성이 컸다.
사실상, 간호사들은 자신의 제자도 아니었고.
이 난감한 상황을 함구해 달라고 해도 그게 완벽히 지켜질지 알 수가 없다.
아니지.
이젠 그걸 구태여 비밀로 할 이유가 없다.
이미 다른 수술 중에도 이런 일들이 여러 번 일어났었다.
물론, 오늘 같은 경우는 처음이지만.
‘그래, 인정할 건 깨끗이 인정하자. 퇴물이 수술장에서 은퇴한다고 해서··· 누가 손가락질할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이 섭섭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적어도 70까진 가능할 거로 생각했는데.
그러나 도저히 불가능하다.
직업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그러나 메스를 다루는 써전으로서, 이미 자신은 황혼기를 지난 거나 다름없다.
이제 수술대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왜 이렇게 아쉬울까.
마음은 청춘인데.
아직도 메스를 쥐고서 위급한 환자들을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은데.
어느새 자신은 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육체가 그걸 견디지 못하고 있으니 자신에겐 더 이상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하늘 높이 치솟는다.
‘흠, 그래도 교수직은 남아 있어.’
자신한텐 교육 의무도 있고.
더 나아가 부총장직 같은 행정 업무를 맡을 수 있어 아직은 뭔가 할 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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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 일이 어쩌다가 좀 그렇게 됐네. 우선 이 환자부터 빨리 수습하고,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네. 교수님, 그럼 그렇게 하시죠.”
박윤후 교수는 눈으로 웃으며 물러났다.
아주 든든한 후배 교수이자, 한국대 의대 후배이기도 한 서철성 교수.
역시 서철성 교수한테 이 일을 맡기고자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가장 후환이 없고 가장 확실하다.
환자도 좀 더 안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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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그럼 저건, 자네가 한 건가?”
“네. 교수님.”
힐끔 박윤후 교수를 쳐다보던 서철성 교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집도의 위치로 완전히 들어섰다.
그리고 바로 스크럽 널스로부터 15번 메스를 건네 받았다.
“자! 바쁘니까 바로 시작하지.”
“네! 교수님!”
그 순간, 즉시 수술을 시작하는 두 사람.
한편, 상황 수습이 어느 정도 되자, 박윤후 교수는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봤다.
어느새 퍼스트 어시 역할을 수행하는 인턴.
‘흠, 역시 잘 하는군.’
특히, 좀 전의 기억 때문인지.
인턴의 움직임이 좀 더 적나라한 모습으로 두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사실, 자신의 전성기 때도 좀 전 인턴과 같은 움직임은 불가능했는데.
모든 게 빠르면서도 또 현란했고.
조직 박리 작업 때의 그 섬세함과 그 재빠름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때, 박윤후 교수는 좀 더 생각해 봤다.
‘그래··· 하긴··· 저 서철성 저 친구도··· 저맘때 천재라고 불렸으니까.’
어느새 참관자가 된 상태로, 저들의 수술 과정을 쳐다보던 박윤후 교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 서철성 교수 역시 천재다.
한국대 의대에서 한때 독보적이었던 천재.
레지던트 초년생 때 워낙 어시를 잘 해, 교수들이 너나없이 서철성 교수를 수술방으로 데려갔고.
비록 몸은 힘들어도, 임상 수술 케이스가 많아지면서 서철성 교수의 실력도 그때 비약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근데······ 저 손놀림들이···. 그래! 요 근래, 서 교수 수술에 많이 들어갔다더니··· 설마 저런 걸 서 교수한테서 바로바로 배웠나?’
역시나 두 사람의 손 움직임이 거의 흡사하다.
하긴, 제자는 스승을 닮는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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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후 교수는 씁쓸히 웃었다.
수술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와 닿는 숙연함.
어느덧 뒷방 늙은이가 된 자신의 모습.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얼굴엔 다시 화색이 돌아왔다.
든든한 후배와 제자의 모습 덕분이다.
한편, 그사이 수술은 어느덧 후반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혈류가 차단된 상태에서 각 도관 및 스텐트 그라프트 등이 특별한 문제 없이 대동맥류 위치에 문합되었고.
상행대동맥 원위부와 대동맥궁 위치에서 스텐트 그라프트의 설치도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
주요 수술이 그렇게 끝나자, 서철성 교수는 옆으로 물러섰고.
인턴에게 뭔가 기회를 주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때 놀란 듯 쳐다보던 박윤후 교수는 이내 두 눈이 부드럽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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