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인간 02
<56>
“네?? TA 환자라고요? 10충 추돌사고? 네. 네. 알겠습니다. 바로 내려가서 확인할게요.”
한편,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부리나케 의국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내려가, 잠시 후 응급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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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늘은 거기 한가한가 보네? 이렇게 빨리 보내주고?”
응급실 레지던트 2년차 조은하 선배.
스테이션 앞에서 어느 간호사와 대화 중이던 그녀는 내가 나타나자 아는 척을 했고.
나는 바로 인사했다.
“좀 전에 수술 끝나고 나왔습니다. 선배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러자 조은하 선배는 간단히 이야기했다.
일산 자유로 쪽에서 10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고 하고.
대다수 환자는 일산 모 병원으로 옮겨지거나 가까운 서울 지역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몇몇 환자들은 그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는 것이다.
이곳 응급실의 컨펌을 받은 직후 이곳 응급실로 곧장 이송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특히, 당시 사설 응급 차량을 타고서 빠르게 이송되고 있던 출산 임박 임신부의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고 했다.
119구급대원의 연락에 의하면 충격으로 앞쪽 흉부 쪽에 큰 손상을 입은 것 같고.
머리 쪽에도 아주 심각한 출혈이 발생했다는 거다.
문제는 임신부라는 특이성 때문에 즉시 인근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그쪽에서 바로 난색을 표했고.
결국, 다시 이곳 성국대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사망 가능성은 무척 크다고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CPR(심폐소생술)도 시행했대.”
“네?? 그럼 태아는?”
놀라며 내가 되묻자, 조은하 선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 엄마가 살아야 태아도 사니까. CPR은 우선 시행됐고. AED(자동제세동기)도 포함해서. 그래서 태아는··· 으음, 쉽지 않을 거야. 곧 OB-GY(산부인과) 쪽에서도 사람이 내려올 텐데. 아! 그리고 그 환자 외에도 몇 명 더 있어···.”
조은하 선배는 몇몇 환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런데 나는 임신부 이야기에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고.
그 임신부 쪽에 온 정신이 집중되었다.
보통, 임신부한테 CPR이 시행됐다는 건 태아보다는 엄마의 목숨에 비중을 뒀다는 의미다.
일례로 임신부가 심정지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최대한 신속히 제왕절개술을 시행한다.
바로 태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조차 없었다는 건···.
결국 태아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몇 분 더 기다려보자. 곧 도착한다니까.”
조은하 선배는 그렇게 말한 뒤, 마침 뛰어오는 OB-GY(산부인과) 레지던트한테 다가가 다시 상황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각 진료과에서 나온 몇몇 의사들이 응급실에 모여 몇 분 더 기다렸을 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앰뷸런스들이 드디어 응급실 앞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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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뛰어나갔던 응급실 의사들은 119구급대원 등의 도움을 받아 스트레처카를 밀고서 응급실 안으로 요란하게 뛰어들어왔다.
그러자 확! 풍기는 피 냄새들과 기분 나쁜 매캐한 냄새!
도대체 얼마나 심하게 TA(교통사고)가 발생했으면 실려 들어온 여섯 명 모두 피범벅이고, 두 명은 심각한 화상까지 동반됐다.
특히, 한 명은 아주 지독했다.
전신의 절반가량 새카맣고 탔고.
목이 부러진 상태다. 누가 봐도 사망한 상태.
즉각 그 여자만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고.
남은 환자들에 대해 재빨리 처치를 시작했다.
응급의학과 당직 교수 김상희 교수도 직접 움직였고.
각 진료과에서 나온 사람들 역시 각자 흩어져 돕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저 너머 베드 쪽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었다.
그 임신부다!
아랫배가 유난히 부풀어 오른 만삭의 그녀.
그러나 응급실 도착 직후 다시 어레스트(심정지)가 발생했고, 현재 또다시 CPR(심폐소생술)이 시행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저건···.
태아는 이미 틀린 것이다.
배 크기만 봐도 대략 만삭으로 보이는데 저런 상태에서 태아가 그 충격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거기다가 임신부 역시 그 상황이 심각했다. 하혈을 비롯하여 온몸이 피투성이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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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네!”
그 베드 쪽으로 한참 정신이 쏠렸던 나.
정색하며 응급의학과 김상희 교수를 쳐다봤다.
한편, 김상희 교수는 간호사들과 함께 환자들을 긴급히 응급처치하다가 잠시 뒤쪽으로 물러서며 나한테 고개를 돌렸다.
내가 예전에 응급실 턴을 뛰었던 적이 있어서.
그는 바로 날 알아오는 것 같았고 거리낌 없이 상황 설명을 했다.
“내가 봤을 땐 최소 3건 정도 흉부 수술 들어갈 것 같네.”
나는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직 수술이 확정된 건 아니다.
아직 검사가 진행된 것도 아니고, 마취통증과 의사와 협의된 것도 아니다.
“근데 오늘은 CS(흉부외과)에서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요 며칠간 계속 씹어서 조 선생한테 미리 콜 날리라고 했는데, 내가 괜한 짓을 했나 봐.”
“네?”
순간, 나는 의아해하며 바로 반문했고.
이때, 뭔가 말하려던 김상희 교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간호사가 인투베이션(intubation) 세트를 건네자 그는 즉시 시술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인투베이션(intubation)를 마친 그는 다시 말했다.
“어이! 김 선생은 그냥 올라가서 대기하고 있어도 돼. 상황 봤으니까 급한 거 알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어서 가봐.”
그래서 인사를 한 뒤, 나는 조용히 그곳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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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잠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나는 고민하듯 생각했다.
좀 전의 그 말씀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CS(흉부외과)에서 응급실 콜을 무시했다고??
보통, 응급실 콜을 받으면 정신없이 내려가 확인부터 한다.
며칠 전, 신라그룹 한태산 회장이 응급실로 이송되어 들어올 때, 흉부외과 교수님들은 새벽 시간대임에도 응급실에 미리 나오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문제가 있다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 이거였구나.
결국,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보통, 별의별 잡일들까지 다 맡아야 하는 인턴들.
그러나 그 인턴들이 저 흉부외과에선 지금 정신없이 바쁘기만 하다.
3월에 들어온 인턴이 어느덧 11월이 되면서 경험도 어느 정도 축적됐고.
그래서 흉부외과에선 적극적으로 인턴을 수술에 투입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 응급실 콜 대응은 갈수록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건 흉부외과의 나날이 나빠지는 극악한 현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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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너무 일찍 응급실로 내려갔던 나는 다시 올라왔고.
잠시 후, 병동 관리와 차팅을 하면서 다시 콜이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다시 응급실 콜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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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알았어. 바로 확인하고 조치할게. 수고해.”
이번에 전화를 준 사람은 응급실 인턴이다.
이번 11월 응급실 인턴이 된 의대 동기 남동현.
그렇게 노티를 받은 나는 먼저 김재호 선배를 찾았지만, 수술 중인 상태였고.
최고은 선배, 윤세진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레지던트들이 모두 수술방에 들어가 있는 상황.
할 수 없이 내부 프로토콜에 따라, 당직 교수님한테 상황을 보고했고.
퇴근한 각 교수님한테 즉각 야간 콜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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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편!
바로 그 시각···.
뜻밖의 장소에 있던 서철성 교수.
그는 병동 스테이션 콜을 받은 뒤 즉각 전화했다가 이내 무척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젠장!”
어느덧 얼굴이 벌겋게 변한, 다소 과하게 취한 상태인 서철성 교수.
전화기를 내려놓은 뒤 그는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한쪽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포장마차 주점에서 3차 겸 해장술을 마시던 박윤후 교수는 고개를 돌려 쳐다봤고.
서철성 교수의 심각한 표정에 바로 의아해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인가?”
“하! 이거 어떡하죠? 지금 TA 응급이···.”
“TA?”
그 순간, 바로 벌떡 일어섰다가.
이내 인상을 팍 쓰며 주저앉는 박윤후 교수.
“아차! 내가 이젠 낄 데가 아니지. 나도 참···.”
그 순간!
서철성 교수의 두툼한 눈썹이 꿈틀거렸고 인상을 팍! 썼다.
“교수님, 또 왜 그러십니까! 이제 좀 진정하십시오!”
“허허. 진정하긴 진정해야겠지. 근데 맞는 소리가 아닌가? 내가 할 수 없는 일인데. 그보다 자넨 어떻게 할 건가? 음주도 했는데 수술대에 설 수도 없을 테고. 하! 그러고 보니 나 때문에 자네가? 정말 미안하게 됐네.”
그러자 서철성 교수는 박윤후 교수의 떨리는 눈동자를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고.
그런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 그게 무슨 교수님 잘못입니까? 우리가 신 같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앞일을 압니까? 근데 저는 너무 마셔서 지금 메스 잡을 힘도 없습니다.”
하긴, 먹어도 너무 먹었다.
지난 오전 수술 때, 수술장 은퇴를 해야 하는 박윤후 교수의 상황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서철성 교수는 마음이 무척 안쓰럽고 무겁기만 했다.
같은 써전으로서, 같은 교수로서.
그리고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의 그 씁쓸함과 아픔을 알게 된 터라 그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그래서 저녁 수술이 끝나자마자 바로 병원 밖으로 나온 뒤, 박윤후 교수와 함께 늦은 저녁 식사 자리를 겸해서 술을 마시게 된 것이다.
횟집에서 1차.
자주 가는 근처 소줏집에서 2차.
그리고 이곳 포장마차에서 3차.
이렇게 마시는 동안, 두 사람 모두 합쳐서 대략 소주 8병 정도를 마신 것 같았다.
그렇듯 미친 듯이 마신 이유는······.
왜냐하면, 음주를 하게 되면 수술대 앞에 설 수가 없는데, 그래서 이왕 못 서게 되는 거, 성국대 흉부외과 전통에 따라 그냥 제대로 미친 듯이 마시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윤후 교수를 최대한 위로해주고 싶어 그렇게 과음을 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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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나도 못 가고, 서 교수도 못 가는데, 병원은 괜찮을까?”
박윤후 교수의 그 말에 순간 이마를 잡았다가 머리를 뒤로 쓱 넘기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 서철성 교수.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뭔가 생각하는 서철성 교수.
이때 뭔가 숙연함이 갑자기 생겨나자, 테이블엔 조용히 침묵이 찾아들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표정은 무척 굳어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턴 누구도 술잔을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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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
“네?”
“우리 그만··· 일어나지. 새벽이라도 일찍 나가려면.”
“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서는 서철성 교수.
“저기, 잠시만 화장실 좀.”
그러나 그는 화장실로 가지 않았고.
재빨리 뛰어나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쳤다.
황급히 박윤후 교수가 신용카드를 들고서 뛰어왔지만, 이미 계산을 마친 서철성 교수.
“선배님, 오늘은 제가 끝까지 삽니다. 택시비도 제가 낼 거고. 자! 이제 가시죠.”
“이 봐. 서 교수. 대체 왜 그래? 이런 날, 오히려 내가 사야 하는 거 아닌가?”
“아뇨! 아닙니다. 선배님. 아주 사소한 거지만, 제 작은 성의 표시니까 무조건 받아주십시오.”
“그래도 그렇지. 평소에 내가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선배님!”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서철성 교수는 갑자기 박윤후 교수의 두 손을 잡았다.
비록 취기가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부리부리한 그의 두 눈.
그런데 그 강렬한 눈을 보는 순간, 박윤후 교수는 잠시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잘난 후배, 믿음직한 후배, 자신을 믿고서 이곳 성국대 병원을 와 준 아주 고마운 후배.
비록 자신은 진짜 별로 해준 게 없는데.
그는 어느새 성국대 병원의 기둥이 되고 있었다.
‘···미안하네. 미안해.’
그런데 이때, 이심전심이 되듯, 갑자기 서철성 교수의 두 눈이 별안간 충혈되는 것 같았고.
억지로 참는 듯한 서철성 교수.
“선배님.”
그 순간, 깜짝 놀라는 박윤후 교수.
“왜? 왜 이러는가?”
“죄송합니다. 잠시 술 마신 거 후회를 했는데··· 근데 따지고 보면, 선배님께서···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구했습니까? 이 시간··· 제가 안타까워할 게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순간, 박윤후 교수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멍하니 쳐다보다가.
박윤후 교수 역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덩치는 산만 하지만 인정이 유난히 많아 환자한테 바치는 정성이 정말 대단한 후배, 그게 바로 서철성 교수다.
그의 진실된 마음이 전해졌고.
박윤후 교수 역시 두 눈이 약간 충혈되었다.
평생을 수술대 앞에서 사투를 벌였기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기에 오전의 그 일은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자신한텐 자랑스러운 후배가 있고, 똑똑한 제자가 있고, 성실한 간호사가 있어,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저렇듯 듬직한 서철성 교수가 자신을 위해주는 모습을 보이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후배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같은 써전이라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라서?
그래,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지도 후배는 더 정확하게 알 것이다.
“···고맙네··· 고마워···.”
두 눈이 충혈된 박윤후 교수는 어느새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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