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드는 기자들 01
<58>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와이프, 뇌 수술까지 무사히 마쳤다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최문영 환자의 남편.
그 남자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2001년 2월, 출시된 비타500.
그걸 두 박스나 가져온 그는 스테이션 모니터 앞에 앉아 잠시 차팅을 하던 나에게 그걸 건네며 그렇게 계속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었다.
실제, 최문영 환자는 산부인과, 흉부외과, 일반외과 수술 등을 거쳐 좀 전에 신경외과(NS) 수술까지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
여러 진료과가 협진한 터라 병동 지정이 애매했으나 최종적으로 신경외과(NS) 병동에 입원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직접 흉부외과를 찾아온 거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때문에 밤에 주무시지도 못했을 텐데.”
“아닙니다. 대충 한두 시간 정도 엎드려 잔 터라 전 괜찮습니다.”
“한두 시간요?”
“아, 그냥 뭐,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남편은 잠깐 시간 좀 내 달라고 했다.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다고.
아무래도 응급실에서 수술 동의서를 받았던 사람이 바로 나였고.
새벽에 최문영 환자의 스트레처카를 밀며 수술실로 들어갔던 이도 나였기 때문에.
그는 그래서 나랑 이야기하는 게 좀 편안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우리는 병동 휴게실로 들어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았다.
그리고 그가 재빠르게 캔커피 두 개를 뽑아온 덕분에 달달한 캔커피를 마시며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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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듣기론 사고 피의자가 여기 병원에 있다던데 맞습니까?”
순간, 그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아! 아시는군요? 상황이 좀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다치신 분들은 피의자, 피해자 상관없이 병원으로 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자 불쑥 묻는 남자.
“혹시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입원 병동을 묻는 건가.
고태진은 흉부외과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화상 치료를 위해 타 진료과의 협진이 필요하지만, 일차적으로 심장 수술을 한 터라 예후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
“그건 왜 물으시죠?”
내가 오히려 반문하자, 남자는 날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리고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와이프 수술 끝날 때까진 일부러 신경 안 썼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 와이프가 더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장모님도요.”
최문영 환자의 엄마, 박숙자 환자는 수술 뒤 역시 흉부외과 중환자실로 들어간 상태다.
결국, 고태진 한 사람 때문에 한 가족의 피해가 정말 심각했다.
태아는 사산됐고, 와이프와 장모가 거의 죽을 뻔했다. 그리고 그들은 앞으로 쾌유되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선생님! 참, 이건 제 명함입니다.”
그러고는 남자는 구겨진 정장 상의 안 주머니에서 작은 명함지갑을 꺼내 명함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그런데 이때 내 눈에 들어온 건, 금빛의 명품 로고가 박혀 있는 명함지갑이다.
딱 봐도 상당히 비싼 명함지갑.
그제야 나는 그 남자를 다시 쳐다보며, 남자로부터 받은 명함을 유심히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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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근데 이게 뭐야?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2부]
[검사 김덕규]
순간,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명함을 계속 쳐다봤다.
최문영 환자의 남편이 검사였다고?
그것도 서울지검 특수2부 검사?
무척 젊은 모습에 무척 순한 모습.
그러나 명함을 통해 그 신분을 알고 나자 사람의 눈빛이 좀 더 다르게 보인다.
역시 사람은 단순히 외면만 보고서 판단할 수 없나 보다.
“검사님이셨군요?”
“네. 사법연수원에서 나온 뒤 검사시보 거쳐 얼마 전부터 검사 생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출산을 앞뒀는데도 가보지도 못했고··· 장모님이 저 대신에······.”
점점 더 목소리가 작아지는 김덕규 검사.
그러니까 최문영 환자의 남편은 비록 초임 검사지만 현직 검사였던 것이다.
태아(아들)가 사산되었음에도 이를 악물며 버틸 수 있었고, 남들보다 더 빠르게 그 고통을 인내했던 건 바로 그의 근성 덕분이었다.
“선생님, 그런데 저는 그 새끼!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한순간 두 눈에 독기까지 보이는 김덕규 검사.
젊은 검사이지만 그 눈빛이 아주 형형했다.
“반드시 그 죄과! 반드시 치르게 할 겁니다!”
그렇듯 거친 울분을 잠시 토해내다가.
그는 다시 진정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과 같은 이곳 의사 선생님들의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힘든 일들이 있으시다면 혹시 저한테 언제든 연락해주십시오. 제가 도울 게 있다면 뭐든 돕겠습니다.”
그 말을 하려고 자신의 신분을 오픈했나 보다.
이때 나는 그저 묵묵히 쳐다보다가 곧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검사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하지만 지금은 최문영 환자의 상태가 더 중요합니다. 아마 NS(신경외과) 선생님들한테서 잘 들으셨겠지만, 뇌수술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예후 관리도 아주 중요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내리는 김덕규 검사.
그러고는 잠시 뒤 고개를 드는데.
이때 그 눈빛이 약간 이상해졌고.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움이 번득이고 있었다.
“근데··· 이번 사고를 일으킨 그 피의자··· 그 새끼 아버지··· 고상중 의원이 맞습니까?”
이때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나 때문에 환자의 개인정보가 누출되는 건지, 아니, 이미 누출된 건지, 그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어색한 표정만 지으며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과응보가 되더라도 반드시 법적으로 할 겁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렇듯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초임 검사의 모습.
한편, 나는 가벼운 미소로 화답한 뒤 다시 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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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TA 환자··· 그 남편분 맞지? 아까 비타500 사오신 분?”
스테이션 모니터 앞에 다시 앉자, 눈 밑에 유난히 다크서클이 축 늘어져 있는 이동욱이 그렇게 물었다.
“근데 무슨 이야기 나눴어?”
비타500 한 병을 어느새 다 마신 이동욱.
녀석은 나한테도 비타500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즉시 비타500 두껑을 땄고 단숨에 마셨다.
“흠. 그냥 뭐. 이것저것. 참, ICU(중환자실) 박숙자 환자는 괜찮지? 의식은?”
“어? 박숙자 환자? 아까 가 봤는데··· 괜찮았어. 아직 의식은 없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동욱아.”
“어?”
“너 배 안 고파? 우리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지금 병동이 조용한 게 우리 빨리 먹고 오자.”
그렇듯 갑자기 내가 완전히 화제를 바꾸자, 이동욱은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대답했다.
“뭐, 괜찮긴 한데. 근데 지현이도 곧 수술 끝날 텐데? 나는 좀 이따가 먹을게.”
그 순간, 나는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어느덧 시간이 오후 2시를 지나가고 있다.
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섰다.
“야, 할 말 있으니까 지금 바로 가자.”
“지금? 무슨 말? 야, 이씨! 그냥 너 먼저 먹어. 나는 좀 이따가···.”
그 순간, 나는 이동욱의 팔을 꽉 잡아끌었고, 엘리베이터 탑승구 쪽으로 쭉쭉 걸었다.
이때, 선물용 음료수 상자 하나를 든 중년 남자.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좌우를 잠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호실 표지판을 확인한 듯 우리를 스치듯 지나가며 천천히 사라졌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묘한 느낌이 들어, 나는 바로 뒤돌아보다가.
잠시 후, 띵! 소리가 나며 다른 엘리베이터가 8층에 서자, 이동욱과 함께 엘리베이터 안으로 즉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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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지하 1층 일반식당가.
“무슨 말? 어떤 거? 무슨 말을 하려고?”
테이블 하나를 두고서 마주 앉은 이동욱.
녀석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나 나는 숟가락부터 들었다.
“우선,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교직원 전용 식당이 아니라 일반 식당가에 앉은 우리.
나는 먼저 공깃밥을 사골우거지탕에 투하한 뒤 허겁지겁 먹으면서 허기부터 지웠다.
이때, 이동욱 역시 숟가락을 쥐고서 정신없이 먹었고.
그러다가 나는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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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 지현이랑 요즘 잘 안 되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는 녀석.
“그냥 뭐···.”
그러고는 얼버무리는 녀석.
나는 다시 물었다.
“근데, 넌 도대체 언제부터 지현이를 좋아했어?”
사실, 두 사람이 친하기에 그냥 단순한 연인 사이로만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 이상의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그러나 긴 세월을 거쳐 회귀한 뒤 처음으로 나는 진짜 관심을 갖게 된 거다.
그러고 보면, 나란 놈도 참 무던한 놈이 아닌가.
내 일에만 집중하고서 주변 일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오로지 앞을 향해서 달려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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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넌 아직 그것도 몰랐어?”
한편, 내가 대답 없이 가만히 있자, 할 수 없다는 듯 이동욱은 간단히 속내를 털어놓았다.
“너도 알잖아. 지현이 성격이 간간이 좀 센 거.”
그야 당연히 안다. 괄괄하고 때로는 직선적으로 뭐든 쏟아내는 스타일.
“혹시 기억 나? 우리 본과 다닐 때 의료 봉사 간 거. 한센인 요양시설에서 지현이가 그렇게 정성스럽게 한센인 할머니들을 보살폈는데··· 떠날 때 우리도 좀 마음이 안 좋았잖아? 그때 지현이 모습 보고 난 뒤 그때 이후로 쭉···. 근데 내가 이 이야긴, 아마 여러 번 했던 것 같은데?”
그러나 내 기억 속엔 그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물론, 나도 지현이가 환자들한테 붙임성 있게 잘 대하는 건 알아. 책임감도 있고, 똑똑하고, 의지도 있고. 근데 넌 그때 이후 몇 번 대쉬했어?”
“어? 그건 왜??”
“다 실패했지?”
“······.”
“참나! 너도 그렇고 지현이도 그렇고. 둘 다 이상하다니까. 니네 아직 남친, 여친 각자 이런 거 없지?”
그러자 이동욱은 순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야! 사정이 있어. 이건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건데. 야! 너 꼭 비밀 지켜.”
“뭔데?”
“지현이···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우리 2년 선배인 것 같은데···.”
“누구? 누군데?”
“자세히는 몰라.”
“그럼 넌 지금껏···.”
“뭐, 지현이도 짝사랑, 나도 짝사랑. 뭐 그런 셈이지.”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새끼, 완전 순애보네.
“그래서 어쩌려고?”
“다행히 지현이가 사귀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래서 기다리겠다고?
아으으. 순간 열불이 났다.
이런 상황이었나.
그러고 보면, 내가 참 무심해도 너무 무심했다.
내가 아는 이동욱의 성격은 조용하면서도 절대 계산적이지 않다.
정치인 아버지 덕분에 온갖 계산질에 능한 내 경우와는 확실히 다르다.
너무 순수한 친구, 너무 순애보인 녀석.
이런 녀석이 옆에 있으니 오히려 내가 너무 오염됐다는 그런 생각마저 든다.
“동욱아.”
“왜?”
“지현이가···.”
순간, 나는 저번에 지현이가 성질부린 걸 이야기하려다가 갑자기 나도 모르게 입을 닫고 말았다.
지현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바로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이동욱의 표정 때문.
그러고 보면, 내가 자칫 이간질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고,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당당히 인턴 선생님이 된 이동욱. 녀석의 인생은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 내가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 역시 남녀 사이의 일이란 정말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방지현의 생명을 꼭 구해주고 싶고.
이동욱의 아픔도 없애주고 싶지만.
결국, 다시 원점인 것 같았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영원히 이어질 수 없는, 그저 서로의 등만 쳐다보는 그런 사이여야만 할까.
에이씨,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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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늦은 점심을 먹은 뒤 본관 1층으로 올라왔을 때.
뜻밖에도 본관 1층이 지금 무언가 난리였다.
수많은 기자들이 갑자기 몰려와 있었고.
외래진료를 위해 내원한 사람들과 뒤섞이며 본관 1층이 한바탕 난리인 상태였다.
의아해하며 쳐다보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흉부외과 스테이션에 도착했는데.
거기서도 작은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테이션 전화기마다 간호사들은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고.
얼굴을 팍 찌푸리고 있던 김재호 선배는 날 보자마자 내 쪽으로 다가왔다.
“김정민 선생. 나 좀 보자.”
도대체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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