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드는 기자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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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무슨 일입니까?”
“너 혹시 고(故) 권철수 환자 사건 알고 있었어?”
권철수 환자?
나는 놀라며 즉시 물었다. 김재호 선배가 딱 집어 고(故) 권철수씨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왜요? 무슨 일 일어났습니까?”
“좀 전에 수원지검에서 전격적으로 중간 수사 발표를 했대. 나도 간호사 쌤한테서 들었는데, 우리 병원이 그때 세게 언급됐고.”
“네?”
“정찬수 환자, 황성수 환자, 최동만 환자. 우리 병동에 있는, 그 환자들 있잖아! 그 환자들과 관련된 사건이래. 아! 한성화학 화학 폐수 유출 사건! 최종 확인된 사망자 숫자가 대략 16명 정도 되고, 투병 중인 사람들 숫자가 수십 명이라고 했어. 근데 우리 병원에 입원했다가 사망했던 그 권철수 환자. 그 사람 덕분에 사건 전말이 드러났다고 하더라. ‘한성화학 게이트’라고 하면서 지금 난리가 났다고 하고.”
한성화학 게이트?
“그래서요?”
“사실, 좀 전에 그 소식 듣고 나도 깜짝 놀랐어. 새벽에 너도 봤지? 고상중 의원! 그리고 그 아들이라는 사람, 이번 사건의 핵심 관련자 중의 한 명이라고 하고. 고상중 의원 역시 수사 대상이라고 하고. 근데 놀라운 게 뭐냐면, 이들 혐의자들에 대해 내일 전격적으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있다잖아.”
“고상중 의원, 그럼 그 사람도 구속됩니까?”
“글쎄! 그건 아닐걸. 국회의원이라서, 그런 이야긴 없던데.”
그럼에도 이게 이렇게 세게 터졌나.
문득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고.
저번에 날 찾아왔던 강지연 검사의 얼굴도 생각났다.
근데 이렇게 세게 터트릴 줄은 전혀 몰랐다.
본관 1층엔 기자들이 벌떼같이 몰려든 상황.
특히, 중간 수사 단계에서부터 고상중 의원이 언급됐다는 건 그만큼 검찰에서 센 증거를 쥐고 있다는 말일 테고.
아버지는 이번 기회를 통해 고상중 의원을 확실히 처리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젯밤에 있었던 그 TA(교통사고) 환자들 말이다. 그것까지 합쳐서, 기자들이 지금 난리다. 참! 그러고 보니까 우리 병원에 일들이 참 많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스테이션 쪽을 쳐다봤다.
지금 간호사 모두가 정신없이 바쁘다.
수화기를 놓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리고 있을 정도.
하긴, 이젠 이해가 된다.
우리 흉부외과에 고(故) 권철수씨가 있었고.
이곳 중환자실에 [한성클린] 고태진 대표가 지금 입원해 있다.
그러니 특히 우리 흉부외과에 큰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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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네가 제보한 건 아니지?”
“네?”
“고(故) 권철수 환자 말이야. 가장 신경 써 준 건 너잖아? 고(故) 권철수 환자 가족과도 계속 연락했고.”
나는 김재호 선배를 빤히 쳐다봤다.
역시 치프 선생답다.
모른 척하면서도 전반적인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선배님.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하긴, 환자 가족들이겠지? 암튼, 혹시 모르니까, 우린 당분간 입조심하자.”
그러고는 김재호 선배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바빠죽겠는데 유명정치인이 포함된 사건까지 터지고. 내 생각엔 이런 사건은 기자들이 하루 이틀 건드리다가 물러서지 않아. 더군다나 우리 병원엔 신라그룹 한태산 회장도 입원해 있는데···.”
아무래도 갑자기 이곳이 화제의 중심이 된 것에 김재호 선배는 무척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조용한 병원이 덜컥 뒤집어지는 건 사실상 누구도 원치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스테이션 김선화 간호사가 멀리서 날 쳐다보며 외쳤다.
“김 선생님! 여기 전화 좀 받으시겠어요?”
전화?
나는 김재호 선배를 한번 쳐다본 뒤 단숨에 다가갔다.
“누굽니까?”
내가 묻자, 김선화 간호사는 짧게 대답했다.
“김 선생님 아버지! 아버님이라고 하시는데요.”
뭐? 내 아버지?
나는 잠시 흠칫했다가 이내 수화기를 들었다.
<59>
“···흠, 그래. 건강은 좀 어떠냐? 잠은 잘 자고? 음, 너도 바쁠 테니 짧게 말하마.”
“······네···.”
“강제철 실장이 지금 거기로 갈 거다.”
“······.”
“잠시 시간 내서 꼭 만나도록 해라.”
아버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
무척 침착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목소리다.
그러고는 또 이어지는 목소리.
“···그리고 그 한태산 회장 딸··· 그 아이 말이다.”
“······.”
“네가 신경 써서 구한 걸 보면··· 혹시 네가 그 아이한테 마음이 있느냐?”
“······.”
“음, 혹시라도 마음에 있다면 나한테 언제든 말하거라.”
“······.”
“중간에 손을 써 줄 테니.”
“······.”
“알았다. 그만 끊자.”
한편, 내가 말이 없자, 바로 통화를 뚝 끊어버리는 아버지.
나는 잠시 전화기를 들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전화기를 내려놨다.
항상 저런 식인 아버지.
의견을 묻는듯하면서도.
실제로는 지시 혹은 명령을 하는 것 같은 아버지.
늘 지시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그런 말투를 쉬이 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좀 전에 한유나를 언급했을까.
설마 한유나와 날?
순간, 나는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확 들었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썼다.
그러다가 흠칫 놀랐다.
다시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다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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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국대 흉부외과 맞죠? KBC 강진운 기자입니다. 혹시 거기 입원한 환자들 중에 정찬수씨, 황성수씨, 최동만씨 외에도 한성클린 고태진 대표도 있죠? 저흰 좀 전에 병원 본부에서 촬영 협조를 받았는데···.”
아이씨, 어느새 방송국 기자까지?
나는 얼른 대답했다.
“저기, 잠시만요. 김선화 선생님! 여기 전화 좀 받으시죠.”
김선화 간호사는 즉시 그 전화를 넘겨받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난리가 아니다.
대기업 폐수 문제.
사망자 발생.
유력 정치인과의 유착 문제.
유력 정치인 아들의 일탈.
교통사고 사망 사건.
거기다가 우연인 듯 그 중심에 서게 된 성국대 병원 흉부외과까지.
특히, 한태산 회장과 그의 막내딸이 이곳 VIP실 병동에 입원해 있다는 건, 수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부추길 만한 아주 매력적인 기사 소재가 아닌가.
즉, 우리 병원이 앞으로 전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더욱더 커져 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 모든 사건과 내가 관련성이 있다는 것.
물론, 똑똑한 아버지께선 대략 뭔가를 예측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기 힘든 절대적이고 괴이한 시스템 속에서.
나는 그 모든 사건들을 직접 주도하고 있었고.
또한,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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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나는 양해를 구한 뒤.
본관 3층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넓은 지하 주차장 구역을 잠시 배회하다가.
곧이어 유난히 선팅이 짙게 된 SUV 차량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이 번호가 맞는 것 같은데.
[서울 42나 90XX]
먼저 구시대 차량번호판부터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뒷좌석 문을 열자, 뒷좌석 안쪽 자리에 앉아 있던 강제철 실장과 눈이 마주쳤다.
한편, 그는 내가 들어오자, 앉은 자리에서 깊이 머리를 숙이며 날 맞이했다.
그리고 이때, 갈수록 백발이 되고 있는 그의 머리가, 인상적으로 내 시야에 들어왔다.
“도련님, 혹시 몰라 여기까지 나오시라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강제철 실장은 평상시의 날카로운 눈매를 지우고, 어느새 아주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실장님.”
“그럼, 시간이 없으실 테니, 이것부터 받으시죠?”
인사하기 무섭게, 강제철 실장은 007가방 같은 걸 나한테 넘겼다.
“이게 뭡니까?”
“각종 서류들이 안에 들어있습니다. 의원님께서 직접 보내신 겁니다.”
서류?
어떤 서류?
“의원님께선 늘 도련님에 대해 이런저런 걱정들이 많으십니다. 그런 것들도 혹시 아십니까?”
잠시 내가 말이 없자, 강제철 실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 서류들은 한태산 회장 가문과 관련된 기밀 서류들입니다.”
기밀 서류?
근데 이런 걸 왜 나한테?
“도련님께서 한유나씨를 구하시는 바람에 신라그룹과 인연이 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의원님께선 더 걱정이 많으십니다. 일반인들은 재벌가를 바라볼 때 특별히 앞뒤 따질 게 없겠지만, 도련님께선 정확하게 알고 인연을 맺는 게 꼭 필요합니다.”
내가 의아해하며 계속 쳐다보자, 강제철 실장은 더 설명했다.
“절대 재벌가는 단순한 가문들이 아닙니다. 언제든 손에 피를 묻힐 수 있는, 때로는 아주 냉혹한 가문들입니다. 한유나씨가 왜 스스로 자살을 시도했겠습니까?”
“···음, 그래서 저더러 공부 좀 하라 그 말씀입니까?”
“꼭 그렇진 않습니다. 사실, 이번 일들이 진행되면서, 의원님께선 도련님께 다시금 큰 기대를 품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의원님께서 이것저것 신경을 쓰시는 겁니다.”
근데 나에 대한 기대?
순간, 나는 웃을 뻔하다가 이내 표정을 바로 했다.
사실, 옛날 같았으면 정말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을 텐데.
그러나 나도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래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도련님, 가방 비밀번호는 078X입니다. 그리고 서류는 보신 후에 저한테 주셔도 되고 자체 폐기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제삼자가 봐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한편, 나는 가만히 시커먼 가방을 쳐다보다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럼, 실장님.”
“네?”
“이 안에 있는 서류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기밀 서류라고 했으니 보통 서류는 아닐 것이다.
이때, 강제철 실장은 잠시 갈등하는 듯하다가.
더는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듯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국가기관에서 나온 겁니다.”
“···국가기관?”
“아, 그 정도만 아십시오. 너무 자세히 아시는 건 절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 좀 위험한 거 아닙니까?”
그러자 웃는 강제철 실장.
“하하, 도련님. 의원님을 따르시는 분들이 도련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의원님께선 그럴 만한 위치에서 계십니다. 오히려 도련님에 대한 염려가 더 크실 뿐입니다.”
이때,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고.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그 가방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다시 ‘역시나’로 바뀌면서.
시스템 알림이 즉시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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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클래스 S, 새로운 미션이 생성되었습니다!]
[최초 메인 미션입니다]
[피 흘리는 권좌(클래스 S)]
[이 메인 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잔혹한 인간(클래스 A)]
[이 미션도 수락하시겠습니까?]
[두 개 미션을 모두 수락할시 미션이 병합될 수 있습니다]
앞선 미션 수락을 하지 않은 탓에 그렇듯 두 개의 미션 수락 요청 알람이 동시에 떴고.
지금껏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메인 미션 외에도 클래스 S등급의 미션이 그렇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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