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총탄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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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에 52입니다.”
나쁘지 않다.
“메스!”
그때부터 좀 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 박리도 진행되었다. 루페를 이용해 세세하게 살피며 서철성 교수님의 손놀림은 점점 더 빨라졌다.
“김 선생, 여기 모스키토 잡아!”
“클램프 두 개!”
“지혈.”
순간순간 전기소작기 보비(Bovie knife)가 활용되었고···.
그리고 시작된 수처.
바늘을 쥔 서철성 교수님은 아주 꼼꼼하게 수처 작업을 진행했다.
좌폐하엽과 우폐하엽 쪽, 관통상 부위.
생리식염수로 세척한 뒤, 주변 조직을 정리했는데.
특히, 괴사된 조직을 절개해서 제거했고.
곧이어 단순 봉합 및 복원술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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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각도가 좋지 못해.”
특히, 우폐하엽 쪽은 총탄이 지나간 위치가 좋지 못했다. 주변 조직 괴사 범위도 좀 더 넓었다. 그러다가 보니 절개, 봉합, 복원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그걸 다 마치고 나서 다음 위치인 심장 쪽으로 넘어갔다.
우심실 기저부 쪽이다.
총탄이 아슬아슬하게 박혀 있다.
한편, 총탄 제거 전, 수술방 간호사는 사진기를 가져와 그 부위를 집중적으로 찍었다.
그 일이 끝나자 총탄 제거부터 진행되었는데···.
주변 조직과 심장 위치별 손상 정도도 확인해 보니, 특히 심낭 쪽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견되었다.
바로 혈심낭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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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낭 외에는 다른 문제가 없지?”
“네.”
“봐. 봐. 이걸 보면 천운이라는 게 이런 거야.”
한편, 서철성 교수님은 총탄이 심장을 관통하지 않고 총탄이 단지 거기에 박혀 있다는 것에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확인사살 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군의관 출신인 서철성 교수님은 현재 상황을 그렇게 평가했는데.
내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자 서철성 교수님은 좀 더 설명했다.
“아마 사제권총이라서 그런 거겠지. 위력이 들쑥날쑥하고. 특히 마지막 총탄은 관통한 앞선 총탄들보다 그 위력이 약했던 것 같아.”
“근데··· 그게 왜 마지막 총탄입니까?”
“아까, 총탄 각도 기억 나? 제거하기 전에 총탄이 꽂힌 방향.”
“아, 기억납니다.”
“그건 각도상 정조준해서, 그냥 아래로 겨냥해서 쏜 거야. 그때 총탄 위력이 약했던 거고. 불발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총탄 위력이 약했어.”
“하지만 확인사살이면 머리를 쏘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심장을 쏘는 것도 확실한 사살 방법이니까. 아니면 혹시 다른 사연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거기까진 자신도 알 수 없다는 서철성 교수.
어쨌든 그렇게 총탄은 쉽게 제거되었고, 세척 이후 주변 조직은 단순 봉합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 일들이 좀 더 복잡해졌다.
혈심낭 상태를 이제 해결해야 한다.
결국, 추가 수술을 위해선 심폐 바이패스 상태가 필수적이다.
그때부터 아주 빠르게 심폐 바이패스 준비 단계를 거쳤고.
마침내 서철성 교수님은 메스를 쥐고서 심낭을 절제했다.
단순히 붉은 혈액이 고여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심낭에 또 다른 파열 부위가 있는지 그걸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잠시 후, 메스의 날카로운 칼날에 스윽! 하며 부분 절개된 심낭.
우선, 그 내부를 확인해 보니 80cc 정도의 혈액이 고여 있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양이다.
“석션!”
즉시 혈액은 제거되었고.
시야가 확인되자 좀 더 세세하게 상태를 확인했다.
“파열 흔적은 없는 것 같은데. 어때?”
서철성 교수님이 슬쩍 비켜 주자 나는 그 상태를 확인했고 바로 동의했다.
그럼 된 거다.
“수처!”
메스를 내려놓고 봉합 바늘을 손에 쥔 서철성 교수님은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수처를 진행했고.
아주 꼼꼼하게 수처를 마쳤다.
그러고는 수술 시간을 확인해 보니, 수술방에 들어온 지 어느덧 4시간이 경과된 상태다.
손놀림이 빠른 서철성 교수님의 집도임에도 수술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앞선 8시간짜리 수술까지 생각한다면, 이 환자는 무려 12시간짜리 대수술을 지금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횡격막 측부 열상 처치도 해야 한다.
“석션!”
곧이어 횡격막 주변으로 흘러나온 다량의 혈종을 석션으로 제거했고.
세척에 이어서 곧바로 부분 지혈도 진행되었다.
“2-0 prolene 수처!”
곧이어 서철성 교수님은 스크럽 널스로부터 건네받은 2-0 prolene을 이용하여 손상된 횡격막을 수평으로 봉합했고.
다시 1-0 prolene을 받아 추가적으로 단순 봉합했다.
그렇게 수술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서철성 교수님은 뒤로 물러났다.
“박 선생, 바이탈은 어때?”
“괜찮습니다. 수혈 중단할까요?”
서철성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피 묻은 거즈들이 의료폐기물 통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1차 일반외과 수술 때 환자의 다량 출혈을 잡느라 얼마나 사투를 벌였는지 그 노력을 알 수 있는 생생한 흔적들이었다.
잠시 후, 환자의 각 장기 상태 및 각 혈관 상태 전반을 꼼꼼하게 확인했고.
그 일까지 다 마친 뒤, 이제 복부에서부터 흉부까지 쭉 이어지는 전체 봉합이 시작되었다.
이때, 서철성 교수님과 내가 함께 봉합을 진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봉합이 끝나게 되었는데···.
그걸 모두 마치고 나자, 이성훈 환자의 일반외과 이송을 책임진 일반외과 소속 인턴들이 수술방으로 들어왔다.
“···다들 수고했어요!”
“네,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김 선생, 뒷정리 좀 부탁해.”
“네! 교수님! 정리하고 올라가겠습니다.”
씩 웃는 서철성 교수님은 그러고는 수술방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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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너 진짜 써전 같더라!”
일반외과 인턴 박대규는 난리다.
환자를 받기 위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수술장에서 내가 마무리 봉합을 하는 모습을 그 녀석들도 본 것이다.
서철성 교수님과 합을 이루며 마무리 봉합을 아주 빠르게 진행하던 내 모습.
이런 봉합은 대체로 숙련된 레지던트들이 맡는 일이다 보니.
그걸 문제없이 수월하게 해내는 내 모습에 녀석들은 그저 깜짝 놀란 것이다.
“니가 수술한다는 소문은 들었어. 근데 지금 보니까 순 뻥이 아니었네.”
“야! 넌 진짜 정체가 뭐냐? 우리가 흉부외과에서 턴 할 땐 기껏 한 게 석션이었는데···.”
박대규도 놀랐고, 최기영도 놀란 표정이다.
“야, 그 이야긴 그만하고, 뒷정리부터 하자.”
서철성 교수님은 먼저 나가셨고.
한편, 다음 수술자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수술방 뒷정리를 해야 한다.
“그래. 기영아, 빨리 움직이자.”
그래서 인턴 최기영은 환자 이송을 맡았고.
그때부터 박대규와 나는 간호사들을 도와 수술방을 재빨리 정리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출혈 흔적을 지웠고.
각종 수술 도구들도 다시 확인했으며 피 묻은 멸균포 등도 치웠다.
어느덧 세척과 소독까지 진행되자, 그제야 우리는 간호사들한테 인사한 뒤 수술방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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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하자.”
“나야 좋지. 근데 시간은 있어? 요즘 GS(일반외과) 군기빨이 장난 아니라던데?”
커피 한잔 마시자는 박대규의 제안에 내가 그렇게 묻자, 박대규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순간, 손짓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는 박대규.
“죽겠다. 젊은 꼰대 새끼가 들어와서.”
젊은 꼰대 새끼?
첫 말부터 험하게 나온다.
설마 그 남윤성 교수 이야기인가.
“우선 내려가자.”
잠시 후, 우리는 본관 1층으로 내려갔고.
거기 자판기를 통해 캔커피 하나씩을 손에 쥐었다.
“기영이는 어쩌지?”
나는 슬쩍 물어봤다.
생각해 보니, 환자를 데려간 최기영한테 커피 마시러 간다는 이야길 하지 못한 것이다.
“야. 야. 그건 안 뽑아도 돼. 돈 다시 뽑아. 병동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어.”
“그게 무슨 말인데?”
“암튼, 나가서 말하자.”
박대규는 앞장섰고, 우리는 본관 건물 밖, 구석진 곳으로 걸어갔다.
이때, 흡연 구역의 단골손님, 응급실 조은하 선배가 깊은 밤, 홀로 서서 흡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 의사.
그녀가 흡연하는 모습.
처음 보는 사람들한텐 다소 생경한 모습이 될 테지만.
그러나 그 모습이 익숙한 나는 조은하 선배를 쳐다본 뒤 씩 웃었다.
이때, 우연처럼 멀리서 그 선배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목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녀는 멀리서 한 손을 흔들며 나한테 아는 척을 했다.
놀란 박대규.
녀석도 즉시 인사했으나 조은하 선배는 박대규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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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저 선배 날마다 담배네. 골초야. 골초. 에이씨, 근데 사람 가리는 거 좀 봐. 왜 너한테만 손짓하냐?”
흘겨보는 박대규.
의사가운을 입었지만 마치 산적 같은 인상의 박대규.
짧은 머리에 얼굴도 크고 얼굴 곳곳에 여드름 자국이 가득하다.
남자답게 생겼으나 젊어진 내 모습과 비교하면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저 선배 말야. 잘 생긴 후배한테 유독 친절하다더니, 에이씨! 내가 지금 확실히 봤어!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계속 투덜거리는 박대규.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바로 화제를 바꿨다.
“근데 GS(일반외과)엔 무슨 일이 있어?”
그렇듯 내가 진지하게 묻자, 박대규는 캔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혹시 담배 있어?”
있을 리가 없지.
수술방에서 바로 내려온 건데.
“담배 필요해?”
“있으면 좋지.”
“잠깐만.”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곧바로 조은하 선배한테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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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혹시 담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쓰레기통 재떨이에 담뱃재를 톡톡 쳐내던 조은하 선배는 의사 가운 주머니에 왼손을 넣은 뒤 담배와 라이터를 함께 꺼내 내밀었다.
“갖고 가서 피고 나중에 갖다 줘. 난 다 폈어.”
그러고는 이내 담뱃불을 끄는 그녀.
슬며시 팔짱을 끼며 날 쳐다보다가 피식 웃고는 등을 돌린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어서 응급실 쪽으로 걷자.
그 방향에 있던 박대규가 이쪽으로 후다닥 뛰어왔다.
녀석은 조은하 선배와 마주치기 전, 바로 인사를 했고.
이번엔 조은하 선배도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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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조은하 선배, 솔직히 이쁘잖아.”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던 박대규. 녀석은 그렇게 넌지시 말했다.
내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자, 박대규는 응급실 쪽을 쳐다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평상시엔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잖아. 그래서 다들 말도 못 붙이고. 근데 너는 어떻게 그리 선배랑 친해졌냐?”
“나?”
내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다가 나는 피식 웃었다.
“별로 친한 건 없는데?”
“별로 친한 게 없긴? 웃으면서 손도 흔들어주는데, 그게 안 친하다고?”
“그건···.”
“그리고 조은하 선배가 누구한테 그렇게 잘 웃는 것도 처음 봤다.”
순간, 나는 어이가 없어져 박대규를 가만히 쳐다봤다.
생긴 건 산적이지만 보기와 다르게 평소에 아주 꼼꼼하고 눈썰미도 아주 예리한 녀석.
그런 녀석이 왜 저러는지 은근히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무슨 말 하려고?”
내가 묻자, 박대규는 다시금 하얀 담배 연기를 쭉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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